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96화 (296/653)

제296화

해가 들어오지 않는 지하 연무장.

고운 모래 위로 절규하는 듯한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함성의 주인공은 광풍단이다. 라온과 도리안을 제외한 광풍단 검사들은 한 곳에 모여 검진 수련을 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고, 전부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광풍단이 일으키는 기세는 이전과 격이 달랐다.

단순히 강해진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기질이 바뀐 듯 날카롭고 사나운 검기를 끝없이 뿜어냈다.

“20분간 휴식.”

버렌은 광풍진의 수련을 끝낸 뒤 검사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20분간 휴식!”

광풍단 검사들은 휴식 지시를 들었음에도 앉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둔 채 개인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임에도 연무장에서는 검을 휘두르고 보법을 밟는 소리만 들려왔다. 검사들의 표정 역시 훈련이 아니라, 적을 눈앞에 둔 것처럼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버렌은 삭풍검을 연달아 다섯 번을 펼쳐낸 뒤 허리를 쭉 폈다.

‘젠장….’

잠시만. 아주 잠시만 검에 집중하지 않아도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른다.

라온이 에덴의 가면을 쓰게 되지는 않았을지, 도리안이 혈귀가 되어 피를 마시고 있지는 않을지. 혹은 일이 잘못되어 둘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생각들이 머리에 스며들어왔다.

‘둘 다 살아만 있어라.’

라온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혜를 입었다. 목숨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제받았기에 자신이 죽더라도 그가 살았으면 좋겠다.

‘제발.’

버렌이 입술을 깨문 채 두 사람의 무사를 기도할 때 마르타가 다가왔다.

“시간 됐어.”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타를 보았다. 창백한 안색. 실제로는 훈련할 때가 아니라, 상처를 치료해야 할 때였기에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다만 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듣지도 않을 테고, 원수에게 동료를 납치당한 그녀의 심정이 어떨지 자신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내 생각 말고 저거나 어떻게 해봐.”

마르타는 버렌의 생각을 읽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에선 루난이 섬뜩한 기운을 흘리며 냉기가 차오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저 미친 녀석. 지금까지 계속 안 자고 검만 휘두르고 있어. 저러다 정말 뒈질 거야.”

“음….”

버렌이 루난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루난은 마르타에 못지않은 중상을 입어 놓고서도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격한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보며 멍하게 있기를 좋아하던 소녀는 사라지고, 살기로 가득 찬 여검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난 못 말려.”

버렌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 고개를 저었다. 루난과 마르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라온과 도리안을 떠올리며 정신 나간 듯 검만 휘둘렀다.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말리는 건 무리였다.

“집합! 지금부터 다시 광풍진 수련을….”

끼이익.

모두를 모아서 진법 수련을 재개하려고 할 때였다. 연무장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리메르가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달리 침착했고, 오싹할 정도로 건조했다.

“라온의 위치가 파악됐다.”

리메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광풍단 검사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지쳐있던 그들의 눈동자가 희망의 빛으로 번쩍였다.

“저, 정말입니까?”

“어디죠?”

“라온은 살아 있는 거예요?”

“도, 도리안은 어떻게….”

광풍단 검사들은 리메르에게 달려가 그간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위치는 카멜룬 인근 지역이고, 정확한 정보까지는 아직 나도 모른다.”

리메르가 고개를 저었다.

“암시장이 대규모 차원 이동을 준비 중이다. 차원 관문을 통해서 카멜룬으로 넘어가겠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빠질 사람은 지금 말해라.”

“…….”

그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함께 가겠다는 뜻이었다.

“각오와 달리 눈빛에는 긴장이 가득하네.”

리메르가 평소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전투에 도움이 될지. 라온은 괜찮을지. 적의 숫자는 얼마나 되고 얼마나 강할지. 여러 생각이 들 거다. 하지만 오늘 가지 않는다면 너희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그 말에 확신을 얻은 검사들이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말아쥐었다.

“다른 불안은 풀어주지 못하겠지만 딱 하나는 확신시켜 줄 수 있다. 적이 누구든, 숫자가 얼마나 되든 상관없다.”

리메르가 열기를 띤 광풍단의 눈빛을 마주하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대륙제일인이 다시 검을 들었으니까.”

*     *      *

라온은 손에 든 붉은 악어의 가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크로커다일 종류 같은데.’

크고 날카로운 이빨과 톱날처럼 오돌토돌한 피부를 볼 때 악어 외형의 대형 몬스터 크로커다일인 것 같았다.

‘어떤 놈이려나.’

크로커다일은 대륙 곳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인데, 가면이 붉은색인 걸 보면 사막이나 더운 지역의 크로커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왕이겠지.’

에덴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 족장이나, 왕이 남긴 마석을 이용하여 이런 투구를 만든다. 이 투구 안에 있는 혼은 분명 크로커다일 킹일 것이다.

-그거 쓰다가 다른 놈이 여기 들어오면 다 들키는 거 아니냐?

라스가 보고의 문을 가리키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

라스의 말대로 이곳에 갑옷과 무기를 찾으러 왔다고 해놓고, 이 투구를 써버리면 누구라도 의심할 거다.

‘그래서 쓸 생각 없어.’

-뭐? 네놈은 분명 쓰겠다고….

‘쓰지도 않고, 정신세계에 접촉할 방법이 있거든.’

라온이 투구 속에 손을 넣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네놈은 인간이다. 혼을 네 마음대로 조종하는 건 불가능 하느니라!

‘맞아.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스를 보았다.

‘하지만 네 분노가 있잖아.’

라스의 분노는 현재 자신의 혼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다. 그 분노를 일으킨다면 투구를 쓰지도 않고, 이 안에 있는 몬스터의 혼과 부딪칠 수 있었다.

‘역시 넌 최고의 호… 아니, 도우미라니까.’

라스는 언젠가 이 몸을 차지하기 위해서 분노를 넘겼겠지만, 그 분노는 여러 가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손해를 입히려고 넘겨준 힘으로도 이득을 주다니, 이야기에 나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어억!

라스가 그걸 생각 못 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마, 말도 안 돼! 네놈에게 마이너스가 되어야 할 분노가 왜 도움이 되는 것이냐! 왜 그걸 네 것처럼 이용하는 건데!

녀석은 분통이 터진다는 듯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물론 힘이 하나도 없어서 솜방망이만도 못 했다.

‘꾸준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라온이 씩 웃으며 라스를 밀어냈다.

-제기랄!

우울함으로 퍼렇게 변한 솜사탕을 보며 영혼에 달라붙은 분노를 끌어 올렸다. 투구에 넣은 오른손에서 스파크가 튀기고,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음….”

다시 눈을 뜨자, 세상이 변해 있었다.

고요했던 보고는 사라지고, 용암이 터져 나오는 화산이 눈에 들어왔다. 열기가 스며든 건조한 공기가 폐를 휘저었다.

‘제대로 걸렸네.’

라온이 끓어오르는 용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암지대다. 그 가면의 주인은 라바 크로커다일 킹인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산지대를 살피고 있을 때 화산의 중심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용암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

하늘에 닿을 정도로 솟구친 용암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진다. 라바 크로커다일 킹.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기의 크로커다일이 시뻘건 안광을 번쩍였다.

가진 기운은 한참 밀리지만, 크기만 따진다면 록타의 본체와도 비슷할 정도였다.

[네놈이 나의 육체가 될 인간인가.]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턱을 위로 치켜들며 라온을 굽어보았다.

“아니.”

라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널 삶아 먹기 위해 온 인간인데?”

[겁을 상실한 놈이로군.]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코웃음을 쳤다.

[나를 사냥하겠다고 오는 인간들의 표정이 매번 그러했지. 물론 한 마리도 빠짐없이 내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놈은 거만하게 주둥이를 흔들었다.

[인간 따위는 먹이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자신감 넘치게 발을 굴렀다.

‘그럴 만도 하지.’

용암지대는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르고, 체력이 빠지는 최악의 지형이다.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라고 해도 용암지대를 제집처럼 노니는 라바 크로커다일 킹을 잡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긴 다르지만.’

이곳은 진짜 용암지대가 아니라, 정신세계일 뿐이다. 이 용암 따위는 정신력으로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네놈을 보니 인간의 부드러운 살결이 그립구나. 네 혼을 먹어 치우고 나가는 대로 포식해야겠어. 귀찮게 굴지 말고 빠르게….]

“그래. 빠르게 끝을 내자고.”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천검을 뽑았다.

“더 귀찮은 놈이 오기 전에.”

[건방진 놈!]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주둥이를 쫙 벌렸다. 목구멍에서 시뻘건 용암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라온이 제천검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린 뒤 위로 쳐냈다. 은빛 칼날 위에 피어난 푸른 서리가 장대한 벽이 되어 용암과 맞부딪쳤다.

치이이익!

거대한 빙벽은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뿜어낸 용암에도 녹아내리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열기와 냉기가 아닌, 정신력의 차이였다.

[뭐, 뭐냐! 어째서 얼음 따위가!]

라바 크로거다일 킹이 경악한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런 얼음 조각은 용암 앞에서 찰나도 견딜 수 없어야 하거늘!]

“단순한 얼음이 아니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제천검의 검신 위로 시퍼런 서리가 치솟았다.

“넌 아무래도 이곳에 대해 잘 모르나 보네.”

투구가 만들어진 후 제대로 설명을 듣지 않았기 때문인지 녀석은 정신력의 싸움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라온이 부드럽게 땅을 박찼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멍청한 놈!]

허공에 떠오르자마자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발을 굴렀다. 갈라진 대지에서 터져 나온 용암이 전신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이따위 공격이 무덤?”

라온이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혼의 격을 끌어 올리며 설풍검결의 은풍회류를 펼쳤다.

후우우우웅!

검날에서 퍼져나온 서리의 폭풍이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뿜어낸 다섯 줄기의 용암을 모조리 얼려버렸다.

[이, 이게 무슨!]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뒷걸음질 쳤다. 불의 고리가 일으킨 혼의 공명에 압도되었는지 턱을 덜덜 떨었다.

“어딜 가려고.”

라온이 얼어붙은 용암을 걷어차고, 설풍검결을 연달아 펼쳤다. 예리함이 깃든 서리의 바람이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외피를 가르고 놈의 살점을 뜯어냈다.

[끄어어어어어어!]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록타 같은 놈이 아니라, 다행이야.’

저 악어 놈이 록타처럼 기사 같았다면 죽이는데 꺼림칙했겠지만, 놈은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는 짐승일 뿐이었다. 죽이는 데 아무런 가책이 없었다.

[이놈….]

라바 크로커다일이 본인의 몸을 용암으로 휘감았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주마!]

놈이 용암 덩어리가 된 모습으로 돌진해왔다. 공방일체의 전법이었다.

“아쉽게도 그건 무리야.”

라온이 진각을 밟았다. 바닥에 가득 차오른 용암을 짓뭉개며 좌측으로 젖혀둔 제천검을 내뻗었다.

촤아아아앙!

아릿할 정도로 날카로운 은빛 선이 두꺼운 용암을 가르고, 그 뒤를 질주하는 서리의 칼날이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끄어어억….]

라바 크로커다일 킹이 땅에 처박히며 신음을 흘렸다.

[어, 어째서 화산의 패자였던 내가….]

놈은 본인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쓰러졌다. 시뻘건 눈동자의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놈이 약한 건가.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건가?

록타의 혼을 흡수하게 되며 정신력이 생각 이상으로 성장한 것 같았다. 라스 같은 놈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구!

용암지대가 무너지고,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시체가 사라진다. 이 세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찌이이이잉!

라온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허공에서 푸른 차원이 열렸다.

“본왕이 찾아왔느니… 왜 벌써 끝난 것이냐!

차원을 막 넘어오려던 솜사탕은 무너지는 용암지대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야이 자식아! 너무 빠르잖….”

라스의 말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시야가 뚝 끊어졌다.

저건 또 뭐하러 온 거야.

*     *      *

라온이 눈을 떴다. 손을 넣어둔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투구가 보였다.

‘색이 조금 바래졌군.’

안에 있는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혼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투구의 붉은 빛이 조금 연해진 것 같았다.

‘라스.’

라온이 라스가 있는 얼음꽃 팔찌를 툭 쳤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어?’

-크으, 본왕도 모르느니라.

라스는 살짝 토라진 듯한 음성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왜 몰라?’

-네 정신세계를 뚫느라 지, 집중해서….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다.

‘그러게 기운도 다 쓴 놈이 거길 왜 왔어.’

-구, 궁금하니까….

‘진짜 할 일도 없나.’

라온은 라스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투구를 원래 있던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왕도 바쁘다! 식단 계획도 짜야 하고, 음식의 성분도….

‘잠깐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보고 떠드는 라스의 입을 막았다.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혼을 흡수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6포인트 상승합니다.]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합니다.]

[<만화공>의 성취가 상승합니다.]

[특성 <화속성 친화력>이 생성되었습니다.]

라바 크로커다일 킹의 혼을 흡수하면서 얻은 보상이었다. 록타보다 작은 혼이었기 때문인지 흡수도 전보다 빨랐다.

‘이것도 좋은데?’

모든 능력치 상승에 불의 고리와 만화공의 성취도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인간형 몬스터가 아니라서 무학 자체가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특성이 생겨났다.

‘화속성 친화력.’

수속성 친화력이 냉기를 강화하듯 화속성 친화력은 열기를 강화해주는 특성이었기에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이,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라스는 메시지를 보며 눈매를 파르르 떨었다.

-무슨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리냐고! 세상이 왜 네놈만 도와주는 건데!

녀석은 본인이 시스템을 사용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이를 바득 갈았다.

-본왕은 매번 밥도 못 먹게 하면서 왜 네놈만 다 가지는 거냐고!

‘착하게 살아서?’

-월월! 지이이아랄 맞은 개소리이니라!

라스가 강아지처럼 짖으며 눈을 부라렸다.

-네놈은 본왕이 본 인성과 마성 중에서도 최악이니라! 마계에도 너 같은 건 없단 말이다!

‘마계가 그렇단 말이지?’

매번 마계 이야기를 듣다 보니 꽤 친숙해졌다. 그 정도라면 언젠가 마계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흠….”

라온이 보고의 출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는 않은 것 같긴 한데.’

감각으로 따지면 1시간도 지나지 않은 느낌이긴 하지만 정신세계와는 시간의 축이 달라서 그 느낌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물러나자.’

다른 투구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더 끌면 의심할 수도 있어.’

일단 검만 챙긴 뒤 나중에 다시 와서 다른 투구의 혼을 먹어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라온은 검이 일렬로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록타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장검을 챙겼다.

쿠구구구!

검을 허리에 차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이 방이 아니, 대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단순히 진동만 일어난 게 아니라, 보고 밖도 굉장히 분주해진 게 느껴졌다.

라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 때 보고의 바닥이 열리고, 외부에 있던 고블린 가면을 쓴 무인이 올라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고를 봉인해야 하니 나와주십시오.”

“문제?”

“태음결계에 침입자가 나왔습니다.”

“침입자라니? 누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침입자라는 말에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라온이 보고 밖으로 나가면서 기감을 최대로 펼쳤다. 기대감이 어렸던 그의 눈동자는 대전을 나가기도 전에 어둑하게 물들었다.

“허….”

대전 밖에서 전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이건 뭐야.’

지그하르트에서 셰릴이나, 대주급 검사들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다.

지금 퍼져나오는 신비로운 존재감은 글렌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전의 출구로 향했다.

대체 무슨 괴물이 찾아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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