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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8화 (158/653)
  • 제158화

    동굴 바닥에 앉아있던 버렌이 고개를 들었다.

    동굴 벽과 천장에 수많은 검술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동굴에 들어왔던 중무전 검사들이 남긴 검흔이었다.

    “꼭 낙서 같군.”

    저 중 초대 중무전주의 검흔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보이는 건 어린아이가 연필로 그은 낙서처럼 삐뚤빼뚤한 자국뿐이었다.

    다만 저건 장난친 게 아니라, 진지하게 검을 수련한 흔적이다. 검흔이 흔들리듯 남겨진 이유는 이 동굴 안의 마나 흐름이 약간 꼬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이 안에서 수련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였군.’

    예전에 둘째 형에게 이곳에선 수련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었었다.

    당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이 동굴에서 발생하는 마나의 어긋남 때문에 수련해도 무언가를 얻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기껏해야 약간의 정신력만 키우는 정도.

    제대로 수련하기 힘든 곳에서 약간의 두통을 참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지만….”

    버렌이 땅을 짚은 손을 꽉 말아쥐었다.

    “난 그럴 수 없지.”

    내 목표는 그 괴물 녀석이니까.

    일주일이 지나도 라온과 호라인의 전투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호라인은 젊은 나이에 전뢰단의 부단주가 된 천재. 그런 강자를 꺾은 라온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도 시간 낭비를 해선 안 된다.

    이미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검술을 더 발전시킨 녀석이라면 이렇게 마나의 흐름이 어긋난 곳에서도 변함없이 수련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후우욱.”

    버렌이 숨을 고르며 일어서 검을 뽑았다. 레뷘 사막에서 지내는 일 년 동안 익혀온 새로운 검술 자세를 잡으며 두 눈을 빛냈다.

    ‘이게 완성된다면 라온의 검에도 밀리지 않을 거야.’

    생존 시험을 치르며 얻은 레뷘 사막의 무학은 단순한 강함의 개념을 넘어선 검술. 제대로 습득만 한다면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른 라온에게도 박힐 만한 날카로운 이빨이 되어줄 것이다.

    후우우우웅!

    모래조차 말려 죽이는 사막의 삭풍. 그 죽음의 바람을 담은 무학이 버렌의 손에서 웅혼하게 피어났다.

    *     *      *

    라온은 끊임없이 불의 고리를 회전시키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집중 특성 덕분일까. 생각이 좁아지면서 이 어그러진 마나에도 점차 적응이 되었다. 이젠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히는 현상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점은 그것만이 아니지.’

    평범한 마나가 아니라, 조각나고, 뒤틀린 마나를 받아들여 정화 시킨 효과로 이 짧은 기간 동안 불의 고리 성취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치이이잉!

    다섯 개의 고리가 완연하게 회전하는 건 물론이고, 그 끝에 새로운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여섯 번째 고리 형성에 집중하려고 할 때 라스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서 터졌다.

    “하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슬쩍 눈을 떴다. 푸른 냉기를 뒤집어쓴 라스가 바드득 이를 갈고 있었다.

    -사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

    “사흘? 사흘이나 됐어?”

    -그렇다! 본왕은 사흘 동안 굶으며 이 지옥을 버텼느니라. 네게 양심이 있다면 당장 나가서 별관의 식사를 바치거라!

    “비켜봐.”

    달라붙으려는 라스를 툭 밀어내고, 옆에 있던 보자기를 펼쳤다.

    -그 보자기는….

    “왜? 언제는 이거라도 먹으라며.”

    -그걸 듣고도 지금까지 무시했던 것이냐!

    “무시라기보다 귀찮아서.”

    라스가 떠드는 소리를 들었지만 반응해주면 더 난리를 치니 계속 무시했었다.

    “너 분노의 군주가 아니라, 탐식의 군주 맞지?”

    -무, 무슨 헛소리냐!

    “미식을 따진다는 놈이 이 맛없는 빵이라도 먹어달라는 건 맛이 아니라, 배가 부르길 원한다는 거잖아.

    -보, 본왕은 미식의 세계를 사랑하는 고귀한 분노의 군주이니라! 그딴 토끼 새끼와 비교하다니! 당장 사과해라!

    “토끼라….”

    <나태>를 곰탱이나, 잠탱이라고 부른 것처럼 <탐식>은 토끼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았다.

    멧돼지도 아니고, 토끼라니, 꽤 의외의 별명이었다.

    ‘이것도 정보지.’

    라스는 수다쟁이답게 본인도 모르게 이런저런 중요한 정보들을 풀어준다. 지금 걸 기억해둔다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라온은 피식 웃으며 나딘빵을 들었다.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에 잘 익은 고구마처럼 갈색을 띠었다. 맛있어 보이지만, 맛이 없는 게 이 빵의 특징이다.

    -음? 꽤 맛있어 보인다만?

    3일 동안 굶었기 때문인지 라스는 빵의 외형을 보고 입에서 냉기의 줄기를 침처럼 흘렸다.

    “그래?”

    피식 웃으며 나딘빵을 베어 물었다. 뭉쳐 있는 고무줄을 씹는 듯 질겼고,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전생의 향기에 웃음이 나왔다.

    -꺼르륵….

    라스는 정말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줄은. 그것도 고무 씹는 식감이 정말일 줄은 몰랐던지 구역질을 하듯 입을 쭉 벌렸다.

    -이, 이건 죄악이다! 식량에 대한 죄악! 이런 걸 먹고 웃다니! 네놈은 역시 악귀가 분명하다!

    마왕에게 악귀 소리를 몇 번을 듣는지 모르겠다.

    “먹을 만한데.”

    라온은 빵의 마지막 조각까지 꼭꼭 씹어 삼키고서 배를 두드렸다. 순식간에 가득 차오르는 포만감. 맛은 더럽게 없지만, 배부른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오직 배만 부르게 하기 위한 빵이라니, 무서운 음식이니라. 이 무슨 공포인가….

    라스는 나딘빵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많은 모습을 보았지만, 저렇게 겁에 질려 하는 건 처음이었다. 미식가인지, 대식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바보는 맞는 것 같다.

    “음?”

    물을 마신 뒤 다시 불의 고리를 운용하려 할 때 동굴 바깥쪽에서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본 발걸음 소리에서 불안함이 느껴졌다.

    “이제야 오는군.”

    라온은 글래시아를 운용하여 왼손의 온도를 내려, 동상을 입은 것처럼 손을 옅은 분홍빛을 만들었다.

    불의 고리로 몸속 내부 마나를 정화한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은 오러를 운용할 수 있었다.

    자세를 다잡고 기다리고 있으니, 모퉁이에서 두 사람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총관 우렉과 훈련 교관 레프였다.

    “허억! 사, 살아 있….”

    “너, 너 괜찮은 것이냐?”

    두 사람은 덤덤하게 앉아있는 자신을 보고 귀신을 본 듯 눈을 부릅떴다.

    “당연히 괜찮죠.”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의 낯빛이 백지장을 바른 듯 더 창백해졌다.

    “크윽….”

    “괘, 괜찮을 리가 없는데, 여기에 있으면서 그 구역질 나는 마나의 뒤틀림을 못 느낄 리가….”

    천천히 다가오던 레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동굴에서 올라오는 마나의 뒤틀림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레프. 입 좀 다물어!”

    우렉이 레프의 입을 막고서 앞으로 나왔다. 그 역시 마나의 뒤틀림을 느꼈는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정말 문제없는 것이냐.”

    “조금 울렁거리긴 하지만 지그하르트 검사로서 이 정도는 버텨야죠.”

    “조, 조금이라니….”

    “음….”

    레프는 손톱을 깨물었고, 우렉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억지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 3일이 지났으니, 남은 11일 동안 잘 버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라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흔들리는 동공을 마주했다.

    “여긴 왜 오셨습니까? 2주 동안의 고행인데, 이런 식으로 찾아오시면 수련에 방해됩니다.”

    “이 건방진!”

    “…확인 절차다. 가끔 동굴 내부에서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있으니까.”

    우렉은 눈을 부라리는 레프를 말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보면 거짓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이만 가주시겠습니까. 전 그 고행이라는 걸 계속해야 해서요.”

    “알겠다. 그럼 나중에 보지….”

    이를 꾹 깨물며 물러나던 우렉은 자신의 왼손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아주 잠시 눈동자를 빛내던 그는 멍하니 선 레프를 데리고 출구로 향했다.

    ‘역시.’

    라온은 사라지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 말대로였네.’

    저 둘이 찾아온 걸 보니, 자칭 미식가 마왕이 말해주었던 대로 다른 동굴은 이 정도로 마나의 흐름이 뒤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우렉이 나름 표정 관리를 하려 했지만, 레프의 당황한 얼굴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저 둘은 자신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이 동굴을 고른 게 맞았다.

    그렇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었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고른 이 장소는 역으로 큰 이득이 되어주었다. 3일 만에 3개월 이상 수련한 것 이상으로 불의 고리가 성장했다.

    -잠깐! 너 손에 냉기를 담았던 거 저놈들을 속이기 위해서인가?

    ‘그래.’

    -그럼 그 허접한 놈과 대련했을 때 일부러 아픈 척했던 것도?

    ‘그렇지. 이걸로 저들은 내가 냉기에 약하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습격할 때 냉기를 이용할 거야.’

    실제로는 가장 강한 냉기를.

    라온이 우렉의 표정을 떠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놈이도다. 정말이지 머리가 돌아버린 놈이야….

    라스는 귀신 같은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너도 대단했어. 여기서 다른 동굴의 마나 뒤틀림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걸 느꼈잖아.

    -크흠! 그게 본왕의 위대함이니라. 옆 동굴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곳의 기운도 느낄 수 있느니라.

    라스는 오랜만에 들은 칭찬에 기가 산 듯 귀를 쫑긋 세웠다.

    -본왕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면 당장 나가라. 나가서 파인애플 소녀의 파이를….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라온은 두 사람이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기척을 느끼고 다시 자리 앉아 눈을 감았다.

    -야! 야! 라온!

    라스는 절대 안 된다는 듯 마구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라온은 눈을 감고 불의 고리에 빠져들어 있었다.

    -이제 고무빵은 싫단 말이다!

    *     *      *

    “대, 대체 저놈은 뭡니까?”

    레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바르르 떨었다.

    “저 동굴은 마나에 민감할수록 버티기 힘든데, 익스퍼트 최상급인 저놈이 어떻게 버틸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3일 동안 나오지 않아서 시체를 치울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놈은 너무도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들어가기 전보다 혈색이 더 좋아졌다.

    “표정도 아주 여유롭더군.”

    우렉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리를 조롱하듯이 말이야.”

    “그, 그건….”

    “괜찮다는 정도가 아니라, 뭔가 깨달은 것처럼 눈빛이 시원했지. 놈은 그 비틀린 마나에 적응한 것 같다. 네 덕분에 저 망할 놈이 더 강해지겠어.”

    “죄, 죄송합니다….”

    레프가 고개를 숙였다. 지시받지 않은 일을 했다가 오히려 라온에게 도움이 된 듯해서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끌고 나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핑계를 대면….”

    “의미 없는 짓이다. 저놈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테니까.”

    “으윽!”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우렉의 말이 이어질수록 레프의 어깨가 물에 삶은 문어처럼 쭈그러들었다.

    “후우….”

    우렉은 뒤를 돌아 라온이 들어간 첫 번째 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것 같군.’

    지금까지 경험상 저런 자는 건드려선 안 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건드렸다면 확실히 끝을 내야 한다.

    ‘그래도 영 수확이 없는 건 아니야.’

    아까 본 분홍색 손을 보고 확신했다. 일주일 전 호라인의 냉기에 얼어붙은 손의 부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라온의 약점은 냉기가 분명했다.

    ‘전주님께 말씀을 드릴 게 하나는 생겼군.’

    우렉의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라온은 우렉과 레프가 돌아간 이후에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고, 불의 고리를 운용했다.

    수없이 부딪치고 교차하는 다섯 개의 고리 속에서 작고, 얇은 고리를 유리병처럼 세공했다.

    ‘조금만 더 천천히.’

    새로운 불의 고리를 만들 때는 이전에 완성한 고리와 부딪쳐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고리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힘들어진다.

    ‘느리더라도 똑바로 가야 해.’

    매미 유충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해서 8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티듯.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다섯 개의 고리들을 피해 아주 천천히 새로운 불의 고리를 조형했다.

    쓸데없는 잡념을 모두 버리고, 기존의 불의 고리를 회전시키며, 새로운 불의 고리를 만드는 것에만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시작과 끝.

    영원처럼 닿지 않을 듯했던 불의 고리의 처음과 끝이 느릿하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금이 중요해.’

    새로운 불의 고리가 길어지면 기존의 불의 고리와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장인이 도자기를 빚듯이 더욱더 집중력을 드높이며 새로운 불의 고리를 다듬었다.

    치이잉!

    다섯 번째 불의 고리가 거세게 회전하며 새로운 불의 고리에 달라붙는다. 불의 고리를 머리카락보다 더 미세하게 틀어서 간신히 피했다.

    위기를 모면할 때마다 등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전신이 땀 범벅일 것이다.

    하지만 그 끈적함을 느낄 틈은 없었다. 자그마한 실수 하나로 지금까지의 노력이 깨지는 걸로 모자라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우우웅!

    불의 고리의 끝과 끝이 마주하기 직전.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다. 첫 번째 고리와 세 번째 고리가 공명하며 새로운 고리에 압박을 가해왔다.

    ‘흘려내야 해.’

    비틀어져 전해 오는 마나를 새로운 불의 고리에 그대로 전했다. 찰나의 순간 불의 고리가 곡선으로 휘어지며 그 압력을 흘려냈다.

    ‘지금!’

    위기는 곧 기회.

    라온은 위기를 벗어난 순간에 대량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여섯 번째 불의 고리의 시작과 끝을 길게 뻗어냈다.

    치이이잉!

    명인이 일필휘지로 그은 선처럼 매끄럽게 이어진 새로운 고리가 비틀린 마나를 가르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여섯 개의 불의 고리가 공명하며 터져 나온 박동이 뇌리를 가로질러 하늘이 열리는 듯한 거대한 전율을 일으켰다.

    [새로운 <불의 고리>가 연성 되었습니다.]

    [<불의 고리> 6성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혹한의 저주 두 가닥이 사라집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영혼의 격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5포인트 상승합니다]

    라온은 전신에서 일어나는 전율에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충격과도 같은 희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쉽게도 마스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막을 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반 가까이 무너졌다는 건 확신했다.

    -어억!

    빵이 맛없다고 삐져서 말도 안 하던 라스는 메시지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보, 본왕의 본체에서 다 빼가는 주제에 왜 네가 주는 듯 생색을 내는 것이냐! 이 망할 놈의 시스템아!

    라스는 다른 건 몰라도 능력치는 다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며 방방 뛰었다.

    하지만 눈을 뜬 라온은 메시지도, 라스도 보지 않았다. 동굴의 벽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뭐야 이건….”

    동굴 전체에 퍼져 있던 낙서 같은 검흔. 그 오래된 흔적이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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