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내가 보이는 거 맞지? 다시 말 좀 해보아라! 어서!]
라온은 허공에서 몸부림을 치는 로엔그린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 사람이 정말 네 하인 맞아?’
-그렇느니라.
라스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이제야 알아본 건데?’
로엔그린이라는 가명을 썼으니 이름은 모를 수 있지만, 본인의 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냐?
‘뭘?’
-저 녀석 이미 죽었다.
‘아!’
라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생생하게 말을 걸고 움직여서 잊고 있었지만, 지금 로엔그린은 다리가 없고 반투명한 유령의 모습이었다.
-저 안경잽이 녀석에게 빌려주었던 능력의 대부분은 이미 본왕의 본체로 돌아왔느니라.
라스가 로엔그린의 로브에 그려진 얼음꽃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죽으며 변질된 저 녀석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건 강 상류에서 흘려보낸 맥주 한 잔을 하류에서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그렇군.’
당연한 일이었어.
로엔그린은 몇백 년 전 배신의 마녀 멀린과 싸웠던 영웅 중 한 명이다. 마스터나, 고위 마법사들의 수명이 길다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저 상태는 뭐지? 정말 유령이라도 된 거야?’
라온은 푸른 로브 사이로 삐져나온 로엔그린의 투명한 꼬리를 내려보며 물었다.
-저건 유령 따위가 아니니라. 잔존 사념. 한이 남아서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의 껍데기이니라.
라스가 짜증이 어린 숨을 뱉어냈다.
-네놈이 가지고 있는 허접스러운 단검에 원한이 깃들었듯 저 녀석도 미련이 남아 저런 잡스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데?’
영웅이라 불렸던 마법사가 무슨 한이 남아서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걸….
‘그걸?
-그걸 본왕이 어떻게 알겠느냐!
라스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계속 봐왔을 거 아니야.’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처럼 옆에 붙어 있었을 텐데, 그걸 모른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 네놈 같은 줄 아느냐….
라스가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저 안경잽이는 본왕의 변덕과 배려로 힘을 내어준 것이고!
녀석의 눈에 분노가 뜨겁게 차올랐다.
-네놈은! 본왕을 불러놓고, 본왕의 모든 것을 강탈하지 않았느냐!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이야기이니라!
‘아….’
라온이 천천히 눈동자를 내렸다.
‘그렇겠네.’
라스는 능력치를 뺏길 때마다 매번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비명을 지르고, 혼절했었다. 그 반응과 지금의 말을 생각해보면 로엔그린과 자신은 아예 반대 상황인 것 같았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대답하거라!]
라온은 로엔그린을 보지 않았다. 조금 더 정보를 모으기 위해 라스를 내려보았다.
‘배려와 변덕이라니, 무슨 뜻이지?’
-그걸 왜 본왕이 말하겠느냐!
‘파인애플 피자 2판 추가.
-날 언제까지 식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유아가 떠나기 전에 새우 피자를 만든다고 했거든?’
-새, 새우?
‘새우에다가 소고기를 얹고, 위에 파인애플을 두 조각씩….’
-처음은 네놈과 비슷했다. 그때….
라스는 바로 입을 열었다. 빠르고 경쾌하게.
* * *
<프라이드>와 전쟁이 끝난 뒤 본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분노가 느껴졌다. 마계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분노에 흥미가 동했다.
분신을 이용하여 중재자들의 시선을 돌린 뒤 강대한 분노의 파동이 일어난 장소로 향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불길에 휩싸인 도시. 시체와 피로 범벅이 된 땅 위에서 녹색 머리가 붉게 물든 청년이 절규를 터트렸다.
“죽인다! 죽일 거야! 모조리 죽이겠어!”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는 청년의 눈과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분노의 감정이 그의 마음을 죽이고 있었다.
뻔하군.
분노라는 감정의 대부분은 타인에게서 나오는 법. 저자는 누군가에게 가족과 마을을 잃은 분노로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청년에게 다가가서 무얼 원하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 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힘!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악마들을 죽일 힘을 원합니다!”
이것도 뻔했다.
복수를 원하고 분노하는 것들은 모두 힘을 원하니까.
시간 낭비였군.
그대로 돌아가려 할 때 청년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스쳤다.
“제 발로 돌아다녀선 안 되는 악귀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을 산 채로 얼려서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해줄 겁니다.”
뼈를 으깨는 듯 읊조리는 말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췄다. 저 말은 내가 다른 악마들에게 하고 다녔던 말이었으니까.
이름을 물었다.
“로엔옐로입니다.”
청년은 녹색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배려일까. 혹은 변덕일까. 시스템을 이용하여 청년에게 나의 냉기와 수속성 친화력을 새겨주었다.
“감사합니다!”
단번에 본인에게 힘이 생겼다는 깨달은 로엔옐로가 고개를 숙였다.
“복수가 끝나면 제 영혼을 바치겠나이다! 분노의 신이시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녀석이었다. 분노의 감정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마왕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인간의 영혼 따위가 아니니까.
“그럼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됐다고 말했지만 로엔옐로는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물러나지 않았다.
“정말 제 영혼을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귀찮아져서 넘겨준 특성들이나 개선해보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엔옐로는 그제야 바지를 놓아주었다.
“이 로엔옐로, 복수를 이루고 난 이후에는 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헛짓하지 말고, 이름이나 바꾸라고 말했다. 녹색 머리칼에 로엔옐로라는 이름은 너무도 안 어울렸으니까.
마계로 돌아와서 가끔 로엔옐로를 살폈다. 녀석은 힘을 키우고, 사람들을 모으며 성장해나갔다. 강해질수록 분노의 감정도 커졌기에 적당한 간식이 되었다.
분노로 스스로를 죽이던 청년이 노인이 되었을 무렵 녀석은 동료들과 함께 복수에 성공했고, 가졌던 분노를 모두 내려놓았다.
나쁘지 않았군.
한순간의 변덕치고는 재밌는 여흥이 되었기에 잘 살라는 마지막 말을 전한 뒤 녀석과의 연결 고리를 끊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건>이 터졌고.
깨어난 뒤에 만난 건 마계도 울고 갈 진짜 악마였다.
* * *
라온이 라스를 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이제 알겠어.
왜 던전의 냉기에서 친숙한 느낌을 받았는지, 어떻게 골렘의 핵을 한 번에 찾고, 동굴 안 통로를 발견했는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
‘글래시아 덕분이었어.’
이 던전을 만든 로엔그린이 자신 이전에 라스에게 냉기와 수속성 친화력을 받았던 하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밌네.’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마법과 검술을 사용한다는 게 다르지만, 로엔그린은 사형제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도 쉬운 삶을 살지 않았군.’
책으로 읽었을 땐 전형적이고 지루한 영웅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라스의 도움이 있었을지언정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뤄낸 진짜 영웅이었다.
‘그럼 미련은 뭐지?’
다른 의문은 모두 풀렸지만 가족과 마을의 복수를 끝낸 그가 어떤 미련을 가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로엔그린이 보이는 건 글래시아를 익힌 너와 나뿐인가?’
-그럴 것이니라. 크흠, 어쩌다 보니 다 말했지만….
라스가 민망한 듯 턱을 긁적였다.
-네놈에게 양심이 있다면 저놈을 이용할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말고, 미련이나 풀어줄….
“전 <분노의 신> 라스 님을 모시는 신관입니다.”
라온은 도리안에게 들리지 않게 로엔그린에게만 목소리를 흘렸다.
처음에 분노의 신이라고 외친 걸 보면, 여전히 라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얌마!
라스가 빽 소리쳤지만 무시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 무슨 발랑 까진 소리더냐! 네가 어딜 봐서 분노의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는 것이야!]
“이 비밀 통로를 열고, 당신을 직접 보고 있음에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직접 보여드리죠.”
라온이 피식 웃고서 영혼에 달라붙은 라스의 분노와 글래시아를 동시에 일으켰다.
고오오오!
어깨 위로 스멀스멀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에 로엔그린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허억! 그 푸른 분노는 그분의!]
“이제 아시겠습니까?”
[미천한 종이 분노의 사제님을 뵙습니다!]
로엔그린이 허공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예상대로 넘어가는군.’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진실과 세밀한 거짓 그리고 담백한 연기력이 필요한데, 지금 그 모두가 갖춰졌다. 그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잔존 사념이 된 걸 보니, 세상에 미련이 많이 남은 모양이군요.”
[단번에 알아보시다니, 역시 신관님이시군요!]
로엔그린은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 그거 다 본왕이 한 말이잖느냐! 이노오오오놈!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귀 같은!
라스가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잘 생각해봐.’
라온이 침착하게 라스를 막아섰다.
‘네 부하는 지금 미련이 남아서 저런 유령 상태로 있는 거지?’
-그렇다! 그런데 네놈이 그걸 이용….
‘그 미련을 풀어줄 사람은 지금 나뿐이지?’
-그, 그렇겠지?
라스는 다른 놈들은 안 보이니까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이 위에 있고, 아래에는 로엔그린의 유산이랑 먼저 들어간 놈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 그런데?
‘내가 그 유산을 못 먹으면 로엔그린의 미련을 잘 풀어줄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요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까? 아, 나도 잘 모르겠네.’
-으….
라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추, 충분히 가능해.’
이놈은 무조건 할 놈이야!
지금까지 본 라온 지그하르트는 목표를 위해선 피도 눈물도 가리지 않는 악마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로엔옐로를 계속 이승에 묶어 둘지도 모른다.
‘그건 안 돼.’
변덕이나 배려라고 해도 한 번 부하로 삼은 녀석을 저런 꼴로 놔둘 수는 없었다.
-젠장….
라온은 끙끙 앓는 라스를 보며 옅게 웃었다.
‘날 진짜 악마라고 생각하나 보네.’
유산이 어떻게 되든 로엔그린의 미련은 풀어줄 생각이다. 다만 이렇게 만났으니, 좀 더 편하고, 빠르게 던전을 내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의 미련은 무엇입니까.”
[그건 아래에 내려가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로엔그린은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훗.”
-끄으으응!
라온이 씩 웃으며 시선을 돌리자, 라스는 절망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안내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로엔그린은 뒤만 따라오라고 말하며 동굴에 열린 통로로 들어갔다.
“가자.”
라온은 도리안에게 손짓하고 로엔그린의 뒤를 쫓았다.
“아니….”
도리안이 라온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건데요! 왜 들리지도 않는 혼잣말을 하고서 계속 허공만 보는 건데!”
그는 턱을 파르르 떨며 두 손을 꽉 잡았다.
“나 이런 거 무서워한다고! 귀신이면 빨리 말해요! 말하라고! 야!”
* * *
“허억! 허억!”
크레인이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달려오는 조원들의 표정은 창백하게 질렸고,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당연하겠지.’
말을 버린 뒤 전력으로 보법을 밟은 지 하루가 다 되어갔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 모두가 지치는 건 당연했다.
“조, 조장님.”
크레인이 가장 앞에서 달리는 버렌을 불렀다. 버렌은 대답 없이 고개만 슬쩍 돌렸다.
“자, 잠시만 휴식하시죠. 이대로라면 전부 쓰러질 겁니다.”
“음….”
버렌은 조원들의 구겨진 얼굴과 탁해진 숨소리를 듣고서 발걸음을 멈췄다.
“10분간 휴식한다.”
“으허헉!”
“아후!”
“주, 죽겠다….”
휴식을 지시하자마자 검사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저 조장님. 아니, 버렌 님.”
크레인이 숨을 고르고서 버렌의 옆에 섰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급한 건 알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전부 퍼질 겁니다.”
빠른 속도로 보법을 밟는 것과 전력으로 오러를 운용하여 보법을 밟는 건 피로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지금 속도를 유지했다간 오러가 바닥나서 전부 쓰러지게 될 거다. 다른 검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지친 눈으로 버렌을 바라보았다.
“나라도 너희들이 힘든 걸 왜 모르겠어.”
버렌이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단주님은 우리를 위해 무리하시다가 그런 상태가 되셨고, 라온은 단주님을 구하기 위해 도리안 한 명만 데리고 던전에 들어갔다.”
“아….”
“던전의 소문이 남북맹까지 퍼진 걸 보면 육황오마는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은 세력들도 들어갔을 거야.”
지금 라온은 로엔그린이라는 마법사가 만든 함정과 결계, 몬스터만이 아니라, 다른 경쟁자들과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늦었으니 더더욱 급하게 가겠지.’
렉터가 던전의 소문을 말해준 시간과 라온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무리해서 던전을 돌파하고 있을게 뻔히 보였다.
“라온이라면 던전 안에서 누구와 만나든 물러서지 않을 거야. 영약이 있든 없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던전의 끝에 도착할 놈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달려야 해.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으음….”
“후우, 맞는 말이십니다.”
“부단주라면 그러고도 남지.”
버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풍 3조가 몸을 일으켰다. 피로는 여전했지만 지친 눈빛에 정광이 어려 있었다.
“너희들….”
“다 쉬었습니다.”
“예. 단주님과 부단주님을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두 분은 저희보다 훨씬 힘드시겠죠.”
“출발합시다!”
광풍단원들이 씩 웃으며 발목을 돌렸다.
“좋다.”
버렌은 그들의 밝은 눈빛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출발! 지부까지 멈추지 않는다!”
“예!”
광풍 3조는 출발할 때보다 더 힘찬 걸음으로 나아갔다.
* * *
라온은 비밀 통로를 나간 뒤 다시 정식 루트를 통해 던전을 내려갔다.
[그 발판은 함정입니다. 지뢰처럼 걸음을 떼자마자 전신이 얼어붙지요.]
[저 공간은 프로즌 헬이라고 이름 붙인 결계죠. 수십 개의 얼음 가시가 돋아난 공이 결계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아, 거긴 다시 위로 가는 길입니다. 반대편은 길이 험하면서도 길죠. 가운데가 함정도 적고 빠릅니다.]
로엔그린은 바로 옆에 붙어서 함정과 결계의 위치 그리고 어떤 길이 더 편하고 빠른지까지 알려주었다.
‘꽤 시간을 벌었어.’
던전을 만든 마법사가 직접 알려주는 루트로 가기에 먼저 간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흔적이 진해진 걸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만이 아니지.’
라온은 옅게 웃으며 조금 전 로엔그린이 경고했던 함정을 가리켰다.
“이건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시는 거죠?”
[아, 냉기로 원형의 구체를 만든 뒤에 폭발하는 이미지를 심어서 적이 모습을 드러내면 가시가 생기도록….]
로엔그린은 마법사답게 함정이나 결계의 운용방식에 대해 질문하면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덕분에 그의 마법에 깃든 심상을 무학으로 응용할 방법도 떠올랐다.
[그 바닥이 세 번째 층의 마지막 함정입니다. 곧 네 번째 공동이 나타나겠군요.]
“예.”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의 함정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편하네.’
빠르고, 안전한데, 편하기까지 해서 잠이 올 정도다. 이런 길잡이를 얻은 건 당연히 라스 덕분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챙겨주는 아낌없이 주는 라스다웠다.
‘고마워.’
-이익!
라스를 보며 씩 웃자, 녀석이 분한 듯 어깨를 떨었다.
‘이제 유물을 물어봐도 되겠지.’
혹여나 의심할까 봐 참고 있었지만, 지금쯤이면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곳에 혹시 깨진 단전이나 마나 회로를 고칠 수 있는 유물이 있습니까?”
[흐음….]
로엔그린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느릿하게 시선을 내렸다.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두 가지.”
라온이 떨리는 속마음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의 신께선 그 둘 모두를 원하십니다.”
-야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