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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63화 (263/653)
  • 제263화

    “남북맹은 흉폭해진 청루족에게서 도란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청루족을 조종하여 사건을 일으키는….”

    라온은 설명을 이어가며 눈동자를 굴려 글렌의 표정을 살폈다.

    ‘저 모습을 뭐라고 해야 하지?’

    목과 어깨는 살짝 쭈그러들었고, 눈매는 찡그린 채로 파르르 떨렸으며, 입꼬리는 지진이라도 난 듯 실룩거렸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그렇다고 화를 내는 표정도 아니다. 분위기와 기세는 평소처럼 냉정했지만, 저 표정만큼은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네.’

    남북맹주의 제자인 틸러와 백혈교주의 제자인 4사도를 죽이고 리메르를 회복시킬 물건까지 구해왔음에도 그는 그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

    ‘저 표정은 마치….’

    -똥 참는 것 같구나.

    얼음꽃 팔찌에서 라스의 동그란 머리가 빼꼼 올라왔다.

    -저건 괄약근에 힘을 줄 때 나오는 표정이니라.

    녀석은 그것 외에는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없다며 픽 웃었다.

    ‘으음….’

    라온이 신음을 삼켰다. 라스의 말대로 대소변을 참는 건 아니겠지만,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생리현상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다니, 역시 본왕의 상대는 아니니라. 수만 합 정도면 가볍게 잡을 수 있겠어.

    라스는 싸우지 않아도 결과가 보인다며 손을 저었다.

    ‘예전에는 수천 합이라고 하지 않았나?’

    처음 글렌을 보았을 땐 분명 수천 합이었는데, 어느새 수만 합이 되어버렸다.

    가볍게 수만 합. 거짓말 못 하는 성격과 마계의 군주로서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 만들어낸 참으로 기괴한 말이었다.

    “광풍단을 구하기 위해서 부왕 로만에게 3년 후 생사결을 약속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이후에 저희 단주님을 구하기 위해서 로엔그린의 던전으로….”

    로엔그린 던전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글렌의 눈매와 입꼬리의 떨림이 한층 심해졌다. 꼭 누가 옆에서 피부를 잡고 흔드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어서 글렌의 표정을 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표정 관리 좀 하시라고 신호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푸웁.”

    리메르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그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많이 급한 모양이로다. 빨리 끝내라.

    ‘그래야겠어.’

    라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빠르게 했다. 속도가 높아지니, 글렌의 억누르는 듯한 표정이 조금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리되어서 로엔그린의 던전에 있던 인공단전과 영약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멈추자마자, 글렌의 얼굴이 평소의 냉막했던 표정으로 돌아갔다. 입가의 실룩거림도, 콧구멍의 벌렁거림도 자취를 감췄다.

    “남북맹주의 제자와 백혈교주의 제자를 모두 베었다니….”

    “둘 다 광풍부단주보다 강하잖아. 그럴 수가 있나?”

    “기습이라고 해도 대단한 일이다.”

    “매번 자신보다 강한 적을 이기고 돌아오다니, 무신의 운이라도 받은 모양이군.”

    “한 번이면 우연이고, 두 번이면 운이며, 세 번이면 실력이다. 광풍부단주에겐 강자를 꺾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지.”

    대주와 단주들은 놀라움을 담은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오마의 간부이자 후계자를 둘이나 베고, 남북맹의 악행을 끝냈으니, 금패를 받아도 모자라지 않겠어.”

    “금패를 연속으로 받는 건 처음 아닌가?”

    “업적이 업적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18살에 마스터에 오르고, 금패를 두 개나 가진다라…. 미래가 두렵군.”

    “난 그런 것보다 광풍단의 우애가 부러워. 리메르 님이 다쳤다고 하자마자 던전에 찾아가다니, 가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이야.”

    “하아, 어떻게 해서든 이쪽으로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양옆에 선 대주와 단주들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며 탄성을 터트렸다. 부하들을 잘 고른 리메르가 부럽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쯧!”

    “젠장….”

    “틸러는 몰라도 4사도는 기습으로 잡은 거잖아. 뭐가 대단하다고.”

    “어차피 3년 후에는 살 수 없는 놈이야. 신경 꺼.”

    가장 먼저 시비를 걸어오던 중무전주 카룬과 진무전주 발데르가 부재중이었기에 직계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욕을 하고,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추한 말만 주절거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글렌의 나지막한 음성에 알현실을 울리던 잡소리들이 모조리 사그라들었다. 그는 평소와 같은 서늘한 눈빛으로 턱짓을 했다.

    “하나만 묻지.”

    “예.”

    “3년 뒤의 부왕과의 생사결.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온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훗, 그런가.”

    글렌은 옅은 미소를 짓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믿는 것 같기도 했다.

    “올라오라.”

    “예.”

    라온이 글렌의 위엄이 비치는 듯한 계단을 밟아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고, 광풍단주를 구하기 위해 던전을 공략한 용기 있는 행동을 높이 사 네게 금색의 패와 휘석 목걸이를 내리겠다.”

    글렌이 손짓하자, 로엔이 금색의 패와 휘석 목걸이를 백색 판에 받친 채 옆으로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수고… 크흠! 수고했다.”

    글렌은 라온의 얼굴을 보고, 금색의 패와 목걸이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조금 전에 드러냈던 그 기묘한 표정으로 패와 목걸이를 하사했다.

    ‘이상하신데….’

    오늘 왜 이러시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광풍단 조장들도 나오도록.”

    글렌은 패와 목걸이를 주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을 되돌린 뒤 광풍단 조장들을 불렀다.

    그는 조원들을 이끌고 리메르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해결할 조장들에게도 동패를 하나씩 내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버렌과 마르타, 루난은 생각도 못 했었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패를 받았다.

    “모두 고생 많았다. 광풍단은 다음 임무까지 휴식하며 대기하도록.”

    “예!”

    “이상이다.”

    그는 귀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라온 부단주. 다음에 우리 연무장에 와서 대련 한판 어때?”

    “나랑은 술이나 하지. 로엔그린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군.”

    “훈련 교류도 괜찮으니, 언제든 연락해.”

    대주와 단주들. 특히 이전에 자신에게 영입 제안을 했던 대주들이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예. 그리하죠.”

    대주들과 연을 쌓아둬서 나쁠 것이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해서 잡아놓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는군….”

    “못 봐주겠어.”

    “어차피 3년 후에 부왕에게 꺾일 놈이야. 놔둬.”

    직계들은 알현실 밖으로 나가면서 눈을 흘기고 저주스러운 말을 떠들어댔다.

    라온은 알현실을 나서는 직계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떠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기세로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던 검사들처럼 저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 날도 머지않았다. 직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패를 꽉 쥐었다.

    “너희는 왜 안 가는 거지?”

    글렌은 남아 있는 라온과 광풍단을 보며 고개를 살짝 틀었다. 라온이 가만히 있기에 광풍단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온이 다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해보도록.”

    “광풍단주는 금이 간 단전을 완전히 부수고, 인공단전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전투가 가능한 수준까지 오러를 모으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때까지는 제가 임시로 단주직을 맡고 싶습니다.”

    “갑자기 왜?”

    리메르가 당황했는지 무릎으로 기어와 옆에 붙었다.

    “단주 직을 맡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뺏기고,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단주님은 한동안 몸의 회복에만 집중하세요.”

    “크으, 라온!”

    그는 감동했는지 맥주를 마신 듯한 탄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군. 허가하지.”

    글렌은 눈매를 좁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은 해줬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라온이 일어서지 않은 채 글렌을 올려보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마나회로가 모두 얼어붙는 혹한의 저주라는 체질을 앓았고, 지금은 극복해냈습니다. 광풍단주의 증상과 비슷하기에 그의 재활훈련을 제가 맡고 싶습니다.”

    “흐음….”

    글렌이 턱을 긁적였다. 조금 전보다 더 마음에 안 드는 듯 이마를 찌푸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리하도록.”

    “감사합니다.”

    라온이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라온! 날 생각해주는 건 역시 너뿐이다!”

    리메르가 감격하여 훌쩍였지만 좋아하긴 이르다. 그를 도와주는 건 맞지만 꽤. 아니, 죽을 만큼 힘들 테니까.

    ‘지금 많이 웃어두쇼.’

    -…사채업자냐?

    *     *      *

    광풍단이 모두 나갔음에도 리메르는 알현실에 남았다.

    “아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도움을 받다니 한심하구나.”

    글렌은 리메르를 굽어보며 코웃음을 쳤다.

    “앞으로 어디 가서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는 이명 따위는 사용하지 말도록.”

    “에휴! 가주님이나 잘하세요.”

    리메르는 글렌의 조롱을 흘려넘기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네놈이!”

    “표정!”

    그는 벌떡 일어나서 본인의 입매와 눈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가주님. 라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웃음을 못 참아서 눈꼬리랑 입술이 파리 날개처럼 떨린 거 알고 계세요?”

    “어….”

    “딱 이랬다구요.”

    리메르는 글렌이 라온을 볼 때의 표정을 만들어 직접 보여주었다.

    “내, 내가 그런 추한 표정을 지었을 리 없다!”

    “사실 더 심했어요! 똥 참는 줄 알았다구요!”

    그는 라스와 같은 소리를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런 표정이 나왔는지 아세요? 참는 데 한계가 왔기 때문이에요.”

    “한계라고?”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는데, 억지로 참으니까. 그런 기괴한 표정이 되는 거죠. 라온이 아주 기겁을 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요. 금패를 줄 때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싶었죠?”

    “어….”

    글렌은 정곡을 찔린 듯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떨었다.

    “제가 계속 말했잖아요. 참으면 병이 된다니까. 이제 대놓고 말해도 되잖아요. ‘아이고 우리 손주 왔엉! 우리 강아지! 이 할애비의 무릎에 앉아보렴!’ 이래도 괜찮다니까.”

    리메르는 조금 전 글렌이 지었던 요상한 표정을 다시 지으며 히죽였다.

    “리메르….”

    “아하하! 조, 좀 심했나?”

    리메르는 글렌의 손아귀에서 스파크가 튀는 걸 보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뒤에서만 챙겨주지 말고 앞에서 보여주라구요.”

    그는 한숨을 내쉬고서 로엔을 보았다.

    “라온에게 준 휘석 목걸이. 평범한 물건 아니죠?”

    휘석 목걸이에는 육체를 단단하게 보호하는 효과가 있지만, 글렌이 라온에게 그런 평범한 걸 주었을 리 없다. 분명 특별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글쎄요.”

    로엔은 글렌을 흘낏 보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반응이면 충분했다. 라온의 목걸이엔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뒤에서 챙기지 말고, 그냥 앞에서 보고도 열어주고! 후계자 지위도 주고! 어? 밥도 같이 먹고! 여러 가지 챙겨 주라구요! 일단 말부터 시작합시다! 따라 해봐요! 우리 강아지 왔…”

    “후우….”

    글렌의 낮은 숨소리와 함께 그가 앉은 옥좌의 손잡이가 저절로 우그러들었다.

    “어….”

    리메르는 알현실 이곳저곳에서 붉은 스파크가 번지는 걸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가, 가주님? 저 환자라 지금은….”

    “걱정 마라. 네 마나회로와 단전에 자극을 주지 않고, 고통만 새겨줄 방법 따윈 간단하니까.”

    “자, 잠깐! 그런 게 어디…끄아아아악!”

    붉은 벼락과 함께 터져 나온 리메르의 비명이 오랜만에 가주전을 울렸다.

    *     *      *

    라온은 가주전 앞에 광풍단원을 정렬시켰다. 기대감을 품은 검사들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

    “너희도 들었듯이 오늘부터 내가 단주 대행이다. 앞으로는 휴식도, 훈련도 내가 지도한다.”

    그 말에 광풍단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휴식하고, 내일 새벽까지 연무장으로 나오도록.”

    “하, 하루? 고작 하루?”

    “야이 자식아! 우릴 죽일 셈이냐!”

    “아….”

    버렌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고, 마르타는 멱살을 잡았으며, 루난은 투명해진 눈동자로 허공을 올려보았다.

    “하루는 너무 심하잖아요!”

    “리메르 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지, 진짜 미치셨어!”

    광풍단 검사들도 절망한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지, 지금 해가 지고 있는 걸 보면 실제로는 하루도 안 되잖아요! 이러다 진짜 죽어요!”

    도리안은 불안감에 배 주머니를 쓱쓱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맞아! 피로를 풀 시간은 줘야죠!”

    “당장 쓰러지고 싶은 정돈데….”

    “따, 딱 하루만 더 주라.”

    “좋아. 이번에는 인심을 좀 쓰지.”

    라온은 버렌의 하루만 더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그렇게 원하니, 하루를 더 주지.”

    “와아아아아!”

    “하루 더 쉰다!”

    “드디어 우리 의견이 먹혔어!”

    광풍단은 단 하루를 더 쉬는 것뿐임에도, 기뻐하며 환호를 질렀다.

    “그럼 내일모레까지 연무장으로 오도록. 해산.”

    라온이 광풍단의 함성을 들으며 등을 돌렸다.

    ‘생각대로 됐네.’

    처음부터 이틀 주려고 했는데.

    길고 힘든 훈련에는 그만큼의 휴식이 필요하다. 이틀을 그대로 말하면 그 이상을 원할 거 같아서 시작을 하루로 했더니, 예상대로 이틀이 되었고 반응도 좋았다.

    -지독한 놈.

    라스가 얼음꽃 팔찌 위로 올라오며 눈매를 찡그렸다.

    -네놈은 본왕이 본 인간 중 제일 추잡하다. 인세의 악마 그 자체이니라!

    ‘그거 칭찬인가?’

    -아니라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어차피 받을 휴가인데, 즐거워하면 나도 좋고, 쟤들도 좋고.’

    라온이 씩 웃으며 뒤를 돌았다. 다들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데, 버렌은 가주전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알현실에 있었지?

    직계 대주들과 함께 있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남자다. 지금 보니 버렌의 외모와 많이 닮아 있었다.

    ‘형제로군.’

    진한 청발과 조금 사나워 보이는 듯한 눈매 그리고 허리에 찬 예검을 보니 확실하다.

    절마단의 단주이자 버렌의 둘째 형인 겔미어가 확실했다.

    버렌이 옅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싸우거나 나쁜 소리를 듣는 것 같지 않았다.

    ‘형제 사이는 괜찮나 보네.’

    쓰레기인 카룬과 달리 형제인 겔미어와는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라온은 잠시 버렌과 겔미어를 지켜보다가 별관으로 향했다.

    *     *      *

    라온은 별관의 정원을 지나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을 지나면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다. 그간 쌓인 피로가 전부 풀리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면 그저 좋다고 했었지.’

    전생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지만, 이젠 알 수 있다. 진짜 소중한 집이 있다면 돌아오는 순간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흐흐흥!

    라스도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넌 뭐가 그리 좋냐?’

    -집에 왔지 않느냐. 여기까지 퍼지는 냄새를 보니, 파인애플 소녀가 맛난 요리를 준비한 게 분명 하느니라.

    ‘집이라….’

    네 집이 맞냐?

    마왕이라는 놈이 별관을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예 인간이 다됐군.’

    라온은 고개를 저으며 별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로비에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 시녀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엉?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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