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2화
글렌의 검계현신은 리메르처럼 진공 지대를 만들지도, 도괴처럼 어둠의 방으로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변한 건 오직 하나. 진천검이 뇌기로 타오르는 광검으로 변했다는 것뿐이었다.
라온이 글렌의 등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뭐지?’
별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분명 검계현신을 운용했음에도, 그의 무엇이 변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 경지가 너무 낮기 때문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백혈교주와 타천을 바라보았다. 천하를 압도하던 두 괴물은 글렌을 내려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확실해. 무언가가 변하신 거야.’
-그래. 변했느니라. 아주 지랄맞게….
라스가 턱을 살짝 떨었다.
-저놈 본왕의 생각보다 더한 괴물이었구나.
녀석은 놀랍다며 글렌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글렌이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 그는 검계를 통해 분명 어떤 변화를 이뤄냈을 것이다.
고오오오!
라온이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몸 상태가 최악이었기에 고리를 공명시키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혀를 씹으며 참았다.
고리가 회전하며 마나의 흐름이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검…?’
글렌의 뒤에서 비치는 건 한 자루의 검이다. 그는 검으로 화해 있었다.
‘저 검은 뭐야….’
검사와 검이 하나가 된다는 신검합일 따위가 아니다. 그는 그 스스로 검이 되어 있었다.
빠르고, 가볍고, 강하고, 유연하고, 다채롭고, 현묘하고, 느리고, 무겁고, 곧바르며, 날카롭고, 굳건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혔던 검술의 묘리만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검술들이 글렌을 이루고 있었다.
‘이게 가주님의 검계현신인가.’
천의무봉의 뜻은 하늘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하다는 의미다. 글렌은 그 말대로 완벽에 이른 검이 되어 있었다.
찌이이이이잉!
타천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등 뒤에 어린 태양이 번쩍이며 창대한 빛을 뻗어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섬광이 찰나의 순간에 글렌의 심장 앞에 이르렀다.
극한에 이른 속도와 무엇도 꿰뚫을 위력의 빛살이 다가왔을 때 글렌이 광검을 그었다.
후우욱!
담백하게 내려서는 검 앞에서 빛의 화살이 사라진다. 부딪치지도, 갈라지지도 않고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큭!”
백혈교주가 입술을 비틀며 두 손을 모았다. 그녀의 입에서 고속의 주술이 읊어진 순간 혈신의 손아귀에서 혈기로 이루어진 무기들이 솟구쳤다.
쿠구구구구!
검, 도, 창, 극, 활, 도끼, 망치, 비창, 채찍, 방패, 곤 등 이름조차 다 알 수 없는 갖가지 무기들이 손에 잡히며 강대한 혈기를 일으켰다.
백혈교주의 입에서 두 번째 주술이 뻗어 나가자, 혈신의 세 눈동자가 각기 다른 색으로 번쩍이며 손에 든 무기를 쏟아냈다.
쿠구구구구!
44개의 팔이 동시에 내려선다. 그 움직임은 각기 한 가지 무기로 극한에 닿은 무인의 진의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대지를 통째로 가라앉혀버릴 무시무시한 혈신의 공세 앞에서 글렌이 뇌검을 쳐올렸다.
후우우우웅!
바닥에서부터 올라서는 뇌기의 칼날이 혈신이 일으킨 파천의 공세를 말끔하게 지워냈다. 그저 한 번의 휘두름으로 혈기도, 물리적인 공격도 모조리 사라졌다.
라온은 글렌의 검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게 검사의 완성형….’
백혈교주와 타천의 공격 둘 중 하나만 이곳에 떨어졌어도 모든 인간이 죽었을 거다.
글렌은 이 지역 자체를 지워버릴 기운을 검 한 자루로 사그라뜨렸다. 적이 만들어낸 현상 자체를 지워버리는 듯한 검술. 말 그대로 검신이었다.
지금의 그에게 불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게 다인가?”
글렌이 턱을 모로 틀며 차가운 미소를 그렸다.
“말했을 텐데, 전력으로 와도 된다고.”
“크윽!”
“음….”
그의 비웃음에 타천과 백혈교주의 인상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늙은이가 못 본 사이에 주둥이 수련도 했나 보네.”
백혈교주가 이를 갈며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주술을 고속으로 외웠다. 그녀가 전력을 끌어올리자, 붉은 드레스 안쪽에서 낡은 물방울 목걸이가 튀어나와 흔들렸다.
쿠구구구!
혈신의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지워버리고, 백혈교주처럼 손을 모았다. 44개의 손이 합장하며 온 세상을 혈광으로 물들였다.
“오늘은 제가 아니라, 그가 왔어야 했군요. 손해가 막심하겠어요.”
타천이 짧게 혀를 차고서 양팔을 펼쳤다. 태양의 후광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달의 후광이 짙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찌지지지직!
빛과 어둠이 소용돌이친다. 백과 흑이 끝없이 뒤섞이며 보랏빛 혼돈을 일으켰다.
소리도, 파동도 없다. 타천이 일으킨 혼돈은 이미 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아.”
라온이 눈을 부릅떴다.
‘이건 전생의….’
데루스 로베르트에게 목이 베이기 전에 느꼈던 죽음의 향기가 피어난다. 1초. 아니, 반의반 초 안에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의 숨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파지지지직!
반항할 새조차 없이 죽음에 떨어지려는 순간 글렌의 뇌검이 번쩍였다.
“인해.”
글렌의 담담한 음성과 함께 검격이 사선으로 번진다. 비상하는 매의 날개처럼 퍼져나간 검혼이 타천이 쏟아낸 혼돈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사라져라!”
백혈교주가 합장한 손을 내리자, 혈신이 운용하던 어마어마한 혈기가 땅으로 내려오며 증폭한다.
쿠구구구구구!
이 지역을 지워버릴 생각인지 혈기가 하늘과 땅을 집어삼키며 끝없이 부풀었다.
“지결.”
글렌이 뻗어낸 뇌검이 지평선을 따라 질주하자, 대지를 먹어 치우려던 혈기의 기둥이 반으로 갈라졌다.
쩌어어어억!
교역도시 카멜룬조차 녹여버릴 수 있었던 혈기의 기둥은 단숨에 먼지가 되어 녹아내렸다.
“음….”
검을 내리는 글렌의 입술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놈도 지쳤어! 끝장내!”
“알고 있습니다!”
백혈교주와 타천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두 괴물의 손아귀에서 치솟은 혈기와 혼돈의 광채가 글렌을 향해 쏟아졌다.
쿠와아아아아아!
단순한 힘의 응집이었기에 위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혈기와 혼돈이 사선으로 꼬이며 괴이한 빛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글렌은 입술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등으로 쓸어내리고 두 손으로 검을 잡아 상단으로 들어 올렸다.
“천검.”
하늘이 검으로 화하여 내려온다. 대륙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세계가 다시 한번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쿠구구구구구!
온 세상을 비춘 붉은빛이 가라앉았을 때 눈앞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백혈교주도, 타천도, 에덴과 백혈교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보이는 건 천신이 검을 내리친 듯한 웅대한 검격의 흔적뿐이었다.
글렌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이채를 발하는 붉은 눈이 따라올 수 있냐고 묻는 듯했다.
“…….”
라온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 채 눈을 내리감았다. 너무 피곤하여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둑해지는 시야 속에서 글렌이 펼쳤던 세 번의 검격이 뇌리에 그려졌다.
‘이건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야.’
라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마에 빠져들었다.
* * *
글렌이 어느새 다가와 쓰러지는 라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울대를 치며 역류하는 피를 도로 삼키고서 라온의 상태를 살폈다.
“좋지 않군.”
“예. 아까 확인해봤을 때 혈관이 찢어지고, 마나회로가 파열된 난 상태였습니다.”
리메르가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의 전투에 너무 집중해서 손을 댈 수가 없더군요.”
“음….”
글렌은 품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라온에게 먹인 뒤 오러로 내부를 풀어주었다. 창백했던 안색에 천천히 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로엔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의 싸움도 격했는지 의복 이곳저곳이 찢어져 있었다.
“괜찮다.”
글렌은 평소처럼 냉정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리메르가 글렌과 라온을 보며 옅게 웃었다.
‘똑같네.’
혈관과 근육이 찢어지고, 마나회로가 파열되어 놓고 괜찮다고 하는 라온이나, 백혈교주와 타천을 홀로 상대하여 심한 내상을 입고 괜찮다고 하는 글렌이나 비슷하여 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다르다고 하겠지만 외모나 성격이나 꼭 닮은 할아버지와 손자였다.
‘이 기회로 둘이 좀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사람이 많아서 이 이상의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글렌과 라온이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을 터놓길 바랐다.
“쯧.”
글렌은 본인이 만들어낸 장관을 내려보며 짧게 혀를 찼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놓친 겁니까?”
셰릴이 쌍검을 검집에 넣으며 다가왔다.
“모르겠군. 확실히 베었지만 워낙에 기이한 힘을 지닌 것들이니.”
글렌이 눈매를 좁혔다. 일대일이었다면 무조건 숨통을 끊었겠지만 이대일이었다 보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지그하르트 검사들의 열기 띤 시선을 마주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수고했다.”
“우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지그하르트 만세!”
지그하르트 검사들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우렁찼다.
눈앞에서 글렌이 에덴과 백혈교의 수장을 지워버리는 모습을 보았으니, 자부심이 넘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지그하르트 만세!”
검사들은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즐기며 검으로 하늘을 찔렀다.
“음?”
리메르가 라온을 업다가 멈춰 섰다. 마르타가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질 않았다.
‘감동이라도 받은 건가?’
그녀는 무력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으니 글렌의 검을 보고 감격한 것 같았다.
“언젠가는 너도 저런 경지를… 음?”
마르타에게 용기를 주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녀의 표정은 감동과 거리가 멀었다. 경악. 그것도 절규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르타. 너 대체….”
* * *
지그하르트가 떠난 뒤 카멜룬 북쪽 언덕 위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명은 바포메트의 투구를 쓰고 있는 악양귀였고, 다른 사람은 라온이 착용했던 용의 투구와 비슷한 드래곤의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야. 뒷방 늙은이가 됐다더니, 개소리였네요.”
악양귀는 글렌의 검에 의해 삭제된 공간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북멸왕은 북멸왕이네요. 소문보다 더 강해진 거 아닌가요?”
“그 말대로다.”
드래곤의 투구 속에서 목을 긁는 듯한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정말이요?”
악양귀가 눈을 부릅뜬 채 뒤를 돌았다.
드래곤의 투구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전쟁 이후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는데, 홀로 저런 경지를 이루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럼 당신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악양귀가 바닥에 걸터앉은 뒤 드래곤의 투구를 향해 능글맞은 눈빛을 보냈다.
“…….”
드래곤의 투구는 대답하지 않고, 글렌의 검에 의해 잘려나간 공간을 바라보았다.
“최소한 지지 않는다는 뜻이네요.”
악양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세상에는 괴물이 많다니까.”
그가 팔짱을 낀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인간들도 죽지 않았을 테고, 위가 높아서 이 후배는 정말 힘듭니다.”
“위만 바라보았다간 아래에서 잡힐 거다.”
“네?”
“이번 일의 시위가 된 지그하르트의 그 아이.”
드래곤의 투구를 쓴 남자가 등을 돌렸다. 파충류처럼 갈라진 눈동자에서 모든 것을 내려보는 오만한 이채가 돋아났다.
“앞으로 더 강해질 테니까. 아니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맞겠지.”
* * *
라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병동인가.’
하도 낯선 천장을 보다 보니, 이젠 어떤 천장이든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으음….’
온몸이 아프다. 피부, 근육, 뼈까지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젠장.’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하는데도 심한 고통이 일었다. 통증에 익숙해서 다행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다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흥.
얼음꽃 팔찌에서 쏙 튀어나온 라스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조금 커진 솜사탕이 된 걸 보니 약간이나마 힘을 회복한 것 같았다.
-네놈은 주제넘게도 본왕의 힘을 운용했느니라. 실패로 끝났을지언정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 기운을 사용했으니, 그 여파가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니라.
‘그렇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가 넘겨준 분노와 냉기를 운용할 때 몸이 터지는 줄 알았다. 녀석의 기운은 아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심하느니라. 대체 언제 성장할 것인지.
라스가 팔짱을 낀 채로 쯧쯧 혀를 찼다.
‘언젠가는 강해지겠지.’
라온이 피식 웃었다. 웃는데도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다.
-웃음이 나오느냐?
‘나와. 나올 수밖에.’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결계를 깨부수고 내려온 글렌과 차원을 열고 등장하는 지그하르트 검사들의 웅장한 모습이.
‘가문이 날 구하러 와줬는데 어떻게 웃음이 안 나오겠어. 그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와 준 그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지금 죽어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래 인간들에겐 그런 정이 있잖느냐. 너희는 혈연이니 더 할 테고.
‘난 잘 몰랐어.’
전생에서 난 버리는 말이었으니까.
그림자의 수장이니 뭐니 했지만, 실제로는 조금 크고 일 잘하는 사냥개에 불과했다.
전생의 그 기억 때문에 라온 지그하르트가 되었어도 이룰 것만 이루고, 얻을 것만 얻어서 떠나려 했다.
하지만 어제의 일로 생각이 바뀌었다.
지그하르트는 내 집이었고, 지그하르트의 검사들은 내 동료였다.
그걸 제대로 깨닫게 되자 세상이 시야가 열리고 세상이 밝아졌다.
-이상한 놈이로다.
‘그리고 너도.’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라스를 바라보았다.
-음? 본왕이 무언가를 했던가?
라스가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도리안을 구해주려고 네 힘을 넘겨줬잖아.’
평소의 라스라면 힘과 분노를 동시에 넘겼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힘만 보내주었다.
‘너도 다시 봤어.’
라스가 부하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였다. 탐식의 마왕이자, 바보이며, 아낌없이 주는 호구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녀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흥! 이, 인간 따위에게 칭찬을 들어봐야 조금도 기쁘지 않느니라!
라스는 입술 끝을 떨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고맙다. 라스.’
-본왕은 그저 부하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니라. 네놈 따위에겐 관심 없었느니라!
‘몸이 회복되는 대로 네가 먹고 싶다는 건 다 사줄게.’
-…저, 정말이냐?
진심을 담아서 말하자, 라스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갔다.
‘그래.’
-커흠! 뭐, 사실 본왕도 이번에는 꽤 괜찮았느니라.
라스가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기분이 한껏 올라간 표정이었다.
-네놈도 인간치고는 괜찮은 놈이다보니, 보고 있으면 나름 재미가….
녀석이 들뜬 목소리로 주절거리고 있을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초월에 닿은 검을 목격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
[정신세계….]
[검술 속성….]
[칭호….]
극한의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여 글렌의 검술을 보았기 때문인지 올라가는 메시지가 많았다.
‘와아….’
메시지의 내용에 정신이 고조되어 육체의 통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재미가 더럽게 없느니라!
잔잔하게 말하던 라스가 갑자기 빼액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메시지를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힘은 본왕이 썼는데 왜 보상은 네놈이 챙기는 것이냐!
‘음….’
-이 망할 도둑놈의 자식아!
어쩔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아낌없이 주는 호구 칭호는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