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7화 (157/653)

제157화

라온이 중무전의 훈련 도구들을 부수고, 중무전 무인들을 오직 힘만으로 후려 팼으며, 마지막에는 전뢰단의 부단주 호라인까지 쓰러뜨렸다는 소문은 아쉽게도 퍼지지 않았다.

그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부 중무전 소속이었으니, 제 얼굴에 침 뱉는 짓을 왜 하겠는가.

총관 우렉과 훈련 교관 레프가 추가로 입단속을 시켰기에 그 놀라운 사건들은 중무전의 연무장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중무전의 모두가 숨기고 싶었던 비밀들은 지그하르트 남부의 낡은 주점에서 한 사람. 아니, 입이 깃털처럼 가벼운 한 엘프에게서 흘러나오기 직전이었다.

“아, 이거 비밀인데, 진짜 말하면 안 되는데….”

리메르는 붉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까지 뜸을 들여놓고 무슨 비밀이라는 거야!”

“30분이 지났어요! 빨리 좀 말해요!”

“그래. 언제까지 시간을 끄는 거야! 라온이 뭘 했는데!”

“궁금해 뒤지겠다고!””

주점에 있는 사람들은 머뭇거리는 리메르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술잔을 던졌다. 그가 계속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고는 시간만 끄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뒤지기 전에 빨리 말하쇼!”

“이제 정말 못 참아!”

“리메르 님!”

“적당히 하라고!”

이 넓은 주점 사람들은 전부 리메르의 입을 바라보며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정말 검을 뽑을 것처럼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검사도 있었다.

“아, 어쩔 수 없네. 내가 너희들이니까 말해주는 거야. 어디 가서 퍼뜨리면 절대. 절대로 안 된다.”

리메르는 비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대사를 읊으며 술잔을 든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알겠다고! 제대로 퍼뜨려 줄 테니까! 빨리 말해!”

“그래. 라온이 또 무슨 사고를 쳤는데!”

“아오! 진짜 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엘프 자식!”

“흐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듯 고개를 까딱이고서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럼 시작하지. 이 리메르 님의 훌륭한 점을 모조리 떼다 박은 ‘애제자’ 라온이 중무전에서 연수를 시작했거든 그런데 그곳에서….”

리메르는 라온이 중무전 훈련을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압도했다는 것과 중무전 검사들을 힘만으로 모조리 때려눕혔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이게 하이라이트인데, 라온이 5연승을 했을 때 누가 나타났는지 알아? 전뢰단 부단주 호라인. 그 천재 녀석이 대련을 신청했고, 내 ‘애제자’ 라온이 받아들였어. 즉, 천재라 불리는 두 사람이 제대로 붙었지. 처음에는 오러 없이 검술만의 결투였고, 라온이 호라인을 압도하면서 승리를 가져갔어.”

“우오오오!”

“허억!”

“지, 진짜로?”

“라온이 호라인을 꺾었다고?”

주점의 사람들은 라온이 호라인을 꺾었다는 말에 경악하며 술잔이나, 식기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야. 호라인은 패배를 인정하고 서로 오러를 사용하여 재대결을 하기로 했지. 내 ‘애제자’ 라온은 이번에도 쿨하게 받아들여서 2차전이 시작됐어. 라온은 불꽃의 오러, 호라인은 냉기의 오러를 운용하며 동시에 땅을 박찼지!”

“그,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

“빨리 말해!”

“리메르 님! 저 뒤질 거 같아요!”

“크흠! 커험!”

리메르는 말을 하지 않고, 목젖을 꾹꾹 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아, 목이 좀 마르네. 끊기기 전에 말을 해줘야 하는데, 목이 타서 원….”

“아오! 주인장 저기 저 망할 엘프한테 맥주 다섯 잔 가져다줘!”

“배도 좀 고프고….”

“안주는 내가 추가할게! 메뉴판에 있는 거 다 주문해!”

“오늘 도박할 돈도 없어서….”

“닥치고 내 돈 받아!”

하이라이트에서 이야기가 멎자 화가 난 사람들이 리메르를 향해 은화를 던졌다.

“역시 대륙의 도리는 죽지 않았군! 다들 고마워!”

리메르는 눈물을 닦는 척하면서 쏟아지는 은화를 주머니에 담았다.

“이 돈은 나의 대박 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

“아, 됐으니까 빨리 이야기나 계속하라고!”

“감질나서 죽겠다!”

“연참! 연참! 연참!”

“여, 연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

리메르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재개했다.

“라온과 호라인이 정면에서 맞부딪쳤지. 알다시피 호라인의 검술은 변검과 환검. 라온은 그 검술들을….”

그는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장소에서 대련을 본 것처럼 현장감 넘치게 두 사람의 전투를 풀어주었다.

“흐억!”

“허어….”

“미쳤다. 미쳤어!”

라온이 화염의 꽃이 휘날리는 검술로 호라인의 검을 꺾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17살에 진심을 내보인 부단주급을 쓰러뜨렸다고?”

“이전에 소문이 돌 때부터 느꼈지만 그 녀석은 괴물이야.”

“대련 장면 직접 못 본 게 한이다. 불꽃으로 만드는 꽃의 폭풍이라니….”

관심이 없어 보이던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서 라온의 무력과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어느새 모두의 입에서 라온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후후.”

리메르는 그 떠들썩한 장소에서 벗어나 품에 있는 은화를 세며 히죽 웃었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라온은 명성을 떨치고, 자신은 돈을 버는 1석2조의 효과.

그는 오늘도 몹쓸 스승의 일면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도박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대박의 향기가 풀풀 풍기는구나!”

*     *      *

-제기랄!

라온은 난동을 부리는 라스와 함께 동굴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이 멍청한 놈! 저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조상의 유산이 있는 동굴에 네놈을 들여보내 주겠느냐!

라스는 동굴 벽을 쭉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조상이라는 놈이 들어간 동굴은 다른 곳에 있고, 여긴 아무 의미도 없고, 힘들기만 할 게 분명하다.

‘그럴지도 모르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프가 자신을 1번 동굴로 보낸 걸 보면 이곳에 초대 중무전주의 유산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가짜라고 해도 힘든 수련을 한다면 시스템의 힘으로 충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 낭비이니라. 아니, 위장 낭비이니라! 그딴 빵을 먹어가며 2주라니! 본왕은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라스는 엄마 따라 시장에 간 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 쳤다.

‘난 낭비 아니니까. 괜찮아. 저 안에 무엇이 있든 네가 만든 훌륭한 시스템이 충분한 보상을 내려 줄 테니까.’

-끄으윽….

라스는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바득 갈았다.

-그렇게 건방지게 굴다가 언젠가 그 콧대가 눌리게 될 것이다!

‘아, 그것도 괜찮아. 나 콧대도 높아서.’

미소를 지으며 콧대를 쓱 쓸어내렸다.

-끄이이익! 그게 아니지 않느냐!

라스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손을 쭉 펼쳤지만 조금 전 능력치를 퍼주었기 때문에 다시 덤비지는 않았다.

‘일단 가보고 얘기하자고.’

-가볼 필요도 없다! 저 안은 어그러져 있으니까!

‘어그러져?’

되물었지만 라스는 삐졌는지 고개를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가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길어서 거의 10분을 걷고 나서야 그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발광석에서 내려오는 주황색 조명이 작고 울퉁불퉁한 공간을 밝혔다.

바닥과 벽, 천장은 두꺼운 대검으로 찌른 듯 기이한 상흔으로 가득했다. 애들 낙서 같았지만, 꼭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다만 이 공간에 들어온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히고, 속이 울렁거려서 벽의 흔적을 자세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이곳의 마나 흐름은 이상하리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잘못 느낀 게 아니었네.”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들어갈수록 마나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뒤틀림 때문이었다.

“아까 말했던 어그러짐이 마나의 뒤틀림이었나?”

-그렇다. 아무래도 예전 이 장소에서 강한 힘을 지닌 존재들끼리 부딪쳤던 모양이다. 마나의 흐름이 장미 덩굴처럼 배배 꼬여 있느니라.

라스가 바닥과 천장을 쭉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육체는 자연에 퍼져 있는 마나의 흐름을 따르지. 하지만 이곳의 마나는 네 성격처럼 제멋대로 움직인다.

라스의 손에서 피어난 냉기들이 바람을 탄 듯 마구잡이로 휘날렸다.

-네놈처럼 쓸데없이 감각만 좋은 인간이라면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것이다.

“그 말대로야. 두통과 어지러움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라온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의 말대로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세상이 핑핑 돌았다. 요동치는 배를 탄 듯 속이 울렁거렸고, 심장을 바위로 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아까 그놈들이 널 싫어하기는 하는 모양이구나. 수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곳에 집어넣다니.

‘수련을 못 한다고?’

-마나의 흐름이 꼬여 있어서 오러 연공을 하거나, 오러를 운용하여 검술을 사용한다면 마나 회로가 비틀어져 내상을 입게 될 거다.

라스가 안 된다는 듯 손가락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너처럼 감각이 좋다면 수련은커녕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차피 얻을 것도 없으니, 지금 나가라. 고무 같은 그 빵은 당장 가져다 버리고!

“흐음.”

라온은 라스의 사나운 조언을 듣지 않고, 눈을 감았다.

‘확실히 마나 회로에도 영향이 있어.

그저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호흡하며 들어온 마나에 의해 마나 회로와 단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을 줄이고,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으라고 하더니, 이러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잖아.’

머리가 지끈거리고, 단전과 마나 회로가 울렁거리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것이다.

-그니까 빨리 나가라니까.

‘싫어.’

-이 고집불통 자식! 미식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건만 왜 심통을 부리는 것이냐!

‘옆에서 버렌도 견디고 있을 텐데, 먼저 나갈 수는 없지.’

-멍청한 놈. 이런 고통을 겪는 건 너뿐이다.

‘뭐?’

-다른 동굴에도 마나의 비틀림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이곳과 달리 아주 약간의 울렁거림만 있을 뿐이지. 눈깔 꼬마는 지금 미약한 두통만 느끼며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라스는 이미 확인이 끝났다고 말하며 이마를 찡그렸다.

“그래서였군.”

라온이 뒤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레프가 길을 막고 자신을 먼저 1번에 보낸 이유가 이걸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못 견디고 나오면 그것도 못 참냐고 조롱하면서 다른 동굴에 보낼 생각이었을 거야.”

여러 방법으로 중무전을 망신시켰던 복수인 것 같았다. 참으로 유치하고 찌질한 방식이었다.

‘버렌도 몰랐겠군.’

훈련에 효용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 걸 보면 1번 동굴의 마나 흐름이 다른 동굴보다 심하게 뒤틀렸다는 건 버렌도 몰랐던 것 같다.

불합리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버렌이 이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다 알았으면 나가라. 여기서 견디는 건 무리다.

‘싫다니까.’

-이리 친절하게 말해줬는데도 견딜 생각이냐? 그 맛대가리 없는 빵만 먹고?

라스는 마나가 뒤틀린 상황보다 나딘빵을 먹는 걸 더 싫어하고 있었다.

“기대를 받았으면 충족시켜줘야지.”

-이 미친 빵돌이 자식!

라온이 분통을 터트리는 라스를 무시하고 바닥에 앉았다.

‘일단 만화공과 글래시아는 사용하지 못해.’

마나의 흐름이 꼬여 있어서 한 속성에 치우친 기운을 사용했다가는 바로 몸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불의 고리는 가능할 거야.’

불의 고리는 이름만 불이 들어갈 뿐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천고의 연공법이다. 그 순수함이라면 이렇게 꼬여 있는 마나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라온이 눈을 감고 불의 고리를 회전시켰다. 다섯 개의 고리가 교차하며 악기처럼 조화로운 울림을 만든다.

고오오오!

녹슨 철조망처럼 구겨지고 꼬여있던 마나의 흐름이 열을 가한 듯 느슨하게 풀리며 불의 고리가 일으키는 청아한 공명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역시 되는군.’

외부의 마나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육체 내부의 어그러진 마나와 마나 회로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가보자.’

그놈들이 경악하는 얼굴을 보고 싶으니까.

라온은 동굴을 울리는 심장의 약동을 느끼며 깊은 집중 상태로 빠져들었다.

*     *      *

레프는 라온과 버렌을 동굴로 들여보낸 뒤 돌아가지 않고, 입구 앞에 서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 들여보냈나?”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레프가 고개가 돌아갔다. 총관 우렉이 뒷목을 주무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음? 설마 그놈을 1번 동굴로 보낸 건가?”

우렉은 열려 있는 1번 동굴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죄송합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레프는 우렉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건방진 놈이 굴욕을 당하는 꼴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1번 굴은 초대 중무전주와는 관계없이 마나의 어그러짐만 굉장히 심한 동굴이다.

본래는 막아두었지만, 라온의 굴욕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봉인을 풀고 그놈을 넣어버렸다.

“…이해한다.”

우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라온에 대한 분노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레프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지금 들어간 건가?”

“예.”

“그럼 1시간 안엔 나오겠군.”

1번 동굴에서 발생하는 마나의 꼬임은 강한 무인일수록 버티기 힘들다. 익스퍼트 중급의 무인들도 세 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니, 그놈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기어 나오게 될 것이다.

“버렌 님이 초를 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모르시더군요.”

“아실 리가 없지. 그분도 이곳은 처음 와봤을 테니까.”

우렉이 버렌이 들어간 5번 동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검사 자격을 얻은 이후에만 올 수 있기에 버렌도 몰랐을 것이다.

“그놈이 못 견디고 튀어나오면 실컷 망신을 줄 생각이겠군.”

우렉은 레프의 속셈을 모두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망할 자식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봐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프는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고 중얼거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표정은 나도 궁금하군. 구경 좀 하다 가야겠어.”

두 사람은 곧 나올 라온을 기다리며 동굴 앞에 서서 차게 웃었다.

하지만 라온은 그들이 예상한 한 시간을 넘어 이틀이 지날 때까지 동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     *      *

-쯔읏….

라스는 길게 혀를 차며 팔찌 위로 올라왔다. 라온은 이틀이 지나도록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어이.

톡톡 라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금의 반응도 없다. 인형처럼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족제비 놈의 이름을 불러도 그대로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릿하게 숨을 쉬며 연공만 계속했다.

-마나가 점점 더 안정되는군….

라스가 라온의 내부를 살피며 눈매를 좁혔다. 놈의 내부가 이틀 전보다 훨씬 잔잔해졌다. 하늘까지 치솟은 대해의 해일이 해안가의 얕은 파도로 변한 것 같았다.

-불의 고리….

자신의 분노를 막아내는 걸로 모자라, 이런 어그러진 마나까지 받아들여 정화하는 걸 보면 불의 고리는 인간의 격을 초월한 무학이었다.

-좋다. 불의 고리도 좋고, 안정화도 좋은데….

라스가 라온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다!

라온에게 깃든 이후 유일한 낙인 식사가 이 이틀 동안은 완전히 끊겼다. 고무 맛이 난다는 빵이라도 씹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망할 자식아! 그 맛없는 빵이라도 좋으니 제발 먹어!

라스가 라온의 어깨를 후려치며 악을 질렀다.

-이제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단 말이다!

‘…….’

그 비명에 잠시 집중이 깨진 라온은 확신했다.

분노의 군주는 개뿔.

라스는 <식탐>이면서 <분노>로 위장 취업한 마왕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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