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라온은 흥분하여 허공에서 춤을 추는 라스를 데리고 동녘의 닭벼슬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커다란 외관과 유명하다는 말과 달리 내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향긋한 음식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 오세… 헉!”
점장으로 보이는 눈이 살짝 처진 중년인이 가장 앞에 서 있던 라온을 훑어보고서 입을 떡 벌렸다.
“서, 설마 소검귀 라온님이십니까?”
“소검귀?”
“하분 성의 웨이브를 막아낸 어린 검귀가 부단주님이라는 이야기도 퍼져서 요즘 라온님을 소검귀라는 이명으로 부르더라구요.”
도리안이 옆으로 쓱 다가와 속삭였다.
‘소검귀라….’
사도를 쓰러뜨린 검사치고는 좀 약해 보이는 이명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검귀라는 이명을 가진 사람은 그랜드마스터에 오른 강자였으니까.
“은인! 저는 트웰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이름을 트웰이라고 밝힌 점장이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은인?”
“은인 덕분에 제 딸이 무시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벨!”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주방에 소리를 지르자, 하얀 두건으로 머리를 감싼 여성이 나왔다. 처진 눈매가 점장과 비슷했다.
“어? 어어!”
벨이라 불린 여성이 라온의 얼굴을 보고서 부리나케 뛰어왔다.
“라, 라온 님! 깨어나셨군요.”
“절 아십니까?”
“라온 님이 사도와 싸우실 때 저도 그곳에 있었어요.”
“아!”
그곳에 있었다는 걸 보니, 험악해진 상황 때문에 도망치지 못한 인질이었던 거 같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라온 님이 배려해주셨으니까요. 저희 쪽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속 거리를 두셨잖아요.”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사도와 싸우면서 다른 검사나 인질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뒤가 비어 있는 곳으로 유도했는데, 그걸 눈치챈 것 같았다.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은인!”
두 부녀가 동시에 고개를 숙여왔다. 진심이 담겼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손을 떨었다.
‘음….’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밖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강하다고 추켜세우는 것보다 자신 때문에 살았다며 고맙다고 하는 이들의 감사가 더 깊게 다가왔다.
‘밥을 안 먹어도 되겠어.’
아직 밥을 먹지 않았지만, 벌써 배가 부른 기분이다.
-미친 소리 말고 주문이나 해라.
라스는 개소리 말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은인.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점장이 말만 하라는 듯 손을 펼쳤다.
“아닙니다. 따님분이 무사하셨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라온이 미소를 지어주자, 두 사람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아무 요구도 없이 괜찮다고 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럼 식사 준비나 해주십시오. 저희 모두 밥을 먹으러 왔으니까.”
“아, 물론입니다. 저 근데….”
“네?”
“지금은 저희 식당이 자랑하는 랜슬랭 닭볶음이 안 됩니다. 재료가 전부 떨어져서요.”
점장이 안타깝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재료가 떨어져요?”
“이번에 백혈교도 놈들이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바람에 저희와 몇몇 식당이 함께 사용하던 식량창고가 불에 타버렸습니다.”
“아, 그래서….”
식당이 비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리 재료가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끄으….
라스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또? 또오? 또오오오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몸집을 부풀리며 거대한 냉기와 분노를 피워올렸다.
-재료가 불에 타다니! 왜 본왕은 먹을 수 없는 것이냐! 딱 하나만 먹겠다는데, 대체 왜 매번 방해가 들어오는 것이야! 정말 세상이 본왕을 미워하기라고 하는 거냐!
‘어쩔 수 없잖아. 불에 탔다는데.’
-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이 그 허접한 놈을 잡을 시간에 여길 지키고 있었으면 되지 않았느냐!
‘억지 부리지 말고.’
-억지는 무슨 억지! 본왕이라면 그 두 놈을 단번에 얼음덩어리로 만들고 이곳으로 와서 불을 껐을 것이니라!
‘난 네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몸을 넘기란 말이다! 백혈교인지, 백똥교인지 본왕이 싸그리 잡아다가 뼈와 살을 분리해주겠노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으으으….
라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끝이다. 다시는 네놈의 말을 믿지 않고, 네 부탁도 들어주지 않겠노라.
‘아직 아이스크림이 남았잖아.’
-…….
아이스크림을 말해도 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났다는 티를 내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구슬 아이스크림 가게는 열려 있는 걸 확인했으니, 세트 두 개로….’
“아빠. 랜틱스가 있잖아.”
“아! 그렇지!”
아이스크림으로 라스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할 때 주인이 손뼉을 쳤다.
“랜슬랭 닭은 없지만, 더 좋은 게 있습니다.”
“더 좋은 거라고 하신다면….”
“옆에 있는 산이 무너지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랜틱스 닭이 여덟 마리나 잡혔습니다.”
“랜틱스 닭?”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랜슬랭도 그렇지만 랜틱스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식재료 계의 불사조라 불릴 정도로 희귀한 닭입니다. 맛은 끝내주는데, 구하기 어렵다 보니,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왕족이나 맛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 크기는 큰 녀석이 살결은 아주 쫙쫙 갈라지고, 기름기는 넘쳐서 별미 중에 별미죠.”
-오오, 그런 닭이 있다니….
어느새 뛰어올라 점장의 앞에 선 라스의 입에서 허연 냉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숙성은 끝났으니, 랜틱스로 닭볶음을 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점장은 조금이라도 구명의 은을 갚게 해달라며 손을 모았다.
“음, 귀한 재료 같은데 그렇게까지 해주시지 않아도….”
-커흠!
거절하려고 할 때 라스가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했다.
-준다는데 사양하는 건 미덕이 아니지. 겸손도 과하면 독이니라.
녀석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매을 찡그렸다.
“아닙니다! 제 딸만이 아니라, 저희 마을을 구해주셨는데, 랜틱스 닭 정도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당장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자리에 앉아 계세요.”
점장과 벨이 고개를 꾸벅이고, 동시에 주방으로 달려갔다.
-흐흡!
들뜬 웃음 소리에 옆으로 보았다. 라스가 입을 가린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너 웃고 있지.’
-무슨 소리냐. 본왕에게 말 시키지 마라.
라스는 여전히 화난 척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웃음기를 숨기지 못했다.
‘어디….’
라온이 입을 가리고 있는 라스의 손을 치웠다. 녀석의 입꼬리가 천장에 닿을 듯 솟구쳐 있었다.
‘삐져놓고 바로 풀리다니, 무게가 깃털 같은 마왕이구만.’
화를 내고 10초도 지나지 않고 풀리는 걸 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시, 시끄럽다. 자리에나 가서 앉아.
본인도 민망한지 라스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다.
‘후….’
라온이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서 중앙의 테이블에 앉았다. 다른 광풍단원들도 각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이거라도 맛보고 계세요.”
점장은 주방에서 돼지고기볶음과 술, 가벼운 안주들을 내왔다.
-크흠, 듣던 대로 볶음을 잘하는군. 강한 불에 야채와 고기가 타지 않게 제대로 볶았다.
라스는 돼지고기볶음을 맛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쩝쩝거리면서 주방을 바라보는 걸 보니, 닭볶음이 어지간히 기대되는 것 같았다.
돼지고기볶음과 술을 즐기며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성인 남성이 간신히 들법한 큼지막한 그릇에 거대한 닭고기가 담겨 나왔다.
“딱 오늘만 맛볼 수 있는 랜틱스 닭볶음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맛있게 드세요!”
점장과 벨은 테이블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서 음식을 놓아주었다.
“향이 좋네요.”
도리안이 닭볶음의 향을 맡고서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매콤달콤한 향이 솔솔 풍기는 게 저절로 혀에 침이 고였다.
-빠, 빨리! 빨리 먹어보아라! 빨리!
라스는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못 참겠다며 계속 어깨를 두드렸다.
‘가만히 좀 있어!’
난동을 부리는 녀석을 팔꿈치로 밀고서 닭볶음을 들었다. 잘게 썬 야채들을 고기 위에 올리고 한입에 넣었다.
마늘의 알싸함과 고추의 시원한 매운맛이 입안을 자극한 순간 소스의 달콤함이 혀를 휘감으며 매콤함을 중화시킨다. 그 뒤로 닭고기 껍질의 바삭함과 속살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와….”
라온이 헛바람을 흘렸다. 이런 닭 요리는 처음이다. 왕족들도 먹기 힘든 요리라더니 그 이유가 있었다. 금화 몇십 개를 줘도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우와아!”
“으응!”
“지, 진짜 맛있는데?”
“이런 건 처음 먹어봐!”
도리안과 루난을 비롯한 다른 검사들도 랜틱스 닭볶음을 먹고 눈을 부릅떴다.
모두 참지 못하고, 그릇에 얼굴을 박은 채 요리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넌 어때?’
옆에 있는 라스를 보았다. 녀석은 곧 승천할 것처럼 팔을 쫙 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감동한 듯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살아있길 잘했노라. 볶음 요리의 극치가 이 한 그릇에 담겨있느니라.
라스가 천천히 눈을 뜨며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왕이 아니라, 천사 같은 웃음이었다.
-애송이. 보았느냐.
‘뭘?’
-본왕은 세상의 억지와 싸워 이겼노라. 하늘이 본왕을 방해했지만, 벽을 뚫어내고 이 천상의 맛을 혀에 담아냈노라.
‘넌 한 거 없잖아.’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랜틱스 닭이 나온 건 산을 무너뜨린 리메르와 10사도 덕분이고, 그 닭을 받은 건 자신 덕분인데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게 다 본왕이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카리스마고, 이게 바로 분노의 군주이니라.
‘아니, 분노의 군주고 뭐고, 넌 아무것도 안 했다고!’
-세상아 덤벼라!
* * *
이틀 뒤.
완전히 회복한 라온과 광풍단은 사람들의 환호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포르반 시를 떠났다.
“흐음….”
시장 오위스트는 멀어지는 광풍단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비서인 베즌이 오위스트의 옆으로 다가왔다.
“광풍단 부단주와 대화하신 이후에 계속 고민하는 표정이십니다.”
“고민? 고민이야 되지.”
오위스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서, 설마 요구사항이 또 늘어난 겁니까?”
베즌이 기겁하며 오위스트의 소매를 잡았다.
“지금까지 들어줘야 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이 휘청입니다! 작년에 아껴둔 예산을 모조리 사용해야한다구요!”
라온과 광풍단이 했던 요구는 전부 큰돈이 들어가는 것들 뿐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는데, 그게 취소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 그건 아니야.”
오위스트가 손을 저었다.
“다만 더 어렵고 고민되는 내용이지.”
“대체 무슨 대화를 했기에….”
“간단해. 앞으로 포르반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해결 요청을 지그하르트에만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지.”
“예에?”
베즌이 입을 떡 벌렸다.
‘그건 밑으로 들어오라는 거잖아.’
포르반의 임무 요청을 오직 지그하르트에서만 하라는 건 임무 독점권을 말함이다. 시 예산의 일부를 사용해서 포상금을 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특히 포르반은 발카르 왕국과 지그하르트 사이에 위치해 있고, 오웬 왕국과도 그리 멀지 않다.
그런 교차로 같은 위치에서 한 세력을 등에 업는다는 건 간단하게 정할 일이 아니었다.
“전 반대입니다. 저희 시의 위치는 여러 세력 사이에 끼어 있기에 한 곳과 독점을 하게 되면 다른 왕국과 사이가 틀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즌이 반대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희 시는 계속 중립을 유지했으니까.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맞네. 그랬지. 하지만….”
오위스트의 시선이 시의 정문을 막 빠져나가는 라온의 등으로 향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 것 같은 남자를 만나서 말이야.”
“음….”
베즌이 오위스트의 눈빛을 따라 라온을 보았다.
“저도 그가 사도를 꺾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우연이 끼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거기다 발카르에도 4대속성에 전투 마법까지 익힌 차기 대마법사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한쪽에 붙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 말도 맞네.”
“그럼 고민할 것도 없이….”
“하지만.”
오위스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지금의 라온이라는 남자를 본 게 아니네.”
“예?”
“미래. 저 남자가 미래에 올라설 산의 크기를 보려고 했네.”
“그래서 보이셨습니까?”
“아니, 너무 까마득해서 보이질 않더군.”
포르반의 시장으로 살면서 대륙의 이름난 강자와 왕족들을 무수히 만나보았지만 라온 정도로 판단이 안 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디로 갈지, 어디까지 올라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그 정도입니까?”
“그래. 만약 내 돈을 투자하라고 했다면 전 재산을 저 친구에게 박아넣었을 거네.”
“허….”
베즌이 헛바람을 흘렸다. 오위스트는 친근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졌지만, 돈이나 투자 쪽에는 냉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 정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처음이었다.
“시장님의 뜻은 알겠지만 이대로 있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저희 시 정도면 어디서 꿀리지도 않고….”
“가까운 곳에 한참 더 좋은 곳이 있지 않은가. 카멜룬.”
“아….”
카멜룬의 교역량은 포르반의 몇 배가 넘고, 상주인구는 그 이상이다. 아예 수준이 다른 도시라도 보아도 좋았다.
“이대로라면 그곳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지.”
“…….”
베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지그하르트에 대한 정보를 계속 모아둬.”
“정보라고 하신다면….”
“어디에서 무슨 임무를 했는지, 누구를 꺾었는지 상세하고 확실하게 정리해놓도록.”
내리쬐는 햇살을 받은 오위스트의 눈동자에 열기가 담겼다.
“그 정보에 우리 도시가 더 높게 올라갈 사다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 * *
광풍단이 지그하르트에 복귀했다.
본래라면 단주인 리메르가 앞에서 단원을 이끌어야 했지만, 그는 좀비처럼 흐느적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온이 모두를 데리고 지그하르트 정문 앞에 섰다.
“이제야 좀 쉬겠네.”
“포르반도 좋았지만 역시 집이 최고지.”
“아, 난 목욕탕부터 갈래. 빨리 씻고 싶어.”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단원들은 한동안 휴식을 취할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피워내고 있었다.
“단주님.”
라온은 지그하르트 정문이 열리기 전에 리메르를 앞으로 질질 끌고 왔다.
“가문에 도착했습니다. 임무 종료 명령을 내려주시죠.”
“에, 그러니까….”
리메르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휘청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귀때기 표정 봐라.
맛 좋은 요리에 아이스크림까지 즐긴 라스는 리메르의 풀린 눈을 보며 낄낄 웃었다.
‘음….’
라온은 리메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금화 몇 개는 줘야겠는데.’
저대로 놔두었다간 선 채로 말라죽을 기세다. 도박으로 날리더라도 포상금을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이, 임무는 끝이다. 알아서 휴식을 취하고. 돈이 있으면 돈 좀 빌려….”
리메르가 휴식 지시와 구걸을 동시에 하려고 할 때 지그하르트의 거대한 정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철탑 같은 거구가 걸어 나왔다. 가문 외부를 담당하는 외총관 일리운이었다.
“미안하다만 휴식 전에 갈 곳이 있다.”
일리운은 매서운 눈매에 기꺼움을 담은 채 광풍단 전원을 훑어내렸다.
“가주님께서 너희 모두를 호출하셨다.”
그가 턱을 들어 올린 채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 너희들에게 선물이라도 주시려는 모양이구나.”
“선물? 돈? 금화?”
죽어 있던 리메르의 눈동자가 희번뜩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