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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18화 (218/653)

제218화

라온은 무너지는 투기의 벽을 보고서도 집중력을 풀지 않았다.

“끄으윽!”

“비, 빌어먹을!”

조각나는 붉은 벽 사이로 보이는 적랑귀와 흑익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우우웅!

검극에서 피어나는 인력으로 놈들을 끌어당기며 제천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콰아아아아!

강기조차 붕괴시킨 붉은색 빛무리가 적랑귀의 오른쪽 어깨와 흑익귀의 왼팔을 으깨버렸다.

쿠와아아앙!

두 귀신은 중천포에 어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아아악!”

“끄흐으…….”

적랑귀와 흑익귀는 팔과 어깨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지금 끝을 내야 해.’

라온이 땅을 박찼다. 쓰러진 적랑귀에게 짓쳐 들어 광아검을 펼쳤다.

“이놈!”

적랑귀가 다리만으로 몸을 일으키며 왼손을 내지른다. 갈퀴 같은 손톱에 붉은 투기가 맺혀 있었다.

‘이젠 흘릴 필요 없지.’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 광아검을 내리찍었다. 화염에 타오르는 맹수의 송곳니가 투기로 응집된 강기를 불태웠다.

“이, 이런 미친!”

침착함을 유지하던 적랑귀의 눈동자가 파도를 맞은 듯 흔들린다.

“아직 멀었어.”

라온은 진각을 밟으며 광아검 섬창을 그었다. 전장의 대장군이 내지른 창극처럼 예리한 화광이 적랑귀의 손아귀를 찢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왼손마저 잃어버릴 지경에 처한 적랑귀가 두 번째 비명을 터트렸다. 이대로 놈의 목을 베어버리려고 할 때 뒤에서 사나운 투기가 쏟아졌다.

‘흑익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쪽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게 분명했다.

‘또 당할 수는 없지.’

지금까지는 가진 힘이 모자라 도망쳤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었다.

치이이잉!

라온이 뒤를 돌며 만화공의 검술을 펼쳤다. 가시처럼 솟구친 화염의 강기가 흑익귀의 단검과 맞부딪쳤다.

쩌어어어엉!

강대한 충격이 사위로 퍼진다. 전이라면 자신 역시 밀려났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투기를 불태우며 나아가는 만화공의 강기가 함께하고 있었다.

“너, 너 뭐야! 어떻게 각성하자마자 이런 힘을….”

흑익귀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눈동자는 경악에 잠긴 상태 같았다.

“각성한 게 아니니까.”

라온이 차게 웃으며 양손으로 잡은 제천검을 밀어붙였다.

‘그저 길을 걸었을 뿐이지.’

다른 이들처럼 벽을 넘은 게 아니라, 이전에 부순 벽 너머를 걸었을 뿐이니, 지금의 경지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이익!”

흑익귀는 제천검의 거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지에 발이 박혀 들어갔다.

“으아아아!”

흑익귀가 악을 지르며 남은 기운을 폭발시켰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뭐, 뭐야….”

놈은 전력을 다하고도 제천검을 밀어내지 못하는 모습에 기겁하며 턱을 떨었다.

“흑익귀! 버텨라!”

적랑귀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다 찢어진 손아귀에 막대한 투기를 담아 돌진해왔다.

뻐어억!

라온은 흑익귀를 걷어차서 날려버리고, 뒤를 돌았다.

콰아아아아!

거인의 손처럼 짓쳐 드는 투기를 향해 염룡결을 내질렀다. 검신 전체에 퍼진 강기가 용의 머리 형상으로 전환되며 어마어마한 불꽃을 뿜어냈다.

캬아아아!

검사가 아닌, 검강으로 펼친 염룡결의 포효는 적랑귀의 마지막 투기를 가르고, 그의 가슴에 시꺼먼 구멍을 뚫어버렸다.

“아…아….”

적랑귀는 핏물조차 태워버린 가슴의 구멍을 내려다보다가 뒤로 넘어갔다.

“힉! 히이익!”

기회를 엿보던 흑익귀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날개를 퍼덕이며 악양귀가 등을 기대고 있는 나무쪽으로 뛰었다.

“사, 살려주십….”

“어딜!”

라온이 태화보를 밟았다. 흑익귀는 비상 능력이 있었을 뿐 땅에서는 적랑귀보다 느리다. 단숨에 따라붙어 놈의 심장을 향해 제천검을 찔러 넣었다.

“이, 이 괴물 자식!”

흑익귀가 살기를 느끼고 뒤를 돌았다. 역수로 잡은 단검을 비틀어 세웠다.

‘흘리기?’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단검으로 검격을 흘릴 생각인 것 같았다. 좋은 생각이다. 놈의 단검은 강기로도 부수기 어려운 명검이니까.

하지만.

‘내 앞에서는 안 되지.’

부족한 힘으로 강자들과 싸우며 흘리기를 익혔기에 상대의 흘리기를 차단하는 방법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치이이잉!

제천검에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움을 담았다. 흑익귀의 흘리기를 역으로 이용하여 안쪽으로 검을 찍어 눌렀다.

뿌드드득!

제천검의 칼날이 검은 갑주를 뚫고 흑익귀의 어깨에 박혔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놈을 차갑게 노려보며 턱을 들었다.

“흘리기는 내 특기거든.”

“자, 잠깐! 내 말을….”

“선택이 잘못됐어.”

라온은 흑익귀의 어깨를 찌른 제천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검은 갑주가 두부처럼 가라지며 놈의 심장까지 베어버렸다.

“끄으억, 네놈이……”

흑익귀는 마지막 말조차 뱉어내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후우.”

라온이 적랑귀와 흑익귀의 시체를 보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긴장이 조금 풀리며 가슴이 아려온다. 흥분 상태에서 잊고 있던 고통이 돌아온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허리를 폈다. 고통이 더 심해졌지만, 티를 내지 않고 제천검을 들어 올려 악양귀를 겨누었다.

“이제 네 차례다.”

*     *      *

“서, 성자님.”

율리우스가 페드릭의 손을 빼버릴 것처럼 격하게 흔들었다.

“이긴 거죠? 이긴 거 맞죠?”

아이는 흥분하여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방방 뛰었다.

“저 형은 누구예요? 저렇게 어린데 어떻게 저런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거죠?”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던 율리우스의 눈동자는 감동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했던 말이요?”

“네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던 사람.”

“아, 체질이 좋지 않아서 무인이 될 수 없다고 했던 분……”

“그 이야기 속 아이가 바로 저 녀석이다.”

페드릭이 마른침을 삼키며 라온의 등을 가리켰다.

‘그대로야.’

글렌을 닮은 금발과 적안 그리고 어떤 상황에도 담담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왜 익숙한지 이해가 갔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왜 이곳에 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내 판단을 아예 깨부숴버렸구나.”

그는 라온의 등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라온이 지금 17인가? 아니, 해를 넘겼으니 18살이겠군. 그래도 최연소를 5년은 앞당긴 건가.’

평범한 무인조차 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대륙 최연소로 마스터에 오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빠져나갈 정도였다.

‘조력자가 올 거라 생각했는데, 홀로 끝내버렸군.’

지그하르트의 단주나, 대주가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온은 깨달음을 통해 벽을 넘어서 적랑귀와 흑익귀를 베어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꿈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페드릭은 라온이 검을 겨눈 악양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부터가 진짜니까.’

악양귀는 적랑귀, 흑익귀보다 확연한 강함을 가지고 있다. 자신조차 어느 정도의 힘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오러나 체력을 쓰지도 않았지.’

놈은 적랑귀, 흑익귀, 광혈귀와 다르게 자그마한 힘도 소모하지 않았다. 마을에서도 놀다시피 불만 질렀고, 이곳에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전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라온이 각성하고도 한 걸음을 더 나아간 것 같지만, 소모된 오러가 돌아오고, 이미 입은 부상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악양귀를 꺾는 건 무리 같았다.

하지만 라온은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악양귀가 강하고, 본인의 상태가 최악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처음보다 더 당당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 건가……’

저건 가진 무력이 아니라, 인간의 혼이 가진 격의 힘이다. 라온의 격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성자님.”

율리우스의 흥분한 목소리에 아래를 보았다.

“이제 그럼 저희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녀석은 희망을 담은 눈으로 라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될 거다.”

페드릭이 속마음을 숨긴 채 부드럽게 웃으며 율리우스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게 되어야지.”

그는 본인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라온은 악양귀를 보며 입술을 질겅 씹었다.

‘이놈 생각보다 더 강한 거 같은데……’

마스터에 올랐기에 놈이 감추고 있는 무력이 눈에 들어온다. 적랑귀나 흑익귀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해 보였다.

-이제야 알았나?

라스가 키득거리며 팔찌 위로 솟아올랐다.

-네놈이 각성하게 된 건 예상 외지만, 저놈은 격이 달라. 본래 가진 능력도 능력이지만, 저 기이한 갑옷 덕분에 훨씬 더 강해져 있다.

녀석은 악양귀의 전신을 훑어보며 더 진한 미소를 피워냈다.

-네놈의 체력과 오러가 돌아온다고 해도 꺾는 건 무리야.

‘그래서 내기를 받아들인 건가? 3명을 모두 사라지게 하라고 한 거고?’

-당연하지. 본왕을 몇 번이나 지는 마왕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번만큼은 본왕의 승리이니라!

라스는 자신이 있는지 헹 하고 있지도 않은 코를 매만졌다.

-포기하고 지금 몸을 넘겨라. 네놈에게 희망 따위는….

‘끝까지 해봐야 아는 일이지.’

라온은 검을 내리지 않은 채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만화공을 운용했다.

‘상태가 나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아.’

차가운 줄 같은 것으로 몸을 조이던 감각이 사라졌고, 명치 부근의 중단전이 뚫렸다. 오러가 빠르게 회복되고, 내상도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적랑귀와 흑익귀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버티면서 분석하면 이길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흐음.”

악양귀가 가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팔짱을 풀었다.

‘움직이는 건가.’

라온이 긴장하며 제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줄 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짝!

악양귀다. 놈은 여전히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탁한 소리가 나는 박수를 쳤다.

“대단하네, 아주 재밌는 걸 봤어.”

악양귀는 적랑귀와 흑익귀의 시체를 보며 남 일처럼 빙긋 웃었다.

“넌 대체 뭐야.”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뭘 하고 싶은 거지?”

“아까 말해줬잖아.”

악양귀가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 길목을 막는 게 내 임무라고. 그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나무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여전히 가벼운 말투. 아이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소리인가?”

“뭐, 그렇지.”

악양귀는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전생과 현생을 살며 사람들의 심리를 대부분은 파악했지만, 이놈은 아예 모르겠다. 안개가 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금 신기하게도 놈의 기질이 크게 낯설진 않았다. 저런 놈을 어디서 봤나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악양귀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너희 지그하르트도 하나가 아니잖아.”

“뭐?”

“지그하르트 안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지. 누군가는 가문을 더 키우고 싶을 테고, 누군가는 현상 유지를 원할 테고, 누군가는 망하기를 바랄지도 모르지.”

“파벌이라는 뜻인가?”

라온이 천천히 펴지는 악양귀의 손가락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놈의 말대로라면 에덴 내부에서도 파벌이 있는 것 같았다.

“정답. 역시 영민해.”

악양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산양의 뿔이 살아 있는 듯이 흔들거렸다.

“저 둘 그리고 저 밖에 있는 광녀의 뜻과 내 뜻은 같지 않거든.”

그는 숨이 끊어진 적랑귀와 흑익귀 그리고 숲 밖에 있는 멀린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럼 정말 이대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지친 녀석을 상대하는 것도 별로니까. 라고 하고 싶지만…….”

악양귀가 처음으로 나무에서 등을 뗐다. 턱을 치켜들며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냥 보내면 꽤 욕을 먹을지도 모르거든. 그러니까.”

놈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먹물을 바른 듯 시꺼먼 대검이 튀어나왔다.

찌이이이!

악양귀는 대검의 검병을 말아쥐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일합으로 승부를 보자.”

“일합?”

“그래. 일격의 승부. 네가 살아남는다면 보내주지. 네 뒤에 있는 두 사람도 함께.”

놈이 뒤에 있는 페드릭과 아이를 가리켰다.

“준비해라.”

악양귀가 대검을 들어 이쪽을 겨눈 순간 사악한 기운이 대지를 휘감고 올라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쿠구구구구!

감각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운에 마른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이이이!

라스가 팔찌에서 튀어 올라가 이를 바득 갈았다.

-저 멍청한 놈이 뭐라는 거야! 당장 그 칼을 휘둘러서 요놈을 공격하라고!

녀석은 예상과 달라진 상황에 기겁하며 전신을 떨었다.

‘아직 내기 안 끝났으니, 가만히 좀 있어.’

떼쓰는 아이처럼 버둥거리는 라스를 밀어버리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일합.’

라온이 눈을 내리감았다. 지금의 몸 상태와 남은 오러를 생각해보았다. 일합이라면. 딱 일합이라면 저 어마어마한 힘 앞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온!”

뒤에서 페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과 같은 목소리에 예전과는 다른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걱정 마세요. 생각이 있습니다.”

라온은 페드릭과 아이를 보며 옅게 웃었다. 마음 놓으라고 손을 저어주고서 악양귀 앞에 섰다.

‘참 지랄 맞네.’

앞에 서니 놈의 무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저 흉악해 보이는 대검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패악적인 기세가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이놈은 광혈귀와 달리 저 갑주를 두르지 않았을 때도 자신보다 위에 있는 마스터가 분명하다. 저 상태에서 고위 마법까지 사용하다니,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준비해라.”

악양귀가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일합에 진심을 담는다는 말이 정말인지 상단으로 선 대검에서 상상을 벗어난 거력이 느껴졌다.

“후우……”

라온이 호흡을 고르며 만화공을 끌어 올렸다. 하단을 넘어, 중단을 거쳐 단단하게 여문 기운이 응집되며 검신에 열화의 강기를 피워냈다.

‘조금 전의 깨달음을 담아야 해.’

만화공은 주인이 성장할수록 더 강해지는 무학. 그 깨달음을 이곳에 담아내야 했다.

“이게 떨어지면 시작하기로 하지.”

“좋다.”

고개를 끄덕이자, 악양귀가 왼손에 들고 있던 나뭇잎을 허공에 던졌다.

밤바람을 타고 떠오른 나뭇잎이 천천히 가라앉았을 때 라온의 두 눈에 시뻘건 기광이 비쳤다.

마스터에 오르며 얻은 만화공의 깨달음을 제천검의 칼날에 담았다.

만화공 백화.

은빛 궤적에 깃든 열 송이의 불꽃이 그림자처럼 번져가며 백 개의 꽃을 피워냈다.

검날에 이지러진 적색의 광휘가 하늘을 무너뜨리며 쏟아지는 흑색 대검을 향해 쏘아졌다.

쩌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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