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50화 (250/653)

제250화

버렌은 숙소로 들어가는 라온의 등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 정말 괜찮은 건가?’

부왕 로만은 도끼 한 자루로 대륙에 이름을 떨친 무인이다. 그런 괴물과 3년 후에 붙겠다니,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를 살리려고 무리한 거야.’

라온이 로만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이유는 배에 타고 있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동료. 그것도 많은 도움을 받은 녀석의 목숨값으로 살아남은 것 같아서 심장이 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모르겠어.

라온을 도울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걸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후우….”

버렌은 가슴을 꽉 채운 답답함을 한숨으로 풀어냈다.

“왜 그리 죽상이냐?”

마르타가 지나가다 말고 인상을 찡그렸다.

“라온 때문에.”

“라온?”

“그래. 우리 때문에 희생했는데,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잖아….”

“곱게 자란 도련님이라 그런지 대가리가 꽃밭이네.”

그녀는 무슨 그런 멍청한 고민을 하냐며 혀를 찼다.

“넌 라온이 걱정도 안 되는 거냐!”

버렌이 눈썹을 찡그리며 마르타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은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걸고 부왕과 약속을 했어. 3년 후에 그 괴물과 싸우러 가야 하는데 심장이 안 떨리면….”

“그런 일이 왜 일어났지?”

“뭐?”

“왜 그 대결을 하게 됐냐고. 이 멍청아!”

마르타의 검은 눈동자에 짜증과 분노가 어렸다. 그건 누군가에게 보내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이었다.

“그건….”

“약하기 때문이야. 너나, 나나 전부 약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칼 한 번 휘두를 깜냥이 안 되니까. 저 자식이 그런 약속을 한 거라고!”

버렌이 마른침을 삼켰다. 마르타가 말아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녀는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알고 있으면서 참고 있는 거였다.

“그럼 뭘 해야 할지는 뻔하지 않아?”

“…강해져야겠지.”

“이제 대가리가 돌아가나 보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그 녀석의 부담이 줄어들도록 목숨을 걸어서라도 강해져야 해.”

마르타는 등을 홱 돌리고서 숙소에 딸린 공터로 향했다. 바로 수련을 하려는 것 같았다.

“맞아.”

뒤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루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라온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어.”

그녀는 드물게도 길게 말하고, 마르타의 뒤를 따라갔다.

“커흠!”

“나도 몸이 좀 덜 풀려서….”

“그러네. 오늘 운동이 좀 부족하긴 했어.”

“휴식은 나중에 취하자고.”

다른 광풍단원들도 볼을 긁적이며 공터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 안쪽에서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바보였네.”

버렌이 본인의 머리를 빡 소리가 날 정도로 쳤다.

“단순한 일이었어. 강해지면 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공터로 향했다.

*     *      *

라온은 숙소 방문에 등을 기댄 채로 피식 웃었다.

“그냥 쉬기나 하지.’

광풍단은 2배 이상 많은 수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로만의 기파에서 몸을 지키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을 것이다.

열의가 생겼다고 해도 지금은 수련보다 휴식을 취하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바보들이라니까.’

저들이 왜 쉬지도 않고 검을 휘두르러 갔는지 알고 있기에 가슴속에서 따스함이 멍울져 돋아났다. 매번 느끼지만 도와주는 보람이 있는 녀석들이다.

다만 저 녀석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광풍단은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력과 많은 경험을 쌓았다. 어디에 가서도 통할 힘을 지녔지만 만나는 적들이 다 괴물이라 본인들이 약하다고 느낄 뿐이다.

라온은 광풍단의 기합 소리를 즐기다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정말 걱정할 필요 없는데.

옅은 미소를 짓고서 조금 전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불러왔다.

[자신보다 강한 무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합니다.]

마스터 하급의 경지로 마스터 중급에 닿기 전인 틸러를 꺾은 덕분에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했다.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검술을 창안하셨습니다.]

[칭호<어린 대종사>의 효과로 은검몽과 청우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5포인트 상승합니다.]

그 뒤로도 보상의 연속이다. 전투 내내 공명시켰던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했고, 두 개의 검술을 완성 시킨 덕분에 모든 능력치가 5포인트나 추가로 상승했다.

‘이게 끝이 아니지.’

모든 능력치가 8포인트 오르고, 불의 고리 성취가 상승했으며, 두 검술의 능력마저 상승했지만 메시지는 아직 남아 있었다.

[상대의 모든 공세를 완벽하게 파훼하셨습니다.]

[특성 <나선력>이 생성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라온은 바로 특성의 내용을 확인했다.

<나선력(1성)>

무학에 전사경을 일으킬 때 더 강하고 빠른 회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용을 보자마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특성은 틸러의 창술에 깃든 회전을 역회전으로 상쇄시켰기에 추가된 특성이었다.

‘예상대로야!’

라스가 만든 시스템은 이뤄낸 업적대로 보상을 추가시켜 주는 사기스러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틸러를 그냥 쓰러뜨리지 않고, 그의 모든 걸 파악하고 분석해서 이긴 덕분에 나선력과 추가 능력치를 받은 것이다.

“봐. 내 말대로지?”

라온은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상대를 그냥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무학 자체를 깨부수니까 보상이 커지잖아.”

-끄으윽!

라스는 메시지를 올려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이 돼지 같은 놈! 본왕의 능력치를 훔쳐 가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효율성까지 따진단 말이냐!

“어차피 받을 거 더 잘 받으면….”

-도둑놈이 주인 앞에서 어떻게 하면 잘 훔칠지를 강의해? 이게 맞는 세상이냐?

이성의 끈이 떨어진 듯 라스가 악을 질렀다.

-그리드도 네놈을 보면 도망칠 것이니라! 아귀처럼 먹다가 배때기가 터져 죽을 놈아!

라스의 둥그런 어깨 위로 분노와 냉기가 동시에 타올랐다.

-이젠 정말 못 참느니라! 오늘 본왕이 네놈의 육체를 먹어 치워 세상에 광명을 되찾겠노라!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라온이 손을 저었다. 아무리 아낌없이 주는 라스라지만 오늘은 이미 과하게 먹었다. 추가 능력치까지는 필요 없었다.

‘덤볐다가 또 능력치만 올려줄걸?’

-끄윽!

그 말에 라스가 우뚝 멈췄다. 본인도 결과가 어찌 될지 아는 듯 표정이 싹 굳어졌다.

-제, 제기랄!

라스는 분함이 풀리지 않는지 움켜쥔 주먹을 떨었다.

‘오늘은 내상이 심하지 않아서 너한테 버티는 건 어렵지 않아. 참는 게 좋….’

-못 참겠다! 이 악귀 자식아!

참으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라스가 먼저 달려들었다. 어깨에 딱 달라붙어서 냉기와 분노를 폭발시켰다.

“하아….”

오늘은 적당히 받으려고 했는데.

라온이 고개를 젓고서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고,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끌어 올렸다.

1시간 뒤.

[분노의 방해를 견뎌냈습니다.]

[체력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기력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으허허헝!

라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울부짖었다.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호구는 어쩔 수 없는 호구인가 보다.

*     *      *

렉터가 스쳐 지나가는 강물을 보다가 뒤를 돌았다. 뒷짐을 진 채 전방만을 바라보는 로만에게 다가갔다.

“형님. 왜 라온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겁니까?”

“네놈도 그 녀석의 제안을 받길 원하지 않았더냐.”

로만은 눈매를 좁히며 렉터를 내려보았다.

“물론 그랬죠. 그게 더 재밌을 거 같으니까. 다만 형님께서 그 친구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청우라는 무학… 흥미롭더군.”

“아, 저도 그런 건 처음 보았습니다.”

“검명과 마찰음에 오러를 담아 운용하는 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뿐더러 따라하기도 힘든 방식이다. 더 재밌는 건 말이야….”

그는 다시 강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 녀석이 그 무학을 직접 만든 거다.”

“예?”

“무학에서 라온이라는 꼬마의 냄새가 나. 누군가 도움은 줬겠지만 분명 본인이 만들었을 거다.”

로만이 청우의 울림을 떠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대륙십이성이라는 천재들에 대해 알고 있나?”

“당연히 알죠. 다섯째 도련님이 거기에 속해 계시지 않습니까.”

“대륙십이성이라는 이름이 붙어봤자, 육황오마의 수장급은 되지 못해. 그들은 천재라는 틀조차 벗어난 괴물이니까.”

그가 턱을 들어 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라온이라는 꼬마는 다르다. 놈은 천재를 잡아먹고 성장하는 괴물이야. 절대와 초월에 닿을 가능성을 지녔다.”

“괴물. 확실히 그런 면이 있죠.”

렉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이 같지 않았던 녀석이다.

“그 녀석의 눈동자엔 이 자리에서 도망치겠다는 게 아니라, 3년 뒤에 정말 날 꺾을 각오가 가득 차 있었다. 웃음이 나더군.”

로만이 피식 웃으며 앞에 박아둔 도끼의 손잡이를 쥐었다.

“3년 뒤. 그 녀석이 어떻게 변해서 찾아올지 기대되어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란’ 님이 3년이 되기 전에 라온을 죽인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럼 거기까지에 불과한 놈이었단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겠지. 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리메르보다 맛난 냄새를 풍기는 놈은 오랜만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무인들을 맛으로 평가하는 건 여전하시네요.”

렉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놈도 마찬가지다.”

로만이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렉터를 보았다.

“제대로 싸우면 날 만족시킬 수 있을 텐데?”

“에이, 형님. 과대평가에요. 전 그런 인재가 못 됩니다.”

렉터는 결코 아니라는 듯 두 손을 빠르게 저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후, 흥을 식게 하는 데는 뭔가 있다니까.”

“헤헤.”

“나도 하나 묻지. 네놈은 왜 라온에게 호의를 지닌 거지? 그 늙은이의 일은 말해줄 필요 없었을 텐데?”

“저도 형님이랑 비슷합니다.”

그가 빙긋 웃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재밌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 어떻게 성장할지 보고 싶더군요.”

“정말 그게 다인가?”

“그럴걸요?”

“네놈은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삽니다.”

렉터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다는 듯 헤죽 웃었다.

“그건 그러고 아쉽네요. 그 마법사의 던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로엔그린?”

“예. 연단술이랑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던 마법사라 분명 영약이나 보물이 가득….”

“네놈은 그딴 것보다 돌아가서 이번 일을 어떻게 전할지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어? 제가 말해요?”

“그럼 내가 말할까?”

“으윽….”

로만의 차가운 눈동자에 렉터가 찔끔 신음을 흘렸다.

“시, 시란 영감이 날 죽이려고 들 텐데!”

그는 되는 일이 없다며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     *      *

라온은 틸러와의 싸움에서 생긴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불의 고리와 오러를 운용하여 내상을 잠재운 뒤에 눈을 떴다.

-끄흐윽….

라스는 여전히 바닥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녀석은 분노한 와중에서도 예전에 한 말을 지키며 오러를 운용할 때는 공격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는 걸 보면 왕은 왕인 듯싶다.

‘그렇게 울상만 짓지 말고.’

-시끄럽느니라.

‘돌아가면 유아에게 부탁해서 파인애플 피자 먹게 해줄게….

-…….

녀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흐느낌을 그친 채 엎드려서 눈동자를 빼꼼 들어 올렸다.

‘그럼 파인애플 피자에 파인애플 쿠키 추… 음?’

라온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밖에서 광풍단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뭐지?”

-마, 말하다 말고 어딜 가는 것이냐! 사람이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잠깐만.”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버렌을 비롯한 광풍단 검사들이 리메르의 숙소 앞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데?”

“연공이 끝나셨을 거 같아서 다음 일정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대답이 없으셔.”

버렌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온이 인상을 찡그렸다. 고수일수록 연공에 걸리는 시간이 적다. 리메르는 큰 부상이 없었으니, 한참 전에 방문을 걷어차고 나와서 햇볕을 쬐며 뒹굴었어야 한다.

“내가 열게.”

라온은 광풍단원을 물린 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리메르는 바닥에 대짜로 뻗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 잠드신 건가?”

“피곤하실만하지.”

“괜히 걱정했어.”

검사들은 누워있는 리메르를 보며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평소 그가 연무장 단상 위에서 보여주는 자세 그대로였기에 안심한 것 같았다.

다만 지금 그는 그때와 달랐다.

“아니야.”

라온은 입술을 깨물고 리메르에게 달려갔다.

‘의식이 아예 없어.’

지금 그는 잠이 든 게 아니라,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우우우웅!

리메르의 어깨를 잡고 만화공을 흘려 넣어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이게 마나회로라고?’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리메르의 마나 회로는 예전 혹한의 저주에 걸렸던 자신 이상으로 좁아져 있었다.

당시 자신의 마나회로가 냉기에 막혀서 구멍이 작아진 거라면, 리메르의 마나회로는 협착된 것처럼 회로 자체가 좁아진 상태였다.

라온은 바늘구멍에 실을 통과시키듯 세밀하게 오러를 조작하여 좁아진 마나회로를 지나 리메르의 단전을 살폈다.

‘무슨 단전이 이리….’

리메르의 단전은 톡 건드리면 깨질 듯 금이 가 있었고, 단전 벽 자체도 종잇장처럼 얇았다.

너무 불안정해서 잘못 건드렸다간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래서였어….’

하단전이 안정적으로 버텨주지 못하기에 마나회로가 부담을 받아 모래 알갱이처럼 좁아진 거였다. 뇌기까지 썼으니, 더더욱 몸 상태가 최악으로 달렸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부왕 로만과 호각으로 싸우다니, 이 사람의 단전이 멀쩡했다면 얼마나 강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을 텐데.’

라온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혹한의 저주 때문에 마나회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진 익히 알고 있다. 지독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던 리메르의 얼굴이 떠올라 속이 쓰렸다.

우우우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번갈아 운용하여 꼬인 마나회로를 풀어주려 했지만 약해진 단전 때문에 쉽지 않았다.

‘시간 낭비야.’

싸움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게 아니라, 원래 좋지 않은 몸으로 무리를 했기 때문에 오러만으로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겠지만 결국 시한부. 리메르는 이대로 힘을 잃고, 천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이다.

이 바보를 회복시키려면 영약. 그것도 굳어진 마나회로를 풀어주거나 단전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영약이 필요했다.

“후우….”

라온이 리메르에게서 오러를 회수한 뒤 손을 뗐다.

“어, 어떻게 됐어!”

“이 인간 무사한 거지? 맞지?”

“라온….”

버렌과 마르타, 루난이 동시에 달려들어 왔다.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 끼어 있었다.

“좋지 않아.”

“어?”

“뭐라고?”

“그,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

“이번에 다친 게 아니야. 이미 전부터….”

라온은 리메르의 상태를 빠르게 설명해주었다.

“아!”

“그런….”

“저 바보가….”

검사들은 리메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무리했다는 걸 알고서 피나도록 입술을 뜯었다.

짝!

라온이 손뼉을 쳤다. 평소 리메르가 시선을 모을 때와 비슷한 울림이었다.

“임무를 내리겠다.”

“이, 임무?”

“그래. 버렌 넌 3조와 함께 가문으로 돌아가서 단주님의 상황에 맞는 영약을 받아와. 만약에 주지 않는다면….”

손짓해서 도리안을 불렀다.

“아, 네!”

“그거 꺼내줘.”

“아, 그거 말이죠.”

특별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금색의 패를 꺼내 들었다.

“그, 금패?”

“너 이 귀한 걸 도리안에게 맡겼어?”

“중요한 거니까 지갑에 넣어놨지.”

“지, 지갑이라니….”

라온은 입을 떡 벌린 버렌에게 금패를 내어주었다.

“이게 없어도 주겠지만 혹시 모르니 가져가.”

금패는 본래 실비아를 직계로 만들기 위해 모으려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가문에도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안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글렌과 리메르는 가까운 관계다. 지그하르트에 단전을 회복시킬 영약이 있었다면 진즉에 리메르에게 먹였을 것이다. 버렌을 보내기는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아, 알겠어.”

버렌은 떨리는 손으로 금패를 잡았다.

“마르타. 넌 1조와 함께 근처에 있는 대도시에 가서 경매장을 뒤져. 마나회로와 단전을 회복시켜 주는 영약을 모조리 찾아와.”

이번에는 도리안의 주머니에서 금화 천 개짜리 보자기를 꺼내 내밀었다.

“할 수 있겠지?”

“…당연히.”

마르타는 평소와 달리 입매를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난. 네가 가장 중요해. 2조와 함께 단주님과 마을을 지켜.”

“응!”

루난은 두 주먹을 말아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단주님을 보호하는 게 아니었어?”

당연히 이곳에 남을 줄 알았는지 버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갈 곳이 있어.”

“갈 곳? 어디를 간다는….”

“로엔그린의 던전.”

라온이 옅은 숨을 뱉으며 일어섰다.

연금술과 연단술까지 익혔던 그 마법사의 던전이라면 리메르의 상태를 호전시킬 영약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더, 던전?”

“렉터가 말한 곳 말이야?”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해! 마법사의 던전에는 함정과 결계, 몬스터 투성이라고!”

“맞아.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도 다들 보통이 아닐 거야!”

버렌과 마르타가 동시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괜찮아.”

라온이 암살자 시절을 떠올리며 옅게 웃었다.

‘함정이고, 결계고 전부 찾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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