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38화 (338/653)

제338화

“치, 침입자… 끄헉!”

뒤에 서 있던 사육사가 비명을 지르려다가 목이 날아갔다.

“후우우!”

그 뒤에서 나온 도리안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긴장했는지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폼 잡기는.”

라온이 피식 웃으며 앞에 있는 두 아이를 살폈다. 상처는 깊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잘 버텼어. 고생했다.”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러로 상처를 지혈해주었다.

“누, 누구세요?”

파인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던 파란 머리 소녀가 입술을 떨었다.

“지나가는 악당.”

아이들에게 데루스가 접근할 가능성도 있기에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아, 악당이요? 하지만 이름을 되찾아주신다고….”

“그래. 이름을 찾아주고,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 거야. 악당 잡는 악당이니까.”

“아!”

파인의 표정이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게 구겨졌다. 감정 통제 때문에,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쯧.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혓바닥에서 올라오는 쓴맛을 느끼며 파인과 그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살폈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9호를 죽였던 전생의 자신이 그대로 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이랬겠지.’

아니, 더 심했을 것이다.

전생의 자신은 결국 누구에게도 구원받지 못하고 감정을 완전히 묻어버렸으니까.

이들처럼 일그러진 표정조차 짓지 못하고 시꺼먼 가면을 쓴 채 웃고 있었을 것이다.

우우우우.

라온이 고개를 들어 공동의 천장을 보았다. 이곳의 이변을 알아차렸는지 위와 아래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오는 건가.’

예상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여기서 여유롭게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렴.”

라온은 시선을 내리며 두 아이의 뒷목에 있는 마나 회로를 자극해서 기절시켰다.

“자, 잠깐만요….”

“한숨 자고 나면 다 끝나있을 거야.”

파인 뒤에서 굳어있는 다른 아이들까지 전부 재워서 한곳에 모은 뒤에 도리안에게 다가갔다.

“애들을 왜 재우시는 거예요?”

도리안은 겹쳐서 쓰러진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뇌에 걸려있어서 보호하려는 널 공격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라온이 차가운 눈동자로 암살자들이 다가오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좀 지저분해질 테니까.”

오늘은 살의를 그대로 드러낼 생각이다. 저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광경이 펼쳐질 테니, 재우는 게 나았다.

“으으….”

도리안이 쓰러진 아이들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 제대로 기절시킨 거 맞죠? 다시 일어나는 거 아니죠?”

“걱정 마. 안 일어날 거야.”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킬 수 있지?”

“무, 물론이죠.”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좀 떨어졌지만, 도리안이니 그러려니 했다.

라온이 이곳으로 내려왔던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피이이잉!

양옆 통로에서 복면인 두 명이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달려왔다.

촤아아악!

도리안에게 받은 장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쩌어어억!

예검의 묘리가 깃든 장검이 우측에서 달려오던 복면인의 몸을 사선으로 갈랐다. 뜯겨나간 상흔에서 살벌한 양의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좌측의 복면인이 빈틈을 노리고 검을 찔러왔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며 장검을 올려 쳤다.

캬아아앙!

극한까지 다듬은 날카로운 검격에 복면인의 몸이 검과 함께 반으로 찢어졌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후우욱!

라온이 통로 앞으로 걸어갈 때 바닥의 그림자에서 검은색 칼날이 솟구쳤다. 로베르트의 암살자들이 사용하는 암살 무학, 흑영검이었다.

쩌어어엉!

라온은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장검을 뒤로 뻗어 흑영검을 쳐냈다. 그 반동을 이용하여 장검을 부드럽게 내리그었다.

“끄어….”

암살자는 그림자에서 몸을 다 빼내지도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나갔다.

후우우우우!

보육원과 연결된 위쪽 통로에서 사육사와 암살자들이 내려온다. 그 흔한 기합도 없이 그대로 쇄도해 검과 단검을 휘둘러왔다. 암살자다운 모습이었다.

“똑같군. 절대 변하지 않아.”

라온이 오른발 진각을 밟았다. 좌측으로 젖혀둔 장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패와 쾌의 묘리를 담은 칼날이 허공에 붉은빛 파도를 일으켰다.

쩌어어어억!

섬전처럼 달려들던 복면인들의 육체는 그들의 무기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아….”

“어억!”

“이 무슨….”

지옥 훈련을 통해 비명조차 지르지 않아야 할 그림자들은 본인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피의 바다 속으로 추락했다.

철퍽.

라온은 바닥을 적시는 더운 핏물을 밟으며 통로 앞에 섰다.

이곳으로 내려오던 암살자들은 모두 처리했다. 이제 위로 올라가서 책임자인 리스본을 베어야 했다.

“도리안.”

라온이 뒤를 돌아 도리안을 보았다. 그 역시 분노 때문인지 잔인한 장면을 보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예….”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계단 위를 올라갔다.

계단에서 나오자마자, 네 방향에서 검이 찔러 들어왔다. 음습한 오러가 깃들어 있는 칼날이 심장과 목을 노리고 있었다.

터엉!

라온이 바닥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치이이잉!

암살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로 검을 올려 쳤다. 그들의 살기가 가시처럼 피부를 짓눌러왔다.

‘소용없어.’

동시에 찔러 들어온 암살자들의 칼날을 향해 장검을 내리치며 흡자결의 묘리를 일으켰다.

찌이이잉!

암살자들의 검이 장검에 달라붙었다가 동시에 튕겨 나갔다. 놈들은 그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손아귀가 뜯긴 채 검을 떨어뜨렸다.

촤아아악!

라온은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그대로 장검을 휘어 내렸다. 빛살처럼 쏟아진 검격에 네 명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찰팍.

라온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보육원장실을 나섰다. 그가 걷는 걸음이 피의 카펫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이, 이놈!”

출구 쪽에 있던 노파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흔들었다. 입구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보육원장이다. 그녀는 예상대로 세뇌 작업을 하던 그림자의 간부였다.

화아아아!

노파의 지팡이에서 화염이 뻗어 나왔다. 지독할 정도의 열기에 통로가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후우우웅!

라온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대한 화염을 향해 검풍을 일으켰다.

쩌어어어억!

날카롭게 벼려진 바람의 칼날이 열기의 폭풍을 사선으로 갈라버렸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노파가 눈을 부라리며 이를 갈았다.

“죽은 놈이 말을 하는군.”

“무슨 헛소리….”

노파가 뒤로 물러서며 다시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 그녀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검풍의 흐름과 같은 방향이었다.

“너, 너….”

노파는 부릅뜬 눈으로 반으로 갈라진 본인의 몸을 바라보다가 꼬꾸라졌다.

“왔군.”

라온이 고요히 뒤를 돌았다. 짙은 청발에, 왼뺨에는 칼자국이 있는 중년인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리스본. 전생에 9호를 죽이게 만들었던 사육사이자, 마티오의 심복이었다.

“제법이구나.”

리스본이 차가운 눈으로 턱을 들어 올렸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잘.”

“꼬라지를 보아하니, 정의의 사도라도 되고 싶은 모양인데. 길을 잘못 들었어.”

그가 허리춤의 검을 지루할 정도로 느릿하게 뽑았다.

“네 가족도, 네 친구도, 네 지인도, 네가 아는 모두가 이곳으로 끌려와 죽게 될 거다. 바로 네놈 때문에.”

리스본은 섬뜩한 음성을 흘리며 검을 겨누었다.

‘그러겠지.’

데루스도, 마티오도, 리스본도 앞에서는 대범한 척하지만, 손해를 기억해놨다가 뒤에서 갚아주는 치졸한 놈들이었다. 저 악의로 가득 찬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그때도 그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지 궁금하군.”

리스본이 차게 웃었다. 그는 라온을 정의감에 취한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난 같나? 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일이다. 넌 죽이지 않아. 네 가족과 친구가 죽는 걸 보여준 뒤에 마지막에 심장을 뚫어주마.”

“그러냐?”

라온이 피식 웃었다. 이번 생에 새로 얻은 가족, 친구 중 누구 하나 만만한 인간이 없다. 리스본 따위가 지그하르트로 간다면 정문을 넘기 전에 온몸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해봐. 할 수 있다면.”

“멍청한 놈.”

손가락을 까딱이자, 리스본이 바닥을 부수며 쇄도해왔다. 그의 검에서 뻗어 나온 짙은 강기가 온몸을 짓눌러왔다.

“말했지. 잘못 걸렸다고. 후회해도 늦었다!”

리스본은 라온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비릿하게 웃으며 검을 내리쳤다. 그의 검에서 솟구친 강기가 사선으로 꺾여서 떨어져 내렸다.

쿠웅!

라온은 무게 중심을 낮추며 왼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쏘아지는 칼날이 리스본이 일으킨 강기의 중심을 후려쳤다.

쩌어어어엉!

평범한 장검에서 돋아난 열화의 강기가 리스본의 강기를 깨부수고 그의 팔을 그대로 찢어버렸다. 열기에 지져진 어깨에서는 핏물조차 흘러내리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악!”

리스본은 허무하게 사라진 오른팔을 보며 목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터트렸다. 그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흔들렸다.

그야말로 압도. 라온의 무력은 이미 마스터 하급 따위는 검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짓밟을 수준에 올라 있었다.

터어엉!

라온은 괴성을 지르는 리스본에게 다가가 왼쪽 가슴을 후려쳤다. 놈의 심장에 박혀 있을 레이지 웜을 기절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꺼헉!”

리스본이 뒤로 처박히며 바닥을 굴렀다. 그는 그 충격을 이용하며 반대편으로 보법을 밟았다.

‘이, 이건 안 돼!’

잘못 걸린 건 나였어.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도 알 수 있다. 저건 못 이긴다. 지금의 자신이 어떤 수를 써서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었다.

‘제기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아서 조치를 취한 뒤에 데루스에게 보고하려 했지만, 실수였다. 무조건 먼저 알렸어야 했다.

‘그래도 살 구멍은 있어.’

자신의 특기는 검술이 아니라, 그림자를 이용하는 보법이다. 흑영보를 이용한다면 저 괴물에게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고오오오오!

리스본이 그림자에 숨어서 이동하기 위해 벽에 붙었다. 그대로 어둠을 파고들려고 할 때 몸이 기울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다리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살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굳어버린 목을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 으아아아아악!”

어느새 두 다리가 잘려서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다.

“내, 내 다리! 내 다리가 왜!”

“추하다.”

“으으으….”

라온이 묵직한 걸음으로 리스본에게 다가갔다. 뚜벅이는 발걸음 소리가 울릴 때마다 리스본의 전신이 떨렸다.

“네 부하들은 죽을 때까지 비명 한 번 안 지르는데, 넌 벌써 두 번째야.”

“그, 그….”

“비명은 암살자의 수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리스본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그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고개를 들었다.

“어, 어떻게 그 말을….”

“네게 들었으니까.”

“넌 대체 누구….”

“망령.”

라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갑게 웃으며 장검을 들어 올렸다.

“너희를 지우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망령이다.”

검을 그대로 내리찍어 리스본의 왼쪽 가슴에 박았다.

“끄허억!”

심장에 아주 살짝 닿게 하여 바로 죽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가슴에서 가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아아아아악!”

리스본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가슴에 박힌 검은 절대 뽑히지 않았다.

“울부짖어라.”

라온이 장검을 꽉 말아쥐며 섬뜩한 눈빛을 쏘아냈다.

“네게 인생을 빼앗긴 아이들이 듣도록, 눈을 감지도 못하고 묻혀버린 아이들이 듣도록. 그리고….”

“끄윽….”

지독하리만큼 건조한 음성에 리스본의 눈동자가 찌그러졌다.

‘저 하늘 위에 있을 이름 모를 내 친구를 위해서 울부짖어라.’

이름조차 알지 못한 9호를 떠올리며 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너, 너는 그림자의….”

“네 비명은 그들을 위한 진혼곡이 될 것이다.”

라온이 장검을 비틀어서 리스본의 상처를 벌렸다. 그의 입에서 망령을 위로할 지독한 절규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     *      *

라온은 흔적들을 모두 제거한 뒤에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끄, 끝나셨어요? 엄청난 비명이 들리던데….”

도리안이 검을 내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어깨와 허리에는 검흔이 새겨져 있었고, 옆에는 암살자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꽤 힘든 싸움을 벌였던 것 같다.

“그래. 다시는 이딴 짓을 못 할 거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에 있는 시체를 통로 쪽으로 밀어버렸다. 혹시 모를 흔적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이제 아이들을 깨울까요?”

“음….”

라온이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힘들었는지 기절하고 나서야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니. 어차피 우리가 데리고 갈 수 없으니, 곧 올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나아.”

“잘해줄까요?”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앞에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 나름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복에 겨운 생각이었네요.”

그는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넌 너고,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힘듦은 자신만이 아는 법이지. 자책 따위는 할 필요 없어.”

-그 말대로이니라.

라스가 얼음꽃 팔찌 위로 올라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 녀석은 오늘 이상하게 조용했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니라. 저 녀석에게 미래나 생각하며 걸어가라고 전하거라.

라온은 피식 웃으며 도리안을 보았다.

“과거 말고 미래를 생각하래. 중요한 건 나아가는 거라고.”

“누가요?”

“먹성 좋은 이상한 사람이.”

-본왕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라! 긍지 높은 마족이니라!

‘그래. 그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힘이 나네요. 이상한 분께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도리안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음….”

라온이 위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멀리서부터 기사들의 갑옷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감이 친숙하다. 얼마 전에 싸웠던 보리니 키튼이었다.

“갈 시간이다.”

“보리니 키튼 경이 오는 거예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서 작은 종이 두 장에 글을 끄적인 뒤 하나는 단상 위에 나머지 하나는 파인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위한 금화 주머니까지 옆에 놓아두었다.

“좀 아쉽네요. 이 녀석들의 웃음을 보고 싶었는데.”

도리안도 배 주머니에서 과자와 사탕을 모조리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의 눈가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곧 볼 수 있을 거야. 지그하르트로 올 테니까.”

“저, 정말요?”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다.

“이제 가자.”

“예!”

보리니 키튼과 마주치지 않도록 공통에 붙어 있는 지하통로로 달렸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분노의 마안이 벽 뒤에 있는 작은 방 하나를 찾아냈다.

“흐음?”

라온은 그 책장을 보고 멈춰 섰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아무래도 전리품도 주려나 본데?”

*     *      *

보리니 키튼은 <구름의 집>이라는 이름의 보육원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이 정말 암살자를 기르는 곳인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방까지 침입하여 편지를 놓고 간 걸 보았을 때는 뭐가 되었든 무시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본 순간 먼저 몸이 움직였다.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암살자로 사육한다고 했었지.’

기사로서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을 보자, 무시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

세작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글귀에 은기사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전력을 다해서 달려왔다.

“정말일까요?”

“가보면 알겠지. 다만 기척이 적어.”

보리니 키튼은 부하 기사의 등을 툭 두드리고 안으로 향했다.

“피?”

보육원 건물 안쪽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칼에 베인 시체가 구석에 쌓여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복면인들의 피였다.

“으음….”

보리니 키튼이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었던 건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체에는 살아있었을 때의 기질이 남는다. 시체에 남은 기운은 암살자가 가질 법한 음습함뿐이었다.

“수색해.”

“예!”

보리니 키튼의 지시에 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보리니 키튼이 부하의 말을 듣고 보육원장 실로 들어갔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열려 있었다.

“가자.”

보리니 키튼이 긴장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꽤 깊게 내려가고 나서야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허억!”

“아….”

두 사람은 바닥에 가득 찬 피와 쓰러져 있는 아이들을 보고 턱을 떨었다.

“이런!”

보리니 키튼이 다급하게 달려가 아이들을 살폈다.

“하아….”

살아 있어!

다행히 죽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마나회로를 건드려서 잠재운 상태였다. 그 쪽지를 적은 사람이 한 일 같았다.

“음….”

조금 여유를 찾은 보리니 키튼이 아이들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상태가 좋지 않군.’

모두 헤진 옷을 입었고, 깨끗한 얼굴에 비해 몸에는 칼에 찔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아이들 모두 같은 곳에 상흔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암살자 교육의 흔적이 분명했다.

“이쪽에 고문 도구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 아이들의 백골이 쌓여 있는 방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방이 있는데 사람이 살기 힘든….”

기사들의 보고가 들어올수록 분노가 차올라 주먹을 꽉 말아쥘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솔직히 이곳에 오면서 그 쪽지 내용이 가짜이길 바랐다. 정말이라면 너무도 서글프고 지독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아이들을 암살자로 키우기 위한 지옥이었다.

“하아….”

보리니 키튼이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볼 때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종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종이는 방에 있던 것과 똑같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었다.

‘그 사람이 남긴 건가?’

종이를 펼치자, 이곳에 오게 만든 사람의 필체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곧 아이들을 치료할 사람이 갈 겁니다. 그때까지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것 같았다.

보리니 키튼이 종이를 보며 손을 떨었다.

“뒤처리만 해달라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면 자신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을 테니까.

‘돈도 있고.’

종이 옆에 있던 금화 주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요?”

“조심히 깨워. 모두 데리고 간다.”

“이곳의 흔적도 조사해. 원흉이 누군지도 밝혀야 하니까.”

“예!”

기사들은 반으로 나뉘어서 아이들을 깨우고, 계속 증거를 수집했다.

*     *      *

“으음….”

45호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 사람인가?’

마지막에 4번 사육사를 베었던 키가 큰 남자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어깨를 잡고 있었다.

“괜찮니?”

“아, 네….”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구해준 남자는 보이지 않고, 기사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꿈이었나?’

아니야.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온기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따스함이 꿈일 리가 없었다.

“45호….”

주먹을 꼭 쥐고 있을 때 가늘게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86호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방울진 눈물이 흘러내렸다.

“86호!”

45호는 입술을 깨물며 달려가 86호를 끌어안았다.

“으음….”

기사는 서로를 번호로 부르는 걸 보고 충격받았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이름은 보리니 키튼. 오웬의 기사다.”

그가 천천히 두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가자. 너희가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주마.”

“아….”

45호는 그 손을 잡지 못했다. 보리니 키튼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를 따라갔다가 이곳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다.

“저어….”

어쩔 줄을 모르며 어깨를 떨 때 주머니에서 잘 접힌 쪽지 하나 떨어졌다. 주워보니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기사들을 따라가.]

‘이건….’

누가 적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구해주고, 이름을 찾아준다는 그 사람이었다.

45호는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은 뒤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기사의 손을 잡았다.

“네.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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