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38화 (238/653)

제238화

-새로운 검술이 떠올라? 아이스크림을 처먹다가?

라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동그란 머리를 갸웃거렸다.

“처먹지는 않았고, 그냥 먹었지.”

라온이 눈동자를 굴리는 라스를 보며 옅게 웃었다.

-어떤 검술을 생각한 것이냐.

“환검과 음검의 조화.”

무아에 빠졌을 때 최근에 습득한 음검과 꾸준히 쌓아온 환검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검술이 그려졌다.

지금은 심상 속에 있을 뿐이지만, 계속 수련한다면 세상에 딱 한 명만 쓸 수 있는 검술이 완성될 것이다.

-환상과 소리를 조화시킨다라….

“장점으로 단점을 지우면 된다는 네 말이 크게 도움이 됐지.”

라온이 입매를 끌어 올린 채 라스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진짜 아낌없이 주는 라스라니까.’

라스는 그저 능력치와 특성만 넘겨주는 게 아니라, 말이나, 행동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힌트를 뿌려주었다.

어릴 때는 열매를 주고, 커서는 목재를 주고, 나이가 들어서는 쉼터가 되어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고맙다.”

-이, 인간 주제에 감히 본왕의 머리를 치다니! 이 건방진!

라스는 폭발하기 전 화산처럼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려주겠노라! 본왕이 누구인지!

마나 회로를 통해 라스의 냉기가 송곳처럼 파고든다. 영혼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분노도 함께 일어섰다.

쿠구구구!

냉기의 서늘함에 뼈가 시리고, 분노의 묵직함에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샌드의 원수를 갚겠노라!

“아이스크림 샌드 아직 안 죽었는데.”

-닥쳐!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 화가 났는지 라스는 지독할 정도의 냉기와 강렬한 분노로 전신을 압박해왔다.

‘이 녀석도 점점 강해지네.’

큰 의미는 없지만.

라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심장에서 퍼져나오는 진중한 기세가 영혼을 내리누르는 분노를 뚫어내고, 단전에서 솟구친 청홍의 기운이 마나 회로를 파고든 라스의 냉기를 밀어냈다.

쿠구구구!

혹힌의 저주가 사라져 대로처럼 넓어진 마나 회로에서 막대한 힘의 경합이 일어났지만,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라스가 악을 지르며 가진 힘을 모조리 뿜어냈음에도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기운을 이길 수는 없었다.

녀석은 영역을 빼앗긴 짐승처럼 설 자리를 잃고 점차 뒤로 밀려 나갔다.

-아직이다! 본왕은 마계의 왕이자, 분노의 군주! 절대 포기하지 않느니라!

라스는 절대 지지 않겠다며 다시 분노를 끌어 올렸다.

‘역시 도움이 된다니까.’

라온이 미소를 지었다. 라스가 이렇게 공격을 해주는 덕분에 만화공과 글래시아, 불의 고리 셋을 동시에 운용하는 수련까지 되고 있었다.

‘거기다….’

[<분노>의 방해를 견뎌내셨습니다.]

[체력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기력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이렇게 능력치까지 퍼주지 않는가. 라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정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마왕이었다.

-끄으으으윽!

라스가 머리를 부여잡고 물러나 이를 바득 갈았다.

-네놈하곤 상종을 안 할 것이다!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니라!

녀석은 저주 같은 말을 남기고서 팔찌로 쏙 들어갔다.

“내일 바로 아이스크림 가게 갈 건데. 상종을 안 할 거면 안 가도 되겠네?”

그 말에 꽃팔찌가 크게 꿈틀거렸다. 3초도 지나기 전에 팔찌 위로 라스의 얼굴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취…

“취?”

-취소하겠느리라.

“하!”

라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왕이 자존심을 3초 만에 파는 걸 보면 아이스크림 샌드가 맛있긴 한 모양이다.

‘챙겨주긴 해야겠지.’

약속을 못 지킨 건 자신이었고, 라스는 도움을 준 것으로 모자라, 무아상태를 깰 수 있음에도 방해하지 않았다.

이번 건 이자를 더해서 확실히 챙겨주는 게 맞았다.

“그럼 내일 바로 가자. 오늘 본 것 중에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놔.”

-그건 이미 정해져 있느니라! 민트초코 샌드부터 시작해서 전부 맛볼 것이니라!

순식간에 분노가 풀린 라스가 경쾌하게 손을 흔들었다.

“알겠어. 마음대로 해.”

-그런데….

“음?”

-이번에도 무아에 빠지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검술을 이미 머리에 그렸기에 한동안 무아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무아라니, 나중엔 똥 싸다가 무아에 빠지겠구나. 화장실에 하루 종일 있겠어!

“그건 재밌을지도.”

라온이 빙긋 웃었다.

-흥, 그래서 네가 만들 검술은 무엇이냐.

라온은 거울을 보며 제천검을 뽑았다. 자그마한 소리 하나 없이 뻗어 나온 은빛 칼날을 보며 턱을 끄덕였다.

“발검술.”

-발검술? 그건 이미 있는 것이잖느냐.

“그거랑은 달라. 한 명을 확실하게 베는 발검술이 될 테니까.”

기존의 발검술은 소리를 이용하여 상대의 전정기관에 장애를 일으키는 방식이지만, 이번에 떠오른 건 적을 직접 베는 발검술이었다.

-본왕은 네놈이 발검술 소리로 대량 학살이라도 할 줄 알았다.

‘대량학살?’

-예전에 집사 영감도 말했지 않느냐. 음검의 장점은 다수에게 운용할 수 있는 거라고, 소리의 칼날로 쓸어버릴 줄 알았는데, 재미없군.

‘소리의 칼날이라….’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소리의 칼날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또 다시 연해지기 시작했다.

-어?

라스가 그 눈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전정기관이 아니라, 더 깊이 간다면….”

라온은 라스에게 대답하지 않고, 검술에 대해 중얼거렸다.

-야!

“음검으로 신경계를….”

-야이! 검에 미친 자식아!

*     *      *

일주일 뒤.

라온은 오후 훈련을 끝내자마자 연무장 구석으로 향했다. 미리 세워둔 전신 거울을 앞에 두고, 발검과 납검 자세만 반복했다.

-일주일 내내 검만 뽑고 자빠졌구나.

라스는 어깨 위에 올라탄 채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무아에서 깨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배 터지게 사준 덕분에 녀석의 분노는 나른할 정도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지루하지도 않느냐.

‘어쩔 수 없잖아.’

새로운 검술을 만드는 건 지도를 그리는 일과 같다. 수많은 길을 직접 돌아다니며 최적의 경로를 찾아야만 했다.

지금 자신이 만드는 검술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음검과 환검의 조화. 어렵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익혀야 하는 것도 두 개고.’

라스의 힌트 덕분에 두 가지 검술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음검과 환검을 조화시켜 적을 단숨에 베는 일대일 발검술, 두 번째는 다수의 적을 단번에 제압하거나, 죽이는 다인용 발검술. 이 둘을 모두 완성 시키려면 자는 시간도 모자랐다.

‘중요한 건, 재밌어,’

-재, 재미? 거울 앞에서 검만 뽑는데 재밌다고?

‘발전하는 게 보이잖아.’

일주일 내내 발검술을 연습한 덕분에 검이 뽑힐 때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검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으니, 계속 수련한다면 조만간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검에 미쳤느니라.

라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질린다며 고개를 젓고 팔찌로 들어갔다.

짝!

라온 피식 웃으며 다시 제천검을 뽑으려고 할 때 손뼉 소리가 들렸다. 단상 위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던 리메르였다.

‘웬일로 안 갔지?’

요즘엔 도괴가 있어서 훈련이 다 끝나기 전에도 사라지는 양반이 신기하게도 남아있었다. 물론 여기가 연무장인지, 안방인지 헷갈리는 자세였지만.

“모두 집합.”

검사들은 전부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기에 광풍단원 모두가 단상 앞으로 모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라온은 광풍단원의 앞에 서서 단상 위를 올려보았다.

“광풍단에 두 번째 임무가 내려왔다.”

“음!”

“임무!”

등 뒤에서 검사들의 열기 띈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버렌과 마르타를 비롯한 조장부터 단원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걸 보니, 전부 기대하는 것 같았다. 물론 루난은 맹했고, 도리안은 살짝 겁에 질려 있는 듯했다.

“말씀해주십시오.”

리메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젤 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있나?”

“가젤 강….”

유명하진 않지만, 청루족의 거주지이자, 강 내부가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가젤 강은 대륙을 관통하는 레이블 강에 붙어 있는 곳으로 아인종 청루족의 거주지다.”

리메르는 예상대로 청루족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그 청루족이 어선 하나를 침몰시키고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청루족은 사람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버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말대로 청루족은 단 한 번도 먼저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그들이 배를 침몰시키고 사람을 죽였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나도 처음 듣지만 비연회가 직접 조사한 사실이다.”

리메르는 느릿하게 손을 저었다. 목소리에 진중함이 묻어나는 걸 보면 그에게도 의외인 듯싶었다.

“처음엔 위협 정도였는데, 공격성이 점점 심해지더니, 사흘 전 가젤 강을 지나는 어선을 부숴버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익사시켰다더군.”

“으음….”

“그런….”

무인도 아니고, 어부가 죽었다는 말에 광풍단 검사들의 눈빛이 굳어졌다.

“우리 임무는 청루족이 난폭해진 원인을 찾고, 그들을 원래의 성격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다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처리해야겠지.”

리메르는 담백한 음성을 흘리고서 일어섰다. 서늘한 녹색 안광으로 모두를 굽어보았다.

“청루족은 강해. 몬스터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졌고, 혈계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 물에서는 하나하나가 익스퍼트급 강자이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더 경계해야 하는 놈들이 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블 강을 지배하는 남북맹. 그 도적놈들이 최근 그 근처를 지나다닌다고 한다.”

“나, 남북맹!”

“그러네. 레이블 강은 그놈들의 영역이잖아!”

“으음 오마의 남북맹….”

남북맹이라는 말에 검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그들은 일반적인 도적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무학을 닦고 체계를 이룬 거대 단체였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맹이 중립적이고, 말이 통하는 단체라고 해도 오마 중 하나다.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주의하도록.”

“남북맹이라….”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남북맹이라고 하니, 훈련생 첫 임무 때 만났던 젊은 채주 렉터가 생각났다.

‘더 강해졌겠지.’

당시에도 마스터는 되었으니, 지금은 어떤 경지에 올랐을지 궁금해졌다.

“하나 더! 이번에 우리가 가는 도란 마을은 지그하르트 영역 밖에 있는 곳이다.”

“저희가 왜 그곳까지 가는 거죠?”

버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란 마을 바로 뒤에 있는 유인 마을이 우리 영역이니까.”

“아….”

“유인 마을까지 문제가 번지기 전에 막아야 하고, 이번 기회에 도란마을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리메르 대신 도괴가 앞으로 나왔다.

“강에서 싸우는 건 처음이겠지만, 최근에 한 훈련 덕분에 배에서도 나름 움직일 수 있을 게다.”

“그래서 그런 훈련을….”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괴가 일주일 동안 균형을 잡는 훈련을 시켜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임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 뒤 내일 새벽까지 이곳에 모이도록.”

리메르는 할 말 다 했다며 손을 흔들고 연무장을 떠났다.

“음.”

라온이 뒤를 돌아 광풍단원들의 눈을 차례로 훑었다. 기대감에 차오른 자도 있고, 긴장한 사람도 있으며, 조금 겁을 먹은 자도 있었다.

“청루족이든, 남북맹이든 물 위에서의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거다. 어떤 사태에 어떻게 대비할지를 생각하며 단단히 준비를 해오도록.”

“예!”

광풍단원은 고개를 꾸벅이고 차례로 연무장을 떠났다.

“그럼 나도 이만.”

“잠시만요.”

도괴가 연무장을 떠나려 할 때 그의 앞을 막았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별관의 보호 말이냐?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한 눈빛을 빛냈다.

“알고 계셨습니까?”

“네놈이 뭘 해왔는지 전부 조사했다. 안이고, 밖이고 아주 적만 만들어놨더구나.”

도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날 왜 별관의 총관으로 만든 지 알겠어.”

“음, 그게….”

“걱정하지 마라. 난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니까.”

라온이 설명하려 할 때 도괴가 몸을 돌렸다.

“좋은 소식이나 가지고 돌아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떠날 테니까.”

그는 연무장 출구로 걸어가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도괴의 믿음직스러운 등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     *      *

가젤 강을 향해 출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평소 이용하던 길이 아니라, 산길을 탔기에 겨우내 굶주린 몬스터들이 하루에 한두 번씩 찾아온 것만 제외하면 여정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라온은 이동하는 시간 내내 머릿속으로 두 개의 검술을 그렸다.

심상에 빠져 음검과 환검을 각기 갈고 닦았고, 그 둘을 조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검술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너무 집중하다 보니 정신을 차리면 하루가 저물어 있고, 또 해가 뜨는 일이 반복되었다.

“음?”

라온이 어둑해진 하늘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머릿속에서 검술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사방이 트여 있는 공간에서 말을 멈췄다. 리메르가 말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잠을 자고 있었기에 수련을 하고 있음에도 단주 대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조별로 야영 준비를 하도록!”

“예!”

라온의 지시에 광풍단원들이 동시에 말에서 내렸다. 천검대 검사들에게 배운 조장들을 필두로 빠르게 천막을 치고, 불을 피웠다.

“아우, 벌써 밤이야?”

달리는 말에서도 꿀잠을 자던 리메르가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하루가 참 빠르네요.”

“네가 하루 종일 검술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렇지. 안 지겹냐?

그는 라스와 비슷한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름 재밌습니다.”

“천상 검사라니까.”

리메르는 피식 웃으며 우측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방향엔 영 귀찮은 것들이 많구만.”

“그러네요.”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병을 툭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속의 어둠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크르륵!”

“크르르르.”

몬스터들의 목울음과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다가왔다.

“이번에는 그래도 좀 상대할만한 놈들이로군.”

리메르가 휘파람을 불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 차례는 누구냐?”

“저희 3조입니다.”

막 천막 설치를 끝낸 버렌이 손을 들었다.

“그럼 너희가….”

“아뇨.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젓고서 숲으로 다가갔다.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고 숲을 바라보았다.

탐색을 끝낸 붉은 눈동자가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다. 은빛 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감싼 거대한 아이스 트롤 무리였다.

‘아이스 트롤 여덟이라.’

괜찮네.

두 번째 검을 시험해보기에 딱 좋은 숫자와 수준이었다.

“크르르르!”

“크어어억!”

아이스 트롤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라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위였기에 그 속도는 단련된 검사 못지않게 빨랐다.

“다들 귀 막아.”

라온은 경고성을 울리고서, 자세를 살짝 낮췄다. 평온한 눈빛으로 제천검의 검병을 느슨하게 쥐었다. 아이스 트롤이 열 걸음 안으로 들어온 순간 제천검을 뽑았다.

찌이이잉!

지금까지와는 다른 울림. 악마가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소름 끼치면서도, 우아한 검명이 대기를 적셨다.

“크륵….”

“크….”

달려들던 아이스 트롤들은 검의 울음을 듣자마자, 눈을 까뒤집은 채 쓰러져 라온의 발밑까지 굴러왔다.

절명.

조금 전까지 광기를 보이던 트롤들의 눈에서는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발검술의 검명 한 번에 생명의 선이 갈라진 것이다.

“허….”

리메르는 검으로 목을 벤 듯 숨통이 끊긴 아이스 트롤들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 무슨….’

라온이 검명으로 청각기관에 자극을 일으킨다는 건 알았지만, 아예 신경을 끊어버릴 줄은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으윽!”

“바, 방금 소리는….”

“크으….”

다만 완벽하지 않은 검이었기에 뒤에 있던 광풍단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대부분 귀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들은 쓰러진 아이스 트롤을 보고 턱을 덜덜 떨었다.

“미친….”

“와!”

“저 인간은 정말….”

버렌은 기겁했고, 루난은 놀람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마르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허억!”

“소, 소리로 몬스터를 죽인 거야?”

“그냥 소리도 아니야. 검명이잖아.”

“뭐 이런 미친 검술이….”

“연무장에서 연습하던 발검술이 이거였어?”

광풍단원들도 조금 전에 들었던 검명과 쓰러진 아이스 트롤을 보고서 마른침을 삼켰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장면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은 부족하군.”

리메르가 옆으로 다가오며 입맛을 다셨다.

“예. 적아를 가리기 힘들고, 위력 조절도 쉽지 않네요.”

“본래 심상과 현실은 차이가 큰 법이니까.”

“맞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리메르의 말대로 머리에서 그린 것과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확실히 큰 차이가 있었다.

“근데 네가 연무장에서 연습하던 건 다른 거 아니었어?”

“자는 줄 알았는데 보고 계셨습니까?”

“난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으니까.”

“흠, 지금 연구하는 검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일대일 용이고, 이건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라온은 두 검술을 가볍게 설명해주었다.

“흐음….”

리메르가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첫 번째를 나한테 써봐.”

그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내가 네 검술을 완성 시켜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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