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27화 (327/653)

제327화

삼왕자가 자연스럽게 내지르려던 검을 멈춰 세웠다.

‘위험해….’

정확한 이유 따위는 없다. 그저 감. 마르타의 맑은 흑안을 본 순간 돋아오른 오싹함을 믿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쿠와아아아앙!

그가 뒤로 물러선 순간 마르타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대련장 바닥이 주먹으로 친 비스킷처럼 으깨졌다. 정면에서 막는다면 어깨가 주저앉아버렸을 위력이었다.

“후욱….”

삼왕자가 거친 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르타의 눈동자는 어느새 다시 붉어져 있었다.

‘뭐지?’

분명 광폭화가 맞을 텐데?

사이안 협곡의 전사들이 사용하는 광폭화는 순간적으로 1.5배에서 2배에 가까운 육체 능력과 오러를 얻는대신 이성을 잃고 눈앞의 적만 공격하게 되는 육참골단의 기예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인 능력이건만 마르타는 분명 이성을 유지했었다.

‘저 여자는 대체….’

마르타가 광폭화를 사용해서 오히려 쉽게 끝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몰리게 될 줄은 몰랐다.

콰아아앙!

마르타가 진각을 밟고서 돌진해온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히는 움직임.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속도였다.

캬아아아아앙!

삼왕자는 장검을 비틀어서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오는 마르타의 검격을 흘려냈다.

‘무거워.’

흘리기에 성공했음에도 뼈가 분질러지는 통증이 일었다. 일격필살처럼 무시무시한 참격이었지만, 그녀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우우웅!

마르타는 내려간 검을 고무줄처럼 튕겨 두 번째 검격을 쳐올렸다. 그야말로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건 흘릴 수 없어.’

방향 전환이 너무 빨라서 정면에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 버티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오러를 일으켰다.

쿠우우웅!

삼왕자가 이를 바득 깨물었다. 검이 아니라 망치로 친 듯한 충격에 전신이 울리고, 머리가 아찔했다.

‘그래도 여기까지야.’

정면에서 맞붙었기에 마르타의 검은 멈춰져 있었다. 이젠 자신의 차례였다.

쿠웅!

중심을 높이며 검을 내질렀다. 섬뜩한 예기가 담긴 검격이 마르타의 좌측 어깨를 향해 쏘아졌다.

“크으!”

마르타는 어깨를 향하는 검격을 막기 위해서 검을 위로 세웠다.

‘걸렸어.’

어깨를 노린 검은 허초. 가짜 초식으로 마르타의 시선을 끌어낸 뒤 전력을 다한 검기로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노렸다. 광폭화를 사용한 마르타는 속을 수밖에 없는 수법이었다.

‘내가 이겼… 아!’

승리를 확신한 순간 마르타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검기를 거칠게 쳐냈다.

“허….”

삼왕자가 눈을 부릅떴다. 마르타의 눈동자는 어느새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날카로운 이성이 깃든 눈빛이 번쩍였다.

‘우연이 아니었다고?’

2배 이상의 광폭화를 사용하면서 이성을 유지하다니,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뭐 이런 괴물이 있나 싶었다.

“후우….”

마르타의 눈동자가 다시 붉어지고, 오러가 부풀어 올랐다.

‘지그하르트는 다 이런 건가?’

라온은 이제 닿기도 힘든 곳에 올라가 있었고,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마르타는 다른 세력의 기예를 완전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그하르트에는 괴물들만 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버텨야 해.’

광폭화의 단점은 이성의 상실만이 아니다. 강한 힘을 사용하는 만큼 체력과 오러가 2배 이상 빠르게 소모된다. 견딘다면 분명 승기가 보일 것이다.

‘질 수는 없어. 절대!’

여기는 오웬 왕성이니까.

관객 중 반 이상은 오웬의 국민이다. 국민 앞에서 추잡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다.

“후우우….”

삼왕자가 자세를 낮추며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그 검술을 사용해서라도….’

*     *      *

마르타는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세게 혀를 씹었다.

‘2.5배는 역시 쉽지 않네.’

육체와 오러를 1.5배 증폭시킨 광폭화 상태에서 이성을 유지하는 건 익숙해졌지만, 2.5배는 쉽지 않았다.

맹수가 머리를 파고드는 느낌.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간 본능에 먹힐 것만 같았다.

‘정신을 못 차리겠어.’

솔직히 말해서 2.5배의 광폭화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사이안 협곡의 전사들도 최대 2배로 광폭화를 사용하니까.

광폭화 2배라는 개념을 깨게 된 건 한 미친놈 때문이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 정신 나간 놈이 광폭화의 끝이 2배일 리가 없다며 사람을 실험체로 삼은 덕분에 2.5배의 광폭화에 이를 수 있었다.

‘깨달음까지 줬지.’

본래 2.5배의 광폭화를 사용하면 아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깨달음을 얻어 약간이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겨야 해.’

저 바보 녀석을 위해서라도.

본인의 중요한 시간을 쓰면서까지 자신을 성장시켜 준 라온을 위해서라도 이 결투는 절대 질 수 없었다.

쿠우웅!

마르타가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찼다. 시야가 좁아지며 삼왕자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실처럼 가는 이성을 유지하며 금련검의 절기 금광결을 내리쳤다.

“크으윽!”

삼왕자가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어서 그어냈다. 검격을 흘리기 위한 자세였다.

‘계속 당해줄 수는 없어.’

정신을 집중하여 금광결의 투로를 비틀었다. 직선으로 떨어지던 참격이 사선으로 꺾이며 삼왕자의 빈틈을 후려쳤다.

쩌어어어엉!

삼왕자는 그 와중에 또 검에 변화를 일으켜 충격을 최소한으로 그치게 만들었다.

“후욱!”

마르타가 검병을 꽉 말아쥐며 재차 금련검을 펼쳐냈다. 체력도, 오러도, 정신력도 한계다. 오기로 버티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 끝을 내야 했다.

“크으….”

다행히 삼왕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채 상체만으로 검술을 펼쳐냈다.

콰아아아앙!

검기와 검기가 격돌하며 시퍼런 불똥이 대련장을 뒤덮었다.

삼왕자는 그 와중에도 금련검의 빈틈을 향해 검기를 날려 충격을 줄였다.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끈질긴 놈이었다.

“음….”

삼왕자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비틀거리는 다리와 팔은 숨기지 못했다.

‘이게 마지막….’

마르타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타이탄의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단전에 단 한 방울의 오러도 남기지 않은 채 백류혼을 쏘아냈다.

쿠와아아아아!

초식의 정밀함과 균형은 떨어지지만, 광폭화 덕분에 위력이 증가한 참격이 삼왕자의 어깨 위에서 섬광처럼 내리꽂혔다.

빠지직!

그 순간 삼왕자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그 눈을 보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쿠웅!

삼왕자가 비틀거리던 다리로 진각을 밟으며 검을 내지른다. 검극에 푸른 기류가 응집되며 검기를 넘어서는 강대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노렸던 건가!’

삼왕자는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반격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검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섬뜩한 예기가 피어났다.

‘그래도 간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잡술 따위는 의미 없다. 온 정신과 육체를 담아 정면에서 부딪칠 뿐이다.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기운을 담은 마르타의 검격과 극한의 예기를 응집시킨 삼왕자의 검격이 맞부딪쳤다.

검술의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그 기세만큼은 마스터 못지않았다.

캬갸갸갸갸걍!

마르타와 삼왕자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사람의 검이 검극부터 유리장처럼 깨져나간다.

찌지지직!

검기를 휘감은 칼날 조각들이 사위로 뿌려졌다. 눈 없는 검이 펼쳐진 위급한 상황에서 두 사람의 행동이 갈렸다.

“크윽!”

삼왕자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고, 마르타는 칼날 속으로 파고들었다.

쿵!

마르타는 검기가 어린 칼날 조각에 뺨과 눈덩이, 귀가 찢어져도 멈추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그 한 발.

위험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그 한 발이 오늘의 승패를 갈랐다.

뻐어어어억!

검병을 쥔 마르타의 주먹이 삼왕자의 관자놀이에 매섭게 박혔다.

“크헉!”

삼왕자는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채 대련장에서 튕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하아아….”

마르타가 대련장에 주저앉으며 사지를 떨었다.

‘주, 죽겠어….’

힘이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지독한 고통이 밀려오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굉장히 좋았다.

피로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대자로 누웠다. 맑디맑은 하늘이 보였다.

‘이게 그 녀석이 봐왔던 풍경인가.’

라온은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항상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칼날 조각 속으로 파고든 것도 그런 바보의 등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또 도움을 받아버렸네.’

마르타는 오랜만에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주먹에 힘을 뺐다.

“좋네.”

*     *      *

-소고기 소녀가 저리 웃는 건 처음 보는구나.

라스는 대자로 뻗은 채 히죽거리는 마르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

라온이 떨고 있는 마르타의 손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시원하겠지.’

저건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 본인이 가진 전부를 부딪쳐서 이겼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 그리어 드 오웬 장외!”

사회자가 턱을 떨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피 튀기는 접전 끝에 승자가 가려졌습니다! 육황 결투 대련 익스퍼트 급 우승자는 마르타 지그하르트!”

“우와아아아아아아!”

그의 외침에 참고 있던 관중들의 함성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마르타! 마르타! 마르타!”

“마르타! 믿고 있었다고!”

“익스퍼트 결투를 손에 땀이 나도록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저런 검사가 지금까지 무명이었다니! 지그하르트는 여태 뭘 한 거야!”

“삼왕자 저하도 수고하셨습니다! 감동 받았어요!”

관객들은 접전을 벌인 마르타와 삼왕자를 모두에게 박수를 보냈다.

“근데 좀….”

“응. 무, 무서워.”

“칼날에 그대로 달려들다니, 인간 맞냐고….”

“얼굴 여기저기에 검흔이 남았잖아. 사람은 저렇게 못 해.”

다만 꽤 많은 숫자의 관객들은 깨진 검날 사이를 파고들어 주먹을 날린 마르타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나, 나찰….”

“나찰? 나찰녀? 잘 어울리는데? 입에도 딱 붙네.”

“머리를 풀어헤친 것부터 나찰 그 자체잖아!”

“이명 좋은데? 나찰녀 마르타!”

“나찰녀! 나찰녀! 나찰녀!”

마르타의 이명도 정해졌다. 멋진 이름을 바란 그녀의 바람과 달리 공포와 오싹함이 깃든 이명 나찰녀였다.

‘솔직히 무섭긴 했지.’

맨몸으로 검기 조각 사이로 들어가 주먹을 날리는 건 자신에게도 고민이 되는 행동이다.

마르타는 얼굴도 신경 쓰지 않고 돌진해 주먹을 날렸으니, 관객들이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이런.”

개구쟁이처럼 가벼운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내려온 체임버가 콧잔등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마르타에게 날아갔다.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네.”

체임버는 마르타의 얼굴을 살피며 눈매를 찡그렸다.

“난 원래 귀찮은 짓은 안 하는데, 보석에 상처 나는 것도 싫어해서.”

그녀가 손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마르타의 얼굴에 남은 검흔들에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재생의 힘을 극대화한 마법 같았다.

“이제 약만 잘 바르면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즐겁게 해주렴. 너희 둘 다.”

체이버가 마르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라온에게 윙크를 하고서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음….”

라온은 체임버의 뒷모습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의외로군.’

발카르와 지그하르트와의 사이는 최악이었고, 그곳의 초월자인 체임버는 제멋대로의 성격인데, 나서서 치료를 해줄 줄은 몰랐다.

“하아.”

마르타가 깊은숨을 내쉬며 대련장을 내려왔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들 왜 자꾸 나찰녀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시끄럽게.”

“네가 나찰녀니까.”

“앙?”

“너라고.”

라온은 전에 버렌에게 설명해줬을 때처럼 손가락으로 마르타를 가리켰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정신 나간 것처럼 달려드는 게 무서웠대.”

관중들이 하지 않았던 말도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시발!”

마르타가 발을 쿵 구르고서 관객석으로 다가갔다.

“내가 왜 나찰녀야! 그딴 이명 말고 멋진 거나, 귀여운 걸로 달라고 이것들아!”

“오오! 나찰 그 자체야!”

“이렇게 이명이 잘 어울리는 검사는 처음 봐!”

“나찰녀는 싫다고 했으니, 나찰검 어때?”

“그게 더 좋네!”

“나찰검! 나찰검! 나찰검!”

관객들은 마르타의 언행을 보고 더욱 신나서 나찰검이라 외쳐댔다.

이렇게 되면 못 바꾼다. 그녀의 이명은 나찰검으로 정해졌다.

“이것들아 뒤지고 싶어?”

마르타는 몸도 성하지 않은 채로 관객석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르타!”

“어휴!”

“조장님!”

버렌을 비롯한 광풍단이 말리고 나서야 간신히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아!”

탄성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땅에 처박힌 삼왕자가 마르타의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아름다워….”

라온이 눈을 내리감은 채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정말 정상이 없어….’

*     *      *

마르타와 삼왕자가 망가뜨린 대련장을 고치는 짧은 시간이 지나간 뒤 사회자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길었던 육황 결투 대련의 마지막을 장식할 마스터급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사회자가 주먹을 치켜올리자, 관객석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라온! 라온! 라온!”

“믿는다! 설화검협!”

“라온! 새로운 역사를 쓰자!”

“파랑검! 이제 너뿐이다! 대륙십이성의 이름값을 지켜다오!”

관객들은 본인이 응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이전에는 파랑검 카디스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지만, 지금은 라온을 부르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가볼까.’

라온이 끝없이 울리는 함성을 들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대련장으로 가려고 할 때 가로나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형제여.”

“형제 아니라니까.”

“난 결승전에서 나와 카디스가 만나리라 생각했다.”

가로나는 이쪽의 말을 무시하고 본인이 할 말만을 떠들었다.

“카디스는 이 내가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여겼던 강자. 그의 검술은 강물이 바다가 되듯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해진다. 조심하도록 해.”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지.’

로베르트 검술이 얼마나 무섭고 짜증이 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와 싸울 때처럼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이로군.”

가로나가 큼지막한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형제가 정상에 서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겠다.”

“그니까 형제 아니라….”

“힘내라!”

“형제 아니….”

“믿겠다!”

“야!”

그는 이번에도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본인이 할 말만 한 뒤 사라졌다.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말은 더럽게 많구나.

라스는 가로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자고로 입은 묵직해야 하는 법이다. 함부로 입을 열어서 화가 생긴 일은 수없이 많느니라. 마계에는 침묵이 금이라는 속담이….

‘그러냐….’

수다쟁이 마왕 주제에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이지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

라온은 한숨을 내쉬고서 대련장으로 향했다. 계단 앞에 마르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난 했다.”

얼굴과 몸에 붕대를 덕지덕지 감은 마르타가 흥하고 콧김을 뿜었다. 그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제 네 차례야.”

“그래.”

라온은 옅게 웃으며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이곳에서. 이 대련장에서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대련장에는 이미 카디스 로베르트가 올라와 있었다. 데루스를 너무나도 닮은 외모를 보자, 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들끓었다.

“연회장에서 설화검협의 무학을 견식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그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카디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눈인사를 해왔다.

‘비웃고 있군.’

그날이 올 줄 몰랐다는 건 네가 여기까지 올라올 줄 몰랐다는 무시의 의미가 분명했다.

“강자들만 만나다 보니 성장하면서 결승에 올라오는 행운을 얻게 됐네요.”

라온이 매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겸손한 듯 말했지만, 실상은 쉬운 대진으로 올라온 너와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흐음….”

카디스도 그 속뜻을 알아들었는지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결승전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라온 검사님은 대륙십이성의 한 자리를 차지하시게 되겠군요. 축하드립니다.”

“전 그곳에 이름을 올릴 생각이 없습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 그게 무슨….”

카디스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대륙십이성은 차기 초월자가 될 별들의 후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분명 대단한 이름이지만, 전 그곳에서 멈출 생각이 없어서요.”

대륙십이성은 어디에 가도 대접받을 영광스러운 칭호지만 자신이 이름을 올릴 곳은 아니다.

‘나는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하니까.’

차기의 초월자가 아니라, 지금의 초월자들과 같은 위치에 서고 싶기에, 대륙십이성에 들어가고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뭐랄까. 조금 건방지네요.”

카디스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매를 좁혔다. 독 오른 복어처럼 짜증이 가득 돋아난 표정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질 수 없겠군요. 절대로.”

그가 검을 뽑자, 파도처럼 청명하면서도 거대한 기운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라온이 제천검을 뽑았다. 은빛 칼날과 대비되는 붉은 눈동자에서 벼락이 튀었다.

“전 오늘 새로운 역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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