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타천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껌껌한 밤하늘이 그의 손으로 끌려와 거대한 어둠을 만들어 냈다.
끼이이익!
기괴한 어둠은 길쭉하면서도 탄력 있는 수십 개의 다리를 펼쳐 글렌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위를 포위했다.
우우우웅!
백혈교주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언어가 초고속으로 흘러나왔다. 그녀의 주변에서 흐르는 혈기가 꼬이고, 꼬여 새하얀 창을 만들어냈다.
고오오오!
백혈기가 응집된 창날은 신이라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면서도, 날카로웠다.
“흑괴.”
타천이 왼손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글렌을 포위하던 어둠이 응집되며 그를 가둬버렸다.
찌지지직!
흑괴가 글렌을 조이기 시작하자, 백혈교주가 만들어낸 혈창이 빛살이 되어 쏘아졌다.
뻐어어억!
혈창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흑괴의 중심에 내리꽂혔다.
쿠구구구!
흑괴 안에서 강대한 충격파가 번진다. 어둠이 갈라지며 혈창이 붉은 스파크와 함께 밀려 나왔다.
쿠구구구구!
글렌은 얇디얇은 검 한 자루로 어둠의 벽과 혈기의 창을 동시에 밀어내는 경악스러운 무위를 보여 주었다.
화아아아아!
글렌이 가볍게 손목을 털었다. 칼날에서 타오른 뇌기가 한순간에 증폭하여 적색 서기를 일으켰다.
쩌어어억!
거대한 혈창이 반으로 갈라져 떨어지고, 어둠의 감옥도 반으로 쪼개져 흩날렸다.
“망할 놈의 뇌기….”
“이거 쉽지 않겠군요.”
백혈교주가 혀를 차고, 타천이 입매를 비틀었다. 둘 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희 모두 이전보다 못한 듯싶군.”
글렌은 백혈교주와 타천을 굽어보며 턱을 모로 틀었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그가 태화보를 밟았다. 허공을 접으며 나아가 타천의 앞에 이르렀다.
후우우웅!
글렌이 눈을 부릅뜬 타천을 향해 진천검을 내리쳤다. 벼락이 떨어진 듯 찰나의 순간에 타천의 몸이 갈라졌다.
“생각보다 더 빠르시군요.”
타천은 몸이 반으로 나뉘었음에도 죽지 않았다. 찢어진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법인가?”
“조금 섞었습니다. 물론 저만이 아니라….”
타천의 눈동자가 좌측으로 굴러간 순간 글렌의 등 뒤로 혈기의 안개가 치솟았다.
후우우웅!
글렌의 등줄기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그가 바로 진천검으로 쳐냈지만, 혈무는 사라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떠 있었다.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죽여줄게.”
안개 속에서 백혈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뱀파이어의 능력인 안개화와 비슷하지만, 의념이 담긴 검으로도 베이지 않은 것을 보면 훨씬 고차원의 주술이었다.
“네가 구하러 온 손자가 네 시체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죽음이라.”
글렌이 차게 웃으며 진천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진천검에 깃든 뇌기가 부채꼴로 퍼지며 하늘 전체에 장대한 뇌전을 일으켰다.
빠지지직!
천공을 뒤덮은 뇌기가 그물처럼 맞물려 떨어진다.
하늘의 그물은 넓으면서도 촘촘하여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글렌이 일으킨 뇌망은 안개로 변한 백혈교주도, 어둠 속에 스며든 타천도 놓치지 않았다.
“천망?”
백혈교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두 손을 모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급 술법이 완성되며 혈기로 이루어진 벽이 치솟았다.
“이런!”
타천이 혀를 차고서 오른손을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손아귀에 차오른 백광이 태양을 닮은 거대한 구체가 되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쩌어어어어엉!
그물로 화한 벼락 줄기가 혈벽과 백광을 깨부수며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윽!”
“으음….”
백혈교주와 타천은 뇌기에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속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아무래도 힘을 아낄 여유는 없는 것 같군요.”
타천의 양손에 깃든 빛과 어둠이 동시에 떠오른다. 낮과 밤 그 자체를 담아낸 듯한 거대한 기운이 들끓었다.
“그래. 시간을 끌어봐야 의미 없어.”
백혈교주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그녀의 어깨 위로 타오르는 백색의 혈기가 연해지더니, 물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쿠구구구구!
백혈교주와 타천이 일으킨 절대적인 기파에 공간이 비틀리며 허공에 기형적인 금이 돋아났다.
콰르르릉!
글렌이 진천검을 들어 올리며 발을 굴렀다. 찍혀 나간 대지에서 붉은 벼락이 솟구치며 사위를 휘감았다.
쿠구구구구!
세 사람의 기운이 경합하며 어마어마한 마나의 폭풍을 일으켰다. 대지에서 솟구친 폭풍이 하늘에 닿은 순간 세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움직였다.
쩌어어어억!
* * *
라온이 이를 악물었다. 당장 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오른팔을 끝까지 들어 올린 채 전방을 바라보았다.
“살 가치가 없는 악귀들이다! 모조리 베어라!”
“백련대 돌격!”
“백련대에 뒤지면 내일 훈련 2배다! 공검대 밀어붙여!”
지그하르트 검사들은 눈동자에 짙은 불꽃을 일으키며 에덴의 귀신들과 백혈교도에게 돌진했다.
“제기랄!”
10사도가 로엔을 쳐낸 뒤 손을 뻗었다. 그는 짜증이 가득 차오른 눈동자로 지그하르트의 검사들을 가리켰다.
“모조리 죽여버려!”
그의 지시에 백혈교도들이 뒤로 물러난 뒤 전열을 갖췄다. 음습한 혈기를 일으키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쩌어어엉!
절혼검과 셰릴은 중앙에서 정면 대결을 벌였다. 투기와 사기, 백검과 흑검이 격돌하며 대지가 뒤흔들렸다.
“크윽….”
금면사가 라온에게 당한 복부를 움켜쥔 채 일어섰다. 절혼검이 천검대주에게 막혀 있었기에 다음 명령권은 그에게 있었다.
“물러나는 순간 죽음이다! 끝까지 싸워!”
그의 외침에 에덴의 귀신들이 투기를 일으켰다. 시뻘건 투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악마의 형상을 그렸다.
쿠와아아앙!
지그하르트, 에덴, 백혈교의 무인들이 중앙에서 맞부딪쳤다. 오러와 혈기, 투기의 파동이 경합하며 검붉은 스파크와 충격파가 끝없이 터져 나왔다.
“크어어억!”
“이, 이 자식들 뭐야!”
“버텨라! 물러나면 더 위험해!”
“무슨 멧돼지도 아니고!”
각자가 가진 기운 자체는 호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백혈교도와 혈귀들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음?”
라온이 전장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뭐지?’
왜 저들까지….
친분 있던 무력 단체만이 아니라,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던 직계 검사들도 강한 분노를 일으키며 적들에게 검을 내리쳤다.
직계 소속 검사들은 가문 내부에서 마주칠 때마다 무시하는 눈빛을 보냈기에 지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싸우냐고? 이유는 간단해.”
리메르가 뒤를 힐끔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문이니까.”
“가문이요?”
가문이라는 말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계 단체 소속 무인들은 가문에서 자신을 없는 존재처럼 생각했으니까.
“내부에서는 시기하고, 싸우더라도 외부의 적 앞에서는 하나 되어 검을 들지. 그게 가문이고, 그게 지그하르트다.”
리메르가 백혈교도들을 몰아붙이는 공검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더군다나 백혈교와 에덴은 지그하르트를 무시했어. 검사들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명예. 본인도 아니고, 가문의 명예가 짓밟혔으니, 모두 분노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 역시 화가 난다는 듯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가문….”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는 너무도 공허하게 들렸던 그 단어가 지금은 따스하게 가슴을 적셨다.
“너….”
버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입을 뗐다.
“괘, 괜찮은 거냐?”
“그래. 괜찮아.”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는 말이 안 된다며 입을 떡 벌렸다.
“네 꼴을 보고 말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안 나는 곳이 없다고! 이 멍청아!”
마르타가 라온의 전신을 훑어내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음?”
라온이 본인의 몸을 살폈다. 라스의 기운을 운용한 대가 때문인지 혈관과 피부가 터져서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라온….”
루난이 입술을 꾹 깨물며 다가왔다. 맹한 눈은 어디로 가고, 슬픔과 분노로 차오른 보랏빛 눈동자가 일렁였다.
“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녀는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며,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늦게 와서 미안해.”
“괜찮….”
“으흐흐흑!”
괜찮다고 말하려 할 때 도리안이 앞으로 기어 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진짜, 진짜, 지이이인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갈라진 땅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대륙추종향도 남겨두고 갔는데!”
“여기가 탐색 자체가 안 되는 곳이라서 수색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
리메르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라온도, 너도 살 수 있었다.”
그가 도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생했다.”
“우어어어억!”
도리안이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울부짖기 시작했다.
라온이 그런 도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지.’
도리안이 겁쟁이와 울보의 모습을 보여 주니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저 녀석이라면 저게 어울리지.
라스도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부단주!”
“다시 봐서 다행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광풍단도 진형을 유지한 채 뒤를 돌아보면서 반가운 웃음을 흘렸다.
“나도.”
광풍단의 목소리를 듣자, 심장이 크게 약동했다. 구름이라도 탄 듯 기분 좋은 울렁임이었다.
“나도 그렇다.”
광풍단 모두와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누군가에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로 자신의 삶이 크게 변한 기분이었다.
“자자,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어.”
리메르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방비를 갖춰. 라온과 도리안. 인질들을 끝까지 지킨다!”
“예!”
다시 검사들이 광풍진에 집중하는 순간 세 방향에서 강대한 기파가 일어났다.
투우웅!
우측에서 검은 오크 투구, 중앙에서 가마의 노인, 좌측에서 들소의 투구가 움직였다.
‘나를 잡으러 오는 거야.’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들은 부하들을 잃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을 인질로 잡으려 하고 있었다.
“방진!”
“방진!”
버렌의 외침에 광풍단 검사들이 가운데로 밀집하며 굳건한 검기를 일으켰다.
“귀찮게 구네.”
리메르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나아가 가마의 노인과 들소의 투구가 일으킨 혈기와 투기를 쳐냈다.
쩌어어엉!
광풍단은 진의 중심을 방어로 맞추며 검은 오크 투구가 내지른 도격을 막아 냈다.
쿠구구구!
검사들은 강렬한 충격에 비틀거렸지만,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았다.
“음….”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달라졌어.’
이전이라면 분명 진법이 깨질 위력이었건만 검사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무력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력이 바위처럼 단단해진 게 느껴졌다.
후우우욱!
라온이 감탄할 때 뒤편에서 음습한 기세가 돋아났다. 황급히 뒤를 돌자, 그림자에서 회색 눈의 어린아이가 튀어나왔다. 백혈교주의 가마를 들고 있던 아이 모습의 혈귀였다.
치이이익.
백혈교도와 에덴의 귀신들이 죽어 갈 때 그림자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놈 위험해.’
손아귀에서 타오르는 혈기가 막강하다. 마스터 최상급에 이른 무력. 몸이 정상이었어도 막기 힘든 공세였다.
“음!”
“이런!”
“크윽!”
리메르와 셰릴, 로엔 모두 아이를 돌아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해서든.’
라온이 살을 째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검을 들어 올리려 할 때 눈앞으로 시퍼런 벽이 돋아났다.
캬아아앙!
아이가 뻗어낸 손은 그 벽에 막힌 채 튕겨 나갔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그가 우측을 돌아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멀린!”
“…….”
죽은 듯 주저앉아 있던 멀린이 천천히 일어난다. 눈동자에 깃든 광기가 이전보다 더 짙게 번들거렸다.
“록타가 아니라 라온.”
그녀가 이쪽을 바라보며 찢어질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라온이 아니라 록타.”
“음…?”
“뭐가 됐든 상관없어. 록타가 네게 깃든 이상 넌 록타야.”
멀린은 그게 옳다고 중얼거리며 마나를 개방했다.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막강한 마법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저 미친년이!”
혈귀가 양손으로 강기의 막을 만들었지만, 멀린의 끝없는 마법 공세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어….”
“라, 라온 도련님?”
“이게 무, 무슨 일이야? 왜 저 미친년이….”
리메르, 로엔, 셰릴이 멀린과 라온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나도 몰라요….”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저건 진짜 미친년이로구나.
‘…….’
라스의 말대로 멀린은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복수를 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보호를 해주고 있었다.
“멀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상황을 반전….”
에덴을 이끌던 금면사가 멀린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였다. 거칠게 출렁이던 하늘에서 장대한 벼락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천지를 관통하는 우레와 함께 글렌과 백혈교주 그리고 타천이 동시에 땅으로 내려섰다.
쿠구구구구!
세 사람은 각자 지그하르트, 백혈교, 에덴의 군세 앞에 선 채로 초월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라온은 글렌을 보며 턱을 떨었다.
‘좋지 않아.’
글렌의 제복은 여기저기 뜯겨나갔고, 어깨와 허리, 등에 생겨난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아무리 북멸왕이라고 해도 백혈교주와 타천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엔 무리였던 것 같다.
“어…?”
마르타가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마르타?”
“이제 끝을 내도록 하지.”
마르타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백혈교주가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붉은 입술을 통해 번진 주술이 웅대한 백광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오!
그녀의 뒤편으로 여신의 형상이 세워진다. 44개의 팔과 세 개의 눈, 새하얀 피부를 가진 신이 천천히 눈을 뜬다. 각기 다른 색의 눈동자에서 뻘건 핏물이 흘러내렸다.
마라혈식관음. 혈신이라 불리는 괴이의 등장이었다.
콰아아아아!
타천이 손아귀에 쥐고 있던 백색 구슬과 흑색 구슬을 동시에 터트렸다. 그의 등 뒤로 여덟 장의 날개가 돋아난다. 오른쪽의 날개는 천사처럼 하얀 깃털로 이루어졌고, 왼쪽의 날개는 악마처럼 시꺼멓고,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우우우웅!
날개 뒤편으로 장대한 후광이 돋아난다. 태양과 달. 음과 양이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두 절대자가 퍼뜨리는 기세에 인간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전율적인 기파. 마스터들조차 제대로 서 있지 못 했다.
“끄으으윽!”
라온이 무릎을 꿇은 채 턱을 파르르 떨었다. 눈을 들어 올릴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전신이 거대한 망치 아래에 깔린 듯한 느낌이었다.
“끄억!”
“아흑….”
“이, 이런!”
다른 이들 역시 두 발로 버티지 못했다. 호흡이 막혀 꺽꺽대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저, 저걸 어떻게 막아….’
하늘조차 무너뜨릴 것 같은 두 절대자의 공세를 어떻게 막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글렌도 저 둘의 합공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라.”
글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밑에서 피어난 따스한 기운이 심혼을 짓누르던 백혈교주와 타천의 기파를 몰아냈다.
“검사가 보아야 할 것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다.”
그 말을 들은 지그하르트 검사들이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글렌을 바라보았다. 넓으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등은 따라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좋구나.”
글렌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진천검을 들어 올렸다. 칼날에서 타오른 뇌기가 천지로 뻗어나가며 적색 서광을 일으켰다.
“검계현신.”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하늘과 땅을 잇는 한줄기 선이 되었다.
“천의무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