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07화 (307/653)

제307화

라온은 멀리 보이는 지그하르트의 성벽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이제야 도착했군.’

수많은 세월을 버텨온 성벽을 보고 있자니, 복귀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의 시선이 떠올랐다.

‘경외.’

이번 사건 전과 달리 사람들은 존경과 경외가 담긴 눈빛으로 지그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본래도 지그하르트는 육황오마에 속한 위대한 가문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라앉는 배.]

[잊혀진 패자.]

[무너진 강호.]

[녹이 슬어버린 검.]

한참 동안 걸음이 멈춰 있었기에 몰락한 가문이나 들을 법한 문구들이 지그하르트의 이름 앞에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치르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전부 우러러보았지.’

가문으로 복귀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환호하며 최강의 가문이라 소리치고, 경의를 담은 눈을 빛냈다.

대륙의 꼭대기에 선 세력 육황오마. 그중에서도 지그하르트를 정점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건….’

라온이 여전히 가장 앞에서 말을 모는 글렌의 등을 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가주님 덕분이야.’

다른 이유 따위는 없다. 홀로 백혈교주와 타천을 몰아낸 초월자 한 명 때문에 지그하르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다.

‘역시 다르네.’

개인의 무력으로 대륙 전체를 울리다니, 경악스러운 힘이다. 지금의 자신은 글렌의 옷자락조차 잡을 수 없었다.

-쯧쯧.

라스가 얼음꽃 팔찌에서 올라오며 혀를 찼다.

-네가 저 영감처럼 될 생각은 하지 않고, 감탄만 하다니 추하기 그지없느니라.

‘감탄만 하지 않았어.’

-뭐?

‘가주님을 따라잡기 위해서 등을 보고 있는 거야.’

글렌은 높고도 높은 하늘이지만 언제까지 바라보기만 할 생각 따위는 없다.

‘손을 뻗어야지.’

나도 달라지고 있으니까.

마스터 중급에 확실하게 안착했고, 검술과 오러의 경지가 크게 발전했으며, 육체 능력 역시 이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검계현신의 힌트도 얻었지.’

직접적으로 정신세계를 접하며 검계현신의 실마리도 잡았다.

버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 이상의 보상을 얻었기에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육체가 회복된 이후 수련과 대련을 하고 싶었지만, 글렌의 눈치가 보여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대련이나, 실전을 치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정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지키는 검사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었다.

글렌의 뒤를 따라서 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좌측에서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라온….”

“도련님!”

실비아와 헬렌 그리고 시녀들이 성벽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는 톡 건드리면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쯧.”

도괴도 그 옆에 서 있었는데, 비틀어진 입매로 혀를 차는 걸 보니, 그 나름대로 잘 왔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음….”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복귀가 끝나지 않았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두 수고했다.”

글렌은 실비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차가운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산하도록.”

그는 가볍게 손을 젓고서 본관쪽으로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문의 검사들은 바로 말에서 내려서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라온도 글렌에게 고개를 숙인 뒤에 바로 실비아와 시녀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 돌아….”

“라온!”

“도련님!”

“도련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모두가 박치기하듯 달려들었다.

“라온. 라온. 라온….”

실비아는 목을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헬렌은 손을 꽉 잡은 채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저리 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앙! 라온 님!”

“크흥!”

유아는 바지에 매달려서 엉엉 울었고, 율리우스는 그래도 무인이라고 울음을 참은 채 입만 삐죽 내밀고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신 거죠?”

“아프신 곳은 없죠?”

“으아아아앙!”

“으흐흐흑!”

시녀들도 달라붙어서 방울진 눈물을 흘렸다. 옷이 전부 젖어 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

주디엘은 유일하게 울지 않고, 조용히 뒷편에 서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크흥!

라온이 당황하고 있을 때 라스가 코를 훌쩍이면서 허공을 올려보았다.

-이게 무슨이라고? 사람을 걱정시키는 것도 죄이니라!

라스는 마왕답지 않은 말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앞으로 저들에게 잘하거라! 유일하게 손익 없이 네놈을 생각해주는 이들이니까.

‘알고 있어.’

라온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살아서 돌아왔으니, 모두 기뻐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기쁨 이상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수없이 묵고 묵힌 걱정이 터져 나와 본인들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늦게 돌아왔네.”

라온은 실비아와 헬렌. 시녀들을 모두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요동치는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온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     *      *

“…그래서 가주님 덕분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어.”

라온은 실비아의 침실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다, 다행이야.”

그렇게 울고도 또 나올 눈물이 있었는지 실비아의 눈가에 맑은 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네.”

실비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서 헤헤 웃었다.

“인사?”

“네 아빠와 누나도 아직 잊지 못했는데, 너까지 에덴에게 뺏겼다면 나도 살 자신이 없었거든.”

“그런 말 좀 하지마.”

그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드는 칼날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알겠어.”

실비아는 알겠다는 듯 손등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응?”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

지금까지는 관심이 없어서 묻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가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궁금해졌다.

“네 아빠는 바보였어.”

“바보?”

“잘난 게 하나도 없었거든. 아, 키 하나는 컸네. 지금 너보다 더 컸으니까. 거의 기둥이었지.”

실비아가 천장을 올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검술도 실력 자체만 보면 대단하기는 했어. 오러에 대한 재능은 아주 바닥이었지만.”

“그런데 왜….”

“왜 결혼했냐고?”

“응.”

아무리 가문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해도 실비아는 직계이자, 천재라 불렸던 검사이며,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그런 그녀가 검술만 뛰어날 뿐인 사람과 만났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멋있었거든.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검을 들었어.”

“음….”

“돈을 벌기는커녕 맨날 손해만 보고 다니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더라고. 재밌는 사람이었지.”

실비아의 목소리에서 활기와 그리움이 동시에 번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너 같네. 네 아빠가 강했다면 딱 너처럼 됐을 거야.”

손등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난 네가 그 사람처럼 타인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고, 지그하르트 검사다운 삶을 살아달라고 말했어. 하지만 네가 납치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실비아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옅은 숨을 내쉬었다.

“정말 너한테는 죄 많은 엄마….”

“아니야.”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떨고 있는 실비아의 손을 꽉 쥐었다.

“난 그 말 덕분에 살 수 있었어.”

실비아가 해주었던 그 말은 내가 진짜 사람이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전생처럼 자기만 아는 외로운 삶을 계속 걸었을지도 모른다.

인간답게, 검사답게 살라는 그녀의 한마디는 자신을 목줄이 풀린 사냥개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고마워.”

라온이 실비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긴장이 풀려서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실비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서 침실을 나왔다. 뭔지 모를 만족감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갔다.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일까, 마치 몇 년 만에 방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라온이 손목에 찬 얼음꽃 팔찌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너 왜 이렇게 조용하냐?’

평소라면 밥 달라고 아우성을 쳤을 녀석이 잠잠하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본왕은 끼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고고하면서도 아름다운 분노의 군주이니라.

라스가 팔찌 위로 올라오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위기를 깨지 않았으니, 오늘 저녁은 본왕이 원하는 대로 먹어라.

‘역시나.’

솜사탕 모습 라스의 진중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은 거하게 차려질 테니, 녀석이 원하는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똑똑똑.

라온이 피식 웃으며 겉옷을 벗었을 때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주디엘의 신호였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언제나 같은 표정의 주디엘이 들어왔다.

“곧 식사 준비가 끝납니다.”

“알겠어.”

“마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겠군요.”

“어떻게 알았어?”

“도련님이 납치당했다는 소식 이후 마님께선 거의 주무시지 않았습니다. 그분만이 아니라, 별관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녀의 말에는 본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또 조금은 기쁜 오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주디엘이 종이 한 장을 넘겨주었다.

“이건 뭐야?”

“엔시아 님이 남기고 가신 편지입니다.”

“남겼다고?”

“라온 님이 납치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에 떠나셨습니다.”

“그렇군….”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관이 왠지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엔시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에게도 익숙해진 건가.’

피식 웃으며 편지 봉투를 열었다. 세 장의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존나 잘생긴 라온 님께. 그 옥면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쉽네요. 다시 본다면 오지는 표현으로 그 얼굴을….]

“어휴.”

첫 장의 대부분이 얼굴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로 뒷장으로 넘겼다.

[실비아 님을 위한 인공단전의 설계도가 어느 정도 완성했어요. 문제가 있는데, 좀 귀한 재료가 필요해요. 드래곤 하트….]

“드래곤 하트?”

어처구니없는 재료에 입이 떡 벌어졌다.

[…를 구하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드래이크 하트와 씨 서펜트 하트가 필요해요. 그 둘을 연결시킨다면 그랜드 마스터급 오러를 운용해도 버틸 수 있는 단전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 편지지는 설계도를 더 완벽하게 만들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가문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끝났다.

[떠나려니까 너무 아쉽네요. 이렇게 된 거 라온 님의 오지는 얼굴을….]

세 번째 장도 얼굴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대로 된 내용이 담긴 건 두 번째 편지지뿐이었다.

‘엔시아 님답네.’

피식 웃고서 편지지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드래이크와 씨 서펜트라….’

각기 비룡과 해룡이라 불리며 목에 마나하트를 가지고 있는 최상급 몬스터들이다. 강하면서도 희귀한 놈들이지만, 아예 보이지 않는 녀석들은 아니다.

‘이건 되겠는데.’

그저 꿈만 같았던 실비아의 단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중무전에 관한 보고도 올리겠습니다.”

주디엘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중무전주 카룬이 복귀했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주님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겠지.”

에덴 지부 습격에는 활동 중지 상태인 중무전의 검대도 움직였다.

어떻게 해서든 활동 중지 기간을 풀어야 하는 놈들이니, 술수를 쓸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부터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해두겠습니다.”

“응. 수고해줘.”

“예. 그럼….”

“잠깐.”

라온은 방을 나가려는 주디엘을 불러세웠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그녀는 감정 없는 인형처럼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암시장에서 육황오마에 대한 정보가 올 거야. 그중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분석해줘.”

“암시장에서 정보를?”

“그래. 이번 일에….”

라온은 주디엘에게 암시장주를 역으로 이용해 먹은 것을 말해주었다.

“아, 암시장주와 심계 싸움을 이기시다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그쪽에서 날 무시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동생에 대한 것도 알려줘.”

“예?”

주디엘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였다.

“가, 갑자기 무슨….”

“암시장주에게 사람을 찾고 싶다는 부탁도 했거든. 네 동생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라온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그걸 잊지 않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그동안 기회가 없었을 뿐 주디엘에게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건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암시장주의 장담을 받아냈으니, 최소한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주디엘이 라온을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진심이었다고?’

라온을 믿는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가 동생을 찾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동생을 찾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암시장주에게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른 부탁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암시장주와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거대 가문과 왕국의 최상위 간부들 뿐이다. 그런 대단한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을 위해 썼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저, 정말 그걸 제가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그 사람은….”

“약속은 지켜야지.”

“그으….”

라온의 사심 없는 고갯짓을 보자,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멍해졌다. 시야가 뿌예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니, 네 동생에 대해 말해줘.”

“제, 제 동생의 이름은 쥬벨. 이제 21살이 되었을 겁니다. 엔팅카 마을 출신으로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 그리고 이마에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중무전으로 팔려 왔고, 그 이후에는 본 적이 어, 없습니다….”

“그렇군.”

쥬벨의 인적 사항을 머리에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면서 기회가 된다면 바로 그녀의 동생부터 찾아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지키게 되어 오히려 미안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주디엘은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진짜 얼굴을 드러내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찾을 수 있을 거야.”

라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후욱!

두 사람이 정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라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밥 안 먹냐?

라스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몸집을 부풀렸다. 큼지막한 솜사탕이 되어 외쳤다.

-밥 다 식는다고!

*     *      *

일주일 뒤.

라온은 정말 오랜만에 5연무장으로 나왔다. 아직 휴식 기간이 끝나지 않아서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어제 청소한 듯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천천히 몸을 풀었다. 몸이 가볍다. 이젠 글렌이나, 실비아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몸은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후우.”

호흡을 고르며 제천검을 뽑았다.

치이이잉!

청명한 검명이 심금을 울렸다. 만화공을 운용하자, 마나회로를 질주하는 열화의 오러가 폭주하듯 치솟았다.

우우우우웅!

제천검의 칼날 위로 적색 불길이 돋아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강기. 그 아름다운 자태는 아롱져 떨어지는 햇살처럼 장대했다.

‘확실히 달라졌군.’

검술 경지만이 아니라, 무학 경지 자체가 올랐어.

검술의 경지가 상승하며 강기 운용 능력도 한층 성장했다. 위력과 내구성 그리고 지속력까지 모든 게 이전과는 격이 달라졌다.

‘오러의 양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고.’

록타와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혼에 깃든 마나가 이제야 완벽하게 흡수되었는지 단전의 크기도, 그 안에 든 글래시아와 만화공도 이전보다 확연히 커졌다.

찌이이잉!

라온이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광아검을 펼쳤다.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에 어금니를 박아넣는 듯한 섬뜩한 기세가 허공을 내리찍었다.

후우우웅!

이어서 좌측에서 짓쳐 드는 이격에서는 대기조차 베어버릴 예리함이 피어났다.

광아검으로 펼치는 검세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요동쳤다. 실력이 한층 성장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실전 감각을 찾으려면 꽤 걸리겠는데.

검술과 오러를 포함한 무학 자체가 성장한 건 확실하지만, 상대에게 검을 휘두르지 않은 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성장한 능력치와 상승한 경지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실전이 필요했다.

‘누구 없으려나?’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설풍검결을 펼치고 있을 때 연무장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역시 여기에 있구만.”

리메르가 피식 웃으며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징한 녀석. 그럴 줄 알았다.”

“단주님. 잘 오셨습니다.”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으응? 네가 그렇게 웃으면 뭔가 불안한데?”

리메르는 눈매를 좁히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이럴 때만큼은 눈치가 빨랐다.

“대련 한판 해주시죠.”

“대, 대련?”

“오랫동안 검을 휘두르지 않아서 감각을 좀 올리고 싶거든요. 덤비시죠.”

“덤비라니, 무슨 깡패야?”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좀 봐주라. 윗대가리들한테 맞는 것도 지겨운데, 너한테까지 털리면 내 정신이 못 버틴다.”

리메르는 아직은 힘들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다 난 환자….”

“괜찮아요.”

라온이 빙긋 웃으며 제천검을 휘돌렸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할 테니까.”

“넌 가볍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겁다고!”

리메르가 악을 질렀다. 광풍단이 얻어맞는 것을 본 이상 지금 오러로 저 녀석과 싸웠다간 곤죽이 될 거다.

“빼지 말고….”

“그럴 필요 없다.”

문 쪽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도괴가 느릿한 걸음으로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저 비실이 대신 네 대련 상대가 가득한 곳이 있으니까.”

“예?”

“육황회의.”

도괴가 라온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육황회의가 열린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