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71화 (271/653)

제271화

쿠우우웅!

겔미어는 한층 격이 상승한 염룡결을 이겨내지 못하고 벽에 처박혔다.

“허억! 허억!”

그는 지옥의 불길처럼 번지는 염룡결을 간신히 꺼뜨린 후 죽을 듯 거친 숨을 뱉어냈다.

“너, 너 뭐야! 대체 뭐 하는 놈이냐고!”

겔미어가 악을 질렀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그의 경악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떻게 풍사검결을 따라 할 수 있냔 말이다!”

라온이 제천검을 아래로 내리고 겔미어의 앞으로 다가갔다.

“난 말이야. 검을 들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기초 수련을 빼먹은 적이 없다.”

기초 검술이라 함은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사선 베기 그리고 찌르기다. 대부분은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힌 뒤에 기초 검술을 소홀히 하지만 자신은 매일매일 기본을 단련해왔다.

“나름 찌르기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네 검술을 보고 개안을 했다. 찌르기 하나로 이렇게 다양하고 강한 검술을 펼칠 수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데….”

라온이 겔미어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마지막에 보인 추잡한 칼질은 무엇이냐.”

마지막 격돌을 할 때 겔미어는 한 번의 찌르기로 백여 개의 강기를 만들어 급소를 노려왔다.

입이 절로 벌어질 정도로 신묘한 검술이었지만, 그건 빈 껍질일 뿐이었다.

겔미어의 진짜 노림수는 풍사검결 뒤에 숨긴 위력만 강한 검술이었다.

“네놈의 한심함에 흥이 깨졌다.”

더 올라갈 기회였는데.

만화공 염룡결. 십화 때부터 사용했던 찌르기 초식이 한 단계 위로 진화할 기회였는데, 저 망할 놈의 추잡한 짓 때문에 흐름이 깨져버렸다. 아쉬움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라온의 붉은 눈동자에 섬뜩한 정도의 살기가 치솟았다.

-어…?

라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니까 지금 적이 네가 원하는 대로 검을 휘둘러주지 않아서 열 받았다는 것이냐?

어처구니가 없다. 저 겔러그인지, 겔포스인지 하는 멍청한 놈이 한 실수는 둘째 치고, 상대가 본인이 원하는 검술을 사용하지 않아서 화를 내는 라온은 미친 게 분명했다.

-이거 진짜 또라이 아니야!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인간을 봐왔지만, 이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괴물이 된 거지?

역시 성장환경이 중요한 건가?

처음에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참을성이 강한 꼬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생짜로 미친놈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귀때기, 똥손 계집, 가주 영감. 셋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악마 중에서도 이런 놈은 없는데….

라스는 마족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이 미친놈을 마계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다, 닥쳐!”

겔미어가 몸을 일으키며 지독한 살기를 일으켰다.

“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으냐!”

그는 분노를 담아 검을 내질렀다. 마의정검의 폭발적인 기운이 세검 위로 치솟았다.

“헛짓이다.”

라온이 태화이보를 밟았다. 빛살처럼 나아가 휘두르는 제천검의 칼날 위로 광아검의 구결이 풀려나왔다.

쩌어엉!

사납게 울부짖는 은백색 칼날이 겔미어의 검격을 단숨에 깨부수고, 그의 허리에 박혔다.

“끄으윽!”

겔미어가 허리를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

“뭐, 뭐….”

그는 단순하게 휘두르는 듯한 검격에 마의정검이 깨진 걸 믿지 못하고 입술을 떨었다.

터엉!

라온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땅을 박찼다.

“꺼, 꺼져!”

겔미어가 다급하게 검을 내질렀다. 관통력과 폭발력을 극대화한 풍사검결의 찌르기였지만 이젠 의미 없었다.

챠아아앙!

놈의 좌측으로 쇄도하여 서리연은 그었다. 극쾌의 묘리를 담은 제천검이 세검을 쳐내고, 은빛 궤적을 질주하는 서리의 칼날이 겔미어의 상체를 그었다.

푸카아악!

겔미어의 제복이 갈라지고, 가슴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허어억!”

그는 턱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 무력에서 압도당하는 공포에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마스터 하급이….”

“말했잖아. 싸움이 시작됐으면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고.”

라온은 고개를 살짝 튼 채 눈매를 좁혔다.

“제대로 와라. 다음에 네 목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나, 날 죽이겠다고? 이 중무전에서?”

“못할 이유가 뭐지?”

겔미어는 전투를 시작했을 때부터 목과 심장을 노려왔다, 저쪽에서 먼저 살의를 보였으니, 참을 이유가 없었다.

꾸드득.

겔미어가 세검을 꽉 말아쥐었다. 내상을 입을 정도의 전력을 끌어 올렸는지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쿠구구구!

그에게서 퍼져 나오는 막대한 기파에 지하 공간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벽과 천장의 잔해가 허공으로 부유하듯 떠올랐다.

“절대, 절대! 여기서 끝나진 않는다!”

겔미어가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맹호처럼 달려와 그대로 세검을 내지른다.

치이이잉!

하나의 검극이 수백 개로 번져가며 시야 전체를 뒤덮었다. 강기로 이루어진 빗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쿠우우우우!

이전에는 거죽으로만 썼던 검술이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조금도 피할 공간이 없는 완벽한 찌르기가 공간을 장악했다.

“이젠 늦었다.”

라온은 서늘한 음성을 흘리며 상단세를 취했다. 백지 위를 흐르는 먹물의 선처럼 검신 위로 돋아난 붉은 빛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만화공 백화.

적섬.

태양빛을 담은 섬광이 강기의 비를 녹여버리고, 공간을 비틀었다.

쩌어어억!

찢겨나가는 풍도검결의 절기 사이로 오른팔이 떨어져 나간 겔미어가 보인다. 일그러진 녹색 눈동자에서 경악과 공포가 흘러내렸다.

“끄아아아악!”

지독한 고통에 잠긴 비명과 함께 겔미어의 오른팔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끄으으! 내, 내 팔….”

“그것도 봐준 거다.”

라온이 냉혹한 눈빛을 발하며 겔미어의 앞으로 다가갔다.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

가문과 직계가 관련된 일이기에 이번 일의 끝은 가주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쉽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아, 아버지께서 네놈을 살려두지 않으실 거다! 절대….”

“이젠 아빠 찬스?”

라온이 피식 웃으며 겔미어를 굽어보았다.

“너무 찌질해서 할 말이 없네. 넌 좀 더 맞아야겠다.”

“자, 잠깐!”

“혀 잘리기 싫으면 입 닫아.”

“내, 내 말… 커헉!”

근력을 최대로 끌어 올린 주먹으로 겔미어의 턱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     *      *

집법부 2조장 테론드는 광풍단이 강제집행을 위해 중무전을 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법부에 남아 있던 인원을 모두 끌고 나왔다.

‘광풍단이 위험해!’

전마단은 강하다. 이제 막 검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광풍단이 의지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특히 겔미어는 온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냉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라온이 있다고 해도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무, 문이 깨졌어….’

깨져나간 중무전의 정문을 보자마자 불안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제발 아무도 죽지 않기를.’

한 명의 사망자도 없기를 바라며 중무전의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전투를 멈추십시오! 지금부터는 저희 집법부가…어?”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소리치던 테론드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게 무슨….’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왜 광풍단이 서 있고, 전마단이 누워 있는 거지?’

녹의를 입은 전마단은 입이 돌아간 채 자빠져 있었고, 흑의를 입은 광풍단은 지쳐 보이긴 했지만, 두 발로 서 있었다.

‘내, 내가 꿈을 꾸나?’

전마단은 겔미어 지그하르트를 따라 수많은 임무를 완수한 베테랑 검사들이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광풍단에게 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뭐, 뭐야?”

“광풍단이 이겼는데?”

“허어….”

“이럴 수가 있나?”

다른 집법부 검사들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후우….”

테론드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깊은숨을 내쉬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온과 겔미어가 없어!’

광풍단과 전마단의 단장이자, 이번 일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라온과 겔미어가 보이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가슴이 격하게 뛰었다.

“도괴님!”

테론드는 고먼을 무릎 꿇린 도괴에게 달려갔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아래에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기감을 끌어올려 보니, 미약하지만 쿵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서, 설마 겔미어 지그하르트와….”

“그래. 신나게 싸우고 있겠지.”

“그런데 왜 이러고 계시는 겁니까! 말려야지요!”

“말려? 누구를?”

“당연히 겔미어잖습니까! 그가 라온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크하하하하!”

도괴가 이마를 부여잡고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을 터트렸다.

“도, 도괴 님?”

“겔미어 따위가 그 괴물을 죽인다니, 집법부 조장도 개그에 소질이 있었군.”

“예에?”

“반대라면 모를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아.”

테론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원로원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전 두 사람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2조는 이곳을 정리….”

“갈 필요 없다.”

도괴가 여유롭게 손을 휘저었다. 그는 다시 한번 바닥을 가리키며 히죽 웃었다.

“곧 나올 테니까.”

“장난칠 시간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테론드가 도괴를 무시하고 현진각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쿠와아아앙!

중무전 전체가 뒤흔들리더니, 도괴가 가리킨 바닥에서 거대한 구멍이 터지고, 한 사람이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저, 저건!”

전마단주?

겔미어였다. 오른팔이 잘려나간 그가 눈을 까뒤집은 채 허공을 날고 있었다.

‘쟤가 왜 저기 있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뇌에 녹이 낀듯한 기분이었다.

“이, 이게 아니지!”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저대로 떨어지면 겔미어는 즉사였다.

터엉!

그에게 달려가려고 할 때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또 다른 사람이 솟구쳐 떨어지는 겔미어를 받았다.

금발적안. 겔미어와 싸운다고 했던 라온 지그하르트였다.

“애송아. 느리다.”

도괴는 겔미어를 든 라온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죄송합니다.”

라온은 겔미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좀 배울 게 있어서요.”

“배운다? 또 식겁하게 만드는군.”

도괴는 지겨운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

테론드는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벙하게 입을 벌렸다.

‘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라온과 겔미어가 싸운 게 분명한데, 하급인 라온은 멀쩡하고, 중급인 겔미어는 팔이 잘린 채 기절해 있었다.

“그니까 이게….”

사실 정답은 간단하지만, 머리에서 그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라온이 겔미어를 이겼다고?’

그게 가능해?

고수가 될수록 한 급 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라온의 경지가 마스터 하급에서 조금 높은 편이고, 겔미어가 딱 중급이라고 해도 그 격의 차이는 분명하거늘 이런 결과가 벌어진 이유를 모르겠다.

“아, 집법부에서 나오셨군요.”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고 있을 때 라온이 먼저 다가왔다.

“지, 집법부 2조장 테론드라고 합니다.”

테론드는 자세를 바로 하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 이상 추태를 보일 수는 없지.’

너무 놀라운 일들이 많아서 당황했지만, 이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기로 다짐했다.

“중무전에 몸을 숨긴 버렌 지그하르트에게 강제집행을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상황은 뭡니까.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면 목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테론드는 서늘한 눈빛으로 라온을 쏘아보았다.

“겔미어와 전마단이 버렌을 납치해서 이 아래에 가둬놨습니다. 세뇌를 걸어서 조종하려고 했다더군요.”

“예?”

“세뇌의 이유는 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라온은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어….”

테론드가 입을 떡 벌렸다.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거라 다짐했는데, 그 결심이 10초 만에 깨져버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 밑에 있는 밀실을 확인해보시면 될 겁니다.”

그는 바닥에 난 구멍을 가리켰다. 무릎을 꿇고 살펴보니 특이한 재질로 만든 여러 겹의 벽이 보였다.

“저기 당사자도 나오네요.”

라온이 뒤쪽에 있는 현진각을 가리켰다. 낮은 걸음 소리가 울리고 버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복이 찢어지고, 상처가 있는 초췌한 안색으로 전마단의 조장 하나를 질질 끌고 나왔다.

“허….”

진짜 납치했다고?

세뇌까지는 모르겠지만, 상태를 보니 납치된 건 정말인 것 같았다. 집인 중무전에서 동생을 납치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미친 짓이었다.

“자, 잠시 생각 좀 정리하겠습니다.”

테론드는 본인의 뺨을 짝짝 때리고서 눈을 감았다.

라온은 그런 테론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지럽겠지.’

광풍단이 중무전을 친다고 해서 왔을 텐데 실상은 동생을 납치하여 세뇌하려고 한 대사건이니 저리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어디….’

차근차근 생각하도록 놔두고 뒤에서 다가오는 버렌을 보았다.

“믿으라고 했지?”

버렌이 씩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올란과의 전투를 통해 무언가를 얻은 것 같았다. 믿은 보람이 있었다.

“그래. 수고했….”

“와아아아아아아!”

“버렌 님이다!”

“버렌 님이 돌아왔어!”

“버렌! 버렌! 버렌!”

라온이 고개를 끄덕여줄 때 광풍단 검사들이 버렌을 보며 함성을 질렀다.

“얘, 얘들아….”

버렌은 감동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이야아아아아!”

“버렌 님! 보고 싶었습니다!”

“버렌! 버렌! 버렌!”

광풍단은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부족했는지 보법까지 밟으며 달려와 버렌에게 헹가래를 쳐주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걱정하게 해서 미안….”

버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친형은 납치하고 세뇌를 하려고 했지만,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구하러 왔으니, 감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게 어디 있더라…아! 여기 태워요!”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가마를 꺼내 버렌을 위에 태웠다. 광풍단은 각자 가마의 다리를 잡고, 버렌을 위로 들어 올렸다.

“버렌! 버렌! 버렌!”

광풍단은 계속해서 버렌의 이름을 외치며 그를 태우고 중무전의 정문 쪽으로 향했다.

“어….”

“이, 이거….”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인지라, 집법부 검사들도 말리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충분해. 너희들의 마음은 모두 알았어.”

버렌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 뒤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감격한 눈빛이었다.

“난 앞으로 광풍단을 위해 살겠다. 내 전부를 바쳐서 너희를 위해….”

“버렌! 버렌! 버렌!”

그의 선언에도 가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중무전을 나가 북망산이 있는 우측으로 향했다.

“얘, 얘들아? 여긴 본부 쪽이 아닌데? 왜 산으로….”

“버렌! 버렌! 버렌!”

“크르르! 훈련!”

“크엉! 훈련!”

북망산을 보는 광풍단 검사들의 눈동자가 점차 빨개진다. 전마단에게 풀었던 광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후, 훈련이라니? 어? 너희들 눈이 왜 그래! 빨갛다고! 야!”

“크르릉!”

“내, 내려줘! 이 자식들아!”

버렌은 이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리려 했지만, 가마를 붙잡은 검사들은 몸을 밀어 넣어 빠져나갈 공간을 주지 않았다.

라온은 그런 광풍단과 버렌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되긴 뭐가 돼! 이 미친놈들아!

라스가 기겁하는 버렌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저 눈깔이는 일주일 동안 감금당했다가 풀려나고, 전투까지 치렀지 않느냐! 저러다 정말 죽느니라!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라온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아아….

라스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탁한 숨을 내뱉었다. 말이 안 통한다. 이곳에 있는 모두의 뇌가 거꾸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 미쳤느니라! 전부 정신이 나갔어!

마왕인 자신이 인간을 걱정하는데, 인간들은 역으로 악의를 드러내는 혼돈의 상황이었다.

‘실제로는 여기가 마계 아닐까?’

내가 살던 곳이 인간계고.

라스는 턱을 긁적이며 본인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모두 정지!”

광풍단이 정말 버렌을 데리고, 북망산에 오르려 할 때 테론드가 오러를 담아 소리쳤다.

“이건 제가 결정할 사안을 넘었습니다. 함께 가주전으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는 방법이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라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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