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도괴는 화이트 드래곤을 물처럼 들이키는 라온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돼.’
희석하지 않은 화이트 드래곤은 대형 몬스터조차 견디지 못하고 토하는 지독한 술이다.
마스터의 체력과 회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인간이 견딜 술이 아니건만, 저 어린놈은 차를 마시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화이트 드래곤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저거 진짜 뭐 하는 새끼야….’
도박이야 대륙에 숨은 은거기인에게 배워왔다고 하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믿기 힘들지만 억지로 양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한 화이트 드래곤은 운이나, 실력 따위로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술 한 동이도 먹어보지 못한 것 같은 저 어린 녀석이 자신보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안 드십니까?”
가볍게 한 바가지를 비운 라온이 씩 웃었다.
“도괴 님의 차례입니다.”
“알고 있다.”
도괴는 이를 바득 갈며 바가지를 들어 올렸다. 끓어오르는 속을 꾹 참고 술을 입에 퍼부었다.
“크으으….”
지독하다. 본래 희석해서 천천히 마셔야 하는 술을 그대로. 그것도 급하게 마시다 보니, 즐기기는커녕 더럽게 아프기만 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물러날 수도 없었다. 떨리는 손에 억지로 힘을 주고 연속으로 잔을 비웠다.
“크아! 네, 네 차례다!”
도괴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마시려고 했습니다.”
라온은 도박을 즐길 때처럼 여유롭게 웃으며 바가지를 비웠다. 통증이 전혀 없는지 미소가 부드러웠다.
‘오러로 지우는 것도 아닌데.’
라온의 오러는 도박할 때도, 지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을 자는 듯 단전에 그대로 처박혀 있는 게 분명한데, 저놈에겐 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물을 마시는 듯한 모습이었다.
“흐이익! 무슨 술 냄새가 저렇게 독해!”
“정말 냄새만으로도 죽겠군. 저걸 어떻게 마시는 거지?”
“아오, 가까이 가기도 싫어.”
“둘 다 독종이다. 독종!”
구경꾼들은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내뱉는 숨결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술도 제법 하는구나. 평소에 즐기는 술이 뭐지?”
도괴는 잠시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 라온에게 말을 걸었다.
“마시지 않습니다.”
“뭐?”
“전 이번에 술을 처음 마셔서요.”
라온이 바가지 가득 술을 퍼 올리며 싱긋 웃었다.
“목이 뜨끈한 게 나쁘지 않네요. 사람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녀석은 그 말이 정말이라는 듯 또 가볍게 잔을 비웠다.
“어? 어어?”
억지로 여유를 보이던 도괴의 표정이 사정없이 깨졌다.
‘처음?’
지금 처음이라고 한 거야?
술이 처음이라는 놈이 화이트 드래곤을 저렇게 퍼마신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아냐. 저거 진짜야….’
조금 전까지 저 괴물 놈과 도박을 했기에 알 수 있다. 술을 처음 마신다는 말은 진실이 분명했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지?’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저놈은 미지의 무언가였다.
‘그래도 질 수 없어! 절대로!’
도박과 술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도괴의 자존심이 고개를 쳐든다. 술이 처음인 놈에게 무릎 꿇을 순 없었다.
“술 한 동이 더 가져와라!”
“예!”
도괴는 내상을 입은 듯 아려오는 속을 꾹 누르고, 바로 튀어나온 두 번째 술 항아리를 노려보았다. 이젠 자존심 싸움이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흠.”
라온은 두 번째 항아리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겁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다만….”
“다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으니, 한 동이를 더 준비하죠.”
“이….”
도괴가 턱을 덜덜 떨었다. 미쳤다. 이놈은 상상을 벗어난 미친놈이 분명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 그 말이 맞군. 좋다! 하나 더 가져와!”
“화, 화이트 드래곤은 그것뿐입니다.”
“그럼 다른 거라도 가져와! 아주 독한 걸로!”
“예!”
부하들은 오늘따라 말을 더럽게 잘 들었다. 좀 순한 걸로 가져와도 되거늘 화이트 드래곤과 엇비슷한 도수의 술을 더 큰 항아리에 담아서 가져왔다.
“이제 다시 시작해보지.”
“좋습니다.”
라온은 열이 받을 정도로 여유롭게 잔을 비웠다.
“크윽!”
도괴는 억지로 잔을 비우고, 라온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절대 지지 않는다!’
죽어도 쓰러지지 않아!
* * *
라온은 도괴를 보며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죽으려고 하는데?’
도괴의 눈은 반쯤 풀린 채 해롱거렸다. 취기를 정신력으로 간신히 참고 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다음은 너다. 마셔라.”
혀도 꼬부라졌는지 말이 어눌해졌다. 정말 한계인 듯 보였다.
‘대단하네.’
화이트 드래곤도, 그다음에 나온 두 종류의 술도 전부 냄새만 맡아도 취할 정도로 지독한 도수를 가졌다. 그걸 물처럼 들이키고도 아직 정신을 유지한다는 게 놀라웠다.
“마, 마시라고. 인마.”
인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정신 줄이 손가락 끝에 매달린 듯 보였다.
“그러죠.”
라온이 빙긋 웃고서 가볍게 술잔을 비웠다.
치이이잉!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불의 고리가 몸 안에 들어온 독한 술기운을 얼음 조각처럼 단숨에 녹여버렸다.
‘일석이조로군.’
도괴와 술 대결을 하면서 불의 고리 성취가 높아지는 요상한 상황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뭐냐. 이게?”
“설화검협은 조금도 안 취한 거 같은데? 아예 웃고 있어.”
“저게 술을 처음 마시는 사람이라고?”
“도, 도괴는 죽으려고 하잖아….”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난 이 술자리가 아침까지 이어질 줄도 몰랐어.”
구경꾼들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휘청이는 도괴와 멀쩡한 라온을 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우, 웃어?”
도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술을 퍼서 간신히 입에 담았다. 먹는 것 반 떨어뜨리는 것 반이었지만 딱히 막지 않았다. 이젠 의미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도괴 못지않게 힘들어하는 녀석이 있었다.
-꾸에에엑!
라스가 멱을 따는 비명을 지르며 혀를 쭉 내밀었다.
-제발 그만! 제발 그만해! 이 악마 자식아!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까지 넘어온 술 대결에 라스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이 고문은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 아이스크림 안 먹는다! 밥도 안 먹을 테니 제발 그만 마시란 말이다!
녀석 역시 독한 술에 질려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본의 아니게 라스에게 고문을 해버린 게 되었다.
‘조금만 버티면….’
-그 조금이 대체 언제냐! 진짜 죽겠다고! 이 마귀 자식아!
라스는 이런 고문은 처음이라며 머리를 부여잡고 테이블 위를 뒹굴었다.
“크윽, 내, 내 차례인가?”
도괴가 어깨를 떨면서 술을 펐다.
“저도 함께하죠.”
라온이 도괴와 함께 술잔에 술을 담고 들어 올렸다.
“처음으로 건배라도 할까요?”
“조, 좋다. 얼마든지!”
앞에 술잔을 가져다 대자 도괴가 입술을 깨물고서 잔을 부딪쳤다.
라온은 가볍게 술을 들이켰고, 도괴는 손을 바르르 떨며 술을 마셨다.
캬앙!
술잔이 깨지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도괴가 뒤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에 턱을 걸치고 있던 라스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악마 같은 놈….”
-이 악마 같은 놈이….
한 사람과 한 마왕은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서 눈을 감았다. 둘 다 기절한 듯 거친 숨을 뱉는 소리만 났다.
[불의 고리의 성취가 상승했습니다.]
라온은 메시지를 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시험도 가볍게 클리어.’
* * *
“수, 술도 이겼어….”
도리안이 뒤로 넘어간 도괴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단주님! 라온 님이 두 번째 시험도 이겼다구요!”
옆에서 멍하니 선 리메르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저 사람은 왜 못 하는 게 없는 거야!”
도박과 술로 대륙 전체에 소문난 도괴를 압도적으로 이기다니, 라온이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런 장면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우와아아!”
뭔가 라온의 지갑이 된 느낌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 환호를 질렀다.
“으으으!”
리메르가 움켜쥔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오고 있다. 오고 있어!”
“예? 뭐가 와요?”
“내 전성기가 다시 오고 있다고!”
흥분을 꾹 참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한 번만 더 이기면 돼.’
라온이 삼약을 이룬다는 것에 숨겨둔 돈과 도리안에게 빌린 금화를 모조리 걸었다. 삼약에 성공한다고 건 사람은 자신이 유일하기에 따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굴러들어올 것이다.
“제발….”
리메르는 쓰러진 도괴를 멀뚱히 쳐다보는 라온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나의 재신이여!’
금색 비를 내려다오!
* * *
라온이 몸에 가늘게 남은 취기를 오러로 밀어버렸을 때 바닥에 누워 있던 도괴의 몸에서 허연 연기가 끝없이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이익!
그 연기가 퍼지는 순간 지독할 정도의 술 냄새가 도박장 전체를 뒤덮고, 술이 약한 사람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도괴가 몸에 가득 찼던 술기운을 오러로 전부 뽑아낸 것이다.
“후우….”
도괴가 상체만 일으킨 채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며 두 번째 한숨을 뱉었다.
“내가 졌다.”
그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도박에 이어 술까지. 솔직히 말해서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도괴가 스스로 만든 천장의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끝나고 기지개를 피는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하나만 묻지.”
“말씀하시죠.”
“너 정말 술이 처음이냐?”
그게 정말 궁금했는지 도괴의 표정은 진지했다.
“네.”
이번 생엔 처음입니다.
라온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드, 드디어.
라스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디어 끝났다! 으아아아아!
녀석은 탈옥을 성공한 죄수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을 펼쳐 들었다.
“18살짜리에게 술과 도박에서 압도당할 줄은 몰랐다. 다 인정하지.”
도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턱짓하며 밖을 가리켰다.
“세 번째 시험을 시작하겠다. 따라와라.”
* * *
라온은 리메르, 도리안과 함께 도박장 뒤편 공터에 섰다.
“네가 마스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 눈에 차지는 않는다.”
도괴는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려는 듯 손목과 발목을 천천히 돌렸다.
“술과 도박에서 망신당해 나와 싸워 이기라는 시험을 내고 싶지만, 불가능한 걸 말할 수는 없겠지.”
그가 두툼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일단 네가 나와 무를 겨룰 실력이 되는지 확인하겠다. 덤벼라. 내게 공격을 성공시키던가, 마음에 드는 검격을 날린다면 제대로 된 내기를 걸도록 하겠다.”
“기절했다가 깨셨는데 괜찮겠습니까?”
라온이 옅게 웃으며 검집을 툭 쳤다.
“끄응, 기절한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었을 뿐이다.”
도괴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같이 있다 보니 이제 그의 표정이 완벽하게 읽혔다. 진심으로 민망해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이다!”
“예.”
라온은 앓는 소리를 내는 도괴를 보며 검병에 손을 얹고, 자세를 낮췄다. 발검술의 자세였다.
“어린 녀석이 고루한 맛이 있군.”
도괴가 피식 웃으며 앞으로 검을 겨누었다. 덩치와는 달리 검의 크기는 제천검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발검술이라 생각하고 있군.’
그는 당연히 발검술이 올 거라 생각한 듯 쾌검격을 막을 준비만 하고 있었다.
“후.”
라온이 짧게 숨을 뱉었다.
‘좋은 기회야.’
지금 사용하려는 건 발검이 아니라, 소리의 무학. 극쾌를 담아 그의 귓속을 헤집어놓을 새로운 검격이었다.
검병을 가볍게 쥐었다. 손아귀를 가득 채우는 기분 좋은 차가움을 즐기며 발을 굴렀다.
중단전을 지나 단단해진 오러가 전신의 마나 회로를 질주한다. 찰나의 순간에 하체에 강대한 힘을 더해 앞으로 나아간다.
도괴의 붉은 눈이 순식간에 커진다. 왼발을 뻗어내며 제천검을 뽑았다. 질풍 그 자체가 되어 치솟은 은빛 칼날이 검집의 끝단을 긁으며 올라가 짙은 검명을 토해냈다.
우우우웅!
지금부터가 진짜다. 대기를 진동시키며 나아가는 소리에 만화공의 기운을 얹었다. 벼락처럼 꺾이는 소리의 방향을 세밀하게 통제하여 도괴의 귀. 그것도 안쪽의 전정기관을 후려쳤다.
피이이익!
도괴의 귓속에서 검풍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지만, 그는 잠시 휘청거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경악을 한 듯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터엉!
라온은 지금이 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태화이보를 밟았다. 바람을 탄 꽃잎처럼 솟구친 순간 빠르게 정신을 차린 도괴의 검이 뻗어온다. 하늘을 짓이길 듯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쿠구구구!
오러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대한 검격. 제천검을 비틀어 그의 검을 쳐내고 광아검을 그었다.
“크음!”
도괴는 봐줄 생각이 없는 듯 순식간에 검을 회수에 그대로 찍어 내렸다. 산이 떨어지는 듯한 압력이었다.
치이잉!
라온의 검이 달덩이를 그리듯 허공에 호선을 일으켰다. 번져나가는 강기의 파동이 도괴의 검을 밀어내고 그의 소매를 짧게 베었다.
쩌어어엉!
뒤늦게 부딪친 검과 검의 충격에 라온과 도괴가 동시에 밀려났다.
“거, 검기가 아니라, 소리? 소리의 무학이라고?”
도괴는 소매가 잘린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맞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들킨 마당에 감출 필요는 없었다.
“음, 소리의 무학을 익혔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괴가 소리가 터진 왼쪽 귀를 부여잡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최후의 순간에 막긴 했지만, 꽤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전정기관을 쳤으니까.’
전정기관은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기관이다. 신경계와 가깝고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기에 한 번 당하면 절대 본래의 실력을 낼 수 없다. 첫 공격이 소리의 검술이 아니었다면 당한 건 이쪽이었을 것이다.
“쯧.”
도괴는 갈라진 소매를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이번에도 널 우습게 본 모양이다.”
그는 손아귀를 쥐었다가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하지. 도박, 술 그리고 무학까지. 너는 내 삼약을 깰 자격이 있다.”
“인정이 참 빠르시군요.”
“너 같은 놈이 세상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도괴가 피식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이제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겠다.”
그가 역수로 쥔 검을 내밀었다.
“마지막 시험은 탈출하는 것이다.”
“탈출? 어디서 탈출을 한다는 말입니까?”
라온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런 공터에서 무슨 탈출을 하라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기서.”
도괴가 거꾸로 쥔 검으로 바닥을 가리키고, 모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겨눴다.
‘저 자세는….’
모를 수가 없는 자세였기에 입이 떡 벌어졌다.
“검계현신.”
도괴의 목소리가 사위에서 울려 퍼졌다.
“검은 칼날.”
피할 새도 없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세계에서 쇳소리 섞인 도괴의 음성이 흘러내렸다.
“내 세상에서 탈출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