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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48화 (148/653)

148화

라온은 새벽이 되자마자 눈을 떴다.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다 보니, 더 자고 말 것도 없이 저절로 정신이 들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눈앞의 메시지.

[<나태>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미량 상승했습니다.]

능력치가 올랐다는 기분 좋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확실히 느껴져.’

감각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적은 양이지만 육체 능력이 올라간 게 느껴졌다.

전력을 다해서 수련할 때와 비교하여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양의 육체 능력이 올라갔다.

당연히 1포인트가 아니라 소수점 아래지만, 자면서 이 정도 능력치가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괜히 마왕이 된 게 아니었네.’

라스에게 슬로스가 마왕이 된 이유를 들었을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했는데, 바로 이 능력 때문이었다. 잠만 자도 강해지는 특성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라온이 몸을 일으킨 후 어깨와 발목을 가볍게 돌렸다.

‘몸도 가벼워.’

조금의 피로도 없이 몸이 깃털처럼 가뿐했다. 내용에는 없었지만, 나태에는 잠을 푹 잘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

뿌득.

라스는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팔찌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이를 갈았다.

-그 모자란 잠탱이 놈! 힘을 너무 많이 넘겨줬잖아!

‘이게?’

-그럼 아니겠느냐. 네가 수련하는 것에 비하면 적다고 해도 느낌이 올 정도로 능력치가 올랐지 않느냐!

라스는 슬로스가 미친 게 분명하다며 연달아 욕을 날렸다.

-가뜩이나 괴물처럼 성장하는 놈에게 이런 미친 능력을 주다니, 나중에 마계에서 보면 정말 평생 잘 수 없게 만들어 주겠노라.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니, 둘 다 조금 불쌍하네.’

라스는 전부 보고 있으면서 농락을 당했고, 슬로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속아 넘어갔다. 두 마왕에게 약간이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 불쌍? 네놈이 해놓고 어떻게 불쌍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냐! 이 악귀 같은 놈아!

‘악귀라….’

마족의 왕에게 몇 번이나 악귀 소리를 듣는 인간은 처음이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이 능력이 완벽하진 않아.’

-설마 단점이 있는 것이냐?

단점이 있다는 말에 라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래. 조금 더 자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나태의 효과 때문일까. 평소와 달리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다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음? 넌 바로 일어났지 않느냐.

‘나야 정신력이 강하잖아. 의미 없지.’

-그럼 너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소리잖아! 또 본왕을 놀리다니!

라스는 속았다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깨물며 냉기의 바람을 일으켰다.

‘진정 좀 해. 일어나자마자 능력치 주려고?’

-우욱!

라스는 이상한 신음을 흘리고서 우뚝 멈췄다. 화가 나도 능력치를 넘겨주기는 싫은 모양이다.

“아.”

라온이 피식 웃다가 손목에 걸린 검은 꽃팔찌에 시선을 주었다.

‘이 팔찌에 슬로스의 영혼이 들어 있다고 했지?’

-보, 본왕이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냐!

‘너 어제 내가 슬로스의 영혼을 가져갔다고 말했잖아. 그게 이거 아니야?’

-어…?

라스가 어벙하게 입을 벌렸다. 이 녀석을 오랫동안 보았지만 이렇게 멍청한 표정은 처음이다.

-그, 그랬던가? 아닐 텐데?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감추려들었지만, 소용없다. 거짓말을 못하니 어설프게 말을 돌리는 것도 한 몫했다.

‘맞네. 뭔지는 몰라도 슬로스의 혼이 깃든 물건이야.’

-크으으, 눈치는 더럽게 빨라가지고!

라스가 주먹을 말아쥐며 고개를 돌렸다. 살벌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 망할 놈이 네 야비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혼이 깃든 물건을 주고 갔다! 머저리 같은 녀석!

‘역시.’

라온은 두 개의 꽃팔찌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니까.’

라스는 단순하게 능력치만 주는 게 아니라, 입으로도 여러 가지 힌트와 정보를 뿌린다. 죽어서도 쉼터가 되어주는 나무밑동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건 무슨 능력인데?’

-모른다.

‘뭐?’

-그건 정말 모른다. 슬로스가 아니라, 녀석의 혼 일부가 깃들었기 때문에 너의 행동에 따라 훗날 그 능력이 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흥! 그 이상은 직접 알아봐라!

라스는 콧방귀를 끼고 몸을 돌렸다. 표정을 보니 한동안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해.’

라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슬로스의 혼이 깃들었다면 범상치 않을 물건이 될 테니, 차분하게 기다리면 그만이다.

-하나만 충고하지.

라스가 다시 뒤를 돌았다. 푸른 눈에서 살벌한 기세가 풀풀 풍겨 나왔다.

-네놈이 만약 오만이나, 질투, 탐욕과 마주쳤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색욕을 만났다면 뼈조차 거둘 수 없었을 것이고, 탐식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그대로 먹혔….

‘탐식은 너 아니야?’

-좀 들어!

녀석은 진지한 모습을 얼마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짜증이 차오른 눈빛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멍청한 나태를 만난 걸 네 평생의 행운으로 기억해라.

내 평생의 행운은 라스라는 호구를 만난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리를 부릴 거 같아 간신히 참았다.

-다시는 이번 같은 기회가 없을 것이다.

‘흐음….’

라온은 허공에 둥둥 뜬 라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제 힘을 모두 써서 작아진 라스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마왕들의 이름에서 호구의 기운이 느껴졌다.

‘오히려.’

빨리 만나보고 싶은데?

*     *      *

라온은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올라간 능력치에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연무장으로 나갔다.

가볍게 몸을 푼 뒤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떨어진 칼날이 바닥에 선명한 검흔을 새겨냈다.

오러를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피어나는 검풍. 근력과 민첩성 그리고 세밀한 감각이 이뤄낸 신기였다.

터엉!

진각을 밟으며 검을 중단에 세웠다. 지평선을 따라 뻗어나가는 연성검술의 부드러운 흐름. 물결치는 검격이 차갑게 가라앉은 새벽의 어둠을 갈랐다.

라온이 발목을 살짝 돌린 순간 검세가 급격하게 변했다. 잔잔하면서 끝없이 흐르는 강이 대해의 파도처럼 굽이쳤다.

광아검. 굶주린 맹수처럼 사나운 검격이 허공을 짓이기며 붉은 상흔을 새겨낸다.

막강한 힘의 파동에 연무장 바닥은 거미줄처럼 갈라졌고, 서늘했던 공기는 여름처럼 달아올랐다.

“후우.”

라온이 차오른 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생각 이상인데?”

상승한 능력치의 힘은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아무래도 강해진 육체 능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성장할 길이 보인다는 건 좋네.”

전생에서는 강해진다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홀로 어둠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도 그만큼 성장할 길이 보이기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걸 써볼까.”

라온이 다시 검을 들어 올리고, 만화공을 전력으로 운용했다. 그의 어깨 위로 피어난 열기가 만년설이 차오른 대지를 용암처럼 들끓게 만들었다.

고오오오오!

설원을 닮은 칼날 위로 뱀의 혓바닥처럼 새빨간 불꽃이 타오른다. 검날 전체를 덮고도 남은 불꽃이 허공에서 춤추며 용과 같은 형상을 그려냈다.

용의 뿔이 두 개가 되었을 때 라온이 땅을 박차고 검을 내질렀다.

쿠오오오!

그날 연무장의 중심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지그하르트 가주전.

“가주님!”

리메르가 거대한 문을 부서질 정도로 거칠게 열고서 알현실에 들어왔다.

“저놈. 어디 가둬둘 수 없나?”

글렌이 경쾌하게 걸어오는 리메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가둬놓으면 땅굴을 파서 나올 분입니다.”

로엔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주님! 이거 보셨어요?”

리메르는 시원해 보이는 미소를 그리며 손에 있는 편지를 흔들었다.

“그건….”

편지의 밀랍 부분을 확인한 그렌이 눈매를 좁혔다.

“하분 성에서 온 보고서가 왜 네 손에 있지?”

“보고하러 가져오는 걸 슬쩍했죠.”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리메르가 껄껄 웃었다.

“미친놈이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라스가 항상 라온에게 하는 말을 글렌이 리메르에게 하고 있었다.

“로엔. 저놈을 당장 동굴에 처박아라. 바닥과 천장에 철판을 깔고, 절대 꺼내주지 말도록.”

“허억! 왜, 왜 이러십니까.”

리메르가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편지를 흔들었다.

“가주님께 라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달려온 건데 그렇게 나오시면 섭섭합니다!”

“내가 아니라, 네가 알고 싶어서겠지.”

“뭐, 그것도 있긴 하죠. 보고를 받을 때마다 놀라게 되니, 기다려질 수밖에 없잖아요.”

다른 수련생들도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라온의 실적을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고만 듣고 있어도 라온과 다른 수련생들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뜯어보겠습니다.”

“잠깐.”

글렌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리메르의 손에 잡혀 있던 편지가 부드럽게 떠올라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펴, 편지를 뺏으려고 무형기까지 운용하십니까?”

“…….”

리메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지만, 글렌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봉투를 뜯었다.

“손주 활약상을 먼저 보려고, 절대의 무학을 사용하다니….”

방금 사용한 건 단순한 오러의 발현이 아니라, 지고의 경지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 무형기다. 그 절대의 무학을 고작 편지 뺐는데 사용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음….”

편지를 쭉쭉 읽어내려가는 글렌의 입꼬리가 바다에 뜬 낚싯바늘처럼 흔들렸다.

“무, 무슨 내용이길래 저러시는 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저렇게 좋아하시는 건 저도 오랜만에 봅니다.”

글렌의 표정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가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별일 아니로군.”

글렌은 사소한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편지를 던졌다. 날아간 편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리메르의 발 앞에 떨어졌다. 흡사 빨리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으음….”

“일단 보죠.”

리메르와 로엔은 고개를 끄덕이고 동시에 편지를 보았다.

그 작은 종이에는 라온이 다시 한번 하분 성을 구해내서 이곳의 영웅이 되었고, 하분 성의 모두는 라온의 힘이 되어주기로 결정했다고 적혀 있었다.

“허억!

“와아….”

두 사람은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탄성을 터트렸다.

“이 녀석 진짜 물건인데요?”

리메르가 입을 떡 벌린 채 글렌의 앞에 섰다.

“모두를 구한 거야 그렇다 치겠는데, 그 깐깐한 밀랜드 영감까지 라온의 뒤에 서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진짜 업적이라구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호들갑을 떠는 리메르와 달리 글렌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숨기지는 못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니요!”

리메르가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하분 성은 무인들의 대지. 의리는 단단하고, 신념은 굳건하며, 무력은 출중하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건 앞으로 라온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하분 성은 드높은 명예를 가진 곳. 라온 님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도우러 와줄 사람들입니다.”

“그거야 지나 봐야 아는 일이지.”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글렌의 입매는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보고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에이, 그만 좀 참고 시원하게 웃으세요.”

리메르가 자신의 입꼬리를 쭉 늘렸다.

“손자 소식 가장 먼저 알고 싶어서 무형기를 쓰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려고 억지로 근육에 힘을 왜 주는 겁니까? 진심의 1할만 보여줘도 라온이 ‘할아부지!’라고 하면서 안길 텐데, 정말이지 깐깐하기로는 지그하르트에서 역대급…으헉!”

말을 하던 리메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콰아앙!

그가 서 있던 바닥이 시꺼멓게 그을리며 주저앉았다.

“뇌, 뇌결? 진짜 죽이려고 이래요?”

리메르가 바닥을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글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리메르의 정곡이 조금 창피했던지 그의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자, 잠시만요. 제 제자이자, 가주님의 손주가 큰일을 이룬 이런 경삿날에 누가 죽으면 재수가 없….”

“제물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제, 제물? 나?”

글렌의 길쭉한 손가락에서 세상을 불태울 듯한 뇌광이 번쩍였다. 그 빛이 뻗어나가려 할 때 리메르가 이를 악물고 손을 모았다.

“이대로 뒈질 수는 없지! 검계현신!”

그 웅장한 목소리에 글렌이 잠시 멈칫한 순간 리메르가 땅을 박차고 알현실을 문을 열었다.

“이거 소문내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나중에 다시 올게요! 저는 이만…어?”

허세를 부리고 도망치려던 리메르가 눈을 부릅떴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어느새 글렌의 오러에 잡혀 몸이 떠오른 상태였다.

“지, 지그하르트 역사상 가장 훌륭하신 가주님. 한 번만 용서를….”

“로엔. 땅 좀 파놓아라.”

리메르가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볐지만, 글렌의 시선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늘이 저 까불이 놈의 제삿날이니까.”

“으아아아악!”

지그하르트 알현실에서 샛노란 벼락이 내리꽂혔다.

*     *      *

라온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천천히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정심함과 진중함이 어우러진 붉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완벽하군.’

4개월 동안 점차 강해지는 육체에 적응을 끝냈고, 새로 익힌 무학들의 성취도 끌어 올렸다. 목표했던 대로 4달 만에 최고의 몸 상태가 만들어졌다.

‘맛깔나게 싸울 수 있겠어.’

밀랜드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추하게 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라온이 마음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을 때 숙소 문이 열리고 도리안이 들어왔다.

“도련님. 시간이에요!”

그는 걱정과 기대가 어린 눈빛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사령관님은 벌써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어.”

오늘이 바로 4개월 전에 약속했던 사령관 밀랜드와의 대련이 이뤄지는 날이다.

하분 성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연을 최고의 몸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자.”

라온은 벽에 걸어둔 검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라온 님! 이기세요!”

“떠나기 전에 사령관님은 꺾고 가셔야죠!”

“믿고 있겠습니다!”

병사들의 응원과 환호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연무장 외곽은 기사와 검사, 병사들로 꽉꽉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준비는 끝났느냐.”

연무장 중앙에 서 있던 밀랜드가 담백한 시선을 보냈다.

“기다려주신 덕분에 만전입니다.”

라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구나. 지루하지는 않겠어.”

밀랜드가 입고 있던 두꺼운 코트를 던졌다. 무거운 진각을 밟으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그럼 시간 끌 필요 없겠지. 오라.”

춘풍처럼 부드러운 기세가 한순간에 폭풍이 된 듯 막강한 기파로 변한다.

수십 년간 전장에 서며 쌓아 올린 밀랜드의 오러가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라온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영혼의 격을 끌어 올리며 만화공을 일으켰다.

쿠웅!

바닥이 무너질 정도의 힘으로 땅을 박차고 밀랜드의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시작은 광아검. 미친 야수의 송곳니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콰아아앙!

속도, 위력, 방향 모두 나무랄 것이 없는 검격이었지만, 밀랜드는 가볍게 검을 드는 것만으로 광아검의 이빨을 꺾어버렸다.

공격이 완벽하게 막혔지만 라온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광아검은 적의 빈틈을 파고드는 감각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쩌정! 쩌저정!

라온과 밀랜드의 손에서 펼쳐지는 은빛 광채가 수없이 맞부딪쳤다.

막강한 충격파가 얼어붙은 땅을 깨부수고, 사나운 파동이 공간을 격하고 터져 나갔지만 밀랜드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인의 위상이었다.

“힘과 속도는 좋지만 날카롭지 못하군. 그게 다인가?”

밀랜드의 음성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보는 시선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라온이 눈동자에 적색 불꽃이 스친다. 검극에 어린 꽃봉오리가 별빛처럼 만개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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