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03화 (303/653)
  • 제303화

    -자비로운 본왕이라고 해도 이건 그냥 못 넘어가느니라!

    ‘자비는 개뿔.’

    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돌아간 라스의 눈빛을 보니, 또 발작이 시작될 것 같았다. 무시하고, 쭉 떠오른 메시지를 살폈다.

    [초월에 닿은 검을 목격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정신세계에 세 줄기의 검흔이 새겨집니다.]

    [검술 속성의 성취가 상승합니다.]

    [칭호<살아남은 자>가 생성됩니다.]

    메시지를 보자, 탄성이 절로 터졌다.

    ‘이 정도 보상을 주다니….’

    아니, 당연한 건가.

    격한 전투를 벌이고, 라스의 힘을 운용했으며, 초월자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해온 일을 생각해보면 이 수준의 보상을 받아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물론 아낌없이 주는 호구 한 분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지만.

    화아아아!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하면서 상처가 모두 회복된 것처럼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건 언제 받아도 좋군.’

    실제로 상처가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능력치가 오를 때 동반되는 희열이 통증의 열기를 감소시켰다. 이제 좀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정신세계에 새겨진다는 세 줄기 검흔은 뭐지?’

    록타와 싸우고, 라스에게 버텨냈던 그 공간에 세 줄의 검흔이 새겨진다는 건데,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 말 그대로다.

    라스가 눈을 부라렸다. 짜증 내는 것 같았지만, 솜사탕의 모습이라 전혀 와닿지 않았다.

    -정신세계만이 아니라, 네놈의 뇌리에 직접 본 검흔이 새겨진다는 뜻이니라.

    ‘검흔? 설마….’

    -그렇느니라. 너희 가주가 검계를 열고 사용했던 그 세 가지 검술이 네놈의 머리에 박힌 것이다.

    ‘미…친.’

    라온이 자신도 모르게 턱을 떨었다.

    ‘그분의 검술이 머리에 새겨진다고? 그 세 번의 검이?’

    글렌이 어떤 검술을 펼쳤는지는 모르지만, 그 무학이 대륙에 몇 없는 초월적인 검술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 위대한 검술이 머리에 새겨졌다고 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럼 나도 그 검을….’

    -못 쓰느니라.

    라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놈의 경지는 요정도 수준이니라.

    녀석이 침대에 놓인 베개만큼 손을 들어 올렸다.

    -사실 이것도 네놈의 성장을 보아서 많이 쳐준 것이니라.

    ‘그럼 가주님은?’

    -그 영감탱이는….

    라스가 눈매를 찡그리고서 허공으로 떠올라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인가?’

    -이 천장을 넘어 하늘에 닿아있느니라. 네놈 따위는 그 영감의 손가락 하나조차 안 되느니라.

    녀석은 글렌에게 닿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며 이를 갈았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렌은 라스가 수만 합을 싸워야 꺾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고, 지금은 그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초월자들을 바라보기에 지금 자신의 경지는 너무도 낮았다.

    ‘그럼 내 경지가 높아지면 그 검술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는 건가?’

    -그렇느니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라스는 놀리듯 그날이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됐어.’

    그 정도면 만족이다. 언젠가 글렌의 검술이 어떤 건지만 알 수 있다면 충분하다.

    ‘똑같이 쓸 생각은 없으니까.’

    글렌의 검을 따라 할 게 아니라, 그의 검술을 참고하여 자신만의 검계를 열어야 한다. 남의 것을 따라하기만 해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네 능력치를 빨아먹다 보면 언젠가는 닿겠지.’

    -이이익….

    피식 웃으며 손을 젓자, 라스의 눈동자가 찌그러졌다. 어차피 말로 못 이기는데 왜 매번 덤비는지 모르겠다.

    라온은 라스를 가볍게 물리치고, 다음 메시지를 보았다.

    ‘모든 검술 속성의 상승.’

    불의 고리를 통해서 검으로 화한 글렌의 검술을 보게 되면서 익히고 있는 검술 묘리들의 성취가 모두 상승했다는 뜻이다.

    하나도 아니고, 익힌 모든 검술의 경지가 오르다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둘 다 참….’

    불의 고리를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글렌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라온이 제일 밑에 뜬 메시지를 보고 바로 칭호의 내용을 확인했다.

    <살아남은 자>

    위기의 순간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모든 능력치 + 5, 위기에 처할 때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내용을 읽어보니, 에덴에 납치되었음에도 놈들의 보물을 챙기면서 훗날을 도모한 덕분에 받은 칭호 같았다.

    ‘괜찮은데.’

    암살자로 살아왔다고 해도 위기의 순간에는 몸이나 머리가 굳어질 때가 있다. 그런 좋지 않은 상황일 때 도움이 될 만한 칭호였다.

    ‘후우….’

    라온은 메시지의 내용들을 모두 확인한 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보상은 최고네.’

    그중에서도 검술 경지가 올라간 것과 글렌의 검술이 정신세계에 새겨진 게 마음에 들었다.

    ‘검계현신에 더 가까워졌겠는데.’

    정신세계가 성장했으니, 한층 더 검계현신에 다가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빨리 몸을 움직이고 싶군.’

    팔다리가 근질거린다. 당장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어이!

    ‘아직도 불만이 있는 거야? 이제 그만….’

    -그게 아니니라!

    라온이 한숨을 내쉴 때 라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게 물어볼 게 있느니라.

    ‘음?’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예상과 달리 라스의 안색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놈. 그 반쪽짜리 보고 투구 집단의 대가리 둘 중 하나라고 했었지?

    ‘반쪽이라면 타천?’

    -그렇느니라. 그놈보고 피 귀신을 상대할 수 있는 두 놈 중 하나라고 했잖느냐.

    ‘그랬지.’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

    라스의 표정은 드물게도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나도 잘 몰라.’

    -모른다고?

    ‘에덴에서 백혈교주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둘이지만, 활동하는 건 하나라고 했잖아.’

    -활동을 안 한다면 다친 것이냐?

    ‘그것도 몰라.’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몇십 년 전에 루멘 가문이라고 창술로 이름 높은 명가가 하나 있었어.’

    -루멘?

    ‘그래. 육황오마 급은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 정도는 되는 가문으로 기세가 엄청났었지. 근데 그 가문이… 하룻밤 만에 멸망했어.’

    루멘 가문의 창술은 대륙 일절로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대로 몇십 년만 힘을 쌓았다면 칠황이 되었을 그 거대한 가문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그 일을 저지른 게 에덴의 두 번째 수장이야. 다만 에덴의 입에서만 나오고, 생존자도, 목격자도 없으니 실제로 그가 있는지 아니면 허구의 인물인지는 아무도 몰라.’

    루멘 가문이 하룻밤 만에 멸망한 충격이 엄청났기에 에덴의 두 번째 수장에 대한 소문은 무수히 퍼졌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런 등장도, 활동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없는 존재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근데 그걸 왜 묻는… 설마 그놈도 마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타천이 교만의 군주의 힘을 지닌 것을 느끼고, 다른 한쪽도 교만의 마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천마.’

    무슨 투구를 썼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에덴의 귀신들은 그를 천마라 불렀다.

    -타락한 하늘과 마의 하늘이라….

    라스는 무언가를 느낀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혹시….

    녀석이 다시 말을 걸어오려 할 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 라온?”

    물수건과 붕대를 가지고 온 루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놀란 음성이 울리자마자 주변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허억!”

    “부단주님!”

    “라온님!”

    “일어나신 거예요?”

    광풍단이 루난의 좌우로 몰려들어 방문 앞을 가득 채웠다.

    “라온!”

    “너 이 자식!”

    “드디어 깨어나셨어!”

    “와아아아!”

    “부단주님!”

    루난과 버렌, 도리안을 시작으로 광풍단이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으어억!”

    라온이 손으로 막으려 들었지만, 광풍단은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달려와 그대로 침대를 덮쳤다.

    “이제야 일어났어….”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네.”

    “으흑! 정말 다행이에요!

    루난이 손을 잡은 채 입을 삐죽 내밀었고, 버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도리안은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 늦게 일어나셨잖아요!”

    “상처는 좀 어때요?”

    “라온님!”

    “부단주!”

    광풍단은 전부 침대에 모여든 채 자신을 짓눌렀다. 아픈 걸 떠나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보기 좋네.”

    “으윽….”

    어느새 나타난 리메르는 호흡이 달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청춘이라며 히죽 웃었다. 저 인간은 역시 도움이 안 된다.

    “이 자식들아. 나 환자야….”

    라온이 풀린 눈으로 간신히 손가락을 까딱였다.

    “다, 다 물러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버렌이 모두를 뒤로 물렸다. 도리안과 루난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후우….”

    거친 숨을 뱉으며 식은땀을 쓸어내렸다.

    ‘죽을 뻔했네.’

    조금만 늦었으면 에덴과 백혈교에게 살아남고 동료들에게 질식당해서 대륙 역사에 이름을 남길 뻔했다.

    ‘다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들 모두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 사건을 겪으며 지그하르트만이 아니라, 광풍단도 더 깊게 가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음?”

    라온이 옅게 웃으며 광풍단 검사들을 한 명씩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르타는 어디 있어? 부상이라도 당한 거야?”

    “그건 아니다.”

    문 앞에 서 있던 리메르가 고개를 저었다.

    “부상은 아니고, 뭔가 충격을 받은 느낌이던데.”

    “충격이요?”

    “말을 하질 않아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틀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

    버렌이 마르타답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마르타가 백혈교주와 타천을 보고 검을 떨어뜨렸던 게 생각났다. 아무리 적이 강하다고 해도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확실히 그놈들을 본 이후에 소고기 소녀가 조용해졌지.

    라스도 드문 일이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타천과 백혈교주.’

    라온이 둘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매를 좁혔다.

    ‘한번 가봐야겠는데.’

    *     *      *

    라온은 광풍단이 진정하고 돌아간 뒤에 몸을 일으켰다. 아직 이곳저곳이 아프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재활 삼아 마르타에게 가보려고 했는데, 루난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납치당했을 때의 충격이 커서 호위를 서주려는 것 같았다.

    “여긴 괜찮은데?”

    “혹시 몰라.”

    루난은 고개를 저으며 맹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래도 눈빛이 돌아와서 다행이네.’

    날카롭다 못해 섬뜩한 붉은빛을 띠고 있던 루난의 눈동자는 맹한 보랏빛으로 돌아왔다. 살짝 풀린 그녀의 눈빛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럼 마르타 방으로 안내 좀 해줘.”

    “응.”

    루난이 고개를 꾸벅이고서 숙소 가장 안쪽에 있는 마르타의 방으로 향했다.

    -네놈이 웬일이냐? 평소라면 수련할 생각에 그냥 놔뒀을 것 같은데.

    라스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다가왔다.

    -또 무슨 계략을 꾸미는 것이냐.

    ‘계략이라니….’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라스에겐 자신이 무얼 해도 계획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냥 어떤 상태인지 보고 싶을 뿐이야.’

    -얻을 게 없으면 관심도 두지 않는 네놈이?

    ‘그랬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야.’

    납치 이전이라면 라스의 말대로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놔뒀을 거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자신을 구하러 와주었고, 그중에 마르타도 있었기에 어떤 상태인지 보고 도와줄 게 있으면 돕고 싶었다.

    “여기야.”

    루난이 복도 안쪽에 꽉 닫혀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방문 아래에는 건드리지 않은 음식이 쟁반에 놓여 있었다. 밥도 먹지 않은 채 이틀 동안 있었던 것 같다.

    똑똑.

    라온이 가볍게 노크를 했다. 방 안에 사람이 있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르타.”

    직접 이름을 부르자, 방 안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물론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들어간다. 싫으면 말해.”

    라온은 음식이 들어 있던 쟁반을 들고, 방문 앞으로 다가왔다.

    “싫….”

    “대답 안 했으니까. 들어간다.”

    싫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까지 쳐놨기에 내부는 암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침대에도, 의자에도 마르타는 보이지 않았다.

    “왜 들어왔어.”

    방구석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저게 소고기 소녀라고?

    ‘음….’

    라온이 축 처진 마르타의 어깨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인 것 같았다.

    “네가 대답 안 했으니까.”

    “너라는 새끼는 진짜….”

    “불 켤게.”

    마법등을 켜지 않아도 마르타는 보였지만, 밝은 게 나을 것 같아서 불을 켰다.

    “윽!”

    오랜만에 빛을 봤기 때문인지 마르타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라온은 테이블 위에 음식이 든 쟁반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나쁘지 않은 음식이로다. 네가 먹을 것이냐?

    ‘너란 놈은 정말….’

    미친 소리를 하는 라스를 놔두고 마르타 쪽을 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

    마르타가 힘없이 손을 저었다.

    “후…..”

    라온은 마르타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는 손짓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말이다. 혼자라고 생각했어.”

    “뭐?”

    “에덴에게 납치당했을 때도 누가 구하러 온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어. 혼자 살아남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

    정말이었다. 언제가 기회가 왔을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영약을 챙기고, 금면사와 대결을 벌이고, 투구의 혼을 흡수한 것이다. 가문이 구하러 올 줄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와 와준 것을 보고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었어.”

    라온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기분 좋은 울림이 적막한 방을 울렸다.

    “너와 루난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모두 함께 와준 덕분에 나한테 제대로 된 소속감이라는 게 생긴 것 같다.”

    마르타와 뒤에 서 있는 루난을 차례대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이들을 대한 게 약간의 의리와 마음의 빚을 갚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거래 관계 자체가 머리에서 사라진 느낌이다.

    “세상에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아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드물지. 우린 가주님이 아니니까.”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이번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네게 조언할 자격은 없지만, 고민이 있다면 말해. 무슨 일이든 내 일처럼 고민해줄 테니까.”

    마르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가려 할 때 이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물기가 흐르는 목소리가 방을 적셨다. 뒤를 돌아보자 마르타가 꼭 쥐고 있는 낡은 물방울 목걸이가 탁한 빛을 발했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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