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6화 (156/653)

제156화

“잘난척할 실력은 있군.”

호라인이 눈매를 좁히며 자세를 낮췄다. 이전에 보았던 늑대의 도약과도 같은 모습. 자세는 그대로지만 느껴지는 기세는 격이 달랐다.

“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야!”

선언하듯 내뱉는 말과 동시에 검이 튀어나온다. 흔들리는 검극이 여섯 개로 늘어난다. 오러가 깃든 환검과 변검의 묘리. 놀란 그의 정신과 달리 검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고오오오!

라온이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느려지는 시야 속에서 검극의 변화가 세 개로 줄어들었다. 노리는 방향은 목과 왼쪽 가슴 그리고 옆구리였다.

어디를 노리느냐?

어디가 아니라 전부 다다.

환상 2개가 지워진 냉기의 칼날은 세 곳을 동시에 노리고 있었다.

화아아아!

검 끝으로 바닥을 겨눈 뒤 붓질하듯 허공을 그었다. 칼날에 휘감긴 불꽃이 반원을 그리며 호라인의 세 줄기 검격을 지워버렸다.

“흥!”

호라인은 예상한 듯 허공에서 몸을 돌려 두 번째 검술을 펼쳐냈다. 얼굴에 담긴 투지만큼이나 살벌한 검격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치이이잉!

검격은 살아있는 것처럼 허공을 타고 미끄러져 자신의 심장과 머리를 노려왔다. 제대로 맞는다면 연수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검격을 향해 오히려 몸을 던졌다.

‘이게 생로니까.’

호라인의 오러는 냉기였고, 검술은 화려한 변검이다. 물러날수록 그의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나아갈 때였다.

쩌어엉!

두 마리 뱀처럼 꼬인 검격을 향해 광아검 아운격을 터트렸다.

퍼어어엉!

근접거리에서 부딪친 검격이 거칠게 폭발한다. 대지를 울리는 굉음과 거친 충격파가 터지며 대련장에 붙어 있던 검사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라온과 호라인은 그 충격파를 기회로 삼아 뒤로 물러나 몸을 다잡았다.

“네가 17살이라고? 믿기질 않네. 검술도 안 밀리잖아!”

호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질 순 없지. 다시 간다!”

그가 빙판을 탄 듯 매끄럽게 접근해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직선으로 그은 칼날이 여러 개의 얼음송곳이 되어 전신의 급소를 향한다. 대해의 파도처럼 변화무쌍한 검격이 넓게 퍼지며 그 갯수를 늘려갔다

라온이 글래시아를 운용하여 감각의 바다를 열었다. 출렁이는 파도. 그 흐름에서 움직이는 건 오직 하나의 칼날이었다.

“흐읍!”

감각이 말하는 대로 검을 그었다. 광아검의 구결이 깃든 날카로운 이빨이 벼락처럼 치솟았다.

쩌어어엉!

뼈가 분질러지는 듯한 소리가 터지며 허공을 노닐던 호라인이 거칠게 밀려 나가 땅에 손을 짚었다.

“어, 어떻게….”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감? 이게 감으로 된다고? 믿을 수 없다!”

호라인이 눈을 부라리며 발을 굴렀다. 전력을 다하는 듯 운용하던 냉기의 오러가 점차 부풀어간다. 주변으로 은빛 서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강대한 오러로 전신을 두른 채 땅을 박찼다. 오러의 줄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며 열 갈래가 넘는 변화무쌍한 칼날이 공간을 휘감았다.

‘이미 예측은 끝났어.’

라온은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호라인이 보여주었던 변검과 환검의 관찰은 끝났다. 지금 보여주는 검술이 더 복잡했지만 결국 뿌리는 같았다.

우우우우웅!

손에서 울부짖는 검을 사선으로 내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이 잘라내듯 휘어진 화염의 칼날이 호라인의 검격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설마….”

호라인이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변검도 익히고 있었나!”

그는 이 자리에서 그의 검술의 따라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변검을 익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천재라는 단어로 묶어 둘 수준이 아니로군.”

호라인은 인간이 아니라, 무슨 괴물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놈을 후려 패는데 고작 금화라니, 수지에 맞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면 가는 게 남자지!”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오른쪽. 찰나의 순간에 우측으로 파고들어 검을 내지른다. 푸른 빛을 담아낸 칼날에서 오러의 줄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이건 기회야.’

변검과 환검의 성취를 올릴 기회.

만화공의 검술은 꽃잎의 형태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호라인을 상대하며 배운 변검과 환검을 이용하면 그 검술들을 더 완벽하게 펼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멀었다!”

호라인이 두 눈을 빛내며 쏟아낸 무수한 변화의 칼날이 거침없이 급소를 노려왔다. 새장처럼 조여오던 오러의 줄기가 갑자기 한 점으로 모여들어 심장을 향했다.

‘이런 변화라니….’

변화라면 넓게 퍼지는 것만 생각했지 일점에 모으는 건 예상도 못 했다. 이것 또한 공부가 되었다.

화아아아!

라온은 불의 고리로 그의 검술을 눈에 새기면서 만화공 회천을 펼쳐냈다. 공간을 찢어발기며 나아간 불꽃의 톱니바퀴가 응집된 오러와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냉기와 열기가 뒤엉키며 터져 나온 강대한 폭발에 땅거죽이 뒤집히고, 연무장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호라인이 그 오러의 폭풍으로 파고들어 강공을 내리쳤다. 단순한 강공이 아니다. 쏟아지는 건 벼락 줄기 같은 검격. 무시무시할 정도의 환상과 변화가 담긴 상승의 검술이었다.

아직 변화로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온은 고쳐 잡은 검을 바닥에서부터 올려 그었다. 천하를 양단하는 듯한 웅혼한 검격이 솟구치며 호라인의 검격을 깨부쉈다.

“크윽!”

호라인은 충격을 받았는지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내달려 검을 휘두른다.

콰앙!

라온 역시 밀리지 않기 위해 진각을 밟으며 광아검을 폭발시켰다.

쾅! 콰아앙!

오러 없이 싸울 때와는 격이 다른 충격파와 굉음이 연무장 전체로 퍼지고 두 사람의 투혼이 대지를 깨부쉈다.

라온과 호라인은 무너진 대련장의 중심에서 수많은 검격을 나누었다. 각자의 손에 냉기와 열기가 일어났지만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후욱….”

“하아….”

두 사람은 모두 피부와 옷이 찢어졌음에도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도 빠질 만큼 빠졌으니 끝을 봐야겠군.”

호라인이 검을 상단으로 세웠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자세를 취한 뒤 남은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의 검이 연검처럼 바르르 떨리며 막대한 기파를 뿜어냈다.

“좋습니다.”

라온이 검을 뒤로 젖히고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밀랜드에게 강기를 꺼내게 했던 용연류가 아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검술이 아니라, 다른 것을 꺼내 들었다.

치아아앙!

호라인의 검에서 은빛 섬광이 뿜어진다. 칼날에 어려 있던 냉기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퍼지며 아홉 갈래의 거대한 채찍이 되었다. 한 줄기마다 검을 부수고 살과 뼈가 으깰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쿠구구구!

라온은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아홉 갈래의 검격을 향해 압축시킨 불길을 폭발시켰다. 칼날 위에서 춤을 추던 염화의 꽃송이들이 봄이 찾아온 듯 개화한다.

만화공 십화.

화령.

지금까지 쌓아 올린 라온의 검술 위로 새로운 색이 씌여진다. 옅게만 퍼져나가던 꽃잎들이 거울에 비친 듯 불어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꽃잎의 돌풍은 오러의 채찍 줄기를 불태우고도 모자라 적을 향해 나아갔다.

냉기의 오러를 잡아먹으며 증폭하는 화염의 꽃잎은 찰나의 순간 허공을 뒤덮고 호라인의 검을 갈랐다.

화아아아!

늦은 봄. 벚꽃 나무 아래에 있는 것처럼 세상이 화염의 꽃잎으로 물들었다.

“아….”

호라인은 넋이 나간 듯 사그라지는 불꽃의 이파리를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었다.

“져, 졌다.”

웃으며 패배를 인정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라온은 쓰러진 호라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거만하긴 했지만, 그는 그만한 실력을 지녔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했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중무전이라고 해도 인정할만한 사내였다.

“음?”

미약한 통증을 느끼고 왼손을 보았다. 호라인의 냉기 때문에 왼손에 서리가 끼어 있었다. 수속성 저항 때문에 큰 고통은 없었지만, 얼렸다는 것만으로 대단했다.

‘음, 그런데 이거 잘하면….’

라온은 만화공으로 손에 낀 서리를 녹이려다가 멈춰 섰다. 이걸 이용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등을 돌린 채 다급하게 불길로 손을 녹였다. 중간중간 아프다는 듯 살짝 신음을 흘린 건 덤이었다.

“어….”

“이, 이거 꿈이야?”

“이렇게 강하다고?”

녹인 손을 털고 고개를 들자, 오러의 폭풍에 밀려 나간 검사들이 반쯤 정신이 나간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호, 호라인이 졌다고? 이럴 수가 있나?”

훈련 교관 레프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손을 떨었다.

반면 우렉은 자신의 왼손을 지그시 보고 눈매를 좁히고 있었다.

그 반응을 보자,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라온이 웃음을 참으며 손목을 돌릴 때 메시지가 올라왔다.

[중격의 상대와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상대의 무학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지금까지 상대 중 가장 강한 자를 상대로 승리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합니다.]

-헉?

라스는 올라간 내용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내기 없이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나 오른 것에 경악한 눈빛이다.

-고, 고작 익스퍼트 최상급을 잡았다고 능력치가 오르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이냐!

‘지금까지 내가 이긴 상대 중 가장 강하다잖아.’

호라인보다 강한 상대는 많이 만났지만, 이긴 상대 중에선 그가 가장 강했다.

-망할! 정말이지 망할 시스템이니라!

라스는 본인이 만든 시스템이 정도를 모른다며 욕을 하고 메시지를 걷어찼다.

‘이래서 힘을 숨길 필요가 없다니까.’

중무전은 자신의 무력을 파악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지금까지다. 내일이면 자신은 또 한 차례 발전해 있을 테니까.

라온은 씩 웃으며 검집을 툭 쳤다.

“다음 있습니까?”

*     *      *

버렌은 오늘 이루어진 라온의 대련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결론을 내렸다.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다.’

복귀한 라온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지는 기세가 더 희미해져서 강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 전뢰단의 부단장 중 하나인 호라인을 쓰러뜨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체 뭘 하고 지낸 거지?’

자신도 레뷘 사막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누구보다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이번에도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은 라온이었다.

다만 질투나, 질시의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녀석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으니까.’

라온은 그저 운이나, 영약으로 강해진 녀석이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성장하는 전형적인 노력형 인간이다.

이번에도 복귀한 다음 날 새벽부터 연무장에 나오는 걸 보고 확신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강해질 자격이 있는 녀석이라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 검술, 언젠가 본 거 같은데….’

라온이 마지막에 호라인을 쓰러뜨린 그 꽃이 휘날리는 검술은 이전에 본 적 있었다. 그때도 아름다우면서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더 위험했고, 더 아름다웠다.

‘그 검술을 스스로 발전시키다니….’

정말이지 멈출 줄을 모르는 녀석이다.

‘그래도 포기 안 한다.’

라온은 라온. 버렌은 버렌이다.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로 레뷘 사막에서 두 번째 은인에게 맹세했다.

“멋있었다!”

버렌은 이쪽을 보는 라온을 향해 유일하게 진심을 다해서 박수를 보냈다.

*     *      *

중무전 총관실에 밤이 스며든다. 창틀에서 화사한 생기를 발하던 꽃병들도 어둠에 몸을 맡기고 잎을 내렸다.

“후….”

총관 우렉은 멍하니 서서 꽃병에 꽂힌 꽃잎들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저 총관님.”

그의 뒤에 서 있던 훈련 교관 레프가 한숨을 내쉬며 콧등을 찡그렸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온 그 녀석이 호라인까지 이길 줄은 생각도 못 해서….”

레프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뭘 할 필요는 없다.”

우렉이 뒤를 돌며 어깨를 으쓱였다.

“예?”

“라온 녀석의 근력이 몬스터 수준이라는 것과 오러를 사용하면 호라인을 이길 정도로 강하다는 게 알려졌지 않나.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걸 알았으니 전주께서 모으라 지시하신 정보로는 충분해. 거기다….”

그의 눈동자가 밤 그림자처럼 일렁거렸다.

“약점도 드러났지.”

“호라인의 냉기를 맞고 얼어붙었던 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숨기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손이 얼어붙었고, 녀석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등을 돌렸다. 어려서 때부터 앓았던 혹한의 저주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야.”

우렉이 책상 위에 있는 꽃병을 매만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보는 모두 얻었군.’

고작 하루 동안 라온의 무력과 장점 그리고 약점까지 파악했으니 카룬도 인정해줄 것이다.

“이제 훈련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놈과 대련을 할 수도 없고….”

“전주께서 그놈에게 도움이 될만한 건 시키지 말라고 하신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아예 몸이 망가지는 훈련을….”

“멍청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는데 그딴 행동을 하면 우리를 뭘로 볼 것 같아!”

우렉은 카룬에게 들었던 지적을 그대로 읊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죄, 죄송합니다!”

“예로부터 중무전에 내려오지만, 도움은커녕 오히려 실력이 떨어지고, 지루하기만 한 훈련이 있지않느냐.”

“아! 동굴 면벽 말씀이시군요!”

생각이 난 듯 레프가 손뼉을 쳤다.

“확실히 그건 옛날부터 내려온 훈련이니 누구도 뭐라하지 못 할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 2주 정도 동굴에 가둬놔.”

우렉이 낮은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렸다.

“그 건방진 놈이 시간 낭비만 하도록 말이야.”

*     *      *

라온이 연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첫날은 여러 일이 있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별일 없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중무전 소속 검사들만이 아니라, 교관이나 총관들도 웬만해선 터치를 하지 않아서 자유롭게 훈려할 수 있었다. 물론 장비들을 부술 때는 제발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며 말렸지만.

자신이 이곳에서 부순 물건들의 가격이 금화 6000개에 가깝다고 하니, 처음에 정했던 것보다 2배 이상으로 물품을 부수고 다닌 모양이다. 나름 뿌듯했다.

라온이 오늘은 무엇을 부숴서 잘 부쉈다는 소문을 낼까 고민할 때 훈련 교관이 버렌과 함께 그를 불렀다.

“오늘부터 특별훈련을 진행하겠다.”

훈련 교관 레프가 평소보다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들었다.

“특별훈련이요?”

“중무전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훈련이다. 이 주머니를 가지고 따라오도록.”

그는 자신과 버렌에게 사람 머리만 한 보자기를 건네주고 연무장을 벗어나 중무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참 걷던 그의 걸음은 중무전을 넘어 그 뒤에 있는 북망산에서 멈췄다. 산 주변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중앙에는 열 개의 동굴이 뚫려 있었다.

“동굴?”

“그렇다.”

레프가 뒤를 돌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초대 중무전주께서 면벽을 하다가 대성을 이루셨다는 동굴이다. 그분께서는 4주간 잠을 자지 않으시고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셨지.”

그는 초대 중무전주가 초대 가주를 도와 많은 업적을 이뤘다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어쨌든 이 면벽은 중무전의 무인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의례이니 자랑스러워하도록.”

그는 손가락으로 동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동굴에서 버텨야 할 시간은 2주일이다. 최대한 잠을 줄이고 정신을 예리하게 다듬는다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는 아직 중무전의 무인이 아니라, 연수생입니다. 면벽이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을….”

버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지난주에 말했지 않느냐. 여기에선 다 똑같은 중무전의 무인이라고. 너희에게 도움이 될 중요한 기회이니 들어갈 준비나 해라.”

“후우, 알겠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버렌이 낮은 한숨을 내쉬고 라온을 보았다.

“일단 거짓은 아니야. 초대 중무전주께서 수련했던 곳인 것도 맞고, 대성하셨다는 것도 맞고, 무인들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니까.”

버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동글을 쓱 둘러보았다.

“다만 2주일 동안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이 훈련에 효용이 별로 없거든. 길어도 열흘인데 2주라는 걸 보니 네가 밉보이긴 한 모양이다.”

“괜찮네.”

라온은 동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괘, 괜찮다고?”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버렌이 눈을 부릅떴다.

“재밌을 거 같아.”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고행일 뿐이지만, 불의 고리와 시스템이 있는 자신에게 어렵고 힘든 일은 능력치를 올릴 최고의 기회였다.

거기다 초대 중무전주가 남긴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연무장에서 의미 없는 파괴왕 짓을 하는 것보다 이곳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았다.

“크흠! 물은 안에 있다. 그 보자기에 들은 건 빵이니, 하루에 하나씩 먹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라.”

-뭣이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첫 번째 동굴에 들어가려 할 때 자는 듯 조용하던 라스가 새싹처럼 불쑥 솟아올랐다.

-하루에 빵 하나? 그걸 먹고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

‘고행이라잖아. 그래야 강해지지.’

-닥쳐라! 이미 존재를 초월한 본왕이 왜 고행을 해야 하는 것이냐!

라스는 말도 안 된다며 냉기로 만든 손을 마구 휘저었다.

-잘 먹고 죽은 마족이 때깔도 좋다는 속담도 있거늘! 하루에 빵 하나로 어떻게 버티라는 것이냐! 맛을 느낄 새도 없을 것이니라!

‘아, 미안한데. 이거 배는 부른데 맛없는 나딘빵이야. 딱 고무 씹는 맛이 나지.’

라온이 볼을 긁적였다. 이 빵은 암살자 시절에 가장 많이 먹었던 빵이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자주 애용했다.

-지, 지랄.

간편해서 좋아했는데, 맛이 중요한 라스에게는 최악의 음식인 모양이다. 폭발하기 전 화산처럼 녀석의 머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주동안 맛없는 빵으로 버티라니! 그게 말이냐! 방귀냐!

라스에게서 터져 나온 분노와 냉기가 라온을 휘감은 뒤 동굴 전체로 퍼져나갔다.

-차라리 여기서 죽여버리겠다! 네놈의 육체를 빼앗고 당장 뛰쳐 나가겠느니….

[<분노>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민첩성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어억!

‘어? 능력치 올랐다.’

라온이 메시지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능력치에 쌓인 경험치가 거의 끝이었는지 라스의 냉기와 분노를 받자마자 능력치가 상승했다.

‘시작이 좋네.’

라온은 휘파람을 불며 깊숙한 동굴로 들어갔고.

‘동굴에서 호구의 냄새가 나.’

-정말 지이이이랄 맞은 인생. 아니 마생이로다!

라스는 이곳에서도 평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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