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34화 (234/653)

제234화

라온은 도괴의 부릅뜬 눈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재밌네.’

도괴의 검계현신은 리메르처럼 검의 위력을 끌어올리는 강화형이 아니라, 시꺼먼 공간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칼날을 원하는 자리에 박아두는 설치형이었다.

‘이런 검계가 있을 줄은 몰랐어.’

도괴는 앞에서는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환검을 내리치고, 뒤에서는 미리 설치해둔 검은 칼날을 현신시켜 상대의 약점을 베었다.

기감이 둔해진 이 세계에선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법. 육체나 오러 혹은 속성을 강화하는 검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적을 속이는 검계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참으로 일관적인 사람이군.’

도괴 정도의 무인이라면 좀 더 강력한 검계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상대를 조롱하는 방식의 검계를 이뤄내다니 그는 뼛속까지 도박꾼이었다.

덕분에 검계가 무엇인지 약간 감을 잡았다.

검계란 검술이나 보법처럼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무인의 성향 그리고 살아온 삶의 발자취가 담긴 인생의 흐름 그 자체였다.

‘난 아직인가.’

경험이 미천하기 때문인지 그 흐름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니,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다 파악했다? 열네 개의 칼날을?”

도괴는 짜증이 돋아난 듯 썩은 나무껍질처럼 인상을 구겼다. 도박과 술 대결을 하며 그의 표정을 파악했기에 저 인상에 깃든 아주 작은 어색함이 느껴졌다.

‘집중하자.’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지금은 검계의 비밀을 깨닫고 도괴와 같은 선상에 섰을 뿐이다. 아니, 제대로 말하면 이쪽이 크게 불리한 상태다. 여전히 검계 안에 있고, 출혈을 막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이기기 위해선 검은 칼날을 이용해야 해.’

도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의 속임수를 더 숨기고 있고, 자신은 그 속임수를 파악한 상태다. 모르는 척 기회를 노려 단숨에 끝을 내야 한다.

“좋구나. 아주 좋아.”

도괴가 입술을 꾹 씹었다. 흥분과 기대가 어린 듯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다만 그걸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보여주마!”

어둠을 타고 이동하는 듯 찰나의 순간에 다가와 검을 그어 내린다. 환검의 묘리가 가득 스며든 검신이 나선으로 돌아가며 수십 개의 칼날을 쳐올렸다. 수십 명의 군관이 급소를 노리고 동시에 창을 지르는 듯한 위압이다.

고오오오!

라온이 자세를 깊게 낮췄다.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칼날을 피한 뒤 만화공의 기운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만화공 백화.

화령.

칼날 위에 어린 붉은 빛무리가 바람을 탄 듯 퍼져나간다. 가장 찬란하게 빛날 때 떨어지는 꽃잎처럼 백여 개가 넘는 염화의 강기들이 어둑한 공간을 뒤덮었다.

콰아아아앙!

묵빛 칼날과 화염의 빛줄기가 맞부딪치며 장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 결계 자체가 출렁일 정도의 충격에 라온과 도괴가 동시에 튕겨 나갔다.

라온은 밀려나면서도 뒤에 설치된 검은 칼날들을 생각했다.

‘우측 하단, 좌측 중단, 사선으로 두 곳.’

가을바람을 탄 갈대처럼 유연하게 몸을 돌려 공간을 채운 검은 칼날들을 피해냈다.

콰앙!

도괴는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것에 짜증이 일었는지 폭발의 여파를 몸으로 뚫어내고 검을 날려왔다. 거대한 덩치와 예리한 칼날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이르렀다.

치이이잉!

하나의 검이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된 뒤 여덟 개로 늘어난다. 찰나의 순간에 시야 전체가 도괴의 검으로 가득 찼다.

‘지랄 맞은 검술이야.’

옅어진 기감을 떠나서 이전에 싸웠던 레이든 지그하르트나, 가론 지그하르트의 검술 따윈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환검이 번져가는 속도와 현실감이 차원이 달랐다.

‘깨부술 수밖에!’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검을 옆으로 뉘었다. 결계를 깨부술 듯이 강대한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우우웅!

섬광처럼 쏘아낸 검극 앞으로 시뻘건 구체가 돋아나며 어마어마한 기운이 응집됐다.

만화공 백화.

중천포.

도괴가 만들어낸 환검들이 중천포의 인력에 의해 끌어 당겨지며 순간 어둠이 걷혔다.

“이건!”

도괴가 이를 눈을 부릅뜬 채 인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중천포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수백 개의 칼날과 응집된 열화의 강기가 폭발하며 검계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쿠구구구구!

두 힘의 여파로 일어난 강기의 폭풍이 라온과 도괴를 향해 시꺼먼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라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폭풍으로 몸을 던졌고, 도괴 역시 땅을 박찼다.

콰아아앙!

두 검사는 조금만 밀려나도 살을 짓이길 듯한 폭풍 속에서 서로를 향해 막대한 검격을 뿌렸다.

쩌엉! 쩌저저정!

라온은 도괴와 검을 맞부딪치고, 폭풍에서 쏟아지는 강기를 피하며, 사지를 노리는 검은 칼날을 흘려냈다.

동시에 세 사람과 싸우는 듯한 위기감이 온몸을 적셨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즐거운데.’

불의 고리와 만화공,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운용하고, 도괴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머리를 깨질 듯 굴리고 있음에도 즐거웠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펼쳐낸다는 기쁨에 손아귀에 힘이 깃들었다.

“여기서 웃는다고?”

“이상하게 즐겁네요.”

어깨를 노리던 도괴의 환검을 만화공 회천으로 쳐내고, 왼발을 뒤로 빼서 검은 칼날 두 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콰아아아아!

사그라드는 강기의 폭풍에 몸을 맡겼다. 나선의 회전력을 제천검에 실어 서리의 용오름을 일으켰다.

도괴가 아래를 겨누고 있던 검을 쳐올렸다. 검날의 끝에 검날이 겹치며 시꺼먼 철의 꽃이 피어난다. 도괴의 독문검술 벽환찬검의 발현이었다.

캬갸갸갸걍!

은빛 폭풍과 철의 꽃 무리가 격돌하며 귀가 따가울 정도의 굉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는구나!”

도괴가 강기의 일렁임을 가르고 검을 찔러온다. 정확히 어디를 노리는지 알기 힘들게 검극이 끝없이 흔들렸다.

고오오오!

기감은 없지만, 불의 고리는 있다. 뇌리가 타버릴 정도로 집중력을 끌어 올려 인지의 속도를 높였다.

‘좌측!’

느려지는 시야 속에서 그의 칼날이 움직이는 방향이 보인다. 우측 가슴. 그는 폐를 노리고 있었다.

챠아앙!

지붕 위를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제천검을 모로 세워 도괴의 검을 쳐낸 뒤 바로 검을 회전시켰다.

치이이익!

바닥을 긁으며 솟구친 제천검의 불꽃에 광아검의 송곳니가 어린다. 섬뜩한 칼날이 도괴의 허벅지를 긁었다.

쩌어엉!

도괴는 검을 눕혀서 방어했지만, 제천검에 담긴 사나운 힘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크으!”

그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옅은 신음과 함께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

쿠우우.

왼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허리를 낮췄다. 단전이 아려올 정도로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운용하며 고무줄을 튕기듯 응축된 근육을 폭발시켜 앞으로 뛰쳐나갔다.

‘여기서 끝내야 해.’

라온의 눈빛에 진중한 이채가 어렸다.

지금이 승부처였다.

*     *      *

도괴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는 라온을 보며 억지로 손에 힘을 풀었다. 당황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세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대단하군.’

이 공간의 비밀을 꿰뚫은 녀석은 많았지만, 모든 칼날의 위치를 이렇게 빨리 파악한 녀석은 처음이었다.

‘대륙 최연소 마스터다운 기량이야.’

리메르를 비롯한 강자들이 왜 라온의 이름을 부르짖고, 그 미래를 기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기량 자체가 누구와도 다르다. 현 가주와 닮은 저 녀석은 저 하늘 위로 비상할 재능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성급해.’

무력도, 판단도, 심계도 뛰어나지만 어리기에 미숙한 면이 있다.

라온은 이 결계에 숨긴 검은 칼날이 열네 개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숫자와는 다르다. 어둠 속에 설치한 칼날은 총 열여섯 개. 그의 예측보다 두 개가 더 많았다.

‘하긴 어쩔 수 없겠지.’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니까.

이곳에 박아둔 칼날을 열네 개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주사위 눈을 보여주었다.

그 현상 하나로 라온은 이곳에 설치된 칼날이 열네 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 이 결계 안엔 주사위와 아무 상관도 없이 처음부터 열여섯 개의 칼날을 박아놓았다.

그중 하나는 지금 달려오는 라온의 우측 어깨를, 나머지 하나는 좌측 발목을 겨누고 있었다.

‘패해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대륙 최고의 자질은 분명하지만, 자신에게 인정받기에는 한참 어리고, 미숙하다. 몇 년 뒤라면 몰라도 지금 져줄 수는 없었다.

‘와라.’

이쪽의 술수를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라온이 속임수에 당했을 때의 표정을 기대하며 검을 아래로 내렸다.

후우웅!

라온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열다섯 번째 검은 칼날 앞에 이르렀다. 시꺼먼 칼날이 어깨에 박히려는 찰나 그의 몸이 연기처럼 꺼졌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열여섯 번째 칼날마저 피한 뒤 섬전처럼 다가왔다.

고오오오!

심해처럼 깊게 가라앉은 라온의 붉은 눈을 보자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이, 이놈 알고 있었어!’

침착한 눈빛과 완벽한 회피. 저놈은 처음부터 숨겨둔 칼날이 16개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어림없다!”

도괴가 이를 악물었다. 저 칼날마저 파악한 건 경악스럽지만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떨어져 내리는 붉은 칼날을 막으려 할 때 라온의 왼손의 허리로 향했다.

트드드득!

나무를 갈아내는 듯한 탁한 마찰음과 함께 뽑힌 붉은색 단검이 서리를 줄기줄기 뿌렸다.

우우우우웅!

동시에 터지는 검명. 청아하면서도, 요사한 기운이 어우러진 기괴한 울음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이, 이런!”

도괴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단검을 뽑을 줄도, 그 단검으로 소리의 무학을 펼칠 줄도 몰랐기에 반응이 늦었다.

기이한 검명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찌이이잉!

귀 안쪽에서 서리가 깃든 굉음이 터지며 전정기관에 장애가 일어났다. 순간 시야가 회전하고,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후우우웅!

라온은 처음부터 그 틈을 노린 듯 물 흐르듯이 제천검을 그었다. 은색 칼날에 어린 화염이 이글거리며 어둠을 갈라 내렸다.

“이놈!”

도괴가 악을 질렀다. 균형을 잃고 쓰려지려는 육체를 오러로 억지로 붙잡은 뒤 다가오는 라온을 향해 검을 내쳤다.

쩌저저저적!

붉은 칼날과 검은 칼날이 사선으로 교차하며 막대한 충격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앙!

라온과 도괴가 고무공처럼 동시에 튕겨 나갔다.

“크으!”

도괴는 바닥에 검을 박아 넣어서 멈춰섰고, 라온은 이 와중에도 검은 칼날을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허억.”

라온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슴에 길게 갈라진 검흔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검은 칼날이 열여섯 개라는 걸 알고 있었나?”

도괴가 살벌한 눈빛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그렇죠.”

라온은 가슴의 상처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 검계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뼛속까지 도박꾼이라는 걸.”

“음….”

“그런 도박꾼이 주사위 눈으로 18을 맞추지 못할 리가 없죠. 처음에 보여준 주사위 숫자는 가짜라고 생각했습니다.”

도괴는 세 개의 주사위로 1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다. 그런 사람이 이런 중요한 대결에서 14를 던질 리가 없었다. 주사위는 처음부터 함정에 불과했다.

“그럼 내가 속이고 있다는 걸 알고….”

“예. 속아 넘어간 척했습니다. 적을 속이기 가장 좋은 순간은 상대가 술수를 부릴 때니까요.”

“으음, 칼들은 대체 어떻게 찾은 거냐. 상처만으로 찾았다는 건 불가능해.”

“이걸로요.”

라온이 지금도 울부짖는 진혼검을 들어 올렸다.

“검명을 일으켜서 당신이 숨겨둔 칼날을 찾았죠.”

“검명? 그, 그럼 계속 검명을 터트린 게….”

“예.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겨둔 칼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기감과 달리 청각은 그대로였으니까요.”

“다 찾아놓고 그런 연기를 했다니….”

속는 놈이 멍청한 것 아니겠습니까.”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도괴는 본인이 속일 생각을 하느라, 자신의 속임수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또 그 소리….”

도괴가 입술을 깨물었다.

“네놈 대가리에 칼이라도 맞은 거냐! 어찌 그 나이에 그런 판단을 한다는 말이냐!”

대륙을 구르며 수많은 대결을 겪었지만 라온 정도로 심계에 밝은 녀석은 처음이다.

햇볕과 물을 주는 정원에서 곱게 자란 녀석이 어떻게 뒷골목에서 구른 잡초들보다 속임수에 밝은 건지 모르겠다.

“제 피는 비싸거든요. 핏값은 받아야죠.”

라온은 피식 웃으며 도괴의 가슴을 가리켰다.

“하아….”

도괴가 눈을 내리감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까지 당했는데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추한 일이겠지.”

그가 인정한 순간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치솟았다. 오러로 막고 있던 상처가 터진 것이다.

우우우웅!

녹아내리는 어둠 속에서 도괴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은 미소를 그렸다.

“인정하마. 네놈은 삼약을 이뤘다.”

*     *      *

갑작스레 터진 빛무리에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른 듯 어둠이 가시고 원래의 뒷골목으로 돌아왔다.

“부, 부단주님!”

도리안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전신의 상처를 본 녀석의 눈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상처가 너무 심해요!”

“크게 다치진 않았어.”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도괴가 힘을 조절해주었기에 큰 상처를 입지 않고 끝날 수 있었다.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라온! 해냈구나! 난 믿고 있었어!”

눈치 빠른 리메르는 도괴의 가슴에 돋아난 상처를 보고 환호를 내질렀다.

“역시 라온에게 걸면 무조건 이긴다니까! 나의 재신이여!”

그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하아, 어찌 저런 멍청이 밑에서 너 같은 녀석이 나왔는지 모르겠군.”

도괴가 리메르를 보며 혀를 찼다. 그는 상처에서 벌어진 핏물을 쓸어내린 뒤 품에서 허연 약을 꺼내 발랐다.

“너도 발라라.”

도괴는 약의 뚜껑을 연 채 던져주었다.

“진견고라는 외상약이다. 그런 상처쯤은 가볍게 나을 거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전 생겨난 가슴의 상처에 약을 발랐다. 시원한 감각이 일어나며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꽤 비싼 약인 것 같았다.

“잘 썼습니다.”

큼지막한 상처에 약을 바르고, 도괴에게 진견고를 돌려주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네 녀석이 가져라.”

도괴는 손을 젓고서 어깨를 돌렸다.

“도박과 술, 그리고 무학까지. 도괴의 이름을 걸고 네놈의 실력을 인정하마.”

그가 발을 구르고 허리를 폈다. 큰 체구와 사나운 눈. 자신과 달리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 육체에서 강대한 위압감이 뿜어졌다.

“삼약의 첫 번째 승리자로서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무엇이라도 들어주마.”

도괴가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듯 흥겨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인정했으니, 시원하게 받아들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쁘지 않군.’

술수를 부릴 때는 치사하지만 일단 인정하면 깔끔한 성향인 것 같았다.

“이, 이거 대륙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이잖아….”

“라온! 전에 말했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거!”

도리안은 감격한 듯 턱을 떨었고, 리메르는 더 돈을 뜯어내라는 듯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허어.”

“으음!”

도괴의 부하들도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꼴깍 삼킨 채 눈을 떼지 못했다.

라온은 그 모든 시선을 받으며 제천검을 검집에 넣었다.

‘돈을 달라는 것도 좋고, 무학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삼약을 치르며 도괴에게 원하는 소원은 이미 생각해두었다.

‘그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라온은 씩 웃으며 도괴를 바라보았다.

“저는….”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