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20화 (220/653)

제220화

“라온!”

페드릭이 눈을 감은 라온의 손목을 잡았다.

‘상처가 더 도졌어.’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에 무리해서 상태가 악화되었다. 이대로라면 기절로 끝나지 않고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

우우우웅.

간신히 모아둔 실티아의 기운을 운용했다. 순도 높은 마나의 흐름으로 라온의 육체를 죽여가는 투기의 잔재를 하나씩 녹였다.

“라온….”

셰릴이 라온의 상태를 살피고 입술을 깨물었다. 뼈와 근육에 마나 회로까지. 멀쩡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런 상처라니….’

수많은 전장에 섰지만, 이 정도로 몸이 망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 대부분은 이 상태가 되기 전에 죽었으니까.

“젠장!”

라온이 마스터에 오르고, 성자와 아이를 구해와서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큰 착각이었다.

‘모두가 무사한 게 아니었어.’

본인을 희생한 거야.

라온이라는 녀석은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저 둘을 구해온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몸이 이 지경이 될 수가 없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후우….”

페드릭이 실티아의 기운을 주입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음을 각오했을 때 라온이 나타났네. 익스퍼트임에도 적랑귀와 흑익귀를 상대로 밀리지 않았지.”

“적랑귀와 흑익귀….”

둘 다 마스터에 오른 놈들이다. 특히 흑익귀는 비행 능력이 있고, 단단하여 마스터가 아니라면 상대 자체가 불가능한 놈이었다.

“라온은 버티고, 버티며 기회를 엿보다가….”

페드릭은 숲 안에서 라온이 마스터에 올라 두 귀신을 죽이고, 악양귀와 일합승부를 벌여 비겼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이 아이가 끝까지 버텨준 덕분에 나와 율리우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런….”

셰릴은 라온을 바라보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실수였어. 너무 큰 실수….’

손끝이 덜덜 떨렸다. 분위기에 취해서, 저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너무 편한 결정을 해버렸다. 저 어린 녀석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뻐어억!

셰릴이 본인의 얼굴을 후려치고 무릎을 꿇었다.

“성자님. 이 녀석을 원래대로 돌려만 주십시오.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그녀는 입가에서 흐르는 피조차 닦지 않은 채 페드릭을 바라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라온 덕분에 살아난 목숨이니 뭐든지 할 생각일세.”

페드릭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눈을 감았다. 내상 때문에 속이 아려오는 걸 참으며 실티아의 기운을 끊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한데….’

자신 역시 큰 내상을 입었기 때문에 평소의 기운을 쓸 수가 없었고, 가지고 다니던 약품도 전부 도시에 놔둔 상태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레이신을 쓸 수도 없어.’

레이신이 효과 좋은 약임은 분명하지만, 약성과 독성이 너무 강해 정제가 필요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라온의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막는 것뿐이었다.

“아! 그거라면 이녀석이 가져온 게 있습니다!”

셰릴은 라온이 도리안에게 받아왔던 지혈제와 내상약을 꺼냈다.

“질이 나쁘지 않은 것들이로군. 도움이 되겠…어?”

페드릭이 눈을 부릅떴다.

‘뭐지?’

거의 죽기 직전이었던 라온의 몸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실티아 기운의 효과는 아니다. 마나 회로와 단전이 회복되는 정도가 아니라, 뼈와 살까지 아주 천천히 붙고 있었으니까.

‘호흡. 호흡인가?’

잠을 자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자연의 마나가 몸을 치유시키는 것 같았다.

“기사로다.”

페드릭이 입을 떡 벌렸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만으로 이 지경이 된 육체가 회복되다니,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설마….”

셰릴이 눈동자를 떨며 페드릭의 옆에 붙었다.

“아니, 좋은 일일세!”

페드릭이 고개를 저으며 라온을 가리켰다.

“이 녀석을 들게. 바로 레트란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움직이다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라온의 육체는 스스로 회복하고 있어. 돌아갈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셰릴이 고개를 끄덕이고 라온을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키 차이가 크게 났지만, 그녀는 보이는 모습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움직일 방법만 궁리했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본래의 상태로 돌려주마.’

그녀는 기사가 군주에게 맹세하듯 다짐하며 눈을 내리감았다.

*     *      *

“음….”

율리우스는 천검대주에게 업힌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라온이라는 젊은 검사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옛이야기 속 영웅으로 보였다.

소설과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 악의 축인 에덴의 괴물들을 무찌르고 자신과 성자님을 구해주리라 여겼다.

그는 실제로도 두 귀신들의 무시무시한 공세를 홀로 버티다가 결국 둘 모두를 쓰러뜨리는 기염을 보여주었다. 상상했던 영웅의 풍모 그대로였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양머리의 괴물도 이겨주고,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두 괴물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지칠 대로 지쳤고, 전신에 부상을 입었다.

더이상 싸우기 힘든 상태였음에도 양 머리 괴물에게 도전했고, 그와 일검을 맞부딪쳤다.

양 머리 괴물을 상대로 검을 겨루는 라온의 얼굴은 영웅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나 소설에서 본 영웅처럼 단칼에 적의 목을 베는 게 아니라, 죽을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저 견뎌내고, 참아냈다.

그는 상상했던 이야기 속 영웅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그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가슴을 울렸다. 그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입이 열리질 않았다.

대결이 끝나고 비틀거리는 다리로 서서 다시 악양귀에게 검을 겨누는 라온을 보았을 때 율리우스는 본인의 심장이 평생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뛴 걸 느꼈다.

그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았기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양 머리 괴물은 무승부를 인정하고 돌아갔고, 라온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죽어가는 듯한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저런 숨소리는 듣지 못했을 정도로 가는 호흡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숲을 나가서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마법사까지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저 상태로 검을 들고 투지를 비췄다는 것에 경악스러웠고, 경외심이 들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율리우스는 라온의 이름을 되뇌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풍파에 휩쓸리던 소년은 영웅이 아닌, 의지로 선 인간을 만나 스스로의 길을 정했다.

*     *      *

“으음….”

라온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처음 보는 낯선 바다색 천장이 보였다.

‘으, 더럽게 아프네.’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통이 먼저 찾아온다.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태의 효과와 성자님의 치료로도 다 회복하지 못 한 건가.’

페드릭의 치료와 나태의 수면 효과를 받았음에도 이런 통증이 남아 있다니, 아무래도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후우…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침대 옆에 머리를 대고 있는 루난이 보였다. 간호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고로롱 소리를 내고 있었고, 눈가에는 물기가 고여 있었다.

-아이스크림 소녀만이 아니다. 전부 찾아와서 네놈을 살리라고 아주 난동을 부렸느니라. 더럽게 시끄러웠지.

차가운 음성과 함께 라스가 팔찌 위로 슬렁슬렁 올라왔다.

‘그래?’

라온이 잠이 든 루난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걱정해줬다고 하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멍청한 놈. 무리해도 정도가 있지. 정말 뒤지기 직전까지 가다니!

라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네놈 정도로 무식한 놈은 마계에도 없느니라!

‘그러냐.’

라온은 부들부들 떠는 라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마스터에 오를 거라는 확신이 있긴 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이번에는 너무 무식하게 나갔다.

다만 과거로 돌아가도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 죽을 길이라고 해도 페드릭을 구할 것이다.

-거기다 네놈은 기절하는 게 패턴이냐?

‘뭐?’

-어디 좀 가기만 하면 꽥하고 기절해대는 허약 체질이니 본왕이 고생이지 않느냐!

‘아니, 네가 뭘 했다고….’

-약한 주제에 일을 만들기만 하고! 주제를 알아라!

라스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맞는 말이긴 하네.’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도 못한 주제에 나서고 벌인 일이 많기는 했다.

본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지금의 삶을 살며 변한 것 같았다. 나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놈 때문에 본왕이 먹지….

“음?”

라스가 또 식탐에 대해 주절거리려고 할 때 눈앞에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영혼의 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중단전이 개방됩니다. 오러가 더욱 단단하고 밀도 있게 응집되고, 오러 소모량이 줄어듭니다.]

[대륙 최초의 업적 <최연소 마스터>를 이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눈을 감기 전에 보았던 메시지들이 더 자세하게 떠올랐다.

-어윽!

라스가 메시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 보았음에도 다시 분노가 치솟는 것 같았다.

“마스터….”

라온이 힘 빠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전생에도 얻지 못한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에 심장이 떨렸다.

‘드디어 올랐구나.’

당시에는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안정감이 든 상태에서 마스터에 올랐다는 메시지를 보니,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들끓었다.

‘역시 이게 중단전이었군.’

마스터가 되면 열린다는 중단전은 명치 부근에 있었다. 중단전을 막던 바위 같은 것이 뚫리고, 강기를 만들어낼 때의 감각은 전율 그 자체였다.

‘효과가 사기야.’

이러니까 익스퍼트가 마스터를 못 이기지.

중단전의 효과는 단순히 강기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오러 소모를 줄여주고, 단단하게 응집시켜 긴 전투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보조해준다.

지금까지 익스퍼트가 마스터를 꺾지 못한 이유가 바로 중단전의 차이였다.

‘능력치는 덤이고.’

대륙 최초라는 타이틀 덕분에 10포인트의 능력치가 추가되었다. 지금 이 메시지에서만 모든 능력치가 20이 올랐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보상이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지만.’

라온은 미소를 짓고서 아래를 보았다.

[만화공이 5성에 올랐습니다.]

[화속성 저항력이 5성에 올랐습니다.]

[글래시아가 5성에 올랐습니다.]

[수속성 저항력이 6성에 올랐습니다.]

만화공과 글래시아 모두가 5성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깨어나자마자 단전의 오러부터 확인했기에 이건 보지 않고서도 알고 있었다.

아직 전부 차오르지 않았음에도 마스터가 되기 전보다 더 많은 오러가 단전에 차오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적랑귀와 흑익귀를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항력도 올랐고.’

지금의 저항력이라면 어중간한 화속성 마법사와 수속 마법사는 얻어맞으면서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메시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혹한의 저주> 두 가락이 녹아내립니다.]

[상태에서 <혹한의 저주>가 사라집니다.]

[칭호 <혹한의 운명을 이겨낸 자>가 생성됩니다.]

[영혼의 격이 상승합니다.]

이번에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혹한의 저주에 관한 메시지였다.

‘기분 탓이 아니었군.’

마스터에 올랐을 때 손목과 발목을 잡고 있던 어떤 끈이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혹한의 저주가 사라져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반동이었던 것 같다.

‘억죄는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어.’

움직이거나, 오러를 운용할 때 느꼈던 거북함도 사라졌다. 몸이 회복된다면 이 차이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한의 운명을 이겨낸 자.>

하늘이 내려준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모든 능력치 15 상승. 냉기 저항력 대폭 증가.

모든 능력치 15에 이어, 냉기 저항력이 그냥 증가도 아니고, 대폭 증가다.

수속성 저항력 6성에 냉기 저항력까지 있다면 6서클 수준의 냉기 마법으로는 상처조차 입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터졌네.”

라온은 지나간 메시지들을 모두 읽고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지 하나하나가 대박이었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당장 시험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빨리 몸을 회복시켜야….’

-미쳤다! 너도, 시스템도 다 미쳤어!

라스가 메시지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고작 마스터가 되었다고 이런 보상이라니, 어이가 없느니라!

‘고작이 아니라, 18살에 마스터가 된 거잖아.’

-그래서 고작이니라! 본왕이 네 몸을 가졌다면 10살에 마스터가 되었을 것이니라!

‘내가 널 만난 나이가 12살인데, 10살은 불가능하지.’

-시, 시끄러워!

라스가 빽 소리를 치며 분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 지랄 맞은 보상도 마음에 안 들지만, 네놈이 기절해 있어서 일주일 동안 물 같은 죽만 먹었느니라! 지겨워 죽을 뻔했다!

보상을 받은 것보다 일주일 동안 식사를 못 한 게 더 열 받은 것 같았다.

고오오오오!

라스에게서 막대한 기운이 뿜어졌다. 마스터에 올랐음에도 속이 아려올 정도의 감정과 냉기였다.

“윽….”

라온이 가슴을 잡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분노를 받았었지.’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라스에게 분노 20을 받아들였다. 단숨에 늘어난 분노 때문인지 라스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강대한 압박이 밀려왔다.

-네놈은 실수를 했느니라. 본왕의 분노는 그리 쉽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니라!

그 말대로 전신으로 스며들어오는 냉기와 혼 자체를 짓누르는 분노는 이전과 격이 다를 정도로 강해졌다.

‘그래도 괜찮아.’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오른 건 능력치만이 아니다. 영혼의 격이 상승하고, 저항력이 올랐으며, 혹한의 냉기까지 사라졌다.

분노 20은 분명 큰 불이익이지만, 자신의 성장은 그 이상이다. 충분히 견딜 수 있다.

특히 혹한의 냉기가 사라지며 마나 회로는 갓 태어난 아이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해진 상태다.

치이이이잉!

글래시아가 찰나의 순간에 움직여 라스의 냉기를 막아내고, 불의 고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회전하며 영혼의 격을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

내부에서 폭발할 듯 경합하는 힘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가라앉았던 통증이 다시 도지며 극한의 고통이 찾아왔지만, 라스에게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만 버티고, 본왕에게 몸을 내놓아라! 이제 본왕의 입으로 본왕이 먹을 것이니라!

역시 먹지 못해서 화가 터진 것 같았다.

‘그 정도로는 소용없어.’

라온은 차게 웃으며 계속 불의 고리와 글래시아를 운용했다.

‘수 싸움과 인내 싸움에서는 질 수 없지.’

이건 상대가 노리는 곳을 막고, 이쪽의 건재함을 보여줘야 하는 체스나 다름없었다.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채 라스의 공세를 모조리 차단했다.

-이번에는 지지 않느니라!

라스는 늘어난 분노의 감정을 믿는 듯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분노와 냉기를 밀어넣었다.

‘이 정도 자극은 필요하지.’

볼 안쪽을 씹으며 혼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고통을 참았다. 일주일 정도 가만히 누워만 있었으니, 이정도 운동은 필요했다. 지독한 통증을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웃어? 웃는다고?

미소를 짓는 모습에 화가 돋았는지 라스의 기운이 훨씬 더 커졌다. 모았던 기운을 단숨에 쏟아부었다.

‘얼마든지 와라.’

라온은 호흡을 고르며 계속 냉기를 운용하고 있을 때였다.

[극한으로 높아진 수면의 질과 시간이 <나태>의 효율을 강화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나태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하나 더 올라간다는 메시지였다.

-어억!

라스가 기겁하며 힘의 균형을 놓쳤을 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분노>의 방해를 견뎌내셨습니다.]

[체력이 1포인트 상승합니다.]

라스에게 승리를 했다는 메시지였다.

-제에에에엔장! 대체 왜!

라스가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분노를 20이나 넘겨줬는데 대체 왜 못 이기는 건데! 이 지독한 놈아! 네놈에겐 통각이라는 게 없는 것이냐!!

‘아프지.’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다만 이런 아픔은 익숙해.’

전생부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익숙했다. 힘들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지, 지독해. 정말이지 지독한 놈이니라!

라스는 질렸다는 듯 턱을 떨었다.

-네놈과 만난 건 본왕의 일생일대의 실수였느니라. 상종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는 말고.’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여기 특산 음식 사줄 테니까.’

특산 음식이라는 말에 라스의 입이 앙다물어졌다. 잠시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지, 진짜인가?

‘그래.’

-그렇다면야 뭐….

라스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 본왕이 보니까. 여긴 향신료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분명 그걸 이용한 요리가 있을 것이니라. 잘 찾아보거라.

‘알겠어.’

-빨리 회복해라. 빨리 나아야 밥을 먹으러 가지.

라스는 죽으라고 할 때가 언제였냐는 듯 몸까지 걱정해주었다. 참으로 쉽고, 가벼운 마왕이었다.

‘그럼…어?’

라온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야. 뭐가 또 있는 거야!

‘또 나올 게 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시지를 살폈다.

[<분노>와의 내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라스에게 분노를 받을 때 했던 내기에서 승리했다는 메시지였다.

-이건 잘못되었느니라!

라스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네놈은 그 셋을 이기지 못했지 않느냐! 이 내기는 본왕이 이겼다! 오히려 네놈이 분노를 더 가져가야 하는….

‘그게 아니지.’

상황을 파악한 라온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 그때 분명히 -세 놈 모두 여기서 사라져야 한다!- 라고 했잖아. 세 놈 다 숲에서 사라졌으니까. 내기는 내 승리지.’

-그, 그건 당연히 세 놈을 다 죽이라는 소리지 않느냐!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던가.’

라온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내기 보상은 뭔지나 확인해볼까.’

-이런 제에에에에기랄!

‘좋네.’

라스의 비명은 자장가로도 좋았지만, 알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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