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연무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발카르의 왕녀 제이나였다. 그녀는 짜증이 가득 차오른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라온의 앞으로 다가왔다.
“왜 불렀지?”
“왜 불렀지? 아직도 교육이 부족하네. 아니, 머리가 나쁜 건가?”
라온이 서늘한 미소를 흘리며 도리안에게 손을 뻗었다.
“도리안.”
“옙!”
도리안은 기다렸다는 듯 배 주머니에서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주었다. 말할 필요가 없는 녀석이라 참으로 편했다.
“고마워.”
라온은 도리안에게 받아든 종이를 펼쳤다. 특별 계약서. 포르반 시에서 제이나를 구해준 뒤 그녀의 목에 채워두었던 목줄이었다.
“으윽….”
제이나 왕녀는 특별 계약서를 보고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떠올랐다기보다는 분노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잊어버린 게 아니었군.’
분했던 거야.
제이나가 오자마자 반말을 한 건 특별 계약서를 잊어서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 속 울분을 참지 못한 반항이었던 것 같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던 발카르의 왕녀이니, 그 감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아니지.’
다른 이들이라면 제이나의 외모나 배경을 보고 이해해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아니다.
외모야 인간의 거죽일 뿐이고, 제이나에게 좋은 감정이나 기억 따위는 없으니, 그녀를 좋게 볼 이유가 없었다.
-쯧쯧.
라스가 제이나를 내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다니, 멍청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니라.
‘…….’
‘네가 할 말이냐?’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전에 말했지? 내 앞에서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라고.”
라온이 특별 계약서를 가볍게 흔들고서 미소를 지었다. 제이나의 눈동자가 계약서를 따라 또로록 돌아갔다.
“…왜 불렀어요.”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으으, 왜 부, 부르셨어요.”
제이나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주먹을 말아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좋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
“정보라구요?”
“그래. 네가 내일 싸우게 될 마르타 지그하르트에 관한 정보.”
“그게 무슨….”
제이나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이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지.”
라온이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제이나가 눈매를 찡그리며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로베르트 가문과 발카르 사이에 만남이 잦았다던데, 무슨 말이 오간 거지?”
이 정보는 비연회주와 데닝로즈의 정보에 모두 나와 있던 내용이다. 지그하르트는 두 세력 모두를 견제하고 있기에 그리 이상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
“말해.”
“과, 광산에 관한 일이에요.”
“광산? 로베르트에?”
“로베르트 인근 해안에 있는 해저 광산을 뚫는데, 바다 아래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게 땅과 광물을 조심스럽게 팔 수 있는 마법을 개발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제이나는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광산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해저 광산이라….’
그런 건 없을 텐데?
암살자 훈련을 받으며 로베르트 인근의 바다는 전부 돌아다녔었다. 수없이 돌았던 그 바다에 광산 따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아!’
설마 그 던전이 열린 건가?
로베르트 가문 근처의 바다 아래에 이름 모를 던전이 하나 있었는데, 무슨 수를 써도 문이 열리지 않았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 던전의 문이 열린 것 같았다.
“혹시 마법사를 파견해달라고는 안 했어?”
“우리도 그게 편할 거라고 했는데, 본인들이 한다고 마법을 개발해달라고 했었어요.”
제이나가 귀찮게 굴었다며 살짝 눈매를 찡그렸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겠군.’
로베르트와 발카르는 나름 사이가 좋다. 정말 광산을 파는 일이라면 전문가를 요청했을 것이다.
던전의 비밀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 마법사가 아닌, 마법을 요구한 게 분명했다.
“그 마법을 전해준 게 언제지?”
“이번 회의에요.”
제이나는 이번 회의에서 체임버의 조수가 데루스의 보좌관에게 마법서를 건넸다고 말했다.
“그렇군.”
라온이 주먹을 꾹 말아쥐며 미소를 흘렸다.
‘그럼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데루스를 엿 먹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생겨난 것 같았다.
‘내가 못 먹어도 상관없어. 놈도 못 가지게 하면 되니까.’
던전 내부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상관없다. 가서 던전의 보물을 못 챙길 것 같으면 무너뜨려서 데루스도 아무것도 못 가지게 하면 되니까.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기회였다.
“그 외에는?”
“다른 마법을 의뢰한 것도 있고, 동맹을 좀 더 공고하게….”
제이나가 몇 가지 더 말해 주었지만 딱히 영양가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럼 이제 내가 알려줄 차례군.”
“어….”
“마르타의 속성은 대지다. 하지만 다른 대지 속성의 검사와는 성향이 달라. 불이나 바람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무직한 공세를 마구잡이로 퍼부으니까. 특히 힘과 속도 위주의 검술인 중쇄검은….”
라온은 제이나에게 현재 마르타의 경지와 검술의 흐름에 대해 알려주었다. 완벽하게는 아니에도 승패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는 충분했다.
“당신….”
제이나는 마르타의 정보를 모두 듣고 나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죠?”
“뭐가?”
“난 당신이 불렀다고 들었을 때 기권하라는 말을 할 줄 알았어…요. 오히려 마르타의 정보를 주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구요.”
“말꼬리 늘리지 마.”
“윽….”
“대답은?”
“알겠어요.”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시선을 내렸다.
“왜 네게 마르타의 정보를 줬냐면….”
달빛을 받은 라온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빛났다.
“인간은 시련을 겪어야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억지로 시련을 만든다고요?”
제이나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여섯 세력의 자존심이 걸린 이 대회에서?”
“그래.”
라온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패배한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다. 패배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는 크거든.”
버렌과 루난은 서로가 가진 실력을 모두 끌어내서 싸운 덕분에 한층 더 성장했다. 마르타도 그 둘처럼 이 대회를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기에 내려주는 시련이었다.
약점을 아는 제이나를 꺾고, 삼왕자와 싸워 이긴다면 마르타 역시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네 이해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
라온이 가볍게 손을 저어서 특별 계약서를 흔들었다.
“정보는 줬으니, 제대로 싸워. 어설프게 싸우다 지면 이 계약서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끄윽….”
“뭘 시켜볼까. 발카르의 국보라도 가지고 오게 할까?”
“젠장….”
제이나는 입을 꾹 내민 채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 처음이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잘난척하는 꼴을 봐서 그런지 속이 시원했다.
“후우….”
그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육황의 직계라고 감정의 회복은 빨랐다.
“그럼 이걸로 명령 2개가 지워지는 거죠?”
“명령 2개?”
“로베르트 가문과 발카르의 거래에 대해 말해줬고, 내일 있을 마르타 지그하르트와의 명령까지 하면 부탁 2개잖아요.”
“너 뭘 착각하는 거 아니야?”
“어…?”
“난 한 번도 부탁이나 명령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라온이 피식 웃으며 특별 계약서를 펼쳐주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3개의 명령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제이나의 눈동자가 손으로 말아쥔 종이처럼 구겨졌다.
“부, 분명 나한테 말하라고….”
“계약서의 내용은 명령. 난 네게 부탁을 했지, 명령 따위는 하지 않았어.”
사실이다. 계약서를 보여주며 하라고만 말했다. 명령한다는 말 따위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이이익!”
그녀가 당장 덤벼들 것처럼 마나를 일으키며 이를 드러냈다.
“이 악마 같은 자식! 네가 협객이라니, 개소리야! 넌 마계에서 올라온 악마라고!
-이런 놈은 마계에도 없느니라….
라스가 제이나의 말을 받아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계의 악마? 그 정도면 칭찬인데?”
라스도, 광풍단도 요즘에는 마왕이라 부르고 있기에 악마나 마귀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이야기는 끝.”
라온은 도리안에게 다시 특별 계약서를 넘겨주었다.
“어우….”
도리안은 무섭다는 듯 목을 떨고서 배 주머니에 계약서를 넣었다.
“그럼 내일 잘 부탁할게.”
라온은 바득바득 이를 가는 제이나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연무장을 나갔다.
“시이이이이이발!”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연무장 안에서 제이나의 욕이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저, 저래도 돼요?”
도리안이 아직도 비명이 들려오는 연무장을 돌아보고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죽이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고 저쪽이 먼저 시작했잖아.”
기회를 주었음에도 두 번이나 시비를 걸었던 건 제이나다. 오늘도 반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아 그것도 그건데 마르타 님이….”
“괜찮아. 걔는 품은 게 많아서 그 정도는 이겨줘야 해.”
라온이 걸음을 멈춘 뒤에 어두운 하늘을 올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못 하면 광풍단 조장 때려치워야지.”
* * *
데루스 로베르트는 마티오의 침상 앞에 앉은 채 턱을 까딱였다.
“마티오.”
그의 부름에 죽은 듯 누워 있던 마티오의 눈이 뜨였다. 가라앉은 눈동자에 잠시 분노가 비쳤지만 금세 사라졌다.
“…예.”
마티오는 다시 기절할 듯한 고통을 참으며 대답했다.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라온을 본 감상은?”
“마, 마지막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전까지 암살자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한가?”
데루스가 마티오를 내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예. 지, 지그하르트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전형적인 검사의 움직임과 기질이었습니다.”
마티오는 고통스러운지 턱을 떨며 대답했다.
“암살자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지만, 전부 검사들도 할 법한 행동과 자세였기에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놈에게서 암살자 성향 따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널 공격했던 행위는 어떻게 생각하지?”
“후우….”
마티오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암살자로서 감정을 지우고, 객관적인 답을 내리기 위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행위였다.
“놈의 말대로 그 장소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대련장이었습니다. 보리니 키튼에게 허리를 크게 베였고, 타천의 마법을 지우느라 여유가 없었기에 가장 가까웠던 제 앞에 검을 내리찍는 건 솔직히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라온에게 분노한 것과 달리 그 행동만큼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굉장히 현명했다고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본 결과 라온 지그하르트와 라온은 관계없다고 보입니다.”
“그게 라온을 키웠던 네 판단인가?”
“예.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판단입니다.”
마티오는 전신을 찢는듯한 통증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쉬어라.”
“아, 아닙….”
데루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을 젓자, 마티오가 눈을 내리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흐음….”
데루스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손등의 상처는 말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티오는 쉬게 하고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가주님.”
데루스가 일어나려고 할 때 그의 보좌를 맡은 양지의 집사 레젤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 내린 지시도 취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젤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본 바로 글렌 지그하르트는 광풍단을 아끼는 게 분명합니다. 카디스 도련님이 라온 지그하르트의 팔을 잘랐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잘 봤군. 광풍단 중에서도 특히 라온을 아끼는 듯 보이더군.”
“그럼….”
“그러니 놔둬야지.”
데루스 로베르트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글렌 지그하르트의 속을 알 수 있는 몇 없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정말 라온을 아끼는지, 팔이 잘리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봐야지.”
그는 아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임에도 냉정한 미소를 흘렸다.
데루스와 레젤은 라온의 전투를 보고서도 카디스가 결국 이기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말리기보다 더 자극해주는 게 좋겠지. 안 그래도 화가 많이 났던데.”
데루스가 어둑해진 창밖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관객들이 계속 라온의 이름만을 불렀기에 카디스 로베르트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거의 환호를 받지 못해 짜증이 극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네가 카디스를 조금 더 자극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카디스를 걱정하던 레젤은 주인의 명령에 감정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과 양으로 나뉘지만 마티오와 레젤은 모두 데루스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인형일 뿐이었다.
“발카르에서 내어준 마법은 확인했나?”
“예. 요구한 그대로였습니다.”
레젤이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몇백이 죽든 상관없어.”
데루스의 눈동자에 핏빛 욕망이 드러났다.
“그 아래에 묻혀있는 고대의 보물만 가져와.”
* * *
짹짹.
숙소 바닥에 앉아 있던 라온이 맑은 새소리에 눈을 떴다. 긴장하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아침 햇살과 함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의 지저귐이었다.
‘멀린은 아니로군.’
평생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언제 어디서 멀린이 나올지 모르기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겁쟁이 녀석.
라스가 차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 긴장하다니, 네놈의 간땡이는 콩알만도 못하구나.
‘네가 제일 무서워했잖아.’
집착이 싫다며 숨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 집착 트라우마 때문에….
‘트라우마?’
라스에게 트라우마를 심을 정도면 분명 평범한 마족은 아닐 거다.
‘네가 겁을 먹을 정도면 엄청 강하겠네.’
-겁먹은 게 아니라니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느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건 맞네.’
라온이 피식 웃었다. 마계에서도 미친놈은 상대하는 게 아니라, 피하는 모양이다.
‘꽤 강한가 보지?’
-귀찮을 뿐이지, 본왕의 상대는 아니니라!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는 최강의 무력을 지닌 마왕으로 따라올 자가 없는 무적의….
라스는 집착에 떨다가 갑자기 본인 자랑을 시작했다. 감정 기복만큼은 정말 마왕급이다.
“에휴.”
라온은 라스의 자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허리의 외상과 부풀어 오른 마나회로가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싸우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잠을 자지 않고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운용한 보람이 있었다.
-지금도 본왕을 그리워하는 마족들은 많을 것이다. 왜 그리워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래. 이 강대한 무력! 바다와도 같은 마력에 빠져서….
‘끝나질 않네.’
아직도 이어지는 라스의 자랑을 무시하고, 제복으로 갈아입을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격 마법 <음양>을 베었습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높은 경지의 강자를 상대로 승리하셨습니다.]
[진혼검의 특성 <마법 요혈>의 등급이 2단계 상승 상승합니다.]
[진혼검의 요기가 상승합니다.]
[특성 <진법 해석>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8포인트 상승합니다.]
어제 타천의 마법을 베고, 부상 상태에서 보리니 키튼을 꺾은 보상이 지금에서야 나타났다. 육체와 정신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 번에 2단계인가?”
타천의 혼돈을 깎아낸 덕분에 <마법 요혈>의 단계가 단번에 3성으로 올라갔다. <진법 해석> 특성도 상승하고, 진혼검의 요기까지 올라간 걸 보면 마법을 벤 대가로는 과할 정도의 보상이었다.
우우우우웅!
진혼검도 마음에 드는지 청명한 검명을 울렸다.
-이, 이게 무엇이냐!
계속 본인의 자랑을 하던 라스가 입을 떡 벌렸다.
-고작 그걸 베었다고 저런 보상을 주면 본왕은 어쩌라는 거냐! 아예 바닥까지 긁어서 퍼주는….
‘너 마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하다며.’
-어….
‘이 정도 보상을 넘겨 줫다고 부담될 정도면 약한 거 아니야?’
-그, 그게 아니라….
“자비로운 분노의 마왕에게 이 정도 보상은 바다에서 바가지 하나 퍼주는 정도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렇느니라!
라스는 본인이 조금 전까지 떠든 자랑이 있기에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점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였다.
라온이 어색하게 웃는 라스에게서 고개를 돌려 메시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았다.
‘특성의 상승은 환영이지만, 능력치는 좀 애매하군.’
좋지 않다는 게 아니다.
곧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할 전투가 있는데, 완벽에 가깝게 다듬은 육체에 오차가 생긴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지.’
첫 상대가 참룡수잖아.
카디스를 짓밟기 전에 먼저 싸워야 할 참룡수라면 강해진 육체를 적응시키는데 제격의 상대였다.
‘힘 싸움 좋지.’
육황 중 최강의 육체를 지녔다는 야수연맹의 무인과 힘 싸움을 벌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라온이 겉옷을 걸치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보드랍게 이지러지는 햇살을 보며 제천검을 움켜쥐었다.
‘오늘이 지그하르트의 이름이 육황 중 가장 높은 곳에 걸리는 날….
-그 전에 밥부터 먹자꾸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네놈에게 능력치를 빼앗겨서 속이 허하느니라.
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배를 문질렀다.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자….’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