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55화 (255/653)

제255화

라온은 4사도를 암살하기로 결정하고, 뒤를 돌아 도리안을 불렀다.

“도리안.”

“엑!”

허옇게 반짝이는 고급스러운 책상을 들고 있던 도리안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는 검처럼 책상을 앞으로 겨누며 경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무, 무슨 일이세요?”

“…그건 또 뭐냐?”

얘는 왜 책상을 들고 다녀?

헛웃음이 나왔다. 검을 잡고 있으면 이해라도 하지 왜 책상을 검처럼 들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책상이 쓸데없이 예뻐서 더 어이가 없었다.

“채, 책상인데요….”

“그건 나도 알지. 왜 책상을 가지고 다니냐고.”

“귀신….”

“귀신?”

“이게 배, 백목으로 만든 책상이라 귀신 쫓는 데, 효과가 있을 거 같아서요.”

도리안은 민망한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백목으로 만든 책상이라….’

백목은 사기와 귀기를 몰아내는데 탁월한 힘을 지닌 목재다. 실제로 신관들의 아티팩트나 무기는 백목으로 만드는 경우가 꽤 흔했다.

‘겁을 너무 줬나.’

백목으로 만든 책상이 주머니에서 나온 건 둘째치고, 그 책상으로 귀신을 쫓으려 한 도리안에게 웃음이 나왔다.

“무겁지 않아?”

“괘, 괜찮아요.”

워낙에 힘이 좋은 녀석이라 그런지 책상을 나뭇가지처럼 들었다가 내렸다. 물론 무서운지 안색은 창백했지만.

“저거 통합니까?”

라온이 백목 책상을 가리키며 로엔그린을 보았다.

[그럴 리가요. 전 악령이 아닙니다.]

로엔그린이 고개를 저으며 허허 웃었다.

-본왕의 하인을 악령 취급하지 마라!

‘도리안도 네 부하잖아.’

-저 녀석은 멍청하지 않느냐. 이해해 줘야지.

라스는 로엔그린을 낮게 본다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하를 생각해주다니 신기한 녀석이다.

“안 통한데.”

“이런!”

도리안이 뒷목을 잡고 주저앉았다. 그 상태에서도 책상을 잡은 한 손을 놓지 않는 걸 보면 정말 무서운 모양이었다.

“뭐,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귀신이 안 중요하면 뭐가 중요해요!”

“일단 이분은 귀신이 아니야. 그리고 이 밑에….”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통로의 바닥을 가리켰다.

“백혈교 사도가 있다.”

“어억….”

도리안의 손에 달라붙어 있는 듯 했던 책상이 기어코 떨어졌다.

“사, 사도요?”

“살라만의 모렐도 있고, 싸가지 왕녀도 있지.”

“그럼 지금 발카르랑 백혈교가 붙고 있는 거예요?”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 몰래 지나가죠. 둘이 싸우고 있으니, 귀신님께 부탁해서 길을 안내해달라고….”

“몰래 가는 방법은 없어. 바로 아래가 연구실이니,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좋지. 그래서….”

“그, 그래서요?”

도리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부단주님이라면 없는 방법도 만들어내시겠지.’

지금까지 라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분명 백혈교과 발카르를 상대하지 않고 밑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도를 암살할 생각이다.”

“…예?”

암살이라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땅굴을 파자거나, 돌아가자든가 하는 말보다도 더 황당했다.

“지, 지금 사도를 암살하겠다고 하, 하신 건가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목소리가 바람을 탄 듯 떨렸다.

“그래. 이대로라면 백혈교가 모렐과 발카르를 전멸시키고 먼저 연구실에 닿을 거 같거든. 그 전에 사도를 죽이려고.”

“어억….”

도리안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사도가 무슨 파리야?’

죽인다면 죽여지게?

이대일로 싸워서 이긴다고 말하면 이해라도 하지. 갑자기 암살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웃긴 건 라온의 표정이 담담하다는 것. 오랜 기간 봐왔기에 알 수 있다. 그는 진심으로 사도를 암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 공동에 있는 놈은 몇 사도죠?”

“4사도.”

“그, 그놈은 마스터 중급으로 아는데….”

포르반에서 10사도, 7사도와 만난 이후 백혈교 사도의 정보를 조사했다.

대부분은 정체와 무력이 감춰져 있지만, 4사도의 무력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마스터 중급. 2년 전 마스터 중급이었으니 지금은 그 이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맞을 거야.”

라온이 로엔그린의 구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지는 기파와 움직임을 보면 4사도는 마스터 중급에 도달한 초고수였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암살로 죽여요! 피할 수 없다면 모렐 님하고 연합이라도 해서….”

“그것도 좋지만, 적이 우리를 모르는 이 상황을 그냥 버리긴 아깝지. 거기다 연합을 하면 이기더라도 발언권이 약해져. 모두가 위험한 순간에 사도를 죽인다면 이곳의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도리안은 그게 가능하냐는 듯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테니까.”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검집을 툭 쳤다.

“유사시에 사용할 대책도 준비했고.”

“그 암살이라는 게 적 몰래 다가가서 단숨에 숨통을 끊는 거 맞죠?”

“맞지.”

“그럼 마스터 중급에 오른 4사도의 기감을 어떻게 속여서 칼을 찌를 건데요!”

“잘.”

“후어억….”

‘잘’이라는 말에 도리안의 입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럴 줄 알았어! 그건 그냥 맨 땅에 박치기잖아요! 암살도 안 해보셨으면서!”

“맞아. 제대로 된 암살은 안 해봤지.”

라온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할 수 있어.”

전생에 수없이 많이 해봤으니까.

*     *      *

도란 마을에 남기로 한 2조 조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마을 중앙에 세워진 첨탑 위에 선 루난을 바라보았다.

마을 전체를 살피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멍했지만, 평소와 다른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지금 얼마나 됐지?”

“이틀이 좀 넘었지.”

“이틀 동안 잠 한숨 안 주무시다니….”

라온과 다른 조들이 떠난 뒤 루난은 저 첩탑에 올라가서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마을을 지켰다. 휴식한 뒤에 다시 올라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같은데….”

“그러게. 저런 모습은 처음 봐.”

“잠을 제일 좋아하시는 분이….”

광풍단에서 리메르 못지않게 잠이 많은 사람은 루난이다. 새벽 훈련이나, 아침 조회에서도 멍하니 있다가 조는 일이 많은 사람이 저 정도로 잠을 참는다는 게 놀라웠다.

“힘드실 거야. 단순한 경계가 아니니까.”

루난은 단순히 시선으로 경계를 서는 게 아니라, 미세한 오러를 운용하면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에 굉장히 지쳐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해보고 올게.”

2조 부조장 에비가 옅은 한숨을 내쉬고 첨탑 위로 올라갔다.

“조장님.”

에비의 부름에 루난이 고개를 돌렸다. 잠을 자지 못했음에도 눈동자에 지친 티가 나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쉬고 오세요. 그러다가 정말 싸워야 할 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루난에게 몸 건강을 말해봐야 듣질 않으니, 임무에 대해 말했다.

“괜찮아.”

루난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잠 안 자고 버티는 연습을 했으니까.”

“네? 어, 언제 그런 연습을….”

에비가 입을 떡 벌렸다. 루난이 수면을 참고 버티는 연습을 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라온이 그랬어. 항상 같을 수만은 없다고.”

루난이 설화의 검병을 꼭 잡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언제까지 부담만 줄 수는 없으니까.’

라온은 부단주라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임무에 나가면 항상 불침번과 경계를 서서 다른 검사들이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본인은 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만 해주는 모습이 안쓰러웠기에 아빠에게 부탁해서 체력을 적게 소모하면서 기감을 퍼뜨려 주변을 살피는 경계법을 배웠다.

처음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잠은 구슬 아이스크림과 비슷할 정도로 좋아하는 거니까.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

라온도 이렇게 힘들었을 거라는 걸 깨닫자, 더욱 의지가 강해졌다.

집에 돌아갈 때마다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잠을 줄이고 주변을 세밀하게 살피는 경계법, ‘운사’를 익히게 되었다.

“조금 더 할 수 있어.”

루난이 고개를 젓고서 마을의 전경을 살폈다.

“여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라온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피어났다.

*     *      *

라온은 모렐과 4사도가 싸우고 있는 여섯 번째 공동 앞에서 멈춰 섰다.

보이지 않음에도 모렐이 뿜어내는 마법과 4사도의 혈기가 맞부딪치는 충격이 느껴졌다.

‘호각? 아냐. 모렐이 밀리고 있어.’

마법과 무학의 차이가 있지만, 무력 자체는 모렐이 높다. 더 높이 있음에도 밀리는 이유는 4사도의 혈기와 그가 들고 있는 장도가 마법을 가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저 장도….’

로엔그린의 구슬을 통해 4사도가 들고 있는 시꺼먼 장도를 보았다. 지금도 모렐의 화염 마법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장도에는 사이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을 방해하는 건가. 아니면 오러도….’

구슬을 통해 보는 것으론 장도에 어떤 힘이 깃들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분석은 확실하게 해야 해.’

시간이 없다고 해도 적을 정확히 분석해야 암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도가 문제인지, 4사도의 혈기가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고오오오.

라온은 글래시아를 운용하여 감각의 바다를 열었다. 던전 전체에 퍼진 냉기와 감각을 연결하고 설화의 감각까지 켜서 4사도가 일으키는 혈기의 흐름을 살폈다.

화아아아아!

모렐의 양손에서 건물 기둥처럼 두꺼운 화염의 뱀 수십 마리가 뻗어 나온다.

그의 이명과 같은 이름의 화속성 마법 염화의 뱀. 불꽃의 비늘을 두른 뱀들은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요동치며 4사도의 숨통을 노렸다.

쿠구구구!

4사도가 허리를 옆으로 꺾은 채 장도를 내리긋는다. 검은 칼날에서 허연 혈기가 잔불처럼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검격과 마법의 위력 자체는 호각. 하지만 장도에서 기이한 떨림이 일어나는 순간 뱀들의 모가지가 싹둑 잘려 나가며 강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방금 그건….’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장도에서 피어난 혈기가 마법의 흐름에 끼어들었어.’

조금 전 4사도의 장도에서 일어난 혈기는 마법을 베는 게 아니라, 마나의 흐름에 끼어들어 모렐의 마법을 약화시켰다.

그 이후에도 4사도는 모렐이 쏟아내는 화염 마법의 향연을 어렵지 않게 녹여버렸다.

‘저거였군.’

라온은 마법의 결을 가르는 4사도의 장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기가 아니라, 장도의 능력이었어.’

혈기 자체가 오러와 마법에 강하긴 하지만 저런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마법을 쉽게 베는 건 저 장도가 가진 공능이었다.

‘그리 어렵진 않겠군.’

4사도 본연의 능력이 아니라, 무기의 힘이라면 암살하는데 큰 장애는 없었다.

[으음, 분노의 신관이시여.]

로엔그린이 짧은 신음을 흘리고서 옆으로 다가왔다.

[저 혈기를 쓰는 잡것의 무력이 신관님보다 강합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이니, 암살은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힘의 차이가 나기 때문인지 도리안만이 아니라, 로엔그린도 걱정을 비추었다.

-저 말이 맞느니라. 쓸데없는 짓 하다가 안경잽이의 미련도 못 풀고 뒤지지 말고, 허접한 것들끼리 힘을 모아서라도 싸워라. 암살은 쉬운 게 아니다. 이 족제비, 사기꾼, 악마 자식아!

라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끝에 뭐가 많이 붙은 걸 보니,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금방 끝낼 테니까요.”

라온이 라스를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암살은 말 그대로 일격필살. 실패한다면 리스크가 크게 돌아오는 법이다 보니, 이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냉기로 가득 찬 이 던전이라면 준비를 해온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고오오오!

라온이 글래시아를 일으켰다. 만화공의 기운을 완전히 억제하고, 글래시아의 냉기로 전신의 마나회로를 채웠다.

이 던전 전체에 퍼져 있는 냉기와 단전에서 피어나는 글래시아의 기운을 공명시켜 하나의 흐름처럼 만들었다.

‘조금 더….’

아직 부족하다. 4사도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기운을 지워야 한다. 대기에 떠 있는 한 조각 서리처럼 느껴지도록 글래시아의 기운을 주변의 냉기에 동화시켰다.

“뭐, 뭐야….”

도리안이 라온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왜 기척이 없지?’

라온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이곳에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허어!]

로엔그린이 던전의 냉기와 하나가 된 듯한 라온의 기척을 느끼고 탄성을 흘렸다.

‘괜한 걱정이었어.’

그분이 실수를 하실 리 없지.

분노의 신께서 자신의 능력도 모르는 멍청한 자를 신관으로 삼을 리가 없었다. 괜한 의심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스르르릉.

라온이 진혼검을 뽑았다. 붉은 칼날 위로 요요로운 기운이 번들거렸다.

우우우웅!

사도를 죽일 생각에 흥분했는지 평소보다 더 짙은 검명을 터트리고, 강한 요기를 뿜어냈다.

‘안 돼.’

진혼검을 꽉 말아쥐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떠들면 들킨다. 네 살기를 적의 살기에 숨기며 기운을 낮춰.’

라온은 해일처럼 요동치는 진혼검의 요기를 통제하여 자신이 이뤄낸 흐름과 파장을 맞췄다.

우우웅.

용암이 폭발한 듯 거칠게 타오르던 요기가 개울처럼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라온은 진혼검의 요기를 글래시아의 냉기로 감출 수 있을 정도로 낮춘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섯 번째 공동의 입구에 섰다. 기척 자체가 사라졌기에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렐과 4사도 그리고 백혈교와 발카르의 마법사들은 눈동자에 살의를 담은 채 서로를 향해 오러와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라온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짐승에게 가장 빈틈이 많을 때는 언제일까?

잠을 잘 때? 먹이를 먹을 때?

아니다.

사냥감의 숨통을 끊기 직전이다.

이걸 놓치면 굶어 죽는다는 생각으로 덤비기에 적을 죽이기 직전만큼은 모든 신경이 상대에게 쏠려 있다.

후우.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전생. 그것도 최전성기 시절의 감각을 영혼에 덮으며 진혼검의 검병을 자연스럽게 고쳐 잡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4사도의 혈기에 물러나는 모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자세를 낮췄다.

“커헉!”

“꺄아악!”

이닐드와 제이나 왕녀가 대주교가 일으킨 혈기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대주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혈기의 창 수십 개를 만들어냈다.

“젠장!”

모렐이 이를 악물고 강대한 화염의 파동을 일으켰다. 무시무시한 화력의 구체. 하지만 저건 지금 나와서는 안 되는 마법이었다.

빨리 전투를 끝내고 왕녀를 구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상대에게 먹이를 던져주었다.

찌지지직!

4사도의 사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은 장도에서 사나운 혈기가 치솟아 모렐이 일으킨 마법의 흐름을 일그러뜨렸다.

“급했구나! 염화의 뱀이여!”

사도가 허리를 비스듬히 굽히며 장도를 내리친다. 모렐의 화염이 장도의 혈기에 엉키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아직 아니야.’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움직였다간 놈이 눈치챈다. 조금 더 참아야 했다.

치아앙!

4사도의 칼날이 거대한 화염의 구체를 가르고, 모렐의 어깨에 박힌다.

푸칵!

모렐의 쇄골에서 살벌한 양의 핏줄기가 터지고, 4사도의 살기가 더 진해졌다. 단숨에 목을 베려는 듯 장도의 궤도를 틀었다.

‘지금!’

라온이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극한의 태화보. 허공을 격하고 나아가 4사도의 지척에 이르렀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멈췄다. 던전을 떠도는 푸른 서리처럼 숨을 죽인 채 4사도의 그림자에 섰다.

후우우웅!

4사도의 검은 장도가 모렐의 목에 박히려는 찰나 진각을 밟고 진혼검을 내질렀다.

찌지지직!

피가 스며든 듯한 붉은 칼날이 혈기의 흐름을 찢어발기고, 4사도의 왼쪽 가슴에 박혔다.

“무, 무슨!”

4사도가 이를 악물고 몸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

진혼검의 칼날 속에 응집되던 요기와 냉기가 단숨에 치솟으며 4사도의 가슴에서 막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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