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67화 (267/653)
  • 제267화

    라온은 본인이 만든 연기에서 켁켁거리는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단전이 완성됐어.’

    미숙한 형태였던 인공단전이 리메르의 육체에 완벽하게 뿌리를 내렸고, 마나회로와도 연결되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짜인 옷감을 보는 듯했다.

    ‘예상보다 더 나아갔어.’

    새로운 단전과 깔끔하게 회복한 마나회로가 리메르가 쌓아 올린 무학과 어우러지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크으, 이 먼지 뭐야!”

    “네놈이 문을 부숴서 모래가 폭발했잖아!”

    도괴가 인상을 찌푸린 리메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런데 저 인간….’

    라온은 악 소리를 내지르며 자빠진 리메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오러가 왜 저 모양이지?’

    양이 너무 적어.

    리메르의 인공단전에 깃든 오러는 예상했던 양보다 훨씬 적었다. 중급 수준의 영약 두 개와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데, 왜 저 정도 오러 밖에 모으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설마….’

    미친 가정이 떠올랐다. 남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지만, 저 괴상한 엘프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단주님.”

    라온이 리메르 앞으로 다가갔다. 자빠진 채 엉덩이를 문지르는 리메르를 보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팔려고 숨겨뒀죠?”

    “엉? 뭘?”

    리메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두고 간 영약을 팔아서 도박 자금을 만들려고 안 드신 거죠?”

    그것 말고는 리메르의 오러가 저렇게 작을 리가 없었다.

    “동패까지 사용하면서 구한 영약을 먹지도 않고 팔려고 하다니! 이 인간이 진짜!”

    “허! 네놈 설마 이 녀석이 남겨둔 영약을 팔려고 한 거냐?”

    도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아냐! 아니라고!”

    리메르는 절대 아니라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지금 단주님의 단전은 갓 태어난 아이와도 같습니다. 영약의 기운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 그건 맞는데….”

    “그 상태에서 중급 영약 두 개를 복용했는데, 그 정도 오러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라온이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리메르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참을 수 없는….”

    “걸렀어!”

    리메르가 마른침을 삼키고 비명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예?”

    “너도 알잖아! 영약이라고 전부 다 순수한 마나는 아니라는 거.”

    “당연히 알죠.”

    영약은 순수한 마나 덩어리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들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든 자연의 마나가 형태를 갖추게 되며 필연적으로 많은 불순물이 쌓이게 된다.

    “그 불순물들을 모두 거르고 영약에 깃든 순수한 마나만 받아들였다고!”

    리메르는 단전을 가리키며 콧등을 찡그렸다.

    ‘얼마나 고마웠는데, 내가 그런 짓을 하겠어.’

    라온이 놔두고 간 영약을 보았을 때 고마워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움을. 그것도 너무도 큰 도움을 받아 감정이 북받쳤다.

    ‘그래서 더 나아갔지.’

    라온과 광풍단의 아이들에게 너무도 고마웠기에 더 빨리 강해질 방법을, 이전보다 더 강해질 방법을 궁리하고 찾아냈다.

    ‘라온 지그하르트.’

    바로 너였지.

    라온의 오러는 자연의 불꽃이나, 얼음을 담은 듯 순수하다. 너무도 정심하기에 적은 양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단 한 줌의 오러도 없는 백지상태였기에 가능한 연공법. 순수한 기운만을 만들어내는 엘프 특유의 연공법을 운용하여 두 영약의 진액만을 단전에 담았다.

    덕분에 지금 단전에 있는 오러의 양은 눈꼽보다 작지만, 그 순도는 라온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봐.”

    리메르가 짧게 숨을 내쉬고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피이잉!

    그의 손가락 위로 녹색 기운이 치솟으며 시원한 녹풍이 허공을 스쳤다.

    “이건….”

    라온이 만화공을 끌어 올려 손가락 위로 일으켰다. 시뻘건 불꽃이 바람을 만나며 꽃송이처럼 부풀었다.

    ‘비슷해.’

    만화공의 기운처럼 속성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의 순도를 가졌다. 작디작았지만 크기를 뛰어넘는 힘이 느껴졌다.

    ‘이게 완성된다면….’

    완벽해진 단전과 마나회로에 저 오러가 자리를 잡는다면 리메르는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엘프의 연공법인가요?”

    “그래. 오러를 만드는 속도가 느려서 다들 버렸던 건데, 지금의 나라면 그 속도를 높일 수 있으니까. 익혀봤지.”

    리메르는 젊은 시절의 그에겐 참을성이 없었다며 피식 웃었다.

    “이제 인정해주는 거지?”

    “네. 사과드리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메르는 본래의 성격과 달리 영약을 모두 먹고 순수한 마나만을 단전에 채웠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애들은 어디 있어? 지금 훈련시간 아니야?”

    “맞습니다. 훈련하고 있죠.”

    북망산 쪽을 보며 옅게 웃었다.

    “도련님.”

    뒤에 서 있던 주디엘이 고개를 숙였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래. 고마워.”

    라온은 아직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주디엘은 가짜 웃음을 짓고서 연무장을 떠났다.

    “단주님.”

    “응?”

    “단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강제 집행은 언제 하죠?”

    버렌이 납치를 당했다고 해도 지금은 확정이 아니기에 중무전에 들어갈 명분이 필요했다. 그걸 강제 집행으로 메울 생각이었다.

    “내가 그걸 알 거 같냐?”

    리메르는 자랑이라는 듯 팔짱을 낀 채로 콧김을 흥 뱉었다.

    “하아….”

    “4일이다.”

    한숨을 내쉴 때 도괴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전시에는 즉시 발동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때는 4일이지….”

    “그럼 5일째에 움직일 수 있겠군요.”

    세뇌에는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린다고 했으니, 5일째에 간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근데 왜?”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본 거지?”

    두 사람이 동시에 앞으로 다가왔다.

    “바보 하나 구하러 가야 할 것 같아서요.”

    라온은 중무전이 있는 곳을 돌아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      *

    “크으….”

    “크르릉!”

    라온은 뜨거운 눈빛을 쏘아내는 광풍단 검사들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방치한 것에 화가 났는지 모두는 정말 개가 된 듯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음….’

    정신과 육체 모두 단단한 전사를 키우려고 한 건데 왜 짐승이 되어가는 건지 잘 모르겟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법이지.’

    고생시켜서 미안하지만 이런 때에 약하게 나가면 앞으로의 훈련을 시키는데 지장이 간다. 훗날 사과하더라도 지금은 강하게 나갈 때였다.

    “수고했다.”

    라온은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수우우우우고? 슈발이다! 이 새끼야!”

    마르타가 눈동자에 검은 불꽃을 태우며 일어섰다.

    “존잘 라온. 너무 심했어….”

    항상 편을 들어주는 루난도 머리를 부여잡은 채 맹한 눈을 치켜떴다.

    “밤으로 모자라, 아침까지 방치해 놓고! 수고라고?”

    “이번에는 너무 했어요! 정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구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 어욱, 아직도 구역질이….”

    “버렌 님도 이걸 겪어봐야 하는데….”

    밤을 넘어 아침까지 긴장과 집중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검사들은 1시간가량 휴식을 했음에도 지친 티를 감추지 못했다.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그래도.’

    지금이 중요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을 때가 몸에 자세와 무학을 때려 박기 가장 좋기에 지금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방치라….”

    라온이 코웃음을 치며 광풍단을 굽어보았다.

    “처음부터 그걸 위한 훈련이었다.”

    “뭐?”

    “너희들의 집중력은 짧고, 얕다.”

    당황하는 광풍단들을 강대한 기파로 짓눌렀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강한 적과 싸우게 될 거야. 비등하거나 더 강한 적과 싸울 때 중요한 게 뭘까? 첫 번째는 당연히 무력. 그다음이 바로 집중력이다.”

    라온의 눈빛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그 서늘한 빛을 마주한 광풍단원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의 무학을 분석하고, 내가 유리한 방식으로 싸움을 이끌기 위해서는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 초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아….”

    “그럼 방치가 아니라….”

    “그래. 너희들이 집중력을 기를 수 있도록 일부러 놔두었다. 처음이었지? 그토록 오래 긴장하고 집중했던 적은?”

    라온의 말에 광풍단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뇌가 잘 돌아가지 않고, 몸은 물에 젖은 듯 무거운 상황. 그걸 처음 겪는다면 십중팔구는 적에게 죽는다. 난 여기서 너희에게 첫 번째 죽음을 피할 기회를 준 거다.”

    “끄응….”

    마르타도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축 내렸다.

    “이 훈련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훈련을 할 때마다 목숨 하나씩을 번다고 생각해. 혹여나 불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빼줄 테니까.”

    당연하게도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흑환을 차라. 다시 훈련 시작이다.”

    “후우!”

    “어쩔 수 없네….”

    “크으, 버렌 님이 부럽다….”

    광풍단원들은 욕을 내뱉고 이를 갈지언정 바로 흑환을 착용했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뜀박질부터 시작한다. 광풍단 전원 전력으로 달려!”

    “으아아아아!”

    “이야아아아!”

    “제기랄!”

    광풍단원들은 악을 내지르며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악에 받쳤는지 잠을 못 자고, 흑환을 차고 있음에도 어제보다 더 빨라졌다.

    “푸하하하하!”

    리메르가 광풍단원들을 보며 낄낄 웃었다.

    “잠도 못 자고 달리고, 수련이라니 불쌍해라. 내가 저기에 없어서 참 다행이야.”

    “뭐하십니까?”

    라온은 히죽이는 리메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웃기잖아. 조금만 보고 갈….”

    “아뇨. 안 뛰고 뭐 하시냐구요.”

    “어? 나, 나도?”

    리메르가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떡 벌렸다.

    “전 분명 광풍단 전원 전력으로 달리라고 말했는데요.”

    “아니, 난 단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광풍단의 훈련권과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건 접니다. 단주님의 재활훈련도 마찬가지죠.”

    “나, 나는 달리기를 하기에는 좀 강해서….”

    “그걸 따지시려면 가주님을 찾아가시던가요.”

    라온은 예전 훈련생 시절 리메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씩 웃었다.

    “다시 말씀드리죠. 뛰어!”

    “이 악마 자식아아아아!”

    리메르가 악을 내리지르며 연무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아이고, 꼬시다!”

    “내가 저럴 줄 알았지!”

    광풍단원들은 연무장을 달리는 리메르를 보며 역으로 낄낄 웃었다.

    라온은 기초 체력 훈련을 끝낸 뒤 모두를 연무장 중앙에 불러모았다.

    “몸은 풀렸을 테니, 지금부터는 대련이다. 단순히 전투를 하는 게 다가 아니라, 죽음 직전까지 몰아서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연습을 할 테니, 마음 단단히 먹도록.”

    “아욱….”

    “밤새고, 달리고 구르고, 이젠 대련….”

    “적한테 죽기 전에 단주 대리님한테 죽겠어요!”

    광풍단원들은 헥헥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하기 싫다는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상대는?”

    마르타가 눈매를 좁히며 중요한 부분을 물어왔다.

    “당연히….”

    라온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수련검을 들어 올렸다.

    “나다.”

    “어…?”

    “이 미친!”

    “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마르타와 루난 그리고 광풍단 모두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말했잖아.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강자라고. 나 정도면 그 대상이 되기에 딱 좋지.”

    라온이 수련검을 어깨에 걸친 채 턱을 모로 세웠다.

    “그냥 강자가 아니라, 너무 강자잖아!”

    “맞아. 이건 그냥 패겠다는 거지!”

    “흑환도 안 찼잖아!”

    “저, 정신이 나갔어….”

    “이 악귀 같은….”

    광풍단은 라온의 거만한 표정에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하아, 너희 진짜 잘 모르네.”

    리메르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온 정도의 무인이 맞상대를 해주는건 기연 중의 기연이야. 이 기회를 잘 살릴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열 내다간 한 방에 나가떨어질 거다.”

    그는 기회를 잘 잡으라고 주절거리며 혀를 찼다.

    “역시 단주님이시네요. 방금 정말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치? 내가 원래 말을 잘….”

    “그러니 대련은 단주님부터 시작하죠.”

    “어…?”

    리메르의 입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기로 벌어졌다.

    “본래 이런 일은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

    라온이 수련검을 휘돌려서 리메르를 겨누었다.

    “딱 좋은 예시가 될 겁니다.”

    “얌마! 나 방금 네 편을 들어준 거라고!”

    “검이나 뽑으시죠.”

    손을 휘젓는 리메르를 무시하고 오러를 끌어 올렸다. 막든 안 막든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익!”

    리메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수련검을 뽑았다.

    “좋아! 내가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에?”

    그는 라온의 검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강기를 보고 눈동자가 풀려버렸다.

    “가, 강기?”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아니, 나 환자….”

    “이젠, 아니잖습니까.”

    “이 미친놈아! 나 오러 눈꼽만큼 있는 거 봤잖아!”

    “클라스라는 게 있잖습니까. 시작하죠.”

    라온이 빙긋 웃고서 검을 중단으로 세웠다.

    “이 자식 진짜 미쳣어!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고!”

    리메르는 본인이 놀렸던 광풍단 검사들과 같은 소리를 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럼 갑니다.”

    라온은 가람보법을 밟아 리메르의 앞으로 이동한 뒤 검을 내리쳤다. 염화의 강기가 대기를 불태우며 허공을 찢어내며 긁었다.

    화아아아!

    리메르는 얼마 없는 오러를 모조리 뿜어내며 강기를 간신히 비틀었다. 옷소매가 만화공의 열기에 녹아 허공으로 흩날렸다.

    “이, 이거 진짜잖아!”

    그는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

    “이 미친놈이 스승 죽인다! 날 죽인다고!”

    -아, 악마에게도 스승은 있는데….

    라스가 리메르의 비명을 들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네놈은 대체….

    *     *      *

    티아스는 중무전에 있는 본인의 숙소에 들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죽겠군.

    며칠째 잠을 자지 못했기에 정신이 몽롱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누우면 바로 수마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불안함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이게 맞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겔미어가 버렌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했기에 라온에게 도움 요청을 하지 못하고, 버렌이 잘 지낸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라도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감시자가 붙어서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젠장….”

    티아스가 이를 악물고 침대를 내리쳤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늙은 몸을 바쳐서라도 버렌을 구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오랜만이군요.”

    “허억!”

    방의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 당신은….”

    달빛이 비치는 창가로 키가 큰 남성이 걸어 나온다. 화려한 금발에 선명한 적색 눈동자. 라온 지그하르트였다.

    “라온 님이 어떻게 여기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라온은 옅게 웃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여,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지켜보는….”

    티아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버렌이 납치당한 이후 계속 감시를 당하고 있었기에 라온과 만나는 게 보여져선 절대 안 되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티아스 님을 지켜보던 사람은 떠났으니까요.”

    라온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버렌은 어디에 있죠?”

    “예?”

    “훈련 때문에 호출했는데 4일 동안 아무런 응답도 없더군요. 징계를 위해서 강제 집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계속 불러도 답이 없었다며 징계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분명 찾아갔지 않습니까.”

    “언제요?”

    “나흘 전에 분명…아!”

    티아스는 라온의 눈동자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의 어둠을 불태우는 듯한 선명한 붉은 눈동자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다, 다 알고 계시는 거야!’

    라온은 버렌이 납치되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를 구할 방법으로 강제집행을 선택한 것이다.

    즉, 지금 자신에게 두 가지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버렌에 행적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버렌의 위치에 대해.

    ‘이 사람이라면….’

    이 남자라면 버렌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티아스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저었다.

    “중무전 내부 현진각에 있을지도 모, 모르겠습니다.”

    버렌이 갇혀 있는 건물의 이름을 말하고서 더운 숨을 뱉었다.

    “강제 집행은 명령을 내 린지 5일 후부터 실시할 수 있다더군요. 내일이 딱 5일째이니, 밤에 이곳을 떠나 5연무장으로 와주십시오.”

    라온은 빙긋 웃고서 창문을 열었다.

    “잠시만요! 가, 감사….”

    고맙다고 말을 하려 할 때 라온이 손가락으로 본인의 입을 막았다.

    “뭐가 고맙다는 겁니까. 전 얍삽하게 훈련을 땡땡이친 제 쫄다구를 잡으러 가는 것뿐인데요.”

    그는 피식 웃고서 빛을 받은 안개처럼 허공으로 녹아내렸다.

    “흐윽, 감사합니다.”

    티아스는 라온이 사라진 창가를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읊조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     *      *

    다음 날 저녁.

    “크르릉.”

    “으르르….”

    “크….”

    라온은 광풍단 검사들의 시뻘건 눈빛과 맹수의 목울음 같은 으르렁거림을 들으며 눈매를 좁혔다.

    ‘진짜 광견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훈련을 조금 과하게 시켰는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검사들의 기세가 날카롭다 못해 사나울 정도로 강렬해졌다. 잠을 최소화하면서 전생에 했던 암살자 훈련을 시킨 효과가 조금 과했던 것 같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히 늘었어.’

    무력 자체가 크게 상승한 건 아니지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2배 이상 길어졌고, 체력과 투지 역시 급상승했다. 이 변화는 실전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딱 좋네.’

    지금의 광풍단이라면 한 급 위라고 예측되는 전마단과 좋은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버렌을 구하고, 광풍단의 실전 훈련을 하기에 적절한 상황이었다.

    “버렌.”

    “크릉?”

    “그 배신자!”

    “죽이겠어!”

    “으아아아!”

    버렌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광풍단 모두가 동시에 이를 갈았다. 홀로 꿀을 빤 버렌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한 격렬한 반응이었다. 버렌을 가장 잘 따르던 크레인마저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모르는 게 있다. 버렌은….”

    “죽인다!”

    “그 배신 뺀질이!”

    “머리통을 그냥!”

    “음….”

    버렌의 이름만 꺼내면 욕이 나오니 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좀 진정하고 들어. 버렌은….”

    라온은 광풍단에게 버렌의 사정에 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버렌을 가두고 있는 전마단을 친다. 놈들을 꺾고 버렌을 구해 올 거야.”

    “한 마디로 버렌이 훈련을 못 하게 막고 있는 쌍놈들이 있다는 뜻이죠?”

    “죽일 놈들이네! 버렌만 훈련을 빠지게 해?”

    “다 조지고, 버렌만 훈련을 받게 할 거야!”

    “크르르!”

    광풍단은 이미 버렌이라는 이름에 눈이 돌았기에 제대로 된 사연을 듣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전마단이든, 오마든 상관없이 버렌을 데리고와 이 지옥 훈련을 받게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음….”

    라온은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맹렬해진 광풍단 검사들의 기세를 느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됐나.”

    예상과는 반응이 다르지만 전투력 자체는 더 올라갔으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되긴 뭐가 됐다는 것이냐! 의미가 완전 다르지 않느냐!

    라스는 광풍단을 보며 턱을 떨었다.

    -저것들은 말귀도 못 알아듣는 그냥 미친개다! 광풍이 아니라, 광견이라고!

    ‘지금은 광견이 필요할 때야.’

    라온이 손을 들어 올리며 중무전쪽을 향해 손짓했다.

    “버렌을 잡아 와서 지금까지의 훈련을 두 배로 시키자!”

    “우와아아아아!”

    “모든 책임은 단주님이 진다! 다 때려 부숴!”

    “이야아아아아!”

    “가자!”

    5연무장에서 땅이 흔들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 나?”

    미리 알고 있었기에 단상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리메르가 입을 떡 벌렸다.

    “나 또 사고 치면 가주님한테 진짜 죽어!”

    *     *      *

    지그하르트 본관에서도 특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중무전 정문.

    두 명의 검사가 그 정문 앞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가 중무전 무인이라고 하니까. 그 멍청한 놈이 갑자기 설설 기면서 눈치를 보더라고.”

    “그럴 수밖에. 입 잘못 놀렸다간 목이 날아갈 테니까.”

    “중무전에 들어와서 정말 다…음?”

    낄낄거리던 검사들은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서른 명가량의 사람들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이 밤에 누구지?”

    “글쎄.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눈에 익… 헉! 라온 지그하르트!”

    “라, 라온?”

    둘은 중앙에서 걸어오는 라온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 밤에 저런 살벌한 눈빛으로 다가오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머, 멈추십시오! 여기는 중무전의 영역입니다.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았다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약속은 없지만, 목적은 있지.”

    라온이 중무전 검사의 말을 받아주며 계단을 올랐다.

    “모, 목적?”

    “그래. 버렌 지그하르트. 내 호출 명령을 무시한 건방진 놈을 잡으러 왔다.”

    서늘한 미소를 흘리며 무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자, 잠….”

    “강제 집행이다!”

    라온이 씩 웃으며 중무전의 정문을 걷어찼다.

    콰아아앙!

    파괴왕 특성이 일어나며 두 개의 정문이 사정없이 터져나갔다.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

    “적인가!”

    중무전답게 문이 박살 나기도 전에 강대한 오러를 느끼고, 이곳저곳에서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적당하군.’

    가진 기운과 기파를 보니, 광풍단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는 검사들이었다.

    “광풍단 단주 대리 라온 지그하르트다.”

    라온은 우르르 몰려든 전마단 검사들을 굽어보며 고개를 모로 틀었다.

    “죄인 버렌 지그하르트를 잡으러 왔다. 방해한다면 저 문처럼 만들어주지.”

    “저, 저 미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막아! 절대 들여보내지 마라!”

    전마단은 악귀처럼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검을 뽑았다.

    “공무집행을 방해하겠다는 거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크르르!”

    “으르릉!”

    이를 가는 광풍단에게 전마단 무인들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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