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51화 (251/653)

제251화

라온은 벨가의 어선 위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보았다.

‘던전이라….’

오랜만이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던전은 두 가지로 나뉜다

몬스터들이 천적의 눈을 피하거나, 더 큰 세력을 만들기 위해 지하나 동굴에 일족의 영역을 형성하는 것이 첫 번째 유형이다.

두 번째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마법 연구를 하기 위해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다.

두 던전 중 어느 곳이 더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전자는 던전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한 뒤 그 몬스터에 맞는 대책을 준비하여 공략하면 쉽게 끝난다.

하지만 마법사의 던전은 다르다.

마법사들은 마법 연구를 지키는데 누구보다 진심이라 수많은 결계와 함정 마법 그리고 기관을 설치한다.

어떤 마법을 운용하고, 어떤 기관을 설치했는지 모른 채 들어가야 하기에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 신세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많이도 갔었지.’

데루스 로베르트는 아티팩트나 영약, 마법사들의 연구를 모으는 데에도 관심이 많아서 마법사들의 던전을 찾아낸 뒤 그림자들을 보냈다.

전생의 자신도 예외 없이 많은 던전을 탐사했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고, 평생 사라지지 않는 상처가 남은 적도 많았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던전을 들어가다 보니, 마법사들이 던전에 설치하는 결계와 함정, 기관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로엔그린이라는 유명한 마법사의 던전에 가는 데도 여유를 가지는 이유는 그런 전생의 기억 덕분이었다.

‘영약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로엔그린은 배신의 마녀 멀린과 몬스터 군단을 물리친 영웅 중 하나이자 대륙에서 제일가는 수속성 마법사였지만, 은퇴 이후에는 연금술과 연단술, 점성술 같은 특이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마법사가 남긴 던전이라면 여러 영약과 유물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

남북맹 본단에 있는 렉터와 로만이 소문을 듣고 움직였을 정도이니, 많은 사람에게 던전에 관한 이야기가 퍼졌을 것이다.

특히 노리스 지역은 중립에 가까운 곳이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세력이 모여들었을 게 분명했다.

던전의 위치를 찾고, 먼저 들어간 사람들보다 빠르게 유물을 찾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점은 있어.’

많은 사람이 움직였으니, 흔적만 잘 살피며 시간 소모를 줄이고 바로 던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끄음….

라온이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라스의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왔다. 옆을 보니, 녀석이 난간에 턱을 괸 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야? 돌아가면 파인애플 세트로 준비해 준다니까?’

-그런 게 아니다! 네놈은 본왕을 식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어? 네가 음식 말고 다른 고민을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지금까지 라스가 고민하는 모습을 본 건 메뉴판 앞에서뿐이다. 다른 고민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이 자식이 진짜….

‘그럼 무슨 고민인데?’

발작을 일으키려는 라스를 붙잡고 물었다.

-네놈이 말한 그 로엔그린. 그 이름이 자꾸 떠오르느니라.

‘떠오른다고?’

-그렇다. 이상하게 익숙한 이름이니라.

‘너 다른 사람은 이름으로 안 부르잖아.’

라스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버렌은 눈깔, 리메르는 귀때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특징을 살린 별명을 부른다. 녀석이 유일하게 이름을 부르는 건 자신뿐이었다.

-본왕도 모르겠느니라. 분명 처음 들어 본 이름인데, 이상하게도 익숙한 느낌이 드느니라.

‘예전에 만난 거 아니야?’

만나지 않고서야 그런 이름이 익숙할 리가 없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지만….

라스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부단주님.”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도리안이 다가왔다. 던전에서 나오는 유물을 모조리 챙겨가기 위해서 주머니는 당연히 데리고 왔다.

-동료에게 주머니….

라스가 헛바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보아도 진짜 악마는 네놈이니라.

‘너처럼 친근하게 별명으로 부르는 거지.’

-친근은 개뿔! 이름만 부르면 알아서 물건을 꺼내는 진짜 주머니로 생각하지 않느냐!

‘그건….’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긴 하다. 정말 도리안은 이쪽의 마음을 읽고 필요한 물건을 척척 꺼내줬으니까.

“왜?”

라온은 악귀라고 중얼거리는 라스를 물린 뒤에 도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정말 괜찮아요?”

“뭐가?”

“던전은 처음이잖아요. 별의별 함정이 다 있을 텐데….”

도리안은 걱정이 된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괜찮아. 마나의 흐름을 잘 읽고, 귀를 열어놓으면 큰 문제 없을 거야.”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마법사들은 자연의 마나를 아주 미세하게 비틀어서 마법 함정을 파고, 결계를 만든다. 마나 알갱이의 작은 흐름만 읽을 수 있다면 문제없이 던전을 돌파할 수 있다.

‘그건 내 특기이기도 하고.’

불의 고리가 있으니, 흐름을 읽는 건 더 높은 경지에 있는 무인보다도 자신 있었다.

“마음 놓고 있어.”

라온은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도리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갑판에 있는 벨가에게 향했다.

“아, 오셨습니까?”

벨가와 그의 선원들이 고개를 꾸벅였다.

“말씀대로 노리스 지역에 던전이 생긴 것 같기는 합니다. 많은 숫자의 무인과 마법사들이 움직였다고 하네요.”

그는 지나가는 배들에게 물어봤다며 노리스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름난 세력도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었답니다.”

“그렇겠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그린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마법사다. 그의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수많은 무인과 마법사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부터 모여들었다고 하지?”

“오늘 새벽과 아침에 조금씩 늘다가, 점심때부터 발 디디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고 합니다.”

“새벽이라….”

새벽에 먼저 움직인 세력들이 힘과 정보가 있는 쪽이고, 점심 이후에 모여든 건 어중이떠중이들일 거다. 시간을 보니, 그리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라온이 저 멀리 보이는 노리치 지역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충분히 가능하겠어.’

*     *      *

킹 씨 서펜트의 가죽이 자그마한 주름도 잡히지 않은 채 마흔 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있는 웅장한 대전.

양옆으로 세워진 푸른 기둥 앞에 강대한 기파를 피워내는 무인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렇게 되어 틸러가 라온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렉터는 그 중앙에 서서 라온과 틸러의 이야기를 남북맹 간부들에게 전했다.

“티, 틸러가 죽어? 지그하르트의 꼬마에게?”

“18살이라고 들었는데, 미친….”

“그놈에게는 정체기도 없는 건가? 어떻게 마스터가 되자마자 하급에 오를 수가 있지?”

“틸러는 중급 직전이었다. 하급이 아니라, 중급일 가능성도 있어.”

“부왕에게 3년 약조를 건 게 더 놀랍군. 평범한 무인이 할 발상이 아니야. 호걸의 기세다.”

남북맹 간부들은 죽은 틸러에 대한 이야기보다, 라온의 무력과 성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체핀.”

계단 위 단상에서 잔잔한 음성이 흘러 내려왔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예! 맹주.”

우측 세 번째 기둥에 서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만겁채주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실히 조사해오도록.”

“예!”

중년인은 다시 고개를 꾸벅인 뒤 그 길로 대전을 나섰다.

“만겁채주. 라온 지그하르트의 실제 무력 수위는 어느 정도였지?”

마흔 개의 계단 위에서 번쩍이는 남북맹주의 시선이 렉터를 향했다.

“마스터 하급으로 보였습니다.”

렉터는 라온의 무위를 떠올리며 고개를 낮췄다.

“틸러는 중급 직전이었는데, 마스터 하급. 그것도 18살짜리에게 졌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진 듯합니다. 라온에게 큰 부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군.”

남북맹주의 음성에는 묘한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청우라는 무학도, 그 말도 안 되는 존재도 흥미로워.”

“왜….”

좌측 두 번째 기둥 앞에 선 붉은 피부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왜 그놈을 죽이지 않았느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그하르트의 광검이 건재해서 그대로 싸웠다면 저희도 위험했다니까요.”

“틸러는 남북맹의 후계자 중 한 명이다! 너희가 죽더라고 그놈의 목을 따 왔어야 할 거 아니냐! 3년 약조라니! 그런 미친 짓을 왜 했단 말이야!”

붉은 피부의 노인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소리를 질렀다.

“먼저 문제를 일으킨 건 틸러입니다. 그는 호걸의 방식이 아니라, 협잡꾼처럼 움직였습니다. 명분도 달리고, 힘도 호각이라 싸워봐야 손해였다구요.”

렉터는 노인의 살벌한 기파를 견디며 본인이 할 말을 끝까지 내뱉었다.

“문제? 청루족이라고 해봐야 인간이 아닌 몬스터들이지 않느냐! 그놈들 좀 죽이고 부리는 게 어쨌다고!”

“청루족을 이용해서 상인과 주민들을 공격한 게 문제죠. 그건 우리 밥줄을 스스로 끊고, 남북의 명예를 시궁창에 처박는 일입니다. 시란 님. 좀 진정하시고….”

“닥쳐라!”

시란이라 불린 노인의 외침에 대전 자체가 흔들렸다.

“로만! 네놈도 문제다! 지금의 너라면 병신이 된 지그하르트의 광검 따윈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터! 그 라온이라는 꼬마의 재능에 눈이 멀어 보내 준 거겠지!”

“직접 보지도 않은 일을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부원주.”

“뭐라? 지금 네놈이 내게….”

로만과 시란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린다. 대전이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만.”

계단 위에서 들린 나지막한 목소리에 두 사람이 기운을 꺼뜨리고 뒤로 물러섰다.

“매, 맹주! 맹의 후계자가 죽었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소!”

시란이 앞으로 나오며 두 손을 모았다.

“이 늙은이가 선두에 서겠소! 지그하르트 놈들을 죽일 수 있게 전쟁 선포를….”

“불가.”

“맹주!”

“지그하르트의 걸음이 멈춘 지 꽤 오래됐으니, 다른 어린 것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하지만 원로원 부원주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야.”

남북맹주의 목소리에 서늘한 의념이 깃들었다. 대전에 있는 모두가 몸을 떨었다.

“지그하르트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노, 놈들은 멈췄고, 우리는 계속 나아갔잖소! 이젠 지그하르트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 없소!”

“글렌 지그하르트가 살아 있는데?”

“그, 그건….”

“그 어린 것을 죽인다고 북멸왕이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지. 하지만 만약 그가 움직인다면….”

남북맹주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맹의 절반은 한순간에 타죽겠지. 그걸 원하는 건가?”

“끄윽….”

시란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명분 역시 지그하르트 쪽에 있어.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청루족을 조종해서 강을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본맹의 신뢰만 잃게 될 거야. 3년 뒤를 기다리라고, 그 꼬마는 로만이 알아서 찢어줄 테니까.”

“후욱, 제자가 죽었는데 참으로 냉정하시구려.”

시란은 남북맹주의 평온한 시선을 올려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난 부원주의 얼굴을 보고, 그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줬어. 좋은 기회를 걷어차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간 멍청이의 넋을 위로해주고 싶진 않군.”

남북맹주의 눈동자가 북해의 바람의 깃든 듯 차갑게 일렁였다.

“난….”

시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난 못 참겠소!”

그는 자리를 박차고 대전을 뛰쳐나갔다.

“그냥 있을 사람이 아닌데, 쫓을까요?”

렉터가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는 없어.”

남북맹주가 느릿하게 손을 저었다.

“글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게 박혀 있는 건 부원주니까.”

“아….”

“그래도 움직인다면….”

그의 입매를 말아 올리며 시란이 열고 간 문을 바라보았다.

“핏값을 인정해줘야겠지.”

*     *      *

라온과 도리안은 노리스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배에서 내렸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고개를 꾸벅이는 벨가와 선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강가를 벗어나 대로로 향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회색 운무가 끼어있어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데 던전은 어떻게 찾죠?”

도리안이 텅 빈 길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기다려봐.”

라온은 무릎을 꿇고 대로에 찍힌 발자국들을 살폈다.

‘한 곳으로 이동했을 거야.’

로엔그린의 던전이 알려진 건 지도를 가진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위치는 발견되었을 테니, 분명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동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

라온은 기다시피 걸으며 가장 최근에 대량의 사람들이 움직인 방향을 골라냈다.

‘북서.’

워낙에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이라 어지러웠지만, 오늘 가장 많은 사람이 움직인 건 북서쪽이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이 움직인 방향을 보았다. 안개가 짙게 끼어있어서 산의 형태만 간신히 보였다. 로엔그린의 던전을 찾아온 대부분은 저곳으로 향한 것 같았다.

“가자.”

라온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서 도리안을 불렀다.

“예? 버, 벌써 찾으셨어요? 이렇게 어지러운데?”

도리안은 난잡한 땅을 훑어보고서 입을 떡 벌렸다.

“너무 많아서 헷갈릴 뿐이지 너도 할 수 있어.”

라온은 피식 웃고서 먼저 산을 향해 뛰었다.

“나, 난 못하겠는데….”

도리안은 꿍얼거리다가 그 뒤를 따라 보법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자, 산의 초입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의견이 갈렸는지 산 이곳저곳으로 발자국들이 흩어져 있었다.

“여긴 너무 어지러운데요?”

도리안 발자국을 살피며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히….”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고, 작은 발자국들이 너무 복잡하게 찍혀 있어서 어딜 가야 할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설화의 감각을 켠 뒤에 기감을 펼쳐보았다. 발자국처럼 산 위쪽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쯧.”

라온이 혀를 찼다. 무인과 마법사들이 개미 떼처럼 퍼져 있어서 던전 입구의 위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죠?”

도리안도 그걸 느꼈는지 눈썹을 축 내렸다.

“더 아래를 봐야지.”

“아래요?”

“그래. 먼저 온 자들. 정보와 힘이 있는 자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살펴야 해.”

발자국들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오늘 이 산을 가장 먼저 오른 자들의 흔적을 살폈다.

그들은 은밀함보다 속도 위주로 움직였기에 바닥에 아주 미세한 마나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그 마나의 흔적을 살폈다.

‘동쪽인가….’

가장 밑에 깔려있고, 힘 있는 보법에 찍힌 발자국들은 대부분 동쪽으로 향해 있었다.

다시 기감을 펼쳐서 발자국이 향한 동쪽을 살폈다. 산과 산이 겹친 협곡 부근에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저기다.’

라온이 확신을 가지고 일어났다. 도리안을 데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협곡 주변에 무인과 마법사들이 퍼져 있었고 협곡 안쪽은 다른 곳보다 지독한 운무가 끼어있어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계.’

저 푸른 운무는 자연적인 게 아니다. 마나의 흐름을 비틀어서 만들어낸 결계였다.

‘위치를 헷갈리게 만든 거로군.’

수속성의 마나를 운용하여 입구를 찾을 수 없는 운무의 결계를 만든 것 같았다.

‘가를 수 있겠어.’

눈을 감고 결계의 흐름을 파악했다. 수속성 마나로 만든 결계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끄흠….

라스가 운무를 보며 짧게 신음을 흘렸다.

‘또 왜?’

-아니니라.

녀석은 인상을 찡그린 채 결계를 훑어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 주목해주십시오!”

라온이 검병을 쥐고, 결계로 다가가려 할 때 중앙에 있는 갈색 머리칼의 중년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 저 던전 안에는 이름난 강자만이 아니라 육황과 오마도 들어가 있습니다. 저희끼리 견제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음….”

“확실히….”

그의 말에 서로에게 기세를 쏘아내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우리끼리 견제할 때가 아니라, 힘을 합쳐서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대륙을 함께 달리는 동도로서 협력하여….”

간단히 말해서 힘을 합쳐서 강자들에게 대응하자는 이야기다. 실제로 던전이나 보물에 대한 정보가 풀렸을 때 중소 단체끼리 연합하는 건 굉장히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연합해도 내부에선 힘의 차이가 발생하는 법. 약한 세력이 힘든 일과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강자는 뒤에서 힘을 아낀 뒤 배신을 하는 경우가 흔했다.

‘거기다 느리지.’

바닥에는 이미 결계로 들어간 발자국들이 가득하다. 평소라면 저들 뒤에 붙어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전력을 드러내든 말든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때였다.

“모두 동의해주니 감사합니다! 의지를 다져서 로엔그린의 유산을….”

모여든 사람들이 연합을 맺을 때 라온은 그들을 지나 결계로 향했다.

“잠깐! 어딜 가시는 거요!”

연합의 리더가 된 중년인이 앞을 막아섰다.

“던전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여긴 우리 연합이 먼저 차지한 장소요! 함께 하지 않는다면 들어갈 수 없소.”

“정작 이곳을 먼저 찾은 사람들은 이미 들어갔을 텐데?”

라온은 결계 안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 그러니까 연합을 하자는 거요. 함께 한다면 더 안전하고, 멀리 갈 수 있소!”

중년인이 억지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내밀었다.

“나름 검기를 쌓은 것 같으니, 당신도 함께….”

“미안하지만 전 멀리 갈 생각이 없습니다. 빨리 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보낼 수 없겠어. 우리 앞을 갈 사람을 놔두는 멍청한….”

라온이 중년인의 말을 끊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그대로 뻗어나간 푸른 일섬이 결계에 가득 찬 운무를 반으로 찢어 갈랐다.

쩌어어어억!

결계의 흐름 자체가 갈라지며 협곡 사이에 솟구친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어억!”

“겨, 결계를 그냥 갈랐어?”

“이게 무슨….”

“미, 미쳤….”

라온은 찢어질 정도로 입을 벌린 무인들을 돌아보며 턱을 틀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아무것도요!”

눈치가 빠른 중년인이 기겁하며 손을 빠르게 저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는 게 좋을 겁니다.”

시꺼먼 동굴을 바라보는 라온의 눈동자에 붉은 이채가 돌았다.

“저 안에 있는 거 하나도 놓칠 생각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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