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52화 (252/653)

제252화

임시로 연합의 리더를 맡은 비테른은 던전 입구로 다가가는 라온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뭐 하는 놈이지?’

어떻게 결계를 일검으로….

젊다 못해 어린 얼굴을 보자마자 이용해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말을 걸었는데, 저런 괴물 같은 무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단순히 강한 게 아니야.’

이 정도 결계를 힘으로 부수려면 아무리 못해도 마스터 급 이상이어야 한다. 강기가 아니라, 검기로 결계를 가른 걸 보니, 결계의 흐름까지 읽은 게 분명했다.

‘완성에 다다른 검기에 결계를 읽는 눈까지….’

저거 괴물이구만.

완전 잘못 봤다. 처음에 보여준 웃음은 어리숙함이 아니라, 여유로움과 자신감을 담은 미소였다.

“비테른!”

“어, 어떻게 하지?”

“저대로 들어가잖아.”

“그냥 보낼 거야?”

처음부터 함께 온 길드 동료들이 다가왔다. 전부 당황하여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바보들아. 오히려 잘 된 거야.”

비테른이 입구를 살피는 라온을 보며 차게 웃었다.

“엉?”

“자, 잘 됐다고?”

“다들 겁먹었는데 무슨….”

길드원들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어차피 저 안에는 육황오마와 그에 못지않은 대형 세력들이 있지. 저런 녀석도 조심히 갈 수밖에 없어.”

“아, 그러면….”

“그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거야.”

비테른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던전의 위험 요소를 치워주길 기다리면서 안전하게 뒤를 쫓으면 콩고물 하나는 주워 먹을 수 있겠지.”

차라리 잘 되었다. 저 어린 녀석의 뒤를 쫓는다면 연합원보다 더 뛰어난 인간 방패막이가 생기는 것이다. 많은 것은 얻지 못해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준비해. 저 녀석이 던전에 들어가면 바로 달려. 결계가 사라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알겠어.”

“예!”

비테른은 연합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자세를 낮췄다. 라온이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내렸다.

“달려!”

그 말과 동시에 연합원 모두가 던전으로 뛰기 시작했다.

‘결계는 사라지지 않는군.’

비테른이 씩 웃었다. 정말 잘 베었는지 아직도 결계가 갈라져 있었다.

“이대로 진입…어?”

그가 입을 떡 벌리며 멈춰 섰다.

쿠구구구구!

던전 입구가 지진 난 듯 흔들리다가 땅속으로 파묻히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그 자식 입구를 부쉈어!”

“파, 파! 지금이 아니면 더 묻혀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비테른이 다급하게 땅을 손으로 파기 시작했지만, 협곡 사이에서 계속 바위와 모래가 쏟아져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우우웅!

첩첩산중이라고 갈라진 결계도 돌아오며 지독한 운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이!”

비테른은 입구를 아예 깨부숴버린 라온을 향해 악을 질렀다.

*     *      *

“으으윽!”

도리안은 무너지는 입구를 보고 눈동자를 떨었다.

“이, 이거 진짜 맞아요? 나중에 못 나가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라온은 입구를 확실하게 틀어막고서 씩 웃었다.

“우, 웃었어! 입구를 부수고 웃었다고!”

도리안은 그게 더 무서운지 어깨를 파들파들 떨었다.

“이게 맞는 거야. 뒤에서 치면 위험하거든.”

마법사의 던전을 탐사할 때 위험한 건 마법 함정과 기관, 결계만이 아니다. 언제 뒤에서 습격해올지도 모르는 다른 경쟁자들도 함정 못지않게 위험하다.

지금 뒤에 있던 자들은 큰 위협이 되진 않지만, 혹시나 다른 강자들이 올 수도 있기에 아예 입구를 막아버렸다.

“아니, 적들이 못 오지만, 우리도 못 나가잖아요! 유물을 구했다고 쳐도 여기서 죽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마법사 던전의 입구는 하나가 아니야.”

“예?”

“생각해봐 마법사라고 계속 여기서만 살겠어? 가끔은 외출해서 외식도 하고, 마법 재료도 사 와야 하지 않을까?”

“그, 그건 그렇죠.”

도리안이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법사들이 함정이랑 결계를 설치해 놓은 이 길을 매번 지나갈까?”

“어….”

“아니야. 대부분은 던전 최하층에 본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거든. 거기로 나가면 돼.”

지금까지 갔었던 마법사 던전 중 비밀 통로가 없던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쾌적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마, 만약에 없으면요!”

“그럼 여길 뚫어야겠지.”

“저렇게 됐는데 어떻게 뚫….”

“너 삽 있잖아.”

라온이 도리안의 배 주머니를 가리켰다.

“이, 있죠.”

“곡괭이도 있지?”

“그것도 있죠. 마나석 굴삭기랑 손수레도 있고….”

도리안은 나선으로 홈이 파진 창 같은 물건과 수레를 꺼내 보였다.

“그, 그런 것도 있어?”

삽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마나석 굴삭기를 들고 다닐 줄은 몰랐다.

“필수다 보니까.”

“그럼 됐네. 파면 되잖아.”

“아, 그러네.”

도리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니잖아.”

그는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웃었다. 역시나 단순해서 편한 녀석이다.

“이제 앞만 조심하면 돼.”

라온이 뒤를 힐끔 보고서 제천검을 검집에 넣었다.

“내 건 누구에게도 못 주지.”

아예 안 왔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와서 허탕 칠 수는 없다. 아래에 뭐가 있고, 누가 있든 리메르에게 도움이 될 유물을 챙겨서 나갈 것이다.

“버, 벌써 내 거라니….”

도리안을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가자.”

라온은 앞장서서 동굴을 내려갔다. 길은 하나였고, 함정이나 결계는 없었기에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추워지는군.’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수속성으로 이름 날린 마법사답게 던전 전체 전체의 기온을 낮춘 것 같았다.

“음….”

라온이 허공에 떠다니는 서리 조각을 손아귀에 얹으며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이 냉기….’

왜 익숙한 기분이 들지?

냉기가 강해질수록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든다. 글래시아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 외딴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으음….

라스도 냉기를 보며 무슨 고민을 하는지 눈매를 좁히고 있었다.

‘라스. 너 혹시 이 냉기….’

“끄으윽! 더럽게 춥네! 뼈가 시릴 정도야!”

라스에게 물어보려고 할 때 도리안이 비명을 흘렸다. 견디기 힘든지 손을 떨며 배 주머니에서 아이스 트롤 가죽으로 만든 모피를 꺼내 입었다.

“부단주님도 드려요?”

“괜찮아.”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의미 없으니까.’

수속성 저항력이 6성인 자신에게 이 정도 냉기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잘 됐어.’

먼저 들어간 사람들도 이 정도 추위를 그냥 견디기 힘들 테니,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화아아아!

냉기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독해졌다. 입김이 나오고, 머리 위로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 저기 구멍이 있어요!”

도리안은 발을 동동 구르며 통로의 끝에 있는 타원형 입구를 가리켰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라온은 기척을 살피며 입구 안으로 살폈다. 굉장히 넓은 공동이었는데, 추위가 한층 더 심해졌다. 4서클 마법 아이스 필드를 이곳 전체에 펼친 것 같았다.

우우웅!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허리에 찬 진혼검이 낮은 검명을 흘렸다.

진혼검이 스스로 우는 이유는 딱 하나.

백혈교도가 있다는 뜻이다.

‘백혈교였군.’

밖에 있던 자들이 오마가 왔다고 하기에 누구인가 했는데 백혈교였던 것 같다.

‘하긴 놈들이 제일 빠르겠지.’

백혈교의 교세는 대륙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부가 없는 곳이 없을 테니, 정보만 있다면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을 것이다.

“백혈교가 있다. 조심해서 들어와.”

“엑?”

도리안은 입을 틀어막은 채로 기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라온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발밑에 시체가 가득했는데, 문양을 보니 주변에 있던 중소 규모의 단체들인 것 같았다.

검상뿐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짐승에게라도 당한 듯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살도 뜯어 먹었군.’

꼴을 보니, 이 추운 곳에서 폭식이라도 취한 것 같았다. 인간성을 버리고 힘에 취한 혈귀다웠다.

우우우웅!

진혼검도 그걸 느끼고 조금 전보다 더 과격한 검명을 울렸다.

‘잘됐군.’

일석이조가 되겠어.

유물을 챙기는 것으로 모자라 살 가치가 없는 흡혈귀 놈들까지 처리할 기회였다.

라온은 아무것도 모른 척 기세를 줄이며 공동의 중앙으로 향했다.

“새로운 손님인가?”

“둘? 너무 적잖아.”

“그러게. 밖에 더 남아 있었을 텐데.”

“배도 안 차겠네.”

공동에 흩어져 있던 백혈교도 스물이 얼어붙은 피를 짓밟으며 다가왔다. 이와 입술은 사람의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칼날은 붉게 번들거렸다.

“난 왼쪽이 마음에 들어. 원래 잘생긴 놈들이 살점이 부드럽다고.”

“난 오른쪽. 살이 넉넉해서 씹을 게 많겠어.”

백혈교도 중 다섯은 전부 로브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일반 교도가 아니라, 사제들이었다.

“입 닫고, 죽여. 그분들께 자그마한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가운데에 있는 백혈교도가 앞으로 나온다. 로브에 그어진 두 줄을 보니, 이곳을 책임지는 주교였다.

라온이 진혼검의 검병을 쥐며 입맛을 다셨다.

‘잘 됐어.’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진혼검에 깃든 백혈교에 대한 원한으로 청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었다. 앞에 죽어도 싼 놈들이 있으니, 바로 써 보기로 결정했다.

터어엉!

주교의 손짓에 백혈교도 모두가 혈기를 폭발시키며 달려들었다.

치이이잉!

백혈교도들이 뿜어내는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칠 때 글래시아를 일으키며 진혼검을 뽑았다.

청우의 정대한 구결이 요기로 물든 칼날을 스치며 섬뜩한 빛이 튀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4형`변 혈우.

붉은 검날이 한층 더 뻘겋게 타오르며 악마의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기괴한 선율이 대기를 가르고, 백혈교도의 귀속을 찢어발겼다.

“끄아아아악!”

“크어억!”

“커흑!”

그 기괴한 소리를 들은 백혈교도는 눈과 코, 입, 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고통스러운지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몸을 비비다가 숨이 끊어졌다.

우우우우웅!

진혼검은 백혈교도들이 토해낸 혈기를 검날로 흡수하고 나서야 울음을 그쳤다.

“미쳤군.”

라온이 더 빨개진 진혼검을 보고서 헛바람을 뱉었다. 백혈교 한정이지만, 청우와는 파괴력 자체가 다르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대주교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조금 잔인하지만 백혈교도를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지독한 고통을 주며 죽이기에 진혼검은 만족해하고 있었다.

“넌 괜찮아?”

라온이 뒤를 돌아 도리안을 보았다. 워낙에 잔혹한 음율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음?”

“굉장히 슬프게 들렸어요.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말이 정말인지 도리안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져 있었다.

‘그렇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혼검은 백혈교에게 당한 원혼들을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칼이다. 복수 이전에 가족을 잃은 슬픔이 클 테니, 그 감정이 검명에 담긴 것 같았다.

‘언젠가는 끝날 수 있을 거야.’

진혼검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해주고 검집에 넣었다.

“가자.”

라온은 백혈교도가 지키던 통로로 나갔다. 기온이 더 내려간다. 하분 성에 있을 때보다 더 추워져서 입김마저 얼어붙을 것 같았다.

“으윽! 오장육부가 얼어붙는 거 같아요!”

도리안은 미치겠다고 중얼거리며 털모자와 털 신발, 열기를 가진 마법 팩까지 꺼냈다. 배 주머니에서 빼서 교체하는 시간이 번개처럼 빨랐다.

“어? 이 꽃은 뭐죠?”

그는 통로 이곳저곳에 깔린 얼음꽃들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팔찌의 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얼음꽃이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벽면에서도 푸른 냉기가 돋아나고 있었다.

‘이 냉기… 평범한 것이 아니군.’

결계였어.

얼음꽃과 벽, 바닥에서 퍼지는 냉기는 단순히 기온을 낮추는 게 다가 아니다. 점성이 있는 냉기라 코와 입을 통해 몸 안에 들어가 호흡기관까지 얼려버리는 위험한 결계였다.

그저 추울 뿐이라고 미련하게 버티다간 얼마 가지 못해 호흡 장애로 죽게 될 것이다. 실제로 통로 구석구석에는 전신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화아아아아!

라온은 만화공을 일으켜 자신과 도리안에게 향하는 냉기를 모조리 녹여버렸다. 오러 소모가 있다고 해도 지금은 이렇게 움직이는 게 나았다.

“가, 감사합니다! 스튜 한 그릇 말아먹은 느낌이네요.”

“내 주머니는 보호해야지.”

“예?”

“아냐.”

옅게 웃고서 앞으로 향했다. 통로의 끝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여긴….”

안으로 들어가자, 푸른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보였다.

“호수? 여길 건너라는 건가?”

도리안은 호수의 끝을 살피고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쉽겠는데요? 거리도 가까워서….”

“그런 게 아니야.”

라온이 인상을 찡그리고서 검병을 쥐었다.

쿠구구구구!

그 순간 호수가 파도처럼 물결치며 방의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응집된 물길이 분수같이 솟구쳐서 거대한 인간의 형태로 조형된다. 5m 크기에 몸체에 각종 얼음꽃이 새겨진 거대한 아이스 골렘이 붉은 눈빛을 뿜어냈다.

“어억!”

도리안이 입을 떡 벌린 채 물러서서 손가락을 떨었다.

“고, 골렘! 아이스 골렘!”

“그것도 꽤 까다로운 놈이지.”

단순한 아이스 골렘이 아니다. 액체와 고체의 전환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놈이라 재생이 빨라서 쓰러뜨리려면 전신을 아예 녹여버리거나, 핵을 부숴야 했다.

‘잘도 만들었군.’

마나의 흐름이 일정해.

만화공으로 기감을 펼쳐도 골렘 내부의 핵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의 마안을 써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다른 얼음 알갱이처럼 만들어서 숨긴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까.’

선두와 시간 차이가 나서 핵을 찾을 시간은 없지만, 이곳의 냉기가 친숙하다는 느낌을 기억하고 글래시아를 운용했다.

고오오오!

순도 높은 냉기로 골렘을 훑어내리자마자, 오른쪽 어깨 안쪽에서 다른 부위보다 아주 미세한 차이를 가진 반원형 냉기 조각이 느껴졌다.

‘저게 핵인가?’

다시 살펴보아도 오른쪽 어깨에서 다른 부위와는 조금 다른 흐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일단 해보자.’

라온이 제천검을 뽑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쿠구구구!

골렘은 즉시 반응하여 사람 몸통만 한 주먹을 벼락처럼 내리쳤다. 액체 형태였기에 움직임 자체가 부드러우면서 빨랐다.

터엉!

골렘의 주먹이 떨어지는 순간 땅을 박차고 올라 글래시아로 찾았던 반원의 조각을 향해 검날을 박아넣었다.

빠지직!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골렘의 움직임이 멎었다.

쿠구구구구!

골렘은 전신을 파르르 떨다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푸른 액체가 되어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어? 어어?”

도리안이 제천검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바, 방금 그냥 찌르기 아니었어요? 찌르기 한방으로 골렘이 깨져?”

“핵을 부쉈어.”

“핵을 한 번에 찾았다구요? 아니, 무슨 마법사세요?”

“운이 좋았어.”

라온은 제천검에 꽂혀 있는 얼음 조각을 털어내고서 입맛을 다셨다.

‘신기한데.’

글래시아가 아무리 순도 높은 냉기의 오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골렘의 핵 위치를 찾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너 혹시 이곳의 냉기가 익숙하지 않아?’

라온이 팔뚝에 있는 라스를 불렀다.

-끄으응….

라스는 대답 없이 앓는 소리를 냈다.

‘라스?’

-생각해야 하니까. 좀 조용히 하거라.

녀석은 손을 휘휘 젓고서 골렘의 몸체에 새겨져 있던 꽃무늬를 노려보았다.

‘특이하다니까.’

라온은 피식 웃고서 골렘이 지키고 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짧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자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꺼먼 굴 세 개가 나타났다.

“어디로 가죠?”

도리안은 세 개의 굴을 차례로 보고서 크기도 형태도 다 똑같다고 중얼거렸다.

고오오오오!

기감을 펼쳐서 안쪽을 살피려고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끊어진다. 내부의 냉기가 기감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라온이 무릎을 꿇고 바닥의 흔적을 살폈다. 인간의 본능을 따라 오른쪽이나 가운데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갔지만, 왼쪽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하지?’

시간이 없는데.

지금까지 시간을 절약했어도 앞서간 자들과는 꽤 많은 차이가 난다. 여기서 잘못 골랐다간 뒤처질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모르니까.’

이번에도 글래시아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냉기를 끌어 올렸다.

우우우웅!

순도 높은 냉기를 이용하여 우측 동굴부터 중앙 그리고 좌측을 살폈다. 만화공 때와 달리 기감이 끊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이어졌다.

‘역시 글래시아가 더 도움이 되는…음?’

마지막 좌측의 동굴을 살피고 있을 때 왼쪽 벽에서 미세한 틈이 느껴졌다. 얇은 실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작디작은 구멍이었다.

‘설마 이 구멍이….’

라온은 그 틈을 향해 글래시아의 냉기를 끼워 넣었다.

끼기기기기!

바위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둠이 갈라지며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통로가 열렸다.

이 안쪽에도 은밀한 결계를 설치해두었던 것 같았다.

‘심리에다가 미세한 마나 컨트롤까지 짜 넣은 건가.’

로엔그린의 마나 운용은 지금까지 들어갔던 다른 마법사들의 던전과는 격이 달랐다. 자신조차도 찾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이러니까 밝혀지지 않았지.’

가장 적은 사람이 들어간 왼쪽 동굴. 그리고 바로 안쪽 벽에 비밀 통로를 결계형으로 설치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글래시아를 계속 켜두는 게 좋겠어.’

이 동굴의 냉기와 글래시아는 느낌이 아니라, 닮은 부분이 많았다. 계속 글래시아를 운용한다면 더 빠르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이건 또 어떻게 찾으셨어요?”

도리안은 이제 뭐 이런 인간이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턱을 떨었다.

“혹시 여기 도련님이 만드신 거예요?”

옛날처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걸보면 정말 당황한 것 같았다.

“우연이야. 가자.”

[여기를 알아차렸다고?]

피식 웃고서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 등 뒤에 감탄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내가 기척을 놓쳤다고?

검병을 잡으며 빠르게 뒤를 돌았다. 긴 수염이 바닥에 깔릴 듯한 푸른 로브의 노인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다리는 보이지 않았고, 전신이 투명하여 뒤가 그대로 비쳤다. 말 그대로 유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 당신 뭐야….”

[엑? 너 내가 보이는 거냐?]

노인이 입을 떡 벌린 채 다가온다. 기척이 전혀 없이 그저 서늘한 기운만 가득했다.

[오! 분노의 신이시여! 드디어!]

그는 아이처럼 폴짝 뛰며 환호를 질렀다. 투명한데도 얼굴이 뻘게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기뻐했다.

“뭐 하세요?”

도리안은 이 노인이 보이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유령인…잠깐.’

이 안에 있을 유령이라면 딱 한 명뿐이다.

로엔그린.

동그란 안경에 꽃이 새겨진 푸른 로브 그리고 실눈을 보면 나이가 많이 들긴 했지만 책에 적혔던 로엔그린의 외모와 똑 닮았다.

“어르신이 로엔그린이십니까?”

[그렇다! 내가 로엔그린이니라!]

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데 왜 여기에….”

-하아, 알았느니라.

질문하려 할 때 라스가 로엔그린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뭘 알아?’

-왜 이곳의 냉기가 친숙하고, 이름이 익숙했는지 이제야 알았느니라.

라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로엔그린을 가리켰다.

-저놈의 진짜 이름은 로엔옐로. 본왕이 힘을 빌려준 하인 놈이니라.

“아!”

그 말에 라온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벌어졌다.

‘그래서 냉기가 익숙한 거였군.’

이곳의 냉기가 친숙한 이유도, 글래시아로 골렘의 핵을 때려 부수고, 통로를 찾을 수 있던 이유도 모두 로엔그린이 라스의 냉기를 이어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라온은 로엔그린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새로운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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