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3화 (153/653)

제153화

버렌 지그하르트는 당당하게 손을 들고 있는 라온을 보며 눈을 세게 비볐다.

‘내가 잘못 봤겠지.’

라온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을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는 중무전에 연수를 신청할 리가 없다. 잘못 보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그대로다. 라온은 당당하게 손을 들고 있었다.

“너 뭐 하는 짓…억!”

라온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할 때 옆에서 루난과 마르타가 치고 들어와 또 바닥으로 밀려났다.

“라온. 거기 가면 안 돼.”

“너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가!”

두 사람은 라온을 말리려는 듯 그의 손을 억지로 내렸다.

“이 정신 나간 자식들아! 난 보이지도 않는 거냐!”

버렌은 가문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화를 냈다. 어제부터 3번을 치이다 보니 마이코 상회주 레니튼에게 배웠던 안정된 마음가짐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꺼져!”

악을 지르며 라온에게 달라붙은 루난과 마르타를 어깨로 밀어버렸다.

“응?”

“이게 미쳤나!”

“미친 건 너희들이지! 멧돼지도 아니고 왜 자꾸 들이박는 건데!”

“멧돼지는 너야.”

“앙? 뒤지고 싶어?”

“망할 것들이!”

세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라온.”

리메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너 정말 중무전으로 갈 거냐?”

“예.”

라온은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재밌겠는데.”

리메르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종이에 라온의 이름을 적었다.

“자, 잠깐 멈춰!”

버렌이 으르렁거리는 루난과 마르타의 틈을 비집고 나와 라온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다만 다시 생각해라. 중무전은 널 환영하지 않아.”

진심 어린 충고다. 아버지는 대놓고 라온을 싫어하신다. 중무전에 간다면 분명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라온. 나랑 가자.”

“가서 얻어터지지 말고, 이쪽으로 오던가.”

루난과 마르타도 라온이 걱정되었는지 손을 뻗었다.

“고맙지만 괜찮아.”

라온은 루난과 마르타에게 손을 저었다.

“그리고 네가 그런 말을 하니 확실히 웃기긴 하네.”

그는 벙쪄있는 버렌에게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장난이 아니란 말이다! 연수는커녕 괴롭힘만 당할 수도 있어!”

“걱정 마.”

라온이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    *      *

“전주님!”

중무전의 살림을 담당하는 총관 우렉이 당황한 발걸음으로 카룬의 집무실을 들어갔다.

“내가 한동안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중무전주 카룬 지그하르트의 목소리가 낮게 울린다. 어제 리메르와 라온에게 망신을 당했던 짜증이 남아 있는 상태인지, 표정이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죄송하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우렉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가져온 서류를 카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신입 검사 연수 서류? 이딴 게 중요하다고?”

“여길 보십시오. 라온 지그하르트가 연수 장소로 저희 중무전을 선택했습니다. 이놈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 개새끼가!”

카룬이 주먹을 움켜쥐자, 그의 손에 쥐여 있던 종이가 회색 재가 되어 휘날렸다. 지진이 난 듯 중무전 전체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이 자식. 저희를 무시하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무전을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우렉이 이를 바득 갈았다. 카룬이 여러 번 싫어하는 티를 냈음에도 연수 장소로 이곳을 결정한 건 무시한다는 뜻이 확실했다.

“어떻게 할까요? 계속 신경을 쓰시느니, 이 기회에 그냥….

우렉이 손날을 세워 본인의 손목을 그었다. 라온을 폐인으로 만드냐고 묻는 제스처였다.

“멍청한 놈.”

카룬이 우렉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지금 그 쥐새끼는 가문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그놈을 따로 부르셨을 정도인데, 여기서 불구로 만들자고? 여론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이나 하고 떠드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렉이 어깨를 움찔거리고서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역시 대단한 분이야.’

카룬은 분노한 와중에도 상황을 한 면에서만 보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살폈다. 지그하르트의 대형 세력 중 하나인 중무전을 맡을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평범하게 연수시킨다면 다른 검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겁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꼭 칼만 있는 건 아니지.”

“아!”

“놈에게 중무전 훈련의 무서움을 알려주어라. 대놓고 망신시켜서 놈이 별 게 아니라는 걸 퍼뜨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놈의 정보를 모아라. 오러 없이 어느 정도로 싸울 수 있는지, 현재 무력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약점은 무엇인지 전부 파악해.”

카룬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으로 번쩍였다.

“예! 그런데 그 방법은 어떻게…헉!”

“그것까지 내가 알려주어야 하나?”

그의 목젖이 야수처럼 으르렁댔다.

“아, 아닙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부러질 정도로 허리를 굽히고 집무실을 벗어났다.

“후우욱….”

“총관님.”

우렉이 이마에서 줄줄 떨어지는 식은땀을 닦으며 복도를 나왔을 때 머리가 깔끔하게 벗겨진 중년인이 옆으로 다가왔다. 중무전의 훈련을 담당하는 훈련교관 레프였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 망할 자식에게 중무전의 무서움을 보여주라고 하셨다. 다시는 이곳을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망신을 주고, 놈의 무학에 대한 정보를 모아.”

“알겠습니다!”

레프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방법은….”

“내가 그것까지 알려줘야 해?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거 아니야! 왜? 밥도 떠먹여달라고 하지?”

우렉은 카룬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레프는 경례를 하듯 손을 올리고서 밖으로 뛰어갔다.

“그 망할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부하에게 짬을 때린 우렉이 짜증이 가득 찬 표정으로 이를 바득 갈았다.

“걸리기만 해봐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주지.”

*    *      *

사흘 뒤.

신입 검사 연수가 시작되었고, 라온은 중무전 연무장에 들어와 있었다.

‘넓군.’

중무전 연무장은 대연무장정도는 아니어도 5 연무장의 2배는 될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 훈련장이나, 연공실만이 아니라, 최신 훈련 기구들도 가득해서 단련하기 좋아 보였다.

연무장 곳곳에서 훈련하고 있는 검사들의 수준도 높다.

전마대와 전뢰단이 빠졌는데도 한 명 한 명의 성취가 뛰어났다. 괜히 가장 용맹한 무력 단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결국 왔구나.”

뒤에서 다가온 버렌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널 여기서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듯 눈빛이 가라앉아 있었다. 가끔 폭발하긴 하지만 성격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설마 죽이겠어.”

“그러진 않겠지만, 분명 널 여러 방향으로 괴롭힐 거다.”

“그렇겠지.”

그걸 위해서 여기에 온 거니까.

라온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강한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만….”

“모두 정렬!”

버렌이 다시 말을 하려고 할 때 덩치가 큰 민머리의 중년인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검을 휘두르던 중무전의 검사들이 훈련을 멈추고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훈련 교관님을 뵙습니다!”

중년인은 그들의 인사를 손으로 받으며 라온과 버렌을 굽어보았다.

“중무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신입 검사들.”

그는 차가운 눈빛을 뿜어내며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레프. 중무전의 훈련교관이다. 이곳에 신분 따위 없다. 전주님의 제자나, 아들이라고 해도 열외는 없으니 각오하도록.”

공평해 보이는 말과는 달리 서늘한 눈빛을 쏘아내는 건 오직 라온에게만이었다.

“그럼 자기소개부터 하도록.”

“예!”

버렌이 먼저 앞으로 나왔다.

“버렌 지그하르트입니다. 이번 연수에서는 중무전주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신입 검사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오오오오!”

“와아아!”

주변에 모여든 검사들이 박수를 보내며, 환호를 터트렸다.

“다음.”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버렌이 있던 자리로 갔다.

“라온 지그하르트입니다. 지그하르트 무력 단체 중 가장 용맹한 곳이 중무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용맹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평범한 인사말이었지만, 환호는커녕 불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중무전주 카룬과 여러 번 부딪쳤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아예 적진이로구나.

라스는 마음에 드는 공기라며 키득거렸다.

-까불다가 얻어맞는다면 더 시원하겠노라.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라온은 사납게 쏘아져 오는 검사들의 기세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슬로스의 압도적인 기파에 비하면 이 정도는 불쏘시개만도 못했다.

“음.”

“이런….”

“아예 안 먹힌다고?”

중무전의 검사들은 평온하게 서 있는 라온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눈매를 좁혔다.

“그럼 훈련을 시작하지.”

레프가 단상 아래로 내려와 밑에 있는 커다란 상자를 열었다. 푸른빛으로 번들거리는 수갑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건 착용자의 오러를 통제하는 수갑이다. 본래 강력한 범죄자들을 잡아두기 위한 물건이지만 우리는 이 수갑을 이용해서 육체 단련을 진행한다. 이런 귀한 물건을 수련에 사용하는 곳은 우리 중무전뿐이니 영광으로 알도록.”

그는 수갑을 가지고 와서 직접 라온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이 수갑은 단단하기 그지없는 청주석으로 만들었다. 무투가도 맨손으로는 부술 수 없으니 쓸데없는 짓은….”

캬앙!

레프가 설명을 계속하려고 할 때 쇳덩이가 부서지는 듯한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돌아보니, 방금 라온의 손목에 채워준 팔찌가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왜 부서져!”

“그냥 좀 만지니까 부서지던데요?”

라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말이 돼? 그건 청주석으로 만든 쇳덩이란 말이다!”

“진짜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끄으윽….”

레프가 턱을 떨었다. 청주석은 검을 만들 때도 사용하는 단단한 광석이다. 오러가 통제된 상태에서 손으로 저 두꺼운 쇳덩이를 부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다시. 다시 해봐.”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라온에게 두 번째 청주석 수갑을 채웠다. 힘이 트롤이나, 오우거가 아닌 이상 이걸 부술 수는 없을 것이다.

“흠!”

라온은 수갑을 쓱 문지르다가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수갑의 접합부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더니 그대로 깨부숴져 땅에 떨어졌다. 그는 왼쪽 손목에 있는 수갑도 비슷한 방법으로 뭉개버린 뒤 바닥에 던졌다.

“어….”

레프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게 말이 돼?’

라온은 길쭉길쭉한 정형적인 검사의 체격을 가졌다. 무투가도 맨손으로는 부수지 못했던 저 수갑을 어떻게 깨부순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못 믿으시니, 더 해볼까요?”

그는 씩 웃으며 수갑을 보관하는 상자로 다가가 양손으로 수갑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 그만!”

레프가 다급하게 달려갔지만, 수갑은 이미 라온의 손에서 생을 다한 채 조각이 나 버렸다.

“그거 더럽게 비싼 거라고!”

*    *      *

라온은 새로 착용한 청주석 수갑을 보며 옅게 웃었다.

‘오러는 막지만, 근력을 막을 수는 없지.’

청주석 수갑은 단전에 있는 오러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가진 근력을 억제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근력과 민첩성은 마스터인 밀랜드에게도 인정받을 정도로 규격을 벗어난 상태다.

대련 이후에도 꾸준히 수련했고, <나태>의 잠만 자도 강해지는 능력이 계속 운용되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힘은 대형 몬스터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청주석 수갑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접합부를 짓누르면 얼마든지 깨부술 수 있었다.

“끄윽!”

“미친….”

“뭐, 뭐 하는 놈이지?”

중무전 검사들은 경악한 눈동자로 자신의 손을 힐끔거렸다.

“제, 젠장….”

훈련 교관 레프는 조각이 난 세 쌍의 청주석 수갑을 보며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비싸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힘으로 부쉈을 리가 없어.”

“손기술이겠지.”

“하분 성에서 잡기를 배워 온 건가?”

다만 레프와 검사들은 자신이 힘으로 수갑을 부순 게 아니라, 어떤 기술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오러가 통제된 인간의 힘으로 쇳덩이를 어떻게 깨부수겠느냐!

라스는 능력치의 힘으로 주목을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를 갈았다.

‘능력치의 힘이 대단하긴 해.’

-흠! 사실 본왕의 힘은 이 정도가 아니니라.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 그저 손을 대는 것만으로 마계에서 가장 큰 산을 무너뜨렸던 ….

‘훈련은 뭘까.’

-이 자식아! 좀 들어! 네놈의 그 잘난 힘은 전부 본왕 때문이라고!

꽥 소리를 지르는 라스를 무시하고, 한숨을 푹 내쉰 뒤 일어서는 레프를 보았다.

“후, 훈련을 계속한다. 지금부터 몸풀기로 연무장을 달린다. 선착순 20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기합을 받을 테니, 전력을 다해서 뛰는 게 좋을 것이야.”

그는 준비하라는 듯 검사들을 차례로 시선을 주다가 라온에게서 멈춰 섰다.

“넌 그 수갑 부수지 마라. 절대로.”

“그러죠.”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뛰어!”

레프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노려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모여 있던 검사들이 들소처럼 달려 나갔다.

“음?”

라온도 그 신호를 받고 뛰었지만, 앞과 뒤 양옆이 건장한 검사들에게 막혀서 나아갈 방법이 없었다.

퍽! 뻐억! 빠악!

그들은 뛰는 척하면서 어깨와 팔, 팔꿈치로 자신의 몸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 미안.”

“작아서 안 보였어.”

“그런 말을 하면 쓰냐.”

검사들은 낄낄거리고 비웃으면서 계속 전신을 두드렸다.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단련된 검사들의 육체가 연달아 부딪쳤기 때문에 몸이 휘청였고, 통증도 상당했다.

“아이고, 미안하다.”

녹색 머리 검사 하나가 팔꿈치로 목 부분을 세게 치고서 히죽 웃었다. 노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상위 그룹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저….”

상위 그룹에 있던 버렌이 뒤를 돌아보며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으니 먼저 가.”

이런 거라면 절대 안 지니까.

라온은 버렌에게 서늘한 미소를 지어주고서 속도를 낮췄다. 팔꿈치로 허리를 노리는 빨간 머리 검사의 가슴을 어깨로 찍어버렸다.

“끄허헉!”

빨란 머리 검사는 해머에 후려 맞은 듯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뭐, 뭐야….”

“아니 이게 무슨….”

옆과 뒤를 막고 있던 검사들은 말이 안 되는 광경을 보고 눈동자를 떨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자신의 키와 체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조금 전 덩치보다는 작았으니까. 하지만 상태창 능력치의 보정을 받는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익!”

우측에 있던 검은 피부의 검사가 몸 크기로 짓누르려는 듯 어깨를 밀쳐왔다.

“그걸로는 안 될 텐데.”

“커흑!”

차게 웃으며 놈과 어깨를 맞부딪쳤다. 근력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검은 피부의 검사가 벽에 부딪힌 참새처럼 찌그러져 머리가 바닥에 꽂혔다.

“이제 안 쳐?”

라온은 계속 건드려왔던 놈들을 차례로 훑어내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으음….”

“치, 치다니 무슨….”

두 명이나 나가떨어졌기 때문인지 검사들의 눈동자가 태풍을 맞은 돛단배처럼 떨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이 탁 풀린 상태였다.

“안 오면 내가 가주지.”

라온이 속도를 높이며 지금까지 자신을 건드렸던 검사들을 어깨와 팔꿈치로 후려쳤다.

퍼버버벅!

마스터가 인정한 육체능력이 열화처럼 폭발하며 주변에 있던 검사들을 휩쓸었다.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한 익스퍼트 급의 검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시비를 걸던 검사들을 때려눕히고도 라온은 멈추지 않았다. 길을 막고 있던 검사들까지 모조리 날려버렸다.

“말했잖아.”

라온은 멍하게 다리만 움직이는 버렌을 보며 빙긋 웃었다.

“괜찮다고.”

*    *      *

“아….”

레프는 바닥에 찌그러진 스무 명의 검사들을 보며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저, 저 괴물은 뭐야!’

라온은 체질 때문에 어려서부터 많은 영약을 먹어서 오러의 질과 양이 뛰어나게 되었다는 정보가 있었다.

오러만 막아놓으면 아무것도 못 하리라 생각해서 청주석 수갑을 준 것인데, 저놈은 수갑을 끼고도 본인보다 훨씬 큰 검사들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키가 190 내외인 검사들이 170 후반인 라온에게 공처럼 튕겨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미친….”

라온은 결국 주변에서 있던 검사들만이 아니라, 길을 차단하던 검사들까지 후려 패버리고, 상위 그룹까지 파고들었다.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 그만! 그만 달려! 라온!”

레프가 앞서 달리던 녹발 검사를 팔꿈치로 후려치려던 라온을 불렀다.

뻐어어억!

하지만 라온은 못 들은 척 팔꿈치로 끝까지 내질렀다. 뒤통수에 팔꿈치가 박힌 녹색 머리 검사가 꽥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자빠졌다.

“아, 재밌네. 이런 구보는 처음이지만 즐거워.”

라온은 설원에 깔린 낙엽처럼 축 늘어진 검사들을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다 끝났는데. 다음은 뭐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쪽을 보며 들뜬 눈빛을 보냈다.

“크으, 이쪽으로 와라.”

레프는 입술을 질겅 씹고서 검사들과 라온을 데리고 연무장 우측으로 갔다. 검을 쥐고 있는 사람 형태의 인형 여덟 개가 원을 그린 채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다수의 상대와 싸울 때를 대비한 전투 훈련이다. 직접 보여주지.”

그는 가운데 있는 버튼을 누르고서 인형들 사이로 들어갔다.

끼기기긱!

인형들이 무언가 비틀린 듯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소리와 다르게 인형들의 움직임은 기름칠한 듯 매끄러웠다.

치이잉!

검을 쥔 인형들의 손이 쾌속하게 움직인다. 평범한 움직임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검술의 흐름이 담겼다.

후우우웅!

인형 여덟 개가 동시에 움직였지만 서로 방해하지 않고, 동시에 레프의 급소를 노렸다.

“흥.”

레프는 바위처럼 단단한 검술과 무거운 보법을 펼치며 인형들의 공격을 차례로 막아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인형들이 저절로 멈춰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방어하는 훈련이다. 라온. 할 수 있겠나?”

“예.”

라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레프가 인형들의 중심에서 서서 수련검을 뽑았다.

‘멍청한 놈.’

레프가 차게 웃으며 인형들의 난이도를 최고로 올렸다. 익스퍼트라고 해도 오러가 없다면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높은 수준이었다.

“시작한다.”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인형들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며 라온에게 검을 내질렀다.

“이것도 재밌겠네.”

라온의 눈동자를 시뻘겋게 불태우며 검을 내리쳤다.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터지며 인형의 검과 대가리가 와사삭 쪼개졌다.

“어억….”

그게 전부가 아니다. 라온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인형이. 특수 제작하여 하나에 금화 200개가 넘는 인형들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일격에 부서져 버리니 난이도를 올려도 의미가 없었다.

뿌드득!

두 번째 인형의 몸이 갈대처럼 꺾이고, 세 번째 인형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머, 멈추….”

멈추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너무 놀라서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말을 못 한 그 짧은 순간에 라온은 인형 여덟 개를 모조리 부수고 이마를 쓸어내렸다.

“이거 재밌는데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았다.

“더 없습니까?”

“크윽!”

그 잘생긴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    *      *

중무전 총관 우렉은 본인의 널찍한 사무실 책상에서 꽃을 다듬고 있었다. 덩치나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의 취미가 바로 꽃꽂이였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꽃다발을 보고 있자면 전주에게서 쏟아지는 막말과 무능한 부하들에게서 올라오는 스트레스가 모두 잊혀졌다.

특히나 지금은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점심 직전의 시간.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섬세하게 꽃을 다듬고 꽃병에 배치했다.

“이건 제법….”

“총관님!”

우렉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익….”

그 소음 때문에 손이 흔들려 딱 맞게 조화시켰던 꽃의 배치가 어질러졌다.

“레프! 이 미친놈아! 노크는 하고 문을 열어야 할 거 아니냐!”

“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급한 일이라….”

레프는 식은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급한 일? 급한 일이 뭔데. 별거 아니면 넌 뒈질 줄 알아.”

우렉은 혀를 차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말씀하셨던 라온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왜? 너무 심하게 건드린 건 아니겠지.”

가주나 다른 대주들의 시선이 라온에게 쏠려 있기에 심하게 패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적당히 망신시키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의 상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 새끼 파괴왕입니다!”

레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전부 부수고 다닌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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