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24화 (324/653)

제324화

라온은 어제처럼 광풍단과 함께 대련장으로 들어갔다.

“우와아아아아아!”

“지그하르트다!”

“설화검협이 왔다아아아!”

“선풍검도 옆에 있어!”

“청월검! 제발 좀 웃어줘!”

관객들의 반응은 어제와 180도로 달랐다. 무시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외치며 고막을 터트릴 듯한 환호를 터트렸다.

이 어마어마한 함성은 같은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기절할 정도로 싸웠던 버렌, 루난과 대련장의 모두를 구하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보리니 키튼을 꺾은 라온 덕분이었다.

라온은 광풍단을 데리고 단상 앞으로 향했다. 어제와 달리 단상 위에는 육황의 수장들이 앉아 있었다.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군.’

글렌은 무표정이었고, 레크로스 국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체임버는 대답하지 않는 글렌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오그람은 지루한 듯 하품을 했고, 데루스는 어제 보여주었던 가식적인 웃음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온과 광풍단은 수장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대기 좌석으로 향했다.

“선풍검이 누군데 저렇게 부르는 거지?”

버렌이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라온이 피식 웃으며 버렌을 가리켰다.

“나, 나라고?”

버렌은 아직 다 낫지 않아서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부릅떴다.

“그래. 선풍검은 네 이명이야. 검에서 일어난 바람을 운용하는 것을 보고 선풍검이라고 부르던데.”

“이명. 내 이명….”

그는 주먹을 꾹 말아쥔 채 고개를 떨었다. 계속 이명을 가지고 싶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지어준 멋진 이명에 감격한 것 같았다.

“루난. 넌 청월검이야. 검에서 푸른 서리가 피어나는 게 꼭 겨울의 달빛 같다고 했지.”

“청월검….”

루난은 청월검이라는 말을 몇 번 중얼거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다. 감정표현이 옅은 그녀에게도 아름다운 이명은 기쁜 모양이다.

“나는?”

마르타가 다가와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넌 없어.”

“난 왜 없엉!”

오랜만에 마르타의 혀가 꼬였다.

“넌 부전승으로 올라가서 버렌이나, 루난처럼 파격적인 인상은 못 줬잖앙.”

라온이 키득거리며 마르타의 말투를 따라 했다.

“보여준 게 없으니, 이명도 없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자극하려고 한 말이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마르타는 부전승으로 4강에 올라갔기에 버렌과 루난에 비해 인상이 옅었다.

“빌어먹을. 내가 부전승하고 싶어서 했냐고….”

그녀는 혼자 이명이 없는 게 짜증 났는지 입술을 질겅 씹었다.

“오늘 제이나 왕녀와 그리어 왕자를 꺾는다면 원하지 않아도 생길 거야.”

라온이 마르타를 내려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할 수 있겠지?”

“당연히.”

마르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 안 해주는 것이냐?

‘뭘?’

-그 싸가지에게 소고기 소녀의 장단점을 다 말해준 것 말이니라.

‘말해줘야지. 지금 말고 이따가.’

-음?

‘한창 싸우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 말해주면 더 재밌잖아.’

제이나가 마르타의 약점을 이용하여 대련을 유리하게 끌고 나갈 때쯤 비밀을 밝힌다면 더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허어….

라스는 라온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네놈 어디 가서 마족이라는 소리 절대로 하지 마라.

‘음? 왜?’

-마계에서도 네놈 같은 미친놈은 없으니까!

*     *      *

사회자가 단상 위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오러를 가득 채운 목소리가 대련장 전체를 울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육황 결투 대련 익스퍼트 급 4강을 진행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어제 잠도 못 잤다고!”

“삼왕자님 믿습니다!”

“제이나 왕녀님! 발카르에 영광을!”

“마르타! 다른 지그하르트처럼 다 깨부수라고!”

관객들은 함성을 지르며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아쉽게도 4강 경기는 하나밖에 없지만 두 경기 이상의 호쾌함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첫 번째 경기! 마르타 지그하르트 대 제이나 루인 발카르! 대련장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외침에 마르타가 짧게 숨을 내쉬고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반대편에 있던 제이나는 어제의 울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라온을 노려보다가 대련장으로 뛰어올랐다.

“두 분 준비되셨습니까?”

“네.”

“됐습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회자가 대련장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육황 결투 대련 4강 1회전 시작합니다!”

그가 손을 올리자마자 마르타가 땅을 박찼다. 멧돼지라도 된 듯 거칠게 내달려 검을 내리쳤다.

“음….”

제이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공간을 접은 듯이 움직여 마르타의 간격을 빠져나갔다. 공간 마법을 응용한 이동기 접바람이었다.

콰아앙!

마르타는 검으로 대련장 바닥을 내리친 힘을 이용하여 몸을 돌렸다. 다시 제이나를 쫓으며 더 많은 오러를 끌어올려 속도를 높였다.

터어엉!

마르타의 보법은 제이나의 간격에 들어가기 직전 급속하게 빨려지며 순식간에 공간을 파고들었다.

“흥.”

제이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접바람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진짜였어….’

라온이 알려주었던 마르타의 움직임과 호흡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방금 보여준 폭발적인 보법에 당했을 수도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이용해주지.

제이나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투석기로 날리는 돌처럼 거세게 다가온 마르타의 검격을 피해냈다.

“반거울!”

그녀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며 좌측으로 밀어내자, 마르타가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거세게 튕겨 나갔다.

“크윽….”

마르타는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피를 손등으로 훔치고서 재차 달려들었다. 몸이 풀렸는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였지만, 무학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라온의 조언을 받침대 삼아 접바람을 연속으로 펼쳐서 마르타의 공격을 벗어난 뒤 손가락을 까딱였다.

치이이잉!

공간이 가늘게 접히며 마르타의 어깨와 팔에서 시뻘건 핏물이 치솟았다. 공간 마법을 응용해서 위력을 높인 절삭 마법이었다.

“후후.”

제이나는 인상을 찌푸린 마르타를 굽어보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네가 지는 이유는 네 부단주가 미쳐 있기 때문이야.’

*     *      *

콰아아앙!

마르타는 제이나가 찢어버린 공간을 벗어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거 대체 뭐지?’

제이나의 공간 마법이 위험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체술에도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의 움직임과 오러의 흐름을 모두 아는 듯이 움직여서 도통 공격을 맞출 수가 없었다.

특히 위험한 순간에 사용하는 이동 마법 때문에 허초로 예측을 벗어난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이쪽의 심리를 모두 파악당한 기분이었다.

“쯧.”

마르타가 혀를 짧게 차고서 땅을 박찼다. 제이나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좌측으로 길목을 막으면서 돌진했지만, 그녀는 블링크 같은 마법을 사용해서 바로 우측으로 빠져나갔다.

다시 쫓으려 했지만, 보법을 쓰려는 바닥에 공간 마법을 걸어 또 한 번 제동을 걸어왔다.

치이이잉!

마르타는 인상을 찡그린 채 발목과 머리 위에서 돋아난 공간 마법을 잘라낸 뒤 검기를 연속으로 뿌렸다.

콰아아아아아!

제이나의 시야를 검기로 막은 뒤 좌측으로 짓쳐 들었다. 물러났을 때를 대비해 왼손에도 오러를 끌어모았다. 사위를 막는 방향이었기에 먹힐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검을 내리쳤다.

“느려.”

제이나는 코웃음을 치고서 검기가 없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허공을 잡고 밀어내서 순식간에 반대편 공간으로 이동했다.

‘뒤편에서 공격하려는 것도 알아차린 건가?’

바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좌측, 우측만이 아니라, 뒤에서 주먹을 날리려는 것도 파악한 것 같았다.

‘내 공격 흐름을 다 아는 것 같아.’

파악될 정도로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는데.

[1번 조장.]

마르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 때 라온에게서 오러 메시지가 들려왔다.

‘뭐야. 지금 바쁜….’

[저 싸가지 왕녀가 너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지 않아?]

‘어?’

그 간드러진 목소리에 턱이 떨려왔다.

‘설마 너….’

[그 설마가 맞아. 내가 네 정보를 말해줬거든.]

마르타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라온이 빙긋 웃으며 윙크를 했다.

‘저 망할 새끼가 진짜….’

[그럼 열심히 해보라고.]

라온은 힘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을 뽑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솟구쳤다. 앞에서 까부는 제이나 왕녀보다 저 밑에 있는 라온의 주둥이를 후려치고 싶었다.

“이제 발악도 끝이야?”

제이나가 차게 웃으며 두 손을 사선으로 내렸다. 양쪽 공간이 접히며 어깨를 짓눌러왔다.

“발악? 발아아아아악? 이 더러운 것들이!”

마르타가 분노를 폭발시키며 타이탄의 오러를 모조리 일으켰다. 그녀의 단전에서 치솟은 황색 기운이 제이나의 공간 마법을 밀어내며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다.

“흐으으으!”

마르타의 입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마음대로 해봐. 녹슨 가위만도 못한 마법 따윈 나한테 안 통하니까!”

“감히!”

제이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공간 마법의 강도를 높였다. 공간이 더 크게 길게 접혔지만, 마르타의 오러를 밀어내지는 못했다.

콰아아앙!

마르타는 눈에 불길을 일으키며 진각을 밟았다. 두 장의 보호 마법이 걸려있던 대련장의 중심이 폭삭 무너지고, 사방이 가뭄 난 논처럼 갈라졌다.

“크윽….”

제이나가 균형을 잃은 순간은 찰나였지만, 마르타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단숨에 뛰쳐나가 제이나의 앞에 도달했다.

‘블링크!’

제이나는 접바람을 사용할 시간을 벌지 못하고, 블링크를 사용하여 마르타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이제 다시 공격을… 어?’

다시 공간 마법으로 마르타의 다리를 공격하려 했는데, 눈앞에 큼지막한 주먹이 다가와 있었다.

“뒈져!”

마르타가 단순한 블링크의 움직음을 파악하고 바로 쫓아온 것이다.

“더 뻗으면 네 팔도 잘려!”

“상관없어!”

제이나는 발카르의 직계답게 그 짧은 시간에 공간 마법을 설치했지만 마르타는 손이 찢어지든 상관없이 주먹을 내질러 제이나의 턱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북이 찢어지는 소리가 대련장을 울렸다. 마르타의 주먹에 얻어맞은 제이나는 눈을 까뒤집은 채로 대련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끄으….”

“허….”

사회자는 멍하니 서 있다가 제이나의 신음을 듣고서 정신을 차렸다.

“스, 승자는 마르타 지그하르….”

“야이 미친놈아!”

마르타는 사회자의 선언을 듣기도 전에 대련장을 내려가 라온의 멱살을 쥐었다.

“이게 무슨 지랄이야! 대체 뭘 받았길래 내 정보를 판 거냐고!”

“아무것도 안 받았는데?”

“그럼 왜!”

“오러의 경지와 양이 좀 늘었지?”

라온은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음?”

마르타가 라온의 멱살을 놓고 멈춰 섰다.

‘오르긴 했어. 그것도 꽤 많이….’

신뢰하고 있던 라온의 배신에 화가 나서 생각 따위 하지 않고 가진 힘을 모조리 끌어 올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러의 양과 경지가 확실하게 상승해 있었다.

“너 광폭화 상태에서 이성을 유지하려고 요즘 억지로 분노를 가라앉혔지?”

“그걸 어떻게….”

“네 힘의 원천 중 하나는 분노인데, 그걸 억지로 누르니까 힘이 나겠어? 이성도 좋지만, 가끔은 풀어줘야 해.”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가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넌 너무 하나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아. 광폭화도 좋지만, 아직은 여러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시기니까. 생각의 범위를 넓혀.”

“그, 그래서 저 싸가지한테 내 정보를 말한 거야?”

“치료나 받고 와.”

라온은 답을 해주지 않은 채 대련장 외곽에 세워진 임시 치료소를 가리켰다.

마르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조장님. 일단 치료부터 받죠.”

1조 부조장인 예디가 마르타를 데리고 치료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아….”

마르타는 치료사에게 어깨와 손을 치료받으면서 라온을 바라보았다.

‘정말 날 성장시키려고 제이나에게 정보를 넘겼던 건가.’

라온의 담담한 음성 그리고 저 여유로움을 볼 때는 그것밖에 없다.

그는 정말 자신을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던 것 같다.

‘저 녀석 진짜 바보 아니야?’

본인의 싸움, 본인의 일에 집중하기도 바쁠 텐데 이 와중에 자신과 다른 광풍단 검사까지 챙기다니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 미련?”

누가 누구한테?

마르타가 땅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바보 천치는 나지.’

라온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며 동시에 심장을 사포로 긁는 듯한 아릿함이 찾아왔다.

‘저 녀석이 나한테 도움을 준 건 오늘만이 아니잖아. 반면에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무언가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만 입혔었지.’

훈련생 시절 라온을 먼저 공격하기도 했고, 조롱했으며, 계속 시비를 걸었었다.

어린 치기와 양녀라는 열등감 그리고 백혈교에 대한 분노가 어우러져 열등감이 폭발했던 일이지만, 라온을 공격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과한 적도 없지.’

라온에게 패한 뒤 두리뭉실하게 넘어갔을 뿐 조롱하고, 비웃었던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라온의 친절에 기대어 패자는 승자의 말을 따른다고 하며 물 흐르듯 넘어간 게 다였다.

“후우….”

마르타가 본인의 뺨을 짝 치고서 라온과 광풍단을 바라보았다.

저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꼴 보기도 싫었던 그들은 어느새 목숨도 걸 수 있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때가 된 건가.’

가주님이 말했던, 마음을 열고 동료에게 사정을 터놓을 때가 찾아온 듯싶었다.

‘오늘 우승한다면….’

결승에서 삼왕자를 꺾은 뒤 기다리고 있던 광풍단의 모두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르타가 라온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사과까지. 꼭.’

*     *      *

“아하하하!”

체임버가 대련장 아래에 선 라온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정말 재밌는지 의자 위에서 발장구까지 쳤다.

“아무 대가도 안 받고 동료의 정보를 팔았대!”

그녀는 라온이 마르타에게 보낸 오러 메시지의 내용을 읽었는지 대화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쟤 진짜 머리가 돌았는데? 너무 재밌잖아!”

체임버가 의자 위에서 발장구까지 치며 히죽였다.

“확실히 특이한 아이로군요.”

레크로스 국왕이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도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동료를 아주 잘 보고 있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상남자인 줄 알았는데 그냥 미친놈이었군!”

오그람이 클클 거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미친놈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오히려 라온에게 더 큰 흥미를 가지게 된 듯 보였다.

“후후.”

데루스는 말없이 라온만을 지그시 내려보았다. 너무 웃음이 짙어 오히려 인형 같은 표정이었다.

“아저씨!”

체임버가 의자 위로 올라가서 반대편에 있는 글렌을 불렀다.

“쟤 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 저런 물건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얼굴 잘생긴 것도 포함해서 말해줘!”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글렌이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오러까지 사용해서 억지로 내리누른 채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며 해왔다. 나나, 다른 녀석들이 따로 해준 건 없어.”

그는 본인은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모든 공을 라온 본인에게 돌렸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점이 저 아이를 저렇게 성장시켰을지도 모르겠군. 일단 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심계나, 의협심 그리고 얼굴까지….”

덤덤하게 시작했던 글렌의 목소리가 점차 달아오르고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저씨?”

“영감?”

체임버와 오그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렌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그들 역시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커흠!”

글렌이 헛기침을 하고서 말을 멈췄다.

“어, 어찌 됐든 그냥 그렇게 됐다는 거다.”

뭐가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글렌이 말했기에 다들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익스퍼트급 4강 결투가 하나뿐이고, 마르타 지그하르트 검사의 부상이 있기에 익스퍼트급 결승 대신 먼저 마스터급 4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는 마르타에게 약간이라도 회복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마스터 급 4강을 먼저 시작하겠다고 외쳤다.

“오, 그럼 정신도 미치고, 얼굴도 미친 라온을 바로 볼 수 있는 건가?”

체임버가 빙긋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 라온을 바라보았다.

“크하하하!”

오그람이 광소를 터트리고서 글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걸 어쩌나? 영감이 자랑하는 스스로 하는 꼬마도 여기까지겠군.”

그는 라온의 반대편에 있는 참룡수 가로나를 가리키며 턱을 치켜들었다.

“어설프게 찌르는 검 따위는 저 녀석에게 통하지 않아.”

“그런가?”

글렌이 차게 웃으며 오그람을 돌아보았다.

“그럼 어설프지 않게 부수면 되겠지.”

“뭐?”

“잘 보고 있거라.”

그의 붉은 눈동자가 라온처럼 반짝였다.

“저 아이가 네 아들의 패션 근육을 깨부술 테니까.”

*     *      *

“와아아아아아아!”

“라온! 라온! 라온!”

“가로나! 가로나! 가로나!”

관객들은 대련장에 선 두 사람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후우, 긴장돼. 누가 이기려나?”

“이건 창과 바위의 대결이라고 봐도 되겠네.”

“방패가 아니라 바위?”

“가로나는 방어력만 좋은 게 아니니까. 정타 한 번 들어가면 게임 끝이라고.”

“그건 라온도 마찬가지지. 보리니 키튼의 검을 깨부순 강기라면 가로나도 못 버텨!”

“마티스와 보리니 키튼을 무릎 꿇린 라온의 날카로운 검일지, 상대를 모조리 날려버린 가로나의 묵직한 주먹일지.”

“힘과 기술의 대결인가?”

“그렇지. 라온이 가로나의 빈틈을 노릴 테니까.”

관객들은 이번 대결은 힘과 기술의 싸움이라는 기대를 한 채 입맛을 다셨다.

‘힘과 기술이라….’

라온은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그 소원은 못 들어주겠네.’

가로나와의 싸움에서 얻어야 할 부분은 기술의 단련이 아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가로나가 목검의 손잡이처럼 길고 두꺼운 손가락을 풀며 고개를 들었다.

“경고 하나 해주지.”

그가 짐승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꼬챙이에 의지했다간 단번에 찢겨나갈 거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가로나의 전신에서 흉폭할 정도의 기파가 치솟았다. 극한의 무력을 응집시킨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나도 경고 하나 하지.”

라온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이 꼬챙이를 우습게 봤다간 그 크기만 한 몸뚱이에 바람구멍이 뚫릴 거야.”

“크하하하하!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로나는 얼마든지 해보라는 듯 본인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아, 주, 준비되셨습니까?”

사회자는 무서웠는지 이미 대련장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빨리 시작해!”

“예.”

라온과 가로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회자가 떨리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럼 마스터급 4강 1회전을 시작합니다!”

그의 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로나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가로나 만이 아니라 라온의 모습도 그 자리에서 지워졌다.

쿠오아아아앙!

대련장 중심에서 강기의 충돌이 일어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이 공간 전체를 휩쓸었다.

“으아아악!”

“뭐, 뭐야!”

“무슨 바람이 이렇게….”

관객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개를 숙여서 본인들의 몸을 보호했다.

후우우욱!

대련장에 깔린 회색 연기가 지워지며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쿠구구구구!

라온과 가로나는 대련장의 중심에서 막대한 강기를 일으킨 채 서로를 밀어내는 힘과 힘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라온이 물러나질 않는데?”

“기, 기술 대 힘이 아니라, 힘 대 힘이라고?”

“그것도 안 밀려. 설화검협이 참룡수에게 안 밀린다고!”

관객들은 가로나의 힘에 한치도 밀려나지 않는 라온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힘과 힘의 격돌에 라온과 가로나 사이에서 샛노란 스파크가 끝없이 튀겨졌다.

“크으으….”

라온은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가로나를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야수연맹이 힘을 쓰는 방식. 잘 배우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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