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라온은 도리안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신나게 두들겨 맞았군.”
“자, 잘 아시네요.”
도리안이 민망한 듯 웃었다.
“이렇게 대놓고 팼는데, 모를 수가 있나.”
멍이 든 상태를 보니, 예상대로 무기가 아니라 주먹에 맞고 발에 밟힌 게 확실했다.
-보, 본왕의 부하라는 놈이 나가서 맞고 오다니! 이런 한심한!
라스는 동생이 맞은 걸 본 형처럼 이를 갈았다.
“괘,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리안은 겁은 많지만 나름 맷집이 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걸 보면 주먹에 오러까지 실은 것 같았다.
“도, 도리안 오빠!”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장난이 심했군요.”
유아가 입을 틀어막고, 로엔은 눈썹을 가늘게 내렸다.
“도리안 님은 제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엔이 오러를 운용하여 도리안의 몸에 뭉친 오러의 잔재를 흩뜨리자, 일그러졌던 녀석의 표정이 차츰 풀려갔다.
‘그러고 보니….’
라온이 뒤를 돌았다. 로엔, 유아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착각한 것 같았다.
“어욱….”
도리안은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통증이 심한지 신음을 흘렸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내부에 깃든 오러를 제거해야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로엔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막대한 오러를 운용하여 도리안의 내부를 짓누르는 탁기를 지워가기 시작했다.
“누구야.”
라온이 도리안의 안색이 회복되는 걸 확인한 후 버렌을 보았다.
“가론 지그하르트.”
“가론 지그하르트?”
“진무전 소속 금첨단의 단주다.”
“진무전 금첨단….”
주디엘의 책자에서 보았던 이름이다. 진무전주 발데르의 둘째 아들이자, 레이든의 형으로 금첨단을 맡고 있는 30살의 젊은 마스터라고 적혀 있었다.
“나 때문인가?”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혀를 찼다. 진무전 소속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놈들이 왜 이딴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전에 레이든을 패고, 진무전에 활동 중지를 먹였던 걸 복수하러 온 게 분명했다.
“물론 네 영향이 가장 크긴 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버렌이 짜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은 아니라고?”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자신만이 아니라는 말이 애매하게 들렸다.
“너와 레이든의 검투 이후 진무전이 1년간 활동 중지가 되면서 만들지 얼마 지나지 않은 금첨단의 활동도 함께 멈췄다고 하더군. 임무에 대한 보상을 받지도, 인지도를 쌓지도 못한 채로.”
버렌이 멀리 보이는 진무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반면 광풍단은 첫 임무에서 백혈교 지부를 통째로 지우고, 인질들을 구해와서 가문 전체에. 아니, 대륙 중앙에 퍼질 정도의 인지도를 쌓았으니, 배알이 꼴린 것 같다.”
“그럼 나만이 아니라….”
“그래. 광풍단 전체를 노리고 있다.”
“이제 알겠군.”
라온이 차게 웃었다. 금첨단이 왜 도리안을 공격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놈들은 본인들과 출발선이 달라진 광풍단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 원인이 되어버린 자신에게 가장 크게 분노하고 있을 테고.
“멍청한 놈들이네. 레이든과 똑같은 방식을 쓰다니.”
“아니, 레이든과는 달라. 놈들은….”
버렌은 라온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더럽게 나오는군.”
라온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죄를 물을 방법이 없었다. 놈들이 식당에 죽치고 있는다고 뭐라 할 수도 없고, 도리안을 때린 건 소중한 옷에 흔적이 묻어서 본인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집법부에서 나와도 큰 징계가 아니라, 며칠 근신을 줄 게 뻔하다. 그 정도라면 신고를 하는 게 의미 없었다.
“원하는 건 대결이라고?”
“그래. 광풍단과 금첨단 검사들의 대결을 원했다.”
“우리의 명성을 가져가겠다는 뜻이겠군.”
놈들은 백혈교를 부수고, 사도와 대주교를 쓰러뜨린 광풍단의 명성을 그대로 먹어 치우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인 게 분명했다. 시비를 거는 방식이 레이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잡했다.
“어떻게 할 거냐?”
“해야지.”
“그렇게 바로 결정해?”
“좋은 기회니까.”
습득을 마친 태화보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금첨단주 가론은 마스터 초입이니, 시험해보기 딱 좋은 상태였다.
‘방심하지도 않을 테고.’
7사도는 자신을 무시한 채로 싸우다가 그 꼴이 되었다. 방심하지 않은 마스터를 상대로 제대로 이겨보고 싶었다.
“금첨단은 강해. 단체 자체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소속 무인들은 우리보다 최소 한 단계는 위에 있다.”
버렌이 힘들다는 듯 콧등을 좁혔다.
“버렌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금첨단은 진무전 소속이다 보니 신입 무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광풍단으로 이기기 힘들 겁니다.”
도리안의 치료를 끝낸 로엔이 일어서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지금의’ 광풍단이 이기기는 힘들겠죠.”
라온이 옅게 웃었다. 주디엘이 보여주었던 보고서에도 금첨단을 광풍단보다 한 단계 위로 치고 있었다.
“다만 이건 광풍단에게 기회기도 하죠.”
“조금 전에도 말씀하셨는데 기회라는 게….”
“본래 외부에 적이 있어야 빨리 성장하는 법이니까요.”
“아….”
그 뜻을 알아들은 로엔이 눈동자를 크게 떴다.
“광풍단은 이 기회를 발판 삼아 한 단계 위로 올라갈 겁니다.”
글렌에게 무학서도 받았으니 모두의 무력을 한 단계 성장시키기에 딱 좋은 때였다.
“그리고….”
라온이 도리안의 전신에 퍼진 멍을 보며 서늘한 기운을 일으켰다.
‘내 주머니를 친 대가도 갚아줘야지.’
-그래! 본왕의 부하를 팬 놈들을 모조리 터트려 버려라!
정말 오랜만에 라온과 라스의 마음이 일치되는 순간이었다.
* * *
진무전 금첨단 본부.
가론은 수십 자루의 명검이 벽에 박혀 있는 기이한 방의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광풍단 놈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니 시원하더군요.”
식당에서 도리안의 발을 걸고, 턱을 쳤던 금첨단 부단주 테클리가 히죽 웃었다.
“저희에게 대응 자체를 못 하는 걸 보니, 이번 임무를 해결한 건 운빨이 분명합니다.”
“뭐, 그렇겠지.”
가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린놈들이 첫 임무에서 백혈교의 대형 지부를 부수고, 사도를 쓰러뜨린 건 실력일 수가 없었다.
“버렌의 미숙한 반응을 보면 라온이라는 놈도 별거 없을 겁니다. 그런데….”
테크리가 쩝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광풍단에는 리메르가 있습니다. 그 괴물은 어떻게 해야 할지.”
“괴물?”
“한 때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리며 가주님 바로 옆에서 싸우던 괴물인데,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대책은 생각해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인이 된 도박쟁이를 상대로 무슨 대책을 세워.”
가론이 입매를 가늘게 끌어 올렸다.
“마나 회로와 단전이 망가져서 도박으로 시간만 축내는 버러지 따위 내 상대가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 10사도와 맞먹었다는 소문만 들어도….”
“리메르가 10사도와 싸웠다는 소문이 어떻게 퍼졌지? 광풍단이다. 그것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즉, 비등했는지, 간신히 버텼는지 혹은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아….”
“그렇다고 방심한다는 건 아니야.”
가론이 소파에서 등을 떼고 일어섰다. 그에게서 날카로우면서 진중한 기운이 피어나며 방에 박혀 있던 명검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우우우우웅!
그가 지휘하듯 손을 뻗어내자, 검명의 크기와 흐름이 달라지며 검들의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졌다.
“리메르가 마스터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해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으니, 싸움을 건 거다.”
가론이 지휘를 멈추자, 웅장한 검명의 펼쳐지던 단주실에 다시 침묵이 일었다.
“알아듣겠지?”
“아, 예!”
테크리가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 어때?”
“예?”
“방심했든, 운이 좋았든 라온이 7사도를 꺾은 건 맞을 거다. 놈을 이길 수 있겠나?”
가론이 턱을 살짝 올렸다.
“못 이길 거 같으면 빠져. 그놈도 내가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습니다.”
테크리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동자에 열화 같은 빛이 일렁였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영입한 보람이 있는 말이로군.”
가론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놈들이 대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시 가야지.”
그가 길게 찢어진 입을 손으로 매만지며 히죽였다.
“거부하지 못하도록 더 거칠게 말이야.”
* * *
라온은 도리안을 버렌에게 맡겨두고, 리메르가 입원해 있는 의무대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드러누워서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는 리메르가 보였다. 벼락에 맞아놓고, 콧노래까지 부르는 걸 보면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라온이 옅게 웃으며 실비아가 챙겨준 과일과 쿠키를 침대 옆에 놓았다.
“평소보다 혈색도 좋구요.”
“누워만 있어서 답답해 죽겠는데 좋겠냐? 병실에 있으면 자도 자도 졸리고 피곤하다고!”
“그건 원래도 그러셨지 않습니까.”
“시꺼. 인마!”
리메르는 말과는 달리 입가에 피어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일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자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이건 내 거냐?”
“어머니가 챙겨주셨습니다.”
“캬, 역시! 이 차가운 땅의 유일한 태양이라니까.”
그는 방긋 웃고서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먹었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할 거?”
“저도 조금 전에 알게 된 건데 진무전 금첨단이 식당에서….”
라온은 리메르에게 금첨단이 걸어온 시비에 대해서 모두 말해주었다.
“퉷, 고약한 방식을 쓰네.”
리메르가 다 먹은 사과 씨를 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리안은 괜찮아?”
“로엔 님이 치료해주셨습니다.”
“그 사람이면 믿을 수 있지.”
그는 그러면 괜찮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리메르는 역으로 물어왔다.
“저는 대결을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지?”
“지금 광풍단은 무력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너 때문이지.”
“민망하지만 맞습니다. 그래서 그 평가에 맞게 광풍단의 실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가주님께 무학서도 받았고, 외부의 적이 있으니, 성장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맞는 말이야.”
리메르가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할 테니, 마음대로 해봐.”
“왜죠?”
“응?”
“혹여나 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뭐?”
그는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들은 젊어. 젊다는 건 많은 것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일어설 기회가 있다는 거지. 그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희는 운 좋게도 가문이 봐주고 있잖냐.”
“음….”
“해봐. 싸워서 지든, 이기든 강해질 테고, 배울 게 있을 테니까.”
리메르는 드물게도 진지한 분위기에서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그렇지만 난 안 해.”
이런 면도 있구나하고 감탄할 때 그의 목소리가 단숨에 가벼워졌다.
“예?”
“그 대련. 단원부터 단주끼리 전부 싸우는 거잖아. 난 안 싸운다고.”
리메르가 쿠키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짬이 있지. 그런 애송이랑 붙을 수는 없잖냐. 그러니까 네가 해.”
“제가 말입니까?”
“그래. 가문 내에서 네가 7사도를 쓰러뜨렸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거 알고 있지?”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리메르가 자신의 이름을 띄우는 일이 잦았기 때문인지 그게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직계와 방계들도 꽤 많았다.
“이번에 가론을 쓰러뜨린다면 그들의 입을 모두 닥치게 만들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또한 위대한 업적이 되겠지.”
“위대한 업적?”
“마스터가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익스퍼트의 몸으로 마스터를 두 번이나 쓰러뜨리는 건 위대한 업적이 되어 네 혼을 성장시키고, 가문에 입지를 세울 좋은 기회가 될 거다.”
기대된다는 듯 리메르의 눈동자가 파랗게 번쩍였다.
‘그것만이 아니지.’
가론과 싸워 이긴다면 또 한 번 많은 능력치가 상승할 것이다.
명성과 대련의 보상 그리고 능력치까지 이기기만 한다면 얻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 가론은 제가 처리하죠.”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걸 보니, 처음부터 네가 잡으려고 한 모양이네.”
“이럴 땐 눈치가 빠르시네요.”
라온이 피식 웃었다. 태화보 습득까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이 먼저 가론을 노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럴 때? 나는 눈치 하나로 먹고 살아온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왜 맨날 도박장에 가서 털리십니까?”
“그, 그건 그러니까 음….”
민망한지 리메르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쨌든 단주님도 동의하셨으니, 대결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그래.”
리메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단주님은 어디서 벼락을 받으신 겁니까? 요새 날씨가 흐리질 않았는데.”
“말하자면 길다. 이번에는 진짜 억울해서 울 뻔했다고.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얻어맞아서 나 참….”
“얻어맞아요? 설마 도리안처럼 얻어터지신 겁니까?”
-귀때기 녀석은 허약하니 맞고 다닐 만하지. 사실 더 맞아야 하느니라!
라스는 리메르가 누구에게 맞았다는 걸 알고 키득거렸다.
“응? 마, 맞긴 누가 맞아! 날 때릴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방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는 고개를 맹렬하게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결정됐으면 가서 대결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나 해.”
“그럼 안 되죠.”
“응?”
“놈들이 다시 찾아오게 할 겁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대결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평범하게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내 주머니. 아니, 도리안이 얻어맞았으니, 그 대가는 치르게 해줘야죠.”
* * *
라온은 광풍단에게 금첨단과의 대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훈련과 무학의 습득을 도와주며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5일이 지나고, 의무대에서 꿀 같은 시간을 보내던 리메르가 복귀하기 전날 도리안이 기겁하며 달려왔다.
“부, 부단주님!”
도리안은 분노가 차오른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한 눈동자로 주먹을 떨었다.
“그, 그놈들이 또 왔어요! 식당에 자리를 잡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구요!”
“참을성이 없네.”
라온이 피식 웃었다. 금첨단 놈들은 예상대로 일주일도 참지 못하고 5일 만에 다시 나타났다. 대결을 받아들이든, 패배를 인정하든 하라는 시위였다.
“어, 어떻게 하죠? 아직 단주님도 안 돌아오셨는데….”
“일단 단주님이 오실 때까지 대기하는 게 좋겠어.”
도리안과 버렌은 대결을 받아들인다는 걸 몰랐기에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가보자.”
“이대로 간다고?”
“대책도 없잖아요!”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라온은 걱정할 거 없다는 듯 미소를 짓고서 식당으로 향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주문한 거 빨리 해 오라고!”
“식당이 주문을 안 받고 뭐 해!”
“죄, 죄송합니다. 그건 재료가….”
문 앞에서부터 검사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직원의 죽어가는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서 할 수 없는 요리를 요구하고 있는 거다. 식당 직원들을 건드려서 우리를 압박하는 거지.”
“어디서 배웠는지 양아치 짓이 제대로네.”
라온은 피식 웃고 문을 열었다.
식당 내부에 회색 제복을 입은 검사 열 명 정도가 여기저기 앉아 있었고, 직원들은 어쩔 줄은 모른 채 떨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도 망가지거나 뒤집혀서 난리가 나 있었다.
“아, 먹고 싶으니까. 빨리 가져와!”
“석상도 아니고 뭐 하고 있어!”
금첨단 검사들은 자신을 보고도 무시한 채 직원들만 노려보았다.
“저, 저놈입니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놓은 키가 큰 놈. 저 녀석이 때렸습니다.”
도리안은 아빠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금첨단의 부단주를 가리켰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배식대로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식판에 음식들을 가득 담은 채 뒤를 돌았다.
“어?”
“허!”
“저, 저 미친….”
금첨단은 이런 상황에 밥을 먹을 줄은 몰랐는지 입을 떡 벌렸다.
라온은 식판을 가지고, 그나마 멀쩡한 테이블로 가다가 발을 겹질린 척하며 부단주의 얼굴에 음식이 가득 찬 식판을 들이박았다.
퍼어어억!
음식물이 섞인 식판임에도 충격이 컸는지 부단주의 머리가 크게 휘청였다.
“아, 미안.”
라온은 부단주의 얼굴과 제복에서 스튜와 고기 기름이 뚝뚝 흘러내리는 걸 보고 손을 모았다.
“이 새끼가….”
부단주가 죽일 듯한 살기를 피워내며 일어섰을 때 오히려 그의 앞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칠 건가?”
라온의 붉은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번쩍였다.
“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