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69화 (269/653)

제269화

라온은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린 버렌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제때 온 모양이네.’

아직 눈이 살아 있어.

주디엘이 세뇌를 당했을 거라고 확신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눈동자도 탁하지 않고 또렷했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 네가 어떻게 여길!”

겔미어 지그하르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빛에서 경악이 그대로 드러났다.

“안내인이 있어서.”

라온은 문 앞에 서 있는 청발의 검사를 가리켰다. 그를 보는 겔미어의 시선에서 살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디르. 네놈이….”

“아, 아닙니다! 전 아니에요!”

디르라 불린 검사가 마구 손을 저었다.

“저 친구가 길 안내를 참 잘하더라고. 편하게 왔지.”

디르의 뒤만 밟은 덕분에 진법이나, 함정에 걸리지 않고,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문으로 들어갔다간 버렌이 인질로 잡힐 수도 있어서 천장을 부순 건데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 말이 아니다!”

겔미어가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밀실의 벽이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버렌이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거다!”

“아, 그거? 그게 사실은….”

라온이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다. 말해줄 필요는 없지.”

“네놈….”

겔미어의 입에서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하나는 말해주지.”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올려 뒤에 있는 버렌을 가리켰다.

“넌 네 동생을 너무 우습게 봤어.”

“뭐?”

“버렌은 광풍단 검사들 중에서 책임감이 가장 강해. 훈련에 불참하게 된다면 직접 와서 모두에게 사정을 설명할 정도로 꽉 막힌 놈이다.”

광풍단의 부부단주 역할을 하는 저 답답한 녀석이 집사를 보내서 훈련 불참을 알리는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으음….”

버렌이 라온의 등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들었기 때문일까. 가슴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친다. 자신을 인정하고, 구하러 와준 라온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라온. 정말 고맙….”

“뭘 잘했다고 불러. 멍청하게 잡혀놓고.”

“어억!”

다시 한번 예상을 깨는 차가운 말에 날뛰던 심장이 뚝 가라앉았다.

“고먼과 전마단은 어떻게 됐지?”

“직접 알아봐.”

라온은 겔미어의 질문을 빙글거리며 받았다. 부서진 천장 위도 특별 제작을 한 밀실이기에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겔미어의 멘탈을 부수기로 작정했기에 그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은 채 여유를 부렸다.

“이 새끼가….”

겔미어 당장 달려들 것처럼 서늘한 기세를 일으켰다.

‘제대로 먹혔군.’

이건 마스터라도 어쩔 수 없지.

동생을 납치한 현장을 그대로 들켰기에 겔미어는 냉정함을 잃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넌 왜 여기에 잡혀 있던 거지?”

라온이 고개를 돌려서 버렌을 보았다.

“그, 그건….”

“뭘 망설여. 아직도 저걸 네 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지 고민하며 눈동자를 굴리는 겔미어를 가리켰다.

“하아, 그래. 그렇긴 하네. 이제 저건 내 형이 아니지.”

버렌이 긴 숨으로 응어리진 감정을 뱉어버린 뒤에 피식 웃었다.

“너를 노렸어. 네가 더 높이 올라가기 전에 죽이고 싶다더군.”

그는 차가운 눈동자로 겔미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널 죽이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 네 약점을 알아오고, 널 유인해 오길 원했지.”

“버렌!”

겔미어가 악을 질렀지만, 버렌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걸 거절했더니, 저놈을 이용해서 세뇌까지 걸어왔지….”

버렌은 겔미어 옆에서 손을 떠는 올란을 턱으로 가리켰다.

“와, 대단하네.”

라온이 겔미어의 번들거리는 눈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예상대로일 줄이야.’

처음에 예측한대로 겔미어는 자신을 노리고 버렌을 이용하려 들었다. 형이 동생을 납치하여 세뇌를 걸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그릇이 개밥그릇만도 못한 인간은 처음 봐.”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 무력에 맞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겔미어는 분명 자신보다 높은 곳에 선 검사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가 너무도 작게 보였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

겔미어를 보며 씩 웃자, 그의 눈동자에 시퍼런 살기가 돋아났다.

“닥쳐라. 그 주둥이를 잘라버리기 전에.”

겔미어가 섬뜩한 음성을 흘리며 검을 뽑았다. 세검보다는 조금 더 두꺼워서 찌르기만이 아니라, 베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얇은 검이었다.

“버렌. 정신은 멀쩡하겠지?”

“싸울 수도 있어!”

버렌이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행이네.”

라온이 피식 웃고서 제천검을 뽑았다. 손목을 풀듯 검을 쥔 오른손을 빙글 돌렸다.

철그렁!

검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오기 전에 버렌을 구속하던 수갑과 족쇄가 검기에 뜯겨나갔다.

“으헉….”

버렌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주저앉았다.

“거, 걱정 마! 오랫동안 몸이 묶여 있어서 그런 거니까.”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젓고서 바로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가 부르르 떨리는 걸 보니 말과 달리 조금 힘들어 보였다.

“흐음….”

라온은 버렌의 육체가 아니라, 단단하게 굳은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데.’

일주일가량 묶여서 세뇌를 당했다고는 믿기 힘든 기세다. 머리 위에서 흐르는 기이한 기운과 섬뜩할 정도의 집중력도 느껴졌다.

-흠, 각성 상태에 들어갔군.

라스가 버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각성 상태?’

-네놈이 밥 먹듯이 하는 무아지경의 바로 전 단계이니라. 집중력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지.

‘확실히 비슷해 보이네.’

잠을 오랫동안 자지 않고, 버티다 보면 어떤 순간 졸음이 사라지고, 정신이 극한으로 맑아질 때가 있다.

세뇌를 당했기 때문인지, 이 특이한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버렌의 상태는 그때와 비슷했다.

‘이걸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라온이 겔미어에게 검을 겨눴다.

“시작해볼까.”

거칠게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좋다. 그 주둥이부터 베어주마!”

겔미어가 숨을 고르며 오러를 일으켰다. 거대하면서도 날카로운 창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섬뜩한 기파가 쏘아져 왔다.

터엉!

라온은 겔미어에게 돌진하는 척하다가 태화삼보를 밟았다. 물 흐르듯 방향을 전환하여 문 앞에 서 있던 디르를 걷어찼다.

뻐어억!

갑작스럽게 얻어맞은 디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벽에 처박히고,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탁!

라온은 가볍게 검을 챙긴 뒤에 버렌의 옆으로 물러섰다.

-길 안내에 이어 검까지 내어주다니, 멍청하군. 아낌없이 주는 놈이로다.

‘음….’

너만 하겠어? 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받아.”

라온은 방금 얻은 검을 버렌에게 내어주며 올란을 가리켰다.

“저놈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물론이다!”

버렌이 탁한 숨을 내쉬고 일어서 검을 꽉 말아쥐었다. 올란을 보는 눈동자에 투지가 흘러넘쳤다.

“그럼 시작하지.”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짓고서 태화일보를 밟았다.

터엉!

겔미어의 공간을 파고들어 검을 올려 그으려 할 때 머리 위에서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검강. 겔미어가 일으킨 강기가 두개골을 쪼갤 듯이 떨어져 내렸다.

‘무력은 가짜가 아니로군.’

태화보의 속도와 이동 방향을 예측하여 바로 검을 내리치는 모습은 세간에서 듣던 호풍검 겔미어의 이름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뻗은 왼발에 힘을 주며 허리를 회전시켰다. 기립근을 통해 이어진 회전력을 검날에 담으며 만화공 회천을 일으켰다.

콰르르르!

검날에서 톱날처럼 돌아가는 열기와 겔미어의 세검에 깃든 푸른 바람의 기운이 맞부딪치며 막대한 충격을 일으켰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밀실의 벽들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여긴 너무 좁지?”

라온이 진각을 밟으며 겔미어와 경합하는 제천검을 전력으로 올려쳤다. 검격에 담긴 막대한 힘에 겔미어가 구멍 난 천장으로 솟구쳤다.

“이, 이놈!”

“따라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허공에 있는 겔미어에게 손짓을 하고서 뒤를 돌았다.

“죽지 마라. 널 기다리는 사, 사람들이 많으니까.”

라온은 왠지 모르게 사람이라는 단어를 살짝 더듬은 뒤에 겔미어를 따라 깨진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걱정 마.”

버렌이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죽을 생각 없으니까.”

“하….”

올란이 헛바람을 뱉으며 중앙으로 걸어왔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역시 명불허전이군요. 겔미어 도련님이 왜 이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셨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가 무너진 천장을 올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검을 들어라.”

버렌이 올란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검?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기든 지든 저는 죽을 텐데요.”

그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 내가 널 이길 수 있다고 했을 때 열 좀 뻗친 것 같던데, 아닌가?”

“음….”

“가기 전에 그 말이 맞다는 걸 확인시켜 줄 테니, 덤벼.”

“저 위로 간 괴물과 달리 도발 한번 더럽게 못 하시네요.”

올란이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지그하르트의 직계를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그는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좌측으로 짓쳐 들어 검을 내리긋는다.

은색 검날이 반원을 그리며 다섯 개로 늘어난다. 빠르면서도 화려한 검격. 제대로 단련한 검술이었다.

캬앙!

단전에서 잠자고 있었던 오러를 전력으로 일으켜 검을 내쳐보았지만, 올란의 검격은 그 힘을 역이용하여 더 빠르게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올란이 코웃음을 치며 턱을 치켜 올렸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월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아직 제 경지에 닿지 못했어요.”

“세월? 경지? 난 그게 깨지는 걸 수없이 봐왔다.”

버렌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검을 쳐냈다. 귀족의 춤사위처럼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검격이 올란의 검세를 차단했다.

찌지지징!

검과 검이 중간에서 맞물리며 오싹한 쇳소리를 울렸다.

‘장기전은 못 가.’

일주일가량 묶여 있었고, 잠을 자지 못했기에 오래 버티는 건 무리다. 일격으로 올란의 검을 깨부숴야 한다.

후우우웅!

하지만 올란의 검은 화려한 변화와 강대한 힘을 담은 채 끝없이 밀려 들어왔다. 노리는 위치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속도도 빨라 막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

버렌은 숨을 고르며, 예전 라온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환검과 변검을 어떻게 잡냐고? 간단해. 대부분의 환검과 변검은 마지막 순간에 진짜 모습을 드러내. 겁나고 조급해져도 꾹 참고 기다리면 투로가 보일 거야.]

어떻게 마스터인 가론의 변화를 지웠냐고 물어보았을 때 해준 답이었다.

‘그놈은 예전부터 그랬지.’

라온에게 무학에 대해 질문을 하면 녀석은 꼭 답을 내놓는다. 남들은 어떻게든 비법을 숨기려 들지만, 녀석에겐 그게 없다. 그날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못하면 다음 날에 와서라도 알려주는 이상한 놈이었다.

‘그런 멍청이를 배신할 수 있겠냐고!’

버렌은 입술을 깨문 채 목과 가슴을 향해 다가오는 올란의 검을 직시했다. 당장 물러나거나, 검을 내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채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후우웅!

올란의 검이 닿기 직전 다섯 개였던 검날이 하나로 합쳐지며 목이 아니라, 가슴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검병을 꽉 말아쥔 채 삭풍검의 풍도창성을 펼쳐냈다.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바람의 칼날이 변화를 멈춘 올란의 검을 쳐내고, 그의 어깨에 박혔다.

“크으윽!”

올란이 기겁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그건 최악의 실수다. 삭풍검의 진의는 북풍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공세니까.

찌지지직!

서늘한 바람이 깃든 칼날이 올란의 후퇴보다 더 빠르게 그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커헉….”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베어진 올란이 턱을 떨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버렌을 올려보았다.

“어, 어떻게….”

“평생 난 라온의 뒤만 본다고 했었지?”

버렌이 검을 땅에 박은 채 지친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맞아. 내가 라온의 앞에 서 있기는 힘들겠지. 다만 난 그냥 그 녀석 뒤만 보고 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라온의 싸움을 지켜보며 내 토대를 쌓았다.”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라온을 죽이려는 너희들과는 달라.”

“아….”

“편하게 죽을 생각 마. 죄값을 다 갚고 죽어라.”

버렌은 주먹을 내리쳐 올란을 기절시킨 뒤에 그의 출혈을 막았다.

“하아….”

온몸에 힘이 빠져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런 때에 풍도창성이 완성되다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초식을 이런 상황에 쓰게 된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후!”

버렌은 천장을 올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약속 지켰다.”

*     *      *

“아래는 끝난 모양인데.”

라온은 검을 맞대고 있는 겔미어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제대로 시작하지.”

“마지막 기회를 주마.”

겔미어가 세검을 비틀어 올려쳐서 거리를 벌렸다.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다 무마할 수 있으니까.”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다고?”

라온이 한 층 더 깨진 천장에서 울리는 함성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여긴 중무전. 집법부도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이다.”

“우린 왔는데?”

“다른 이들이 다 네놈 같은 미친놈인지 아는 것이냐!”

겔미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상을 구겼다.

“버렌을 넘겨주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지나간다면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너 어디 모자라냐? 아니, 그게 없나?”

라온이 관자놀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뇌가 없냐는 듯 조롱하자 겔미어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죄는 너희가 졌지. 난 내 쫄다구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로군.”

겔미어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후배가 겁난다고 동생을 납치해서 세뇌하려던 놈이 뭐래?”

“내가 두려워했던 건 네놈의 미래다. 지금의 너 따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예리한 기운에 피부가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추잡하지만 마스터 중급인 건 확실했다.

“마지막 기회다. 모두를 데리고 물러나라.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살아라.”

“미안한데, 이미 늦었어.”

라온 위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집법부도 호출했거든. 호루라기 소리 안 들려?”

광풍단이 전마단을 쓰러뜨린 후 올 수 있도록 집법부에는 편지를 보내뒀다. 지금쯤이면 집법부 검사들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정말이지 미쳤군.

라스는 안색이 빨개졌다가 노래지는 겔미어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네놈처럼 상대를 농락하는 놈은 정말 처음이니라. 본왕에게 강의를 좀 해다오. 꼭 조롱하고 싶은 놈이 있….

‘나중에.’

강의비는 후불로 준다는 라스를 밀어버리고, 겔미어에게 집중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겔미어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세검을 찔러온다. 바람이 깃든 강기의 칼날이 찰나의 순간 심장 앞에 이르렀다.

극한의 속도와 정확한 일격. 오싹함이 등골을 스칠 정도의 위력이었다.

“흐읍.”

라온이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허리를 낮췄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육체의 힘에 중단전을 스친 만화공의 기운을 얹었다.

쩌저저정!

화염의 강기로 타오르는 제천검이 겔미어가 내지른 극한의 찌르기와 격돌했다.

쿠와아아앙!

제천검과 세검이 중단에서 경합하며 시뻘건 열염의 폭풍이 지하 공간을 뒤덮었다.

“난 마스터 중급이다! 하급인 네놈 따위는 언제라도!”

“하급, 중급, 상급. 그런 건 수련할 때나 따지는 거야.”

라온이 이마를 맞댄 겔미어를 굽어보며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전투가 시작됐다면 등급 따윈 중요하지 않아. 무인이라면 검으로 말하라.”

만화공의 강기에 전사경을 담았다. 칼날 위에서 치솟은 열화의 폭풍이 겔미어의 바람을 사정없이 지져버렸다.

“결국 벌주를 택하겠다는 뜻이로군. 좋다.”

겔미어가 세검으로 라온의 심장을 겨눈 채 눈빛에 살의를 담았다.

“건방진 그 혓바닥부터 잘라주마.”

그에게 피어나는 바람의 기운이 머리를 울릴 정도로 강맹해졌다. 마스터 중급의 전력. 이제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온 힘을 끌어낸 것이다.

“이제 좀 재밌겠네.”

라온의 눈동자에 시뻘건 뇌광이 번졌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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