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90화 (290/653)
  • 제290화

    마녀와 용.

    동화 속 마녀가 사악한 용을 부려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앞에 있는 멀린에게서 시작되었다.

    수백 년 전 멀린은 인간을 배신하고 몬스터 세력에 붙어서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왕국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웠다.

    멀린이 배신의 마녀라 불리던 때 그녀의 곁에는 푸른 비늘의 용이 있었다고 한다. 수백의 기사를 단숨에 얼려버렸다는 악룡에 대한 기록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투구는 그 용의 마석을 이용하여 만든 것 같았다.

    라온이 멀린의 손에 떠 있는 투구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확실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용이야.

    날카로운 푸른 비늘과 하늘색 갈기를 흩날리는 이 투구는 당시에 멀린이 부렸던 용이 분명했다.

    ‘냉기의 영약을 준 이유가 이놈 때문이었군.’

    왜 영약에 냉기만 가득한가 했더니, 이 용에게 미리 주는 선물이었던 것 같다.

    ‘대단하네.’

    아직 투구를 쓰지도 않았는데 영약을 이용하여 먼저 냉기를 끌어 올리려 하다니, 지극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드래곤이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이야기 속에는 멀린이 부린 악룡이라고만 나왔다. 비룡이나, 지룡처럼 약한 용일 수도 있지만, 혹시나 드래곤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드래곤은 대륙 최강이니까.’

    드래곤의 별칭은 최강의 종족이자, 대륙의 중재자다. 만약 이 투구 속에 깃든 영혼이 드래곤이라면 아무리 불의 고리가 있다고 해도 위험하다.

    -흥! 그깟 도마뱀이 뭐 어쨌다고!

    라스가 용의 투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본왕은 그 도마뱀 놈들을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튀겨먹기까지 했느니라.

    ‘네가?’

    -그렇느니라! 본왕은 분노의 군주! 드래곤 따위는 가볍게 밟아 버릴 수 있느니라!

    ‘그래. 그래.’

    -야! 들어!

    라온은 주먹을 마구 뻗는 라스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닐 거야.

    라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리 말한 걸 보면 최소 드래곤 셋은 잡았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겠는데.’

    라온은 콧김을 흥하고 내뿜는 라스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드래곤의 혼으로 만든 투구인가?”

    “글쎄.”

    멀린이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그녀는 직접 쓰면 알 수 있을 거라며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하지.”

    “응?”

    “너 진짜 멀린인가?”

    라온이 노파 가면 속에 있는 멀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묘한 색의 눈동자에 열기로 반짝거렸다.

    “어떨 거 같아?”

    “지금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이 투구를 보니 진짜 같군.”

    멀린은 두 번째 만남에 딱 맞는 투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레전더리 소모품까지 써가며 납치해와서 용의 투구를 씌우려고 집착하는 걸 보면 진짜 멀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점은 있지.’

    가면 밖으로 보이는 그녀의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매끄럽고 새하얗다. 아무리 높게 보아도 엔시아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거기다 로엔그린은 멀린의 숨통을 직접 끊었다고 했어.’

    로엔그린은 본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녀의 성을 무너뜨리고, 멀린의 숨통을 끊었다고 했었다.

    죽은 자가 돌아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앞에 있는 여자가 멀린이라는 건 또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지.’

    라온이 눈을 부릅뜨며 마른침을 삼켰다.

    나도 되살아났잖아.

    암살자 라온에서 라온 지그하르트로 환생을 했듯이 멀린도 무언가에 의해 환생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질문도 투구를 쓰게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멀린은 다 직접 겪어보면 알 수 있다며 가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투구는 언제 쓰는 거지?”

    “내일.”

    그녀가 손을 휘젓자, 허공에 떠 있던 용의 투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일 저녁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시작할 거야.”

    멀린의 눈동자에 깃든 열기가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전까지. 저 영약에 깃든 기운을 네 것으로 만드는 게 좋겠지.”

    멀린이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에 놓아둔 영약을 가리켰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네가 너로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라온의 뺨을 아래로 쓸어내리며 들뜬 숨을 뱉었다.

    “내일 봐.”

    멀린은 이제 미련이 없다는 듯 손을 젓고서 방을 나갔다.

    “이길 가능성이라….”

    라온이 목갑의 뚜껑을 열었다. 냉기를 뿌리는 영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걸 먹으면 이길 가능성이 아예 사라지겠지.’

    어제보다 더 많은 양의 불혼수가 들어갔으니, 영혼을 막아주는 벽을 아예 허물 생각인 게 분명했다.

    -이 악마 놈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다니!

    라스가 멀린이 나간 문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똑똑한 척하지만 멍청한 년이로다.

    ‘그렇긴 하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린은 투구 속 용을 도와주려고 불혼수를 준비했겠지만, 그 기운은 오히려 용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성장시켰다.

    라스의 말대로 적을 도와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흥. 본왕은 절대 적에게 도움이 되는 짓을 안 하지. 현명함이란 본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가 되어 돌아올지를 아는 것이니라.

    ‘…….’

    라온은 갓 만든 솜사탕의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라스를 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아직도 본인이 호구의 군주라는 걸 모른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얘 대체 어떻게 마왕이 된 거지?

    어떤 멍청이가 시켜준 거야.

    *     *      *

    라온이 눈을 떴다. 창문에서 은은한 달빛이 내려오는 걸 보니, 밖은 다시 해가 떠올랐을 것이다.

    ‘어제보다 더한 양이네.’

    가문에 있을 때보다 한층 단단하고 커진 오러를 느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틀만에 이렇게 성장하다니.’

    만화공과 글래시아만이 아니라, 불혼수를 정화한 불의 고리까지 성장했다.

    적에게 납치당했는데 이전보다 더 강해진다니, 모르는 사람에게 말한다면 말도 안 된다며 뺨을 맞을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영약 몇 개 더 없으려나?’

    같은 종류의 영약은 먹을수록 효율이 줄지만, 어차피 불혼수를 다시 먹을 일은 없으니 조금 더 챙기고 싶었다.

    -크으, 적진에서 뽑아먹을 생각만 하는 건 네놈뿐일 것이다!

    ‘그게 바로 대범함이라는 거야.’

    라온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찌뿌둥한 몸을 가볍게 풀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멀린이 들어왔다.

    “잘 끝났어?”

    “그래….”

    어제보다 확연히 풀린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난을 많이 봐왔기에 맹한 눈동자 연기는 자신 있었다.

    “나쁘지 않네.”

    멀린은 그 눈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을 살짝 들어 올린 입매가 덩굴처럼 꼬여서 올라갔다.

    “아쉽게도 오늘은 놀아줄 수 없어. 밤을 준비해야 하거든.”

    그녀는 테이블 위에 가져온 식사를 내려놓은 채 은은한 적색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흘렸다.

    “저녁에 데리러 올게.”

    “그래.”

    라온은 그저 맹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멀린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서 밖으로 나갔다.

    라온은 바로 머리를 털고서 테이블 위에 앉았다. 빠르게 식사를 끝낸 뒤 바로 방을 나섰다.

    대전을 나가기 위해 복도를 걷는데 어제와는 사뭇 다른 시선들이 느껴진다. 에덴의 귀신들이 조금 더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이제 진짜 받아들이는 건가.’

    아무래도 오늘 투구를 쓰는 게 확정되어 정말 에덴의 간부로 여기는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생각대로는 안 될 거야,’

    -계속 느끼지만, 네놈에겐 불안감이 없는 것이냐?

    라스가 어깨에 턱을 괸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불안?’

    -적진에 혼자 있는데, 몸까지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느냐. 아무리 봐도 인간의 배짱이 아니니라.

    ‘전혀.’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널 이겼는데, 겁이 날 리가 있나.

    라스가 드래곤을 꺾었다는 소리를 하자마자, 긴장감이 촛불 꺼지듯 훅 사라졌다.

    분노의 군주와의 정신력 싸움에서 가볍게 승리했는데,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정신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물리적인 힘으로 압박을 해오면 라스를 개방시켜서 이곳을 다 때려 부수고 도망치는 최후의 수단도 있었다.

    보호해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광풍단이 있다면 함부로 라스를 강림시킬 수 없지만,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모조리 적이다. 오히려 아군과 함께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뽑아 먹을 것을 모조리 뽑은 뒤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자신이 있기에 긴장은커녕 즐겁기만 했다.

    -신기한 놈이로다.

    라스는 자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는 걸 모른 채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또 어딜 가는 것이냐?

    ‘보면 알아.’

    라온은 로브와 가면을 쓴 귀신들의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 여유롭게 받으며 대전의 밖으로 나갔다.

    결계의 끝으로 다가가 손을 올렸다.

    우우우웅!

    오러를 운용하여 결계를 드러내자마자, 어제 느꼈던 기운이 등 뒤에서 치솟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지?”

    금면사가 귀찮다는 듯 턱을 삐딱하게 틀었다.

    “…….”

    절혼검은 벽 앞에 나타나서 석상처럼 선 채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스르르릉!

    라온은 제천검을 꺼내 금면사를 겨누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한 판 붙자.”

    그 말에 라스와 금면사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이 미친놈이!”

    -이 미친놈!

    *     *      *

    쩌어어엉!

    금면사는 라온의 검격을 막으며 눈매를 찡그렸다.

    ‘뭐지?’

    어제와는 좀 다른데?

    어제는 가볍게 튕겨냈던 검술을 쉽사리 밀어낼 수 없었다. 라온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교묘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검을 찔러왔다.

    “쯧!”

    금면사가 혀를 차고서 손목을 바로 세웠다. 검에 부드러움을 지우고, 힘과 무게를 더했다.

    ‘짓눌러주지.’

    어제처럼 힘과 오러로 압도하기 위해 검을 양손으로 쥐고 그대로 내리쳤다. 벼락처럼 사선으로 떨어지는 검격, 추절뢰였다.

    찌지지직!

    추절뢰가 라온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듯이 쏟아질 때 놈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발을 반보 뒤로 빼고, 허리를 우측으로 돌리며 열기가 휘몰아치는 검으로 추절뢰의 중심을 후려쳤다.

    쩌어어엉!

    추절뢰가 제힘을 다 발휘하지 못한 채 비틀어지고, 자신의 균형마저 무너졌다.

    후우웅!

    라온은 기다렸다는 듯 빛살처럼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은백색 칼날 위로 폭급한 기운이 치솟았다.

    ‘멍청한 놈!’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는지 라온의 검격에 자그마한 빈틈이 엿보였다.

    “꺼져라!”

    금면사가 코웃음을 치며 라온의 빈틈을 향해 적성유를 내질렀다. 빈틈을 사정없이 깨부수는 살기 짙은 칼날이었다.

    치이이잉!

    적성유가 라온의 빈틈을 치려는 순간. 라온의 눈동자에 붉은 이채가 번쩍였다.

    우우우웅!

    눈빛에 어린 빛이 칼날에 스며들듯 라온의 검격이 단단하게 여물었다.

    두텁게 채운 오러가 적성유의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섬뜩한 반격을 해왔다.

    화아아아아!

    검날에 어린 두 줄기의 불꽃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목과 가슴을 노려왔다.

    “크읍!”

    금면사가 재빠르게 검을 휘돌려 방어의 절기 휘곤첨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두 강검이 맞부딪치며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뭉개진 대지 밖으로 라온이 여덟 걸음, 금면사가 여섯 걸음을 물러섰다.

    어제와 같은 충돌이었지만 라온의 손해가 두 걸음이나 줄어들고, 금면사의 걸음이 하나 늘어났다.

    “허….”

    금면사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어제보다 더 많은 투기로 검술을 펼쳤는데, 라온은 더 쉽고, 가볍게 검격을 받아내고 반격까지 해왔다. 믿을 수가 없어서 입술이 떨렸다.

    ‘하루 만에 이정도로 강해지는 게 가능한 일이었나?’

    멀린이 라온에게 영약을 먹였으니, 오러가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밀린 건 오러 때문이 아니다. 놈의 검술이 어제와는 천지 차이로 달라져 있었다.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도 하루 만에 검술이 이정도로 발전하는 건 불가능한 일. 대체 무슨 마법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위험하겠는데.

    금면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매일 이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못 해도 열 번째 대결에서는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금면사가 검을 아래로 내리고 허리를 쭉 폈다.

    “아쉽군.”

    “무슨 뜻이지?”

    “네놈의 재능이 아쉽다는 말이다. 몇 번 더 싸워보면 재밌었을 텐데.”

    “…….”

    라온도 제천검을 내린 채 고개를 들었다.

    “에덴의 투구를 쓰면 내가 아니게 되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동화라고 해야겠지.”

    “동화?”

    “그래. 네 영혼이 투구 속 존재에게 흡수되는 거다.”

    금면사는 본인의 뱀 투구를 툭툭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동화는 바로 될 수도 있고,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지. 평소의 네가 하지 않을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럼 그 순간부터 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본인이 사라지게 될 텐데도 강해질 생각을 하는 건가? 정말이지 미친놈이다. 왜 그 나이에 그런 무력을 가졌는지 알겠어.”

    그는 재밌다는 듯 킥킥거리며 이마를 잡고 웃었다.

    “맞다. 동화가 시작될 때부터 본능처럼 투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방식이니까.”

    금면사가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흥이 떨어졌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손을 저었다.

    “내일도 찾아오지.”

    라온이 금면사의 등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의미 없는 일이다.”

    금면사는 피식 웃고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

    절혼검은 금면사가 떠났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감정이 사라진 금빛 안광은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너는….”

    “라온!”

    라온이 절혼검에게 다가가려 할 때 허공이 일그러지며 멀린이 튀어나왔다.

    “또 그 멍청이랑 싸운 거야?”

    그녀는 뭉개진 바닥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더러운 뱀 새끼랑 놀지 마. 너까지 지저분해지니까.”

    “할 일이 없어서. 검을 휘두르면 마음이 좀 편해지거든.”

    라온은 살짝 눈동자를 풀며 대답했다. 본래 정신이 멍할 때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취하기에 의심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 지나면 저 뱀 새끼 따위는 가볍게 밟을 수 있을 거야.”

    멀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손으로 손등을 어루만지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제 준비가 다 끝났어. 더 강해진 너로 태어날 때야.”

    라온은 기대감으로 타오르는 멀린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맛을 다셨다.

    ‘준비는 이쪽도 끝났지.’

    네 용을 먹어 치울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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