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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97화 (297/653)

제297화

쯧.

금면사는 지붕 위에 드러누운 채 짧게 혀를 찼다.

‘마음에 안 드네.’

평소라면 누가 투구를 쓰든, 누가 죽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라온 지그하르트가 반쪽짜리 용이 됐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짜증이 돋아났다.

‘그런 미친놈은 처음이라 그런가?’

라온 지그하르트는 적진에 잡혀 온 주제에 자신에게 대련을 신청할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이었다.

그런 또라이 기질이 나름 마음에 들었는데, 한순간에 존재가 사라지니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푸른 용의 투구를 쓴 놈의 대련을 거절한 이유도 기운이 빠져서였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라온이 너무 자신감 있게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해서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투구와 가면의 혼을 이길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동안 지루하겠군.’

라온과의 대련은 이 결계를 지키는 지루한 임무 중 한 가닥 유희였는데, 그게 사라졌다 하니 조금 아쉬움이 들었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금면사가 차게 웃으며 본인의 뺨을 두드렸다.

‘어차피 사라질 놈이었는데.’

라온의 혼이 사라질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태음결계에 들어오기는커녕 결계를 알아볼 수 있는 놈도 없기에 잠시 이 육체를 쉬게 하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웅!

태음결계에 누군가가 접촉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금면사가 벌떡 일어나서 결계에 문제가 일어난 방향으로 뛰어갔다.

‘저건 뭐야….’

남녀노소. 평범해 보이는 네 사람이 피를 칠한 듯한 붉은 가마를 들고 있었고, 가마의 발에서 하얀 손이 튀어나와 결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저들의 기척을 못 느꼈다고?’

저 넷이 막강한 무력을 가진 건 맞지만, 자신이 기척을 못 느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이 육체는 무엇보다도 기척 감지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저 여자가….’

금면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서 가마의 중심을 보았다. 아무런 기세도 없건만 그 존재감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괴물이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미친….”

백혈교주. 예전에 봤을 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미친년이 분명했다.

‘뚫린다.’

태음결계라고 해도 저 괴물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문제지 결계가 뚫리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우우우웅!

금면사가 이를 악물고 결계를 작동시켰다. 결계 내부가 두텁게 변하고, 대전 안쪽에 경종이 울렸다.

“소용없단다.”

붉은 가마 속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달콤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가 꺼지기 전에 결계가 물결치듯 열리며 가마가 통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냈다.

‘여, 열었다고?’

결계를 부순 것도 아니고, 열다니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와는 친분이 있거든.”

백혈교주의 손짓에 10사도가 앞장을 서서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가마가 나아가고 5사도는 맨 뒤에서 따라갔다.

고오오오오!

대주교와 주교 그리고 교도들도 줄지어 결계로 들어왔다.

“매, 맹약을 어기고,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그리 걱정할 것 없단다.”

백혈교주가 금면사를 보며 붉은 입술을 얇게 말아 올렸다.

“내 것을 찾으러 왔을 뿐이니까.”

*     *      *

라온은 멀린의 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선택을 해야 해.’

록타의 성격이라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고, 이곳에서 멀린을 지켜야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에덴이 아니라, 멀린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리되면 상황 파악이 늦어져서 외부 상황에 대처가 늦어질 수도 있다.

‘누가 왔는지를 모르니까.’

한 명의 거대한 존재감에 다른 사람들이 모조리 묻힌 상황이라 대체 누가 쳐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넌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끄응….

라스는 대답 대신 가는 신음을 흘리며 어깨에 축 늘어졌다.

-히, 힘을 너무 많이 썼느니라. 아무것도 모르겠느니라.

녀석은 본체를 현신하고, 차원을 두 번이나 뚫느라 모아둔 힘을 모두 써버렸다고 주절거렸다.

‘이렇게 도움이 안 될 수가….’

-윽….

무시해도 대꾸를 안 하는 걸 보니 지치긴 한 모양이다.

‘그럼 직접 가는 수밖에.’

이리되면 선택권은 없다. 멀린이 기절해 있는 이상 직접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라온은 기척을 죽인 채 다른 에덴의 귀신들 사이에 끼어서 대전 밖으로 나갔다.

‘가…마?’

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붉은색 가마다.

가마의 좌석을 덮은 연분홍색 발에 비치는 여성의 그림자에서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눈동자에 못을 박아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시선을 끝없이 빨아들였다.

자신만이 아니라, 에덴의 귀신들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

라온은 손으로 턱을 잡고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가마의 다리를 잡고 있는 남녀노소가 보였다.

‘강해.’

저 가마를 괜히 들고 있는 게 아니듯 막강한 무력이 느껴졌다. 가마의 주인 때문에 제대로 느끼기 힘들지만, 네 명 중에서 자신보다 무력 경지가 낮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라온이 가마 옆으로 시선을 보내고 눈을 부릅떴다.

‘10사도? 그리고 5사도 인가?”

코트에 10개의 구슬이 그려진 10사도와 5개의 구슬이 그려진 5사도가 가마의 양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 그렇다면 저 여자는….’

다시 가마를 보았다. 붉은 발 안에서 권태로운 손짓을 하는 여성을 살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백혈교주!’

백혈교의 사도들이 저렇게 예의를 갖추는 존재는 오직 한 명뿐이다.

아니, 전부 떠나서 가마의 여성이 글렌의 급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걸 보면 처음부터 답은 나와 있었다.

저 여자는 백혈교의 주인 백혈교주였다.

-흐음!

라스가 발을 노려보며 눈매를 좁혔다.

-꽤 하는구나.

라스는 글렌 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녀석이다. 백혈교주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그녀의 무력이 글렌처럼 하늘에 닿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백혈교주가 왜 여기에 왔지?

결계를 부수고 들어온 건 아니지만, 에덴의 반응을 보면 미리 약속하고 온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 나타나도 대륙을 울릴 저 괴물에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설마 날 잡으려고?’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백혈교는 10사도를 보내서 자신을 납치하려고 했었다. 미친 소리 같기는 해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었다.

-멍청한 놈.

라스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저런 무력을 지닌 존재는 마계에도 그리 많지 않느니라. 저게 왜 네놈 따위를 잡으러 오겠느냐. 이래서 주인공 병에 걸린 것들하고는 상종을….

“라온 지그하르트는 어디에 있지?”

녀석이 코웃음을 칠 때 붉은 발 안에서 귀를 녹이는 듯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에?

‘어?’

라온이 눈 앞을 가린 라스를 밀어버리고,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저 괴물은 정말 자신을 잡으러 이곳에 온 것 같았다.

“그런 놈은 없소.”

금면사가 말라붙은 듯 갈라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지금 누구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5사도가 금면사를 보며 살기를 드높였다. 당장에 출수할 것처럼 주먹을 말아쥐었다.

“모두 꿇어라. 지금 너희들의 앞에 계신 존귀한 분은….”

“됐단다.”

백혈교주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없다? 왜지?”

“그, 그놈은 죽었…소.”

금면사는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존대가 아닌 하오체를 내뱉었다. 이 와중에 말을 높이지 않는 걸 보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었다.

“죽었다라….”

백혈교주가 옅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너희의 투구를 썼다는 뜻이겠구나.”

“그렇소. 그가 라온 지그하르트를 연기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라온 지그하르트는 이제 이 세상에 없소.”

금면사가 입술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더욱 기척을 죽이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날 왜 사도로 만들려는 거지?’

백혈교주는 라스의 인정을 받을 정도의 괴물이다. 아무리 천재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이제 마스터 중급에 오른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직접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

“그럼….”

백혈교주가 가마의 좌석에 등을 기댄 채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아이라도 데려가야겠구나.”

그녀는 맡겨둔 물건을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라온을 데려간다고 말했다.

“그, 그건 불가하오.”

금면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에덴은 들어온 자를 함부로 내어주지 않소. 이미 투구를 썼다면….”

“주제를 모르는군.”

5사도가 섬뜩한 살기를 일으키며 금면사의 앞에 섰다.

“그 입을 부수기 전에 라온 지그하르트를 이곳에 데리고 와라.”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네놈이 아니다.”

금면사는 5사도에게 이를 간 뒤 다시 백혈교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덴의 일원을 데리고 가려고 하면서 싸울 생각이 아니라니, 대체 무슨 속셈이오.”

“그건 너희에게 달렸단다. 내 길을 막는다면 치울 수밖에 없겠지.”

백혈교주가 고개를 가늘게 틀었다. 한없이 여유로운 음성. 이곳이 에덴의 지부가 아니라, 백혈교 본단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크으, 오마 맹약을 어기겠다는 거요?”

금면사가 비틀거리며 입을 뗐다. 백혈교주는 자그마한 기세나 기운도 끌어올리지 않았음에도 막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스터 상급인 금면사가 제대로 말을 못 할 정도였다.

“그 아이를 건넨다면 맹약이 깨질 이유도 없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입 닫아라.”

물러서 있던 10사도가 앞으로 나왔다. 침착함 속에 사나움이 드러난 눈동자로 금면사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함부로 말을 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

10사도가 금면사에게 강대한 기파를 쏘아낼 때 절혼검이 그 앞을 막아섰다.

쿠구구구구!

10사도와 절혼검. 금면사와 5사도가 서로 대립하며 대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 참을성이 없단다.”

백혈교주가 가는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서로 경합하는 강대한 기파가 찰나의 순간에 가라앉고, 금면사가 무릎을 꿇었다.

“크헉!”

“…….”

절혼검은 무릎을 꿇지 않았지만, 몸이 휘청일 정도의 충격을 받은 듯 2배로 커진 눈동자로 백혈교주를 바라보았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

백혈교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마가 나아간다. 누구도 막지 못하는 걸음이 이어질 때 절혼검이 억지로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

절혼검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은 채 기파를 끌어 올렸다. 시꺼먼 죽음의 투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호오.”

백혈교주는 재밌다는 듯 감탄을 흘렸다.

“재밌구나. 균형을 벗어난 주제에 내 앞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냐.”

“교주님께서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10사도가 절혼검의 앞에 서며 차디찬 눈빛을 쏘아냈다.

“이놈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10사도와 절혼검은 조금 전과 달리 정말 서로를 죽일 듯한 기파를 뿜어내며 창과 검을 움켜쥐었다.

‘이건 못 도망쳐.’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에덴과 백혈교의 힘이 호각이라면 이 상황을 이용하여 도망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힘의 축이 백혈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앞에 있었구나.”

백혈교주가 허공에 돌리던 손가락으로 에덴의 귀신들을 가리켰다. 귀신들이 잠에 빠진 듯 차례로 쓰러지며 라온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녀가 아릿한 웃음을 흘리며 라온을 가리켰다.

“보고 싶었단다.”

뜨거운 열기가 차올라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들어온 듯 편안하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에게 다가가 안기고 싶을 정도였다.

‘크으으….’

라온이 움직이려던 발을 억지로 멈췄다.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머릿속을 파고든 백혈교주의 음성을 지워버렸다.

“당신은 누구지?”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록타를 연기하며 목소리를 가늘게 떨었다.

“흐음….”

백혈교주는 손으로 턱을 괸 채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발 속에서 뜨거울 정도의 시선이 느껴졌다.

“애매하구나.”

“무엇이 애매하다는 거요.”

“투구 귀신들의 향이 조금 연해. 설마 이겨낸 것이냐.”

그녀의 시선은 붉은 발을 거치고 나옴에도 창칼처럼 날카롭게 갈려 심혼을 꿰뚫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소.”

라온은 당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볼 안쪽을 피나도록 씹었다.

‘미친….’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에덴의 귀신들도 속일 정도로 완벽한 오러 운용과 연기를 했건만 저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매하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음성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먹혔든 먹히지 않았든 상관은 없지.”

백혈교주가 부드럽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네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노라.”

“윽….”

발 속에 비치는 손가락의 그림자를 보다 보니 순간 머리가 멍해졌지만, 불의 고리를 공명시켜 정신을 말끔하게 일깨웠다.

“그 정도 정신력은 흔치 않지. 더욱더 마음에 드는구나.”

백혈교주는 본인의 술법이 듣지 않은 게 즐거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가족이 있는 한 난 떠나지 않소.”

라온은 록타라면 했었을 말을 하며 새로 얻은 검의 검병을 쥐었다.

“그럼 그 가족을 죽이면 되겠구나.”

“그게 무슨 개소리!”

“선택하거라. 네 가족이 죽은 이후에 따라올지. 지금 따라올지.”

백혈교주의 목소리엔 고저도 감정도 없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지만이 있었다.

‘저년도 제정신이 아니야.’

백혈교나, 에덴이나 미친놈들만 모여 있는 건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라스.’

라온이 눈동자를 슬쩍 내려서 얼음꽃 팔찌에 있는 라스를 보았다.

‘내 몸에 들어오면 저자와 싸울 수 있어?’

원래라면 당연히 이긴다고 하겠지만, 지금 라스는 쓸데없는 일에 많은 힘을 소모한 상태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에 라스의 대답을 들어놔야 했다.

-쓸데없는 것을 묻는구나.

라스는 왜 그딴 것을 물어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다, 당연히 부숴버릴 수 있느니라.

‘그럼 준비해 둬.’

목소리가 조금 떨리긴 했지만, 지금 믿을 건 라스에게 몸을 넘기는 방법뿐이다. 이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적. 라스가 폭주해서 죽여도 상관없었다.

“적당히 하시오.”

라온이 차분히 호흡을 고를 때 금면사가 앞으로 나왔다.

“이곳은 에덴의 영역. 아무리 당신이 백혈교의 수장이라고 해도 해선 안 될 일이 있소.”

“네 머릿수만큼이나 대범하구나. 마음에 들어.”

백혈교주의 말에 금면사가 눈을 부릅떴다.

“다만 네 말은 틀렸단다.”

“무슨….”

“내가 있는 곳이 곧 백혈교이니라.”

그녀가 손을 뻗었다. 그 하나의 동작으로 그녀의 곁에 있던 백혈교도들의 시선에 붉은 기류가 돋아났다.

“라온 지그하르트를 데리고 오라. 방해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백혈교도들이 살기를 일으키며 다가옴에도 에덴의 귀신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백혈교주가 일으킨 신비로우면서 순수한 기운이 그들의 에워쌌기 때문이다.

쿠구구구!

가장 먼저 부딪치는 건 10사도와 절혼검이다. 두 사람의 검과 창 위로 치솟은 강대한 기운이 서로를 향해 살기를 드높였다.

화아아아아!

두 그랜드 마스터의 검과 창이 격돌하려는 순간 하늘이 열렸다.

서산 아래로 가라앉던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온 세상에 찬란한 빛이 번졌다.

장대한 빛무리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눈이 부실 정도로 잘생긴 미청년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사람의 얼굴인 양 입매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입고 있는 회색 의복에는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뿔이 새겨졌고, 머리 위에는 태양과 달의 문양이 반씩 섞인 후광이 떠올라 있었다.

성스러우면서도, 불온하다.

하늘이 그를 위해 찬가를 울리고, 대지가 그를 그리며 악의를 드높인다.

아아아아아!

라온은 천사와 악마의 울부짖음 같은 괴이한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타천….’

신성과 마성을 한 몸에 두른 괴물. 외부에서 타천이라 불리는 에덴의 두 기둥 중 한 명이었다.

고오오오오!

백혈교주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장대한 기파와 함께 타천이 천천히 내려온다.

라온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건 호재야.’

타천이 나타나게 되면서 에덴과 백혈교 사이의 균형이 맞게 되었다. 잘하면 라스를 꺼내지 않고도 도망칠 가능성도 있었다.

-저놈….

도망칠 계획을 짤 때 라스가 타천을 보며 눈매가 일그러질 정도로 이마를 찌푸렸다.

-섞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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