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라온은 버둥거리는 리메르를 연공실에 던져 넣었다.
“얌마! 조심히 좀 다뤄! 나 환자라고!”
그의 주절거림을 무시하고, 뒤를 돌았다.
“총관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도괴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이 나이에 호법을 서야 하다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군.”
그는 불평하면서도 뒤를 돌아 문 앞에 섰다.
“호법은 믿을 수 있는 분에게 맡겨야 하니까요.”
“흥!”
“감사합니다.”
라온은 콧방귀를 뀐 도괴의 등에 고개를 숙이고서 연공실로 들어갔다.
“시작하죠. 단전은 직접 깨실 겁니까? 아니면 제가 깨드릴까요?”
“달걀 깨듯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리메르는 무서운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미 결정하신 일이 아닙니까?”
“그, 그건 그런데. 마음의 준비라도….”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인공단전을 사용하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마음의 준비도 하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가문으로 복귀하는 길에 리메르에게 인공단전의 사용법을 알려주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말했었다. 말에 탄 채로 졸더니, 제대로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그건….”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해야 조금이라도 빨리 강해질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 알겠다! 알겠어! 이 정 없는 자식아!”
리메르가 악을 지르고 바닥에 정좌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금이 간 단전의 오러를 일으켰다. 평생을 쌓아온 기운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듯 부드럽게 마나회로를 흘러갔다.
‘별 경험을 다 하는군.’
찢어진 마나회로를 회복시키고, 단전을 깬 뒤에 새 단전을 만든다니, 라온과 다른 아이들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우면서도 부족한 스승이라 미안했다.
우우우웅!
마지막을 즐기듯 마음껏 오러를 운용한 뒤에 눈을 떴다.
“라온. 기회를 놓치지 마라.”
“예? 그게 무슨….”
“곧 알게 될 거야.”
리메르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강기를 일으킬 때처럼 단전의 오러를 증폭시킨 뒤 단숨에 폭발시켰다.
찌지지직!
단전에 그어진 상흔들이 깊게 갈라지며 폭주한 오러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하루종일 걸리겠어.’
한 번에 깬다!
리메르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다시 한번 오러를 증폭시켰다.
파캬아아앙!
수백 장의 유리가 깨지는 듯한 굉음이 전신을 울리고, 얇디얇아진 단전이 손바닥 위에 떨어진 서리 조각처럼 녹아내렸다.
‘크으으으!’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짓눌렀지만, 그보다 더한 허무함이 영혼을 파고들었다.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의 혼돈이 뇌리를 뒤덮었다.
쿠우우우우우!
길을 잃은 오러가 마나회로를 지나 허공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연공실 내부에 순도 높은 오러로 이루어진 폭풍이 치솟았다.
“후욱!”
리메르가 깊은숨을 몰아쉬고서 눈을 떴다.
“라온. 내 오러를 가져라.”
“예?”
라온이 눈을 부릅떴다.
“너도 느끼고 있잖아. 지금 이 안에는 내가 모았던 마나가 지랄발광을 떨고 있다. 네 속성과는 다르지만 나름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챙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바로 인공단전을 받아들이시고 오러를 운용하시면….”
“할 수 있으면 당연히 내가 챙겼지! 하지만 시간이 안 돼.”
리메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오러들은 이미 자연의 마나와 닿았어. 몇 분 가지도 못하고 사라질 거다. 지금 저걸 챙길 사람은 너뿐이야.”
솔직히 말해서 단전에 있던 오러를 모두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간신히 회복한 마나회로가 다시 찢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전 저걸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단주님의 상태를 보려고 왔을 뿐입니다.”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리메르의 오러를 챙길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저 빨리 단전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다였다.
“알아.”
리메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널 모르겠냐? 남들 생각은 해도, 네 생각은 안 하는 놈인 거 알아.”
“저는….”
“주절거리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 오러 연공부터 하라고! 쨔샤!”
그는 정말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영류환을 씹어 삼키고, 바로 인공단전을 입 안에 넣었다.
“나도 단전을 만들 테니까. 너도 오러 연공을 해. 끝나고 보자!”
리메르는 그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텅 비어버렸던 그의 몸속에서 순도 높은 자연의 기운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인공단전과 영류환의 기운이 움직이고 있어.’
무속성이었던 인공단전이 리메르의 육신과 오러 성질에 맞게 형태가 변하고, 영류환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그의 마나회로에 스며들어 아직 다 지우지 못한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음….”
라온이 아직 허공을 맴도는 오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리메르도 안정을 찾았고, 도괴라는 호법까지 세워두었으니, 연공을 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고오오오오!
눈을 감고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했다. 각기 다른 회로를 공유하는 오러가 무수한 선을 그리며 외부에서 꿈틀거리는 바람 속성의 오러를 빨아들였다.
‘음….’
라온이 마나회로를 회전하는 오러를 느끼고 눈썹을 찡그렸다.
‘이대로는 안 돼.’
리메르의 말대로 지금 퍼져 있는 오러의 속성은 바람. 남은 것도 많지 않지만 속성이 달라 흡수한 것조차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지.’
불의 고리를 일으켰다. 여섯 개의 고리가 일제히 공명하며 바람 속성 오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순한 기운만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자연 친화력이 높은 리메르가 모아둔 오러였기에 그 안에 깃든 힘과 순도는 웬만한 영약보다 훨씬 뛰어났다.
“후우….”
라온은 불의 고리로 정화한 기운을 만화공과 글래시아로 흡수한 뒤에 눈을 떴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님에도 단전이 충만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했습니다.]
[<만화공>의 성취가 상승했습니다.]
[<글래시아>의 성취가 상승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몇 시간 연공을 했을 뿐인데, 각 연공법의 성취가 크게 상승하고, 능력치가 올랐으며, 단전의 오러가 한층 더 단단해졌다.
리메르가 쌓아 올린 세월이 오러의 지지대가 되어준 기분이었다.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리메르를 보았다.
‘얼마 안 남았군.’
인공단전의 외곽 부분만 변화하는 걸 보면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았다.
툭.
라온은 품에서 목갑 두 개를 꺼낸 뒤 단전을 만드는데 열중하는 리메르의 앞에 내려놓았다.
‘선물입니다.’
첫 번째 목갑은 복귀하면서 구입한 영약이었고, 두 번째는 예전에 받았던 동색의 패로 교환한 바람 속성의 영약이다.
리메르가 텅 빈 단전을 보면 실망할 거 같아서 준비해 둔 선물이었다.
‘이게 스승과 제자라는 건가.’
자신이 리메르를 생각하며 영약을 준비했듯이, 리메르는 제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본인이 흩어버린 오러를 챙기라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이야기나, 책에서만 들었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
라온은 단전을 생성하는 리메르의 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시킬 훈련이 참 많으니까요.’
-음….
라스가 얼음꽃 팔찌 위로 올라오며 눈매를 좁혔다.
-지금 그 대사 맞아?
* * *
“으으.”
버렌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여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발광석이 박혀 있는 어둑한 방. 습기가 찬 걸 보니 지하 같았다.
“내가 왜 여기에…어?”
움직이려고 했지만 팔과 다리가 무언가에 붙잡혀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래를 보니,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뭐냐고!”
버렌이 입술을 깨물고 오러를 일으키려 했지만, 오러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마나회로를 꽉 막고 있었다.
“아!”
생각났어.
마지막에 둘째 형의 목소리를 듣고 눈앞이 깜깜해진 게 생각났다. 형이다. 둘째 형이 자신을 기절시켜서 이곳으로 데려온 게 분명했다.
‘대체 왜?’
버렌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형이 납치를 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끼이이익!
탁한 머리를 흔들고 있을 때 소름이 끼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형! 이게 무슨 짓이야!”
“죄송하게도 전 겔미어 님이 아닙니다.”
그 말대로 들어온 사람은 둘째 형이 아니었다. 키가 작고, 인상이 부드러운 적발의 중년인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버렌 님.”
“올란?”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을 겔미어가 단주로 있는 절마단의 2번 조장 올란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형을 따르던 사람이라 자주 보았었다.
“예. 맞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알아보시는군요.”
그는 빙긋 웃고서 맞은 편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형은 어디 있어! 이걸 풀고 형을….”
“죄송하지만 버렌 님은 제게 명령하실 권한이 없습니다.”
올란의 웃음은 밖에서 봤을 때와 같았지만,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대체 뭘 하려고….”
“겔미어 님께서는 의심이 많거든요. 버렌님이 그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는다고 믿지 못하십니다.”
“그, 그래서 날 납치했다고? 이게 더 큰 일이라는 거 몰라?”
“당연히 알죠,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올란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제 특기가 검 말고도 하나 더 있거든요. 세뇌라고.”
“멍청한!”
버렌이 이를 악물었다.
“가문의 어른들이 그런 것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실 거 같아? 광풍단 역시….”
“걱정 마세요. 그런 강하고 티 나는 세뇌가 아니니까.”
올란가 씩 웃었다.
“제가 하는 건 아주 천천히 심리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조금 약하고 느리지만,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바뀌죠. 열흘 정도면 버렌 님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때의 버렌 님이 지금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미 다 잡은 고기라고 생각했는지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 전에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라온 지그하르트의 정보를….”
“퉤!”
버렌은 주절거리는 올란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난 지그하르트다! 동료의 정보는 절대 팔지 않아! 그리고 너희는 라온을 모른다! 그 녀석이라면 여길 부수고도 찾아올 놈이야!”
“아,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란은 뺨에 묻은 침을 닦아 내리며 씩 웃었다.
“그것도 다 준비해두었으니까요.”
* * *
“집안일이요?”
라온은 5연무장에 찾아온 버렌의 집사 티아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 중무전 내부 일정 때문에 열흘 정도 훈련에 참여하기 힘들 거라 하셨습니다.”
티아스는 버렌이 중무전 내부 일 때문에 한동안 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가요.”
복귀한 날 버렌이 그의 형인 겔미어와 대화를 나누던 게 생각났다. 아무래도 그와 어떤 일을 함께하는 것 같았다.
“집안일이라면 어쩔 수 없겠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티아스를 살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예전 중무전의 별채에서 버렌을 일으켜 준 이후로 티아스는 자신을 볼 때마다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는데, 지금은 그 전으로 돌아간 듯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서 떠나갔다.
‘아무래도 정보가 필요하겠어.’
별관으로 돌아가면 주디엘에게 겔미어와 버렌의 행적을 파악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버렌만 특별대우야? 나도 일 있어!”
마르타가 이런 게 어디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일?”
“뭐, 뭐?”
“무슨 일이 있냐고.”
“그, 그걸 그렇게 물어보면 바로 나오냥! 악!”
그녀는 직접적인 질문에 당황했는지 혀를 살짝 깨물었다.
“없으면 괜찮넹.”
“따라 하지 말라고! 일부러 한 거 아니야!”
라온은 피식 웃으며 광풍단을 살폈다. 휴일이 하루였기 때문에 모두 쉬는 데 집중했는지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단주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크레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 궁금했는지 검사들의 눈동자들 동그래졌다. 꾸벅이며 졸던 루난도 맹한 눈을 들어 올렸다.
“단전은 완성됐고, 지금은 오러를 모으고 계셔.”
도괴가 지키고 있는 가장 안쪽 연공실을 가리켰다. 리메르는 오늘 새벽 단전을 완성했고, 지금은 영약들을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분은 알아서 하실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너희 훈련에 집중하도록.”
라온이 씩 웃고서 단상 위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받자마자 손목과 발목에 착용해.”
검사들에게 검은색 팔찌와 발찌를 두 개씩 던져주었다.
“음?”
“이게 뭐…으헉!”
“오, 오러가 빨린다!”
“끄헉!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귀, 귀신이다! 팔찌에 귀신이 붙었어!”
검사들은 팔찌와 발찌가 오러를 뺏어가는 걸 느끼고 기겁을 하며 버둥거렸다.
“빼앗는 게 아니라, 너희의 오러로 팔찌와 발찌에 무게를 만드는 거다. 오러가 강할수록 무게도 무거워지지.”
라온은 턱을 떠는 검사들에게 엔시아가 만들어온 훈련용 아티팩트 흑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그거 못 벗는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흑환을 착용하고 다니도록.”
“이, 이걸?”
“움직이기도 힘든데 이걸 어떻게 차고….”
“마, 말도 안 돼….”
검사들은 흑환을 차고 어떻게 움직이냐며 입술을 떨었다.
“너희는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았어. 육체가 단련되면 필연적으로 단전과 마나회로도 성장한다. 이건 그걸 위한 훈련이야.”
라온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금세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일단 오래 달리기부터 시작하지.”
“이이익!”
“너나 적응하겠지!”
“이,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아!”
검사들은 말도 안 된다며 손을 휘저었다.
“그럼 다른 훈련도 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다른 훈련?”
“뭐죠?”
“전 그거 할게요!”
검사들은 그게 더 좋을 것 같다며 앞으로 나왔다.
“해가 질 때까지 나와의 일대일 대련.”
“저, 전 달릴 준비 되었습니다!”
“어허! 1등은 나야!”
“몇 바퀴 뛰면 되죠?”
검사들이 뒤로 훌쩍 물러선 뒤 달릴 준비를 마쳤다.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대련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맹렬하게 저었다.
“너희들이 그렇게 자의로 훈련을 하겠다니, 기분이 좋네.”
라온은 뒷짐을 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끄으으윽!”
“아, 악마야. 악마라고!”
“단주님이 천사로 보일 줄이야….”
“내가 힘만 쎘으면 저걸….”
검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달릴 준비를 마쳤다.
“전원 뛰어!”
“빌어먹을!”
“으….”
마르타는 팔찌와 발찌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루난은 깊은숨을 내쉬고서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후우우욱!”
“이건 미친 짓이야!”
“버렌 님만 꿀 빨고!”
조장들이 뛰자, 다른 검사들도 어쩔 수 없이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마르타 허리가 굽었다. 루난 턱을 집어넣고, 도리안 일어나!”
라온은 단상에 서서 검사들이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잔소리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괜찮네.’
대련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많은 훈련을 이겨낸 덕분인지 광풍단은 흑환의 무게를 견디며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해도 되겠어.’
못 견디면 일정을 조금 느슨하게 잡으려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달리면서 들어. 북망산에서 생존 훈련을 할 생각이다. 너희는 기척을 죽인 채로 숨고, 내가 너희를 찾아서 공격하는 방식이지. 어떻게 살아남을지 미리 전략을 짜 놓도록.”
라온은 한참 달리는 검사들에게 미리 계획해 두었던 생존 훈련 계획을 말해주었다.
“생존?”
“지랄 맞은 훈련이네….”
“듣기만 해도 무서워….”
검사들은 질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언제 하는데요?”
도리안이 헥헥거리며 멈춰 섰다. 질문하는 척하면서 쉬려는 행동이었다.
“오늘 저녁.”
그 말에 광풍단원 전체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모두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었다.
“오늘 저녁…?”
“야이! 미친놈아!”
루난과 마르타가 기겁하며 입을 떡 벌렸다.
“오늘 저녁이라고요?”
“진짜 왜 저래!”
“리메르 그 인간도 하루는 줬다고!”
광풍단 모두는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너희 사정이고, 고생하기 싫으면 지금부터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저 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사, 사람이 아니야!”
“악마. 악귀가 분명해!”
라온은 공포에 질린 광풍단원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아, 재밌네.’
광풍단원의 흉악한 시선을 즐기며 안쪽 연공실을 보았다.
‘이제 저 사람만 나오면 되는데.’
리메르를 누구보다 잘 굴려줄 자신이 있었기에 기대가 되어 가슴이 뛰었다.
-이제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구나.
라스가 감명받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놈은 이곳에 있을 인재가 아니니라, 본왕과 함께 마계에….
‘안 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