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흑선은 선수부가 날카로운 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투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다가왔다.
라온은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함을 훑어내리고, 짧게 숨을 뱉었다.
‘악운이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악운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다.
남북맹에서도 초고수로 이름을 떨치는 그랜드 마스터 로만의 기함으로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아 무적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배였다.
‘무에 미쳤단 소리가 있었지.’
로만은 강함도 강함이지만, 무학에 정신을 빠뜨린 무광으로도 유명했다. 남북맹에 들어온 이유도 남북맹주와 대련 계약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아, 악운?”
“왜 악운이 여기까지!”
“티. 틸러 때문에 온 건가? 이걸 어떻게 해야….”
백창에 올라와 있던 도란 마을 사람들은 시꺼먼 빛깔의 악운을 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이미 늦었어. 빠져나가기 전에 잡힐 거야!”
“우리가 움직이면 바로 배를 침몰시킬 게다.”
촌장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말대로야.’
라온이 촌장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운의 전방과 양옆으로 수를 헤아리기 힘든 회색 포신이 보인다. 조금만 움직여도 전쟁 마법을 담은 포탄이 강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후.”
리메르가 짧게 숨을 내뱉고 뒤를 돌았다. 언제 긴장했냐는 듯 평소와 같은 가벼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대, 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남북맹의 배가 이쪽으로 오는 거죠?”
“저기 누가 타고 있길래….”
“다, 단주님.”
광풍단 검사들은 악운이 뿜어내는 강대한 기파에 질린 듯 검을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쟤들이 왜 오는지는 나도 모르지. 다만 저 안에 타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는 알아.”
리메르가 갑판의 난간에 등을 기대며 입맛을 다셨다.
“로만 레이칼. 남북맹주의 최측근이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괴물이다.”
“로, 로만 레이칼!”
“부왕!”
로만의 이름이 나오자 광풍단 검사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로만의 이름값은 높았다.
“부왕 로만이라니….”
“그래 봐야 수적이잖아!”
버렌은 로만을 알고 있었는지 마른침을 삼켰고, 마르타는 무섭지 않다는 듯 투지를 드러냈다.
“음.”
루난은 당연하게도 로만의 이름을 모르기에 다가오는 배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끄윽….”
가람은 마을 사람들보다도 심하게 떨었는데, 악운에서 뿜어지는 기운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뭐, 그리 긴장하지는 말고.”
리메르가 시원하게 손을 저었다.
“별 일없이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는 큰일은 없을 거라고 웃고, 다시 뒤를 돌았다.
쿠구구구!
악운은 백창 바로 앞까지 왔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대로 박아서 부숴버릴 기세였다.
라온이 시야를 가득 채운 악운을 보다가 눈을 내리감았다. 오러를 휘돌려 몸을 점검했다.
‘나쁘지 않아.’
육체에 상처를 입었고, 근육이 상했으며, 내상까지 돋았지만, 에덴과 부딪쳤을 때처럼 심각한 중상은 아니다.
계속 불의 고리를 돌려서 육체와 오러를 회복시켰기에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마스터 정도는 잡을 수 있어.’
로만은 당연히 이길 수 없지만, 틸러급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리메르가 로만을 막는 동안 다른 이들을 빠르게 쓰러뜨리고 합공 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라온은 머릿속에서 악운과의 전투를 상상해본 뒤 눈을 떴다. 예상대로 악운은 멈추지 않았다. 백창을 갈라버릴 듯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우우우웅!
뒤로 물러서서 갑판에 있는 마을 사람들과 가람을 보호하는 오러의 막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악운이 선수부로 백창의 옆구리를 찍어눌렀다. 갑판을 반 이상 부수고 나서야 그 거대한 몸체가 멈췄다.
터어엉!
악운 위에서 땅을 박차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백발의 중년인이다. 허공에 잠시 멈춰서 백창 전체를 굽어보던 그가 천천히 내려선다.
뒤로 넘긴 탁한 백발에 칠흑의 장포를 둘렀다. 손에 쥐고 있는 용 머리 형태의 도끼에서 세상을 가를 패기가 꿈틀거렸다.
강풍이 불고 있음에도 머리칼과 장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외가 완벽하게 단련된 무인이라는 뜻이었다.
라온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저 남자가 부왕 로만 레이칼.’
레이블 강 전체를 아우르는 기파다.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왜 부왕이라는 이명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무력이었다.
쿠웅.
그의 두 발이 갑판 위에 닿는 순간 공기가 또 한 번 변한다. 무직함을 넘어 목구멍을 옥죄이는 듯한 패기가 물밀 듯이 퍼져나갔다.
“끄으으….”
“이, 이게 무슨….”
“허어억!”
광풍단 검사들은 로만에게서 퍼져나오는 기파에 숨을 쉬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후우웅!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기 직전 바람이 불어왔다. 강바람과는 다른 선선한 녹풍에 로만의 기파가 쓸려 내려갔다.
“애들 괴롭히는 짓은 여전하네.”
리메르가 턱을 모로 틀며 피식 웃었다.
“저것들이 약할 뿐이다.”
로만은 광풍단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쳐올렸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는지 통성명조차 없이 대화를 시작했다.
“이 배의 주인은 어디에 갔고, 왜 네가 타고 있는 것이지? 지그하르트의 광검.”
“죽었어.”
리메르는 어디 놀러라도 간 것처럼 틸러의 죽음을 알렸다.
“네가 죽인 건가?”
로만은 놀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듯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니, 우리 부단주가 단칼에 베어 버렸지.”
그 말에 로만의 시선이 처음으로 라온에게 향했다.
고오오오!
라온이 볼 안쪽을 씹었다.
‘강대해.’
심해를 보는 듯한 어둑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어깨를 누르는 압력이 점차 강해지고, 심장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은 이보다 더한 압력을 두 번이나 견뎌냈다. 글렌과 라스. 두 괴물의 기파를 이겨냈기에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리를 곧게 세운 뒤 로만의 눈을 직시했다.
“음.”
로만의 가라앉은 눈동자에 작은 이채가 돌았다. 기파를 견딘 게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넌 누구….”
“이야! 오랜만인데?”
악운 위에서 두 번째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회색곰 가죽조끼를 입은 남자다. 이마에 두른 황색 두건이 바람에 휘날렸고, 미소가 시원했다.
터억.
그는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돈 뒤 난간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로만과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기세다.
“라온 지그하르트. 맞지?”
“렉터.”
첫 번째 임무에서 산적 두목과 뱀 술사를 죽였을 때 만났던 남북맹의 채주 렉터였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외모는 물론이고, 복장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호랑이 가죽이 곰 가죽이 되었을 뿐이었다.
“크으! 그럴 줄 알았어. 멀리서 봤는데도 아우라가 넘치더라고!”
렉터는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설화검협인가.”
로만이 이쪽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날 알고 있었나.’
저 정도 무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다니, 설화검협이라는 이명은 생각 이상으로 널리 퍼진 것 같았다.
“맞아요! 그 설화검협! 축복을 내린 보람이 있다니까.”
렉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였다.
“축복?”
“네. 테루칸 산과 레이블 강에 이름이 들려오길 바란다고 했었죠.”
그가 이쪽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제야 하는 소리지만 그거 꽤 좋은 축복이다. 남북맹에서 전하는 말 중에 몇 없는 좋은 말이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렉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력이 강해진 만큼, 성격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여긴 어쩐 일이지?”
“아랫동네에 재밌는 일이 있다고 해서 형님을 억지로 꼬셔서 가는 중이었는데, 여기에 더 재밌는 일이 있더라고.”
그는 백창을 가리키며 히죽였다.
‘그럼 알고 온 건 아니로군.’
로만과 렉터는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온 게 아니라, 레이블 강을 지나다가 백창에 문제가 생긴 걸 보고 찾아온 것 같았다.
“이쪽도 구면이죠?”
렉터가 리메르를 보고서 쩝 입맛을 다셨다.
“그때 도망치길 잘했네. 광검일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 오랜만이야.”
리메르가 렉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배의 주인이 죽었다고요?”
“그래.”
“이거 좀 큰일인데….”
렉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쿠구구구구!
그 소리가 울리자마자 악운 위에서 산적과 수적들이 우르르 뛰어내렸다. 하나 같이 기운을 갈무리할 수 있는 익스퍼트급 고수들이었다.
“왜 죽였지?”
로만이 가라앉은 눈빛을 돌렸다. 저 질문을 한다는 건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제가 말하겠습니다.”
리메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라온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에 가장 깊게 끼어든 건 자신이다. 직접 말을 해야 했다.
“이번 일은 틸러의 욕심으로 시작된 일로….”
* * *
렉터는 가젤 강에서 있었던 사건을 푸는 라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멍청이는 여전하네.’
틸러는 예전부터 큰 것을 못 보고 작은 것에만 집착했다. 맹주의 넷째 제자임에도 다섯째에 밀려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가 바로 본인의 그릇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여러 강과 마을을 복속시키고 있다고 하기에 정신 좀 차렸나 했더니, 뇌 없는 짓을 하다가 지그하르트의 신성에게 목이 달아났다. 멍청이다운 죽음이라 웃음이 나왔다.
‘잘 죽었군.’
후계자 후보지만 틸러가 차기 맹주가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자신의 파벌도 아니고, 맹의 힘만 축낼 녀석이니 일찍 죽은 게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분은 분노하겠지만….’
틸러가 맹주의 제자가 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그의 할아버지이자, 원로원에 속한 그 사람은 난리를 치겠지만, 자신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렉터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라온의 전신을 훑고서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컸군.’
당시에도 나이에 비해 과한 무력을 가졌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경지에 올랐다. 18살에 마스터. 그것도 중급에 거의 다다른 틸러를 벨 수준이라니, 믿기 힘들 정도였다.
‘죽이지 않기를 잘 했어.’
당시에 나무 위에 있던 리메르가 위협적이기도 했지만, 저 천재가 어디까지 갈지도 궁금해서 남북맹의 축복도 말해주었다. 물론 지금 정도로 성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저 강한 게 다가 아니야.’
로만이 저리 강대한 기파를 내뿜고 있음에도 차분하게 말하는 걸 보면 무력 이상으로 정신이 여물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을 보는 듯했다.
‘이거 좀 부러운데?’
그때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올 걸 그랬어.
무력 단체에서는 수장의 무력과 고수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어린 신성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18살에 마스터에 올라 에덴의 간부 둘을 베고, 이젠 틸러까지 꺾은 라온 덕분에 지그하르트의 명성은 하늘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뭐, 그것도 여기서 살아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로만의 성격상 틸러가 무슨 죄를 저질렀든 상관없이 눈앞의 지그하르트를 모조리 지워버리려 들 것이다.
렉터는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빙글거렸다.
“어떻게 되려나.”
* * *
“…그렇게 되어 틸러의 목을 베었습니다.”
라온은 로만과 다른 수적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사정을 말해주었다.
“으음….”
“인간 거죽을 벗어던진 건가.”
“어쩐지 좋은 이야기만 들려온다 했지.”
남북맹 무인들도 한 종족의 삶을 가지고 놀았던 틸러의 악마 같은 면에 질렸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다만 로만의 표정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담했다.
“네 말 어디에 남북맹의 후계자를 죽일 이유가 있다는 거지?”
그는 고작 그거냐는 듯 턱을 틀었다.
“지그하르트의 영역을 노린 점, 조용히 사는 청루족을 습격한 뒤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사람을 공격하게 한 점, 이 일을 들키자마자 이쪽을 살인멸구 하려고 달려든 점. 그 외에도 한참 남았는데 더 불러드립니까?”
라온이 손가락을 세우며 그 이유를 하나씩 불러주었다.
-음? 선빵은 네가 먼저 아니었더냐?
‘시끄러.’
어차피 본 사람은 모두 죽었다. 중요한 건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를 만드는 거다.
“별 이유 아니로군.”
로만은 의미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그하르트의 이름조차 무시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패기 때문인지 잘 어울려 보였다.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으셨군요.”
그는 이곳에 왔을 때부터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남북맹의 후계자가 죽었다. 그 어떤 이유라고 해도 상관없다. 피에는 피를 받는 게 남북맹의 법칙이다.”
“아, 귓구멍이 막혔나?”
리메르가 앞으로 나오며 귀를 후볐다.
“너희 후계자가 선빵쳤다가 반격당해서 뒤진 건데 그걸 이해 못 해?”
“지그하르트의 광검. 죽고 싶은 것이냐.”
“죽일 자신은 있고?”
“허세 부리지 마라. 네놈의 단전이 깨져 폐인이 됐다는 소문은 레이블 강에도 흘렀으니.”
“그럼 내기 하나 할까?”
“내기?”
“네가 남북맹의 법칙을 말했으니, 난 레이블 강의 전설을 말하지.”
그가 씩 웃으며 출렁이는 파도를 가리켰다.
“레이블 강의 파도가 세 번 몰아치면 그 어떤 배도 넘겨버린다는 전설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그 전설대로 삼합을 받아내겠다. 네가 날 쓰러뜨린다면 우릴 마음대로 해라. 다만 내가 삼합을 버틴다면 스스로 물러나도록.”
리메르가 로만을 도발하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대답이 없지? 설마 단전 깨진 폐인을 세 번 안에 쓰러뜨릴 자신이 없는 건가?”
“도발 실력만큼은 늘었군.”
로만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뜬 뒤 어깨를 폈다.
“좋다. 그 도발에 넘어가 주지.”
그가 갑판을 찍어 누르던 붉은 도끼를 들어 올렸다. 무기를 쥔 것만으로 그의 무게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다.
쿠구구구!
이곳에 로만 홀로 존재하는 듯 그의 기파가 갑판 전체를 짓눌렀다.
“단주님….”
“어허! 어딜 어른들 싸움에 끼려고.”
라온이 리메르에게 다가가려 할 때 그가 손을 저었다.
“뒤에서 잘 보고 있어.”
“하지만….”
“가끔은 나를 믿어봐.”
그는 평소와 같은 경쾌한 미소를 지어주고서 로만의 앞에 섰다.
“너희도 물러나라.”
렉터도 배에 넘어온 수적과 산적을 뒤로 물렸다. 흥분되는 듯 입맛을 길게 다셨다.
“그럼 시작하지.”
로만이 그의 애병 적룡부를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강바람이 멈추고, 하늘 위 구름이 반으로 으깨진다. 온 세상의 기운이 그에게 모여드는 듯했다.
“삼합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일격으로 끝내주마.”
“그건 힘들 거야.”
리메르가 검을 중단에 세웠다. 새하얀 검신 위로 진녹색 빛무리가 아롱졌다.
“나도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서.”
“재밌군.”
로만이 발을 구르고 도끼를 내리친다. 붉은 도끼 위에서 타오른 시꺼먼 강기가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리메르는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강대한 부격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검으로 하늘을 겨누고, 손으로 강을 가리켰다.
“검계현신.”
그의 진중한 목소리가 사위에서 울려 퍼지며 세계의 흐름이 바뀌었다.
“폭풍의 눈.”
무너지는 하늘 아래 푸른 폭풍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