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70화 (270/653)

제270화

“크으으!”

5연무장의 단상 위에서 시원한 탄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좋다! 좋아! 이 맛에 사는 거지!”

리메르. 홀로 5연무장에 남은 그는 단상 위에서 술판을 벌여놓고 히죽거렸다.

“이 잔은 라온을 위해! 그리고 두 번째 잔은 버렌을 위하여!”

그는 달을 향해 들어 올린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두 분 다 아직 안 죽었습니다!”

단상 아래에 있던 티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죽으라는 게 아니라, 잘하고 오라는 뜻이죠.”

리메르는 헤헤 웃고서, 식당에서 얻은 돼지 통구이를 뜯었다.

“캬아!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그는 순식간에 살을 바르고, 술로 입안을 행군 뒤 배를 두드렸다.

“요즘 라온 그 망할 녀석이 식단 조절까지 시켜서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진짜 지독한 놈이라니까요.”

리메르가 최대한 빨리 힘을 회복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광풍단주께서는 걱정 안 되십니까?”

티아스가 중무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마단은 강합니다. 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력 단체잖습니까.”

중무전에 전마단 하나만 있다고 해도 광풍단이 이기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버렌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당할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후우, 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죽을 것 같습니다.”

라온이 이곳에 있으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당장 중무전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거 아시죠. 소설에서 동료를 구할 때는 특별한 힘이 타오르는 거.”

리메르가 들어 올린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그게 그냥 허구가 아니거든요. 우리 애들 중무전으로 갈 때 자신감이 넘치던 눈빛들 보셨잖아요.”

“으음, 그 눈은….”

티아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광풍단의 눈동자는 자신감이 아니라, 흉폭한 느낌으로 번들거렸다. 동료를 구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납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마음 푹 놓고 기다리시면 애들이 알아서 버렌을 데리고 올 겁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광풍단도 무사하고, 버렌도 안전히 돌아온다면야 바랄 게 없었다.

“또 뭐 걸리시는 게 있나요?”

리메르가 본인의 안방인 듯 단상 위에 대자로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겔미어는 마스터 중급에 오른 검사입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어떻게 이길지….”

전마단 전력의 절반 이상은 겔미어의 무력 덕분이다. 라온이 그를 어떻게 상대할지가 걱정되었다.

“아하하! 그 괴물 녀석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무조건 이기니까요.”

리메르는 단호하게 라온의 승리를 점치며 하늘에 뜬 달을 보았다.

“하지만 겔미어는 마스터 중급….”

“겨우 중급에 오른 수준이죠. 그 정도라면 라온을 못 막아요.”

그는 땅콩을 입에 던지며 씩 웃었다.

“저희는 그 괴물 자식이 또 뭘 얻어서 올지만 궁금해하면 됩니다.”

*     *      *

쩌저저정!

라온과 겔미어의 검이 찰나의 순간 열 번을 넘게 부딪치며 허공에 분수 같은 불똥을 튀겼다.

후우우웅!

작디작은 불꽃 조각을 뚫고 겔미어의 찌르기가 쏘아져 온다.

라온이 반보를 앞으로 내디디며 눈매를 좁혔다.

‘거의 장인 수준이로군.’

검격의 속도와 정확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힘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화롭다. 약간의 틈도 보이지 않는 무결한 검술이었다.

쩌어엉!

광아검을 뻗어내 겔미어가 내지른 세검의 중심을 후려쳤다.

‘크으….’

신음이 나올 정도로 강맹한 위력이 오러를 뚫고 뼛속까지 울렸다. 동생을 납치하고 세뇌할 정도로 추한 놈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이것도 받아봐라.”

겔미어가 팔꿈치를 살짝 내린 채 세검을 찔러왔다. 찌르기의 시작점이 조금 내려갔을 분인데, 검날이 파르르 떨리며 읽을 수 없는 투로가 형성되었다.

“얼마든지.”

라온이 제천검을 좌측 위로 들어 올렸다. 용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광아검의 검격으로 겔미어의 검술이 제힘을 받기 전에 위를 쳤다.

쩌어엉!

검술이 완성되기 전에 막았음에도 손아귀가 떨렸다. 강기를 뚫고 들어오는 관통력. 찌르기를 극한으로 단련한 마스터다운 위력이었다.

캬아앙!

연성검술을 연속으로 그어 내렸다. 별자리를 닮은 검세가 물 흐르듯 이어지며 겔미어의 찌르기를 튕겨냈다.

타악!

오른발을 좌측으로 돌리며 제천검의 검신에 깃든 열화의 기운을 퍼뜨렸다.

만화공 백화.

화령.

검극에서 돋아난 꽃봉오리 사이에서 수많은 화염의 꽃잎들이 흩날려 밀실 전체를 휘감았다.

화아아아!

하나하나가 강기인 불꽃 조각들이 나선으로 회전하는 적색 폭풍이 되어 겔미어를 덮쳤다.

“흥!”

겔미어가 비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뒤로 젖힌 뒤 세검을 쏘아낸다. 강기에 휩싸인 검극이 백여 개로 번지며 화염 폭풍을 모조리 갈라버렸다.

“허.”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재밌는데.’

찌르기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올렸음에도 위력이 죽지도 않고, 투로도 정확했다. 혀가 내둘러지는 정심한 검술이었다.

‘바람을 압축해서 터트리는 방식이로군.’

겔미어는 버렌의 형답게 바람 속성 친화력이 높았다. 찌르기를 하는 순간 압축한 바람의 기운을 폭발시켜 위력과 속도를 극대화시키는 검술이다. 최상급 검술 풍사검결을 익혔다더니, 그 이름값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다.

“넋이 나간 건가? 후회하기는 일러. 이제 시작이니까!”

겔미어가 서늘한 음성을 흘리며 공간을 파고들어 왔다. 그의 손에서 조금 전에 보았던 찌르기가 다시 한번 펼쳐졌다.

후우우우웅!

피할 공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시야 전체가 은빛 검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전처럼 건방 떨어보시지!”

겔미어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한 듯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세검을 내질렀다. 강기로 휩싸인 수백 개의 칼날이 전신을 꿰뚫으려는 순간 라온이 제천검을 올려 그었다.

콰아아아아!

검의 투로를 따라 솟구친 서리의 벽이 겔미어가 찌르기로 쏘아낸 강기를 모조리 차단했다.

쿠구구구!

냉기의 벽은 봄눈처럼 금세 녹아내렸지만, 그 뒤로는 자그마한 검기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이것도 쓸 만하네.’

로엔그린의 지식을 통해 익힌 글래시아의 운용법으로 벽을 만들어보았는데, 마스터 중급의 검강을 막은 걸 보면 방어만큼은 만화공보다 뛰어났다.

“건방? 그런 적 없는데?”

라온은 겔미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가 무서워서 친동생을 납치하고 세뇌한 건 사실이잖아.”

“닥쳐!”

겔미어가 당황을 억지로 숨기며 세검을 내뻗었다. 강기를 날리지 않고, 검신 전체에 어마어마한 힘을 응집시킨 채 직접 찔러왔다. 속도와 위력이 조금 전과는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우우우웅!

라온이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공명시키며 집중력을 드높였다.

‘묘리는 같아.’

관통력을 최대치로 높인 강기에 바람의 기운을 폭발시킨 극쾌와 극강의 찌르기. 힘과 속도는 강해졌지만, 운용방식은 그대로였다.

치이이이잉!

세검에서 펴져 나오는 강맹한 기운에 닿지도 않은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터엉!

라온은 겔미어의 찌르기를 끝까지 관찰한 후 미끄러지듯 태화보를 밟았다.

후우우웅!

겔미어의 세검 위로 잘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보법을 밟아도 추적하듯 따라오는 찌르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강자지만….’

이기는 건 어렵지 않겠어.

겔미어가 틸러보다 훨씬 강한 건 분명하지만, 이미 그의 검술 묘리를 파악했기에 전력을 끌어 올려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다만.’

배우고 싶어.

인성을 떠나서 겔미어의 찌르기만큼은 완벽에 가깝다. 속성이 다르니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저 완성도를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라온은 승리를 확신하는 겔미어의 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네 검술 잘 먹어주마.’

*     *      *

겔미어는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라온을 보며 찬웃음을 흘렸다.

‘실수했군.’

저런 놈을 두려워할 필요 없었는데.

무인은 검만 맞대기만 해도 상대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라온 지그하르트는 풍사검결의 초식에 겁을 먹고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한심하군. 그렇게 도망만 치면서 입을 놀린 것이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몰라? 무식하네.”

라온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이놈….”

놈은 도발에 걸리기는커녕 역으로 도발하며 찌르기를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피하는 것도 그냥 피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검을 보다가 물러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더 짜증이 났다.

‘네 생각을 모를 것 같으냐.’

고수의 전투일수록 집중력이 중요하다. 라온은 자신의 심리를 흔들어 빈틈을 만들려는 게 분명했다.

그런 전투는 수없이 많이 해 봤어.

겔미어가 볼 안쪽을 씹었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딴 계략엔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풍사검결의 초식을 연달아 펼쳤다. 바람의 기운을 폭발시킨 찌르기에 라온의 오러가 갈가리 터져 나갔다.

“이젠 사과해도 늦었다. 네놈을 죽이고 모든 상황을 바꿔버릴 테니까!”

“하고 말해.”

“이놈이 끝까지!”

죽어도 입은 물 위로 뜰 놈이다. 끝없이 떠드는 주둥아리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후우웅!

겔미어가 어금니를 지그시 씹으며 풍사검결의 절기 폭침을 펼쳤다. 날카로움과 속도가 극대화된 검격이 라온의 어깨를 향해 쏘아졌다.

꾸욱.

라온이 검을 쥔 손을 살짝 비튼 뒤에 앞으로 내지른다. 폭침과 비슷한 느낌의 찌르기였다.

콰아아앙!

폭침과 라온의 검격이 맞부딪치며 지하 공간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대한 충격이 일어났다.

쿠구구구!

그 강대한 격돌에서 밀려나는 건 당연하게도 라온이었다.

“망둥이 같은 놈.”

겔미어는 다섯 걸음 물러선 라온을 보고 입매를 비틀었다.

“네놈 따위가 풍사검결을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풍사검결은 대량의 오러만이 아니라, 바람의 기운까지 필수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최상급 검술이다.

압축은커녕 바람 자체를 다루지 못하는 놈이 풍사검결을 따라 하려는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거야 끝까지 해봐야 알겠지.”

라온은 다시 자세를 잡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내상을 입었을 텐데도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 속이 뒤집혔다.

“다시 와봐.”

“이놈!”

검은 몰라도 도발 하나만큼은 혼이 빠질 정도로 잘하는 놈이었다.

“단숨에 끝내주마!”

겔미어가 이를 악물고 풍사검결의 절기 중 하나 만풍휘정을 펼쳤다. 어깨에서 압축된 바람의 기운이 단번에 폭발하며 라온의 심장을 노렸다.

콰아아아아!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에 허공이 갈라져 보일 정도였다.

라온은 만풍휘정도 따라 하려는 듯 어깨를 살짝 내린 뒤에 시뻘건 오러를 일으키며 그대로 쏘아냈다.

쩌어어엉!

검과 검이 장미 덩굴처럼 꼬이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으음….”

“크으!”

겔미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지만, 라온은 옅은 신음을 뱉으며 네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안 된다고 말했잖아!”

겔미어가 이를 갈며 라온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위로 올린 검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풍사검결 위백뇌우. 한순간에 백 번의 찌르기를 날리는 초고속 검격이었다.

“후우!”

라온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손목의 방향을 살짝 돌린 채 위백뇌우의 초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이 끝없이 맞부딪치며 허공에 강기의 파도가 치솟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적색 해일 아래로 사그라졌다.

“헛짓이다. 이대로 꼬치로 만들…어?”

겔미어가 라온의 검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위백뇌우를 계속 펼치는 이 순간 라온의 찌르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정확하게.

봐줄 만했던 찌르기에서 완성도를 높게 쌓은 찌르기로.

어머니를 따라 걷는 아이처럼 자신의 검술을 닮아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긴박한 전투 중에 찌르기의 숙련도를 높이다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턱이 덜덜 떨렸다.

‘그렇다면!’

겔미어가 위백뇌우를 멈추고 허공에서 몸을 돌렸다. 무너진 기둥을 박차고 그대로 검을 내리찍었다. 풍사검결의 절기 응철랑이었다.

후우우웅!

늑대의 이빨처럼 사냥감을 내리찍는 검격이 라온의 머리를 노렸다.

라온이 자세를 낮췄다. 응철랑을 펼칠 때처럼 팔꿈치를 살짝 올린 채 허공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이건 절대 못 따라 할 거다!’

응철랑은 풍사검결 중에서도 바람의 기운을 최대한 이용하는 초식이다. 열기와 냉기만 지닌 라온이 응철랑을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머리부터 뚫어주마!’

응철랑으로 라온의 머리를 깨부수려고 할 때 놈의 눈동자가 불길한 빛으로 번쩍였다. 내지르는 손목에서 바람의 기운이 돋아나며 검극에 실린 불꽃이 폭주하듯 뻗어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응철랑과 거의 흡사한 투로와 속도에 위력은 더 강하다. 말도 안 되는 검격이었다.

콰아아아앙!

땅 위까지 뒤흔들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고 라온과 겔미어가 두 걸음씩 물러섰다.

“너, 너 뭐야!”

겔미어의 눈동자가 파랑을 맞은 돛단배처럼 출렁였다.

“어떻게 네놈이 바람의 기운을 가진 거냐고!”

*     *      *

라온은 버렌을 구하러 왔을 때보다 더 눈이 커진 겔미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바람의 기운이라….’

나도 놀랐지.

겔미어의 찌르기를 배우려고 할 때 느꼈다. 불의 기운을 가진 만화공으로는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찌르기의 숙련도를 높인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할 때 단전에서 청명한 기운이 치솟았다.

만화공에 녹아 있지만 본래 화속성이 아닌 힘. 리메르가 넘겨주었던 바람의 오러였다.

불꽃 속에 녹아든 바람의 기운이 불의 고리를 따라 운용되어 풍사검결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에 충실한 보람이 있네.’

매일 단련하는 기본 검술과 리메르에게 얻은 바람의 기운 그리고 6성의 끝에 다다른 불의 고리 덕분에 지금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불가능하다고!”

겔미어가 악을 지르며 달려든다. 오러와 육체를 극한으로 쥐어짜며 찌르기를 해온다. 속도와 위력이 오르고, 투로까지 비틀었다.

“후우….”

라온이 숨을 고르며 제천검을 고쳐 잡았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가 있군.’

검술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에 미소가 지어졌다.

고오오오오!

불의 고리를 통해 겔미어가 일으킨 찌르기의 흐름을 읽은 뒤 그대로 제천검을 내질렀다.

쩌어엉!

라온의 검격이 더 늦게 뻗어 나왔음에도 겔미어의 찌르기에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쿠구구구!

두 검의 검극이 맞붙은 공간에서 적색 스파크가 돋아나며 허공이 일그러졌다.

“너, 너 대체 뭐야!”

“라온 지그하르트.”

“누가 이름을 물어봤냐고! 대체 어떻게 날 따라 했냐는 말이다!”

“잘.”

“끄아아아악!”

겔미어는 이성을 잃은 듯 눈동자를 뻘겋게 물들인 채 검격을 펼쳤다. 분노한 와중에도 찌르기엔 빈틈이 없었다.

‘이게 다 공부지.’

라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겔미어가 선보이는 찌르기의 묘리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찌르기의 방향에 따른 손목과 어깨의 움직임, 검격에 관통력과 폭발력을 담는 오러 운용 방법, 찰나의 순간에 빈틈을 보고 투로를 바꾸는 눈썰미까지.

겔미어가 쌓아 올린 찌르기의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을 버렸다.

“후우욱….”

라온이 숨을 고른 뒤에 이 전투에서 배운 찌르기의 묘리를 담아 광아검을 펼쳤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속도와 힘이 깃든 광아검 혈비량이 겔미어의 풍사검결과 맞부딪쳤다.

후우우웅!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검극과 검극이 격돌한다. 막대한 힘의 충돌 후에 밀려나는 건 겔미어였다.

“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턱을 떨었다.

“무, 무슨….”

“이게 끝은 아니겠지?”

라온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제대로 덤벼.”

“이 개자식!”

겔미어가 오싹한 살기를 일으키며 쇄도해온다. 그의 세검에서 풍사검결의 절기들이 연달아 펼쳐졌지만 이미 그 흐름을 읽어두었기에 막기 어렵지 않았다.

‘조금 더.’

라온은 겔미어의 검격을 모조리 쳐내며 마지막까지 찌르기를 다듬었다.

놈의 오러에 담긴 관통력과 폭발력에 속이 울렁거리고 뼈가 시렸지만, 성장한다는 즐거움 덕분에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아아….”

겔미어가 검을 쥔 손을 떨었다.

‘이렇게 질 수는 없어!’

저 괴물 놈과 버렌을 죽여야만 살 구멍이 생긴다. 이대로 패한다면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찌르기는 안 돼.’

지금까지 상황을 볼 때 저놈에게 풍사검결은 통하지 않는다. 검술을 바꿔야 했다.

‘미끼로 써야겠어.’

남은 방법은 하나. 풍사검결의 절기를 미끼로 던진 뒤에 새로 익힌 검술로 뒤를 노리는 방법뿐이었다.

“후우….”

겔미어가 숨을 골랐다. 단전이 아릴 정도의 오러를 끌어 올린 뒤에 땅을 박찼다.

창룡풍도.

풍사검결의 최후의 초식이 천장에서 내려온 바람을 따고 뻗어 나간다. 하나이자 천 개의 찌르기. 상대의 전의조차 상실시키는 검세가 끝없이 펼쳐졌다.

‘이건 가짜.’

창룡풍도에 담긴 오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는 그 화려함 뒤에 모습을 감춘 마의정검. 어마어마한 힘을 담은 어둠의 칼날로 라온의 목을 노렸다.

“이건….”

라온은 창룡풍도에 정신을 빼앗긴 듯 번져가는 강기의 물결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됐어!’

겔미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창룡풍도 뒤에 숨은 마의정검은 누가 와도 막을 수 없다. 저 괴물 놈도 목을 내줄 수 밖에 없는 완벽한 공세였다.

“자신을 믿지 못했군.”

겔미어가 승리를 자신하며 마의정검을 내리칠 때 라온의 차가운 음성을 허공을 울렸다.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꽃이 사위로 번지며 눈속임으로 사용한 창룡풍도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넌 찌르기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 뒤에서 뻗어 나오는 건 용이다. 라온의 눈동자에서 튀어나온 듯한 적룡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마의정검을 씹어 삼켰다.

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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