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73화 (273/653)

제273화

밤새 북망산에서 집중력 훈련, 새벽에는 체력 단련, 오전에는 일대일 대련, 오후에는 부족한 무학 보충 수련까지.

하루 24시간을 훈련으로만 보낸 광풍단은 저녁이 되자마자 모조리 쓰러졌다.

“으어어….”

“주, 죽어. 이러다 다 죽는다고….”

“끄으으!”

“아, 아픔이 사라지질 않아….”

“크흑, 어떻게 낮에 때린 곳이 지금까지 아프냐고.”

광풍단은 연무장 모래에 머리를 박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가늘게 들리는 숨소리만이 그들의 생존을 알려주었다.

라온은 그런 광풍단을 쭉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네.’

뇌리에 제대로 박혔겠지.

불의 고리 덕분에 검사들의 장점과 단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대련하며 약점이 무엇인지를 몸에 직접 때려 박아주었으니,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모두 수고했어. 내일부터는 총관님의 지시를 따라 훈련하도록.”

집중력 단련에, 대련, 부족한 무학까지 채워주었으니, 도괴에게 맡겨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라온. 존잘 아냐.”

루난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평소보다 더 맹한 눈동자로 입을 삐죽였다.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불평을 하는 것 같았다.

“응. 나도 알아.”

실제로 스스로의 외모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얄미워….”

루난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모래에 얼굴을 박았다.

“차, 차라리 죽여. 이 미친 새끼야.”

마르타는 대자로 누운 채로 눈을 꽉 감았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그녀도 24시간 동안 전력을 내는 훈련에는 질려버린 것 같았다.

“더는 못 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궁. 헉!”

힘이 빠져서 말실수를 한 그녀가 화들짝 눈을 떴다.

“그럼 발가락은 까딱할 수 있엉?”

“그거 하지 마!”

마르타가 목을 일으키며 악을 질렀다.

“손가락, 발가락 대신 목을 까딱 힘은 있나 보네.”

“으으으….”

그녀는 분하다는 듯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너, 너희들 정말 이걸 일주일 동안 견딘 거냐?”

마지막까지 버티던 버렌도 창백한 안색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나갔어. 너희도, 저 또라이 자식도 다 미쳤다고!”

그는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생 보답해야 할 은인이라고 말한 라온에게 또라이 자식이라고 외쳤다.

“생명의 은인도 얼마 못 가네.”

“난 환자잖아! 이걸 진짜 다 시키는 게 어디 있어!”

“환자는 칼 맞으면 안 죽냐?”

“어?”

“훈련을 제대로 해둬야 또 그런 꼴을 안 당할 거 아니냐.”

“아니, 이번엔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겔미어가 뒤에서 공격….”

“됐고.”

라온은 버렌의 말을 끊고, 손을 휘휘 저었다.

“너는 일주일 뒤처졌으니까. 그거 따라잡을 준비나 하고 있어. 내 징계가 끝나는 대로 따로 훈련을 시작할 거야.”

“어억!”

버렌의 눈동자가 파도를 맞은 듯 출렁였다.

“…왜, 왜 납치당했을 때가 그립지?”

그는 서글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쓰러졌다.

“다들 일주일 뒤에 보자. 내가 왔을 때 변화가 없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라온이 기대감이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끄르릉!”

“아, 악마야. 악마가 분명해….”

“부단주에겐 감정이 없어! 이미 인간의 마음이 마모된 거라고!”

“크르르….”

엎어지고 쓰러진 광풍단은 귀를 막은 채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짐승 소리를 내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온이 단상 위에 있던 도괴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네, 네놈 저것들을 죽이고 싶은 거냐?”

도괴는 질렸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그럴 리가요.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시켰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불의 고리를 이용하여 광풍단 전체의 체력과 오러를 살핀 뒤에 극한까지 힘을 끌어냈을 뿐이다.

죽을 만큼 힘들긴 하겠지만, 어쨌든 할 수는 있다.

“그러냐….”

그는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광풍단을 보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가보겠습니다.”

라온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콰아앙!

연무장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저러고 들어오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계셨습니까. 단주님도 해야 할 훈련이 있….”

라온은 리메르를 마중 나가다가 우뚝 멈췄다.

‘이 사람 또 왜….’

거지꼴이지?

리메르의 빨간 머리는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렸고, 옷은 찢어졌으며, 이곳저곳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얻어터지고 바닥을 구른 듯한 모습이었다.

“크르르….”

리메르가 이쪽을 보자마자, 손을 부르르 떨며 맹수처럼 이를 갈았다.

“또 도박하고 오신 겁니까?”

“크르르릉!”

말을 꺼내자마자 리메르의 목 울림이 짙어졌다.

-네놈 짐승을 키우는 재주도 있냐?

라스는 리메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네놈하고만 만나면 다 미친개가 되는 거냐?

라온이 이를 가는 리메르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네놈은 진짜 악마이니라….

*     *      *

그날 밤.

집법부가 광풍단과 전마단의 격돌에 관한 소문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문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막아지던가.

자세한 상황은 풀리지 않았어도 광풍단과 전마단이 맞부딪쳤다는 소식은 하루 만에 지그하르트 전체로 퍼져나갔다.

리메르가 자주 가는 뒷골목의 낡은 주점도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전마단과 광풍단이면 승자가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전마단이 무조건 이겼겠지.”

“그래. 경험치가 다르잖아. 광풍단이 고양이면, 전마단은 호랑이라고!”

“단원만이 아니라, 단주의 싸움도 뻔해. 리메르라면 모를까. 라온은 아직 겔미어에게 안 돼.”

“결과를 볼 필요도 없지.”

주점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더 많은 임무를 완수하고, 오랜 기간 무학을 쌓은 전마단의 승리를 점쳤다.

“과, 광풍단이 전마단을 꺾었대!”

하지만 한 시간 뒤 본관에서 달려온 적발의 검사가 전한 결과에 주점 전체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겼다고? 광풍단이?”

“그게 말이 돼? 광풍단은 이제 막 만든 곳이잖아! 전마단은 전통 있는 단이라고!”

“세상에나….”

“대,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더러운 수를 쓴 거 아니야?”

“그건 아니래. 집법부에서 확인했는데 전부 검과 검으로 싸운 대결이라고 했어.”

“요즘에 광풍단 이름이 가장 많이 들린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어. 벌써 그 정도 무력이라니….”

사람들은 광풍단이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넋이 나간 듯 맥주만 들이켰다.

“그, 그럼 단주들의 대결은 어떻게 됐어?”

“맞아! 라온과 겔미어의 전투도 있었을 거 아니야.”

“아니, 다 떠나서 왜 싸운 건데?”

“당연히 라온과 겔미어의 전투에 대한 소식도 있지. 일단 두 사람은 중무전 지하에서 맞붙었어. 왜 지하에서 싸웠냐면…아, 뛰어와서 그런지 목이 마르네.”

자세한 소식을 물어온 적발의 남성이 목을 문지르며 헛기침을 했다.

“저, 절단신공!”

“아냐! 저건 마공이다! 주인장! 맥주!”

“잔이 뭐야! 아예 한 통을 가져다줘!”

“메뉴판에 있는 안주도 다 시켜!”

“나 돈 많아! 돈 줄 테니까! 빨리 뱉으라고!”

“연참해! 나딘 빵을 먹이기 전에 연참하라고!”

주점에 있던 사람들은 남성 앞에 돈을 마구잡이로 던지며 다음 내용을 알려달라고 소리쳤다. 라스가 가장 싫어하는 고무맛 나딘 빵을 먹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아, 기다려봐.”

적발의 남성이 손을 내리며 모두를 자제시켰다.

“하나하나 말해줄 테니까. 먼저 이 일의 시작은 광풍단 3조장 버렌이야.”

“버렌? 갑자기 왜 버렌이….”

“사실 전마단주 겔미어가 동생인 버렌을 납치해서….”

남성은 직접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광풍단과 전마단이 싸우게 된 이유를 읊어주었다.

“허! 동생을 납치하는 것으로 모자라 세뇌를 해?”

“개새끼들이네! 아주 씨부랄 새끼들이여!”

“하여튼 중무전 놈들은 힘만 강하지. 인간이 글러 먹었다니까!”

“그에 반해 광풍단은 대단하네. 동료를 구하려고 중무전에 쳐들어가다니….”

“애송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야겠어.”

“광풍단! 광풍단!”

“라온! 라온! 라온!”

주점의 사람들은 광풍단이 버렌을 구하기 위해 전마단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라온과 광풍단의 이름을 외쳤다.

“이제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 전마단주 겔미어와 광풍부단주 라온의 전투야. 마스터 중급과 하급의 싸움. 다만 너희들의 생각과 달리 그 싸움을 주도한 건 라온이야.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적발의 남성은 중무전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지막 전투를 말해주었다.

특히 라온이 찌르기 장인인 겔미어를 찌르기로 압도했다고 하며 그를 끊임없이 칭찬했다.

“찌, 찌르기로 압도했다고?

“미쳤구만….”

“내가 스무 살도 안 된 꼬마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진짜 멋있다. 사람 자체가 멋있어.”

“신기하지 않냐? 어떻게 하급이 중급을 압도해서 팔까지 자를 수 있는 거지?”

“익스퍼트 때 사도를 꺾은 적도 있잖아.”

“이쯤 되면 무학이 아니라, 라온이라는 인간이 강한 거지.”

“에라 모르겠다! 앞으로 난 광풍단이랑, 설화검협을 응원할란다!”

“라온! 라온! 라온! 라온!”

적발의 남성이 워낙에 말을 잘했고, 그 결과가 맥주처럼 시원했기에 주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시 한번 라온의 이름과 이명을 외치며 환호를 터트렸다.

“흐음.”

적발의 남성은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점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맥주잔을 비우고 주점을 나섰다.

찌익!

그가 얼굴에 손을 올리고, 그대로 내리자 평범했던 중년 남성의 얼굴이 사라지고, 리메르의 능글맞은 얼굴이 나타났다.

“라온. 고맙게 생각해라. 넌 나를 배신했지만, 난 좋은 소문만 퍼뜨렸으니까.”

리메르는 뿌듯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이게 참스승이라는 거겠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눈동자가 오른손에 든 보자기로 향했다.

“크흠. 어디 한 번….”

리메르는 괜한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보자기를 슬쩍 열었다.

금빛과 은빛으로 번쩍이는 동전들을 보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썩은 달걀처럼 탁 풀렸다.

“이게 다 얼마야? 역시 우리 라온이 재신이라니까!”

그는 보자기를 꽉 닽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올렸다.

“네 덕분에 내가 산다!”

콰르르릉!

“흐억!”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울렸고, 리메르는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어, 없으시죠?”

그는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만 눈치를 보며 뒷골목으로 졸졸 사라졌다.

“진짜 없지?”

*     *      *

라온은 별관의 방으로 돌아왔다. 지그하르트에서의 근신은 정직과 비슷하기에 단주 대리 임무를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대기해야 했다.

‘차라리 잘 되었어.’

그동안 광풍단의 무력과 집중력을 키워주느라 자신의 훈련에 조금 소홀해졌는데, 그걸 메울 기회였다.

‘일주일 뒤에 기대 이하면 더 굴리면 되니까.’

어떻게 해야 제대로 굴리는지 깨달았기에 이젠 광풍단 검사들을 다루는 것도 자신 있었다.

-거, 거기서 더 굴릴 수 있다는 것이냐?

라스는 끔찍하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원래 마른걸레에도 약간의 수분은 있는 법이거든.’

-허어!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흘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아무리 생각해도 네놈이 이곳에 있는 건 재능 낭비이니라! 본왕과 함께 마계로….

‘안 산다구요.’

라온은 달라붙는 라스에게 손을 저어주고, 바닥에 앉았다. 창가로 비치는 달빛을 즐기다가 눈을 내리감았다.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지.’

불의 고리. 많은 전투와 수련을 통해 6성의 극에 오른 불의 고리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때였다.

일주일 안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루기만 한다면 실력 자체는 물론이고, 광풍단의 수련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우….”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히고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심장을 휘도는 여섯 개의 고리가 통속에 든 유리구슬처럼 수없이 부딪치며 맑은 공명음을 울렸다.

‘이걸 피하면서 새로운 고리를 조형해야 한다는 거지?’

헛웃음이 나왔다.

다섯 개를 피하면서 조형할 때도 고생했는데, 이젠 고리 여섯 개를 피하면서 일곱 번째 고리를 만들어야 하니 벌써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해봐야지.’

일정한 궤도도 없이 제멋대로 회전하는 여섯 개의 고리를 피해 새로운 불의 고리를 조형했다.

고리라고 말하기에 미약한 조각을 만들고 있을 때 다섯 번째 고리가 다가와 옆을 후려쳤다.

캬앙!

시원한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만들던 고리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쯧.”

얼마 가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첫 시도. 아쉬움에 혀를 찼다.

-또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라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저녁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됐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평소에 잘못 먹으니 이럴 때 먹어주어야 하느니라. 네놈은 성장기이니라, 지금부터 자정까지 2끼를 더 먹도록 하거라.

녀석은 연무장의 맛 없는 식사 대신 별관의 밥을 먹을 수 있다며 좋아했기에 저녁을 먹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아침을 먹자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바빠.’

라온은 라스를 손등으로 툭 밀어내고 다시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새로운 고리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늘어났을 때 멧돼지처럼 달려든 세 번째 고리와 격돌하여 눈처럼 녹아내렸다.

‘힘드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젠장….’

-밥이 싫으면 간식이라도 땡기자. 먹는 게 남는 것이니라.

라스는 눈을 뜰 때마다 달려와 뭐라도 입에 넣어달라고 주절거렸다.

이게 마왕?

대체 누가 이놈을 분노의 마왕으로 만들었나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분노>가 이 정도라면 <폭식>이라는 놈은 대체 어떨지 상상이 안 갔다.

찌이잉!

라온은 밥이라고 떠드는 라스를 무시하고 다시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후우우….”

폐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내쉬며 마음을 정리했다.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오감을 차단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어설프게 만들어봐야 의미 없어.’

한 번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확실하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집중력을 최대로 유지한 채 일곱 번째 고리를 연성했다.

손톱이 자라나듯 내가 느끼기 힘들 정도로 아주 천천히 새로운 고리를 조형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고리를 조금씩 늘려가며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과 고민을 버렸다.

광풍단의 수련, 리메르의 회복, 중무전의 계략,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실비아의 직계 복귀와 데루스 로베르트에 대한 복수마저 비웠다.

생각하는 건 불의 고리 하나.

찌이이잉!

불의 고리에 온 신경이 집중된 순간 척추를 통째로 울리는 듯한 공명음과 함께 심장을 휘도는 여섯 고리의 속도가 몇 배로 느리게 보였다.

극한의 집중을 이룬 초고수의 영역이었다.

광풍단에게 집중력 강화 훈련을 시켰기 때문일까? 내 집중력도 늘어난 것 같았다.

세 번째 고리가 성난 파도처럼 새로운 고리에 달려든다. 쾌검의 묘리로 고리를 빠르게 돌려 피해냈다.

여섯 번째 고리가 폭풍처럼 나선의 회전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유검의 묘리로 강물을 스치듯 흘려냈다.

헛웃음이 나온다.

동료들에게 수련을 시킨 덕분에 집중력이 오르고, 배운 검술을 통해 다른 고리를 피하다니, 묘한 기분이다.

만류귀종. 여러 물줄기는 끝에 다다라 결국 하나가 된다더니, 그 말을 실제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여섯 개의 고리를 피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고리의 끝과 끝이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새로운 고리가 길어질수록 다른 고리들의 위협이 강해진다. 호흡으로 흡수되는 마나의 알갱이가 느껴질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다.

찌이잉!

여섯 개의 고리들이 합심하여 방해하는 듯 톱니처럼 돌아가며 일곱 번째 고리를 노려왔다. 고리의 형성은커녕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극한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간신히 눈곱만큼의 길이를 늘렸다. 긴장감으로 숨구멍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일곱 번째 고리가 거의 완성되기 직전까지 가자 심장 박동마저 고통스러워졌다.

‘이대로는 불가능해.’

마지막 조형만이 남았지만 여섯 개의 고리가 방해하듯 교차하여 완성 시키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섯 개의 고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한순간을 노려야 했다.

후우우우.

라온은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참는 거라면 전생에서부터 자신 있던 일이다.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식은땀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흘러내렸다.

몇 시간. 아니 며칠 혹은 한 달.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기다렸다.

극한까지 쥐어 짜냈다고 생각한 집중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간다.

공명하는 여섯 고리의 흐름과 그 이후의 움직임이 청사진처럼 그려진다.

마른침을 삼키고 때를 기다렸다.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처럼 여섯 개의 고리가 같은 움직임을 취하는 그 한순간을.

찌이잉!

고리와 고리가 겹쳐지고 비틀어지며 단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찰나의 찰나를 나눈 시간. 일곱 번째 고리를 형성할 유일한 기회였다. 입술을 질끈 씹고서 일곱 번째 고리의 마지막 부분을 채웠다.

콰아아앙!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개의 선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약동과 함께 뇌리에 황금빛 벼락이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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