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37화 (137/653)

137화

“유, 유물이요?”

“유물이라면 설마….”

“어….”

간부들의 시선이 밀랜드의 허리에 있는 설각검으로 향했다. 하분 성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은 바로 저 검이었으니까.

“차, 차기 성주를 라온으로 하시려는 겁니까?”

“그건 저어….”

“조금 더 생각을 해보심이….”

설각검은 하분 성주의 상징이 되는 물건. 저 검을 준다는 건 라온을 차기 성주로 인정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간부들이 떨리는 눈동자로 테리안을 보았지만,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차를 홀짝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밀랜드가 간부들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검은 유물이 아니라, 상징이다. 라온에게 줄 건 다른 것이야.”

“다른 거요?”

“이거다.”

그가 테이블 위로 눈처럼 새하얗고 얇은 갑주를 꺼냈다. 별빛처럼 반짝였고, 중앙에는 녹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

“이, 이거였군요!”

“그래. 오크 로드의 마석으로 만든 내갑. 백혼갑이다.”

내갑은 옷 속에 입는 갑옷이다. 얇지만 파고들어 온 칼을 막을 수 있어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착용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성주의 상징인 설각검보다도 귀한 물건이지만, 라온이 해준 일이 있으니, 이 정도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밀랜드는 백혼갑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녀석은 스스로를 너무 안 챙겨. 이 갑옷이라도 입혀야 속이 편할 것 같다.”

“저도 동의합니다.”

테리안이 씩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럼 저희도 상관없습니다.”

“라온이 아니었다면 이 성은 전멸이었으니, 무얼 주어도 부족하죠.”

“백혼갑이면 그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겁니다.”

백혼갑의 현재 주인과 미래의 주인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간부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건은 그렇게 하고 축제는 5일 정도 여는 게 좋을 것 같군. 다만 바로 시작하지 말고 일주일 정도 상황을 본 뒤에….”

“잠시 괜찮겠습니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설격대주 에드퀼이 손을 들어 올렸다.

“뭐지?”

“라온 님의 이야깁니다.”

“라, 라온 님?”

“라온 님이라고?”

갑작스럽게 나온 라온 님이라는 호칭에 간부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분 용병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용병 중에 그런 천재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가 사용한 무학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세월에 걸쳐 정립된 검술. 평범한 용병이 가질 수 없는 무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냐?”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음….”

밀랜드가 입맛을 다시며 에드퀼을 보았다. 평온한 눈빛.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확인을 하려는 것 같았다.

“저도 좀 궁금하긴 하네요.”

울브스 용병단장 베토가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피식 웃었다.

“우리 모두 알잖아요. 라온 그 친구가 용병이 아니라는 건.”

“음….”

“뭐, 그렇긴 하지.”

“난 이상한 곳만 아니면 돼. 오마라든가.”

“떽! 라온 그 친구가 오마일 리가 있어?”

한 번 물꼬가 터지니 라온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모두 조용.”

밀랜드가 책상을 툭 쳐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너희들의 말대로 라온은 평범한 용병이 아니다. 사실 그런 업적을 세웠으니, 이 이상 숨길 수도 없지. 다만 확실한 건 그 아이는 이곳에 온 이후 항상 진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의 단단한 목소리와 의미에 간부들이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언젠가 녀석 스스로 정체를 밝힐 때가 올 것이다. 그날까지 기다리도록. 그리고 그 아이의 정체는 내가 보장한다. 어둠에 물든 쪽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밀랜드는 이 이야기를 처음에 꺼낸 에드퀼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빛이 맑다. 옛날 꿈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에드퀼은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 기간 봐왔지만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밀랜드로서도 알 수 없었다.

“다 끝났으면 지금부터 축제를 준비해라!”

밀랜드가 테이블을 힘차게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간의 피로와 고통을 모두 풀 수 있도록 아주 성대하게!”

*     *      *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조명이 비치는 어둑한 방.

인간의 백골로 만들어진 괴기스러운 형상의 테이블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우측에 앉은 남자는 어둠이 어린 듯한 두꺼운 로브로 전신을 덮었고, 안구에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해골의 가면을 착용했다. 옆에는 금색의 지팡이가 홀로 서 있었는데, 시꺼멓고 사이한 빛이 그 주변을 맴돌았다.

반면 좌측에 앉은 가는 손가락의 여자는 챙이 있는 남색의 모자를 썼고, 얼굴에는 코가 길쭉한 노파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뒤에는 말라비틀어진 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둥둥 떠 있었다.

“실패했네.”

노파의 가면을 쓴 여성이 쯧 하고 혀를 찼다.

“하분 성을 말하는 건가?”

해골의 가면을 착용한 남자가 턱을 틀었다.

“그래. 청주귀, 빙아귀 그 밥값도 못하는 버러지들이 죽었어.”

“어떻게 실패했지?”

“뭘 물어? 생각 없이 하분 성주에게 달려들었겠지.”

“빙아귀라면 모를까. 청주귀는 단순하게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해골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이미 늦었어. 우리가 움직였다는 걸 들켰으니, 하분 성주는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을 거고, 육황에서도 지원을 나오겠지.”

“흐음….”

“뭘 그리 심각해. 녹색의 왕 마석은 서쪽에서도 나타났으니까. 상관없잖아.”

“나는 마석보다 세이렌의 그릇을 원했다. 그런 재능은 대륙 전체에서도 흔하지 않아.”

강한 무력, 넘치는 마력의 재능은 어디에 가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세이렌의 화신 같은 기질은 쉽게 찾기 힘들다.

“대량 학살도, 대량 세뇌도 가능한 능력이다. 무조건 손에 넣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때가….”

“아니, 이런 때일수록 움직여야 한다.”

해골 가면을 쓴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뼈와 뼈가 부딪치는 듯 탁한 소리가 울리고 테이블 위로 슬라임처럼 흐물거리는 액체가 솟구쳤다. 탁한 회색이라 내부가 보이지는 않았다.

“도플갱어? 그 멍청한 놈으로 뭘 어쩌겠다고. 도플갱어의 투구를 쓸 놈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내가 직접 개량했다.”

남자는 테이블의 해골을 집어삼키려는 도플갱어를 보고 눈매를 좁혔다.

“이 녀석은 삼킨 인간의 언행을 100% 재현한다. 가족이라고 해도 알아볼 수 없지.”

“호오.”

노파의 가면을 쓴 여성의 눈동자가 푸르게 반짝인다.

“소화와 동시에 그 인간의 기질을 흡수하는 방식인가? 아예 세포 자체를 개조했군.”

“시간제한이 좀 있지만, 이 녀석이라면 세이렌의 그릇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다.”

“밀랜드가 알아차릴 가능성은?”

“없다.”

해골의 가면을 착용한 남자가 자신감이 흐르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기질 자체를 읽는 괴물이 아닌 이상 저 녀석의 변신을 알아차릴 수 없다.”

*     *      *

하분 성에 축제가 열렸다.

웨이브 이후 하루 정도 가벼운 축제가 열렸던 적은 몇 번 있지만, 5일 연속으로 축제가 일어난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성의 분위기는 만년설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웠다.

축제의 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조되었고, 표창식이 열리는 다섯 번째 날 극점을 찍었다.

“성벽에서 뛰어내려 아이스 트롤 로드와 접전을 벌였던 도리안과 에드퀼은 앞으로!”

“예!”

표창식 사회를 보던 테리안의 부름에 도리안과 에드퀼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하분 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아이스 트롤 로드와 몬스터들을 막은 두 사람에게 하분 성의 명검과 금화를 수여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상 위에 있던 밀랜드가 직접 검과 금화를 내려주었다.

“도리안.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앞으로도 발전하길 바란다.”

“옙!”

“에드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변화가 나빠 보이지 않는구나. 계속 정진해라.”

“예.”

두 사람은 밀랜드에게 고개를 숙인 후 뒤를 돌아 관중들에게도 머리를 숙였다.

“우와아아아아!”

“우리 3번 정찰대의 자랑!”

“도리안! 도리안!”

“대주님! 최고입니다!”

정찰대와 검사들이 도리안과 에드퀼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그럼 마지막 순서입니다.”

테리안이 험험 헛기침을 한 뒤 가장 우측에 앉아 있는 라온을 보았다.

“웨이브에서 서른 명의 목숨을 구하고, 에덴의 귀신과 아이스 트롤 로드를 홀로 벤 무적의 검사! 라온 앞으로!”

“우와아아아아아!”

“라온! 라온! 라온!”

“하분 성의 검귀!”

“트롤 로드 슬레이어!”

라온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축제장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고 함성을 터트렸다.

“후.”

라온은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네 용기와 용맹 덕분에 성의 피해가 최소한으로 그칠 수 있었다. 하분 성의 성주로서 네게 감사를 표한다.”

밀랜드가 처음으로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령관님!”

모두가 보고 있는 이런 공간에서 밀랜드의 인사를 받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하여 똑같이 머리를 내렸다.

“마주 숙일 필요 없어!”

“맞아! 성주님의 인사를 받는 걸로도 부족하다고!”

“라온! 당당하게 서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지 씩 미소를 지었다.

“하분 성을 위기에서 두 번이나 구한 영웅에게 하분 성의 유물 백혼갑과 금화를 내린다.”

밀랜드가 하얀색 갑옷을 내밀었다. 금이 박힌 듯 빛이 반짝였고, 가슴 중앙에는 육각으로 세공된 녹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너는 네 몸을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백혼갑은 옷 안에 있을 수 있는 내갑이니, 항상 착용하고 다니도록.”

“감사합니다.”

보기만 해도 귀중한 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옷을 준 이유도 알 수 있었기에 가슴에 따스한 열기가 일어났다.

“우와아아아아아!”

“라온! 라온! 라온!”

“앞으로도 하분 성을 지켜주십시오!”

뒤를 돌자마자 성이 뒤흔들릴 정도의 함성이 폭발했다. 다가오던 몬스터가 무서워서 달아날 정도의 환호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관중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앞으로 이런 날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마지막까지 즐기도록! 이번 순서는….”

테리안이 다음 행사를 말하는 것을 들으며 백혼갑을 살펴보았다.

‘음, 어디서 본 느낌인데.’

옷이 아니라, 옷에 박혀 있는 에메랄드 같은 녹색 보석에 담긴 기운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아!’

이제야 생각났다.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는 고블린 왕의 마석. 그것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크 누린내가 줄줄 흘러나오는데, 이제야 알다니, 한심하군.

라스가 감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오크?’

-그렇다. 오크 로드의 마석이니라.

‘그렇군.’

손이 데일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던 고블린 왕의 마석과 달리 이 마석에는 바위처럼 단단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이 차이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마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걸 노렸었나 보네.’

에덴이 왜 하분 성을 공격했나 고민했었는데, 이 마석을 노리고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안에 어린 기운은 고블린 왕의 마석과 비교해도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으니까.

‘흠.’

라온이 내부의 기운을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 마석에 손을 올렸다.

치이이잉!

그 순간 불의 고리가 미친 듯이 돌아가며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세상이 변했다.

피로 물든 설원이 보인다.

인간과 오크의 시체가 산이 되어 쌓였고, 그 죽음의 언덕 위에 금발의 검사와 오우거보다도 큰 오크가 검과 도끼를 맞대고 있었다.

검사의 검에서 나선의 불꽃이 치솟았고, 오크의 도끼에서 흉악한 투기가 넘실거렸다. 두 괴물의 격돌에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무너져내린다.

수백 혹은 수천 번의 부딪침 끝에 불꽃의 칼날이 도끼를 가르고 오크의 목을 베었다.

오크는 웃었고, 검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몸을 돌린 검사가 이쪽을 본다. 붉은 눈을 제외한 다른 부분이 어둠에 휘감겨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뿜어진 금빛 화염이 시야를 뒤덮었다.

다시 세상이 변하고, 웃음과 활기가 넘치는 축제장이 보였다.

[불의 고리(5성)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만화공(4성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성취가 모자랍니다.]

첫 판별식에서 보았던 메시지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꿀꺽.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이곳에서 오크 로드를 상대했던 건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검에 어린 불꽃과 다듬어지지 않은 금발은 판별식에서 보았던 남자와 꼭 닮아 있었다.

-네놈 방금 어디를 가서 무얼 보고 온 것이냐.

당황한 듯 라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뭐?’

-방금 네 영혼은 네 몸을 떠나 있었다.

‘떠났다고?’

-그렇다. 조금 전 너는 육체만 있는 빈털터리였다.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는 건가?

당황하여 눈을 부릅떴을 때 두 번째 메시지가 올라왔다.

[???와 마주했습니다.]

[불의 고리의 성취가 크게 상승합니다.]

[만화공의 성취가 크게 상승합니다.]

*     *      *

쯥.

라온은 단상 위에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도리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더럽게 못 부르지만, 지금은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불의 고리도 익히고 있었다니….’

불의 고리에 대한 메시지가 그냥 나올 리가 없다. 그 금발의 남자는 만화공만이 아니라, 불의 고리도 익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그하르트에 불의 고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전생의 자신이 불의 고리를 얻었던 장소는 지그하르트와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이런 환상을 그냥 보여줄 리 없다. 분명 어떠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불의 고리 그리고 만화공의 극을 보기 위해서는 이 환상의 끝을 찾아야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할 일이 하나 더 늘었어.’

가뜩이나 쌓인 일들이 많은데 선조의 비밀까지 찾아야 하는 일이 추가됐다. 관심 끄고 싶지만 만화공과 불의 고리의 비밀이 담겨 있을 것 같아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지.’

실비아를 직계의 위치에 돌려놓는 일. 데루스에 대한 복수가 무조건 해야 할 일이라면 직계의 자리를 되찾는 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정식 검사가 되고 그 이후에….’

라온이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때 도리안이 노래를 부르다 쫓겨나고, 단상 위로 양 갈래머리를 찰랑이는 유아가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유아가 양손을 흔들며 방긋 웃었다.

“우와아아아!”

“유아다! 유아!”

“이제 귀 호강 좀 하겠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목소리에 병사들이 전투할 때보다 더 큰 함성을 터트렸다.

“이번에 새로 만든 노래니까. 잘 들어주세요.”

유아가 뒤를 보며 신호를 주자, 바이올린과 기타를 든 병사들이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툭툭.

이전에 부르던 경쾌한 음악과는 다른 웅장한 흐름이 축제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겨울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용맹한 자도, 강인한 자도, 현명한 자도 차디찬 겨울을 견디긴 쉽지 않으리라.”

예상과는 다른 가사와 음악이었지만 유아의 선명한 목소리가 귀를 잡아끌었다.

“한없이 고여 있던 겨울성에 어린 검사가 찾아온다. 강인했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용맹했지만 다정했으며, 현명했지만 배움을 알았다.”

가슴이 울렁인다. 그녀의 목소리가 고산의 북처럼 울리며 전신을 박동시켰다.

“무너진 성벽 아래 홀로 선 어린 검사의 칼날에 새벽의 여명이 깃들었다. 그 아름답고 고고한 빛에 북쪽 산의 괴수들은 의미 없는 족적만 남기고 사그라졌다.”

내 이야기다.

유아의 낭랑한 목소리로 펼쳐지는 영웅담은 하분 성에서 시작된 자신의 이야기였다.

“가면과 투구로 본심을 가린 귀신들조차 어린 검사의 신념을 부러뜨리지 못하고 물러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신이 깃들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전의 싸움이 저절로 그려진다.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움켜쥔 라온의 눈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의 업적을 노래하는 최초의 무훈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영웅의 길이 열립니다.]

16