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60화 (260/653)
  • 제260화

    리메르는 눈앞에 놓인 인공단전과 두 종류의 영약, 팔찌 아티팩트를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인공단전과 마나회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영약이라….’

    이게 있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밑 빠진 독처럼 오러가 빠져나가는 단전을 고치고, 오러를 운용할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는 마나회로의 상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으음….”

    다만 섣불리 손이 나가진 않았다. 라온의 말대로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자신이 이 인공단전과 영약을 가져도 될까 싶었다.

    ‘일단 가주님이 내려주신 영약은 날 위한 거겠지.’

    버렌이 지부에서 받아온 셰티의 눈물은 글렌이 미리 준비해 둔 영약이 분명하다. 이건 먹어도 별 상관없다. 아니, 주인을 찾는다는 게 옳은 말이다.

    ‘하지만.’

    리메르가 옅은 숨을 내쉬고서 인공단전과 영류환이라는 영약을 보았다.

    ‘이 두 개는 달라.’

    인공단전과 영류환은 라온이 던전에서 목숨을 걸고 구해온 물건이다. 지그하르트에 자신 말고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기에 함부로 챙길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라온을 보았다. 밤하늘에 떠오른 달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붉은 눈동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날 시험이라도 하는 건가.’

    라온의 어머니인 실비아도 단전과 마나회로가 망가져 있다. 저 인공단전과 영약이 있다면 그녀도 새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이걸 자신에게 넘겨주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아니, 다 떠나서….’

    리메르가 눈을 감았다. 수없이 봐왔기에 이젠 눈빛만 봐도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광풍단 검사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다시 시작하면 이 녀석들을 보호해줄 수 없잖아.’

    인공단전을 사용하여 예전의 경지를 되찾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지금도 그 기대감에 격하게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예전의 무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자신이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처음부터 오러를 다시 쌓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리메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조금 전 머릿속에서 그렸던 것과 똑같은 얼굴의 제자들을 차례로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날 믿고 따라와 준 녀석들을 배신할 수는 없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저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이들의 옆에 있고 싶었다.

    루난이 활짝 웃는 걸 보고 싶고, 버렌이 카룬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고, 마르타가 복수를 끝내고,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전히 담담한 눈동자를 빛내는 라온을 마주했다.

    ‘이 녀석이 지그하르트의 왕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리메르는 라온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정리했다. 쓸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이건 양보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야! 오러를 언제 다시 쌓냐! 귀찮아서 못 해먹어! 난 그냥 영약만 챙길란다.”

    싫다고 말하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대신에 이 인공단전이랑 다른 영약은 경매에 내놔서 우리 돈을 반띵….”

    리메르가 피식 웃으며 영약을 향해 손을 뻗을 때 라온이 손목을 잡았다.

    “라, 라온?”

    “그게 정말 단주님의 선택입니까?”

    “어?”

    “지금 선택이 정말 당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이냐고 물었습니다.”

    “아….”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붉은 눈동자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            *

    라온은 리메르의 손목을 잡은 채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예상대로의 대답을 내놓으시는군.’

    도란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리메르가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가볍지만 속은 누구보다 무거운 사람이기에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는 뻔히 보였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영약으로 마나 회로만 회복시키려 하겠지.’

    리메르가 인공단전을 사용한 뒤 예전 그의 경지를 찾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그 시간 동안 지금의 광풍단만으로 싸워갈 수 없기에 그는 영약을 먹고 마나 회로만 회복시킬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일도 떠올랐을 테고.’

    실비아 역시 단전이 깨진 상태였다. 리메르는 그녀가 인공단전과 영약을 쓰길 바라며 양보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리메르는 그 둘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라, 라온아? 나 환잔데….”

    리메르가 빨갛게 달아오른 손목을 가리키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영약을 고르실 겁니까?”

    “아니, 나도 나이가 있잖아. 오러를 언제 쌓겠어. 귀찮아.”

    “그게 아니잖습니까.”

    라온은 리메르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두 가지죠?”

    “어…?”

    두 가지라는 말에 리메르가 눈을 부릅떴다.

    “일단 첫 번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이 두 개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깨진 단전은 인공단전으로 교체할 수 있겠지만, 마나회로는 영류환으로도 회복할 수 없어요.”

    리메르의 마나회로가 무리해서 말라붙고, 곳곳이 찢어진 호스라면, 실비아의 마나회로는 중간중간을 가위로 잘라버려서 아예 물이 흐를 수 없는 호스다.

    마나회로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영류환으로도 실비아의 마나회로는 이을 수 없었다.

    ‘지금은 안 돼.’

    그녀의 마나회로를 잇기 위해서는 영류환의 제조법을 성자에게 알려주어 효과를 개선해야 한다.

    “그건….”

    “그리고 두 번째.”

    라온이 리메르의 손목을 놓고, 뒤에 있는 광풍단을 가리켰다.

    “저희는 강합니다. 아니, 누구에게도 지지 않도록 강해질 겁니다. 이 자리에서 기다릴 테니, 단주님은 마음의 울림을 따르세요.”

    리메르는 무인. 그것도 최고의 경지에 올라갔던 검사다. 검을 휘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경지에 오를 수가 없으니, 그는 누구보다 단전의 회복을 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광풍단을 위해서 그리고 실비아를 회복시켰으면 하는 마음에 참았을 뿐이다.

    “마, 맞습니다. 저희는 버틸 수 있습니다!”

    “맨날 양보할 생각만 하니까. 도박에서 발리지!”

    “응.”

    버렌과 마르타, 루난도 리메르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님! 우리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 낫고 돌아오라구요!”

    “저희를 모은 사람은 단주님이잖아요. 믿으셔야죠!”

    광풍단원들도 주먹을 흔들며 믿어달라고 외쳤다.

    “단주님의 검계현신.”

    라온이 손으로 바닥을 긁으며 리메르의 눈을 직시했다.

    “단전에 무리를 주지 않고, 강자와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셨죠?”

    “그랬지.”

    “그 검계를 유지하는 연료는 단주님의 생명력이잖습니까. 그것도 수명을 소모하는 생명력.”

    “그, 그걸 어떻게….”

    리메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저희는 단주님이 그런 희생을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라온은 흔들리는 녹색 눈동자를 마주하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제대로 살아주십시오.”

    “단주님!”

    뒤에 있던 광풍단도 라온과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 참….”

    리메르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헛웃음을 흘렸다.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짜 나 없이 버틸 수 있어?”

    “물론입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죽게 하지 않아.’

    절대로.

    광풍단은 별관에 이은 두 번째 가족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바쳐서라도 모두를 살릴 것이다.

    “그래. 스승이 제자를 안 믿으면 누가 믿겠어.”

    리메르는 오랜만에 제자라는 말을 꺼내며 눈을 가린 손을 내렸다. 나뭇잎을 닮은 녹색 눈동자에 선명한 이채가 돌았다.

    “인공단전과 영약을 모두를 골라서….”

    그가 손을 뻗으려 할 때 라온이 먼저 인공단전을 챙겼다.

    “엑?”

    허공을 쥔 리메르가 입을 떡 벌렸다.

    “가, 갑자기 왜….”

    “드리긴 하겠지만, 일단 이 인공단전을 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에 사용해야죠.”

    로엔그린의 말대로라면 힘들겠지만, 혹시라는 게 있으니 확인해보고 싶었다.

    “곧 엔시아 님이 지그하르트로 올 테니, 그분께 여쭤본 뒤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주님은 일단 팔찌를 차고, 셰티의 눈물로 마나회로의 상태부터 끌어올리세요.”

    라온은 그 말을 끝으로 인공단전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 그럴 거면 나중에 줬어야지! 폼 다 잡았는데 뺏어가는 게 어디 있어!”

    “생각해보니까. 가문에 돌아가서 하는 게 더 안전하잖아요. 인공단전도 확인하고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아이 씨! 여기선 주는 게 맞잖아! 확 달아올랐는데! 기대했다고!”

    리메르는 이 분위기 어쩔 거냐며 아이처럼 드러누워 버둥거렸다.

    -흐음!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라스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농락의 마왕다운 조롱이니라! 역시 네놈은 마계에 어울리는….

    ‘아니라고.’

    *     *      *

    라온은 셰티의 눈물을 먹은 리메르의 마나회로 회복을 도운 뒤에 마을 중앙의 첨탑 위로 올라갔다.

    그리 높지 않은 탑에서 바라보는 도란 마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쳤고, 대화에는 정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저들의 평화를. 이곳의 따스함을 지켰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운이 좋았지.’

    이번에도 위험했으니까.

    가람을 만날 수 있었기에 틸러의 본모습을 알 수 있었고, 리메르가 막아 준 덕분에 부왕 로만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로엔그린이 라스의 하인이었기에 인공단전과 영류환을 챙겨올 수 있었다.

    스스로 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싸워선 안 돼.’

    처음 부왕 로만을 마주했을 때 가슴 속에서 두려움이 피어났다.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죽을까 봐.

    가족이자, 동료가 된 광풍단이, 철없는 아이 같지만 훌륭한 스승인 리메르가, 간신히 동족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가람이 죽을까 봐 무서웠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로만을 만나서 다행이지, 에덴이나 백혈교의 그랜드 마스터와 싸웠다면 리메르는 죽고, 광풍단도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후우….”

    라온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겁나네.’

    다른 사람들의 위에 선다는 건.

    전생의 자신도 그림자의 간부였지만, 지금처럼 동료를 신경 쓰지 않았다.

    부하가 죽어도 혹은 내가 죽어도 임무만 완수하면 끝나는 사냥개로 키워졌기에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광풍단 검사들의 삶을 옆에서 보았기에, 리메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단 한 명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살리는 방법은 간단하지.’

    강해지는 것.

    지금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질 높은 수련과 전투로 강해져야 한다.

    “그것도….”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을 꽉 말아 쥐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리메르에게 말했듯이 자신만이 아니라, 광풍단 모두가 성장해야 한다.

    어떤 적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키우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번 일에도 우리만 강했으면 단주님은 멀쩡했을 거야.’

    이번에 리메르가 무리한 이유는 광풍단이 남북맹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렉터를 이기고, 광풍단이 악운의 수적들을 꺾을 수 있었다면 리메르도 무리하지 않고, 로만을 몰아낼 수 있었을 거다. 이 모든 일은 전부 광풍단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라온은 뒤에 있는 광풍단의 숙소를 돌아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잘 쉬어두는 게 좋을 거야.’

    돌아가면 잠도 못 잘 테니까.

    3년 뒤 부왕과의 생사결에 대비해 뼈를 깎는 수련을 하면서 광풍단원들에게도 한계를 넘는 수련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이지.’

    벌써부터 광풍단의 곡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저 사람도 굴….’

    -흥!

    라온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라스가 얼음꽃 팔찌에서 튀어나오며 코웃음을 쳤다.

    -생각만 해서 강해진다면 세상에 약자 따위는 없느니라.

    ‘그러니까 노력하겠다고.’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본왕이 보았을 때 네놈과 네 하인들의 한계는 명확하느니라.

    녀석은 볼을 잡아당겨 입을 길게 늘린 채 낄낄 웃었다.

    -보이는군. 귀때기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 본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네 놈의 비굴한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느니라!

    라스는 분노를 더 집어넣을 수 있겠다며 어깨춤을 췄다.

    -이제 네놈의 육체가 본왕의 손에 들어오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

    우우우웅!

    라스의 웃음이 진해질 때 진혼검에서 격한 진동이 일어났다.

    “음?”

    라온이 진혼검의 검병을 잡자마자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혼검이 막대한 양의 혈기를 정화했습니다.]

    [진혼검이 정화한 혈기를 바칩니다.]

    진혼검을 쥔 왼손에서부터 순도 높은 기운이 파도가 되어 밀려들어왔다.

    고오오오오!

    지금까지 얻었던 혈기 중 가장 많은 양. 자연의 마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심한 기운이 대량으로 흡수되자 등골 사이로 전율이 흘러내렸다.

    ‘미쳤군.’

    정화된 혈기는 흡수한 혈기의 양과 질에 관계되어 있다. 사도와 대주교를 죽이고 그 혈기를 모조리 먹어치웠으니, 정화된 혈기의 양과 질도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우우우웅!

    진혼검이 보내준 순도 높은 기운들은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구결을 따라 마나회로를 순환한 뒤 단전에 안착했다.

    마스터가 되며 성장한 단전이 한 차례 약동하고 나서야 그 양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특성 <요기적응>이 단계가 4성으로 상승합니다.]

    [특성 <암습>의 단계가 4성으로 상승합니다.]

    -이, 이게 왜 나와! 하필 왜 지금 나오냐고!

    라스는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흔들리는 동공에 경악이 비쳤다.

    -이익! 본왕의 말을 듣고 있는 게 분명 하느니라! 타이밍을 보면 모를 수가 없느….

    녀석은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질렀지만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의 메시지가 더 남아 있었으니까.

    [진혼검에 새로운 능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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