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18화 (318/653)
  • 제318화

    왕실 회의장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육황의 수장들도, 그들의 뒤에 선 보좌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글렌만을 바라보았다.

    “그….”

    10초가량 지났을 때 처음으로 체임버의 입술이 열렸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아저씨 입에서 지금 귀엽다는 말이 나온 거 맞냐고.”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허허, 북멸왕께서 그런 말을 하실 줄은 저도 몰랐군요.”

    레카르트 국왕이 헛웃음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영감. 그사이에 노망이라도 난 건가? 귀엽다? 무인들의 세계에 귀여운 것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오그람이 이마를 부여잡고 광소를 터트렸다. 그는 글렌의 기파에 잠시라도 눌렸다는 게 자존심 상했던지 회의장이 흔들릴 정도로 웃음소리를 높였다.

    “음, 혹시….”

    데루스는 바로 반응하지 않고, 조금 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야왕께서 광풍단에게 생긴 것들도 어리숙하다고 말해서 귀엽다고 하신 겁니까?”

    그는 글렌이 기세를 일으키기 전에 야왕이 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눈매를 좁혔다.

    “아!”

    체임버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저 근육 돼지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녀는 피식 웃으며 오그람을 흘겨보았다.

    “솔직히 풍선처럼 살집만 키운 그쪽 애들보다는 광풍단 아가들이 귀엽긴 해.”

    “그 주둥아리 닫으라고 말했을 텐데?”

    오그람이 체임버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내 주둥아리로 떠드는데 왜 네가 지랄이니?”

    체임버는 지지 않고 오그람의 시선에 맞섰다.

    “허허, 그런 뜻이었군요. 확실히 광풍단 검사들의 외모는 빛이 나더군요. 특히 라온 그 아이는 지금까지 본 사람 중 손에 꼽을만한 미남이었습니다.”

    레크로스 국왕이 오그람과 체임버 사이를 막아서며 미소를 지었다.

    “연회장에서도 확실하게 눈에 띄었지. 엘프보다 잘생긴 인간은 흔치 않은데, 대단하긴 해.”

    체임버가 레크로스 국왕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글렌은 회의장을 뒤덮던 패기를 갈무리하고서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했다.

    “얼굴? 말했듯이 무인에게 중요한 건 얼굴이 아니라, 무력이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심플한 폭력이 진짜지.”

    오그람이 테이블 위에서 주먹을 말아쥐었다. 가볍게 힘을 준 것만으로 왕궁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주절대는군.”

    글렌이 오그람을 굽어보며 차게 웃었다.

    “네놈이 부르짖는 힘도 우리 아이들이 패션근육만 키운 네놈의 아이들보다 강하다.”

    그는 광풍단이 야수연맹의 무인들을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까하하하하!”

    체임버가 테이블 위에서 발장구를 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패션근육이래! 패션근육! 그 말이 맞네. 크기만 할 뿐이잖아! 아저씨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재밌어진 거야!”

    “그게… 크훕!”

    체임버를 말리려던 레크로스 국왕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후우.”

    글렌의 뒤에 서 있는 셰릴은 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판을 보고 옅은 숨을 뱉었다.

    ‘이분들이 육황의 수장이라는 걸 누가 믿을까.’

    서로를 놀리고 조롱하는 데 거침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초월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동네의 아저씨, 아줌마들의 수다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가주님은 라온과 닮았군.’

    예전에 라온도 힘을 자랑하는 천검대 부대주인 에컨에게 패션근육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조손 사이에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영감.”

    오그람이 눈을 부라리며 글렌을 노려보았다. 끝을 모를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나와 개인적인 내기 하나 하지.”

    “내기?”

    “그래. 광풍단인지, 광견단인지를 믿는다고 했으니 결투의 승자를 걸고 내기를 해보자고.”

    그는 그리 말하며 품에서 작은 목제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우리 부족의 비법으로 만든 영약 사운환이다. 오러는 물론이고, 체격마저 키워주는 효과가 있지. 댁들의 수준으로 따지자면 최상급 영약이다.”

    “좋다.”

    글렌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진천검을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거, 검을?”

    “그거 진천검이잖아!”

    “미친….”

    “허!”

    레크로스 국왕과 체임버, 데루스 그리고 오그람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진천검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허억!”

    “검이라니….”

    목각인형처럼 서 있던 각 세력의 보좌진들도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

    셰릴과 로엔은 글렌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기에 뒷짐을 진 채로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 아저씨. 정말 그걸 걸 거야? 가치가 비교가 안 되잖아.”

    체임버가 내리라고 말해도 글렌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있다면 이 정도는 걸어야지. 영약? 본인의 그릇이 작은 것만 자랑하는 꼴이지.”

    글렌이 당황한 오그람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라온과 광풍단의 승리를 확신하는 눈빛을 빛냈다.

    “끄으윽….”

    오그람이 입술을 꾹 깨물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좋다!”

    그가 우락부락한 상체를 휘감고 있던 코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검에 맞추려면 영약으로는 무리겠지. 만약 영감의 손자가 결투에서 우승한다면 이 코트와 함께 아이들의 숫자에 맞춰서 영약을 넘겨주도록 하지.”

    “한참 부족하지만, 받아들이지.”

    글렌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나도 참여해도 돼? 나도 할래! 나 이런 거 좋아!”

    “넌 좀 빠져!”

    체임버가 본인을 끼워달라고 테이블 위에 본인의 지팡이를 던졌지만, 두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자, 이제 회의 좀 하죠. 저희가 모인 이유를 상기해주시길.”

    레크로스 국왕이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서류를 넘겼다.

    “…….”

    데루스는 내기가 성사될 때까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가라앉은 눈동자로 글렌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      *

    캬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 거친 충격음이 울리고 루난과 오웬의 기사가 대련장의 중심에서 다섯 걸음씩 물러섰다.

    “흥!”

    제나라는 이름을 밝힌 기사는 질풍처럼 돌진해 루난의 좌측 허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검세가 섬전처럼 파고들었다.

    ‘허리.’

    루난은 어깨와 복부를 노리는 검극을 보며 눈을 꿈뻑였다.

    ‘라온보다 느려.’

    수련을 할 때 라온의 검은 섬뜩할 정도의 속도와 위력으로 빈틈을 찔러 들어왔다. 빈틈을 찌르는 게 아니라 깨부수는 느낌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공격에 비하면 제나의 공격은 나뭇가지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쩌어엉!

    루난이 자세를 살짝 낮추고 설화를 내리쳤다. 푸른 서리가 스며든 칼날이 제나의 검격을 가볍게 쳐냈다.

    “제법이지만! 지금부터가 진짜야!”

    제나가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재차 달려들어 검을 내리쳤다. 도도한 흐름을 담은 검격이 강물처럼 이어졌다.

    “나도.”

    루난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리를 일으켰다.

    “나도 그래.”

    그녀는 가볍게 바닥을 박차며 제나에게 돌진했다. 찔러오는 검보다 더 빠르게 나아가 설화를 내리그었다.

    쩌저저저정!

    두 여성은 다채로운 검격을 쏟아부으며 살벌할 정도의 기세로 서로의 빈틈을 노렸다. 처음에는 제나가 압도하는 듯했지만, 루난이 달빛을 그린 듯한 검술을 펼치자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루난에 검격에 튕겨 나갔던 제나가 다시 황소처럼 달려들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서리?”

    그녀의 갑옷과 부츠는 전부 얼어붙은 채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갑옷과 부츠만이 아니라, 손과 발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어느새….”

    “처음부터.”

    루난은 검에서 피어나는 서리를 지우고서 눈을 깜빡였다.

    “이익….”

    제나가 억지로라도 움직이려 했지만, 갑옷과 몸만이 아니라, 내부도 냉기가 차올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져, 졌다.”

    그녀는 유일하게 움직이는 왼손을 들어 패배를 선언했다.

    “수고했어요.”

    루난은 고개를 꾸벅이고서 제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묶고 있는 냉기를 지워주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루난! 루난! 루난!”

    “청월검!”

    “또 이겼어!”

    “지그하르트 진짜 미쳤는데? 자기들끼리 만나는 게 아니면 지질 않아.”

    “광풍단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대련 전까지만 해도 지그하르트를 무시하던 관객들은 루난의 승리에 목이 터질 정도의 환호를 보냈다.

    “그, 근데 좀 무섭지 않냐?”

    “그니까. 다들 싸움꾼이야. 물러서질 않잖아.”

    “싸움꾼이라기보다는 개 아니냐? 미친개.”

    “광풍이 아니라, 광견이라….”

    “난 그게 더 좋은데, 시원시원하잖아.”

    리메르가 걱정하던 것 이상으로 광풍단의 광견화는 관객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다만 모두가 무투를 좋아하기에 싫어하기보다는 더 좋아했다.

    “수고했어.”

    라온은 승리하고 내려온 루난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근데 라온….”

    루난이 쫄래쫄래 다가와서 눈동자를 내렸다.

    “이제 집중력 강화 훈련 안 해도 되지?”

    “아니.”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의 상대가 다 너보다 약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네.”

    아직 멀었다고 하자, 루난의 인상이 아주 조금 구겨졌다.

    “진짜 못생겼어….”

    “응 알아.”

    엔시아 때문인지 루난은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외모에 큰 관심이 없기에 라온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공격이었다.

    “흥.”

    루난은 콧잔등을 찡그리고서 광풍단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라온은 루난의 등을 보다가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8강인데….’

    이 인간은 어디서 뭘 하는 거지?

    글렌을 보좌하는 셰릴, 로엔과 달리 이곳에 있어야 할 리메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단을 놔두고 어디에서 뭘 하는 건지 참으로 이해가 안 갔다.

    “이야! 땄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관중석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저기 있구나….

    ‘저기 있네.’

    라스도 관객석에 리메르가 있다는 걸 알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놈은 교육이 필요하느니라. 본왕이…아.

    녀석이 주먹을 들어올리다가 멈춰섰다.

    -네, 네놈이 더 잘하겠군….

    라스는 인간의 탈을 벗은 채 훈련했던 광풍단을 떠올리며 손을 축 내렸다. 녀석은 마왕보다 사악한 인간이라며 턱을 떨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저 인간보다 위에 올라가는 순간 죽일… 아니, 교육시킬 테니까.’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석에 있는 리메르를 노려보았다.

    ‘그럼 다음으로….’

    라온이 시선을 돌려서 허공에 떠 있는 대진표를 보았다.

    ‘다들 잘하고 있네.’

    광풍단은 동료 검사끼리 만나거나, 확실히 실력 차이가 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지 않았다. 8강에 벌써 버렌, 루난, 크레인 3명이나 올라가 있었고, 곧 마르타도 올라갈 것이다.

    ‘8강 8명 중 4명이라….’

    4강에 올라가는 건 두 명이겠네.

    아쉽게도 루난과 버렌이 붙게 되었고, 크레인은 삼왕자와 만나게 되어 떨어질 것이다. 결국 4강에 올라가는 건 루난과 버렌 중 한 명과 마르타 뿐이었다.

    ‘물러나라고 할까?’

    확실한 우승을 위해 둘 중 하나를 뺄까 고민하며 뒤를 돌았다. 버렌과 루난은 상대에게 집중하기 위해 집중력을 갈고 닦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겠군.

    이번 대련 결투는 단순히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검사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기에 일부러 힘을 빼라는 명령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제 나도 준비를 좀 해야겠네.’

    오늘 진행되는 건 8강까지다. 준결승인 4강부터는 내일 진행되기에 이제 마스터급 대련 준비를 해야 했다.

    라온은 대진표 아래에 선 심판복 차림의 남성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마티오.’

    데루스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마티오를 심판으로 보내놨다. 그는 은밀한 시선으로 대련장이 아니라, 자신을 더 살피고 있었다.

    ‘위험한 건 저놈만이 아니야.’

    타천. 멀린이 말해줬듯이 타천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 내일 진행될 준결승과 결승에는 육황의 수장들이 오기에 놈이 공격할 순간은 오늘뿐이었다.

    이곳에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육황의 미래들도 있으니 놈은 분명 오늘을 노릴 것이다.

    ‘아 잠깐.’

    라온이 하늘에서 시선을 내려 심판이 된 마티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타천이 공격할 순간을 결정하면 되잖아.’

    타천은 분명 빈틈을 노릴 테니까. 일부러 빈틈을 만들어서 놈의 공격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었다.

    라온은 제천검의 검병을 말아쥐며 들뜬 미소를 흘렸다.

    ‘귀찮은 것들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겠군.’

    *     *      *

    짧은 휴식 시간 뒤에 새로운 사회자가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익스퍼트급 8강을 진행하겠습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인지 그는 이전 사회자보다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아쉽게도 발카르의 리키 라론 경이 기권을 했기에 마르타 지그하르트 검사님은 바로 4강에 진출했습니다.”

    마르타의 상대였던 발카르의 기사가 부상으로 물러나면서 그녀는 자동으로 4강에 올라갔다.

    “제기랄! 도망치다니!”

    마르타는 싸우지도 못하고 4강에 올라간 게 분했는지 바득 이를 갈았다.

    “무인이면 여기서 뒤지라고!”

    그녀는 의무실에서 기절해 있을 리키 라론을 욕하며 발을 굴렀다.

    “그럼 첫 번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우! 이거 겹쳤네요! 지그하르트의 버렌 검사와 지그하르트의 루난 검사!”

    사회자의 외침에 버렌과 루난이 각자 좌측과 우측에서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넌 누가 이길 거 같아?”

    마르타가 라온에게 다가가며 눈매를 좁혔다.

    “글쎄….”

    라온이 강렬한 버렌의 눈빛과 잔잔한 루난의 눈동자를 보며 옅은 숨을 뱉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지.”

    리메르와 자신을 제외한다면 광풍단에서 가장 강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마르타다.

    하지만 그 아래인 버렌과 루난의 승패는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았다. 훈련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쪽이 우위를 점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재미없겠네. 광견이라고 해도 동료는 알아볼 거 아니야.”

    “그러게. 광기 넘치는 지그하르트라고 해도 4강이 눈앞이니까. 한쪽이 양보하겠지.”

    “버렌 쪽이 올라가려나? 말도 안 되게 빠르던데?”

    “루난도 뒤지지 않아. 서리로 움직임을 막는 건 이미 달인의 경지라고!”

    관객들은 지그하르트끼리의 대결이고, 4강이 코앞이기에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멍청한 것들.”

    마르타가 관객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눈앞의 싸움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멍청이는 지그하르트와 광풍단의 이름을 달 자격이 없다고! 안 그래?”

    “그럼요!”

    “물론이죠!”

    광풍단 검사들이 마르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라온이 뒤를 돌아 광풍단 검사들의 눈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당연히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듯한 확신이 피어나고 있었다.

    ‘잘들 컸네.’

    아직 무학은 미숙하지만, 저들의 정신은 무인으로서 한 단계 발전해 있었다. 만족스러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8강 첫 번째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대련장 아래로 내려와서 손을 들어 올렸다.

    터엉!

    그 손이 하늘을 가리키기 전에 버렌과 루난이 동시에 움직였다.

    쩌어어어엉!

    대련장 중심에서 강대한 검격이 맞부딪치며 허공으로 차디찬 바람이 치솟았다. 대련장 주변으로 푸른 서리가 쏟아져 내렸다.

    쩌저저적!

    두 사람은 근거리에서 다시 검격을 내질렀다. 쏟아져 내리는 바람의 칼날과 치솟아 오르는 서리의 칼날이 경합하며 장대한 청광이 펼쳐졌다.

    “크으으으!”

    “흐읍!”

    버렌과 루난은 같은 지그하르트르가 아니라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지금까지 쌓아둔 무력을 그대로 펼쳐냈다.

    콰아아아아앙!

    바람과 서리가 끝없이 맞물리며 대련장 위로 시퍼런 폭풍이 뻗어 나왔다.

    “뭐, 뭐야 이게….”

    “저 둘 같은 편이잖아!”

    “왜 전력을 다하는 건데! 내일 바로 4강이라고!”

    “전력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죽이려고 드, 드는데?”

    “상대만 있으면 물어 뜯는 거야?”

    “지, 진짜 광견이야….”

    관객들은 거리낌없이 서로의 급소를 향해 검을 지르는 버렌과 루난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4강이라는 결전을 앞두고 같은 세력을 향해 저 정도로 진심을 다할 줄은 몰랐기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었다.

    쩌저저저정!

    루난과 버렌은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든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에서 그 숨통을 노리는 검격을 쏟아냈다.

    후우우웅!

    공간을 지배하는 서리의 둔검을 삭풍이 가르고, 대기를 찢어발기는 풍검의 포효를 차디찬 냉기가 짓누른다.

    상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휘두르는 검격에 승리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둘은 전력을 다해 싸우며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캬아아앙!

    한참이나 부딪치던 버렌과 루난이 동시에 튕겨 나와 대련장의 끝에 섰다.

    “후욱….”

    “하아아….”

    꽤 지쳤는지 숨이 거칠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훈련생 시절부터 널 꺾고 싶었다.”

    버렌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검을 세웠다. 은빛 칼날 위로 북해를 지배하는 날카로운 삭풍이 치솟았다.

    “여기서 승부를 내자.”

    “내가 이길 거야.”

    루난이 고개를 꾸벅이고서 설화를 두 손으로 잡고 활을 쏘듯이 뒤로 젖혔다. 푸른 서리가 달빛처럼 이지러지며 장대한 기파를 일으켰다.

    고오오오오오!

    두 사람의 기파가 상승할수록 관객석도 고요해졌다. 도서관이라도 된 듯 침묵이 내려 앉았을 때 긴장한 관객이 들고 있던 맥주잔을 떨어뜨렸다.

    타아악!

    낡은 맥주잔이 산산조각으로 깨진 순간 버렌과 루난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치이이이잉!

    버렌의 검에서 북해를 가르는 삭풍이 타올랐고, 루난의 검에서 대륙을 얼릴 듯한 달빛이 명멸했다.

    쿠와아아아앙!

    두 종류의 강대한 검기가 격돌하며 대련장이 사정없이 갈라지고, 하늘 위로 강대한 기의 파동이 솟구쳤다.

    후우우우.

    서리와 바람이 뒤섞인 폭풍이 가라앉은 뒤 대련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루난과 버렌은 대련장 중심에서 쓰러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거대한 힘의 충격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검을 휘둘렀던 것 같았다.

    “후….”

    라온은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 부상은 아니로군.’

    둘 다 오러를 극한까지 짜내서 탈진한 상태였다. 심각하거나 큰 부상은 없었다.

    “버, 버렌. 루난. 시합 불가능! 스, 승자는 없습니다!”

    사회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게 마른침을 삼키고서 둘을 모두 탈락시켰다.

    “드, 들것! 바로 올라와주세요!”

    대기하고 있던 치료사들이 두 사람을 데리고 의무대로 향했다.

    “오오….”

    “우오오오오오오!”

    “미쳤다! 진짜!”

    “같은 세력 맞냐고! 쟤들 왜 이렇게 싸움에 미쳐 있는 건데!”

    “지그하르트! 지그하르트!”

    “광풍단! 광풍단!”

    처음 지그하르트를 무시하고 업신 여겼던 구경꾼들은 광풍단 검사들의 강대한 무력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투쟁심을 보고 목이 터져라 환호를 질렀다.

    16강전부터 관객석에서 가장 큰 함성이 나오는 세력은 당연 지그하르트였다.

    “청월검! 청월검!”

    “선풍검! 선풍검!”

    관객들은 루난과 버렌에게 각자 청월과 선풍이라는 이명을 붙인 채 기절한 그들이 들릴 정도의 환호를 터트렸다.

    “허어!”

    “미친놈들인가?”

    “왜 같은 편끼리 저렇게까지….”

    “진짜 광견이야….”

    다른 세력의 무인들도 지그하르트 검사들을 보며 질렸다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저놈도 당황한 모양이네.’

    어색한 표정이 된 마티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많이 구경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심판을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까.

    -저걸 치우겠다고? 여기에서?

    라스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매를 좁혔다.

    ‘그래.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치울 수는 있어.’

    -대체 어떻게?

    ‘이독제독.’

    라온은 푸른 하늘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독은 독으로 치워야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