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라온은 대자로 자빠져서 눈을 까뒤집은 가네트를 보고 쯧 혀를 찼다.
‘멍청하긴.’
자신의 검에 담긴 힘을 무시했는지 그는 멋을 부리며 검날을 살짝만 틀었다.
그런 허접한 기술이 통할 리가 없으니 그는 힘에 밀려 나간 본인의 검에 이마를 얻어맞고 저렇게 침을 질질 흘리며 기절해버렸다.
‘좀 재밌으려나 했더니 바보였네.’
라온은 부풀어 오른 가네트의 이마를 보다가 뒤를 돌았다.
“뭐, 이런….”
버렌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녹색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너 1년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그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힘만으로 상대의 흘리기를 무너뜨리는 장면에 경악한 것 같았다.
다른 중무전 검사들도 넋이 나간 듯 입을 떡 벌렸지만,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 이게 뭐야….”
“지 검에 지가 맞고 기절을 해?”
“저 멍청한 놈!”
“에휴!”
“쯧쯧.”
그들은 버렌과 다르게 가네트가 멍청한 짓을 했다며 한숨을 내쉬고 욕을 내뱉었다.
가네트가 멍청한 짓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저 자리에 이곳에 있는 누가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나오시죠.”
라온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훈련 교관 레프를 보며 고개를 틀었다.
“전 아직 몸도 안 풀렸습니다.”
“물론이다! 우리도 아직 시작 안 했어! 돌란!”
레프의 부름에 중간에 있던 청발의 검사가 일어났다. 체격이 좋아 힘 꽤나 쓸 것 같았다.
“네가 라온을 상대해라.”
“예!”
돌란이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거의 오크만 한 체격이라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실려 가는 가네트를 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저 멍청한 놈과 나를 똑같이 보지 마라. 방심했다가는 큰코다칠 거다.”
“원래 방심 같은 거 안 하는 성격입니다.”
“좋다. 와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박찼다. 가네트를 쓰러뜨렸을 때와 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 올린 검을 내리쳤다. 폭발하는 근력이 오롯이 담긴 검격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흥!”
돌란은 떨어지는 수련검이 최대의 힘을 받기 전에 막기 위해서 검을 들어 올렸다. 라온의 강한 근력을 대비한 좋은 방어법이었다.
‘그래도 안 되지만.’
라온은 검의 방향을 미세하게 틀었다. 중앙을 향하던 칼날이 반 마디 정도 올라간 채 돌란의 검으로 떨어져 내렸다.
캬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돌란의 수련검이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어억!”
돌란은 바스러지는 수련검을 보며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놀라기는 일렀다.
뻐어어억!
라온은 수련검을 재빠르게 돌려 면으로 돌란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돌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돌란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그 큰 덩치가 넘어가자 연무장에 깔린 모래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별 차이 없네.”
라온은 움찔거리는 돌란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자신의 힘은 충분히 경계했지만, 기술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검로를 약간 트는 것만으로 수련검의 약한 부분을 깨부술 수 있었다.
“오러도 없이 그 찰나의 순간에 약점을 찌른다고?”
버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봤는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저거 진짜 뭐 하는 놈이야….”
그렇기에 더 놀랐는지 본인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었다.
“흐음….”
버렌의 극찬을 들으며 검사들을 보았다. 돌란마저 일격에 쓰러질 줄은 몰랐는지 눈동자가 빙빙 돈다. 반쯤 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이번에도 일격에 끝났네요.”
라온은 어벙하게 선 레프를 보며 옅게 웃었다.
“다음 상대 부르시죠.”
* * *
북망산 중턱.
호랑이가 울부짖는 듯한 모습의 웅장한 바위 위에 글렌과 리메르가 대나무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가주님. 라온이 연수를 중무전으로 간 거 알고 계십니까?”
리메르는 품에서 꺼낸 서류를 흔들며 피식 웃었다.
“알고 있다.”
글렌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녀석이 왜 중무전에 간지도 알고 계십니까?”
리메르가 중무전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 미친 녀석 중무전에 시비를 걸러 갔습니다.”
“시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연수 1일 차에 사고를 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카룬이 대놓고 라온을 싫어하는 언행을 여러 번 보여주었지만,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온 지그하르트란 녀석은 까도 까도 다른 면이 나오는 양파 같은 아이였다.
“누구 제자인지 진짜 간도 크다니까.”
리메르는 스승이 참 잘생겼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웃었다.
“오늘 무얼 했길래 사고를 쳤다는 거냐.”
글렌이 처음으로 뒤를 돌았다. 빨리 말하라는 듯 눈매를 살짝 좁혔다.
“그 정신 나간 녀석이 오늘…에이, 말 안 할래요!”
“…….”
“가주님도 맨날 안 알려주시면서…크헉!”
말을 하던 리메르의 얼굴이 홱 돌아간 채 자빠졌다. 글렌이 참지 못하고 무형기로 얼굴을 후려쳐버린 것이다.
“끄으윽….”
리메르가 턱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었다. 제대로 맞았는지 세상이 핑핑 돌았다.
“때, 때려? 지금 때렸어요? 진짜 너무하네! 말 좀 안 했다고 무형기를 날리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또 맞기 싫으면 빨리 말해라.”
글렌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타올랐다. 빨리 말하지 않으면 정말 두 번째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아, 알겠습니다.”
리메르가 거친 숨을 뱉으며 일어섰다.
‘그렇게 손주가 소중하면 티 좀 내라고!’
라온 이야기를 안 해준다고 절대의 무학으로 얼굴을 후려치는 사람이면 직접 손주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계속 이러다가 말도 못 하고 끝날 것 같아서 불안했다.
“빨리 말해라.”
“라온 저 녀석 오늘 연수를 시작하자마자, 중무전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죄다 때려 부쉈습니다. 그리고….”
리메르는 라온이 중무전의 훈련 기구들을 신나게 부수고 달리던 검사들을 후려 패서 의무실로 보낸 것까지 말해주었다.
“힘으로 다 부숴놓고 싸구려니, 사기를 당했느니 하면서 우렉의 손을 빠져나갈 때 웃음을 참느라 아주 죽을 뻔했습니다!”
그는 우렉의 표정을 직접 봤어야 한다고 말하며 낄낄 웃었다.
훗.
“어? 가주님 방금 웃었죠!”
“웃기는 무슨.”
글렌이 고개를 돌렸지만, 살짝 올라간 그의 입매는 숨기지 못했다.
“밖에서 웃으시는 걸 보다니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시끄럽다.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카룬을 제외한 중무전의 강자들이 전부 임무에 나갔잖아요. 감시의 눈길을 피해서 담벼락에 붙어 있었죠.”
리메르는 별거 아니라는 듯 히죽 웃었다.
“어쨌든 라온은 정말 보면 볼수록 물건입니다. 적진에 대놓고 들어가서 사고를 치고 미꾸라지처럼 빠지다니, 가주님의 젊을 때보다 더해요.”
“그것도 전마대와 전뢰단이 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있었다면 진즉에 막혔을 것이야.”
“그래서 둘째 아드님도 내보내신 건가요? 손주 챙기려고?”
라온의 활약을 보고 돌아올 때 카룬이 호위들과 함께 중무전을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상황을 보니, 글렌이 그를 내보내는 것 같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전장에서 쓸데없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보냈을 뿐이다.”
글렌은 쓸데없다며 손을 저었지만, 그 반응만으로 진의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라온과 실비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라온이 복귀하니까. 진짜 하루하루가 재밌네요. 내일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기대되네.”
리메르는 이제 카룬도 없으니 대놓고 봐도 되겠다고 중얼거렸다.
“다음 사고는 이미 치고 있다.”
“예?”
글렌이 중무전이 있는 방향을 굽어보며 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은 겉멋과 이름값에 빠진 멍청이들을 후려 패고 있구나.”
* * *
쿠웅!
적발의 검사가 혀를 쭉 내민 채 연무장 밖으로 떨어졌다. 무거운 침묵으로 채워진 연무장 중심에서 라온이 피식 웃었다.
“다섯 번째.”
방금 쓰러진 검사까지 다섯을 똑같은 방식으로 쓰러뜨렸다.
육체 능력만이 아니라, 검술 실력도 라온이 위였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중무전 검사들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어….”
“이, 이거 꿈 아니야?”
“다섯이 내리 졌다고? 그저 검술로?”
“저게 검술이냐? 그냥 내려찍기지!”
“그 내려찍기를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이 다 못 막았잖아! 이 멍청아!”
대련을 지켜본 사람들은 더이상 라온에게 쓰러진 검사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보다 라온의 검과 육체 능력이 위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체 저 녀석은 뭐야….”
“레이든이랑 싸울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분 성에서 무슨 일을 겪고 온 거지? 그 소문이 다 진짜인가?”
“젠장! 오러 없이는 이길 수 없겠어….”
검사들은 라온을 힐끔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다들 그와 대련하기 싫어하며 고개를 숙였다.
“허….”
버렌이 헛바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눈썹이 축 내려갔지만 녀석의 눈은 퍼렇게 번쩍이고 있었다.
오러 없이 힘이 가득 담긴 내려치기를 파훼할 방법을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이곳에서 자신에게 투쟁심을 가진 건 버렌이 유일했다.
“다음 없습니까.”
라온이 검을 어깨에 걸치고 다음 사람을 불렀지만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없으면 그만….”
“내가 해도 되나?”
입맛을 다시며 대련장에서 내려가려 할 때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한쪽 머리로 눈을 가린 청년이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당신은….”
특이한 머리 모양과 다른 검사와는 질이 다를 정도로 꽉 짜인 기도. 주디엘의 서류에 있던 이름이 기억났다.
‘호라인.’
중무전 전뢰단의 두 명의 부단주 중 한 명인 호라인이었다. 익스퍼트 상급을 뛰어넘었다고 하던데 확실히 지금까지의 검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파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괜찮군.’
드디어 상대할 만한 사람이 나타났다. 라온이 몸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시원하니 좋네.”
그는 피식 웃으며 대련장으로 올라왔다. 뒤에 아까 보았던 총관 우렉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다른 곳에서 수련하던 호라인을 불러온 것 같았다.
“오러 없이 싸우는 거지?”
호라인은 스스로 청주석 팔찌를 착용하면서 물었다.
“예.”
“이것도 나름 재밌지.”
그 말을 하며 수련검을 뽑아 들었다.
“선수를 양보하지.”
“호, 호라인 님!”
“안 됩니다! 일격에 당할 수도 있다구요!”
선수를 양보하겠다고 하자 중무전 검사들이 우르르 나와 호라인을 말렸다.
“멍청하긴. 중무전 딱지를 단 너희들이 그렇게 당했으니까. 선수를 양보하는 거다!”
호라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중무전 검사들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와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라온이 연무장이 울릴 정도로 거세게 땅을 박찼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호라인의 공간을 찢고 들어가 검을 내리쳤다.
치이잉!
지금까지 한 명도 막지 못한 검격이었지만, 호라인은 검을 정확한 순간에 비틀어 완벽하게 흘려냈다.
“와, 힘 하나는 엄청나네. 어깨 빠질 뻔했어.”
여유롭게 웃으며 휘돌린 검을 내질러왔다.
우우웅!
오러가 깃들지 않았지만 검끝이 흔들린다. 노리는 방향을 잘못 정하면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변화의 검술이었다.
‘자존심이 강하다고 했지.’
주디엘의 정보에 의하면 호라인은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노릴 곳은 뻔했다.
쩌어엉!
라온은 연성검술을 펼쳐서 호라인의 검이 노렸던 이마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꼭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막는군.”
“뻔하니까요.”
“건방지네.”
호라인의 눈동자가 사납게 번들거렸다. 늑대처럼 허리를 뒤로 젖힌 뒤 도약해 검을 내리찍는다. 이번에도 검극이 흔들리며 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검술 특징인 것 같았다.
라온은 물러서지 않고 안력을 집중했다. 바람맞은 풀잎처럼 흔들리는 검극의 변화가 가장 줄어드는 건 공격하기 바로 직전이었으니까.
‘지금!’
검극의 변화가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든 순간 라온의 검이 빛살처럼 튀어 나갔다.
쩌어엉!
변화를 담은 검격을 빗겨 내버린 수련검이 호라인의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복부를 노렸는데, 그 사이에 공중에서 몸을 틀어 닿는 정도에서 그치다니, 괜히 부단장이 아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라고 했지?”
호라인은 찢겨나간 옆구리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너 정상이 아니네.”
키득 웃으며 다시 달려든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다채로운 보법. 분명 앞에 있건만 우측과 좌측에서도 그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미 본 거야.’
힘보다 더 높은 수치의 감각은 오러로 기감을 열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라온은 감각이 말하는 방향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캬아아앙!
다가와 기습을 하려던 호라인이 다급하게 검을 휘돌려 방어했다.
‘이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지.’
쾌속한 걸음으로 물러서는 호라인을 쫓으며 광아검을 연달아 펼쳤다. 먹잇감의 뒤를 노리는 맹수의 발톱처럼 사나운 검격이 뻗어나갔다.
컁! 캬갸갸강!
호라인은 한 번 밀린 수세를 뒤집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어만 해댔다.
“미친….”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그의 표정엔 확연한 당황이 어렸다.
그가 익스퍼트의 끝이라면 자신도 끝이다. 육체 능력은 이쪽이 위니 밀릴 이유가 없었다.
후욱!
라온은 호라인의 불안을 들이마시며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쩌어어엉!
쇳덩이가 뭉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호라인의 검이 튕겨 나가 바닥에 박혔다.
….
연무장에는 이제 숨 소리조차 내는 사람이 없었다. 호라인을 데려온 우렉도, 심판을 보던 레프도, 이를 악물고 지켜보던 버렌도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허, 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당사자인 호라인이다. 믿을 수가 없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너 정말 오러 없이 싸우는 거 맞냐? 힘이 무슨 오우거 수준이야.”
호라인은 떨리는 손목을 부여잡으며 자신의 이곳저곳을 훑어내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허억! 호, 호라인 님도 졌다고?”
“이게 말이 돼?”
“이제 막 검사가 된 녀석인데….”
“어….”
구경하던 검사들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흐음….”
호라인은 미소를 유지한 채 검사들을 쭉 둘러보다가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내가 진 건 진 건데. 2차전 안 할래?”
그가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 어깨에 걸쳤다.
“핑계가 아니라, 내 검술은 오러에 꽤 많이 의지하거든. 어때?”
그 말 그대로다. 그는 변검과 환검을 사용하는 검사. 오러를 사용한다면 차원이 다른 수준이 될 것이다.
“좋습니다.”
“시원한 것도 마음에 드는군. 듣기와는 딴판이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라인 씩 웃으며 청주석 수갑을 벗었다. 오러를 막고 있던 둑이 부서지자, 그의 기세가 피부를 짓누를 정도로 압도적인 파동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
호라인의 기파는 흡사 살아 있는 생물처럼 대련장을 넘어 연무장 전체를 휘감아버렸다. 역시 나 익스퍼트 최상급. 마스터를 바라보는 무인다웠다.
‘거기다.’
그의 오러는 평범하지 않았다. 루난과 비슷한 냉기를 품고 있는 속성의 오러. 연무장의 열기가 그의 오러에 밀려 차게 가라앉았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
호라인은 턱을 모로 세우며 입매를 끌어 올렸다. 오러만 있다면 무조건 이기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회?”
라온이 피식 웃으며 청류석에 억눌려 있던 만화공을 끌어 올렸다. 이글거리며 치솟은 적광의 불꽃이 연무장에 가득 깔린 냉기를 짓눌렀다.
쿠구구구!
그의 발밑에서 번져가는 불꽃의 파도가 돌조각과 모래를 녹여 내리며 공간을 휘감았다.
“무슨….”
자신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막대한 기파에 호라인의 눈동자가 파랑을 맞은 배처럼 뒤흔들렸다.
“오러가 있으면 이길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라온의 눈동자에 시뻘건 휘광이 어렸다. 적염으로 타오르는 검을 들어 호라인을 겨누었다.
“오십시오. 누가 후회하는지 알려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