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64화 (264/653)

제264화

“으음….”

라온이 눈을 비빈 후 다시 로비를 보았다. 그대로다. 엔시아 요난. 아티팩트 제작의 천재라 불리는 요난 가문의 후계자가 시녀복을 입은 채 고개를 숙여왔다.

“다녀오셨어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엔시아의 모습에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에, 엔시아 님이 왜 여기에. 아니, 그 복장은. 어….”

라온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솔직히 말해서 부왕 로만을 만났을 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것도 저런 모습으로!

원래 오기로 한 날짜보다 한 달이나 빨리. 그것도 시녀 복장을 한 채 별관에 있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와아….”

엔시아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흐릿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복귀하시는 모습도 존잘이시네요. 제가 처음으로 봐서 정말 다행이에요. 하아아….”

그녀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고, 존잘만을 외치며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널 유일하게 당황하게 만드는 녀석이로구나.

라스는 재밌다며 낄낄 웃었다.

-본왕도 외치고 싶구나. 존잘!

‘시끄러워.’

라온은 라스를 밀어내고 다시 엔시아를 보았다.

“그… 엔시아 님?”

“라온 님은 자연광 없이도 아름다우시네요. 눈동자가 블러드 루비처럼 반짝여요.”

이쪽의 말은 듣지 않고, 오직 얼굴만 바라보는 요상한 취향도 그대로였다.

“라온 님의 존잘안을 뵈었으니, 오늘 저녁은 반찬이 없어도 되겠어요.”

여전히 헛소리가 진행중이었지만, 엔시아의 풀린 눈동자에 조금씩 빛이 돌아오는 걸 보면 이젠 말이 통할 것 같았다.

“엔시아 님이 어떻게 여기에 계신거죠? 오신다고 하셨던 날짜는 아직 한참 남았을 텐데요?”

“라온 님이 보고 싶어서 왔죠.”

엔시아는 왜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웃었다.

“그, 그렇군요. 그럼 제가 부탁드렸던 훈련용 아티팩트들은….”

“다 완성했죠.”

“광풍단이 쓸 걸 다요?”

라온이 입을 떡 벌렸다. 그녀에게 요청했던 아티팩트는 하나하나가 수제였고, 광풍단에 맞는 것들이다. 그 많은 걸 모두 완성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라온 님의 얼굴에서 본 영감을 이용하니까. 작업 효율이 4배로 빨라졌거든요. 손이 끝없이 움직여요.”

대체 내 얼굴에서 뭘 본 건데….

얼굴에서 무얼 보았기에 작업효율이 4배나 빨라진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인들이 특이한 건 알고 있었지만, 엔시아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역시 잘생긴 게 제일이야. 아아!”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풀려가기에 빨리 말을 걸었다.

“그, 그럼 왜 별관에 계시는 거죠? 손님용 숙소는 다른 곳에 있잖아요.”

“라온 님을 세상에 내보내신 어머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 만나 뵙고 싶었거든요. 안내하시는 분의 발목을 잡고 여쭈어봤죠. 정말 오길 잘했어요. 실비아 님도 라온 님 못지않은 미인이셨으니까요. 유아도 귀엽고. 여긴 영감의 화산이에요.”

실비아의 칭찬을 들으니, 일단 기분은 좋았지만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녀복은 왜 입으셨는지….”

“제가 손님용 숙소 말고 여기서 묵고 싶다고 했거든요. 실비아 님이 흔쾌히 허락해주긴 하셨는데, 그냥 밥만 축낼 수는 없잖아요. 일을 해야죠.”

엔시아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씩 웃었다.

“하….”

라온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이 무슨 행동력….’

요난 가문의 후계자 중 하나가 직접 별관에 찾아와서 스스로 시녀 일을 자처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 떠들어도 안 믿을 일이었다.

“어후….”

“어? 라온 님!”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우측 복도에서 유아가 조리도구를 가지고 걸어 나왔다.

“아니다! 존잘 라온 님!”

유아는 혀를 살짝 깨물고서 엔시아만의 고유어를 내뱉었다.

“어…?”

“이거 맞죠? 엔시아 언니?”

“그래. 그거야! 유아야!”

엔시아는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방긋 웃었다.

“라온?”

“도련님!”

유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윗층에서 실비아와 헬렌이 다급하게 뛰어내려왔다.

“그게 아니죠. 실비아 님. 헬렌님.”

“아, 그렇지! 존잘 라온 왔니?”

“존잘 도련님 오셨군요!”

실비아와 헬렌은 라온을 향해 방긋 웃었다.

“어머? 존잘 도련님!”

“저녁까진 조금 걸리니까. 먼저 씻고 나오세요. 존잘 라온 님.”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시녀들도 인사를 하고서 꼭 존잘이라고 외쳤다.

“저 이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라온 님의 얼굴은 신이 내린 선물이에요! 모두에게 표현 방법을 알려드렸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엔시아는 실비아는 물론이고, 시녀들과도 친해보였다. 도리안 급의 친화력이었다.

-푸하하하!

라스가 못 참겠다는 듯 배를 잡고 뒹굴었다.

-저 손꾸락 여자가 네놈의 천적이니라!

“후우…..”

라온은 활짝 웃는 엔시아와 존잘이라고 말하는 시녀들을 보며 질끈 눈을 감았다.

‘피곤해.’

집이 갑자기 피곤해졌어.

*     *      *

버렌은 오랜만에 중무전 연무장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좀 어색하네.’

예전에는 매일와서 훈련한 곳이지만, 광풍단에 속한 이후로 처음 들렸기에 기분이 요상했다.

‘내가 변한 건가.’

검흔이 새겨진 벽도, 햇볕을 가려주던 나무도 그 자리에 있건만 자신만 동떨어진 것 같아서 입맛이 썼다.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네?”

둘째 형이자, 절마단의 단주인 겔미어가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응. 이런식으로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중무전의 검사가 되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겠다는 목표 뿐이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중무전에서 쫓겨난 채 광풍단의 입장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니, 조금 속이 갑갑해졌다.

“아쉬워?”

겔미어가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아쉽지. 형도 알다시피 내 꿈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아버지의 뒤를 잇는 거였으니까.”

버렌이 직접 새겼던 연무장 벽의 검흔을 만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었지.’

검세가 날카롭다며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셧던 게 기억났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칭찬이고, 유일한 쓰다듬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버렌이 검흔에서 손을 떼며 옅게 웃었다.

“괜찮다고?”

“그래. 나를 필요로 해주는 곳이 생겼으니까.”

광풍단. 형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그 녀석들과 함께라면 이곳에 남지 못했다는 아쉬움마저 사라진다. 이젠 중무전이 아니라, 광풍단 숙소가 진짜 내 집 같았다.

“네 자리를 찾았다니, 다행이네.”

겔미어가 버렌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

“그런데 버렌. 다시 여기에 올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어?”

버렌이 눈을 부릅뜨고 겔미어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중무전으로 돌아올 수 있고, 네가 원하는 단체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겔미어의 눈동자는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의 장난이나, 농담기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네가 딱 두 가지 일만 해준다면 널 중무전에 넣어 줄 수도 있어.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께 인정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버렌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생각이 없지는 않나보네.”

“음….”

버렌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의 꿈이자 목표는 여전히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일이다.

광풍단으로 갔어도 그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부탁도 그리 어렵지 않아.”

“부탁이 뭔데?”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 돌아올 수도 있으니 듣는 것만큼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지그하르트의 약점.”

“형?”

“훈련생 시절부터 함께 지냈으니, 알 거 아니야. 그녀석의 약점이 뭔지.”

겔미어는 사촌동생이 되는 라온의 약점을 말하라고 하면서도 평온했다. 선물을 주기 위해 취향을 묻는다고 생각될 정도의 당당함이었다.

“이상해?”

겔미어가 피식 웃었다.

“버렌. 라온은 말이지. 대륙 역사에 남을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는 괴물이야. 저걸 그대로 놔둘 거야?”

그의 눈동자가 뱀의 눈동자처럼 마름모꼴로 돋아올랐다.

“지금 확실하게 잡아두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녀석의 등만 보고 살아야 해. 어디에도 네 이름 대신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이름만 박힐 거라고. 그렇게 살고 싶어?”

“그건….”

버렌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알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젠 라온과의 무력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져서 예전처럼 따라잡는다는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넌 조용히 그 녀석의 약점만 말해주고, 형이 말하는 장소로 데리고만 오면 돼. 아주 조용히 잘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겔미어는 누구도 모를 거라고 중얼거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 이틀 뒤에 훈련을 한다고 했으니, 내일 저녁까지….”

“아니.”

버렌이 겔미어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안 해.”

단호하게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할 수가 없지.’

약점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라온은 자신의 추잡한 사고방식을 깨어주고, 실제 목숨까지 구해준 은인이다. 아무리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런 짓은 저지를 수 없었다.

“그 녀석에겐 약점 따위 없고! 있어도 말 안 해!”

버렌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형에게 도움 받은 게 있으니, 이번 일은 입 다물겠지만, 헛짓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녀석을 건드리기 전에 날 넘어야 할 테니까.”

이를 바득 갈고서 출구로 향했다.

“형한테는 실망이야.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아.”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기 위해 뒤를 돌았는데, 겔미어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귀찮게 하는구나.”

“아….”

나지막한 겔미어의 목소리와 함께 버렌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라온은 로비에 있던 모두에게 제발 존잘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나서 실비아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이리 와.”

소파에 앉은 실비아가 맞은 편에 앉으라는 듯 중앙의 테이블을 통통 쳤다.

“응.”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실비아의 반대편에 앉았다.

‘시작이겠네.’

그녀가 왜 불렀는지를 예상되기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부왕 로만과 3년 후의 생사결.”

실비아의 입에서 생각했던 말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어조가 부드러우면서도 서글퍼서 입안이 마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무모한 내기를 건 거지?”

어떻게 걱정을 풀어줘야 할지 고민할 때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

“네가 이뤄내고, 보여준 일들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니.”

실비아가 조금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네가 처음 검을 잡았을 때 해줬던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구나.”

“음….”

그녀의 말대로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 예전 지그하르트 검사다운 모습, 약자를 돕고 강자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말은 지금도 자신의 가슴 속을 맴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거 괜히 말했다 싶어. 네가 임무에 나가서 일이 터질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거든.”

실비아의 눈매가 축 내려갔다.

“엄마도 무인으로 살아봐서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있어.”

맞잡은 손을 통해 그녀의 온기가 전해지자, 마음속에 거미줄처럼 달라붙어 있던 여러 걱정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속이 좀 많이 답답해. 부왕 로만이라니….”

실비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 그녀의 무거운 걱정들이 다 비치는 듯했다.

‘그렇겠지….’

이제 막 마스터가 된 아들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괴물과 3년 뒤에 싸우겠다고 하니, 어머니로서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 마. 절대 안 죽을 테니까.”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3년 후에 부왕의 다리를 붙잡아서라도 살아 돌아올게.”

“그게 뭐야! 강해져서 이기겠다고 해야지!”

실비아가 픽 웃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승리가 아니라, 안전이었기에 승리라는 말보다 죽지 않겠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그래. 믿어야지. 한 번 믿기로 했으면 지켜볼 수밖에.”

그녀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괜찮으면 됐어. 씻고 와. 곧 저녁 준비가 끝나니까.”

“잠깐만.”

라온은 일어서려는 실비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엄마는 다시 일어서고 싶은 생각 없어?”

“응?”

“마나회로와 단전을 고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라온이 살짝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과연 어떨지….’

이 말을 꺼내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나에게도 소중하니까.’

실비아가 소중하기에 마나회로와 단전을 회복하지 말고 이대로 전투에서 물러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가 나를 막으려 했던 것과 같아.

그건 예전의 실비아가 자신이 훈련생이 되는 걸 억지로 막으려 들었던 과 같은 실수다. 도움을 주고, 대책을 줄지언정 선택은 본인 스스로 해야한다.

“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일까. 실비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건 단전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단전이고, 옆은 마나회로의 손상을 치료할 수 있는 영류환이라는 영약이야.”

라온은 테이블 위에 인공단전과 영류환을 올려놓았다.

“마나회로가 아예 끊어진 엄마에겐 효과가 없지만, 성자님이라면 마나회로를 잇는 수준으로 효과를 올려주실 수도 있겠지.”

“음….”

“엄마가 원한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인공단전과 회로를 회복시킬 방법을 구해볼게.”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실비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흐음! 으흐으음!”

실비아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은 채 한참을 고민하다가 테이블에 쾅 머리를 박았다.

“어, 엄마?”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니?”

“예전에 했던 말?”

“널 낳고 후회한 적 없었다는 말.”

“아….”

라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할 수밖에.’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을 낳은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했다.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화 없어. 이대로도 괜찮아.”

실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빨개진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웃었다.

“다만.”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기회가 있다면 잡고 싶기도 해. 내가 강해지고 싶다기보다. 널 그리고 이 별관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싶으니까.”

“그래….”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똑같네.’

실비아는 자신과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바람이었다.

“기다리고 있어줘.”

라온이 주먹을 말아쥐고 일어섰다.

꼭 일어서게 해줄 테니까.

*     *      *

라온은 실비아의 방에서 나온 뒤 엔시아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아까워요.”

엔시아가 입맛을 쩝 다셨다.

“진짜 힘들게 알려드린 건데.”

“그런 말을 쓰시는 건 엔시아 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기분이 좋은데요?”

그녀는 양 볼을 감싸며 헤헤 웃었다.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정말이지 이 사람과 대화만 하면 꼬이는 것 같았다.

“왜 둘이서 보자고 하셨어요? 저야 언제라도 환영이지만.”

“이걸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품에서 인공단전을 꺼내 엔시아에게 내밀었다.

“음?”

라온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던 엔시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훅 내려갔다.

“이, 이건….”

“던전에 갔을 때 구한 인공단전입니다.”

“인공단전….”

“혹시 이 인공단전을 복제할 수 있겠습니까?”

엔시아는 이미 인공단전을 살피는데 정신이 팔려 귀를 닫고 있었다.

“이 단전에 있는 무늬. 고대 문자네요. 천 년도 더 된 물건이에요. 그리고 비율은 황금비에요. 어떤 오러나 마나에서도 버틸 수 있게 만들었군요. 고고한 외형에 아름다운 성능까지 가졌네요.”

그녀는 경악과 감탄이 깃든 눈동자로 한참 동안 인공단전을 살폈다.

“이 단전의 제작자는 천재가 분명해요. 저로서는 따라가기 힘들 것 같네요.”

엔시아는 한참 동안 단전을 살피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럼 복제는 힘든 겁니까?”

“네. 제가 이걸 해체한다고 해도 같은 걸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단전만 망가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요난 가주님은….”

“어머니도 안 될 거예요. 본래 고대 문양이 그려진 아티팩트들은 여는 순간 내부가 망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아….”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전 시대의 물건들에는 복제 방지 능력이 걸려 있어서 분해를 하는 순간 망가진다고 들었다.

“다만 비슷하게는 만들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예?”

“이것과 형태와 성능은 다르겠지만 인공단전 자체는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 정말입니까?”

“네. 라온 님의 얼굴과 이 인공단전의 황금비를 보니 머리가 번뜩였거든요.”

그녀는 될 것 같다며 인공단전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물론 굉장히 오래 걸리고, 많은 재료가 필요….”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라온이 엔시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아….”

가까이서 라온의 얼굴을 보게 된 엔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 가, 가, 가능해요! 얼마든지!”

엔시아가 라온을 얼굴을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잘 생겼어.’

피부는 도자기에, 눈빛은 영롱한 보석을 박아 놓았고, 콧대는 저 하늘의 달처럼 고고했다.

이젠 존잘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완잘. 완벽하게 잘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완성되는 얼굴이었다.

머리가 핑그르르 돌아갔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가까이서 라온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온의 낭랑한 음성에 엔시아는 거절의 말을 못하고 그저 대답만을 뱉었다.

“넹!”

*     *      *

다음날 아침.

라온은 엔시아에게 주었던 인공단전을 돌려 받은 뒤 광풍단 숙소로 최상층으로 향했다.

그 위에는 딱 하나의 방만 존재했는데, 이전에는 수석교관. 지금은 광풍단주의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콰아아앙!

라온은 방 내부의 기척을 살핀 뒤에 그대로 걷어차버렸다. 문이 튕겨나갈 듯이 활짝 열리고, 안쪽에서 닭 울음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끼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나온 건 머리가 산발이 된 리메르였다.

“뭐, 뭐야! 네, 네가 방문을 부순 거냐?”

“아뇨. 문을 열었을 뿐인데요.”

라온은 부르르 흔들리는 문을 가리켰다.

“무슨 문을 그렇게 빡세게 열어! 문 두 번 열면 건물 날아가겠네!”

“리메르 님이 매일 하던 일이잖아요.”

“억….”

리메르가 입을 떡 벌렸다. 연무장 문을 수없이 걷어찼던 그였기에 할 말이 없었다.

“무, 문은 그렇다 치고 이 새벽에 여긴 왜 왔냐?”

“이제 시작해야죠.”

라온이 품에서 인공단전과 영류환을 꺼냈다.

“어? 그, 그걸 오늘 하자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기다릴 필요 없잖아요.”

“아니이이! 우리 어제 복귀했잖아. 아직 체력 회복도….”

“가는 내내 말만 탄 사람이 무슨 체력을 썼다고.”

“말 타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거든!”

“됐으니 준비하세요.”

리메르의 말을 흘려들으며 손을 저었다.

“나, 난 못 해! 오늘 복귀 기념 술판을 벌이기로 했단 말이야!”

그는 술집에서 약속이 있다며 고개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이미 한잔하셨네요. 오늘은 취소하세요.”

라온이 방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술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싫어! 이렇게 보여도 내가 단주인데 어디서 명령을….”

“이제 아닌데요.”

라온이 고개를 젓고서 팔뚝에 찬 완장을 가리켰다. 광풍단주의 표식인 푸른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부터 리메르 님은 평범한 광풍단원이고, 제가 단주 대리입니다. 어제 들으셨잖아요.”

“억!”

리메르는 그걸 여기에 끌고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가주님께 리메르 님의 훈련에 대한 전권도 받았죠. 여기서 도망치시면 명령 불복종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며, 명령 불복종….”

리메르가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서, 설마 이녀석….’

어제 그건 날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편하려고?

이제 머리가 돌아간다. 라온이 어제 글렌 앞에서 광풍단의 전권과 훈련권을 맡은 이유가 바로 이것을 위해서라는 게 떠올랐다.

“라, 라온? 우리 일단 대화로….”

“됐고. 연공실로 갑시다.”

라온은 리메르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손짓했다.

“이이익! 난 못 가! 오늘은 놀 거야!”

리메르는 대충 옷을 걸쳐 입은 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실수였다.

“어억! 왜 당신이!”

“왜긴 왜겠냐. 네놈이 키운 괴물이 불렀으니 왔지.”

숙소 앞에 대기하던 도괴가 히죽 웃으며 도망치려던 리메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아….”

리메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하니 이 아침에 도괴까지 불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 가시죠.”

어느새 밖으로 나온 라온이 손짓했다.

“오늘 단전 깨야 하니까.”

“으아아아악!”

뒤에서 리메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깡패냐고….

라스가 무섭다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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