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라온의 첫 번째 검식 서리연은 쏟아지는 불꽃세례를 베어내고도 한발 더 나아갔다.
푸카아악!
비틀어져 열리는 시야 속에서 레드 드래곤 터틀의 목젖에서 가는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서리연의 참격이 레드 드래곤 터틀의 인지를 넘어서 놈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크으으으!”
당황한 레드 드래곤 터틀이 상처를 감추고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다. 서리연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검식이 아니니까.
콰아아아아아!
푸른 궤적 위로 은빛 나선이 질주한다. 글래시아의 순수한 냉기가 서리연의 흐름을 따라 레드 드래곤 터틀의 목을 꿰뚫었다.
“그르르륵….”
냉기의 칼날 역시 극쾌. 첫 번째 못지않은 속도의 검격에 레드 드래곤 터틀은 반응조차 못 하고 그대로 목을 헌납했다.
콰아아.
레드 드래곤 터틀의 목에서 뿜어지는 붉은 핏물이 대지를 태우는 불꽃을 가라앉혔다.
쿠우우웅!
결국 레드 드래곤 터틀은 그 거대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고, 허공에는 놈의 목을 갈랐던 얼음의 폭포수만이 남았다.
“후우….”
라온은 화상 입은 피부를 글래시아로 가라앉히며 얼음의 칼날을 보았다.
서리연.
연(淵)이란 폭포 아래에 있는 웅덩이를 말함이다. 폭포에서 떨어질 때 한 번.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치솟은 물이 다시 쏟아질 때 두 번. 그 두 번의 낙하를 담아낸 것이 바로 서리연이라는 검식이었다.
빠르면서도 정확했고, 속성의 칼날까지 숨겨져 있었다. 장담할 수 있다. 마스터라고 해도 초입 수준이면 이 검격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익….
라스는 이렇게 쉽게 끝날 줄 몰랐던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저 멍청한 거북이 자식! 너무 빠르게 강해져서 어떻게 힘을 사용해야 하는지 모른다. 차라리 저 껍질에 숨던가! 그냥 힘만 내뿜는 멍청한 짓만 했느니라!
‘맞는 말이야.’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드래곤 터틀의 기운은 마스터에 필적했지만, 싸움법은 본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녀석이 자신의 힘을 온전히 다뤘다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놈이 그 불길을 제대로 이용했다면 네놈은 홀라당 타버렸을 테니까.
‘운이 나쁜 거지.’
-뭐?
‘그런 강한 놈이랑 싸우면 내가 더 강해질 수 있었을 테니까.’
-정말이지 미친놈이로다….
라스가 질린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검식은 어땠어?’
-나쁘지 않았다.
‘오?’
-인간치고는. 본왕에게 그런 허접한 검을 썼다간 단번에 얼려버릴….
라스가 놀리듯이 이죽거릴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검식을 창안하셨습니다.]
[칭호<어린 대종사>가 생성되었습니다.]
[중상격의 몬스터를 쓰러뜨렸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포인트 상승합니다.]
새로운 검식을 만들어내고, 영물급이 된 레드 드래곤 터틀을 쓰러뜨려서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였다.
-이게 무슨!
라스가 말이 안 된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세 살짜리도 만들 허접한 검술로 어떻게 대종사의 칭호를 받는다는 말이냐!
녀석의 어깨 위로 분노의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거기다! 저 레드 드래곤 터틀은 기껏해야 중격이다! 기운이 좀 강했을 뿐이지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 아니었단 말이다!
라스가 분노를 터트리든 말든 상관없이 시스템은 줄 건 주고 사라져버렸다.
-끄으윽, 시스템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었어!
‘단순하다고?’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 결과만을 따지도록 만들었는데,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흐음….’
라온은 이를 가는 라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난 고마울 뿐이지.’
라스 덕분에 누구도 상대 안 될 정도의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호구처럼 아낌없이 넘겨주는 시스템과 라스에게 감사할 뿐이다.
<어린 대종사>
스스로 무학을 창안한 어린 무인에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직접 만든 무학을 사용할 시 위력이 강화되고, 오러의 소모가 감소한다. 타인의 무학을 더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린 대종사라는 이름답게 아직 부족할 수 있는 무학의 위력을 강화해주고, 상대를 관찰하여 더 많은 것을 얻으라는 뜻의 칭호 같았다.
앞으로도 많은 무학을 만들어야 하니 굉장히 마음에 드는 능력이었다.
-망할….
라스는 칭호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내가 말했잖아. 여기서 많은 것을 얻을 거라고.’
라온은 검을 집어넣으며 라스를 툭 쳤다.
-인생을 날로 먹는 놈 같으니….
라스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라온.”
루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평소와 같이 맹한 눈을 한 루난과 구역질이라도 할 것처럼 창백한 낯의 하랜이 달려왔다.
“그, 그걸 정말 잡다니….”
하랜은 숨이 끊어진 레드 드래곤 터틀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거의 반쯤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어떻게 베었는지를 물어왔다.
“싸우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서리연은 수속성의 검식이고, 글래시아로 정화한 냉기의 순도는 대륙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짙다. 아무리 지열을 빨아먹어서 강화된 레드 드래곤 터틀이라도 견디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 그럼 처음부터 그 기술로 잡지. 왜 이렇게 시간을 끈 겁니까?”
하랜은 완벽하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더 이상 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까는 방금 검술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저 녀석의 목을 뚫은 검술. 조금 전에 만든 겁니다.”
“어억!”
솔직하게 말해주자 하랜이 턱을 달달 떨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루난을 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랜은 아예 무릎을 꿇었다.
“미친….”
하랜이 눈을 부릅뜬 채 손가락으로 레드 드래곤 터틀을 가리켰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 달려든 거라는 겁니까?”
“뭐 강해질 길도 보였고, 정 안 되면 수십 번, 수백 번 쳐서라도 잡으면 되는 거니까요.”
서리연이 완성되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겠지만 결국 레드 드래곤 터틀을 쓰러뜨렸을 테니까.
“허어….”
하랜이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탄한 것 같기도 했고, 이해되지 않는 것 같기도 했으며,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음음.”
루난은 손가락으로 레드 드래곤 터틀을 툭툭 건들면서 입을 살짝 내밀었다. 냉기를 좋아하니, 계속 열기만 뿜어냈던 놈에게 살짝 짜증 내는 것 같았다.
‘라스.’
-본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됐고. 아까 영물이라고 했지. 그러면 내단 같은 것도 있으려나?’
몬스터 혹은 짐승이 종족의 격을 벗어나면 몸속에 내단이라는 것을 만든다. 그걸 복용하면 오러의 양이 늘거나 육체가 강해지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보물이었다.
-본왕은 영물이라고 봐도 될 정도라고 했지. 영물이라고 하지 않았다. 거기다….
라스가 히죽 비웃음을 흘렸다.
-저 거북이는 불꽃과 등껍질을 강화하는데 모든 기운을 소모했다. 저 안에서 얻을 건 단단한 껍질뿐이니라.
녀석은 네놈의 운으로도 이건 별수 없다며 키득댔다. 실망했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그거면 충분해.’
라온이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새로운 검식을 만들었고, 칭호를 얻었으며, 능력치까지 올랐다. 전리품으로 저 레드 드래곤 터틀의 사체까지 있으니 생각 이상의 소득이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어?’
루난의 옆으로 다가가 레드 드래곤 터틀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만화공이 잔불처럼 일어나며 레드 드래곤 터틀의 내부에 있던 강대한 화속성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손아귀가 떨릴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나가 흡수되며 등골 사이로 오싹한 희열이 찾아왔다.
[만화공(4성)이 레드 드래곤 터틀의 화기를 흡수했습니다.]
[만화공의 성취가 상승합니다.]
[대량의 화기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5포인트 상승합니다.]
[화속성 저항력이 4성으로 상승합니다.]
레드 드래곤 터틀의 내부에 있던 열기를 모조리 빨아들이자마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우!”
떨리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능력치로 많은 부분이 치환되었지만 마나회로에 아직 상당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이걸 모두 받아들인다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단 그 이상의 소득이군.’
-이, 이게 무엇이야! 줬는데, 왜 또 주는 것이냐! 조금 전에 능력치와 칭호를 받았는데!
‘아까 건 내가 싸워서 이긴 거고. 지금은 만화공이 스스로 움직여서….’
-그 입 닫아라!
라스가 냉기로 만든 손아귀로 땅을 후려쳤다.
-세상이 왜 이러는 것이냐! 이건 아니잖아! 세상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둠으로 물든 스켈레이 산의 중턱에 분노의 마왕이 터트린 절규가 울려버렸다.
-왜 죄다 이놈에게 못 줘서 안달이냐고!
* * *
“으음….”
하랜은 죽은 레드 드래곤 터틀의 껍데기와 피부를 만져보며 신음을 흘렸다.
‘이걸 베었다니.’
평생을 대장장이로 살아왔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이 불꽃 거북이의 거죽의 강도는 단단하기 그지없다는 현철과 맞먹는다. 강기가 아니라면 수없이 두드려야 할 두께지만 저 미친놈은 그걸 한 번의 검기로 베어버렸다.
‘물론 그냥 검기는 아니지만.’
수속성의 검기. 그것도 한 번을 휘둘러 두 번을 베는 정신 나간 검술이었지만 결국 검기는 검기다.
무슨 짓을 했기에 겨우 검기로 저리 성장한 레드 드래곤 터틀을 베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정말 놀라운 건 그게 아니다.
하랜이 입술을 깨물며 지맥을 정비하는 라온을 바라보았다. 옷은 반 이상 탔고, 전신이 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싸우면서 성장했다는 점.’
저 지독한 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면서 싸우고 강해져서 레드 드래곤 터틀을 베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화상을 입어 고통이 심할 텐데, 일말의 티도 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저런 괴물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저 흔한 온실 속의 천재인 줄만 알았는데….’
17살에 저 무력. 지그하르트에서 태어나 정해진 루트대로 살아온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조금 전의 살벌한 전투와 가라앉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깊고 짙은 진흙탕을 넘어온 녀석이다.
“후우….”
오랜만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저기 있는 괴물에게 내가 만든 무구를 입혀주고, 그가 대륙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라졌던 열정이 다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그럼 돌아가죠.”
라온이 레드 드래곤 터틀에게 다가갔다.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올려 레드 드래곤 터틀을 목을 들었다.
“그, 그걸 들어?”
죽고 나서 갑자기 쪼그라들었지만 웬만한 팔두마차보다 큰 크기다. 검술만이 아니라, 근력도 인간의 격을 벗어나 있었다.
쿠구구구!
라온은 이대로 들고 가려는 듯 레드 드래곤 터틀을 끌기 시작했다. 저걸 든 것도 놀라웠지만 가져가려는 게 더 경악스러웠다.
“자, 잠깐! 사람들을 불러서 옮기는 게….”
“괜찮아요.”
라온이 루난에게 눈빛을 보냈다.
“루난. 좀 도와줘.”
“응.”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어서 바닥에 냉기를 뿌렸다. 산등성이부터 저 아래까지 말끔한 빙판이 생성되었다.
“아저씨. 위에 타요.”
“예에?”
“이 녀석을 타고 내려갈 거니까. 루난처럼 거북이 위에 올라가시라구요.”
“어, 미, 미끄럼틀?”
“맞아요.”
라온이 거북이 등껍질을 잡고 앉아 있는 루난을 가리켰다. 표정 변화는 없지만, 볼이 살짝 빨개진 걸 보니, 이 얼음 미끄럼틀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하랜은 마른침을 꿀꺽 삼기고 레드 드래곤 터틀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그럼 갑니다.”
라온은 뒤로 가서 레드 드래곤 터틀을 빙판으로 밀어버렸다. 이 산의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초대형 몬스터가 한낱 썰매가 되어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우어어억!”
맹렬한 바람에 입이 자동으로 벌어지고 비명이 터졌다.
‘미, 미친놈이야! 진짜 미친놈들이라고!’
하랜은 따가울 정도의 바람을 느끼며 다짐했다. 뒤에 있는 저 어린 미친놈만큼은 절대 건들지 않기로.
‘근데 내기에서 졌잖아!’
난 좆됐어!
* * *
라온이 떠난 산등성이가 가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
글렌은 뒷짐을 진 채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레드 드래곤 터틀을 바라보았다.
“천검대주.”
그의 부름에 나무 뒤에 있던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보라색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등에 검을 차고 있는 눈매가 가는 여검사였다. 덩치가 작았고, 얼굴은 20대 초반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지만, 그녀가 바로 글렌과 수십 년을 함께 한 천검대주였다.
“어떻게 보았지?”
“그 게으름뱅이가 아끼는 이유를 알겠군요.”
천검대주가 레드 드래곤 터틀을 타고 내려가는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재능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검격은 직접 만든 것 같더군요.”
“그래. 레드 드래곤 터틀과의 전투는 그 검술을 위한 연습이었던 모양이다.”
“마스터 이전에 직접 검술을 만드는 건 처음 보았습니다. 대종사의 기질입니다.”
천검대주는 아직도 허공에 그려져 있는 냉기의 궤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인들이 직접 무학을 창안하는 건 아무리 빨라도 마스터를 넘어야 하건만 라온은 익스퍼트 최상급에 첫 번째 검술을 만들어냈다. 놀랍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거기다 레드 드래곤 터틀의 몸에 남아 있던 열기를 흡수하는 능력까지 있던데, 저게 전에 말씀하셨던 만화공의 능력입니까?”
“그래. 경지에 오른 만화공이 레드 드래곤 터틀 내부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한 거다.”
“여러모로 감탄이 나오는 아이입니다. 그저 재능만을 이용하는 게 다가 아니라, 역경을 뚫어내는 힘도 있어요. 어디에 가든 제 역할을 할 겁니다.”
“뭐,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아니지. 적당히 뛰어난 정도다.”
글렌은 천검대주가 보이지 않게 앞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천검대주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라온이 기껍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스터의 벽도 반 이상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고난이지만 저 아이라면 20살쯤에 그 벽을 깰 수 있을 것 같군요.”
천검대주는 산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는 라온을 보며 가는 눈매를 더 얇게 좁혔다.
“지그하르트 역사상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음, 20살 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예?”
“저 아이라면 약관이 되기 전에 마스터에 도달할 것이라고.”
“그에게 남아 있는 벽은 천재라고 빨리 넘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저 아이의 천재성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글렌이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뒤를 돌았다.
“저 아이는 너무 빠르게 올라와서 벽을 뚫어내는 게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주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 게으름뱅이 도박꾼이 칭찬하는 게 이해되는 재능과 실력이지만, 마스터는 아직 멀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라온은 수련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새벽 수련을 거르지 않았다. 연무장이 닫히면 별관에서 수련했고, 임무에 나가 불침번을 서면서도 검술을 연습한 녀석이다. 노력과 천재성이 있었으니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
“어….”
천검대주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글렌이 이 정도로 많은 말을 하는 것도, 그게 남에 관한 말인 것도 처음이었다.
은근히 손주 자랑을 하다가 트집 잡는 사람과 말싸움을 하는 팔불출 할아버지 같았다.
“확실하다. 빠르다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마스터에 오를 것이다.”
“조, 조금 전에 그리 특별한 건 아니라고….”
“크흠, 생각보다 조금 늦었구나. 이만 돌아가자.”
글렌은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고서 가볍게 땅을 박찼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지그하르트가 있는 방향으로 쏘아졌다.
“…….”
천검대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 도박쟁이의 느낌이 드는 거지….”
* * *
쿠구구구!
작은 망치 소리 정도만 들려오는 미르탄 마을의 저녁. 이 평화로움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진동이 마을 전체를 울렸다.
“뭐, 뭐야!”
“지진이야?”
“요즘 지열도 약하던데 이젠 진동까지 와?”
늦은 저녁을 먹던 마을 사람들은 진동을 느끼고 다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지, 지진이 아니야.”
그중 한 명이 마른침을 삼키고 마을 아래를 가리켰다.
“뭐? 지진이 아니면…허억!”
“저, 저게 무슨!”
“으아아악! 레드 드래곤 터틀!”
“저 괴물이 왜 마을에 있어!”
“저, 저렇게 큰 건 처음 보는데….”
사람들은 거대한 레드 드래곤 터틀을 보고 입을 떡 벌린 채 뒷걸음질 쳤다. 달려서 도망가려는 대장장이도 있었다.
“이 바보들아.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이 레드 드래곤 터틀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옷이 다 타버린 금발의 청년이 레드 드래곤 터틀을 끌고 있었다.
“허억!”
“저, 저걸 잡았다고?”
“저거 누구야!”
“그 아이잖아! 전 촌장이 무기를 만들어주겠다던!”
“허어, 저런 괴물을 잡다니, 전 촌장이 노망난 게 아니었어….”
“히, 힘도 장사야. 저 크기를 어떻게 들었지?”
대장장이들은 레드 드래곤 터틀을 가지고 올라가는 라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흠.”
라온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대장장이들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커스단의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아이들 같았다.
“자, 잠깐만! 그 시체 나한테 팔 생각 없나? 잘 쳐주겠네!”
“어딜 새치기를 하는 거야! 내가 사지! 금화 500개에 무구 10개를 주겠네!”
“이쪽은 전부 금화로 내지. 금화 2,000개 어떤가!”
언덕을 중간쯤 올랐을 때 대장장이와 상인들이 몰려와 시체를 팔라고 앞을 막아냈다.
“어이! 뭣들 하는 거야!”
라온이 손을 저으려고 할 때 미는지 안 미는지 모를 정도의 힘만 주고 있던 하랜이 앞으로 나와 상인과 대장장이들을 밀쳤다.
“금화 500개? 2,000개? 그런 푼돈으로 어딜 후려치려고! 이분이 우리 아버지 손님인 거 몰라? 앙?”
“아니, 그게….”
“여기서 장사 접고 싶으면 계속해봐.”
그 말에 상인과 대장장이들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조금 더 가격을 높이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랜의 살벌한 눈빛에 손을 내렸다.
“가시죠!”
하랜이 집사라도 된 듯 손으로 가장 위에 있는 발칸의 대장간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라온은 피식 웃으며 레드 드래곤 터틀을 끌고 언덕을 올랐다. 루난이 뒷부분만 바닥을 살짝 얼려서 위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으음….”
진동을 느꼈는지 발칸도 밖에 나와 있었다. 레드 드래곤 터틀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내리는 그의 눈동자가 탁 풀려 있었다.
“그, 그게 문제였나?”
“예. 지열을 빨아먹고 있어서 잡아 왔습니다.”
“저 정도 크기의 레드 드래곤 터틀은 처음 보는군. 해츨링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크기만 컸던 게 아니야! 화력도 지랄맞게 강했다고!”
하랜이 손을 쭉 뻗었다.
“쪼그라들어서 그렇지 아까는 더 컸어. 영감이 그걸 봤어야 했는데.”
그는 아쉽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열이 어긋난 부근을 정비해 놓았으니, 내일이나 모레면 지열이 안정화될 겁니다.”
라온이 공방 앞의 공터에 레드 드래곤 터틀을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었다.
“허, 이런 괴물을 잡아놓고 하는 말이 고작 그거라니. 예전부터 평범한 짓은 하지 않는다니까.”
발칸이 라온의 평온한 눈을 보고 헛바람을 흘렸다.
“들어와라.”
그가 공방 안을 가리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쪽도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