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어둡다.
힘줘서 눈을 감은 듯 보이는 모든 것이 검었다.
라온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게 도괴의 검계인가.’
도괴의 본명은 해리안 지그하르트. 본래 원로원 소속이고, 마스터를 한참 뛰어넘은 초고수이니 그가 검계를 사용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검계를 만들 줄은 몰랐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세계는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듯 고요하고, 잔잔했다. 도박할 때나, 술 대작할 때 보여준 도괴의 난잡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치가 가늠되지 않는군.’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이나 청각, 촉각에도 잡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오러를 운용하여 요즘은 눈보다도 많이 의존하는 기감을 펼쳤다.
“어?”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기감이 움직이질 않는다. 몸을 벗어난 오러가 외부로 뻗어 나가지 않고, 연기처럼 흩어진다. 다시 한번 써봤지만, 육체를 벗어난 오러는 돌덩이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이 공간 때문인가?’
이 깜깜한 검계가 기감을 막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만화공의 기운을 운용하여 제천검에 담았다. 검신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불꽃. 기감을 운용할 때와 달리 자그마한 흔들림도 없었다.
‘기감만 막는 결계인가.’
다른 오감에도 문제는 없어.
도괴의 검계는 기감만을 극도로 줄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하군.’
리메르가 광혈귀를 벨 때도 느꼈지만, 검계현신은 참으로 이질적인 힘이었다.
-요상한 결계로구나, 이음새가 조잡하지만, 내부는 꽉 차 있느니라.
라스는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본왕이 해결해주지. 빨리 끝내고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안 돼.’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잡하다고 해도 그건 본왕의 수준에서 말함이다. 네놈이 해체하고 나가려면 꽤 오래 걸릴 것이니라.
‘그래도 내가 해야 해.’
도박이나 술 대결과는 결이 다르다. 가진 무력으로 인정을 받아야 도괴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오래 안 걸릴 테니까. 들어가 있어.’
-쯧. 쓸데없는 고집은.
라스는 혀를 한 번 차고서 다시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탈출이라고 했지.’
도괴는 내 세상에서 탈출해보라고 말했는데 이곳엔 나갈 문도, 탈출할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나가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
라온은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제천검을 쥐었다.
‘먼저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아.’
시야는 어둠에 잠겼고, 기감은 무용지물이며, 상대의 안방과도 같은 곳에 들어와 있다. 너무 불리한 상황이기에 지금 움직이는 건 악수 중 악수다.
‘그렇기에….’
움직여야지.
도괴는 이쪽의 반응을 꿰고 있을 게 분명하다. 가만히 서서 표적이 되어주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이곳을 파악하는 게 나았다.
언제라도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보폭은 평소의 사분지 일로 줄인 채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나아갔다.
다섯 걸음. 열 걸음. 그리고 서른 걸음.
검은 세계의 끝에 닿을 때까지 어떠한 걸림돌도, 아무런 공격도 없었다. 이 검은 공간은 아예 텅 비어있었다.
‘대체….’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불안감이 등골을 스쳤다.
도괴는 어디 갔지? 왜 공격을 안 해오지? 탈출을 어떻게 하라는 거지?
같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결계 자체를 깨볼까?’
서리연이나 염룡결, 중천포로 공간 자체를 부숴볼까 생각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큰 힘을 쓰고 있을 때 도괴가 나타나 습격하면 대응하기 힘들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주위를 경계하며 움직이는 것뿐이다.
기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오감에만 의존하니 긴장감이 지속되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위를 가득 채운 어둠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트드득.
지루할 정도로 느린 보폭으로 다시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 돌아온 순간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다. 주사위 세 개가 테이블을 구르는 소리다.
소리가 멎은 뒤 어둑한 바닥에 5, 3, 6. 총 열네 개의 눈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열넷?”
주사위 눈이 사라진 땅을 보며 경계할 때 전방의 어둠이 파도처럼 갈라지며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과 같은 흑발을 귀 뒤로 넘기고, 차돌처럼 단단한 근육을 드러낸 야성적인 외모의 검사. 도괴 해리안 지그하르트였다.
“어려서 그런지 겁이 없구나.”
도괴가 턱을 치켜들며 피식 웃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선택지를 고르다니 말이야.”
“방금 주사위는 뭐죠?”
라온이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도록 제천검의 검병을 느슨하게 쥐었다.
“그건 네가 직접 알아봐야 할 일이지.”
도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을 상단으로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네 재주껏 살아 남아보아라!”
그가 대지를 뭉개고 돌진해온다. 상단에서 허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칼날에 시꺼먼 빛무리가 어려있었다.
쩌어어엉!
제천검에 광아검의 구결을 담아 질풍처럼 쏟아냈다. 두 검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피부가 뜯겨나갈 것처럼 아려왔다.
“흐읍!”
라온은 고통을 견디며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뻘겋게 번뜩이는 제천검으로 중검격을 내리찍었다.
쿠우웅!
막대한 무게가 실린 검격에 도괴가 얼음에 미끄러지듯 물러섰다.
‘더 가야 해.’
도괴는 자신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 기세를 잡았을 때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윽!”
만화공 화령을 쓰기 위해 몸을 돌릴 때 허리에서 뜨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옆을 보았다. 길게 갈라진 제복에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분명 막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야가 흔들린다. 분명 완벽하게 방어했는데, 왜 허리에서 피가 흐르는지 모르겠다.
“방어도 제대로 못 하는 게냐!”
도괴가 클클 웃으며 달려든다. 앞으로 내지르는 검극이 열 개로 변해 전신의 급소를 찔러 들어온다.
‘환검!’
도괴의 주특기는 검으로 환상을 이뤄내는 환검이라 들었다. 거짓이 아니었는지 열 개의 검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독할 정도의 예기를 피워냈다.
쿵!
진각을 밟았다. 무릎에서부터 끌어 올린 열화와 같은 기운이 중단전을 스치고 나아가 제천검에 깃든다. 검신에 어린 강기의 불꽃이 부채꼴로 펼쳐지며 원형이 강막을 일으켰다.
쩌저저저정!
강기의 칼날과 방패가 부딪치며 막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물결치는 어둠 속에서 도괴가 한 걸음을, 라온이 다섯 걸음을 물러섰다.
“크윽….”
리온이 아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좌측 팔뚝과 우측 허벅지가 갈라져 피를 뿌리고 있었다.
‘대체….’
도괴가 노린 부위임은 맞지만, 방어는 완벽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검격을 차단했고, 도괴의 칼날이 피부에 닿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상처가 났는지 이해되질 않았다.
뚝뚝.
허리에 이어 팔뚝과 허벅지에서 떨어진 핏물이 바닥에 파문을 일으킨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당황스럽나?”
도괴가 검을 휘돌리며 빙긋 웃었다. 도박할 때와 술 마실 때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은 듯 선명했다.
“오러고 검이고 확실하게 차단했는데 왜 베인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알면 힌트 좀 주시렵니까?”
“그럴 순 없지.”
도괴가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속는 놈이 멍청한 거니까!”
어둠과도 같은 검은 빛이 도괴의 검신을 뒤덮는다. 뻗어 나가는 검은 칼날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며 시야를 가득 덮었다.
‘단순한 환검이 아니야.’
도괴는 환검을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강검 이상으로 막대한 힘을 담아냈다. 대륙을 울리는 이명은 역시나 헛것이 아니었다.
우우웅!
라온이 만화공의 기운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뒤로 젖힌 제천검을 내질렀다. 칼날에 스며든 불꽃이 노도처럼 일어서며 화룡의 포효를 터트렸다.
콰드드드득!
쇳덩이가 으깨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라온이 뒤로 튕겨 나갔다.
“으으윽….”
라온이 가는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잡았다. 좌측과 우측 어깨에서 시뻘건 핏물이 치솟고 있었다.
‘이건 위험했어.’
어깨는 목의 지척이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조금만 밀렸다면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도괴를 보았다. 굶주린 늑대처럼 흉폭한 눈동자. 봐줄 생각 따윈 전혀 없다. 이 공간의 비밀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정말 죽게 될지도 모른다.
“눈이 겁에 질려 있군.”
그는 본인이 우위인 이 상황을 즐기듯 턱을 치켜들었다.
“여전히 사람을 볼 줄 모르시는군요.”
“허세 부리지 말고 포기해라. 넌 여길 벗어날 수 없다.”
“포기가 뭡니까?”
라온이 허리를 폈다. 도리안에게 돌려받은 청홍환을 손가락에 끼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주절대지 말고 오시지요.”
* * *
“이, 이건 또 뭐예요?”
도리안은 라온과 도괴를 먹어치운 검고 둥근 공간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검은 칼날. 도괴의 검계현신이지.”
리메르는 팔짱을 낀 채 목을 풀었다.
“거, 검계현신? 도괴가 검계현신을?”
“뭘 그리 놀래. 원래 원로원 소속인 할배인데. 쓸 수도 있지.”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원로원 소속인 사람이 왜 도박하고 술 마시며 대륙을 떠돈 겁니까?”
“지그하르트 소속이 아니니까. 아니, 반쯤 걸쳐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예에?”
도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이야기가 상상을 벗어나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지그하르트가 아니죠?”
“그건… 나도 모르지?”
리메르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그하르트고 뭐고 지금 심각한 상황 아니에요? 무력을 확인하는 시험인데 검계현신까지 썼잖아요! 도박과 술의 복수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구요!”
도리안은 빨리 구해줘야 한다며 검을 꺼낼 듯 손을 까딱였다.
“아서라.”
리메르가 고개를 젓고서 검을 뽑으려는 도리안의 손을 막았다.
“도괴는 그리 속 좁은 영감탱이가 아니야. 열 받았던 건 라온의 검을 마주한 순간 풀어졌을 거다. 진심으로 라온을 공격할 생각 따위는 없어.”
“그런데 왜 검계현신을….”
“지그하르트의 굴레를 벗어났어도 아예 마음은 떠나지 못한 거지.”
리메르는 탄식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그는 보고 싶은 거다. 지그하르트의 미래가 어떤 녀석인지를.”
“아….”
“라온은 도괴의 인정을 받고, 본인의 힘으로 검계를 뚫어낼 테니 믿고 기다려.”
그는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님….”
도리안은 감격한 표정으로 배 주머니를 쓰다듬었다.
“역시 단주님은 항상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시….”
“거기다 지금 그만두면 삼약이 깨지잖냐. 그럼 도박도 망하고, 내 미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고!”
그는 검은 장막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재신 라온이시여! 나에게 황금의 비를!”
“…….”
도리안의 동그란 눈동자에 한심함이 차올랐다.
* * *
라온이 뺨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손등으로 털었다.
‘많이도 당했군.’
전신에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출혈이 많아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그러게 말했잖느냐.”
도괴가 어깨에 검을 걸친 채 히죽였다.
“다치기 전에 포기하라고.”
“사심이 가득한 웃음이군요.”
“네놈의 얼굴에 여유가 사라지니 좀 시원하긴 하구나.”
그는 즐겁다는 듯 입매를 더 끌어 올렸다.
“후우….”
라온이 탁한 숨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가닥이 되어 바닥을 적신다. 오러로 지혈하고 있음에도 상처가 너무 많아 다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이상 상처가 늘어나면 출혈로 죽게 될 거다.”
“괜찮습니다. 남들보다 회복이 빨라서요.”
“그 조잘거리는 입술도 떨리고 있잖느냐. 여기까지다. 포기해라.”
도괴가 검으로 심장을 겨누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살의를 담은 강대한 기운이 가시가 되어 피부를 찔러왔다.
“그게 뭔지 모른다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검을 세웠다. 제천검의 칼날 위로 시뻘건 불꽃이 치솟으며 장대한 검명을 토해냈다.
“멍청한 녀석!”
도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숨 한 번 내쉬기 전에 좌측에서 강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도괴의 칼날이 짐승의 아가리처럼 쫙 벌어지며 상체를 뜯어버릴 것처럼 쏘아졌다.
치이이잉!
숨을 참으며 제천검으로 한 줄의 선을 그렸다. 무엇보다도 빠른 선. 어둠의 지평선을 가르는 푸른빛이 벌어진 칼날을 쓸어 담았다.
캬아아아앙!
서리연과 도괴의 환검이 격돌하며 일그러진 강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치이익!
라온은 도괴의 막강한 힘에 밀려나며 발을 굴렀다. 바람을 탄 잎사귀처럼 부드럽게 돌아 뒤로 검을 내쳤다.
쩌저저정!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으로 터지며 어둠 속에 숨은 검은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라온이 제천검으로 가슴을 노리던 검은 칼날을 밀어냈다.
“이런 깜찍한 걸 숨겨두고 계셨군요.”
차게 웃으며 고개를 모로 틀었다.
“이러니 방어를 해도 베일 수밖에.”
방어를 제대로 했음에도 상처가 생겨난 이유가 바로 이 칼날 때문이다. 어둠에 숨은 채 밀려나거나 움직일 때 자신을 베어버린 것이다.
“칼 하나를 찾아봐야 이미 늦었다.”
술수를 들켰음에도 도괴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감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도 감각이 너무 둔하구나. 듣던 것과는 달라.”
그가 짙은 비웃음을 그리며 다가왔다.
“그런 멍청한 감으로 살다간 비명횡사 당할….”
“14개.”
라온의 나지막한 음성에 도괴의 말이 뚝 끊겼다.
“이 안에 14개의 칼이 숨어있잖습니까. 당신이 검을 휘두를 때만 나타나는 ‘검은 칼날’이”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여유로 가득 찼던 도괴의 미소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어색함이 비치는 표정이다.
“검계에서도 속임수를 사용하다니, 어떤 의미론 존경심까지 드는군요.”
“흥! 그걸 안다고 해도 상관없다.
도괴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겨눴다.
“나와 싸우며 그 칼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의 커다란 덩치가 한줄기 빛살이 되어 쇄도해온다. 시꺼먼 검신이 곡선으로 꼬이며 양팔과 다리를 베어왔다.
치이이잉!
유검의 묘리를 운용하여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솟구치는 두 검격을 동시에 쳐냈다.
부드러움을 최대한 발휘했음에도 도괴의 검에 담긴 기운을 모두 해소하지 못해 또 밀려 나갔다.
터억!
라온은 어깨를 접고, 무릎 뒤로 빼며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도괴와 맞부딪쳤음에도 상처는 생겨나지 않았다.
“어?”
도괴는 멀쩡하게 일어선 라온을 보고 턱을 떨었다.
“대, 대체….”
“칼날은 사라졌다가 나타나지만, 그 위치는 바뀌지 않더군요.”
“…그걸 다 외웠다고? 싸우면서?”
“제 피가 말해줬으니까요.”
라온이 피가 말라붙어 빨개진 손아귀로 제천검을 고쳐잡았다.
“검계가 무엇인지 감도 잡았으니.”
붉은 눈에 어린 기광이 음습한 어둠을 밝혔다.
“제대로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