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85화 (185/653)

제185화

콰아아앙!

산 중턱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길 정도의 폭발이 일어난 후 리메르와 10사도가 서로를 노려본 채로 뒤로 물러섰다.

“폐인이라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무력이군.”

10사도가 눈꽃처럼 새하얀 창을 땅에 박아넣으며 눈매를 좁혔다.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더 사납게 도드라졌다.

“원래 소문이라는 게 뜬구름 같은 거잖아.”

리메르가 빙긋 웃으며 검을 휘돌려 어깨에 걸쳤다.

“대륙 전체에 퍼질 정도라면 헛소문일 리가 없지. 무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한 건가.”

“글쎄?”

“그래도 상관없다.”

10사도의 무감정한 눈동자 위로 짙은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네가 부상을 극복하느라 멈춰 있는 동안 나는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그가 다시 창을 들어 올렸다. 창날을 그대로 타고 치솟은 백색의 강기가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그래. 다들 앞으로 나아갔겠지. 다만 나도 그냥 병실에 누워만 있던 건 아니라서.”

리메르가 검을 세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라도 검계현신을 열 수 있도록 호흡을 조절했다.

“그럼 처음부터 힘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

10사도가 창을 허공에 빙글 돌리고, 진각을 밟았다. 무너지는 땅과 반대로 막대한 기파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강기가 한층 진화한 듯 응축되면서 막대한 스파크를 튀겨냈다.

“이건 살짝 예상왼데….”

리메르가 창날 위로 타오르는 10사도의 강기를 보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첫 번째 임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어.”

“잘 버텨봐라. 일격에 죽지 않도록.”

10사도가 창을 겨누자 창날 위로 무시무시한 기류가 퍼져나간다. 공간을 장악하는 백혈교 특유의 기세였다.

“쯧. 이런 여유 없는 싸움은 별로 하기 싫은데.”

리메르가 혀를 찼다. 검신을 위로 세우고, 모은 손가락으로 땅을 겨누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검계현신을 발동시키기 위한 준비였다.

고오오오!

두 사람에게 퍼져나온 오러의 파동에 산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

콰아아아아!

이젠 가루가 되어버린 저택에서 강대한 오러가 터지고, 누군가의 생기가 한순간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

리메르와 10사도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부딪치려던 힘을 보법으로 전환 시켜 저택을 향해 빛살처럼 내달렸다.

*     *      *

찌지지직!

진혼검의 요기와 조화된 서리연의 칼날이 7사도의 혈기를 뚫어내고 그의 가슴에 깊은 검흔을 새겨놓았다.

“이까짓 거!”

7사도는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톱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건 실수였다. 서리연의 칼날은 두 번째가 더 날카로웠으니까.

콰아아아아!

폭포에서 떨어진 물길이 다시 한번 튀어 오르듯 서리의 칼날이 은빛 궤적을 따라 7사도의 우측 가슴을 뚫어버렸다.

쯧.

라온이 혀를 찼다. 심장을 노렸건만 뚫린 건 오른쪽 가슴. 땅따먹기로 마스터를 딴 건 아닌지 7사도는 그 찰나의 순간에 반응해서 심장이 꿰뚫리는 걸 피했다.

“커헉!”

7사도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심장이 아니라도 가슴이 통째로 찢긴 건 큰 충격인 듯 입에서 회색 핏물이 쏟아지고, 톱칼에 어려 있던 강기가 빛을 잃어갔다.

고오오오!

백혼의 오러에 깃든 재생의 공능이 그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지만, 상처가 워낙에 커서 버거워 보였다.

터엉!

라온이 바닥을 차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운용한 염룡결과 서리연으로 인해 자신의 몸 상태도 최악이었지만, 여기서 끝을 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화아아아!

제천검으로 만화공 화령을 운용했다. 적염의 꽃잎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7사도의 급소를 노렸다.

“크아아아악!”

7사도가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톱칼에 어려 있는 혈기를 폭발시켰다. 원을 그리며 퍼져나간 혈기와 화령의 불꽃이 맞부딪치며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물러나면 다 끝나.’

라온은 거친 폭발을 몸으로 견디며 내달려 역수로 쥔 진혼검을 내리찍었다. 붉은 칼날이 혈기를 뚫어내고 7사도의 어깨에 박혔다.

푸카아악!

놈의 어깨 위로 쇳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액체가 치솟았다.

“끄아아아악!”

7사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톱칼을 마구 휘저었다. 강기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에 허우적대도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절대 맞으면 안 돼.’

실수로 부딪치거나, 맞기라도 하면 지금의 공세를 이어갈 수 없게 된다. 7사도의 공격을 피하고, 이쪽의 칼만 박아넣어야 한다.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칼날을 파악한 뒤 제천검으로 회천, 진혼검으로 연성검을 펼쳤다.

쩌어엉!

초승달의 매끄러운 곡선을 닮은 불꽃의 륜이 7사도의 톱칼을 흘려냈다.

터어어엉!

톱칼이 땅을 친 순간 왼손 진혼검을 뻗어냈다. 연성검술의 도도한 흐름과 요기의 흉폭함이 어우러지며 붉은 칼날이 사나운 춤을 췄다.

촤아아악!

진혼검이 스쳐 지나간 7사도의 어깨와 가슴 팔목, 허벅지에서 피가 튀겼다.

“크아아아! 꺼지란 말이다!”

7사도가 톱칼을 내지른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막강한 기운이 담겼지만 검로는 단순했다. 놈도 여유가 없는 것이다.

“흐읍.”

라온은 숨을 꾹 참으며 몸을 움직였다. 톱칼에 허리를 베이면서도 제천검과 진혼검을 교차로 쓸어내렸다.

콰아아아앙!

두 검이 7사도에게 닿으려는 찰나 놈의 가슴에 응축되어 있던 혈기가 허연 불꽃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쿠구구구구!

결국 저택의 지대가 무너지고, 라온과 7사도는 마을 사람들이 잡혀 있던 지하 복도로 떨어져 내렸다.

“허억! 허억….”

라온이 거친 숨을 뱉으며 앞을 노려보았다. 거칠게 피어나는 연기 위로 7사도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는 산발에, 전신이 피로 범벅이 되었고, 눈동자는 탁하게 풀려 있었다. 톱칼이 아래로 향한 걸 보면 이제 쥐고 있을 힘도 없어 보였다. 끝이 보였다.

‘이대로…!’

-라온!

두 검을 고쳐잡고, 놈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라스의 경호성과 함께 뒤에서 암살자 시절에나 맡았던 죽음의 감각이 느껴졌다.

“크윽!”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팔은 내줘야 해.’

목숨을 구하는 대신 팔 하나는 넘겨줄 각오를 하며 전력으로 몸을 비틀었을 때 경쾌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쩌어어어엉!

바로 등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격돌하며 거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충격파에 휩쓸려 앞으로 날아가려고 할 때 누군가의 손이 옷을 잡아 멈춰 세워주었다.

“후우….”

라온이 뒤를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맨날 늦으시는 겁니까.”

“주인공은 늦게 와야 멋있잖냐.”

리메르가 손을 놓아주며 히죽 웃었다. 자신의 뒤를 노렸던 놈은 이미 뒤에 없었다. 리메르와 부딪치자마자 그 힘을 역이용하여 7사도의 옆에 내려와 있었다.

“10사도….”

라온이 7사도를 부축하는 10사도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주인공이 적도 못 죽이십니까?”

“저거 20년 동안 벽을 하나 더 넘었더라고. 좀 많이 세졌어. 거기다 저 어린놈이 네게 당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잡을 틈이 없었다.”

리메르가 7사도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네가 7사도를 거의 죽여놓은 걸 보니까. 할 말이 없네.”

그의 눈빛은 확연한 놀라움을 담고 있었다. 버티기를 바랐지 7사도를 쓰러뜨릴 줄은 상상 못 한 것 같았다.

“끄으으윽, 사, 사형….”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지 모르겠군.”

10사도는 고통에 전신을 바르르 떠는 7사도를 보며 콧등을 찡그렸다. 절대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도 마스터가 익스퍼트에게 깨지는 건 놀라운 모양이다.

“네가 한 건가.”

당황이 깃든 10사도의 시선이 라온을 향했다.

“그렇다면.”

라온은 무시무시한 기파를 뿜어내는 10사도 앞에서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최상급이라고 해도 익스퍼트가 마스터를 쓰러뜨리다니, 역사에 남을만한 일이로군.”

“지, 지지 않았어요! 내가 방심해서 실수를….”

“실수? 실수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다.”

“정말입니다! 다, 다시 싸운다면 무조건 주, 죽일 수 있습니다!”

“그 휘청거리는 다리나 세우고 말해라. 내가 아니었다면 넌 오늘 죽었다.”

이런 상황이 된 게 마음에 안 드는 듯 10사도의 목소리는 냉정하리만큼 차가웠다.

“오늘은 우리가 진 걸로 하지.”

10사도가 7사도를 어깨에 걸치고 일어섰다.

“아, 안 됩니다! 저놈! 저 새끼를 주, 죽이지 않고서는 못 간다고요!”

“입 다물어라.”

“크으으으윽!”

7사도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악을 질렀다.

“가, 가긴 어딜 가! 이 개새끼야!”

함께 떨어진 마르타가 피를 토하며 일어섰다.

“못 가. 너도, 그 실눈 새끼도 여기서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팔다리를 떨면서도 기어코 똑바로 섰다.

“저 말이 맞다. 누가 보내준다고 했지?”

라온이 10사도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쳤고, 오러는 바닥을 드러냈으며, 내상에 속이 울렁거리고 있음에도 검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네 뒤에 있는 남자의 생각은 다른 듯한데.”

그 말에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10사도의 말대로 싸울 의사가 없는지 리메르는 검극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뭐, 싸울 수는 있어. 저 둘도 죽일 수 있을 테고. 다만….”

리메르는 위층에 있는 광풍단과 미처 도망치지 못한 인질들을 가리키며 입맛을 다셨다.

“나와 너를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광풍단도 전멸이야. 여긴 우리가 지킬 게 많잖냐.”

그는 남 일을 말하듯이 차분했다.

“어떻게 할래?”

리메르가 라온과 마르타를 차례로 보며 물었다. 원한다면 싸우겠다는 뜻 같았다.

“끄윽….”

모두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자 마르타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말이 맞다.

조용히 있던 라스가 팔찌에서 튀어나왔다.

-앞의 저놈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마스터라는 단계를 넘어섰느니라. 귀때기가 예전처럼 결계를 열고 목숨을 건다면 잡을지도 모르겠지만, 네놈과 소고기 소녀, 눈깔이 모두 죽을 거다.

‘…….’

-네놈도 대충 알 텐데? 평소답지 않군.

‘하는 짓이 열받으니까.’

라스의 말대로다. 평소라면 이대로 물러났을 것이다. 10사도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면서 이렇게 오기를 부리는 건 저 망할 놈들의 이중성 때문이다.

“너희 같은 놈들도 사형제는 소중한 건가?”

“뭐?”

10사도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썹을 내렸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르진 않겠지? 네 부하들이 잘살고 있던 사람들을 납치해 와서 짐승처럼 가둬두었던 철장이다.”

라온이 지상이 무너지면서 쇠창살이 뜯겨나간 철창들을 가리켰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을을 부수고, 억지로 끌고 와 피를 빨고, 살점을 뜯어먹으면서 네 사형제는 소중하냐고 물었다.”

미친 듯이 진동하는 진혼검을 꽉 부여잡으며 살기를 피워냈다.

“네놈이 멸망시킨 마을의 이름도 모르고, 너희가 피로 물들인 부족들의 이름도 모르면서 네 가족은 소중하냐고 물었다!”

전생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보내주었을 것이다.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온 지그하르트로 살아가며 가족의 소중함을, 내가 유일하게 편하게 있을 장소의 따스함을 알았다. 그 삶을 알았기에 속에서 울렁거리는 열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

10사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짜증이라도 난 듯 눈동자가 더 매섭게 번들거렸다.

“그 쓰레기들은 우리의 양식이 되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보잘것없는 버러지의 삶을 구제해주는 것이니까!”

7사도가 라온을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럼 나한테 진 너도 쓰레기고, 버러지다. 더 높은 수준에 있으면서 패하다니, 내가 너였다면 여기서 혀 깨물고 죽었을 거야.”

“우, 운으로 이긴 놈이! 다시 싸우면 넌 내 일검도 받을 수 없다!”

“패자는 좀 닥쳐.”

라온은 7사도를 무시하고 10사도를 보며 마르타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여기서 선언하지. 10사도. 네가 기억조차 못 하는 마을의 생존자가 네놈을 죽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어?”

마르타가 뒤를 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했는지 어깨를 떨었다.

“하!”

10사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할 수 없다고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그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 같기도 했다.

“네, 네놈은 그 전에 나한테 죽는다! 몸이 낫기만 하면 찾아가 죽여버릴 테니까!”

7사도가 부들부들 떠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너로는 무리다.”

“뭐?”

“다음에 마주칠 땐 나도 마스터에 올라있을 거다. 익스퍼트일 때도 졌는데 같은 마스터면 넌 내 상대조차 되지 않아. 날 보자마자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건방진 새끼가….”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7사도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마스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벽은 쉽게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네가 넘었는데, 내가 못 넘을 리 없지.”

“이, 이 새끼! 사형! 저를 놔주십시오! 저놈을 죽이지 않고서는 못 갑니다!”

라온의 확답에 7사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너는 절대… 억!”

7사도가 또 지랄을 하려 할 때 10사도가 그의 목을 내리쳐 기절시켰다.

“입심도 대단하군. 네 이름이 뭐지?”

“라온 지그하르트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리고 이름 모를 마을의 생존자. 너희를 다시 만나기를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다.”

10사도는 기절한 7사도를 어깨에 들쳐 매고 뒤로 물러섰다.

“폼 잡지 마! 이 살인마 새끼야! 우리 엄마는! 크흑….”

그는 욕을 내뱉는 마르타를 힐끔 돌아보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마르타는 10사도가 사라지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한참 전에 기절을 했어야 했는데, 오직 분노로 버틴 것 같았다.

“정말 잘해줬다.”

리메르가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뒤에서 기세를 밀어주셔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리메르가 힘을 실어주었기에 10사도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정말 도움이 되는 남자였다.

“그거 말고, 7사도를 꺾은 거 말이다.”

“그건 당연히 해야죠.”

“당연히 해야 한다라. 마스터에게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은 너뿐일 거야.”

리메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이제 너도 쉬어야지.”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라온이 울대에 참고 있던 핏물을 뱉어냈다. 강기와 부딪칠 때마다 입었던 내상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차올랐다. 이제 정신력으로 견딜 수도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7사도와 대주교의 혈기를 흡수하느라 떨고 있는 진혼검의 진동과 여러 개의 상태창이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     *      *

리메르는 쓰러지는 라온을 붙잡아, 오러로 내상을 안정시켜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지금까지 봐온 라온의 무력이 알고 있으니, 7사도에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정도는 예측했다.

그래서 10사도의 힘을 가늠한 뒤에 적당히 무승부로 끝을 낼지, 폐인이 되더라도 놈을 죽여야 할지를 고민했는데, 라온은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7사도를 꺾고 상황을 끝내버렸다.

‘매번 놀라게 만든다니까.’

이런 결과는 예측 못 했기에 놀랍기 이전에 당황스러웠다.

‘마스터를 꺾은 익스퍼트라….’

일대일에서 익스퍼트가 마스터를 꺾은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미 정해진 세상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렐에게 했던 말이 정말 거짓이 아니게 됐군.’

헛웃음이 나왔다. 모렐에게 라온이 대륙의 역사를 새로 쓸 거라 했는데, 그게 정말 일어나버렸다.

‘거기다 그건 감탄이 나왔지.’

라온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10사도를 마르타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은 경악과 전율을 동시에 선사해주었다.

‘내 선택은 옳았어.’

다시 한번 새로운 시대를 열 왕으로 라온을 고른 게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내 남은 목숨은 너에게 건다.”

리메르는 정신을 잃은 라온과 마르타를 안아 들으며 빙긋 웃었다.

“사도를 꺾다니. 믿든 안 믿든 온 대륙이 난리가 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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