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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25화 (225/653)
  • 제225화

    라온은 붉은 용과 푸른 용이 새겨진 상자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게 전설급 아티팩트라고?’

    미셀은 미리 준비해서 꺼낸 게 아니라, 잡동사니가 뭉쳐 있는 곳에서 이 상자를 빼냈다. 바닥에서 떨어진 돌멩이 던지듯 줘놓고, 전설급 아티팩트라고 말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긴 다 저렇게 관리되고 있으니까.’

    그녀는 조금 전에 반납했던 상급 아티팩트들도 전부 바닥에 뿌려버렸다. 본래 정리를 안 하고 사는 성격인 것 같았다.

    “열어보세요.”

    “알겠습니다.”

    라온은 기대감 어린 미셀의 눈빛을 마주하고서 상자를 열었다.

    ‘반지?’

    상자 안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특이했다. 붉은색 용과 푸른색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세공 솜씨라니….’

    반지를 형성하는 두 마리의 용은 이목구비만이 아니라, 비늘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매끄러웠다. 이렇게 작은 반지에 세밀함을 담은 걸 보면 이름난 장인의 작품이 분명했다.

    “청홍환이라는 아티팩트에요. 라온 님은 화속성과 수속성을 모두 사용하실 수 있으니, 그 반지가 도움이 될 거예요.”

    “화속과 수속?”

    “네. 화속성 마나와 수속성 마나의 위력을 증가시켜주고, 내부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능력이 있어요.”

    “아….”

    라온이 청홍환을 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미셀의 말대로 두 속성의 오러를 강화시키고, 내상 완화의 효과까지 있다면 자신에게 딱 맞는 아티팩트였다.

    ‘미리 준비해주신 건가.’

    미셀은 이번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필요한 아티팩트를 골라놓았던 것 같다.

    “이건 안 팔고 기념으로 놔두려던 물건인데, 결국 주인을 찾네요.”

    미셀은 아련한 눈으로 청홍환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라온이 청홍환이 든 상자를 쓸어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선독점이라는 큰 대가를 받았는데, 이런 반지까지 받는 건 꽤 부담스러웠다.

    특히 평범한 임무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던 일이라 마음에 걸렸다.

    “물론이죠. 이 아티팩트의 제작자도 라온 님이 받아주시면 좋아할 거예요.”

    “제작자?”

    “후후.”

    미셀이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옆자리를 보았다.

    “라온 님은 자연광을 받아도, 실내 조명을 받아도 다 존잘이네요.”

    엔시아가 청홍환을 들고 있는 라온을 보며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설마?”

    “맞아요. 청홍환은 엔시아가 만든 첫 번째 전설급 아티팩트에요. 만들자마자 그 증상이 나타나서 홍보조차 못 했지만요.”

    “허….”

    라온이 엔시아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많이 봐도 엔시아의 나이는 20대 초중반에 불과하다. 그녀가 쓰러진 게 2년 전이니, 20살 때쯤 이 전설급 아티팩트를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륙을 울릴 천재는 여기에도 있었군요.”

    “20대에 전설급 아티팩트를 만들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일세….”

    셰릴과 페드릭도 청홍환의 제작자가 엔시아라는 걸 듣고서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우후후.”

    그 천재는 본인을 칭찬하는 것조차 모르고 라온을 보며 헤죽거리고 있었다.

    “엔시아.”

    “진짜 오지게 잘생겼어.”

    “엔시아?”

    “아무리 봐도 안 질려… 악!”

    미셀이 등을 철썩 치고 나서야 엔시아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엔시아. 라온 님께 청홍환을 드려도 괜찮지?”

    “물론이죠. 작품의 완성은 좋은 주인을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엔시아의 바다색 눈동자가 현묘한 빛으로 반짝였다. 이게 20대에 전설급 아티팩트를 만드는 장인의 진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반지에 효과가 하나 더 있거든요.”

    “마나 강화와 내상 완화 말고 또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겁니까?”

    “예!”

    엔시아가 자신감 넘치는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요난 가문의 후계자 후보에 들고, 20대에 전설급 아티팩트를 만든 사람이 얼굴만 따지는 바보일 리가 없다.

    “그럼 네 번째 능력은 뭐죠?”

    라온은 처음 엔시아를 만났을 때의 긴장감으로 가슴을 적신 채 입을 뗐다.

    “저도 예상치 못한 능력인데, 피부가 매끄러워지고, 피부색이 좀 밝아져요.”

    “예?”

    생각지 못한 능력에 턱이 모로 돌아갔다.

    “단순히 말해서 미용 효과죠! 라온 님이 그걸 끼면 얼마나 더 잘생겨질지 기대되네요!”

    엔시아가 손을 비비며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벌어진 입에서 침까지 흘러나올 기세였다.

    “빨리 껴보세요!”

    그녀는 청홍환을 착용하라는 듯 크게 손짓했다.

    “으음….”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 생각했어.’

    아무래도 얼굴만 따지는 저 모습이 진짜고, 아까 보여준 신비한 분위기가 가짜인 듯싶다.

    “어서요!”

    “음, 알겠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청홍환을 착용했다. 꺼끌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반지는 손가락에 부드럽게 맞아 들었다.

    고오오오!

    청홍환을 완전히 착용한 순간 두 용의 눈에서 청색과 홍색의 빛이 뿜어지더니, 실과 같은 기운이 마나 회로를 파고들어 단전에 가라앉아 있던 만화공과 글래시아에 어우러졌다.

    우우우웅!

    만화공과 글래시아의 기운이 저절로 일어서는데 그 단단함과 크기가 이전과는 격이 달라졌다. 청홍환에 깃든 마나 강화 효과는 생각보다 더 빠르고 거대했다.

    ‘내부 보호 효과도 뭔지 알겠어.’

    육체 내부에 부드러우면서도 작은 마나의 알갱이들이 무수히 퍼져 장기의 충격을 완화 시켜주는 것 같았다.

    ‘대단해….’

    라온이 청홍환을 보며 두 눈을 빛냈다. 끼자마자 바로 오러 강화와 내상 방어 효과가 느껴지는 걸 보면 괜히 전설급에 올라간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아니이이이!

    라스가 팔찌 위로 올라오며 콧잔등을 구겼다.

    -세상에 뭐 이렇게 호구가 많은 것이냐! 왜 다들 너한테 못 퍼줘서 안달이냐고!

    녀석은 임무 하나에 뭘 그리 많이 챙겨 가냐고 악을 질렀다. 많은 능력치를 받아놓고 또 보상을 챙기는 것에 배알이 꼬인 것 같았다.

    -멍청한 호구 놈들!

    라온은 머리 위로 차가운 김을 뿜어내는 라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중 제일은 너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벨 수는 없으니, 그 호구 중 라스 본인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이거 굉장하네요.”

    라온이 청홍환을 들어 올리며 들뜬 미소를 지었다.

    “어?”

    하지만 사람들은 청홍환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허억!”

    “저, 정말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

    “잘생김이 배가 됐어! 잘생김이 얼굴에 가득 찼다고!”

    미셀과 페드릭이 헛바람을 흘리고, 엔시아는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그, 그 반지 효과가 있긴 하네. 얼굴에서 기백이 느껴질 정도야.”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셰릴조차 놀라서 살짝 말을 더듬었다.

    “후우….”

    라온이 청홍환을 손가락에서 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반지, 싸울 때만 껴야 할 거 같다.

    *     *      *

    사흘 뒤 새벽.

    라온과 지그하르트 검사들은 여정의 피로를 녹이고 다시 지그하르트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검사들의 손목과 손가락에는 못 보던 액세서리가 있었는데, 전부 엔시아가 선물해준 아티팩트였다.

    “출발 준비를 해라. 놓고 가는 물건이 없도록 철저하게 확인해.”

    셰릴은 항상 그렇듯 가장 먼저 나와 검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예!”

    라온과 검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장비와 짐을 점검했다.

    “라온 님을 한동안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밤샌 듯 눈 밑이 시꺼메진 엔시아는 입을 틀어막은 채 인상을 찡그렸다.

    “거짓말 안 하고 다시 아프고 싶을 정도예요.”

    진심인지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젠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놈의 잘생김, 그놈의 존잘. 지겹다. 지겨워….”

    “그래도 저 자존감 도둑을 만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참아.”

    도리안과 크레인은 엔시아와 멀리 떨어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소리세요! 지그하르트와의 독점 거래에 갈 사람은 저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보게 될 테니, 계속 잘 부탁드려요!”

    엔시아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저 자존감 귀신이 찾아온대. 그것도 지그하르트까지….”

    “응.”

    “도리안.”

    “응.”

    “죽자.”

    “응!”

    크레인과 도리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엔시아 님.”

    버렌은 목에 찬 청록색 목걸이를 매만지며 엔시아에게 다가갔다.

    “제가 정말 이런 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맞아. 우린 라온에 비해 한 일이 너무 없다고.”

    마르타도 마음에 걸리는지 손목에 착용한 갈색 팔찌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이죠. 암살자들의 공격도 막아주셨고, 레트란도 구해주셨잖아요. 부담 가지지 마세요.”

    엔시아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앞으로 요난과 지그하르트는 함께 걸어갈 거잖아요. 그 계약의 증인이 된 선물이자, 뇌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녀는 검사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농담을 건네며 손을 저었다.

    “음,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버렌은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마르타도 고맙다는 듯 머리를 꾸벅였다.

    ‘성격도 좋으시군.’

    라온은 검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엔시아를 보며 옅게 웃었다. 능력은 물론이고, 배려심도 뛰어나다. 왜 이 가문의 모두가 그녀를 아끼는지 알 것 같았다.

    “라온 님! 여기서 살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 얼굴은 거의 중독이라구요! 마약이야!”

    저런 점만 빼면 참 좋을 텐데….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았다.

    “라온 님.”

    미셀이 다가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미셀을 따라갔다.

    “전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지금에서야 말하네요.”

    그녀는 나무 두 개가 서로 엉킨 정원 입구에서 멈춰 섰다.

    “혹시 혼약 상대가 있으신가요?”

    “예에?”

    라온이 눈을 부릅떴다. 일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미셀의 입에서 나온 건 상상도 못 한 혼약에 관한 내용이었다.

    “표정을 보니 없으신 모양이군요.”

    “그, 그렇긴 합니다.”

    “그럼 제 딸을 배필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미셀이 루난의 손을 잡은 채 이상한 단어들을 가르치는 엔시아를 바라보았다.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성격이나, 외모, 능력 모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희 가문 역시 어디에도 안 꿇리구요.”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본인도 라온 님을 굉장히 좋아하니, 한 번 생각해주실 수 있을까요?”

    미셀의 어조는 평온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음….”

    라온이 짧게 숨을 뱉었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번 생의 첫 목표는 복수였고, 두 번째 목표는 실비아의 직계 복귀와 별관 사람들의 행복이다.

    그 뒤에도 벌인 일들이 많았고, 적은 더 많아졌다.

    특히 데루스를 시궁창에 처박는 일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자신의 미래에 관한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강해진다는 생각뿐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런 쪽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여유 역시 없습니다.”

    라온은 고개를 숙이며 완곡하게 거절을 표했다.

    “역시 그렇군요.”

    미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라온 님의 눈빛을 보고 믿음을 얻었다고 했죠?”

    “예.”

    “그 진중한 눈빛에 진심이 깃든 건 맞지만, 여유와 기대 또한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더 자신을 생각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눈을 마주하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음….”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만류귀종이라, 검술이 아니더라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다른 듯싶었다.

    ‘미래.’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모든 일이 끝난 뒤 자신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은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라온이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조금 전 제안이 그냥 한 말은 아니에요.”

    “예?”

    “그 미래에 엔시아를 짝으로 삼는 것도 한번 생각해주세요.”

    “전 아직 방계입니다. 만나는 건 직계 중….”

    “아직이라는 걸 보니, 올라갈 자신이 있으신 거잖아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미셀은 손을 빙글 흔들고서 셰릴에게 다가갔다.

    “끌끌!”

    넉넉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페드릭이 저택에서 나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한 느낌이겠구나.”

    “그렇습니다.”

    라온이 붉어진 볼을 긁적였다. 역시 한 가문의 꼭대기에 올라선 수장 중 대하기 쉬운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 시녀를 보고 오신 겁니까?”

    페드릭의 얼굴에 피로가 씌인 걸 보니,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엔시아에게 헬 웜을 넣었던 시녀의 상태를 살핀 것 같았다.

    “생각보다 세뇌가 강하더구나.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걸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 말대로다. 그 시녀 역시 전생의 자신처럼 어린 시절부터 머리에 공포와 세뇌를 박아 넣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이런 쪽에 빠삭한 녀석을 불렀으니, 좀 오래 걸려도 치료 방법을 알 수 있을게야.”

    “믿고 있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 페드릭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는가. 신뢰하며 기다리는 게 유일한 답이다.

    “정말 함께 가시지 않을 겁니까? 세뇌 치료는 좀 늦어도 되는데….”

    “세뇌도 세뇌지만, 네가 준 숙제도 있고, 테머스 놈이 치료하다가 손 놓은 환자들도 있어서 바쁠 것 같구나.”

    그는 할 일이 많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라온이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 인사는 내가 해야지 이 녀석아!”

    페드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거리며 라온의 어깨를 쳤다.

    “목숨을 구해줘 놓고, 네가 감사하다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지 않느냐! 생색이라도 내는 것이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나 참.”

    그 진심이 담긴 인사가 싫지는 않은지 페드릭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럼 몸 보중하시길.”

    “아, 잠깐!”

    라온이 다시 고개를 꾸벅이고 돌아가려 할 때 페드릭이 어깨를 잡았다.

    “만약에 그 녀석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말이다. 전에 보여준….”

    그는 글렌의 진심을 알아볼 방법 하나를 알려주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전혀 안 먹힐 것 같느니라.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라온은 돌아가는 페드릭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     *      *

    요난 가문에서 레트란 시 그리고 다시 요난 가문까지 이어진 긴 임무가 끝나고, 라온과 검사들은 지그하르트 정문 앞에 도착했다.

    높디높은 은빛 성벽과 그 주변을 둘러싼 만년설은 언제 보아도 검사의 웅지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천검대와 광풍단. 가주님의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셰릴이 문 앞으로 다가가 임무 복귀를 알렸다.

    “천검대주님을 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문을 지키는 검사들은 개문을 지시하며 앞에 있는 셰릴이 아니라, 뒤쪽에 선 라온을 살폈다.

    ‘여기도 소문이 돌았나.’

    라온은 문지기들과 성벽 위 검사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걸 보니, 마스터가 되었다는 소식은 이곳에도 퍼진 것 같았다.

    “앞으로 여기저기서 오는 관심 때문에 고생 좀 하겠어.”

    에컨이 옆으로 다가오며 픽 웃었다.

    “이제는 몸가짐을 더욱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위쪽에서 괜한 트집을 잡는 인간들이 늘어날 테니까.”

    임무 동안 친해졌기에 그의 조언에서는 따스함이 묻어나왔다.

    “명심하겠습니다.”

    라온이 열리는 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위치에는 책임과 시선이 따르는 법. 관심이든, 질투든 혹은 도전이든 전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문이 활짝 개방된다, 그 웅장함을 보며 글렌이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내부에서 붉은 머리의 남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라온! 얘들아! 잘 돌아왔다!”

    리메르였다. 그는 모두의 복귀를 환영하듯 양팔을 활짝 벌린 채 달려왔다.

    “음….”

    라온은 다가오는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 인간 왜 또 거렁뱅이가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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