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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46화 (146/653)

146화

라스가 패배를 인정하자마자 내기 승리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모든 능력치가 5포인트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오르며 치솟은 전율에 미소를 지을 때 두 번째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일급 칭호 <왕을 농락하는 자>가 생성됩니다.]

두 번째 보상은 마음에 딱 드는 이름의 칭호였다.

-어떤 놈이 칭호 이름을 저따위로 지었단 말이냐.

라스는 짜증이 돋아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노라!

‘어떤 놈이 지었는지는 몰라도, 누구 때문에 나왔는지는 알겠네.’

라온이 피식 웃으며 칭호의 설명을 불러왔다.

<왕을 농락하는 자>

왕의 위엄을 가진 자를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농락했을 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자신보다 무력이나 지위가 높은 자와 대화할 때 상대의 호감도와 신뢰도가 상승한다.

칭호의 능력을 본 라온의 눈에 붉은 이채가 돌았다.

‘이거 괜찮은데?’

항상 싸움으로만 적을 제압할 수는 없는 법. 설득력이 오르는 칭호의 옵션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분노와 나태가 나왔으니, 다른 마왕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칭호의 능력은 그런 위기의 상황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주에게도 통할 테고.’

글렌 같은 최상위 무인에게도 효과가 있을 테니, 여러모로 유익한 칭호였다.

-흥.

라스는 칭호의 설명을 보고서 콧방귀를 끼었다.

-본왕이 저따위 칭호의 능력에 넘어갈 듯싶으냐. 네놈이 본왕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라.

‘지금도 가능한데.’

애플 미트파이나 민트초코의 이름만 꺼내면 라스를 설득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본왕은 고고한 존재. 남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느니라! 저런 칭호보다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게 훨씬 나았을….

‘아 걱정하지 마.’

-뭐?

‘곧 오를 거니까.’

라온이 옅게 웃으며 세 번째로 올라오는 메시지를 가리켰다.

[<분노>에게 여섯 번째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6연승의 효과로 추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근력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기력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체력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6연승의 효과로 세 개의 능력치가 2포인트씩 상승했다.

‘오늘 대박이네.’

오늘 올라간 모든 능력치만 9에 각각의 능력치도 2에서 3씩 상승했다. 이렇게 많은 능력치가 오른 건 시스템을 얻고 난 이후 처음이었다.

-오, 오늘 대체 능력치가 몇이나 오른 것이냐.

‘글쎄. 모든 능력치로 따지면 대략 11포인트 정도겠네.’

-11? 11이라고?

라스가 냉기가 피어나는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빌어먹을! 그 11포인트. 전부 본왕의 육체에서 뽑아낸 것이잖느냐!

‘뭐 그렇겠지?’

라온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로스에게 뽑아먹고, 본왕에게 뜯어먹고. 이 등골 브레이커 같은 놈!

‘그러고 보니 이건 뭐야?’

나태가 생각난 김에 손목을 들어 올려 검은색 꽃팔찌를 가리켰다.

-본왕이 그걸 왜 알려주겠느냐!

라스는 팔찌를 지그시 내려보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 스스로 알아보거라. 본왕이 그걸 알려줄 의리는 없으니까.

‘반응 보니까 모르나 보네.’

라온이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왕이라고 해놓고 모르는 게 왜 이리 많은지.’

-무, 무슨 헛소리냐. 본왕이 모르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느니라!

‘그럼 이게 뭔데.’

-알려줄 생각 없다니까.

‘그러니까 모르는 거지.’

-이 족제비 같은 놈!

라스가 참고, 참던 분노를 터트렸다. 압도적인 냉기와 분노가 일어나며 온몸을 가시처럼 찔러왔다.

찌이이잉!

영혼에 박힌 25의 분노도 함께 일어나 내부에서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 이건 제법….’

라온이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부르르 떨었다.

-슬로스가 찾아왔을 때는 15의 분노가 네놈의 영혼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았다. 15중 10도 운용되지 못했지.

라스가 더 막대한 분노의 감정을 끌어 올리며 전신을 짓눌러왔다.

-하지만 지금은 25의 분노가 완전히 깨어났다! 이대로 네놈의 육체를 먹어 치우겠노라!

‘너도 착각이 심하네.’

이를 바짝 물며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일으켰다.

용암 같은 열기를 품은 오러가 마나 회로를 질주하며 냉기를 녹이고, 글래시아의 얼음 장벽이 뇌리를 파고들어 오는 분노의 감정을 막아섰다.

그것만이 아니다.

슬로스의 기파와 라스의 방해를 견디며 상승한 영혼의 격이 솟구치는 분노의 감정을 오히려 짓눌러버렸다.

-어, 어떻게….

‘생각 없이 네 분노를 받은 거 아니야.’

라온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쓸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네 분노를 받아들인 것 이상으로 내가 강해질 거라 확신했거든.’

라스에게 15의 분노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자신이 있었기에 녀석에게 거래를 제안한 거다.

불의 고리와 만화공, 글래시아 덕분에 라스의 공격이 견딜 만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그럴 리가 없다!

라스는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기운을 쏟아부었지만, 라온 역시 그 이상의 오러와 격을 끌어 올려 정신과 육체를 보호했다.

쿠구구구!

인간과 마왕의 힘겨루기가 30분가량 계속되었을 때 라온의 눈앞으로 푸른 창이 올라왔다.

[<분노>의 방해를 버텨냈습니다.]

[민첩성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방해를 견뎌냈다는 메시지. 오늘로 두 번째였다.

‘오늘 내 생일인가?’

-제에에에기랄!

*     *      *

라온이 삐진 라스를 보며 웃고 있을 때 숙소의 문이 열리고 도리안이 들어 왔다.

“어억!”

도리안은 멀끔한 라온을 보고 입을 떡 벌린 채 달려왔다.

“일어나셨군요!”

녀석은 침대에 손을 얹은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멀쩡해.”

라온이 어깨를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상태였다.

“어후, 진짜 다행이에요.”

“내가 얼마나 기절했지?”

“오늘로 사흘째였어요.”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좀 씻으셔야죠. 물도 마시고, 수프도 드세요!”

그 말을 하며 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세숫대야와 물 그리고 수프가 든 그릇을 꺼내 원형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세숫대야를 왜 가지고 다녀? 수프는 또 거기서 왜 나오고….”

“언제 깨어나실지 몰라서요.”

도리안은 헤헤 웃으며 대야에 세숫물을 담고, 수통에 있던 물을 컵에 부어주었다.

“고맙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자신 때문에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다녔다는 걸 알게 되니, 가슴 한쪽이 따스해졌다.

“전 사령관님께 보고하고 올게요!”

“어? 잠깐!”

뭘 이런 걸 보고하냐고 말리려고 했지만, 도리안은 이미 방 밖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급하기는.”

라온은 혀를 차고 세면을 끝냈다. 물로 입을 헹구고 각종 야채가 잘게 썰려 들어간 수프를 한 입 먹었다.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중간중간 씹히는 채소의 식감도 살아 있어 먹는 재미도 있었다.

“이거 유아가 만든 거네.”

제대로 된 레시피로 만든 수프다. 도리안이 아니라, 유아가 만들어서 가져온 것 같았다.

-맞느니라. 파인애플 소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맛이로다.

삐졌던 라스가 어느새 다가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참으로 쉬운 마왕이다.

-본왕의 시녀다운 솜씨로다. 무얼 하는 거냐. 더 먹지 않고.

“에휴….”

주절거리는 라스에게 고개를 저어주고서 남은 수프를 떠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맛이 좋아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순식간에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물을 마실 때쯤 다시 문이 열리고 도리안이 들어왔다.

“그새 다 드셨네요?”

도리안이 비워진 그릇과 컵을 보며 씩 웃었다.

“배가 고팠거든.”

식충이 하나가 재촉하기도 했고.

라온은 라스를 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생각해봤지만 라스는 미식가가 아니라 그냥 먹을 걸 좋아하는 대식가 같다.

“사령관님이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가실 수 있겠어요?”

“부르시면 가야지.”

하분 성주의 부름인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사정도 설명해야 하고.’

슬로스를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물어볼 게 뻔하기에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일이다.

그 핑계에 대해선 미리 생각을 해두었기 때문에 지금 가도 문제는 없었다.

-인간이란 원래 의심이 많은 동물이지.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구나.

라스는 파국을 바라는 듯 배를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네가 바라는 일은 오지 않을 테니, 신경 꺼라.’

라온은 달라붙는 라스를 밀어내고 겉옷을 걸치고 일어섰다.

“가자.”

*     *      *

“어? 라온 님!”

“일어나셨다!”

“라온 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라온이 숙소를 나가자마자, 정찰병들이 다가와 상태를 물어온다. 젖어 드는 눈빛에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괜찮아. 다 회복했어.”

“후우, 다행이네요.”

“진짜 걱정했습니다.”

웃으며 손을 젓자 정찰병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찰병만이 아니다. 사령부로 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몸을 걱정해주었다.

‘시선이 좀 많이 달라졌는데.’

이전의 자신을 영웅으로 보았다면 지금은 말하기 좀 민망하지만 거의 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거기다 원래 말을 놓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뭐지?’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건 이해하지만,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건 이상했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일지를 생각하며 사령부 앞에 도착했을 때 한 단어가 들려왔다.

지그하르트.

여기서 들려서는 안 될 단어였다.

“도리안?”

“아, 예….”

도리안은 알고 있었던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사령관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역시 그런가.”

사건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용병 출신이라는 말로는 커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다 아는 거야?”

“네. 그렇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 입으로 정체를 밝힌 게 아니니까요.”

“알고 있어. 다만….”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을 거 같아서.”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인데요.”

“다른 이유?”

“아, 일단 올라가시죠.”

도리안이 움찔거리다가 바로 앞에 있는 사령부를 가리켰다.

“알겠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령부 회의실로 올라갔다.

예상과 달리 회의실은 밀랜드나 테리안만이 아니라, 간부들로 꽉 차 있었다.

임무나, 경계를 서는 간부를 제외한 모두가 회의실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라온은 사람들의 얼굴을 쭉 살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살아 있네.’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착한 척하지 마라.

라스가 차게 웃으며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네가 저들을 구했다고 해도, 인간들은 마족과 연결고리가 생겼을지도 모를 네놈을 두려워할 것이다. 네 걱정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럴지도.’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삶에서 만났던 인간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라스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저들을 구한 게 아니라, 그저 살리고 싶었을 뿐이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딱히 실망할 것도 없었다.

“사령관님을 뵙습니다.”

라온은 생각을 정리하고, 밀랜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깨어난 모습을 보니, 좋군. 거기 앉거라.”

“예.”

밀랜드의 손짓을 따라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회복하느라 오래 걸린 줄 알았거늘. 또 강해져서 나타났구나.”

밀랜드는 자신의 안색을 쭉 살피고 헛웃음을 흘렸다.

“많은 천재들이 수련을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너처럼 빠르게 강해지는 녀석은 처음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니다. 그게 의지고, 실력이지. 조금 있으면 나조차 네 밑에 깔리겠어.”

밀랜드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다른 간부들도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회복한 걸 보니 말하기 편하겠군.”

그가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 괴물을 어떻게 돌려보냈지?”

“음….”

라온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살짝 턱을 내렸다.

‘올 게 왔군.’

무조건 나올 거라 생각한 당연한 질문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어떤 핑계를 댈지 궁금하구나. 이 녀석들도 슬로스가 마족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테니까.

라스는 재미있겠다며 키득거렸다.

“저는….”

“잠깐.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네가 대답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두었던 핑계를 말하려 할 때 밀랜드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놈이 마족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 그것도 마왕급 괴물. 그놈을 돌려보내기 위해서 넌 거래를 했겠지.”

“맞습니다.”

예상대로 이들은 대략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 마족이 원할 것이라면 영혼과 육체밖에 없을 것이다.”

“음…?”

예상을 벗어난 밀랜드의 반응에 라온의 대답이 조금 늦어졌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

“라온….”

그 침묵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는지 밀랜드와 간부들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라스는 불안한 듯 치켜올린 눈썹을 떨었다.

“너란 놈은 정말이지….”

“예? 그게 아니라, 저는… 어?”

라온이 뒤늦게 준비했던 핑계를 말하려 할 때 밀랜드가 벌떡 일어섰다. 그를 따라 간부들 모두가 몸을 일으켰다.

“고맙다! 라온!”

“고맙습니다!”

밀랜드와 간부들이 동시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어….”

-억?

갑작스러운 정중한 인사에 라온과 라스가 눈을 부릅떴다.

“왜들 이러시는 건지….”

살려줘서 고맙다는 건 알지만 인사가 조금 과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자신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마족과의 거래를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밀랜드와 테리안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네 영혼과 육체를 걸고 그 마족과 거래를 했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놈이 무슨 육체와 영혼을 걸어!

라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우린 바보가 아니다. 너의 소중한 것이 그 마족에게 저당 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맞습니다.”

“저희가 기절해 있는 동안 라온 님이 홀로 어떤 고초를 겪으셨는지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라온 님….”

테리안의 말에 간부들 모두의 눈빛이 슬픔과 감동으로 차올랐다.

-이놈들 바보 맞는 거 같은데?

라스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하분 성을 구하기 위해서 네 영혼을 희생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 라온 지그하르트.”

“평생 갚지 못한 은을 입었어.”

“감사합니다. 라온 님!”

간부들은 슬픈 눈빛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개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졌느냐! 혼을 내어준 건 이 사기꾼 놈이 아니라, 그 멍청한 잠탱이 놈이라고!

라스가 빽 소리를 지르며 밀랜드의 콩콩 머리를 두들겼다.

-마왕이 인간에게 등골을 뽑혔다고! 혼이 빨려나간 건 이놈이 아니라, 본왕이랑, 그 멍청한 슬로스란 말이다!

들을 수도 없건만 라스는 괴성을 지르며 간부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전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검에는 검. 피에는 피 그리고 목숨에는 목숨.”

밀랜드의 눈동자에 상서로운 광채가 어렸다.

“네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네 혼과 육체를 마왕에게 내어주었으니, 우리도 그에 합당한 걸 내놓아야겠지.”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간부들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끄어억! 답답해 뒤지겠도다! 이놈은 마왕에게 사기 쳐서 이득만 뽑아먹은 놈이니라! 정신 차려라!

라스가 악을 지르고 난동을 피워도 라온에게 향하는 간부들의 예과 존경은 멎지 않았다.

-목구멍이 고구마로 꽉 막힌 느낌이다. 마, 말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의 일부가 사라져도 좋다! 제발! 한 마디만!

녀석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쭉 늘린 채 죽겠다고 비명을 질렀다.

밀랜드와 간부들이 테이블 앞으로 나와 라온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섰다.

쿠웅!

오른 주먹으로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허리를 세웠다. 전장에서 보내는 최고의 경의와 찬사였다.

“우리가. 아니, 이 하분 성이 네 뒤를 받쳐 주겠다. 라온 지그하르트!”

“아….”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의 눈빛에 깃든 진중함에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끄으윽….

반면 라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랄맞은 세상이로다. 죽자. 그래. 죽어야 이 꼴을 안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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