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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92화 (292/653)

제292화

찌지지지직!

책이 통째로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름모꼴로 갈라진 푸른 차원이 하늘 끝까지 열렸다. 바다처럼 파도가 치는 차원 속에서 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

분노의 군주라는 이명답게 평소와 다른 절대적인 기운을 두른 라스가 차가운 눈동자가 이 세계를 굽어보았다.

“음….”

라온은 천천히 차원을 넘어오는 라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 왜 그대로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왜 저렇게 커?

라스의 모습은 평소처럼 파란 솜사탕이었지만, 좀 커졌다. 아니, 좀 많이 커졌다. 얼음꽃 팔찌에서 나올 때보다 100배가량 부푼 모습이었다.

“우억!”

녀석은 차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추한 비명을 지른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커진 크기만큼이나 무거워졌는지 라스의 추락에 이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끄으윽….”

라스는 눈을 찌푸린 채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 굼벵이 같은 놈! 아직도 안 끝내다니, 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

만난 이후 처음으로 라스의 말이 제대로 들렸다. 머릿속이 아니라,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도마뱀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오랜만에 통째로 뜯어먹고 싶구나.”

그거 진짜로 먹었다는 뜻이었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드래곤을 상대로 이겼다는 줄 알았는데, 정말 먹어 치운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얘가 왜 폭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빤히 보지만 말고 입을 열어라. 도마뱀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오랜만에 몸보신 좀 해야겠느니라.”

“네 아래.”

라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바닥을 가리켰다.

“뭐라?”

“네 밑에 깔렸다고.”

푸른 솜사탕이 나오자마자 떨어질 줄은 몰랐는지 록타는 라스의 배 아래에 깔려 찌부가 되었다.

은은하게 기운이 피어나는 걸 보면 일단 살아는 있는 것 같았다. 솜사탕의 배에 깔려 죽다니, 굉장히 불쌍한 최후가 될 뻔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음?”

라스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입맛을 쩝 다셨다.

“드래곤 와플?”

아무리 생각해도 라스는 미친놈이다.

“하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라스를 올려보았다.

“넌 왜 그 모습이냐?”

“무슨 말이지?”

“여기는 혼과 혼이 제 모습을 찾는 장소인데 왜 계속 솜사탕이냐고.”

“솜사탕? 솜사탕이 무엇이냐.”

라스는 대답은 안 하고 솜사탕이 뭔지부터 물었다.

“굵은 설탕을 데워서 솜처럼 가늘게 만드는 설탕을 뭉쳐놓은 사탕이야. 지금 네 모습이랑 똑같지.”

“그거 맛있느냐?”

“…….”

저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기에 당황은 덜했다.

“그냥 설탕 맛이지.”

“나중에 꼭 먹어 보고 싶구나.”

라스가 다시 한번 입맛을 다셨다.

“됐고, 그 잘나고 아름답다는 외모는 어디 가고 솜사탕으로 있는 거냐고.”

이곳은 암살자로 살아온 전생의 모습까지 드러나게 해 준 곳이다. 왜 라스만 계속 저 모습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냐.”

라스가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 세계는 네놈과 도마뱀이 가진 정신의 벽이 부딪쳐서 열린 곳이다. 본왕의 본래 모습이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라.”

“네 분노가 내 영혼에 깃들어 있잖아.”

“그 분노 덕분에 본왕의 풍채가 이리 좋아졌지 않느냐.”

녀석은 거대해진 몸이 마음에 드는지 오동통한 팔을 보며 웃었다.

“허….”

라온이 라스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솜사탕 녀석의 머릿속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란 녀석은….”

라스에게 다시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대지에 진동이 울리며 라스가 하늘 위로 훌쩍 튕겨 올랐다.

“크아아아아아!”

그 아래에 깔려 있던 록타가 괴성을 지르며 막대한 냉기와 절망의 기운을 일으켰다.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록타는 허공으로 날아간 라스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 살덩이를 모조리 찢어주마!”

그는 라스의 배에 깔린 게 충격이었는지 광기 어린 눈빛을 뿜어냈다.

“제대로 된 도마뱀도 아니군. 반쪽짜리 주제에 건방진 놈이로다.”

라스가 허공에 둥실 뜬 채로 록타를 노려보았다.

“무얼 하는 것이냐. 본왕의 하인인 네놈이 빠딱빠딱 처리해야 할 것 아니냐.”

“오랜만에 내기 하나 할까?”

라온이 록타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내기? 무슨 내기를 말함이냐.”

“저놈을 누가 먼저 제압하는지 내기하자고.”

“건방진 놈! 네놈이 본왕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평생 꺾어왔는데?”

“끄윽….”

라스는 가슴을 찌르는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좋다! 그 내기 받아 주겠노라!”

“물어볼 게 있으니까 죽이면 안 돼. 먼저 저놈을 굴복시키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알고 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으로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노>가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 : 드래고니안을 먼저 굴복시키기.

성공 시: 모든 능력치 +10, 두 가지 특성의 등급 상승.

실패 시: <분노>의 감정 25포인트 생성.

라온은 메시지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인다.”

받는다고 하자마자 메시지가 사라졌다.

“내기? 감히 날 무시하는 것이냐!”

록타가 라온과 라스를 노려보며 부러질 정도로 이를 갈았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가 뽑아 든 검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장대한 빛이 치솟았다.

“넌 빠져 있거라!”

“넌 빠져.”

다만 라온과 라스는 당사자인 록타에서 손을 휘휘 젓고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보여도 네놈보다 훨씬 강한 놈이다. 정말 할 수 있겠느냐?”

라스가 비웃음을 흘렸다. 큼지막한 솜사탕이라 그런지 별로 짜증 나지 않았다.

“네가 알려줬잖아.”

“본왕이? 무엇을?”

“이런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력과 상상력이라는 걸.”

이 세계는 라스와 힘을 겨루던 육체를 형상화한 장소. 정신력과 영혼을 굳건하게 만든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나야말로 이곳에선 누구에게도 안 지지.”

라온이 열기 뜬 미소를 지으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들어 올렸다.

“흥. 네게 기회 따윈 없을 것이다!”

라스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 한 번의 휘두름에 록타가 밟고 있는 대지가 통째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냉기에 극한의 저항력을 가진 드래고니안을 얼려버리는 서리의 기운.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이, 이 냉기는!”

록타는 라스의 냉기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로엔그린의 냉기를 알아본 건지 겁에 질린 듯 온몸을 떨었다.

화아아아아!

라스가 일으킨 글래시아의 냉기가 록타를 통째로 얼리려고 할 때 강대한 불길이 일어나 서리를 지워버렸다.

“크윽!”

“안 되지.”

라온이 제천검을 앞으로 뻗은 채 미소를 지었다.

“방해하다니!”

“방해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래 봐야 소용없다!”

라스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쩍이자,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얼음 칼날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콰아아아아아!

칼날은 단숨에 떨어져 라온과 록타를 동시에 노렸다.

라온이 제천검을 앞으로 뻗어냈다. 칼날을 따라 피어난 수천 송이의 붉은 꽃봉오리가 개화한다.

허공을 가득 채운 화염의 꽃무리가 라스가 일으킨 얼음 칼날을 모조리 녹여버렸다.

‘역시 되는군.’

실제로 라스와 싸운다면 일격에 끝나겠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라스를 막을 수 있었다.

‘달라진 건 없으니까.’

이곳의 전투는 라스와 영혼을 부딪쳐서 싸울 때와 같다. 불의 고리를 일으켜서 영혼의 격을 끌어 올린다면 저 마왕을 밟아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라온이 인상을 찌푸린 라스를 보며 가늘게 입매를 말아 올렸다.

‘드래고니안에 마왕까지.’

몸보신 제대로 하겠는데.

*     *      *

백혈교주의 알현실.

백색과 적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거대한 방에서 여인이 신음을 흘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아아.

그 소리가 울리는 곳은 허공이다. 반지와 대륙추종향이 든 유리병이 새하얀 기운에 휘감긴 채 공중에 떠 있었다.

“…….”

도리안은 우측 기둥 옆에 선 채로 유리병과 반지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투웅!

끝없이 돌아가던 반지와 유리병이 우뚝 멈춰 서고, 그 둘을 덮고 있던 백색 기운이 허공에 기괴한 문양을 그렸다.

“흐음.”

단상 위의 붉은 발이 흔들리며 백혈교주가 더운 숨을 흘렸다.

“꽤 오래 걸렸군.”

그녀의 농염한 시선이 반지와 유리병을 지나 하얗게 떠오른 문양을 훑어내렸다.

“그래.”

백혈교주는 긴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에 턱을 괸 채로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곳에 끌려간 모양이구나.”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반지와 유리병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도리안의 손에 잡혔다.

저벅.

알현실 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울리고, 10사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끝나셨습니까?”

“대략적인 위치는 찾았단다.”

백혈교주가 10사도를 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야백추술로도 정확한 위치가 잡히지 않은 겁니까?”

“꽤 두꺼운 결계를 친 모양이야.”

그녀가 손가락을 빙글 돌리자, 허공에 대륙 전도가 떠올랐다. 전도의 한 부분이 하얗게 번쩍였는데, 상업도시 카멜룬이 있는 지점이었다.

“카멜룬?”

10사도가 카멜룬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설마 에덴이 카멜룬에 있다는 겁니까?”

“카멜룬 근처겠지.”

백혈교주는 목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카멜룬은 육황 중 셋이 연관된 도시인데….”

“그래서 더 편하게 숨을 수 있었겠지.”

“아!”

10사도도 그 이유를 깨달은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겠군요.”

“맞아. 육황이라는 이름에 묶여 있지만, 놈들은 매 순간 서로를 견제하고 있으니까.”

백혈교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 배포는 쉽게 나오는 게 아니야. 머리도 좋고 배짱도 좋아. ‘그’의 솜씨겠어.”

그녀가 권태로운 몸짓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직접 가시는 겁니까?”

“너희들로는 부족할 것 같거든.”

백혈교주가 무시를 했음에도 10사도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교주는 신. 신이 말했다면 그만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준비하겠습니다.”

10사도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더 다듬어져 있다면 좋겠는데….”

백혈교주는 반지와 유리병을 든 채 서 있는 도리안을 보며 농염한 미소를 흘렸다.

“너도 함께 가자꾸나.”

*     *      *

록타가 턱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콰아아아아!

어린 인간 하나와 구름 같은 괴물 하나가 불과 얼음을 뿌리며 무시무시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화, 확실해. 그놈의 냉기야!’

저 구름 같은 괴물이 뿌리는 기운은 자신의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던 로엔그린의 냉기가 분명했다.

‘다만….’

로엔그린이 사용했을 때보다 더 지독한 위력의 냉기는 어린 인간의 불꽃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렸다.

‘저 어린놈이 더 괴물이었다니.”

록타는 라온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녀석이 어떻게 저런 위대한 정신력과 격 높은 영혼을 가졌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건 기회야. 둘을 한 번에 죽일 기회.

인간과 괴물이 싸우고 있을 때 기습을 한다면 로엔그린에 대한 복수와 몸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다.

다시 깨어난 이후 로엔그린에게 복수하고 공주님을 지키기 위해서 정신력을 끝없이 갈고닦았다. 지금이 바로 그 결과를 보여 줄 때였다.

‘날 무시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아니,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너희는 이대로 사라질 테니까!

록타가 진정한 혼을 개방했다. 그의 몸이 시퍼렇게 번쩍이며 푸른 용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쿠구구구구!

인간 따위는 벌레보다 작아 보이는 높이에서 영혼의 격과 절망의 감정을 끌어올렸다.

냉기의 숨결. 아버지께 받은 최강의 공격에 지금까지 쌓아 올린 정신력을 모조리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록타의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뿜어진 극한의 냉기가 라온과 라스에게 쏟아져 내렸다.

서로를 향해 불과 서리를 쏘아내던 둘은 움직임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귀찮게 하는군.”

“버러지가 감히!”

싸움을 방해받은 라온과 라스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올랐다.

“제3자는 짜져 있으라고 했지!”

둘의 주먹에서 각기 다른 빛의 기운이 뻗어나가 록타가 뿜어낸 냉기의 숨결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뻐어어어억!

막대한 열기와 냉기가 사선으로 꼬이며 록타의 가슴을 거칠게 후려쳤다.

쿠구구궁!

록타는 그 거대한 육체가 무색하게도 종잇장처럼 날아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끄으으!”

그는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라온과 라스를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이 미친놈들….”

내 싸움인데….

*     *      *

라온은 혀를 쭉 내민 채 기절한 록타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저거 쓰러진 거 봤지? 내기는 내 승리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왕의 냉기가 먼저 저놈의 정신을 깨부쉈느니라!”

“내 불꽃이 먼저였어.”

“헛소리! 본왕의 냉기가 한 뼘 더 빨랐느니라! 네놈의 불꽃은 한참 뒤에 붙었다!”

“나야.”

“아니라고!”

라스가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솜사탕의 모습으로 저러고 있으니 웃음만 나왔다.

“크으, 차라리 잘 되었다. 이대로 네놈까지 꺾어버리고, 네 영혼에 분노를 심겠노라.”

“괜찮겠어?”

라온이 고개를 삐딱하게 튼 채로 피식 웃었다.

“여긴 나한테 유리한 공간인데?”

“흥! 상관없느니라!”

라스가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며 코웃음을 쳤다.

“본왕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면 네놈을 꺾는 것쯤이야 간단하니까!”

“진정한 힘이라고?”

라온이 자신감에 찬 라스의 고갯짓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렇다. 이 모습으로는 모든 정신력을 끌어낼 수 없느니라. 지금부터 마계의 모두가 감격한 본왕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마.”

라스가 손을 쫙 펼쳤다. 솜사탕처럼 퍼져 있던 녀석의 냉기가 가운데로 응집되며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왕이라 불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크기가 작아지고, 냉기가 응집될수록 라스의 기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살이 떨려올 정도로 무시무시한 냉기와 분노의 감정이 끝없이 뿜어져 나왔다.

“근데 말이야.”

라온이 피식 웃으며 라스에게 다가갔다.

“내가 네 변신을 기다려 줄 필요는 없잖아?”

그 말과 함께 변신하는 중이라 둥글게 말린 라스의 몸을 온 힘을 다해서 걷어찼다.

뻐어어어억!

고무공이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라스의 몸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끄허허헉!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라스가 눈을 부릅뜬 채로 악을 질렀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치는 게 어디 있느냐!”

“여기.”

라온은 떨어지는 라스를 다시 한번 걷어차서 록타의 얼굴에 날렸다.

“꺼헉!”

“으….”

서로 부딪친 라스와 록타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이거 재밌네.”

라온이 빙글거리며 달려가 주먹으로 라스를 후려쳤다. 뻐억 소리와 함께 라스가 물수제비처럼 바닥을 튕기며 날아가 무너진 성벽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박살난 벽 속에서 라스가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야이! 정신 빠진 놈아!”

라스가 눈을 빠르게 꿈뻑이며 악을 질렀다.

“마족들도 변신 중에는 치지 않느니라! 힘을 끌어 올릴 시간은 준다고!”

“난 마족이 아니니까.”

라온이 보법까지 밟으며 나아가 아직도 변신이 안 끝난 라스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끄허허헉….”

양 주먹으로 얻어맞는 라스는 샌드백처럼 좌우로 휘청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악, 악마 같은. 아니, 악마보다 더한 새끼….”

라스는 냉기와 분노의 기운도 꺼뜨린 채 천천히 정신을 잃어갔다.

퍼버버버벅!

록타는 라스를 신명나게 두드리면서 미소를 짓는 라온을 보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저 인간이 진짜야.’

진짜 미친놈이라고!

멀린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며 수많은 인간을 봐왔지만 저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정신력에 잔혹함까지.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를 일으키는 괴물이었다.

‘공주님….’

왜 하필 저런 괴물을 보내신 겁니까!

록타는 라온에게 반항을 한다는 생각도 못 한 채 오히려 멀린을 원망했다. 자신이 무얼 해도 저 괴물을 이길 것 같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가 마음으로 굴복하고 땅에 손을 짚은 순간 라온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노>와의 내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라온은 그 메시지를 보며 손을 멈췄다.

“오?”

“허억!”

기절 직전까지 갔던 라스는 그 메시지를 보며 피를 토했다.

“이, 이건 사기이니라! 절대 인정 못 해! 변신 중에 때렸다고!”

라스는 라온이 주먹을 멈춘 순간에 온몸을 비틀며 응집시킨 냉기를 단숨에 터트렸다.

콰아아아아!

푸른 냉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으며 장대한 빛을 일으켰다.

“드디어.”

강렬한 분노와 냉기로 가득 찬 목소리에 심혼이 떨렸다.

쿠구구구!

시퍼런 냉기의 폭풍 속에서 길쭉한 인영이 드러난다.

고오오오오!

그 존재가 발하는 시퍼런 안광을 본 순간 등 뒤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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