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84화 (184/653)

제184화

바닥의 핏물에서 막대한 기운을 지닌 인간이 솟구친 순간.

라온은 그가 백혈교주의 직계제자인 사도임을 알아차렸다. 백혈교도 중에서 후드를 쓰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백혈교주와 그 제자들밖에 없었으니까.

그가 손을 올리자마자 왼발을 뻗으며 태화보를 밟았다. 반응은 빨랐지만, 머릿속을 울리는 건 이미 늦었다는 감각뿐이다.

고오오오!

사도는 한참 전에 마스터에 오른 괴물답게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어마어마한 혈기를 뿜어냈으니까.

놈의 손에 모인 혈기가 포탄처럼 뻗어나가는 게 보였다. 어마어마한 기파. 광풍단원의 능력으로는 버틸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젠장!’

이를 갈며 발과 손을 뻗어보았지만, 시간 안에 닿을 수가 없었다.

‘1초만. 아니, 0.5초만….’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달려갈 때 마르타가 앞으로 나아가 검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1초도 되지 않아 검을 쥔 그녀의 손목이 부러질 듯 꺾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라온은 마르타의 옆에 붙으며 제천검을 뽑았다. 새하얀 검신 위로 타오르는 화염의 푹풍을 그대로 쏘아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1형 서리연.

진혼검의 칼날 위로 피어난 장대한 빛무리가 7사도의 혈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화아아아아아!

해일처럼 솟구친 불꽃의 벽이 사도의 혈기를 완벽하게 녹여버렸다.

가라앉는 화염과 혈기 뒤로 코트에 열 개의 구슬이 그려진 중년인이 보인다. 10사도.

공격이 막혔지만, 별 상관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허어억….”

마르타가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서 무릎을 꿇었다. 다만 10사도를 노려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너 이 새끼! 우리 엄마를 어떻게 했어! 알랭 마을에 있던 사람들 다 어떻게 했냐고!”

그녀는 분노로 차오른 눈빛으로 흐느끼는 듯한 음성을 터트렸다. 심장이 조여들 정도로 서글픈 목소리였다.

“알랭 마을? 그런 곳도 있었나?”

10사도의 무감정한 대답에 마르타의 눈동자에 다시 끔 열기가 타올랐다.

“이익!”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단에 데려간 인간은 십중팔구 죽는다. 네 어미도 누군가의 양식이 되었겠지. 영광스러운 일이다.”

“개시발 새끼가!”

마르타가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 당장에 검을 날리려는 그녀를 억지로 눌렀다.

“라온!”

“네 상대가 아니야.”

“지랄 마! 저 새끼는 내가 잡을 거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내 상대도 아니다.”

“뭐?”

“그 말이 맞지. 그건 내 거야.”

바닥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아앙!

로비를 터트린 푸른 바람과 함께 리메르가 튀어나왔다.

“지그하르트의 광검.”

10사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리메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랜만이네. 10사도.”

“네놈이 오기 전에 죽이려고 했는데.”

“그거 아쉽네. 난 이미 네 부하를 죽이고 왔거든.”

리메르가 빙긋 웃으며 칼날에 흘러내리는 탁한 핏물을 가리켰다.

“이곳이 지부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내가 그걸 알려줄 거라고 생각해?”

“건방지군. 망가진 몸으로 예전처럼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잖냐.”

“그럼 말은 필요 없군.”

“그래. 말이 필요 없지.”

리메르가 검에 묻은 피를 털었고, 10사도가 허공에서 백색 창을 만들어 냈다.

탁!

무너진 천장에서 떨어진 돌 부스러기가 바닥에 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존재를 감춘 리메르와 10사도는 중앙에서 검과 창을 부딪치며 전율적인 기파를 뿜어냈다.

쿠구구구!

그저 한 번의 부딪침에 지축이 뒤틀리고, 저택이 가루가 되어 뭉개지기 시작했다.

“7사도. 언제까지 거기 박혀 있을 셈이냐.”

10사도가 리메르를 마주 보며 7사도라는 이름을 부르자, 로비 중앙에서 또 다른 한 명이 남자가 솟아올랐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실눈을 한 곱상한 외모의 20대 남자였다.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건….’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벽을 넘어선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스터. 저 남자는 7사도라는 이름답게 마스터에 오른 강자였다.

“사형. 저까지 필요해요?”

“이곳에 오는 건 본래 네놈의 일이었다.”

“아….”

7사도가 입맛을 쩝 다셨다. 평온한 표정과 여유로운 자세에서 뿜어지는 막대한 기운이 이질적이었다.

“내가 이놈을 죽이고 오는 동안 여기에 있는 지그하르트를 전부 지워놓도록.”

“귀찮은데.”

“칠.백.령.”

“아, 어쩔 수 없네.”

7사도가 콧등을 구기며 앞으로 나왔다.

“라온. 부탁한다.”

리메르가 어색하게 웃고서 광풍을 일으켰다. 녹색 바람이 용오름이 되어 치솟으며 저택을 완전히 깨부수자 로비 중앙에 있던 두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 이렇게 됐으니, 빨리 끝내자.”

“아….”

“끄윽….”

7사도가 손을 모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10사도만은 못 하지만 공간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기세에 광풍단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네 상대는 나다.”

라온이 7사도의 기세를 막으며 제천검을 겨누었다.

“오, 멋진데?”

7사도가 키득거리며 박수를 쳤다.

“근데 그거 알아? 나한테 검을 겨눈 놈은 전부 죽었어.”

“우연이네. 내가 검을 겨눈 놈도 모두 죽었거든.”

라온은 검을 내리지 않은 채 찬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7사도가 양손을 펼친 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입만큼 실력이 있는지를 좀 봐야겠어.”

그 말과 함께 7사도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 극쾌의 보법이었다.

‘눈으로 봐서는 안 돼.’

라온이 글래시아의 감각을 열었다. 7사도가 다가오는 건 우측 하단. 오른발을 뒤로 빼며 제천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제천검에 깃든 만화공의 오러가 거칠게 타오르며 7사도가 내지른 손아귀를 튕겨냈다.

“어? 막아?”

7사도는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다는 듯 가는 눈매를 찡그렸다.

“이제 내 차례지?”

라온이 진각을 밟으며 광아검을 쳐냈다. 사나운 구결이 어린 새하얀 칼날이 7사도의 목을 노렸다.

후우우웅!

7사도는 발목의 방향을 전환해 제천검을 흘려낸 뒤 손으로 수도를 만들어 가볍게 그어 내렸다. 차원이 다른 속도와 위력이지만, 셀린느가 보여주었던 혈수공이었다.

‘투로는 그대로야.’

강대한 위력이 담겼다고 해도 그 궤적은 셀린느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치이잉!

라온은 역습을 가해오는 7사도의 혈수공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낸 뒤에 그의 심장을 향해 제천검을 내질렀다.

쩌어엉!

7사도는 역습에 당황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제천검이 힘을 제대로 받기 전에 튕겨냈다.

“음음, 입을 놀릴 만한 실력은 있는 것 같네.”

7사도가 빙글거리며 재차 혈수공을 뻗어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속도가 더 빨라졌다. 눈에 그 궤적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봐두길 잘했어.’

라온이 탁한 숨을 내뱉으며 불을 고리를 운용했다. 공명하는 고리가 셀린느가 보여주었던 혈수공의 궤적을 그려준다. 그 흐름을 따라오는 7사도의 수도를 검신으로 찍어버렸다.

“음?”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7사도의 목을 향해 검을 그었다.

꺄앙!

7사도는 튕겨나간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의 수도로 제천검을 쳐내고 뒤로 물러섰다.

“궤도를 이리 쉽게 읽어내는 걸 보니, 혈수공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군.”

그는 단 두 번의 격돌으로 라온이 혈수공을 알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하긴 백혈교를 치려면 백혈교의 무학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겠지.”

7사도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물방울이 모여들 듯이 기이한 빛이 번쩍이더니 그의 손아귀에 거대한 칼이 잡혀 있었다. 평범한 칼이 아니라, 톱날이 서 있는 톱칼이었다.

“그 준비성을 높게 사서. 이쪽도 무기를 들어주지. 그리고….”

그가 톱칼을 장난감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오싹한 살기를 일으켰다.

“이제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자.”

그 목소리가 꺼지기도 전에 그의 모습이 또 한 번 사라졌다.

‘이번에는 좌측.’

글래시아의 감각에 집중하자, 7사도가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가오는 놈을 향해서 광아검을 내질렀다.

쩌어어어엉!

톱칼과 제천검이 맞부딪치며 막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이젠 잔해만 남은 저택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

라온과 7사도는 회색 먼지로 가득한 저택의 중심에서 검과 톱검을 서로를 향해 밀어내고 있었다.

“너 뭐냐? 방금 건 어떻게 막았지?”

“가업 비밀이다.”

“어려도 지그하르트라는 건가? 이쪽도 조금 더 진지하게 나가주지.”

7사도의 실눈이 미세하게 번쩍였다. 톱칼의 궤도가 급변하며 수십 줄기의 검기가 쏟아졌다.

콰아아앙!

경지가 다르기 때문일까. 검기의 위력 하나하나가 막강하다. 제천검으로 튕겨내고 있음에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대로 상대해서는 안 돼.’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7사도가 펼치는 검술을 훑어 내렸다. 배배 꼬인 듯한 기괴한 궤도. 손목을 노리다가도 갑자기 목으로 선회하고, 발목을 겨누다가도 심장을 가르는 변칙적인 검술이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검술의 흐름 자체는 혈수공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방어도 간단하다. 그 흐름의 틈에 검격을 끼워 넣으면 된다.

라온은 불의 고리로 검술을 분석하고, 글래시아로 흐름의 틈을 탐지한 뒤, 만화공을 담은 제천검으로 7사도의 검술을 차단했다.

세 가지 기운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자, 경지가 더 높은 7사도의 검술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

쩡! 쩌엉! 쩌저정!

제천검과 톱칼이 부딪칠 때마다 7사도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는 입술을 떨었다.

“네가 어떻게 정혈검을 아는 거지?”

방금 그가 사용했던 그 기괴한 검술의 이름이 정혈검이었던 것 같다.

“말했잖아. 가업 비밀이라고.”

라온이 아래로 내린 제천검을 바닥에서부터 긁어 위로 쳐올렸다. 낚싯바늘처럼 곡선으로 타오른 화염의 검격이 정혈검을 가르고 7사도를 뒤덮었다.

콰아아아아!

7사도는 인상을 찌푸리며 백혼의 오러를 끌어 올렸다. 백색 기류가 그의 몸을 휘감으며 불꽃을 짓눌러 버렸다.

“어린 녀석이 제법이네. 이번에는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넌 이걸 볼 자격이 있다.”

그가 피식 웃으며 톱칼을 위로 들어 올렸다. 잘게 갈라진 톱날 위로 우둘투둘한 검기들이 꼬이고, 휘감기더니, 장대한 빛을 뿜어내며 완벽하게 유형화된 기운을 뿜어냈다.

“강기….”

라온이 입술을 질겅 씹었다. 마스터의 상징이자 벽을 넘은 증거 강기. 7사도는 강기를 사용하여 싸우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바로 집어넣는 것도 귀찮으니까. 일격에 죽지는 마라.”

7사도가 씩 웃으며 땅을 박찼다. 좌측이나, 우측이 아니라, 정면에서 뛰어들어 강기가 어려 있는 톱칼을 내리쳤다.

‘어디 해보자.’

라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만화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리며 강기를 씌운 톱칼을 향해 제천검을 쳐올렸다.

콰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경합하며 허공에 시뻘건 스파크가 일어나고,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허!”

7사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눈을 떴다. 반쯤 드러난 그의 눈동자에 경악이 뚜렷하게 비쳐 있었다.

“강기를 검사로 막아? 네놈 무슨 짓을 한 거지?”

“어쩌다 보니.”

라온이 옅게 웃으며 호흡을 골랐다. 리메르의 말대로다. 하분성에 있을 때와 달리 지금 자신의 검사는 검강을 막을 힘이 있었다.

‘다만…’

단전에서부터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일격을 방어한 것으로 내상을 입기 직전의 상태가 되다니, 살의가 깃든 강기의 위력은 역시나 차원이 달랐다.

“귀찮지만 나름 재밌군. 좋아.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7사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강기를 연속으로 쏟아냈다. 정혈검의 궤도가 더 기괴하게 변했고, 그 안에 담긴 힘은 감히 부딪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졌다. 닿기만 해도 뼈와 살이 뜯겨나갈 위력이었다.

후우우웅!

톱칼이 살기 짙은 강기를 뿜어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털이 쭈뼛 선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공포 이상의 희열이 전신을 자극했다.

저 강기를 가르고, 7사도를 무릎 꿇리고 싶었다.

“싸움을 즐기다니, 너도 정상이 아니로군. 내 또래 중에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몰랐어.”

7사도는 칭찬의 말과 달리 당장에 뼈를 가를 것처럼 톱칼을 휘둘렀다.

“누가 네 또래라는 거냐. 나이는 네놈이 훨씬 많아.”

“맞아. 그러니 여기서 확실하게 죽여 놔야지. 네놈이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도록.”

“찌질하네.”

라온은 죽인다는 말을 들으며 호흡을 골랐다. 그는 지금 자신이 보여준 대로 평범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놈을 베어야 한다.

“이것도 막아봐라.”

7사도가 정혈검보다 더 흉폭한 검격을 내지르자, 라온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천검과 함께 날아가듯 밀려났다.

“후욱….”

방금 것으로 꽤 큰 충격을 입었는지 입술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살의를 담은 검강과 맞서는 건 미친 짓이었다. 다만 지금은 이 미친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재밌어지는데?”

7사도는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강기의 파도를 펼쳐냈다.

“나도 마찬가지야.”

라온은 등 뒤에서 낮은 울음을 터트리는 진혼검을 쓰다듬어주며 빙긋 웃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곧 저 미친놈의 피를 마시게 해줄 테니까.

*     *      *

백혈교 포르반 지부 앞 야산에서는 마법 폭격이 일어난 듯 땅거죽이 뒤집히는 듯한 굉음과 충격파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무시무시한 검격과 창격의 격돌이 계속되며 산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뒤흔들리는 언덕으로 리메르와 10사도가 올라섰다.

“의외로군.”

먼저 입을 뗀 건 10사도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메르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 어린 것들 네 부하들로 보이던데, 그들이 걱정되지 않는 것이냐.”

“걱정? 걱정은 네가 해야지.”

“뭐?”

“기껏 얻은 막내 사제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안 무서워?”

“어리다고 해도 사도가 되었다는 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교주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내 검을 막았던 녀석도 제법이지만, 7사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

10사도가 덤덤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하나쯤은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네놈을 놓치는 순간 저기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포르반 전체가 피바다에 잠길 텐데, 무슨 헛소리야!!”

“예전보다는 낫군. 그나마 생각을 하는 모양이야.”

“나는 원래 잘났어. 그리고 누구 피로 가득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

리메르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멍청한 놈.”

“그것도 두고 보자고.”

“익스퍼트는 절대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7사도가 검강을 사용한 순간 네 부하들이 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뭐, 보통은 그렇지.”

리메르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검기, 검사는 검강을 막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 제자는 보통 놈이 아니거든. 검사로 네 사제의 강기를 찢어버릴 녀석이다.”

그는 확신을 담은 대답을 내뱉으며 10사도를 향해 바람의 칼날을 쏘아냈다.

“그러니 네 싸움이나 신경 써!”

*     *      *

뿌득!

라온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울렁거림이 점점 심해지는군.’

강기를 운용하는 마스터를 상대하는 건 역시나 더럽게 힘든 일이었다. 능력치로 강해진 육체와 제천검의 오러 증폭 능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쓰러졌을 것이다.

“벌써 휴식 시간인가?”

7사도가 강기로 타오르는 톱칼을 사선으로 그어왔다. 막대한 위력에 대기가 갈기갈기 터져나갔다.

치이이잉!

제천검에 만화공의 기운을 휘감아 광아검의 구결대로 내뻗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휩쓸었다. 누군가가 장기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통증이었다.

‘아직이야.’

라온이 숨을 골랐다. 7사도가 더 흥분하고, 더 큰 공격을 해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가 유일한 승기였다.

“이제 좀 짜증 나네.”

7사도가 인상을 찌푸리며 톱칼로 땅을 내리찍었다. 대지가 폭삭 파이며 무덤 같은 구덩이가 돋아났다.

“귀찮아지려고 하는데 좀 적당히 하고 가자.”

그가 하품하듯 입을 벌렸다.

“졸려 죽겠는데, 대체 왜 안 쓰러지는 거야! 이미 내상은 입을 만큼 입었잖아!”

“해볼 만하니까.”

“익스퍼트는 죽었다 깨어나도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그만 귀찮게 하고 죽어!”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톱칼을 수평으로 휘둘러왔다. 허리를 뒤로 눕혀 섬뜩할 정도의 속도로 퍼져나가는 강기를 피했다. 허공의 금빛 머리칼이 휘날렸다.

후우우웅!

7사도는 어느새 톱칼을 뒤로 뺀 뒤 다시 앞으로 찔러왔다. 하늘과 땅이 톱칼에 어린 하얀 강기로 가득 찼다.

화아아아!

만화공의 기운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칼날 위에 수십 송이의 꽃을 피워냈다. 바람을 탄 화염의 꽃망울들이 흩날리며 7사도의 강기의 맞부딪쳤다.

쿠와아아아앙!

강기와 불꽃이 어우러지며 막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주변의 모든 것이 강기와 불꽃이 녹아내리는 지옥과도 같은 광경에서 라온이 앞으로 나아갔다.

터엉!

톱칼을 내리고 있는 7사도를 기습하기 위해 움직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마르타가 먼저 움직였다.

-저 멍청한!

라스조차 당황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미친년도 하나 있었군.”

7사도가 코웃음을 치며 마르타를 향해 톱칼을 내리쳤다.

“젠장….”

라온이 입술을 떨었다. 너무 멀다. 지금의 자신이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다만 마르타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맑았다. 도저히 목숨을 내팽개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라온은 마르타의 차분한 눈빛을 믿고 다시 방향을 바꿔 7사도에게 돌진했다.

“죽어라.”

“그냥 뒈지진 않아. 이 새끼야!”

톱칼이 마르타의 목을 가르려는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청운검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검날에 어린 타이탄의 오러가 물레방아의 물길처럼 부드럽게 흐르며 톱칼의 방향을 일순간 비틀었다.

콰아아앙!

7사도의 톱칼이 땅을 후려친 순간 마르타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 피를 토했지만, 아주 잠깐 7사도의 시선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터엉!

라온이 왼발을 내뻗었다. 어디든 닿을 수 있는 태화보를 밟고 균형이 살짝 무너진 7사도를 향해 만화공 낙일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불꽃으로 타오르는 검극이 만화경처럼 퍼져나가며 7사도를 휩쓸었다.

“크으윽!”

7사도가 다급하게 기운을 뿜어냈지만, 적염의 칼날은 그의 허벅지를 크게 베고 지나갔다.

푸칵!

새하얀 바지 위로 회색 핏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상처? 내가 너희 같은 버러지들에게?”

7사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바지를 적시는 회색 핏물을 보며 실눈을 떴다. 검은색 눈동자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주마.”

놈이 조용한 말투로 거대한 분노를 일으킨다. 지금까지가 장난이었다는 듯 그저 기운의 발현으로 주변이 가루로 변해갔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강맹한 기세.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등 뒤로 다가온 기분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지금이 바로 생과 사의 분기점이었다.

“와라.”

라온이 남은 만화공의 기운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이 싸움이 끝나면 기절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모든 오러를 일으켰다.

화아아아아!

제천검 위로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불꽃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흡사 태양을 길게 편 듯한 느낌이었다.

“소용없다.”

7사도가 인상을 찌푸리며 톱칼을 겨누었다. 어긋난 듯한 톱날 위로 더 짙고, 흉악한 강기가 치솟았다. 공기마저 녹이는 듯 거대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이제 그딴 불꽃으로는 내 검을 막지 못한다!”

그가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톱날에 어린 강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몽둥이처럼 거대해진 톱칼을 겨누며 살벌한 미소를 그렸다.

“외롭지 않게 한 번에 보내주지.”

7사도가 공간을 장악하며 다가와 톱칼을 내리쳤다. 단순하지만 몸을 짓누르는 중검의 영역이었다. 사나운 강기가 떨어져 내리자, 허공이 비틀어져 갈라졌다.

“아….”

“끄, 끝인가….”

이 장소에 있는 모두가 절망에 휩싸인 순간 라온의 두 눈에 붉은 벼락이 일었다.

‘그대로야.’

7사도가 내리친 검격은 지금까지 그의 휘둘렀던 검술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기운은 강대했지만, 흐름이 같았기에 돌파할 구멍이 있었다.

고오오오오!

라온이 뒤로 젖힌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제천검이 새빨간 불꽃에 휩싸이며 입을 벌린 용의 머리와 같은 형상이 되었다.

만화공 십화.

염룡결.

만화공의 검술 중 최강의 화력을 지닌 검격이 7사도가 만들어 낸 빈틈을 향해 쏘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

염룡결이 톱칼의 강기를 흘리고, 7사도의 심장을 뚫어내려는 순간 그에게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내가 흥분할 때를 노릴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말과 함께 톱칼이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리며 제천검이 만들어낸 화룡의 목을 갈랐다.

“잘 싸웠지만 여기까지군.”

강기의 톱날에 용의 머리가 뜯겨나가자마자, 7사도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왼손으로 수도를 만들어 내질렀다.

“죽어라.”

지독한 살의가 어린 손날 앞에서도 라온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진짜 기회였으니까.

제천검을 내지르며 뒤로 젖혔던 왼손으로 진혼검을 뽑았다.

우우우우웅!

진혼검은 왜 이제야 잡아 주냐는 듯 선명한 검명을 터트리며 무시무시한 요기를 뿜어냈다.

“이익!”

7사도가 눈치를 채고 혈기로 거대한 막을 만들었지만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진혼검이 나아가는 길은 자신이 직접 만든 가장 빠른 검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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