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0화 (150/653)

제150화

지그하르트 5 연무장.

1년간 텅 비어 있던 피와 땀의 모래판은 복귀한 수련생들로 인해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해가 지나 17살이 된 수련생들의 키는 한 뼘 이상 자라났고, 외모는 성숙해졌으며, 서 있는 자세에서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쳐 흘렸다.

그중 백미는 눈빛. 스스로 이뤄낸 성취와 쌓아 올린 업적이 거울이 되어 이전과는 격이 다른 기세를 뿜어냈다.

다만 1년의 생존 시험을 통과하고, 교관들의 인정까지 받아 검사의 자격이 확정된 수련생들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특히 버렌, 루난, 마르타의 표정은 다른 수련생들보다 더 구겨진 상태였다.

“이 자식. 어디 가서 뭘 하길래 지금까지 안 오는 거야!”

건장한 남성보다도 체격이 좋아진 버렌은 가뜩이나 내려간 눈썹이 눈과 맞붙을 정도로 이마를 찡그리고 있었다.

“대체 뭔 짓을 하느라, 졸업식 전날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냐고!”

그는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며 연무장을 끊임없이 돌았다.

“라온….”

설원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루난은 청명한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며 라온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바로 옆에 있어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라온 왜 안 와. 라온 어디 있어. 같이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품에 구슬 아이스크림 통은 든 채 맹하게 연무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흥. 조금 강해졌다고 까불다가 얻어터져서 못 오는 걸지도 모르지.”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가 선명하게 대조되어 이제 완연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마르타가 코웃음을 쳤다. 다만 본인이 말하고서도 무언가가 불안한지 눈동자를 두르륵 굴린다.

“안 오면 차라리 잘 됐어. 그 쪼그마한 녀석 대신에 내가 대표로 나가면 되니까.”

비웃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지만, 이것도 억지인지 입매가 가늘게 떨렸다.

“이 답답한 자식.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라온은 와.”

루난이 어색하게 웃는 마르타에게 다가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맹했던 눈빛에 믿음이 깃들었다.

“뭐?”

“라온은 온다고.”

“올 거라면 진작 왔겠지. 이미 늦었어.”

마르타가 턱을 모로 틀었다. 그녀도 말이 씨가 되는 게 무서운지 그 이상 심한 말은 하지 않았다.

“진 게 쪽팔려서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걸.”

“안 졌어! 곧 와!”

“안 와!”

“와!”

“안 와!”

“와!”

은발과 흑발. 서로 대비되는 머리 색의 루난과 마르타가 마주 보며 으르렁대자, 두 사람의 주변으로 암녹색 스파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연무장에 있는 수련생들은 두 사람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런 대립이 거의 한 달째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라온이랑 도리안은 왜 안 오는 거지?”

“정말 오다가 사고라도 난 거 아니야?”

“에덴을 만났다던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수련생들은 수련하거나, 대화하면서 끊임없이 라온을 생각했다.

처음 이 자리에 모여 그를 비웃을 때와는 천지차이로 달라진 모습. 1년이 지났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라온을 진심을 따르고 있었다.

콰아앙!

모두가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검을 휘두를 때 연무장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불꽃 같은 머리를 휘날리는 리메르가 들어왔다.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진 바람을 일으키며 수련생들의 앞에 섰다.

“왜 다들 눈이 풀려 있냐? 잠 못 잤어?”

리메르는 특유의 가벼운 눈빛으로 수련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교관님. 문은 발로 여는 게 아닙니다.”

“응. 내 거야.”

그는 인상을 찌푸린 버렌을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크으윽….”

틀린 말은 아니라, 버렌은 이를 갈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나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바로 내일이 졸업식이야. 가문의 높은 녀석들이 전부 나와서 너희를 볼 텐데, 그런 멍청한 모습을 보일 거냐? 다들 정신 좀 차려.”

리메르는 집중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라온이 안 와요.”

어깨를 축 내린 루난이 손에 쥔 구슬 아이스크림 상자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씀대로 내일이 졸업식인데 라온 그놈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겁니까! 정말 납치라도 당한 거 아닙니까?”

버렌은 단상을 물어뜯을 것처럼 다가와 인상을 구겼다. 푸른 눈동자에 걱정이 가득 담겼다.

“안 오면 마는 거지. 뭘 그리 찾는 거야! 없어서 편한데.”

마르타가 팔짱을 끼며 차게 웃었다. 겨드랑이에 숨긴 손이 바르르 떨렸다.

“하아, 한심하네.”

리메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는 라온이랑 몇 년을 같이 살아놓고 아직도 걔를 모르냐. 그 녀석이 어디 가서 얻어맞거나 납치를 당할 거 같아?”

“라온이 강하다고 해도 우리 수준에서 강한 것이지 않습니까! 아니, 딱히 걱정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볼 필요 없습니다. 그저 동기로서 라온과 도리안을….”

버렌은 라온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또래 중에서 강하다라….”

리메르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 뭔가 아는 표정인데?”

“교관님! 라온 어디 있는지 아시죠?”

“그 녀석 왜 안 오는 거예요!”

“도리안도 같이 있는 거죠!”

“교관님!”

수련생들이 사탕을 본 개미 떼처럼 리메르에게 달려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아이스크림 상자를 든 루난이 있었다. 거의 리메르의 멱살을 쥘 기세였다.

“내가 라온이랑 도리안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겠냐. 다만 그 녀석들은 분명 멀쩡하게 돌아올 테니까.”

리메르가 슬쩍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너희는 마음 놓고 내일 졸업식이나 준비해.”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수련생들을 진정시킨 후 다시 연무장을 나갔다.

“저 말이 맞긴 해.”

“라온은 머리도 잘 돌아가잖아. 별일 없을 거야.”

“도리안은 뭔 일이 있어도 숨어 있을 테고.”

“그래. 사정이 있겠지.”

“저런 말을 하니까. 교관님도 좀 멋있어 보이네.”

수련생들은 리메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1년간의 생존 시험은 헛된 게 아니었는지 집중을 시작하자 예리한 기세가 연무장 전체에서 치솟았다.

*     *      *

“도와줘요! 로엔 님!”

리메르는 울상을 지은 채로 북망산 중턱에 있는 로엔의 소매를 붙잡았다.

“라온이랑 도리안은 대체 왜 안 오는 겁니까! 어디 박혀 있는 거예요! 내일이 졸업식인데!”

그는 연무장에서 보였던 덤덤한 태도와 달리 조급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로엔의 어깨를 흔들었다.

“천검대가 지키고 있어서 비연회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천장에도 가시를 박아 놨더라구요!”

“가시….”

“그 녀석이 제일 늦게 떠났다고 해도 한 달 전에는 도착했어야 했는데, 대체 왜 안 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후우.”

로엔은 매달리는 리메르를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몇 달 전 비연회 사무실 천장을 뚫고 들어가 라온의 정보를 빼냈다가 글렌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졌다. 그날 이후로 비연회에는 천검대 검사들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리메르 님 때문에 제게도 라온 도련님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 아직도요?”

“네. 가주님께서는 라온 님의 정보를 특급보다 더 위로 치고 계십니다.”

“어휴, 그렇게 소중한 손자면 좀 앞에서 챙기지.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맨날 뒤에서만 보고 있냐고.”

리메르가 툴툴거리며 바닥에 있는 돌을 걷어찼다.

글렌은 라온이 아기였을 때도, 만화공을 익힐 때도 항상 옆에 있었으면서 티를 내지 않고 관심 없는 척했다. 늙으면 고집만 세진다더니, 정말 쇠심줄 같은 고집이다.

“저도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로엔이 씁쓸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리메르처럼 글렌과 라온, 실비아가 가족처럼 지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정보 하나는 있습니다.”

“정보요?”

“예. 라온 님이 돌아오신다는 보고가 들어온 후 일주일 뒤에 천검대 검사들이 하분 성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어, 그건!”

“예. 라온 도련님과 에덴에게 위협을 받았다는 그 여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겠죠. 그 이후에 가주님이나 천검대에 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별문제는 없다는 뜻일 겁니다.”

“오호!”

가라앉았던 리메르의 표정이 마법등을 켠 듯 한순간에 밝아졌다.

“그럼 제대로 알아봐야겠네요.”

“예?”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가주님을 좀 떠보죠.”

“자, 잠시만요! 그랬다간….”

“에이, 괜찮아요.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먼저 갑니다!”

로엔이 말리기 전에 리메르가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바람의 기운을 운용한 채 가주전으로 달려 내려갔다.

어느새 가주전의 입구로 도착한 리메르가 히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으음….”

로엔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가주전으로 들어간 붉은 머리 엘프의 미래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잠시 후 예상대로 가주전이 들썩이고, 안쪽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로엔은 리메르의 명복을 빌며 눈을 감았다.

*     *      *

지그하르트 별관.

라온이 떠난 이후에도 밝음이 남아 있던 그 따스한 공간은 겨울바람을 직격으로 맞은 듯한 서늘함이 깊게 박혀 있었다.

“하아….”

“대체 왜 안 오시는 거지?”

“다른 분들은 다 돌아왔는데….”

“라온 도련님….”

화단을 정리하던 시녀들은 땅이 꺼질 것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5 연무장 수련생 중 홀로 돌아오지 않은 라온 때문에 별관의 분위기는 초상집 그 자체였다.

“한숨 그만 쉬고, 빨리 끝내자.”

가라앉은 시녀들의 목소리와 달리 평온한 음성이 찬 공기를 누그러뜨린다.

“얼마 안 남았잖아.”

실비아다. 풍성한 금발을 왼쪽 어깨로 내린 그녀가 정원 가위로 화단을 손질하면서 옅게 웃었다.

“마님….”

“죄, 죄송해요.”

시녀들은 미소 짓는 실비아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 누구보다도 힘든 사람이 가장 밝은 모습을 보이니 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마, 맞아. 도, 도련님은 곧 오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헬렌이 실비아의 옆에 쪼그려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실비아와 다르게 얼굴빛이 푸르딩딩하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라온이 약속했잖아.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우린 그 아이가 돌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게 이 자리에서 기다리면 돼.”

실비아는 시녀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저, 전 식사 준비를 할게요!”

시녀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단하네.’

시녀들의 끝에 서 있던 주디엘은 실비아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잠도 못 잘 정도로 힘들 텐데.’

다른 시녀들도 라온을 소중히 여기지만, 실비아만큼은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식이 끊어졌는데,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시녀들을 다독이다니 대단한 사람이었다.

‘사실 걱정할 필요 없긴 하지만.’

라온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무서운 기질을 가진 인간이다. 그보다 무력이 강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그보다 냉철하고 두려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빨리 끝내고 저녁 먹으러 가…음?”

실비아가 화단 정리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본관 방향에서 키가 큰 남자가 다가왔다. 붉은 머리에 뾰족한 귀. 5 연무장의 수석 교관 리메르였다.

“리메르 님?”

다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빨간 머리카락이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렸고, 눈은 시꺼멓게 멍들었으며, 콧구멍에 붉게 물든 천을 끼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실비아가 입을 뻐끔거리며 리메르에게 다가갔다.

“아아,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별일 아니라니까. 오다가 고집 세고 성질 더러운 황소를 좀 만나서.”

리메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황소….”

몬스터도 아니고, 대체 무슨 소를 만났기에 저런 꼴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별건 아니고.”

리메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맛을 쩝 다셨다.

“라온 말이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라, 라온 소식이 들어온 거예요?”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았거든. 졸업식은 좀 늦을 수도 있겠지만, 곧 돌아올 거야.”

“아….”

리메르의 다정한 음성에 실비아의 손에서 가위가 떨어졌다. 참고 참던 감정이 폭발한 듯 그녀의 다리가 휘청였다.

“네 아들이자, 내 제자는 잘 오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기다리라고.”

그는 실비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럼 간다.”

“저녁 식사라도 하시고….”

“아, 큰 도박판이 열려서.”

리메르는 히죽 웃으며 등을 돌렸다. ‘아, 드럽게 아프게 때리네.’라고 중얼거리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실비아는 양손을 꼭 모은 채 리메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다음날.

성문과 별 다를 바 없는 크기의 대연무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평소 대연무장에 들어오기 힘든 평검사와 사무관들이 외곽에 놓인 의자에 차례로 앉았다.

리메르 덕분에 조금은 밝아진 실비아와 헬렌, 별관의 시녀들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언가를 바라듯 손을 꼭 모은 채 연무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 서기 직전.

화려한 예복을 입은 5 연무장의 수련생들이 차례로 입장해 연무장 중심에 열을 맞춰 섰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은은하게 피어나는 기세는 정규 검사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젠장….”

“아직도 안 온다고?”

“평소엔 그렇게 시간을 잘 지키던 놈이….”

“라온, 도리안. 빨리 좀 와.”

그들의 눈빛에는 긴장 이상의 걱정이 어려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끊임없이 뒤를 힐끔거렸다.

시간이 지나며 임시로 만들어 놓은 관중석이 점점 차기 시작한다. 평소 얼굴을 보기 힘든 대주나, 단주급 간부들 그리고 직계와 봉신가의 가주들까지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으아암.”

리메르는 입이 찢어질 것처럼 하품하며 수련생들 옆에 서 있었다. 졸업식이고 뭐고 그는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 기대, 긴장, 걱정이 드러나는 눈빛으로 수련생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 앞에 서 있던 검사들이 들고 있던 깃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검사들은 묵직한 울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뒤 깃발을 양옆으로 펼쳤다.

“북방의 진정한 주인. 글렌 지그하르트 가주께서 입장하십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 웅혼한 외침에 연무장에 있는 검사들이 일어서서 무릎을 꿇었다.

빛바랜 금발을 뒤로 넘기고, 검붉은 코트를 두른 글렌 지그하르트가 연무장을 가로지른다.

초월에 닿은 무신이 피워내는 압도적인 위엄에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올린다는 생각도 못 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고오오오!

그가 단상의 옥좌에 앉을 때까지 연무장에 있는 모두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도 잊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모두 일어서라.”

“예!”

일어서라는 말에 약속한 듯 모두가 동시에 일어섰다. 이것 역시 스스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글렌이 만들어낸 위압에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수석 교관. 시작해라.”

“가주님. 아직 두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실 수는….”

“정확한 복귀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졸업식이 2월에 열리는 건 모를 리가 없지. 지금까지 안 왔다면 실격이다.”

“그렇지만 라온은 수석이고 도리안은… 읍! 알겠습니다."

리메르가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싶어서 손가락을 비볐지만, 글렌의 서늘한 눈빛에 바로 뒤를 돌았다. 바로 어제 얻어터져서 반항할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 5 연무장의 졸업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총원 43명. 현재 인원 41명. 열외 2명으로 지금 있는 41명은…음?”

그가 먼저 현재 인원에 대해 말할 때였다. 닫히기 시작 대연무장의 아치형 문 사이로 낮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수많은 사람이 빚어내는 소음에 들리지 않아야 하건만 발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글렌 지그하르트처럼 위엄있었고, 리메르 같은 경쾌함을 일으켰으며, 밀랜드의 묵직함이 깃들어 있었다.

청각을 집중시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연무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문을 넘어오는 검은 구두. 화려한 예복 이상의 고귀함을 두른 사내의 모습이 드러난다. 햇볕을 받은 금발은 찬란한 빛을 발했고, 가라앉은 붉은 눈은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이젠 절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미모로 연무장을 훑어내리는 그의 입가에 호선이 피어났다.

“이런 환영식은 필요 없는데.”

라온 지그하르트. 그 누구보다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그가 지그하르트의 심장으로 돌아왔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