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화
라온은 대광풍진을 펼쳐서 도괴를 상대하는 광풍단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확실히 잘 보이는군.’
불의 고리가 7성에 올랐기 때문에 검사 개인의 단점과 검진의 어긋남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마르타. 자세를 더 낮추고 검을 중단에 둬. 조장인 네가 앞에서 버텨주어야 조원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제기랄….”
마르타는 욕을 뱉으며 자세를 낮추고 검을 단전 앞으로 두었다. 단숨에 부족함 점을 보완하는 걸 보면 지난 한 달간 그녀의 실력도 일취월장한 게 분명했다.
“루난. 오러 운용 속도가 둔해지고 있어. 오러를 더 세밀하게 다듬어서 총관님의 움직임을 막아.”
“응.”
루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검극에서 은빛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나가 도괴의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버렌. 너는 너무 걱정이 많아. 기회가 보일 때는 더 과감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어. 총관님의 빈틈을 보고도 가만히 있던 건 네 실책이다.”
“함정인 줄 알고….”
“그걸 구별하는 게 실력이지. 눈썰미를 키워.”
“크으, 알고 있어!”
버렌이 기합을 지르고 도괴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단호하게 내리치는 검격에서 차디찬 바람이 풀려나왔다.
“우리도 가자!”
“응.”
그 뒤를 따라 마르타와 루난이 양쪽으로 짓쳐 들어 각자의 검격을 쏟아부었다.
광풍단은 도괴가 강기를 몰아치면 진을 유지한 채 뒤로 물러섰고, 힘이 빠지면 바로 빈틈을 파고들어 검격을 뻗어냈다.
‘다들 만족스럽겠네.’
힘 조절을 하고 있다고 해도 강기를 사용하는 도괴를 상대로 잘 버티고 있었으니, 광풍단도 만족스럽고 뿌듯해할 것 같았다.
-만족?
라스가 헛바람을 흘리며 광풍단을 가리켰다.
-네 눈깔에는 저놈들이 만족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의 손을 따라 다시 광풍단을 살폈다. 눈은 살짝 풀려 있었고, 숨소리는 격했으며,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계를 한참 넘어선 모양새였다.
일주일 동안 거의 쉬지 못한 채 훈련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각자의 한계를 끌어낼 수 있는, 꼭 필요한 훈련이었다.
‘힘들기야 하겠지. 다만 실전에서 저 상태를 겪으면 늦어.’
바로 전 임무에서 만났던 틸러, 부왕, 4사도 모두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부왕에게는 전멸을 당할 뻔했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포함한 광풍단 모두의 무력과 정신력을 키워두어야 했다.
-흠, 뭐, 그건 맞는 말이지.
라스는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 소녀와 소고기 소녀는 살려야 하니까.
‘하나 더 있잖아.’
라온이 겁먹은 채 검진 뒤쪽에 빠져 있는 도리안을 가리켰다.
-끄응….
라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고 있느니라. 저 녀석이 첫 번째였으니….
녀석은 ‘왜 그런 선택을 했지?’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겁쟁이 녀석 때문에 진의 흐름이 밀려나니까. 앞으로 가라고 해라.
라스는 인상을 찌푸린 채 도리안의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겉이야 어쨌든 이 녀석이 부하를 아끼는 건 진심이었다.
“도리안.”
“예에?”
“겁먹지 말고 앞으로 나와. 너만큼 힘 좋은 녀석이 어디 있다고 숨어 있어.”
“아, 알겠습니다.”
도리안이 마른침을 삼키고, 진에서 살짝 벗어난 발을 앞으로 옮겼다.
쿠우우웅!
그것만으로도 광풍진의 효용이 한층 더 강해진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도괴를 압박해나갔다.
하지만 강한 힘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닌 법. 도괴는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검격의 중심을 향해 강기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공격만을 생각하던 광풍단은 진의 중심을 깨부순 도괴의 힘이 밀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끄으윽….”
“제, 젠장….”
“너무 성급했어….”
광풍단원들은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신음을 흘렸다. 많은 전투와 경험 덕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라온이 단상의 끝에 서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가 공격하는 순간은 상대가 반격하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 항상 염두에 두도록.”
“예에….”
“아, 알겠습니다.”
광풍단은 힘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이제 못 해! 이 미친놈아! 차라리 죽이라고!”
마르타가 고개만 들어 올린 채 빽 소리쳤다.
“나도 이젠 한계야. 시, 신이시여.”
버렌은 살려달라는 듯 기도하며 두 손을 모았다.
“나 잘래….”
루난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눈을 내리감았다. 숨이 일정해지는 걸 보니 정말 잠이 든 것 같았다.
“제대로 들어. 다음 훈련은 내일부터니까. 오늘은 돌아가서 쉬라고.”
“오?”
“어어!”
“저, 정말이십니까?”
“우와아아아아!”
광풍단은 아직 지지 않은 태양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지난 한 달간 해가 지기 전에 훈련이 끝난 적이 없었기에 모두가 환호를 질렀다.
“다음 훈련부터는 다른 단과의 대련도 진행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해오도록.”
“다른 단과 대련?”
“너희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검기를 비슷한 수준의 검사들과 부딪쳐봐야지.”
자신이나 도괴와는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대련이 의미 없을 때가 있다.
한 번씩 비슷한 수준의 검사들과 전력을 다하는 싸움을 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도장 깨기지.”
“난 마음에 들어!”
마르타가 씩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지.”
버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응….”
루난은 잤다.
“그래서 언제부터 할 건데? 제대로 준비해서 전승으로 끝을….”
“내일.”
라온이 씩 웃으며 5연무장을 가리켰다.
“내일 정오. 여기서 청응단과 붙을 거야.”
그 말에 광풍단 모두가 눈을 부릅뜬 채 몸을 일으켰다. 휴식을 줄 때도 나타나지 않은 반응이었다.
“처, 청응단?”
“거기 숫자 장난 아니잖아!”
“내, 내일 정오면 하루도 안 남았어!”
“야이 자식아. 단주님도 하루는 줬다고!”
“신이시여!”
“악마가 있으면 저놈 좀 잡아가라고!”
광풍단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신과 악마를 부르짖었다.
-미, 미안하다.
라스는 눈을 바닥에 깔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왕도 털렸느니라…
* * *
찌이이이잉!
진혼검이 터트린 서글픈 울음소리가 작은 정원을 울렸다.
‘수고했다.’
라온은 흐느끼는 듯한 진혼검을 쓰다듬어준 뒤에 허리의 검집에 넣었다.
“이게 혈우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측을 보았다. 로엔과 유아, 율리우스가 멍하니 서 있었다.
“흐윽….”
유아는 입을 쭉 내밀고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곡 자체는 밝은 느낌인데, 검의 울음이 너무 서글퍼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음악에 재능이 있기에 혈우에 담긴 영혼들의 슬픔을 느낀 것 같았다.
“저, 저는 감동 받았습니다! 혈우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청우는 가슴을 들끓게 만듭니다. 당장 검을 휘두르고 싶은 기분입니다!”
율리우스는 허리에 찬 목검을 꽉 쥔 채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보니 청우가 정말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전형적인 검사의 성격이라 웃음이 나왔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로엔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아와 율리우스는 데리러 왔을 때 청우와 혈우를 들려달라고 해서 시연을 한 건데 표정을 보니 그도 감탄한 것 같았다.
“청우는 전에 보여주셨을 때보다 한 층. 아니, 몇 단계 진화한 것 같군요. 위력도, 범위도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라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혈우는….”
로엔이 눈매를 좁힌 채 살짝 뜸을 들였다.
“유아 아가씨의 말씀대로 서글픈 곡이네요. 원망과 절규, 고통에 그리움까지 담겨 있어요.”
그는 혈우를 한 번 듣는 것으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모두 읽어냈다. 역시나 보통 무인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일반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않겠지만, 광풍부단주님이든, 진혼검이든 조금만 더 힘이 강해지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제가 살짝 조절을 했습니다.”
로엔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유아와 율리우스를 가리켰다. 혈우는 본래 혈기가 있는 백혈교도에게만 통하는 검술이었지만, 진혼검이 사도의 혈기를 흡수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 같았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혈우였기에 그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혈우와 청우의 범위와 위력을 조절하시면서 오러의 운용 방법을 더 세밀하게 조율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렵겠지만 큰 공부가 되겠죠.”
“예. 노력하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고리가 7성이 되었기에 청우와 혈우를 조절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 이전에 가주님이 내어주신 휘석 목걸이는 가지고 계시는지요?”
로엔이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올려 목을 가리켰다.
“지금은 없고, 별관에 있습니다.”
그 목걸이는 실전보다는 장식용 같아서 방에 두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휘석을 한 차례 정제한 물건이라 다른 휘석 목걸이보다 내상과 외상 그리고 정신력 보호 효과가 탁월합니다. 꼭 착용하고 다니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래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자.”
“네에….”
“넵!”
그는 유아와 율리우스를 데리고 별관으로 향했다.
로엔은 멀어지는 라온의 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항상 위를 보고 계시는군.”
위를 본다고 아래에 소홀하지도 않다. 어리지만 무인의 이상향 같은 사람이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 * *
새해 첫날의 청명한 태양이 쏟아지는 지그하르트 가주전.
글렌이 셰릴에게 천검대 활동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을 때 알현실 문이 열리고, 비연회주 채드와 로엔이 들어왔다.
“가, 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채드가 중앙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큰일?”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던 리메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어찌 보면 다 알고 있던 일이기는 하지만….”
채드는 가지고 온 서류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왕 로만이 3년 뒤 1월 1일. 광풍부단주와 생사결을 벌이겠다는 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아, 그거구만.”
리메르가 등을 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도 바로 시작 안 하고 해가 바뀐 후에 3년이라는 건 나름 시간을 좀 줬네요? 찌질하지만, 시원한 인간이라니까.”
로만과 만난 날부터 3년인 줄 알았는데, 새해부터 3년을 주는 걸 보면 아예 양심이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이제 3년 뒤에… 음?”
리메르는 알현실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단상 위를 올려 보았다.
글렌과 그 앞에 있는 셰릴 그리고 문 옆에 서 있는 로엔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들 그래요? 눈을 왜 그렇게 떠!”
리메르는 세 사람의 살기 짙은 눈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네놈이 제 역할을 했으면 일이 여기까지 안 왔겠지.”
“바퀴벌레 같은 놈. 할 짓이 없어서 부하에게 빌붙어 살아남아?”
“허허, 리메르 님은 참 밥값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글렌과 셰릴, 로엔은 칼 대신 혀로 사람의 가슴을 거세게 후벼팠다.
“끄윽….”
리메르가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말이 너무 심….”
“말 대신 다른 것으로 해주랴?”
글렌의 손아귀에서 붉은 스파크가 번쩍였다.
“아뇨! 말이면 됩니다! 말만 해주세요!”
리메르는 고개를 맹렬하게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글렌이 차가운 눈으로 리메르를 노려보다가 채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만의 이름으로 온 건가?”
“예. 남북맹이 아니라, 부왕 로만의 이름으로 보냈습니다.”
채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이름만 넣은 걸 보면 세력이 끼일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거네요. 더러운 수적 새끼가 대가리를 굴리네?”
“예. 고약한 방식입니다. 남북맹에는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꼭 싸우겠다는 뜻이겠죠.”
셰릴과 로엔은 혀를 차고서 다시 리메르를 노려보았다.
“으윽….”
리메르는 눈치를 보며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고오오오!
셰릴이 등에 멘 검을 툭 치고서 서늘한 기운을 일으켰다.
“가주님. 라온에게 부담을 주느니 남북맹을 빨리 부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위치도 잡았잖아요.”
그녀가 호응을 원하듯 채드를 바라보았다.
“아, 예. 보, 본단의 위치는 파악했습니다.”
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렌이 최우선 명령을 내렸기에 비연회 요원들을 채찍질하여 남북맹 본단의 위치를 찾아냈다. 다만 아직 그들의 전력은 파악하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그가 남북맹의 전력을 모른다고 보고하려 할 때 글렌의 발밑에서 어마어마한 패기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확실히 주제를 모르는 것들을 치울 때가 되었군.”
그는 당장이라도 남북맹에 쳐들어갈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존재감이 가주전을 뒤흔들었다.
“자, 잠깐만요! 거기에 누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
채드가 말리려고 했지만, 글렌의 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있든, 얼마나 있든 상관없다. 모조리 지우면 그만이니.”
“역시 가주님!”
셰릴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저희 천검대가 앞장서겠습니다!”
“자, 잠깐….”
“여러분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채드가 턱을 떨 때 로엔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강해지는 법입니다. 라온 도련님은 부왕 로만과의 대결에 대비해 이전보다 빠르게 성장 중이시니 놔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는 얼마 전에 개선된 혈우를 들려주었던 라온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2년 반까지 기다리다가 로만이 병사로 죽는 걸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벼, 병사요? 로만에게 병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
“아, 제가 요즘에 연구하고 있는 암살 방법입니다. 방식도 간단하죠.”
로엔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모은 손가락으로 본인의 목을 슥 그었다.
“흠, 나쁘지 않겠군.”
글렌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옥좌에 몸을 묻었다.
“그러네요.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2년 반 뒤에 치우면 되겠어요.”
셰릴도 손목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저 두 사람은 남북맹을 무슨 돌멩이 치우듯이 말하고 있었다.
“어어….”
채드는 남북맹을 무슨 돌멩이 취급하는 세 사람을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인간들이었다.
“지금 광풍단은 무얼 하고 있지?”
글렌이 구석에 쭈그러진 리메르를 보았다.
“요, 요즘에는 다른 단과의 대련 위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리메르는 그걸 보고하러 왔다고 중얼거리며 채드를 노려보았다. 왜 하필 지금 왔냐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요즘 광풍단에 대해 이상한 소리가 들리던데?”
셰릴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으응? 무슨?”
“광풍이 아니라, 광견단이라고.”
“음….”
리메르는 입술을 씹고서 단상 위를 올려다보았다. 글렌의 뇌광이 튀어 오르는 눈동자를 쏘아내고 있었다.
“왜 광견이라 불리는 거지?”
“그, 그게….”
“광견처럼 적을 마주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물어뜯어 승리를 쟁취한다고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가끔 개처럼 짖기도 한다는데, 그건 제가 직접 못 봐서….”
셰릴이 리메르 대신 광풍단이 광견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어쨌든 광풍단의 대련승률은 꽤 좋은 편이에요.”
“맞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30전 25승이 넘었습니다. 최근에는 거의 무패였죠.”
채드가 셰릴의 말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그런 광견을 다루는 조련사라 하여 광견단주라고도 불리고 있어요.”
“나쁘지 않군.”
글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별명도, 광풍단의 승률도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라온 도련님은 무력만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데도 재주가 있는 듯합니다.”
“전에 함께 훈련에 나갔을 때도 조장들이 잘 따르더군요.”
로엔과 셰릴도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리메르.”
글렌이 웃음을 뚝 멈추고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예?”
리메르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광풍단의 실력이 올라서 좋겠군.”
“애, 애들이 잘 따라 와줘서 고마울 뿐이죠.”
“그러면 말이다. 어제 광풍단과 대련한 곳은 어디지?”
“…예? 어제요?”
어제 대련을 했다고?
최근 훈련은 라온과 도괴가 담당하고, 어제는 하루 종일 연공을 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거 모르면 죽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포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청응단하고는 처음에 붙었고, 그 다음이 비천대였지. 세 번째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떠올랐다. 유일하게 붙지 않은 곳이.
“철전단! 철전단입니다!”
리메르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다만 글렌이 일으키는 압력은 사라지지 않고 2배가 되어 어깨를 짓눌러왔다.
“으윽….”
“그 처, 철전단은 작년에 철전대로 승급했습니다.”
채드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속삭였다.
“단주라는 놈이 단원들이 무슨 훈련을 하고, 누구와 대련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그게 저는 어제….”
글렌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젓자, 셰릴과 로엔이 천천히 다가왔다.
“넌 진짜 안 되겠다. 또 도박장 가서 돈이나 잃었겠지.”
“이번만큼은 저도 속이 좀 끓어오르는군요. 허허허.”
두 사람은 살기를 띤 눈으로 리메르의 앞에 섰다.
“나 어제 하루 종일 연공만 했어! 라온 자식이 나도 계속 훈련시키고 있….”
“라온 자식? 너 따위가 감히 가주님의 손자를 함부로 불러?”
“끄흡!”
셰릴은 리메르의 옆구리를 걷어차서 구석으로 던져놓은 뒤에 패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퍼버버벅!
채드는 거침없이 얻어맞는 리메르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화, 확실해.’
가주님이 가장 아끼는 사람은 라온 지그하르트야.
전대 비연회주 알리사의 예측은 틀렸다. 글렌만이 아니라,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셰릴, 로엔도 라온을 다른 누구보다도 아끼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는데?’
지그하르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라온에게 잘 보여야 할 것 같다. 채드는 리메르의 비명을 들으며 라온에게 할 인사말을 떠올렸다.
“비연회주.”
글렌이 눈을 내리감았다가 뜬 뒤에 채드를 보았다.
“예!”
“근래에 백혈교에 관한 의뢰가 하나 들어왔었지?”
“그란세빌에서 들어온 의뢰입니다. 작년 연말부터 실종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최근에는 몰브 호수에서 살점이 뜯겨나간 시체가 나와서 백혈교의 소행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채드가 며칠 전에 들어온 의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자가 따로 요구한 사항이 있나?”
“빠르게 와달라고 했고, 이왕이면 광풍단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광풍부단주. 아니, ‘광풍부단주님’이 4사도를 베었던 업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글렌은 옅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3개월이면 많이 쉬었지.”
그간 훈련과 대련만을 해왔으니, 그 아이들에게 다시 실전 경험을 내어줄 차례였다.
“광풍단에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